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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2-13 10:43
삼신불과 삼위일체와 힌두 / 2
 글쓴이 : 러키가이
조회 : 1,288  


이는 다름 아닌 자기언급적 표현이며 빛과 같이 어떤 매체 없이 스스로 진리가 증명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인물들이 진리자체를 체득하여 자기와 진리가 일치되는 한에서 자기언급은 과부하 현상을 막는 유일한 길이다. 빛과 달리 물과 바람 같은 경우는 반드시 매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정신세계에서도 소유권이 자체권을 훼손하는 과부하 현상이 생기기 마련이다. 진리를 찾는다고 할 때 그 진리가 우리에게 전달될 때는 반드시 인간이라는 매체를 통해 전달되기 마련이다. 붓다‧예수‧공자‧노자‧소크라테스 등 인간적인 매체를 통해 우리는 진리를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전류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매체는 어떤 모양으로든 진리자체를 훼손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빛과 같이 진리가 진리자체 그대로 자기가 매체가 되어 전달될 수는 없는 것인가? 종교의 교주나 교회 그리고 교리 같은 외양적인 것이 사실상 이런 매체 역할을 한다. 그러면 이런 외양적인 것 없이 빛과 같이 자기 자신을 유일한 매체로 생각하면 될 것이고, 이를 ‘외양적(exoteric)’인 데 대하여 ‘내밀적(esoteric)’이라고 한다.
빛의 매체문제, 즉 에테르의 존재 여부가 오랜 논란거리였듯이 종교에서도 진리자체와 매체 사이에 생기는 긴장과 갈등이 가장 오래된, 아니 가장 심각한 논쟁의 주제였다. 진리자체와 매체 사이에 생기는 문제를 가장 심도 있게 다룬 종교가 불교라는 것이다. 불교뿐만 아니라 차축시대 이후 인간을 매체로 진리자체가 전달된 종교에서는 모두 비슷한 문제가 제기된다는 것이다. 존재는 매체가 필요하다. 그러나 존재자체는 이러한 매체가 필요없다. 불교의 경우는 ‘법신’이 바로 매체 없는 자기자체이고, 동학의 경우는 이를 ‘지기’라고 한다. 그리고 매체인 자기의 소유권을 제거시키는 기법이 바로 고등종교의 공통된 현상이다. 예수는 그것을 ‘십자가의 길’이라 했고 붓다는 ‘무아’라 했으며 공자는 ‘극기(克己)’라고 했다. 이러한 자기부정은 곧 자기의 소유권을 포기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래서 수운은 “나도 도시 믿지 말고 하날님만 믿으라”고 했다. 슈온은 종교가 외양적이 될 때 이런 소유권 때문에 결국 서로 반목질시할 수밖에 없지만 내밀적이 되어 매체가 없을 때는 ‘초월적 통일(the transcendental unity)’을 한다고 했다(Schuon, 1975, xiii). ‘자기죽음’이란 행위의 단행 없이 이런 통일은 불가능하다.
이와 같이 “빛과 같이 되라”는 어둠을 이기라는 은유적인 교훈을 넘어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유아독존적이 되라는 말과 같다. 그리고 누구나 “나는 길이요 진리”라는 선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동학정신의 기본이다. 그런데 예수는 자신뿐만 아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다는 점이다. 너희 모두가 진리자체가 되라는 뜻이다. 그러나 아직도 교회는 “주여 주여” 하면서 하늘만 쳐다보고 울부짖고 있다.
4. 서교 전통 속의 ‘절대무’와 ‘인격신’
제사장 문서와 인격신
125년 무렵의 초대교부였던 이레니우스는 그가 살았던 시대에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복음서들이 있었다(There was a multitude of Gospels)” (Needleman, 1990, 208)고 증언했다. 그렇다면 그 많은 글과 책들은 지금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중국의 진시황제만 분서갱유를 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기원전 4세기 무렵에 이른바 ‘제사문서 기자(the Priestly writers)’라는 제사장 업무를 수행하는 기록자들이 있었다. 지금의《구약성서》를 기록할 당시 그들은 제사장 업무 수행에 알맞도록 발췌‧표절‧제거를 하면서까지 성서를 기록했다. 그래서 이들이 써놓은 문서를 제사장 문서(P문서)라고 부른다. 그리고 자기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내용의 글들은 삭제하거나 제거하고 말았다. 그들이 삭제하거나 제거한 기준은 두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여성적(feminine)’인 것과 ‘동양적(oriental)’인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들 두 가지 기준은 자기들의 표준에서 볼 때 ‘이단적(heretic)’인 것들이었다. 이러한 문서 훼손행위는 구약시대에서만 있었던 일은 아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도 이레니우스가 증언한 것처럼 오늘날의 성서에 편입된 4복음서 이외의 복음서들은 제거되고 말았다.
이렇게 제거된 복음서와 글들이 페미니즘 운동가들에 의하여 재발견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동양의 기독교 신학자들이 해내야 할 사명은 바로 서양 신학자들이 삭제 박멸한 자료들을 재발굴해 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양 전통신학에 세뇌되어 있는 동양 신학자들이 감히 이런 도전을 하기란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수운시대에 전해진 서교는 제사장들과 초대교회의 교부들에 의해 만들어진 기독교이다. 수운이 서교에 대하여 받은 인상이란 정확한 것이었으며, 그러한 수운의 이해는 정통 기독교가 성서를 경전으로 편집하는 과정에서부터 비롯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여성의 종교적 그리고 철학적 가치를 재발굴하고 동양적 가치의 몰이해를 극복하기 위해서 잃어버린 문서들을 다시 발굴하고 새로 재발견된 이른바 이단문서들로부터 기독교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본다. 서양의 ‘악마(satan)’은 동양의 ‘천사(angel)’이기 때문이다(Pagels, 1995, 112~148).
그래서〈도마복음서〉를 첨가한 ‘제5 복음(The Five Gospel)’을 비롯하여 모든 이단문서들을 모두 망라한 ‘완전복음서(The Complete Gospel)’를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Funk, 1994, preface). 이렇게 되지 않을 경우 동양사람인 우리는 스스로를 이단이라고 하는 서양의 꼭두각시 노릇하는 광대가 될 것이다. 이렇게 완전복음에 기초한 신학을 ‘신서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수운이 다시 태어난다면 이러한 신서학을  ‘서학’과는 달리 갈등 없이 수용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필자의《동학과 신서학》(지식산업사, 2000)을 참고하기 바란다.
