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사단 광주 톨케이트 진입 시 다수의 시민군 화염병으로 지휘부 습격
>어떻게 일반시민이 사단지휘부 무전을 도청하여 이동 경로와 정확한 시간을 알고 매복?
2) 사단 지휘부가 600명의 시민군에 의해 습격받아 차량 14대 탈취 후 아시아 자동차로 가서 군용트럭을 탈취
>일사불란한 정규 군사작전이 아니고선 불가능
3) 이후 시민군 지휘용 지프와 군용트럭을 몰고 44개 무기고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 무기 탈취
>무기고 위치는 군사 2급 비밀
4) 도청 TNT 폭약 설치
>영관급 장교도 전문 병과가 아니면 설치하기 어려운 군 폭약을 도청건물 전체에 그렇게 쉽게 설치?
5) 5.18 당시 시민군 가두 방송원 전옥주(본명 전춘심) 증언에서 위의 이 모든 일사불란한 작전을 연고대생 600명이 와서 했다고 증언했는데
>이후 5.18 희생자와 생존자 명단에는 연고대생 600명의 신원과 행적이 사라짐
6) 김일성의 발언
>"지금까지 남조선을 해방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세 번 놓쳤는데 그중에서 광주가 제일 아까워,우리가 준비가 너무 부족했고 태만했어, 너무 쉽게 생각했어, 광주가 좋은 기회였는데 아쉽게 놓쳤어...."(1986년 1월 평남도 덕천 교도지도국[특수8군단]에서 발언)
7) 김정일의 발언
>"광주에서 우리는 교훈을 찾아야 한다.이길 수 있었지만 결과는 진압됐다.땀이 적었고 훈련부족이다.교도지도국은 남조선 해방의 전초병이다. 언제든지 나가라면 당장 나갈 수 있게 만반의 동원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1982년 3월 북한 특정여단 상방 게릴라 훈련장에서 발언)
8)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연락소 전투원 김명국의 증언(5.18 당시 광주에 침투)
1. 군의 무전을 도청하고 정예화된 군 지휘부를 습격하여 차량을 탈취하고 44개에 위치된 군사비밀장소를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한 그들?
2. 특별법에 따라 막대한 보상금과 많은 혜택이 있는데도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은 연고대생 그들은 과연 하늘에서 내려온 天軍이란 말인가?
3. 김일성과 김정일의 발언 그리고 그 당시 침투한 탈북자의 증언으로 본다면 1980년 광주에 북한에서는 광주로 간첩을 침투시켰다. 그들은 그해 광주에서 무엇을 하였던가?
오 광주여~
5.18 광주가 민주화운동으로 진정 평가받고 불리길 바란다면 먼저 이러한 의문부터 조사해 밝혀내고 규명해야 될 것이다.
이러한 의문이 풀리지 않은 작금의 현실에서는 5.18은 광주민주화운동이 아닌 광주사태로 불리는 게 바람직하다.
[출처]
광주사태 20사단 작전상황일지
5.18 광주청문회 자료
86년 인민군 배포 정치상학 자료
83년 북한 인민군 사여단 참모부에 발송된 사상투쟁 교양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