지덕체, 진선미에 대해서 많이들 들어봤을텐데요. 이 지덕체, 진선미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양대 산맥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시기적으로 앞선 세대를 살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기도 했던 플라톤이 정립한 이 사상은 사람의 기본 구성 요소이자 사회의 계층구조를 설명하기 위해서 제시되었습니다.
플라톤은 사람을 영혼 3분설로 분류하며 머리, 가슴, 배(육체)로 분류하였는데, 이는 이성, 용기/의지, 욕망을 대표한다고 보았습니다. 이성에서 지성이 나오고, 용기/의지는 숭고함을 지키기 위한 의지로써 여기에서 도덕이 나오며, 이성이 욕망을 제어하며 절제가 나온다고 합니다. 여기서 지덕체가 나옵니다.
지덕체는 각각 학문, 도덕, 예술로 발현되며, 이것들의 가치로서 진리, 선함, 아름다움이 추출됩니다. 이성-智-진리 추구-학문, 의지-德-선함(숭고함) 추구-도덕는 한번에 이해가 가지만, 절제-體-아름다움 추구-예술은 아직 긴가민가할 겁니다.
절제가 왜 體가 되는지, 體가 어떻게 예술로 발현되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텐데, 의외로 간단합니다. 요즘 다이어트를 하는 것처럼 당시에도 절제된 생활과 올바른 행동에서 건강한 몸이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영혼 3분설을 주장한 플라톤 역시 엄청난 근육덕후로 격투기 선수로 활동도 했을만큼 아름다운 근육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리고 절제와 단련으로 완성된 남성의 몸이야 말로 아름답다고 여겨졌으며, 예술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예술품들을 보면 대개 근육이 두드러진 남성의 몸을 주제로 합니다. 반대로 여성의 아름다움은 크게 부각되지 않고, 평가절하되는데, 이는 여성이란 존재 자체를 번식을 위한 존재로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남녀의 사랑은 본능적이고 비이성적인 사랑으로 세속적이며 천박한 것으로 폄하된 반면, 남자들간의 사랑은 지성을 바탕으로 한 존경과 연대에 의한 숭고한 사랑으로 여겨졌습니다. 여성과 여성의 사랑은... 여성은 지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존재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그딴 사랑은 가치가 없다고 패대기쳐졌죠.
이 영혼 3분설은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지배계층과 용기를 가지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 생산을 하고 절제를 통해 국가의 부를 쌓는 생산자 계층이 나라를 이루는 근간이라고 설명하며 플라톤은 더 나아가서 철인정치까지 주장하게 됩니다. (자기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투표로 죽인 민주주의를 극혐하며, 민주주의를 중우정치, 민중을 우매하다고 생각한 그는 이성적이고 우수한 철학자 집단이 지배계층이 되어 사회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참고로 덕을 숭상한 유교사회인 조선에서는 지덕체 중에서 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고종의 교육입국조서에서는 지덕체가 아닌 덕체지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참으로 유교국가답죠. (이것이 옳다 그르다 비판하는 게 아닙니다. 단지 사회의 가치관을 볼 수 있는 단면으로써 소개한 것입니다. 곁들여서 존 로크는 건강한 몸이 있어야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며 체덕지를 강조했습니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오래 전부터 진선미의 중요도에 대해 고민해봤고, 여기에서의 댓글들을 통해 추구하는 바가 좀 더 정립되었기 때문입니다.
대학생 때까지는 진리가 최우선이어야 하며 진선미의 순서를 별다른 고민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기독교를 나오면서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집단마다 추구하는 진리가 다른데, 어떻게 가변적일 수 있는 진리가 최우선일 수 있을까?'
도덕 역시 사회에 따라 행태가 달라지기 때문에 영원불변일 수는 없고,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집단에 따라서 진리는 거짓이 될 수도 있고, 도덕이 부덕이 될 수 있습니다.(안락사 문제, 낙태 문제, 식인종들의 관습 등), 하지만 아름다움은 웬만해서는 집단에 따라서 극단적으로 변질되는 일은 없습니다. 외적인 아름다움이든, 내적인 아름다움이든 한 집단에서의 아름다움이 다른 집단에서의 추함으로 변질되는 일은 거의 없지요.