제사장 문서가 가장 많이 왜곡한 곳은 창조론 또는 우주론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L. 그래함은 제사장들에 의하여 이렇게 왜곡된 우주관을 ‘전도된 제사장의 우주관(Priest-perverted cosmology)’이라고 했다(Graham, 1979, 1). 제사장들은 왜곡의 첫 작업으로 신을 ‘인격화(personification)’했다. 신을 인격화하는 것은 그 반대급부로 인간인 자기들을 신격화하는 기득권 또는 소유권을 획득하게 된다. 즉 신을 인격화한 대가로 교황이나 목사가 신격화한다. 이것은 완전한 음모이다. 중세 가톨릭 교황을 신격화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 신의 인격화는 제사장들의 신격화와 함께 자기들의 권위확립에 절대절명의 과제로 필요했던 것이다. 예수는 이들 신격화한 제사장들과 한판 승부를 건다. 이제부터 예수에게 와서 지성소가 폐기되기까지 성전 안에는 제사장밖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제사장 문서들은 기원전 400년 무렵의 문서이다. 그 이전에는 이른바 E문서(기원전 850년경)와 J문서(기원전 750년경)가 있었다. 거기서는 신은 그렇게 인격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거기서 발췌하고 삭제하고 표절하면서 신을 인격화하고 말았으며 이러한 제사장들의 음모에 의한 신의 ‘인격화’는 우주 보편적 신을 자기들의 소유물로 삼아 버리는 과오를 범했으며, 신의 소유권이 강화되어 오늘날 인격신을 가지고 있는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는 그러한 이유로 세계 종교와 정치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있다. 인격신이 가져오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어찌 유대인들의 소유권에 실려 있는 신을 세계 보편적 신으로 강요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어느 지역신이든 보편적이 되려면 반드시 자기죽음을 통해, 즉 자기부정을 통한 행위를 먼저 단행해야 한다. 자기부정적이면서 동시에 자기언급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철저한 자기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불교에서는 이를 무아 또는 ‘방기(放棄)’라고 한다. 여기서 비인격적 절대무가 등장하는 이유가 있다. 예수는 자기죽음을 통해 지역성을 극복했기 때문에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될 수 있었다.
제사장들은 역설적으로 신을 인격화한 다음 다시 그 신을 초월화했다. 이것 역시 제사장들이 민중들 위에 군림하는 음모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도공이 도자기를 빚듯이 신이 우주를 창조했으며 그뒤 우주를 초월한 위치에 머물게 된다. 마치 도공이 작품을 만든 다음 그것을 만든 주인이 되듯이 말이다.
수운에게 전달된 서교의 신관은 바로 이렇게 인격화하고 초월화한 공작자(工作者) 같은 신관이었다. 하늘에 천당이 있다, 지옥이 있다는 말과 신이 우주와 분리된 다른 곳에 있다는 표현은 납득할 수 없는 표현들이었다. 제사장들은 지구를 평면적인 것으로 보았으며 시간은 직선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코스모스 이전에 카오스가 있었으며 이 카오스는 ‘코스모스의 씨판(Chaos is the seed-ground of the cosmos)’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카오스를 악의 상징으로 박멸하고 말았다. 이 카오스 씨판(Seed-Ground)은 ‘창조적 지혜(creative intelligent)’이며 ‘모든 창조적 행위의 원인(cause of all creative activity)’이다.
이 ‘씨앗’은 다른 모든 씨앗들과 마차가지로 제 자신이 형태를 만들고 그 형태 속에서 제 자신이 자기창조를 해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를 빚어내는 도공 같은 존재란 필요가 없다. ‘자기발생적(self-generative)’이며 ‘자기동기적(self-motivational)’이다. 즉 자기언급적이다. 창조의 주체자가 피창조 속에 내재해 있다(the active agent in creation is within the created). 그래함은 이러한 자기언급을 ‘생명원리(life principle)’라고 했다(Graham, 1979, 10). 자기언급적인 ‘우주 씨앗(cosmic seed)’은 현대 생물학에서 말하는 유전인자(gene)와 같이 자기조직적이다. 이를 ‘우주적 인자(Planetary Seed)’라고 부른다.
이러한 우주 씨앗들을 싹이 트기도 전에 말려버린 인물들이 바로 기원전 4세기 무렵의 제사장들이었다. 이들에게도 그럴 만한 논리는 있었다. 그것은 자기언급을 배제하고 타자언급적이게 하자는 데 있었다. 타자언급이란 창조주가 피조물과 구별되고 주체와 객체로 나뉘며, 주체가 개체를 그리고 창조주가 피조물을 일방적으로 명령하고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자기언급이란 자기 집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과 같이 우주가 신의 집 자체인데 어디서 창조주를 따로 찾는단 말인가? 그러나 타자언급을 해버리면 창조주가 왜 이 세계와 나를 만들었는가? 왜 이 세상에 죄와 벌이 있으며 악이 있는가를 계속 묻지 않을 수 없다.
즉 타자언급적 상황에서는 이런 신정론적 질문이 계속 던져질 수밖에 없다. 제사장 이후 기독교 내의 그 많은 종교적 그리고 철학적 질문들이 이런 질문들과 관련되어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붓다 역시 이런 질문들을 받게 되었으나 응답 자체를 하지 않았다. 우주 그 안에 자기가 있으면서 우주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질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신과학자 카프라는 ‘우주에 속함(belonging to universe)’이라고 했다. 수운은〈초학주문〉에서 ‘천주를 위한다’ 함으로써 타자로서의 신을 말하는 동시에 ‘나의 정을 돌아본다’는 자기언급을 동시에 하고 있다.
