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성은 나지 않거늘 어찌 알거나 보려하며
본래 한 법도 없거늘 누가 닦고 익힘을 말하랴
가고 옴에 까닭이 없으니 찾아 보아도 볼 수가 없고
온갖 것 짓지 않으니 밝고 고요함이 저절로 나타난다
앞날의 모든 것이 허공과 같으니 알려고 하면 종취를 잃고
분명하게 경계를 비추지만 비춤을 따라 어두워진다
한 마음에 걸림이 있으면 모든 법에 통할 수 없고
가고 옴이 자연스러우니 무엇 따로 방편을 생각하리
나도 나는 모양이 없으니 생함과 비춤이 하나가 된다
만일 마음을 깨끗이 하려거든 무심하게 닦을 지어다
종횡으로 비추지 않으면 가장 미묘한 법이 되고
법을 알면 앎이 없고 앎이 없으면 참된 앏이니
마음을 가지고 고요함을 지키나 오히려 병을 떠나지 못하고
생사에 마음이 움직이지 말아야 그것을 본성이라 한다
지극한 이치에는 갖춘 것이 없어 풀 수도 묶을 수도 없지만
신령스럽게 통하고 만물에 응하여 항상 눈 앞에 있다
눈 앞에 한 물건도 없으나 물건 없음이 완연하니
지혜로써 살피지 아니하여도 본체는 스스로 비고 깊나니라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멸함에 앞 뒤가 다르지 않나니
뒷 생각이 나지 않으면 앞 생각이 스스로 끊어지고
과거 현재 미래에 아무것도 없으니 마음도 부처도 없도다
중생이 무심하면 없음에 의지해 마음이 나온다
범부와 성인을 분별하므로 번뇌가 더욱 치성하고
헤아림 때문에 영원함을 어기고 참됨을 구하므로 바른 길을 등진다
모든 대립된 경계를 잊음으로써 담연하여 밝고 깨끗하다
불필요한 재주를 짓지 말고 천진무구한 행을 가질지어다
분명하게 보았다 해도 오히려 보는 그물에 걸리고
고요하여 보는 바가 없다 하면 어두운 소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성성하여 그릇됨이 없으면 고요하여 밝게 빛난다
만상은 항상 참되고 삼라는 한 가지 모양이라
가고 오고 앉고 섬에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말라
결정코 방향과 처소가 없으니 어디에서 출입함이 있겠는가
합할 것도 흩어질 것도 없고 더딤도 빠름도 아니로다
밝고 고요하여 자연스러우니 말로 다할 수 없도다
마음 속에 다른 마음 두지 않으니 탐욕과 음욕을 끊을 것도 없고
성품이 공하여 모든 허물 떠났으니 흐름에 맡겨 떴다 잠겼다 한다
맑지도 않고 흐리지도 않으며 얕지도 않고 깊지도 않음이여
본래부터 있으나 옛것이 아니고 현재 있지만 지금이 아니다
현상에서 머무르는 바 없으니 현재에 있는 근본 마음이요
본래부터 있는 것 아니니 본래가 곧 지금이니라
깨달음이란 본래부터 있나니 따로 지킬 것 없고
번뇌는 본래 없으니 제거할 것이 없느니라
신령스럽게 앎이 스스로 비추니 만 가지 법은 본체에 돌아가고
돌아갈 것도 없고 받을 것도 없으니 비춤을 끊고 지킴을 잊어버린다
네 가지 덕은 나는 것 아니요 세 가지 몸은 본래 있는 것이니라
육근이 경계를 대하여 분별하나 기억하지 않고
한 마음에 거짓됨이 없으니 만 가지 연이 고르고 바르다
심성은 본래 가지런하여 함께 있으나 잡을 수 없고
생함이 없으나 만물은 응하고 곳곳마다 깊이 스며든다
깨달음이란 깨닫지 못함 때문이니 깨달으면 곧 깨달음이 없느니라
