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게시물을 쓰기 앞서 저는 박정희를 신격화, 우상화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벌어진 사건 이상으로 폄하하는 작태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쓰는 글임을 밝힙니다.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으시면 자유로이 문제점을 지적해 주시되 단순히 박정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발생하는 시비에는 반응하지 않겠습니다.
1960년 한국은 그렇게 못 사는 나라가 아니었으며 1979과 비교하면 랭킹 변화가 별로 없기 때문에 박정희는 한 일이 별로 없다!?
http://www.nationmaster.com/country-info/stats/Economy/GDP-per-capita#1960
최근 정게에서 이런 주장들이 현직 대통령의 낮은 인기와 맞물려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물론 저 역시 박정희 정권이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정부인 만큼 정당성 확보차원에서 '우리는 가난한 나라'라는 메세지를 국민들에게 강조한 측면이 있었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산업화의 혜택을 온 몸으로 누리며 살아온 세대로서 위와 같은 댓글을 보노라면 한국이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가 전혀 아닌데 군사정권이 거짓말 했으며 국민은 그동안 속았던 것이란 주장에 단 1%의 의문도 들지 않을 수는 없겠죠. 오늘 글에서는 이 부분을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첫 번째 쟁점 : 1960년 한국은 그렇게 못 사는 나라가 아니었다...?
1. 명목 GDP로 본 당시 한국의 위상
일단 위 비판 댓글에서 제시한 랭킹부터 볼게요, 한국의 1960년 당시 1인당 명목gdp 순위는 105개국중 71위로 현재 USD 달러가치 기준 155.21달러를 기록합니다. 동남아시아 국가인 말레이시아 299.11달러(44위), 필리핀 254.44달러 (49위)보다 뒤지는 순위이고 아프리카의 가나 183.06달러, 모로코 165.24달러보다도 근소하게 낮은 순위죠.
권역별 경제력을 해석하면 1960년 당시, 일부 소규모 국가를 제외하고는 영미권과 북유럽이 넘사벽이고 그 뒤를 이어 서유럽 주요국이 전후복구의 성과를 조금씩 맛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뒤를 바짝쫓는 일본을 필두로 남유럽, 싱가포르, 남미국가 일부가 성장동력을 가동하고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동남아 한국, 아프리카 후진국이 고만고만한 상황이었죠.즉 당시 한국은 아무리 잘 쳐도 전반적으로 동남아, 아프리카 후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나라였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G7 선진 7개국 평균인 1530.42와 비교하면 대략 10배 정도의 격차가 납니다.
다만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 당시 조사된 105개국 중에 고소득 선진국의 평균인 1281달러의 절반 이하인 6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라들이 거의 80%에 이릅니다. 다시 절반인 300불대이하의 국가도 60%를 차지하하는 상황..즉 서구 선진국가와 다른권역 전체간의 경제력 차이가 매우 극심했던 시기란 말이고 이하 일본, 싱가포르 그리고 극소수 남미국가를 제외하면 다 1인당 명목GDP가100불대 200불대하는 후진국끼리 고만고만한 시기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시 한국은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가 아니었다!" 주장하는 진의가 '다른 가난한 나라들도 많았기 때문에 우리만 특별히 못사는 나라는 아니였어!'라는 의미라면 일부 맞는 주장일 수 있습니다.
2. 실질 GDP로 본 당시 한국의 위상
한편 명목 GDP는 낮지만 실질 GDP로 따지면 살만했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실제로 명목GDP를2005년 환율기준으로 변환하면 위 막대그래프처럼 한국이 말레이시아, 필리핀을 앞서게 되죠.
□ 3년간 환율변동 추이(2005년 7월~2008년 6월) 자료원 : 필리핀 중앙은행
-2005년 당시 페소가 상당히 약세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2005년 당시 한국의 경우 환율이 낮았던(원/달러 1024) 반면 필리핀, 말레이시아는 자국화폐/달러 환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사실을 감안하면 기준년도에 따른 유불리에 의해 실질 GDP의 결과는 전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종합하면 당시 한국은 실질GDP를 통해 최대한 맥시멈으로 잡아도 말레이시아, 필리핀과 엎지락 뒤치락 하는 사이즈의 고만고만한 나라였다는 거죠. (이 밖에 막대그래프에서 언급된 국가들은 인구대국 + 후진적 경제구조라는 이중고를 격었던 국가들이고 모두 명목 GDP상으로도 한국 뒤에 위치한 나라들입니다.)
거기에 더 부정적인 사실은 고정환율제도를 고수했던 60년 당시의 환율정책과 원조경제라는 기형적 구조를 감안할 때 동남아에서 그나마 산다는 필리핀, 말레이시아와 비슷했다는 실질 GDP의 수치상의 결과마저도 실제로는 상당한 고평가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겁니다..
3. 당시 한국의 상황은?
아시다시피 당시 한국은 전쟁을 치르고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 50년대 후반까지 한국은 식량공급에서 부족량이 발생해 부족분만큼 미국의 식량원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존재했던 공장들도 폐허가 되어 공산품 공급도 원활하지 못했고 이를 바로 잡아야 할 정부는 미국의 원조경제에 심취해 이렇다할 경제적 성과를 내지 못하다가 50년대 후반, 미국이 무상원조에서 기술원조로 방침을 바꾸겠다 통보해 온 뒤에야 부랴부랴 경제개발 계획을 수립한게 59년, 60년의 상황이었죠.