그러나 서교의 신관은 고질적으로 우주 밖에 타자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수운의 귀에 가장 거슬리는 것이고 못마땅한 것이었다. 자기가 우주에 속해 있으면서 우주의 기원을 묻는 것은 물고기가 물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나 서학은 이러한 어리석은 짓을 신학과 철학의 이름으로 2천 년 이상을 자행해 온 것이다. 그러나 자기언급적인 상황에서는 존재론에 관한 질문을 할 필요도 없고 일체의 윤리적이고도 도덕적인 질문도 할 필요가 없다. 그곳에는 인위적 ‘행위(activity)’란 없다. 노자는 그래서 ‘무위(nonactivity)’를 말한다. 그것은 ‘과정’일 뿐이다. P문서 기자들이 간과한 점은 바로 이 과정으로서의 무위라 할 수 있다. 이 점이 바로 수운이 서교에는 무위이화가 없다고 한 이유이다.
노자는 존재로 나타난 도(道)에 대하여 나타나지 않은 존재자체로서의 도를 ‘대도(大道)’라고 했으며, 그리스인들은 이를 ‘카오스’, 로마인들은 ‘Nox’ 또는 ‘힘’, 이집트인들은 ‘Nir’ 또는 ‘무’, 폴리네시아인들은 ‘Po’, 인도인들은 ‘파라브라흐만’이라고 했다. 한국의《규원사화》는 ‘홍몽’하다고 했다. 노자는 “하늘과 땅이 있기 전에 혼돈이 있었다. 그것을 이름하자면 ‘도’이다”고 했다. 폴리네시안들은 “태초에 생명도 빛도 소리도 없었다. 어둠이 깃들어져 있는 밤을 Po라 하고 그 위에 검은 타나오아(Tanaoa)와 침묵의 무티-헤이(Muti-Hei)가 지배하고 있다”고 했다. 앗시리아와 바빌론에서도 “혼돈의 어두움이 수면 위에 깃들어져 있으며, 태초의 바다(Mommu Tiawath) 또는 티아마트(Tiamat) 이외는 아무 것도 없었다.”《규원사화》는〈조판기〉에서 하늘이 열리기 전에 우주가 홍몽한 가운데 한 신이 있었다고 했다. 이를 ‘우주 씨앗 목록(inventory of cosmic seed)’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수운이 말하는 ‘지기’란 다름 아닌 이런 우주 씨앗의 목록에 속하는 것이다. 이 목록이 비인격적인 것의 목록들이다.
제사장 문서 기록자들은 바로 이러한 도‧무‧흑암‧혼돈‧기에 목적의식을 부여했으며 거기에다 도덕이라는 옷을 입혀 가면서 달래고 얼러 인격화하려 했다. 그래도 부족할 때는 아예 전도의 가보를 꺼내어 비인격적 요소들을 박멸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함은 이를 ‘인류 최대의 실수(the greatest mistake mankind has ever made)’라고 했으며, 이러한 실수 때문에 인류는 큰 재앙을 초래했고 여성들은 탄압받고 자연은 파괴되고 말았다고 개탄했다(Graham, 1979, 15). 인격 신관을 가지고 있는 발칸 반도는 코소보를 비롯하여 인류 재앙의 진원지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아마 앞으로 인류 멸망의 대전쟁이 치러질 것이라는 신화적 전쟁인 아마겟돈도 이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루 속히 자기 소유권을 필요 이상으로 지니고 있는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인격 신관에 큰 변화가 있기를 촉구한다.
종교역사에서 종교전쟁이 없었던 종교는 불교이다. 불교뿐만 아니라 앞에 열거한 비인격적 우주 씨앗 문화 목록어가 있는 곳에서는 자연이 철저하게 지켜지고 인간 사이의 분쟁도 드물었다. 앞으로 닥쳐올 인류의 더 큰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런 비인격적 우주 씨앗들이 땅속에서 다시 싹터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씨앗들은 거의 수천년 동안 햇볕을 보지 못하고 땅에 묻혀 있었다. 우주 씨앗은 모두 여성원리에 속하며 그리고 동양적인 것들이다. 사이드가 말한 ‘오리엔탈리즘’의 진정한 기원을 이들 제사장 문서들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우주 씨앗은 그래서 여성들의 자각 그리고 동양인들의 자각을 통해서만 다시 싹틀 수 있는 것이다.
우주창조는 ‘시작(inceptio)’에 있지 않고 ‘완성(consummation)’되는 데 있다. 제사장 문서가 마치 태초에 우주의 창조가 완성된 것처럼 기록한 것은 잘못된 것이며, 여기서 큰 오류가 발생한다. 인간이 신에 의해 만들어지는 동시에 신이 인간에 의하여 만들어져 가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제사장 문서 기자는 이 사실을 왜곡시켰던 것이다. 태초에 결코 ‘기성품(readymade)’ 같은 신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과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싸늘하게 ‘죽은 물질(dead matter)’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동학에서는 신이 시천(侍天)‧양천(養天)‧체천(體天)의 과정을 통해 인간 속에서 자라가며 드디어 인간이 신이 된다. 우주 씨앗을 다시 발견한 수운의 위대성은 여기에 있으며 이것은 동학의 서학에 대한 주체성이다. 그러나 인격 신관에 체질화된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와의 한판 승부는 불가피했다. 그러나 우리는 서양이 서양 전통 안에서 이 우주 씨앗을 먼저 발견하기를 바란다. 이 말은 제사장들에 의하여 묻혀 버리기 이전의 원래 문서들을 재발견하고 이단으로 정죄한 인물들을 다시 복권시켜 우주 씨앗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양의 이단이 동양의 정통
유대교 전통에서 유일신 개념이 처음 나타난 때는 모세부터이다. 모세가 시내산 위에서 만난 신은 전형적으로 보신적 존재였다. 즉 야훼신은 엄연한 초월적이며 객관적 존재였다. 신은 불타는 숲속에서 말하고 있는 존재였고 모세는 그의 음성을 들었다.〈을묘천서〉를 받을 때 수운에게 나타난 신은 보신적이다. 한국의 선층과 선맥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신이 보신적이다. 이러한 보신적 유일신 타자로서의 신이 처음 등장한 곳은 이집트이다. ‘프타(Ptah)’, ‘라(Ra)’, ‘오시리스(Osiris)’, ‘이시스(Isis)’도 유일신은 아니었다. 최초의 인격 유일신은 ‘아톤(Aton)’이다. 기원전 54년 무렵 이집트의 제18대 왕이었던 이크나톤에게 나타났던 신이 바로 아톤이었다(Wilber, 1981, 140). S. 프로이트나 J. 켐벨의 지적에 따르면, 모세가 아톤신을 이집트에서 시내산으로 옮겨왔다는 것이다. 모세가 가져온 아톤은 이스라엘의 화산신인 제호바(야훼)로 대체되어《구약성서》에서는 최고 높은 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빛’과 ‘불’이라는 남성원리 속에 나타난 신은 ‘궁극적 타자(ultimate the Other)’이며, 피조물과 분리되는 창조주이다. 모세에게 나타난 신은 절대타자로서 타오르는 가시덤불의 불 속에 있어서 근접할 수 없는, 그래서 인간과 하나가 될 수 없는 존재였다. 수운에게 나타난 신도 일단 타자로서 등장한다. 인간이 모셔서 위할 수밖에 없는 ‘위천주(爲天主)’로서의 존재이다. 그런 존재를 불교는 보신적 존재라 부른다. 신령한 영역에 있는 두렵고 떨리는 존재이다. 이런 정묘하고 신비하며 두렵고 떨리는 객관적 타자는 무층 다음의 선층 마나이즘적 전통에서 형성된 궁극적 존재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무층에 나타나는 신은 화신적이다.
