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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7-23 11:04
5.18광주에 왔던 북한특수군, 6년만에 입 열다[2]
 글쓴이 : 힘찬날개
조회 : 1,402  

저녁 4시경에 조장이 오라고해서 한 장소에 가니 ‘오늘 수고하는데 빵이나 먹으라’ 며 음식 꾸러미를 우리에게 주길래 난생처음 빵이랑 한국음식을 먹어 봤다.

우리야 한 달 치면 거의 전투식량으로 살던 사람들인데 어쩌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게 잊혀 지지 않는다.

철수해서 산에 있을 때 대장한테 여러 명의 사람들이 찾아 왔었는데 내 보기에는 이미 전에 파견된 북한군인들 같은 느낌 이었어. 무슨 작전토의 같은 것을 오래 했는데 말투도 그렇고...우리 조는 은폐한 상태에서 밤을 보내고 25일 다음날 오전 10시 경에 시내 쪽에 있는 도로에 나갔던 생각이 난다. 그 때 보니까 광주 쪽으로 들어오는 도로에 바리케이트를 쌓아놓았는데 그 위에 총들을 기대놓았더구나. 대장이 바리켓트 쪽으로 다가가서 그쪽에 있는 사람들하고 악수하면서 무슨 말을 주고받던 일이 눈에 선하다.

바리켓트 300m 정도 넘어로 보니까 남조선 국군병사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는데 길옆에 군용트럭이 한 줄로 길게 서있는 것이 보이더라, 우리 대장이 다른 곳으로 다니면서 사람들을 여러 번 만났는데 가는 곳 마다 바리켓트를 쌓아놓고 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국군병사들하고 대치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훗날 생각해 보니까 대장이 다니면서 작전 지휘를 하는 것 같아.

그 날 (25일) 저녁 5시경에 조장이 우리를 모이라고 하더니 전투정황을 설명해 주더라. 조장이 하는 말이 ‘우리 쪽(북한군)이 손실이 많다. 이제부터 어려운 싸움이 되겠는데 목숨 바칠 각오를 가져라’고 말 하더라.’ 그러면서 ‘지금 형편을 보니 우리가 살아 돌아 갈 수도 있고 잘못하면 여기서 싸우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광주 봉기자들의 대열에서 동요가 일어나고 싸움을 포기하고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점점 상황이 불리하게 되어 가고 있는데 함께 움직이지 못하고 흩어 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자기 맡은 임무대로 하여야 한다. 우리는 북한에 두고 온 부모, 형제들을 생각해서라도 잡히거나 변절자가 되지 말자.’ 는 식으로 오래 말하더라.

그러면서 말하기를 ‘우리 조는 대장의 호위를 맡았으니까 싸움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조들은 싸움에서 많이 희생 되었다.’ ‘우리가 다 죽더라도 대장만은 지켜야 한다. 대장이 잘못되면 우리도 다 잘못된다.’ 며 마지막 유언 같은 말을 남기는 작별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조장이 하는 말이 우리의 행동은 2단계 넘어간다고 하였다.

질문: 1단계는 무엇이고 2단계는 무슨 말이에요?

대답: 1단계는 한마디로 시위군중하고 협력하여 광주 봉기를 남한전체에 확대하는 것이고 2단계는 무장투쟁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2단계라는 말을 해석하면 남조선에 제 2전선을 형성하여 북한에서 밀고 내려오는 기본부대와 협동작전을 하여 남조선을 통일하는 것이라고 조장이 말하더라. 그 날도 조장이 어디서 가져왔는지 이 밥에 고기반찬이랑 먹던 생각이 난다. 유별나게 맛있던 반찬은 고등어 같은 반찬이야. 정말 맛있게 먹었어.

그 때 대장의 옆에서 각지에 파견되었던 조장들이 보고 하는 말을 들으니 무기고를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하였다는 것과 함께 트럭, 장갑차들을 노획하였다는 성과 보고를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때 광주 쪽의 상공에서는 헬리콥터가 여러 번 순회 하면서 봉기군들을 향해 투항하라는 식의 방송을 하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26일과 27일 새벽2시 까지는 있던 장소에서 머물면서 조장의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조장이 숨이 차게 뛰어 와서 하는 말이 ‘긴급기동을 하여야 한다.’ 며 출발명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그 때 조장이 하는 말이 ‘이제부터 경산 산줄기를 따라 들어가야 한다.’ 며 하던 말이 생각난다. 행군도중에 부조장이 ‘이제부터 우리는 유격전을 벌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조가 목적지에 도착하여 보니 아침6시경이었는데 무기를 휴대한 사람들이 우리가 있는 곳을 지나 산속으로 들어가고 뒤에서는 총소리가 자지러지게 나는 것이었다. 대장이 산으로 들어오는 봉기군을 마지막까지 맞이하여야 한다면서 있다나니까 국군이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총격전이 벌어지게 되었어.

