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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감정의 시작은 삼국시대부터 있었고 표면적으로나타난것은 박통부터 (물론 그 이전 부터 보리 문둥이 등의 비칭을 들을 정도로 척박했던 경상도가 풍족한 곡창지대 전라도에 대한 모종의 질시의 감정은 있었습니다.) 즉 박정희는 집권 동안 자기 고향 경상도를 자신의 확실한 표밭으로 만들기 위해 경상도에 집중적인 경제개발과 인사상의 특혜를 집중시켰습니다. 경상도에 가는 추가분의 특혜는 호남 몫을 가로챔으로써 충당하였으며 이를 합리화 하기위해 호남에 대한 비호남지역의 편견을 부추겼습니다. (이를테면 "기질이 않 좋으니 푸대접 좀 받아도 싸지 않느냐"는 거였습니다.) 즉 박정희가 시작한 지역감정은 경상도 우대와 중부지역에서의 대호남 음해, 두가지 측면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충복 이효상은 63년 대선때 "천년만에 신라에서 왕이 나왔다" "문둥이가 문둥이 안찍으면 우짤끼고"하며 경상도출신이 대통령되면 돌아올 현실적인 이득을 은근히 암시하며 경상도 사람들의 지역적 투표를 부추겼습니다. 63년과 67년 두번의 대선에서 놀라운 점은 경상도는 두말할것도 없고 전라도에서도 박정희가 제일 많이 득표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라도사람들이 아직은 많이 "순진"했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는 71년 선거에서 난관에 봉착합니다. 다들 알다시피 박정희의 71년 대선 출마는 박정희가 세번 해먹고픈 욕심에 삼선개헌을 밀어 붙여 성사된 것이었습니다. 이승만 장기집권욕 때문에 4.19가 일어 났던게 불과 10년전인데 여론이 심지어 경상도에서마저, 특히 대구,부산등 대도시에서 박정희에 불리하게 돌아 감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때까지 근 10년간 "순진"하게 박정희를 지지했던 호남사람들도 점차로 자기들의 지지를 푸대접으로 보답하는 박정희의 실체를 깨달아 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박정희는 그동안 착실히 조장해논 지역감정을 본격적으로 자신의 재집권에 써 먹을 결심을 한것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신민당 후보로 선출된 김대중이 호남출신이라는 절호의 호재도 한몫을 했습니다.
박정희캠프는 71년 선거당시 경상도에 가서 "전라도 대통령 하에서는 경상도의 특혜는 끊긴다. 경상도는 이제 찬밥 신세가 될것이다"며 경상도사람들을 선동했습니다. 경상도 지역의 몰표덕에 박정희는 유례없던 3선 고지에 올랐으며 "보은 차원"에서 경상도에 대한 특혜는 한층 가중 되었고 자기를 찍지 않은 "보복"을 한다는 명분으로 호남에 대한 푸대접은 가중시켰습니다.
박정희가 18년 집권끝에 같은 경상도 출신의 심복 총에 맞아 죽자 역시 경상도출신으로 채워진 소위 신군부가 정권을 잡을 궁리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민주화 열기가 들끓고 있는 상황에서 도저히 1961년에 박정희가 했던것처럼 쿠데타를 일으킬 여건이 아니었습니다. 신군부는 "질서유지를 위해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명분이 필요했으며 "무질서"를 일부러 부추기기 위해 광주에서 평화로운 학생데모를 살인진압함으로써 시민의 봉기를 유발했습니다. 즉 겉으로 보기에 "무질서"의 상황을 어거지로 만들어놓고 "질서유지"를 위해 자신들이 나서는 상황을 연 출한 것이었습니다. 하필이면 광주를 그 대상으로 찍은 이유는 첫째, 무엇보다도 경상도에 내재한 호남에 대한 악감정이 작용했고, 둘째, 그동안 타지역에서 부추겨논 대호남 편견 때문에 타지역민들에게 광주시민들이 "폭도"라는 심증을 주기에 용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1980년 5.18을 싯점으로 그때까지만해도 영남의 호남에 대한 일방적인 적대감이던 측면이 강했던 지역감정은 이제 쌍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호남사람들도 바보가 아닌데 모조리 경상도로 채워진 신군부가 하필이면 전라도의 도시를 자기들 정권 장악의 제물로, 그것도 수천명의 무고한 사람을 죽임으로써 삼은 점을 간과할 리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그렇게까지 억을한 사람들 죽여 가면서 정권 잡았으면 정치나 잘할일이지 국정난맥에다 (나중에 알려진 것처럼) 전두환은 2조원, 노태우는 3조원을 해먹는등 극에 달한 경상도정권의 부패실상은 그 정권의 지역기반 노릇을 하는 경상도에대한 혐오심을 호남사람들 마음에 깊이 심어 놓았습니다. 