더 쓸 이야기가 있는데, 나가봐야 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뭐... 할 얘기도 대충 다 한 것 같고...
나중에 돌아와서 다 못쓴 부분은 본문글이나 댓글로 더 이어서 쓰겠습니다.
내용 추구)
제가 진리를 최상위 가치로 두고 있었을 때에는 기독교는 매우 비루한 종교였습니다. 제가 이 게시판에서 쓴 여러 글들에서도 보이듯이 기독교가 진리가 아니라는 것은 매우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상위 가치가 진리가 아니라 아름다움이라면 관점이 달라집니다. 테레사 수녀님의 인생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녀의 종교가 무엇인지는 부차적인 문제가 되고, 아름다움이 그녀의 인생을 수놓습니다. 전 이 분이 기독교라고 감히 돌을 던지지도 못할 것이며, 반대로 비난을 하는 사람들을 비판할 것입니다.
이 외에도 선행을 베푸는 기독교인들이 종종 보입니다. 그저 기독교인이라는 거짓교리를 추구하는 집단으로 묶어서 매도하기엔 그들의 삶은 풍요롭고 아름답습니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기독교인들도 아름답지만, 스스로를 연마하며 자신의 행동에 종교적 제약을 걸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기독교인들도 아름답습니다.
물론 이런 기독교인들은 음지에 있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고, 우리가 뉴스 등을 통해 흔히 만나는 기독교인들은 죄다 추악하게 일그러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좋을 리가 없죠.
(게다가 사람들의 눈에 들어오는 추악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종교계 지도자들이 많다는 것도 개신교의 부정적인 인상을 더 깊게 각인시킵니다.)
이 게시판의 대부분의 개신교인들도 실상 그들의 종교 때문에 욕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행동이 추잡하기 때문에 욕을 먹는 것입니다. 분명히 고린도전서에는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라고 쓰여져있지만, 그들은 맹목적인 믿음과 구원관에 사로잡힌 소망에만 집착하고 있지요. 그들의 말과 글에서 사랑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드물게 기독교의 정신을 제대로 받들고 있는 유저가 보이는데요. 제가 누누히 존경한다고 말씀드리는 제로니모님이 그 분이시고, 제가 계속 공격하며 글로 서로 싸우는 '세상의빛'님도 역시 기독교의 정신을 제대로 받들고 있는 분으로 생각됩니다.
해당 유저와 제가 진리관이 다르고, 다른 정도를 떠나서 모순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에 항상 설전을 벌일 수 밖에 없고, 설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서로에게 공격적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이 진리인지를 떠나서 미적 관점에서는 그 분의 삶은 꽤 풍요로울 것으로 보입니다. 글을 보다보면 제 주변 기독교인들이 생각나더군요. 기독교의 가르침을 진리로 믿지만, 그 내용을 인생의 기둥으로 삼고, 남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게 살아가는 친구들이 떠오릅니다.
아이러니하게 전 그 친구들에게는 기독교의 모순 등에 대해서 웬만하면 언급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해서는 그들이 저를 대상으로 포교행위를 하지 않는 한, 저도 그들의 신앙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심지어 술집에서 술을 안마시고, 안주를 먹기 전에 기도하는 친구가 있으면 기도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기도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곤 합니다.
현실에서는 그들의 종교와 신념을 인정해주면서도 온라인에서는 신랄하게 까는 제 모습을 보면 괴리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 역시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선민사상에 울화가 치밀어서 하는 것일 뿐이죠.
매번 말하지만 그들이 조용히 있으면 제가 쫓아다니며 그들의 경전을 짓밟고 다니는 일은 없을 겁니다.
토크멘터리 전쟁사에서 키스 장군의 최후에 대한 영상을 보다가 세상의빛님과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하지만, 돌을 던지며 싸우면서도 일말의 미안함이 느껴져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에 기대어 글을 하나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