얻고 잃음 두 곳에서 어떻게 좋고 나쁨을 말할 것인가
일체 모든 법에는 본래 조작됨이 없다
마음을 알면 마음이 아니고 병이 없으면 약이 없나니라
미혹했을 때에는 현실을 버리다가 깨달으면 이치마저 놓으니라
그러나 취할 것이 본래 없거늘 지금 버린다 함이 무슨 소용 있으랴
마군이 일어났을 때는 허망한 형상이 나왔을 뿐이니
범부의 망정을 없애려 하지 말고 오직 그 생각을 쉴지니라
뜻에는 마음의 멸함도 없고 마음은 끊임없이 움직이나니
공을 체득하지 않아도 자연히 밝고 분명하리라
생사심이 멸하여 다하면 고요한 마음으로 이치에 들어가고
눈을 뜨고 모양을 보면 마음이 경계를 따라 일어난다
마음에 경계를 두지 않으면 경계에 마음이 무심하게 되고
마음을 가지고 경계을 멸하려 하면 서로 서로 침노하게 된다
마음이 고요하면 경계가 한결같아 구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느니라
경계는 마음 따라 멸하므로 마음은 경계 따라 없어지고
두 곳에서 마음을 내지 않으면 고요하고 비어 밝아질 것이다
깨달음은 그림자처럼 나타나고 마음은 물처럼 항상 맑으며
덕의 성품은 어리석은 듯하여 친함과 미움을 두지 않고
칭찬과 비방에 동요되지 않으니 따로 머물 곳을 찾지 않는다
모든 반연을 몰록 쉬면 아무것도 기억할 것 없도다
밝은 해는 어두운 밤과 같고 어두운 밤은 밝은 낮과 같나니
겉으로는 완고해 보이나 안으로는 마음이 비어 있다
경계를 대하여 움직이지 않으니 힘이 있는 큰 사람이다
사람이 없으니 보는 자가 없고 보는 자 없으나 항상 나타난다
근본을 통달하면 두루하지 않음이 없다
생각하면 더욱 혼란스러워져서 정신을 어지럽게 하고
마음을 가지고 움직임을 그치려 하면 그침이 오히려 시끄러워진다
만 가지 법은 처소가 없어 오직 상대를 떠나 있고
들어가지도 않고 나가지도 않으며 고요함도 아니고 시끄러움도 아니다
성문 · 연각의 지혜로는 능히 말할 수도 없나니
실로 한 물건도 없으나 묘한 지혜는 홀로 남아 있다
근본인 이치는 비었으나 충만되어 마음으로 헤아릴 수 없고
바른 깨달음에는 깨달음이 없고 참된 공에는 공이라 할 것도 없다
삼세(과거·현재·미래) 모든 부처님이 모두 이 종지에 의거했나니
이 종지는 한 터럭 끝에 시방세계를 포용했다
일체를 돌아볼 것 없나니 대상에서 마음 안정할 수 없나니라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으면 비고 밝아 저절로 드러난다
고요하여 생함이 없으면 종횡으로 걸림 없도다
하는 일에 걸림 없으면 움직임과 머무름이 모두 평등하다
해와 같은 지혜가 고요하고 선정의 광명이 밝고 밝아
무상의 동산을 비추니 열반의 큰 성을 밝히게 된다
온갖 반연 모두 잊으면 모든 것이 모두 안정되고
앉은 자리 일어나지 않고 빈 방에서 편안히 잠들도다
도를 즐기어 쇄락하니 진실에서 근심없이 놀게 된다
무위하여 얻을 바 없으니 없음에 의지하여 스스로 나타나고
사성제와 육바라밀이 똑같이 일승의 길이나
마음에 만일 나지 않으면 법에는 차별이 없으리라
나도(生) 남이 없는(無生) 줄 알면 언제나 항상 하나니
지혜로운 자는 마땅히 알지니 말로써 깨우칠 바 아니니라
우두법융
사조(四祖) 도신(道信)이 처음 우두산(牛頭山)에서 법융(法融)을 만나니,
대사가 단정히 앉아서 태연자약하여 돌아보지도 않았다.
