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 공즉시색을 논하면서 글쓴이가 하이데거의 논리를 가져온 것은 하이데거를 통하여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설명하는 것이 보다 쉽게 설명할 수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하이데거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약간 이해한 바가 있어 그것을 설명의 도구로 가져다 쓴 것이다.)
서양의 존재론은 전통적으로 이분적 구조를 지닌다.
플라톤이 말한 빛과 그림자를 포함하여 보편자와 개별자, 무한자와 유한자 등등이다.
서양의 이러한 존재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에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킨건 하이데거의 존재론이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이분적 구조가 아닌 삼분적 구조로 보고 있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본연의)존재와 현존재 그리고 존재자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아무 생각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재라 하고
"나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갖고 있는 나를 현존재라 하며
그 의문에 답하여 "나는 어떠한 사람이다"라고 규정 한 나를 존재자라 할 수 있겠다.
(여러분들은 여기서 존재와 현존재 그리고 존재자가 성립되는 순서를 기억해 두길 바란다.)
여기서 하이데거가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는데 이를 양치기 소년의 예를 통하여 살펴보자면
양치기 소년이 심심해서 거짓으로 "늑대야"하고 외치자 마을 사람들이 달려왔다.
양치기 소년은 거짓으로 늑대야 하고 소리친 것이지만 양치기 소년의 늑대야라는 외침을 들었을 때 마을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늑대로 규정되어진 존재자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와서 보니 늑대라는 존재는 없었다.
이때 이 늑대는 존재하는 것인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늑대는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시간과 장소가 일치하고 있지 않는 것 뿐이다.
아무 생각없는 나는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10년 전에 나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10년 뒤에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 라고 답 할 수 있었다.
이 순서와 늑대의 경우를 대비해 보면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자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늑대를 멸종된 맘모스라고 가정해 보면 어떠한가?
이 때 맘모스는 존재하는 것인가 존재하지 않은 것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나의 친구가 컴퓨터를 샀다고 자랑을 하길래 그 친구와 같이 컴퓨터를 보러 갔다.
이때 나의 머릿속에는 컴퓨터라고 규정되어진 존재자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의 집에 가보니 컴퓨터는 없고 부품으로만 있었다 .
물론 친구가 부품들을 조립하기 시작하면 10분안에 컴퓨터로 조립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컴퓨터이어야 할 존재는 부품들로 분해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 때 내 머릿속에 컴퓨터라고 규정되어 있었던 존재자를 존재케 하는 컴퓨터라는 존재는 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인가?
이 문제가 약간 헛갈린다면 컴퓨터 조립시간을 좀 단축시켜보자.
그 친구는 컴퓨터 조립 세계신기록 보유자라서 0.1초면 컴퓨터를 조립 할 수 있다 라고 가정 한다면 어떠한가?
이 컴퓨터는 존재한다고 말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마도 존재한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자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이번에는 이 컴퓨터가 슈퍼 컴퓨터라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이 슈퍼 컴퓨터를 조립할 수 있는 사람이 지구상에는 아무도 없다.
이러한 경우에도 이 슈퍼 컴퓨터는 존재 한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경우에는 그 슈퍼 컴퓨터는 존재한다고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예에서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은 이 컴퓨터를 조립할 수 있는 존재가 있는가 없는가에 있다.
이러한 결과들을 염두에 두고 생각을 확장해보자.
내가 키우던 강아지가 오래 전에 죽었다.
그 강아지는 이미 먼지로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간지 오래이다.
그러므로 그 강아지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떠한 초월적인 존재가 있어 먼지로 분해되어 버린 그 강아지를 다시 조립할 수 있다면 위의 예에서 살펴보았듯이 이 강아지는 존재한다고 말 할 수 있어야 되는 것 아니겠는가?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렀다면 이제 본 주제인 색즉시공 공즉시색에 대하여 살펴보자.
색즉시공 공즉시색에서 말하는 색은 하이데거에 의하면 존재자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공은 무엇일까?
강아지를 구성했었던 분해되버린 그 입자들을 공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초월적인 존재인 조립자 또는 창조주는 어디 있는가?
혹시 분해되버린 그 입자들 안에 조립자 또는 창조주가 내재되어 있다면 이를 공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것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에 대한 전체적인 결론은 아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개념들을 이해하여야 하고 더 복잡한 과정들을 거쳐야한다.
하지만 이정도 만으로도 색즉시공 공즉시색에 대한 대략의 윤곽은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삼분하였지만 동양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오행론 음양오행론 태극팔괘론 등을 통하여 존재론을 완성시켜놓은 상태이다.
이를 살짝 살펴보기 위해 하이데거의 존재에 대한 개념들을 좀 더 세분해서 나누어 보자.
1. 아무 생각없는 나가 있다.
2. 이러한 내가 나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면 이 의문을 가지고 있는 나를 현존재라 한다.
3. 여기서 이 의문에 대하여 답을 구하고 답 하는 과정을 통하여 규정되어진 나가 존재자이다.
4. 이러한 존재자가 궁극의 경지를 향하는 과정 속에서의 단계가 있다.
5. 여기에 더불어 생명의 재료들을 조립하고 있는 존재자가 있다.
6.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명의 재료들을 조립하고 있는 존재자를 존재케하는 존재가 있다.
이것이 오행의 원리이다.
위에서 약간 보정을 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동양에서는 (1)번이 재료로서 존재하고 있는 경우 이 재료는 음의 기운과 양의 기운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보는 것이므로 (1)번을 음과 양 두 개의 요소로 나눌수 있다.
(5)번과 (6)번의 경우는 도덕경에서 말하는 "무명와 유명은 동출이이명이다"에 해당 되는 것이므로 즉, 한군데에서 나왔지만 이름을 달리하는 것 또는 천부경에서 말하는 일 석삼극에 해당하는 것으로 하나가 스스로 삼극으로 나눈 것에 해당하므로 오행에서 볼 때에는 하나의 요소로 본다.
또한 (2)번과 (3)번의 경우도 하나의 요소로 보는 것인데
(2)번과 (3)번은 지속되는 순환과정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속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이 과정이 완성되면 이를 이치 구성 요소상으로 황극이라 할 수 있겠다.
(4)번은 이치요소상 무극에 해당한다 할 수 있겠다.
이로써 오행이 완성되고 여기서 한 번 더 창조의 과정을 거치면 음양오행이 되는 것이고 음양오행을 풀어서 설명하면 태극 팔괘가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다윗의 별 문양이나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문양이나 다 같은 이치에서 나온 것이다.
전세계에서 발견되고 있는 피라미드의 원리 역시 같은 이치에서 나온 것이다.
고대인들은 이러한 이치를 이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