그런데 모세가 시내산에서 보신적 야훼의 음성을 듣고 산 밑으로 내려왔을 때 그 산 밑 광야에는 모세가 만난 신과는 전혀 다른 신이 숭배되고 있었다. 송아지로 만들어진 농경 모계사회의 태모, 자연의 신, 생산의 신, 마술과 주술의 신이 술과 섹~스 그리고 춤이라는 광란 속에서 숭배되고 있었다. 이런 특징이 화신적 종교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보신적 신 경험을 한 모세는 이런 화신적 신을 경험하고 있는 무리들과 한판 대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서양의 종교발달사는 화신과 보신, 보신과 법신이 정면 대결하여 결투를 벌이는 그리고 지금까지는 보신이 화신과 법신을 극복하는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첫 대결의 장면이《구약성서》〈출애굽기〉32장에 잘 묘사되어 있다.
모세가 분노 속에서 자기의 석판을 부수어 가면서까지 극복한 태모전통의 화신적 종교는 격퇴되고, 이스라엘 역사에는 야훼 유일신의 보신적 종교전통이 수립되었다. 사울왕 때까지만 하더라도 신탁을 받는 것이 보편적이었다(박종수, 1997, 95). 그러나 문제는 1천여 년 뒤에 나타난 예수는 모세가 분노했던 바와 비슷한 분노를 바로 그 모세 추종자들에게 터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모세는 화신 추종자들의 손에 잡혀 죽지 않고 승리하지만, 예수는 모세 추종자들에게 잡혀 처형을 당한다. 예수는 보신적 신관을 법신적 신관으로 바꾸려고 시도한다. 이 시도가 그에게 시련을 가져다 준다.
문명사는 실로 신들의 전쟁사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강증산은 문명에는 지역마다 문명신(文明神)이 있고, 인간들의 전쟁은 반드시 문명신들의 전쟁이 먼저 있고서야 일어난다고 했다. 한 문명권 속에 새로운 종교가 이입되면 반드시 신관의 대결이 벌어진다. 이것은 헌팅턴의 ‘문명충돌론’보다 그 양상이 더 치열하다. 화신이 태모 그리고 여성신이라면 보신은 남성신이다. 그래서 신들의 전쟁이란 결국 ‘성의 충돌(clash of gender)’로 나타난다. 한국의 화신적 종교와 법신적 종교와의 싸움으로 난 첫 희생자가 바로 신라의 이차돈(異次頓)이다. 이차돈은 전통 무속종교 추종자들과 불교 추종자들 사이의 싸움에서 전자에 의하여 희생되었다. 신관의 충돌은 곧 정치적이 되며, 신의 싸움이 먼저 있고서야 항상 정치적인 싸움이 뒤따르게 된다는 증산의 말은 이런 점에서 옳다고 할 수 있다. 신라 제23대 법흥왕 14년(528) 이차돈은 “상식을 벗어나는 인물이 있어야 창조가 일어난다”면서 스스로 죽음을 청한다(김무조, 1999, 29).
불교의 삼신설에 따르면 화신‧보신‧법신의 삼신 사이에는 아무런 갈등이 없다. 단지 중생들 마음의 ‘근기(根機)’에 따라서 세 가지로 다르게 나타날 뿐이다. 그러나 서양 기독교 전통 속에서는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극복하고 이기는 투쟁의 과정을 겪어야만 한다. 모세와 금송아지 숭배자들과의 대결, 예수와 모세 추종자들과의 대결이 바로 그것이다. 전자는 보신과 화신의 대결, 후자는 법신과 보신의 대결이다. 그런데 기독교는 예수 죽음 이후에 그리스 철학으로 법신을 모세적 보신으로 바꿔치기 한다. 그리고 2천 년이 지난 지금 기독교 신관의 최대 과제는 바로 예수의 법신적 신관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모세 추종자들과 예수 사이에서 그러했던 바와 같은 신관의 한판 승부가 불가피하다. 그리고 수운에게 전달된 서교의 신관은 다름 아닌 보신적 모세적 신관이었다. 이런 서교를 보고 그는 운은 같으나 이치가 다르다고 했던 것이다.
예수의 신관이 모세의 그것과 다른 점은 바로 그가 말한 “나와 아버지는 하나(I and my Father are one)”(〈요한복음〉, 10장 30절)란 말 속에 잘 나타나 있다. 모세에게 신과 모세는 ‘하나’일 수 없었다. 신은 절대타자이기 때문에 예수의 이 말은 매우 충격적이었으며 천파만파의 문제를 일으켜 인류 역사에서 새로운 종교 즉 ‘기독교’를 태동시킨다. 예수의 이 말은《우파니샤드》의 “네가 바로 그것(That tram asi, Thou art That)”과 같이 법신적이다. 이 말은 초기《리그베다》에는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 않지만《우파니샤드》의 핵심사상이다. 예수의 말과《우파니샤드》의 말은 모두 신과 인간을 하나로 보았다는 점에서 법신적이다. 필자는 이러한 신관을 법신적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예수는 타자적 존재로서의 모세적 신관을 부분적으로 비판한다. 이 때문에 그는 모세 추종자들인 바리새인들의 손에 잡혀 처형당한다. 바리새인들이 예수에게 “당신은 사람이면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하였소”(〈요한복음〉, 10장 33절)라고 하자, 예수는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요한복음〉, 10장 35절)이라고 응수한다. 실로 모세 추종자들에게는 폭탄과 같은 선언이라 아니할 수 없다. 분명히 예수는 법신적 신관을 선포한 것이다. 신과 인간이 서로 包含하는 에형 논리로 신관을 표현한 것이다.
