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 내세적 구원관이나 시오니즘과는 또 다른 천국관으로 키니코스 학파의 핵심과 흡사한 주장. 우리나라에도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역사상의 예수는 심판과 구원이 아닌 마음을 다스리는 설교를 하고 다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예수 사후, 종교팔이로 남은 생을 연명해야 했던 제자들과 종교 사업가 바울이 현재 한국의 목사들처럼 예수의 사상을 변질시켜 예수팔이 한 게 현재의 기독교라고 봅니다.
2.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 원수를 사랑하라는 묵가적 사상은 인간을 초월해야 하는 경지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실현불가능하고, 딱 여기까지가 인간으로서도 실현 가능하고 사회 통합을 위해서도 충분히 받아들이기 적당한 주장 같아 보입니다.
단, 이 정도의 사랑과 관용도 사회가 복잡해진 현대에 이르러서는 단순히 문장 하나로 끝내기엔 현실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죠.
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 반면교사로 쓰기에 딱 좋은 구절입니다. 카이사르의 '사람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본다.'는 명언과 정확히 대비되는 문장으로 이 게시판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흔히 존재하는 인간군상을 잘 표현하는 글이죠. 증거나 논리 따위는 무시하고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는 우매한 인간들에 대한 통찰력을 주는 문장입니다. 또한 이해가 동반되지 못한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 지도 알게 해주는 구절입니다.
'저 새끼가 또 왜 저 GR 떨까?'라는 의구심이 들 때마다 곱씹어보면 단번에 이해를 시켜주는 명언이죠. 기독교든 페미든 쪽바리든 토왜당이든 다 이 문장에 투사시키면 그들의 행동과 발언들이 납득이 됩니다. 역사적으로도 삽질을 한 지도자, 정치인, 장군들이 왜 그와 같은 결정을 했는지에 대한 답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