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남조선을 해방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세 번 놓쳤는데 그중에서 광주가 제일 아까워.
우리가 준비가 너무 부족했고 태만했어. 너무 쉽게 생각했어. 광주가 좋은 기회였는데 아쉽게 놓쳤어...‘
1986년 1월 6일 하기 훈련을 위한 평남도 덕천 교도지도국(한국에서 명명하는 특수8군단) 본부에서 열린
지도국 산하 여단장 정치위원 및 대대장 대대정치지도원을 위한 군사 정치 일군 상학에서 발언
수꼴들이 자주 써먹는 북한인사발언들 중의 하나가 이 발언인데, 실상 이 발언 하나만 가져다 보면 북한이 광주에 뭔가 손을
썼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솔직히 개소리다.. 왜 개소리냐? 이제부터 반박하겠다. 그것도 니들이 글케 맹신하는 탈북자
증언, 그리고 그 탈북자 중에서도 고위급 탈북자인 강명도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반박하겠다.
강명도는 북한의 고위급 탈북자들 중 하나로 실제 현 북한을 통치하고 있는 김씨 일가와도 많은 친분이 있었고, 당시 강명도의
탈북은 북한 사회에 크나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강명도는 탈북이후 북한에서의 듣고 본 바를 책을 써내는데 그가 바로
'평양은 망명을 꿈꾼다' 라는 서적이였다. 여기서 강명도는 광주사건에 대해서 일침을 내렸는데, 그는 광주에 북한군이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실제 김일성 12.12사태와 5.18을 두고 위의 발언처럼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왜그럴까? 당연한 일이다. 국가적으로 파란을
가져올만한 사건에 아무런 손도 쓰지 못했으니 참으로 아쉬울 수 밖에!
"당시 대남공작총책이었던 김중린 비서(훗날 아웅산테러 실패와 전두환에 대한 여러가지 공작 실패로 김일성-김정일 부자로 부터 "똥물에
튀겨죽일놈"이란 낙인이 찍히고 숙청당함)가 1200명 정도의 특수부대를 차출해서 남한의 광주에 침투시켜서 사태를 격화시키고자 시도했었다."
"실제로 일선급 특수부대에서 인원선발도 끝났고 세부계획도 마련되어있는 상태였지만 북한측이 예상했던 것 보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찍
남측에 의해 진압되어버린 바람에 투입하지 못했고, 김중린은 시기조절(?)에 실패했기 때문에 엄청난 문책을 받았다."
- 평양은 망명을 꿈꾼다,강명도 저 中
여기서 잠깐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북한에서 군바리 짭밥 좀 쳐먹다 탈북해서 노이즈마케팅이나 하는 애들 vs 김씨 일가 인척
누가 더 기밀자료에 손을 대고, 또 누가 더 기밀자료를 많이 접할 수 있었을까?
그가 이토록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김씨부자와의 인척관계를 통해 들었던 당시 사건에 대한 정보, 그리고 그가 청년시절
열람했던 북한의 군사관련 서적에서 광주에 대한 북한의 개입실패 보고서를 읽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김중린은 당시의 실패와
아웅산등 여러가지 대남공작의 실패로 아오지행을 당했으며 이는 남한측에서도 확인한 정보이다. 그럼 여기서 무슨 말이 더
必要韓地?
지긋지긋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