예수와 바리새인들 사이에 벌어진 신관에 관한 이와 같은 열띤 설전은 법신적 신관과 보신적 신관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당연히 어디서나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법흥왕과 그의 군신들 사이에 이차돈의 죽음을 놓고 벌인 싸움도 마찬가지이다. 법신과 화신을 놓고 싸운 것이다. 그렇지만 모세도 1천여 년 전에 화신적 신관을 가진 자들 앞에서 분노하고 격분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창조주와 피조물, 그리고 주관과 객관은 모두 ‘하나’ 속에서 사라지며 하늘에 계신 ‘하느님(Lord Heaven)’은 ‘하나님(Lord One)’이 된다. ‘하나’는 태일적 무(太一的無, void of the supreme identity)이며, 이를 신학에서는 ‘신성’이라고 했다(발덴펠스, 1993, 참고). 불교에서는 이를 ‘법(法, dharma)’ 또는 ‘무(無, sunyata)’라고도 했다. 이러한 모습의 부처를 불교에서는 법신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예수의 법신적 신관의 발견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4~5세기 무렵부터 그들의 신관을 그리스 철학을 빌려서 모세적 신관으로 후퇴시키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예수가 발견한 법신적 신관을 기독교 신학 속에서는 발견하기 어렵다. 도리어 이단시하고 말았다. 아마도 앞으로 기독교 신학은 이런 법신적 신관을 다시 수용하는 데서 큰 진통을 겪을 것이다. 법신적 신관을 이단시하여 많은 신학자들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처형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예수가 다시 죽는 일이 생길 것이다. 법신적 신관은 보신적 신관보다는 한층 발전된 신관인 것이다. 박해 속에서도 무나 신성 같은 개념이 이따금씩 등장하기는 했으나 서방 가톨릭-프로테스탄트의 보신적 신관 앞에서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의 법신적 신관을 계승한 사람은 영지주의자들이었다. 영지주의자들이 남긴 복음서가 지금 나그 함마디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들 복음서들은 그리스도의 참된 가르침은 ‘지혜(gno)’에 있다고 보며, 지혜의 산스크리트어 ‘jna’의 어원과 같다. 한자로는 ‘반야’로 번역할 수 있다. ‘gno=jna=반야’의 등식이 성립한다. 이는 근동아시아의 종교와 인도의 종교가 동북아시아로 연결되는 과정을 한눈에 알게 한다. 먼 거리와 긴 과정 속에서 법신적 신관의 맥이 닿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 법신적 영지주의 복음서에 있는 한 구절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신이나 피조물이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어떤 다른 것도 찾아 헤매지 말라. 너 자신을 출발점으로 삼아 신을 찾아보아라. …… 너 자신을 아는 것이 곧 신을 아는 것이다”(Pagels, 1992, 67~130).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한다.
초대교회의 기독교 전승 속에 이런 전통이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경악스럽다. 기독교는 이런 전통을 표면에 공개되지 않도록 깊숙이 숨겨왔던 것이다. 여기서 예수는 “나는 너희들의 주가 아니다”고도 하면서 객관적 타자로서 자처하지 않는다. 너희 속에 있는 영적 안내자가 되어 모두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수운에게 보신은 ‘천주’이며 법신은 ‘지기’이다. 동학주문은 현명하게도 양자의 균형을 고려해 주문 속에 넣어두었던 것이다. 동학주문 21자가 돋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약성서》속에는 네 개의 복음서들이 있다.〈마태복음〉,〈마가복음〉,〈누가복음〉,〈요한복음〉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4대 복음서라고 한다. 4대 복음서는 모두 역사적 예수와 그의 구원, 그리고 인간의 죄의 회개를 강조하고 있다. 4대 복음서 가운데〈마태복음〉,〈마가복음〉,〈누가복음〉에서 이런 강조점은 뚜렷하다. 그래서 이들 세 복음서를 ‘공관복음서(synoptic gospel)’라고 부른다. 이들 세 복음서와는 달리〈요한복음〉은 예수의 법신적 신관을 많이 피력하고 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는 법신적 신관도〈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다른 세 복음서 속에서는 이런 구절을 발견할 수 없다.〈요한복음〉10장에는 모세 추종자들의 보신적 신관과 예수의 법신적 신관의 갈등 때문에 예수가 처형되었다는 것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신약성서》에 나오는 다른 복음서의 주된 사상은 보신적이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빛을 외양적으로 이해하고 있고〈요한복음〉에서는 내밀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은〈요한복음〉이외에 예수의 법신적 신관을 주종으로 하여 씌어진 복음서들이 있다는 사실이며〈도마복음서〉가 그 대표이다.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는 대표적인 보신적 신관의 소유자였으며, 요한, 마리아 막달레나, 튜다스(Theudas), 말시온(Marcion), 발렌티누스(Valentinus)는 법신적인 신관의 제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 후자의 법신적 제자들은 영지주의자들로 몰려 이단 취급을 받았다(Wilber, 같은 책).
보신적 제자들은 교회와 제도 같은 외양적인 데 공헌했으며, 법신적 제자들은 영적인 각성과 같은 내밀적인 데 공헌했다. 보신적 제자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그리고 그의 아들 예수, 즉 ‘주여 주여’ 하면서 초월적 ‘하느님’을 강조했다. 영지주의 복음서 속에서는 주님‧왕‧창조주‧심판주 같은 개념들을 발견할 수 없다. 그들은 신을 ‘모든 존재들의 궁극적 근원’ 또는 ‘깊이’라고 표현했다. ‘심연’ 또는 ‘공’이라고도 불렀다. 동양의 ‘무’나 ‘도’ 같은 개념과 유사하다. 발렌티누스의 제자들은 ‘보이지 않는’, ‘파악될 수 없는’ 기초 원리라고 했다. 마치 이는 노자가 도를 이(夷), 희(希), 미(彌)라고 한 것과도 같다. 이들 법신적 제자들은 일반 보신적 크리스천들이 부르는 ‘God’란 한갓 깊이 있어 보이지 않는 실재를 우상화한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두 종류의 제자들은 상극일 수밖에 없었다. 후자는 ‘God’ 대신 ‘Godhead’를 강조한다. 이러한 부조화가 서양 기독교 역사의 비극이었다.