정치적으로는 4.19와 이승만하야로 이어지는 정국혼란이 더해져 60년 당시 경제성장률이 1.2%에 그치는 등 결코 전망이 밝은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광복이후 미국원조의 대폭감소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이라 여겨지던 수출은 4천100만달러정도로 채 1억이 되지 않고 총 GDP에서 수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3.16%에 불과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당시 한국경제는 정부가 원조물품을 민간에 판매하면 그것을 다시 가계소비로 돌리는 방식으로 내수가 돌아가는 열악한 구조, 게다가 수출은 거의하지 않는 자생력이 미비한 경제였다는 말입니다..
http://www.theglobaleconomy.com/rankings/Exports/#South-Korea
미국의 순수 무상원조가 한국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 최대 25%에 근접하며 60년까지 10%대를 상회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대충자금(對充資金)은 미국이 현물로 준 원조물자를 한국정부가 국내시장에서 판매해 현금화한 자금이다. 미국의 대한원조가 본격적으로 줄어들기 전까지 국민세수보다 높았다.
* 말레이시아, 필리핀 한국의 수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
* 말레이시아, 필리핀, 한국의 가계소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
* 동남아시아 주요국들과 한국의 수출액 비교
http://www.theglobaleconomy.com/rankings/Exports/#South-Korea
Q.혹시 다른 국가들도 한국과 비슷하게 미국의 원조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물론 다른 나라들도 어느정도 미국의 원조를 받습니다. 다만 지정학적인 이유로 한국이 압도적으로 많이 받죠, 한국전쟁이후 급증한 원조가 56~59년까지 미국의 원조랭킹 1위를 차지할 정도이고...
https://explorer.usaid.gov/
http://m.blog.naver.com/knock001/60202402845
http://pdf.usaid.gov/pdf_docs/pbaad400.pdf
(US Aid, 미국의 해외원조 pdf파일 동남아등 기타국가에 대한 원조와의 비교는 이 링크로 확인하세요)
이후 무상원조는 60년대 후반 종료되고
차관의 형식으로 72년 오일쇼크시에 지원을 해주는 등 간헐적으로 지원하다
수출로 한국이 완전히 자리잡는 70년대 중반부터는 대부분 중지됩니다.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미국의 해외원조에서 한국이 비정상적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것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
결론 1
앞서 언급했듯이 당시 한국정부는 식량, 소비재등 생활 필수품으로 이루어진 미국의 현물원조물품을 시장에 내다 팔아서 얻은 이른바 대충자금으로 세원의 30~54%를 마련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이런 식으로 주한미군에게 한화를
팔아먹어서 부족한 외환을 확보했습니다.
결국 당시 한국경제는
철저하게 미국의 원조에 기대어 굴러가고 있었고
미국원조 -> 대충자금 및 한화매도로 외환확보 -> 소비재 및 식량이 시장에 풀림 -> 유통된 돈으로 몇 안되는 공장도 돌리고 밥도 먹고 생필품도 사게 되면서 -> 시장에서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짐
이렇게 한국 GDP가 완성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원조버프를 많이 받은
결과라는 것이..
1인당 명목 GDP: 대부분의 동남아, 아프리카 국가와 비슷한 수준
1인당 실질 GDP: 사정이 조금이나마 나은 동남아 국가와 비슷한 수준
천연자원이 없다시피한 한국에서
유일한 성장동력인 수출은 GDP의 3.16%..
여기에 세계 1위수준의 미국의 무상원조를
뺀다면?
네.. 60년 당시 한국은 틀림없이
매우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두번째 쟁점 : 1979과 비교하면 랭킹 변화가 별로 없기 때문에 박정희는 한 일이 별로 없다!?
1960년 당시랭킹
1979년 랭킹
http://www.nationmaster.com/country-info/stats/Economy/GDP-per-capita#1960
http://www.nationmaster.com/country-info/stats/Economy/GDP-per-capita#1979
정확히 7등 오르는데요, 사실 두 번째 쟁점은 너무나 쉽게 논파되는 부분이기도 해서 간단하게 이야기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일단 1979년의 경우 조사 모집단의 표본 수 자체가 1960년보다 많습니다. (105국->137국)
그리고 어떤 나라들이 추가 되었는고 하니
ㅋ
OPEC,
기름부자들입니다.
어찌나 대단한지 오펙국가들이 끼는 바람에
1위였던 미국이 15위권 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16위)
http://www.nationmaster.com/country-info/groups/OPEC-countries/Economy
그즈음 떠오르는 태양이라며
미국을 위협하기 시작하는 일본조차
24위네요 (1960년 30위)
OPEC외에도
자잘한 소규모 선진~중진국들이 많이 포함되었어요.
그 와중에
G7선진 국가와 한국의 격차도
10배에서 5.4배 수준으로 좁혀진 것을 확인할 수 있네요.
당시 한국이 기름국 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자원부국인 라틴아메리카, 카리브해 평균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왔고 국가에 따라선 추월한 경우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인당 실질 GDP 추이 (기준년 2005) 동남아 일부, 남미 카리브해 주요국, 터키등
결론 2
1979년 조사 대상국에
기름국과 중소국가들이
포함된 것은
박정희 잘못이 아니다. ?
다음에는
자생력 확보를 논하기 시작한 대한민국에
어떤 개발관련 쟁점사안이 있었고
박정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선택하고 그 결과는 어떤지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뻔한 내용이고 가생이 정게 특성상 우호적인 반응도 기대하기 어려워 그냥안할수도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