경상도 사람들은 호남사람들에게 미안해 하기는 커녕 "가해자의 오만"을 부리며 호남을 가일층 적대시했습니다. 그러는 한편으로 누려오던 특권.특혜를 아예 내놓고 독식한 것이 바로 5공,6공, 문민정부의 실상이었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흐르며 모든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게 되었으며 제3지역사람들은 경상도사람들은 명분이야 있건 없건 암만 부도덕하고 불의로운 정권도 경상도 정권이면 무조건하고 지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경상도의 독식은 호남만의 피해가 아니라 수도권,중부등 제3지역의 몫까지 잠식한다는것을 은연중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남 대 호남으로 시작된 지역감정은 시간이 갈수록 영남 대 (호남을 포괄한) 비영남의 양상으로 진행되어 가고 있는 것을 요즈음 감지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면 이제 타지역사람들이 경상도사람들에 대해 알만큼 알아 버렸다는거입니다. 경상도 지역당인 한나라당이 심지어 "딴나라"당이라고 불리우며 경상도는 "딴나라"라고 불리우는 이유입니다. 작금에는 경제를 살리겠다며 집권한 이명박이 경상도 출신이며 그 정권이 출범한 이후 경제회복은 커녕 온갖 국난이 닥치고 있는것도 타지역의 대영남 지역감정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즉 경상도는 자기들이 뿌린 지역감정의 씨앗을 작금에 스스로 거두고 있는 것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지역감정이야 신라 백제때 부터 있었겠지만
지금의 정치적인 지역감정은 박정희에 의해 만들어졌죠
7대 대선때 김대중이 이제는 바꿔보자라며 부산 영남을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지지를 몰고 다니자
이에 다급해진 박정희는 지역감정을 이용하기 시작하죠
앞으로는 신라의 후손을 뽑아야된다고 떠들고 다녔지만
뒤로는 중앙정보부를 이용해서 '김대중이 대통령되면 북한이 처 내려와서 한반도가 적화통일 된다'
같은 내용의 찌라시를 대량으로 뿌리고 소문을 퍼트립니다
그 일선에는 당시 중앙정보부장인 이후락이 있었구요
전라도는 잘 모르겠고 경상도에선 나이 먹은 노인들이나 전라도 어쩌구하지
젊은 사람들은 지역감정 같은거 없었어요
아니 지역감정이 없다기보단 아예 전라도에대한 관심이 없다가 맞겠네요
그러던게 요 몇년 사이에 일부 병싄들에 의해서 애들도 드립치고 다닐 정도로 지역감정 대폭발 수준인데..
뭐 나이드신 분들이야 그리 살아왔으니 어쩔수 없는거고
진이님은 쓸데없는 지역감정같은거 가지지 마세요
지역감정의 조장은 시대를 불문하고 지배세력의 통치 기술의 하나였습니다.
즉 아랫 것들끼리 싸우게 해서 위를 넘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조선시대에 함경, 평안, 전라 지역을 차별했고.. 그래서 이 지역에 민란이 많이 일어 났고.. 그래서 더욱 차별했지요.. 조선말기에는 남인 지역인 경상도를 차별했고요..
일제시대도 악랄하게 지역감정을 부추겨 저항세력을 약화 시켰습니다..
예를들면 전라도의 농민들을 충청도나, 경기도로 강제이주시켜 지역 세력을 약화시키고 이주민과 토착민의 갈등이 유발되지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근대 이후에도 사실 모든 지역갈등의 단초는 정치인이 유발 시켰습니다.
결국 박정희든 김대중이든 안철수든 박근혜든 정치인을 우상화하는 것은 결국 이들의 의도에 넘어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