법신적 신관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기 지식이 곧 하나님 지식이다. 즉 신에 대한 지식이란 가장 높게 자기를 아는 것과 같다.
둘째, 죄와 회개를 강조하지 않고 깨달음과 명상을 강조한다.
셋째, 예수는 주가 아니고 영적 안내자이다.
이 세 요소들이야말로 법신적 종교의 가장 정확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베드로로부터 비롯된 보신적 제자들이 이 세 요소들을 받아들이기란 매우 어려웠다. 결국 교회사의 실세는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사도들이 굳히게 되었으며, 법신적 제자들은 이단으로 몰려 쫓겨나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영지주의자들의 신 이해가 보신적 추종자들이 이해했던 것보다 한층 높은 데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신을 ‘아버지 하느님’ 그리고 ‘창조주’로 보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발렌티누스는 클레멘트나 이그나티우스 같은 1세기의 교부들이 신에게 ‘창조주’란 자격을 부여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발렌티누스는 ‘창조주’란 명칭 대신 플라톤의 ‘데미어고스(demiurgos)’란 말을 사용했다. 데미어고스는 조화자체이다. 창조주는 조화자체보다 못한 열등한 존재인데 창조주가 보신적이라면 조화자체는 법신적이다. 동양 종교의 무 또는 공과 도가 조화자체에 해당된다. 이를 수운은 ‘조물자’라고 했던 것이다.
지혜는 존재의 근원 자체와 나를 직접 만나게 한다. 기독교 신비주의자 야콥 뵈메(Jacob Boehme)는 이 궁극적 근원인 신을 초월하여 더 이상 딛고 서 있는 근거란 없다. 궁극적 근원으로서 거기서만 모든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뵈메는 이 궁극적 근저를 발견하는 자는 모든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Waterfield, 1989, 82~108). 그것은 만물의 시작이며 동시에 끝이다. 만물이 거기서 나오고 거기로 돌아간다(존스톤, 1993, 참고). 이러한 뵈메의 경험은 노자의 도 경험과 같아 보인다. 같은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의 말을 들어보자.
나의 존재자체가 신이다. 나는 신에 단순히 참여하는 존재가 아니다. 내 존재의 변화를 통해 나의 내가 곧 신이 된다(성 제노아의 카테린).
보라 나는 신이다 나는 만물 속에 있다. 보라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노르위치의 주리언).
신의 근저와 영혼의 근저는 하나이며 같다(마이스터 에카르트).
이들 기독교의 법신적 신비주의자들이 발견한 신은 서방 가톨릭-프로테스탄트의 신 개념과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후자의 눈에는 외람되어 보이고 신에게 모독적인 것처럼 보인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들 법신적 신관 소유자들은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박해의 주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로 새 고등 법신적 종교의 신봉자들은 보신적 종교의 신봉자들의 눈으로 볼 때 매우 잘못된 것처럼 보였다. 어찌 감히 ‘신 너머 신’ 즉 ‘신성’을 말할 수 있으며, ‘신’을 배격하기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외람되고 이단시될 수밖에 없었다. 보신적 종교가 이런 이유로 법신적 종교를 배격하는 것은 매우 몽매하나 정직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 참혹했다.
박해의 두 번째 이유는 매우 정치적인 것이다. ‘신 너머 신’보다 더 높은 존재의 근저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교권을 가지고 있던 사제들에게는 매우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신 제일주의이어야만 신의 대행자들로서 그들의 교권을 유지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기원전 4세기 제사장들이 신을 인격화한 것과 같은 이유와 목적이다. 그래서 90년 로마의 주교였던 클레멘트가 가장 선봉적으로 법신적 기독교 신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의 종들에게 권위를 이양하여 다스리게 하였다면서 교권을 신권과 일치시켰다. 주교‧사제‧집사들이 신권의 대행자들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들 대행자들에게 불복종하는 것은 신에게 불복종하는 것과 같다고 보았다(Wilber, 1981, 245).
이런 두 가지 이유로 서양 기독교 즉 서교는 2천여 년 동안 보신적 종교의 한계를 넘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신과 인간, 창조주와 피조물은 균열되어 분리되고 말았다. 그 결과 지금 온갖 문명사적인 병, 에이즈, 마약, 핵, 환경오염 같은 것을 일으키고 말았다. 그리고 보신적 종교는 이원론적 균열을 일으켜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신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균열은 보신적 기독교-가톨릭-프로테스탄트가 빚은 악폐이다. 그러나 법신적 종교가 동양에서는 힌두이즘‧불교‧도가‧신유교 사상 속에서 그 본류를 형성시켜 내려오고 있다. 이제 서양의 종교는 법신적 종교를 회복할 때이다. 서양은 그 동안 정죄해 온 이단들을 하루속히 복권시켜야 한다. 당연히 미래의 종교는 법신적인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고도’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동양의 선택은 이와는 반대이다. 법신이 보신을 배제시켜 왔다. 수운이 ‘천주’를 회복시킨 뜻이 여기에 있다.
