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엔 좌파, 오른쪽엔 우파… 노인들 따로 모여 앉아
선 넘어가면 폭력 행사도… 중앙은 중도파, DMZ 역할
"공원 중간에 있는 저 쉼터 보이지? 그게 딱 38선이야."
26일 오전 11시 30분쯤 서울 종로구 훈정동 종묘공원에서 만난 하모(80)씨의 말이다. 매일 이곳을 찾는다는 하씨는 "저쪽으로는 가지도 않아. 매번 시비를 걸고 지팡이로 때리려고 하니까…"라고 했다. 정오가 되자 하씨가 가리킨 '저쪽'에 해병대 모자를 쓰거나 무공훈장을 단 노인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깔고 앉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한 노인이 "저 ××놈들 또 시끄럽게 선동질하려고 저런다"며 큰소리로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자 '저쪽'에 있던 한 노인이 '이쪽'을 향해 "빨갱이들은 6·25 전쟁을 겪고도 북한을 좋아하는데 그게 대한민국 사람이야?"라고 맞받았다.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여의도가 국회의원들의 뜨거운 논쟁장이듯, 종묘공원은 노인들이 이념 다툼을 벌이는 '격전지(激戰地)'다.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이 34도까지 치솟는 등 폭염주의보가 이틀째 발효됐지만 공원에는 무더위를 개의치 않는 노인 260여명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종묘공원은 노인들이 한가로이 장기나 바둑을 두는 공원 중앙 '쉼터'를 중심으로 좌와 우가 갈라져 있는 모습이다. 관리사무소와 화장실이 있는 쉼터 왼쪽에는 좌파 노인들이, 지하주차장으로 향하는 오른쪽 공터엔 우파 노인들이 터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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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 오른쪽 공터에서 우파 노인들이 매일 열리는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의 안보 강의를 듣고 있다(위 사진). 좌파 노인들은 공원 왼쪽에 마련된 쉼터에서 주로 신문을 읽거나 토론을 하고 있다.(아래 사진)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우파의 공간에선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의 안보 강연이 매일 열린다. 이날도 노인 120여명이 의자에 앉아 연사의 강연에 귀를 기울이고 손뼉을 쳤다. 좌파 공간에선 따로 집회가 열리지 않았지만 노인 40여명이 함께 신문을 읽고 정치 토론을 벌였다. 이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38선'이 존재했다. 좌파인 유모(79)씨는 "저쪽 노인네들 있는 데 가서 얘기 듣고 싶지도 않고, 가는 것 자체도 싫어. 말이 통해야 서로 이야기를 하지"라고 했다. 우파인 최모(78)씨는 "진보 노인네들은 이쪽(보수 영역)에 얼씬도 못해. 맞아 죽으려고 여길 와? 절대 못 오지"라고 했다.
좌우를 나누는 쉼터에는 '무당파(無黨派)' 노인 100여명이 모여 장기를 두고 있었다. 이들은 "쉼터가 공원 내의 '비무장지대(DMZ)' 역할을 한다"고 했다. 장기를 두던 한 노인은 "쉼터는 비무장지대니까 괜찮다"면서 "상대 쪽 구역은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들어가지 않지. 그게 여기의 법"이라고 말했다.
종묘공원 노인들의 관심은 다가올 '대선'에 집중돼 있다. 이 때문에 종묘공원을 관할하는 혜화경찰서는 비상이다. 몇 년 전부터 큰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좌우로 갈라진 노인들 사이에 다툼이 잦았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시작된 양측의 갈등은 천안함 폭침(爆沈)으로 폭발했다.
지난 2010년 4월 좌파 노인들이 속한 아사달원로회의 강연자가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말하자,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소속 우파 노인들이 강연자에게 주먹을 휘두르기도 했다. 혜화경찰서 관계자는 "총선으로 이미 분위기가 달아오른 상태에서 대선까지 다가오는데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늘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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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28/20120728001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