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인 사고체계가 이성과 지성의 결합만 강조되느라,
감성과 지성의 결합에 대해선 대부분 문외한입니다
인식의 차이를 전자와 후자로 구분해서 논거해보죠
<전자>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의 정신을 이해한다는 것인데,
인간은 자기가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해서
혹은 맞는것과 맞지 않은 것을 잘 구분해서
그것을 표현하고 행위를 결정하는 존재라고 봐야한다
<후자>
나름대로 옳거나 옳지 않고 맞거나 맞지 않고의 경계 중간에 있는
"이정도는 해도 되겠다"는 익숙한 영역과
"그정도 보상이면 해볼만 하지"라는 도전적 영역에서
자신의 표현과 행위를 이행하는게 인간이다
링크를 드린 댓글에서 맹신도는 이성의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본인의 5가지 질의 자체가 삽질입니다
왜냐면 마론볼씨는 이성의 전제로 질의를 세웠으니까요
합당한 이성을 전제로 이야기하려면 모순이 배제되야 합니다
그런데 모순을 수용하는 대상들에게 그러한 질의라는데서 애송이죠
그쪽을 비난하여 상대적으로 자기 자존감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시도하기 위한 노력이라면
접근의 뿌리부터 어긋난 겁니다
감정과 공감의 차이란게 말입니다
감정은 자기 자신만을 향하지만
공감은 타인을 향합니다
본인이 의성어를 도입하여 ㅋㅋㅋㅋ나 ㅎㅎㅎㅎ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논의의 과정에서 스스로를 감정에 빠뜨렸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르는 논거도 결국 자신의 감정 정당화를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아요
이성이란 동물과 차별되는 인간의 특징을 핵심으로 삼습니다
뭘 알든 모르든 본인이 이성을 유지한다면
스스로를 감정에 매몰되는 일을 피해야 합니다
내가 어떤 경우든 사람을 대상으로 의성어를 안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격이란건 이부터 차이를 내는 것 입니다
자기 감정으로의 매몰적 욕망을 조절하느냐 못하느냐가 격의 차이입니다
내 격은 마론볼씨를 사람으로 대하기 때문에 의성어 같은 표현을 안쓰는 겁니다
그러나 내 마론볼씨를 대상으로하는 배려는 여기까지만 해둡니다
내가 성인 군자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후로 내 배려는 더이상 하지 않고 연이 닿으면
건조하게 나와 동격이라는 논리철학의 시각에서
지적과 요구를 병행하겠습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고로 하나님에 의해 버려진 것이 맞다고 봐야겠지요. 예수님과 하나님은 일체이기도 하므로 예수님 스스로 버린 것이기도 하구요. Q2-1의 답변은 위에 붙여드린 요한복음 구절로 설명이 되겠습니다. Q3-1의 답변으로는 전능자 여호와의 힘이라고 하는게 옳겠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인해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안남은 줄 앎으로 분내어 땅으로 내려갔어요. 하늘은 기뻐하나 땅에는 화있을진저 입니다.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작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대하여 먼 장래까지 말씀하셨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를 존귀한 자 같이 여기셨나이다
요한복음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 다 이루었다 '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님은 여호와 성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위 내용을 볼 때 이것은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고난을 감당하시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마태복음 26:39
"조금 더 나아가 땅에 엎드려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 할 수만 있으면 이 고난의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
성경의 여러 부분에서 이 고난 당할 것을 염려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오고,
제자들에게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도 세번 이상
제자들에게 주의하여 말씀하십니다.
구약의 이사야서 53:4~6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지만, 구약에서 이미 예언한 성경 말씀대로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왕, 왕중의 왕으로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시고,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인간들이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게 복음을 성취하십니다.
- 왜 애비에게 버림 받은 예수를 신앙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네
누가 애비인가 ? 하나님을 인격화 하면 애비가 되고 자식이 된다.
세상을 지배하는데 정당성을 주장하려... 인격화된 신이필요하고
그당시 권력과 종교에게 필요했던것...
사박다니... 운운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의 연극화 와 거짓조작으로
보복을 당한다는 두려움을 주기위해 조작된것..
또 반대론자들에게는 한갓 인간이 하나님아들 장난하다 실체가 드러난 것으로
폄하하려 한것이나 메달렸다는 예수가 실제로 그랬는지는 알수 없는 것임.
Q1. 예수는 야훼에게 버려졌는가, 버려지지 않았는가?
--> 야훼는 니비루란 행성의 중간통신위성 관리자 급 정도
여기서 질문한 야훼는 예수를 구하거나 버릴 정도의 급이 안됨.
이 반란자 야훼가 지구에서 신으로 행세한 것을 예수가 부정한것.
Q1-1. 버려지지 않았다면 예수가 거짓을 말한 것인가?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았다. 만약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으면..
그렇게 되도록 만든 야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야훼가 지죽 으려 그런짓 못함.
Q2. 예수가 버려졌다면, 다시 야훼에게 주워졌는가?
십자가 못박힌 예수는 아리하비라는 자로써 스스로 구세주라고 믿은 자로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힐 것을 희망... 예수와 너무 닮아 몰라 볼 정도였다고...
하늘은 예수가 땅에 닿기도 전에 어린아기들을 죽이는 세상에 대해 준비를 했다는 사실..
Q2-1. 야훼가 다시 주웠다면, 야훼는 금방 다시 주울 예수를 왜 버렸는가?
앞서 언급한것 처럼 야훼는 줍거나 내버리거나 할 정도로 급이 안됨
나섯다가는 그냥.. 찌그러져 있었음.
Q3. 야훼가 다시 줍지 않았다면, 버려진 예수는 대체 어떻게 부활했는가? 죽음 자체가 거짓인가?
이 아이하비라는 자가 너무도 연기를 잘해서... 먼저 홀로그램으로 복구
이후 죽었던 걸 다시 살려냄.... 이후 인도 스리나가지방에서 115세 가지 살다 죽음.
Q3-1. 만약 진짜로 죽음에서 부활했다면, 야훼에게서 버림받은 예수는 대체 어떻게 부활했는가? 사탄의 힘인가?
죽었던자가 살아 나는방법은 무었인가?....
1. 완전히 죽지 않았다면.... 소생술로 살릴수있음...
2. 완전히 죽었어도 4-5차원 과학은 죽은 생명을 살려낼수있음.
기적이란.
기적을 설명할수있고 행 할 수 기술이있다는것을 우리가 모르므로 기적이라하는 것임.
이것을 우리가 알고 설명할수 있다면 과학이 되는 것 임.
그러므로 교회에서 말하는 기적은
하나님 하고도 통하지 못하며, 무식하다는 증명을 스스로 하는 것임.
하나님에게 물어 봐서 알아 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