5. 한국에서 ‘절대무’와 ‘인격신’의 만남
제석환인과 붓다
한국의 전래 인격신인 ‘하나님’과 불교의 만남은 고려시대에 들어와 그 체계가 잡힌다. 고려 태조 왕건은 왕권의 수립에서 민간의 하나님 신앙과 불교를 접합시키는 것을 절대절명의 과제로 생각했다. 이는 궁예가 불교의 미륵불을 내세운 것과 대조가 된다. 그래서 왕건과 궁예의 대결은 종교간의 대결이었다고 볼 수 있다. 태조는 왕조의 이념이 담긴〈훈요십조〉에서 팔관과 연등을 인격신 신앙과 결합시켰다(홍승기, 1996, 425). 이러한 태조의 의지는 또한 일연이 쓴《삼국유사》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일연은 ‘환인’을 ‘제석’으로 보아 이를 ‘제석환인(帝釋桓因)’이라고 했다. 원어로는 ‘Sakradevanam-Indra’이며 이를 한역하여 ‘釋迦提婆因多羅’라고 한다. 경전 가운데는 제석의 역할과 영향에 따라 ‘부란다라’, ‘마가파’, ‘파파파’, ‘천안’, ‘인제리’ 등 다양한 이름이 있다(《잡아함경》, 제6조). 이렇게 제석에 대한 호칭이 많은 이유는 그것의 사상적 상징성이 다양하고 풍부하기 때문이다(서윤길, 1995, 216). 인도에는 인격신 개념이 브라흐마니즘을 통해 전승되고 있었는데, ‘인드라(Indra)’가 바로 브라흐마니즘의 인격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인드라’는《구약성서》의 엘로힘과 비교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닌 하늘의 남성신이다. ‘제석환인’ 또는 줄여서 ‘제석(帝釋)’은 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한다는 ‘사카(sakka, 能)’와 ‘하늘님(devanam Indra)’에서 유래한다. 원래 브라흐만의 신인 인드라가 불교화하는 과정에서 그 신관도 달라진다. 지배하는 강압적인 신이 아니라 능히 베풀어 주시는 신으로 변한다. 즉 사랑과 자비의 신으로 변한다. 이것은 마치 유대교 전통의 율법적인 신이 예수에 의하여 사랑의 신으로 변하는 것과도 같다. 화이트헤드의 말을 빌리면 ‘강압적인 신(coercive God)’이 ‘설득하는 신(persuasive God)’으로 변하는 것과도 같다. 이렇게 신 개념이 변하는 것에 대하여 브라흐마니즘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사정은 유대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모세가 가졌던 신관과 예수가 가졌던 신관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에서는 인드라와 같은 지배자의 신에서 세계를 창조한 ‘브라흐만(Brahman, 梵)’으로 변한다. 브라흐만은 브라흐만 계급의 수호신과 같은 존재로서 인간으로부터 희생 제물을 요구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붓다는 “브라흐만에 이르는 길은 자비희사(慈悲喜捨)의 네 가지 무량한 마음[四無量心]을 닦는 것”이라고 했다. 사랑과 자비, 그리고 희생 없이 브라흐만에 도달할 수 없다는 붓다의 주장은 절대 권능자로서 브라흐만 계급을 수호하고 있다는 브라흐만교의 주장과는 상치되는 것이었다. 붓다는 브라흐만 신은 네 계급을 모두 평등하게 만드는 것이지 어느 특정한 계급만을 편애하는 신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브라흐만과 인드라의 양면적 발전은《구약성서》에서 ‘야훼’와 ‘엘로힘’이라는 두 신의 양립적인 것으로 발전하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즉 절대권능의 소유자인 엘로힘과 인격적인 야훼는《구약성서》의 대표적인 신이다.
힌두이즘에서는 인드라가 최고의 신으로서 도리천과 사천왕천을 그 권속으로 거느리고 있는 단일신론적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불교와 접합되면서 하위격으로 밀려나는 것을《잡보장경》의 다음 글에서 알 수 있다. 즉 “이때 제석이 여러 하늘무리를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껏 하루 세 번 범천에게 공양을 해왔는데 지금부터는 그만두고 부처님께 공양하리라”(《잡보장경》, 권 6). 이는 “제석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난 뒤부터 곧 재래의 제석이 불교적으로 수용되면서 부처님을 동경하고 찬탄하게 된다”(서윤길, 1995, 217)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제석이 인격신적 성격을 여실히 지니고 있음은 다음과 같은 붓다의 말에서도 나타난다.
세존이시여, 무슨 이유로 석제환인에게는 ‘석제환인’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비구에게 이렇게 일러주셨다. 석제환인이 전생에 사람으로 있을 때 돈시를 행하셨는데 사문 바라문이 극도로 가난해 고생이 심하여 살기 위해 길에서 구걸을 할 때 음식‧돈‧곡식‧옷‧꽃‧번‧침구 등을 주었다. 이러한 것을 모두 감당할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석제환인이라 이름한 것이다(《잡아함경》, 제40조).
아마도 일연이 환인에게 ‘홍익인간’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 것도 불교에 와서 변해진 제석의 성격 때문이라고 본다. 인드라가 보신적이라면 붓다는 법신적이다. 결국 법신에 의해 보신이 극복된다.
불교의 경우에는 인드라가 단연히 독보적인 존재로 발전한다.《대승반야경》에서 인드라는 그 비중이 대단하다. 제2품에서 제6품까지 ‘석제환인(인드라)’을 중심으로 하여 이 경이 설해지고 있는 것을 보아도 인드라의 권위를 알 수 있다. 불교는 브라흐만교에서 인격신을 그대로 전수하였으나, 그 개념에서는 매우 다르다. 즉 브라흐만교의 ‘받는 신[受施]’에서 ‘주는 신[能施]’으로 변한 것이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강압적 신에서 설득하는 신으로 변한 것도 하나의 큰 변화라고 볼 수 있다.《구약성서》에서 엘로힘(하느님)이 야훼(하나님)로 변하는 것과도 같다. ‘하나님’이란 인간과 ‘하나’됨을 의미한다. 동학은 이를 ‘인내천’이라고 한다. 인내천은 자기 자신을 봄으로써 하느님과 일치시키는 신관이다. 그래서 인내천 신관은 객관적 타자로서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으면서 자기와 곧 동일시하는 신관이다. 수운은 이를 신이 자기에게서 ‘떠나지 않음[不移]’이라고 했던 것이다.
전통 기독교 신관은 이런 ‘불이’사상이 없다. 그래서 신을 객관적 타자로서만 존재한다. 이런 신관이 실패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동학의 인내천은 천을 내 속에 기른다고 했다. 이를 양천이라고 했다. 그 다음 하늘을 자기로 체득한다. 이를 체천이라고 했다. 기독교와 불교는 모두 실패한 신관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실패는 동학사상에 와서만 치유될 수 있다고 본다. 신과 인간이 떠나지 않으나 그렇다고 같다고도 할 수 없는 신관이 가장 탁월한 신관이다. 인내천이 바로 이러한 신관인 것이다.