이에 조사가 묻기를, ······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하니,
대사가 대답하기를, ······
『마음을 관(觀)합니다.』 하니,
조사가 재차 묻기를, ······
『관하는 것은 누구이며, 마음은 어떤 물건인가?』 하니,
대사가 대답을 못하고 벌떡 일어나 절을 하고 말했다.
『대덕은 어디에 계시는 어른이시오?』
『빈도(貧道)는 일정하게 사는 곳이 없이 그저 동서남북으로 다니오.』
『그러면 도신대사(道信大師)를 아십니까?』
『어째서 그를 물으시오.』
『오랫동안 덕음(德音)을 들었으므로 한 번 뵈옵기 소원이요.』
『내가 바로 도신(道信)이요.』
『어떻게 여기까지 왕림하셨습니까?』
『일부러 찾아왔소. 여기 밖에 쉴 만한 곳이 따로 없소?』 하니,
법융이 뒤쪽을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
『따로 작은 암자가 하나 있소.』 하고 조사를 이끌고 암자로 가니,
암자 둘레에는 호랑이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이에 조사가 겁내는 시늉을 하니,
법융이 말하기를, ······
『아직도 그런 것이 남았습니까?』 하였다.
이에 조사가 되묻기를, ······
『지금 무엇을 보았는가?』 하니,
대사가 대답하지 못했다.
조금 있다가 조사가 돌 위에다 불(佛)자 하나를 쓰고 앉으니,
대사가 이것을 보고 송구히 생각하니,
조사가 말하기를, ······
『아직도 그런 것이 남아 있는가?』 하니,
대사가 그 뜻을 깨닫지 못하여 머리를 숙이고 참 법문을 설해 주기를 청했다.
이에 조사(祖師)가 말하기를, ······
『백천 가지 법문이 모두 마음으로 돌아가고, 항하사와 같이 많은 묘한 공덕이 모두 마음의 근원에 있다. 계정혜(戒定慧), 해탈법문(解脫法門)과 온갖 신통변화가 모두 구족하게 그대 마음을 여의지 않았으며, 온갖 번뇌와 업장(業障)이 본래 공적(空寂)하고, 온갖 인과(因果)가 모두 꿈과 같다.
삼계(三界)를 벗어날 것도 없고, 보리심(菩提心)을 구할 것도 없다.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이 성품과 형상에서 평등하며, 대도(大道)는 비고 드넓어서 생각과 걱정이 몽땅 끊어졌다. 이와 같은 법을 지금 그대는 얻었다. 조금도 모자람이 없으니, 부처와 무엇이 다르랴? 다시는 다른 법이 없으니, 그대는 그저 마음대로 자유로이 하라.
관행(觀行)을 쌓지도 말고, 마음을 맑히지도 말며, 탐욕과 성냄을 일으키지도 말고, 근심도 걱정도 하지 말라. 그저 탕탕(蕩蕩)하게 걸림 없이 마음대로 종횡하라. 선(善)을 짓지도 말고, 악(惡)을 짓지도 말라.
행주좌와(行住坐臥) 간, 보는 것, 만나는 일, 모두가 부처의 묘용(妙用)인지라, 쾌락하여 근심이 없나니, 그러므로 부처라 한다.』 하였다.
이에 대사가 묻기를,
『마음에 모두 구족하다면 어떤 것이 부처이며, 어떤 것이 마음입니까?』 하니,
조사가 대답하기를, ······
『마음이 아니면 부처를 물을 수 없고, 부처를 물었으면 마음이 아닐 수 없다.』
『관행(觀行)도 쌓지 말라 하시면 경계가 일어날 때에는 어떻게 대치하오리까?』
『경계인 인연은 좋고 나쁨이 없거니와, 좋고 나쁨이 다만 마음에서 일어나나니, 만약 마음이 억지로 이름을 짓지만 않는다면 망정(妄情)이 어떻게 일어나리요?
망정이 일어나지 않으면 <참 마음>(眞心)이 저절로 두루 알(知) 것이니, 그대는 다만 마음에 맡겨서 자유로이 하되, 더는 대치(對治)하려 하지 말라. 이를 일러 변함없는 상주법신이라 하느니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