신들의 ‘감박감박거림’
신 개념의 발전은 정치‧사회적 발전과 병행한다. 한국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4세기 무렵이다. 그 당시 고구려‧백제‧신라는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있었다. 삼국 모두가 부족연맹에서 겨우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치구조를 가질 수 없었다. 부족들은 부족들 나름대로의 신들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이들 신은 모두 화신-무교적(巫敎的)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왕들은 이들 무교로 무장된 부족을 지배할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갖지 못했다. 이들 무교적 신관은 모계 농경사회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하늘에서 남성신의 아들로 자처하던 고구려의 주몽, 신라의 박혁거세, 가야의 김수로 등은 아직 태모(太母)를 제압할 만한 힘을 갖지 못한 상태였다. 주몽의 ‘주’는 ‘붉을 주(朱)’이므로 태양을 상징하며, ‘혁거세(赫居世)’ 역시 빛의 광채를 의미한다. 김수로는 하늘에서 직접 구지봉에 내려왔다고 했다. 이들 제왕들은 모두 한결같이 하늘의 아들임을 자처한다. 삼국 초기 부족국가들의 지도자들은 ‘태모’를 숭배하고, 신흥 제왕들은 태양의 아들 또는 하늘의 아들임을 자처한다. 여기서 남녀 신의 맴돌이하는 교체현상이 나타난다. 여신은 ‘감’, ‘검’, ‘곰’이며 남신은 ‘밝’이다(정호완, 1994, 110). 그래서 맴돌이란 ‘감박감박거림’을 의미한다.
태모를 중심으로 한 무교적 정치세력이 남아 있는 삼국 초기의 왕권은 극히 제한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부족과의 정치적 타협을 모색한 ‘화백(和白)’ 같은 제도가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런 때에 불교가 삼국에 유입되었다는 것은 종교적 의미는 물론이고 정치적 의미도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자연히 무교를 지켜온 토속 귀족들은 불교를 반격할 수밖에 없었고 반대로 왕실은 적극적으로 수용할 자세를 견지했다. 한판 큰 싸움이 벌어질 전운마저 감돌고 있었다. 왕들은 토속 귀족들을 강력하게 지배하기 위해서는 불교라는 이데올로기가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왕과 토속귀족들 사이의 한판 싸움에서 순교한 인물이 이차돈이었다. 이차돈의 목에서 피가 아닌 흰 젖이 나왔다는 것은 무교적 신앙을 가진 귀족계급들을 설득할 수 있는 좋은 신호가 되었다. 이차돈의 죽음에 설득당한 왕실은 불교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기 시작했다. 무교를 꺾을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을 능가하는 사상이 불교 속에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무교는 다산(多産)의 물질적 이익(利益)을 추구한다면, 불교는 정신적 자비(慈悲)를 추구한다. 두 이데올로기는 각축을 벌이게 된다. 하나가 인격신에 의존한다면 다른 하나는 비인격적 절대무에 의존한다.
절대적인 왕권을 수립하는 데 불교의 업설(業說)은 매우 적절했다. 아무튼 불교의 제석천은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으며 인간세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는 여러 권속의 신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그 가운데 으뜸이 ‘사천왕천’이다. 제석은 직접 인간세계로 내려가는 대신 사천왕천을 보낸다. 이는 마치 환인이 환웅을 땅으로 내려보내는 것과 같다. 그러나 단군신화에서는 사천왕천이 인간이 된다는 얘기는 없다. 다음으로 업설은 인도에서 바라문 계급의 종성론(種姓論)을 부정하는 불교의 대표적인 이론이다. 업설의 전륜성왕(轉輪聖王) 개념은 왕권수립에 지대한 도움을 준다. 정법으로 선정을 베푸는 전륜성왕이 나타나면 평화롭게 천하가 통일되고, 미륵과 같은 부처님도 그런 왕이 다스리는 세계에 출현한다는 것이다. 이런 업설에서 나온 미륵신앙은 삼국 초기의 왕권확립에 지대한 도움을 주었다.
신라 최초의 국영 가람(伽藍)은 흥륜사인데 거기에 봉안된 부처는 ‘미륵’이었으며, 진흥왕 같은 경우는 만년에 삭발염의하고 스스로 전륜성왕임을 자처했다. 여기서 불교의 역할이 한국에서 가부장적 천강신수(天降神授)의 왕권을 수립하는 데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불교신앙이 한국 고대의 인격신 ‘하나님’ 신앙과 어떻게 결합되었는지 그 관계가 매우 궁금하다.《삼국유사》의 ‘천사옥대(天賜玉帶)’ 조에 보면 신라 제26대 진평왕은 하느님으로부터 옥대를 받았다고 했다. 그가 즉위한 첫해에 천사가 대궐 마당에 내려와서 왕에게 말하기를, “하느님이 나를 시켜 옥대를 전해주게 하였노라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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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키가이 19-02-13 10:44
 
다음 아고라 교육토론방 내용인데

아고라가 없어져서;;;웬지;;;옮겨놓는것이 좋을듯 해서;;;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2&articleId=455002
헬로가생 19-02-13 11:08
 
이걸 어떻게 읽어요오오오~ ㅠㅠ
눈깔 빠지겠네.
     
러키가이 19-02-13 18:42
 
자꾸 짤려서;;;넉넉하게 스페이스를 못하겠심;;;

그럼 3~4~5 이런식으로 글이 많이 늘어나서;;;

원본 그대로 올렸심;;;
에스프리 19-02-13 16:58
 
꿰엑..
레종프레소 19-02-13 17:40
 
김상일 교수 이런 양반이말로 석학 소리 들을만한 분인데

인생이 참 쉬이 늙음이 한이라 이분도 벌써 연세가 80이 다 되어가시네..
지청수 19-02-14 14:08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좋은 내용 받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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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9 우룡스님이 능엄주로 갖가지 신통을 겪은 체험. (2) 어비스 03-01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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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1 창세기에는 기록된 창조설화는 2가지 VㅏJㅏZㅣ 01-28 935
4870 구약을 잘못 인용한 예수 VㅏJㅏZㅣ 01-25 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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