그 때 우리 쪽에서 국군을 먼저 발견하였는데 우리가 위치한 200미터 정도 되는 곳에서 봉기군을 포위하려 들어오던 특전사 부대원들이 수십명 정도 되게 불의에 나타나자 조장이 사격명령을 내렸다. ‘사격하라’ 소리와 함께 요란한 총성이 산골짜기를 메웠어.나도 그때 3명의 국군을 쐈는데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 때 쓰러진 국군 병사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속해있던 부조장이 책임진 6명(엄호조)은 국군과 그냥 총격전을 벌이며 견제하였고 조장이 데리고 있는 6명이 대장을 호위하여 산속으로 들어갔다. 5분후에 우리도 골짜기로 철수하였다. 우리가 철수하면서 보니 산 아래 쪽에서는 총소리가 자지러지게 나는 것을 보니 시후에 조장이 말하는 것을 보니 ‘우리 조와 맞다들었던 국군이 11공수 특전사부대’ 라고 하는 것이었다. ‘특전사가 공중으로 광주시내 중심에 투입되어 봉기자들을 진압하는 바람에 실패하였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광주 봉기가 실패하게 된 원인은 시위대가 자체 해산되면서부터 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대장이 있는 데까지 산으로 올라가는데 시위 봉기자들이 총을 버리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다른 조들과 만나게 되어 물어보니 ‘자기네들은 싸움을 포기하고 내려가겠다.’며 간다는 것이었다. 한 쪽에서는 북한과 무전연락을 하며 다음 지시를 기다리면서 산으로 들어갔어. 우리는 대장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산 아래에서는 총소리가 그냥 나고 있더라. 대장이 돌아와 행군명령을 내렸는데 시간을 물어보니 저녁9시 경이었다. 그 날이 1980년 5월 27일이야.

다른 조들과 헤어지고 우리는 대장과 함께 13명의 인원으로 산봉우리 아래쪽으로 가로질러 가면서 타고 나갔었다. 주민가옥에는 절대 들어갈 수 없었으므로 먹고 자는 것은 행군 도중에 잠깐 1~2시간씩 풀숲에 은폐하여 쪽잠을 자곤 하였다. 5월 30일 날 새벽에 우리조가 ‘문경고개’ 근처에서 행군할 때이다. 다른 방향으로 나갔던 부조장이 책임진 조가 돌아왔어.

아침밥을 먹을 때 조장이 지도를 보는 곳으로 부조장이 다가와 ‘01번 동지, 우리가 민가에 너무 가까이에서 행군하지 않습니까?’ ‘아니야, 정확히 우린 8부 능선을 따라 가고 있어.’ ‘그런데 산에 웬 여자 아이가 있습니까?’ ... ...그래 처리해 버렸습니다. ‘그래? 잘 했어, 행군하면서 최대한 주의하라. 남한 거마리들에게 발각되면 끝장이야.’ (8부 능선이란? : 산 높이를 10등분 하였을 때 8등분에 해당하는 높이를 말한다. 남한 거마리 들이란? : 한국 국군 수색대를 보고 하는 말이다.)

휴전선에 도착한 때가 저녁 11시경이라고 생각된다. 그 때야 나는 우리가 휴전선에 와있다는 것과 북한으로 철수해서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체 조장의 지시대로만 움직이고 말을 절대 물어보거나 말을 할 수가 없었으므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도착하여 2시간 정도 기다리니 무력부 정찰국 소속 대원들과 3조 성원들 몇 명이 우리 조와 합류하였다. 휴전선 지뢰밭과 철조망은 정찰국 성원들이 앞서나가면서 해제하여 길을 개척하였다. 휴전선을 넘어서 보니 6월 5일 아침 9시 경이었는데 지역을 알아보니 북한 강원도 판교군 지하리라는 것이었다.

한참 걸어서 가고 있는데 난데없이 떨어져 터지면서 우리 부조장(한광호)과 조원(017번)이 포탄에 맞아 즉사하였다. 사방에서 마구 포탄이 터지 길래 우리는 남한 국군의 포위에 든 것으로 알았었다. 대장이 명령하기를 모여 있으면 포탄에 맞아 다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시체도 못 건지니 분산해서 은폐하라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대장이 말하는 것을 보니 분명히 북한에 들어왔는데 뭐가 잘못된 것 같다며 쌍안경을 들고 사방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대장이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치자 저 멀리서 대여섯 명의 군인들이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오는 군관들을 보니 인민군 상좌, 대좌 등 고급 군관들이었다. 대장과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우리조가 북한 지하리에 있는 무력부포사격장에 들어와 있었고 그날 운이 없게도 북한군에서 새로 개발한 152mm 박격포 성능사격을 하는 날이라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다친 사람이 없는가 찾아보니 부조장과 조원이 폭탄 파편에 맞아 죽어 있었다.

우리가 남한 국군 복을 입은 것을 보더니 북한 포사격장 책임자되는 사람이 우리 대장과 무슨 토의를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부조장과 조원의 시체를 가지고 부대까지 가려고 했는데 위에서 지시가 떨어졌다면서 이곳에 묻으라고 한다면서 시체들을 가지고 어디론가 떠나갔다. 대장은 떠날 때 정찰국 대원들과 함께 갔었다. 그 때부터 우리는 대장과 헤어져 더는 호위 사업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도 정신없이 돌아치다가 대장이 떠나고 대열이 정돈 돼서야 내 다리가 쏘고 아파나 바지를 올리고 보니 무릎에서 피가 흐르는 것이었다. 조장이 와서 보더니 군용단도로 상처 난 곳을 후벼 냈는데 무릎에서 파편 조각이 나오는 것이었다. 조장은 우리가 가지고 다니던 휴대용 비상약품에서 외상 살균약을 상처에 쏟아 부어놓고 붕대를 동여매는 것이었다. 그 날 조원모두 휴식을 하였는데 휴식장소 주변에 묘지가 많던 것이 기억에 선하다.

다음날인 6월 6일 우리조원들은 부조장과 조원이 잘못 되어 모두 밥도 먹지 않고 정신 상태가 좋지 않아 인차 부대로 출발을 하지 못하였다. 오전 10시경에 출발하여 산속의 냇물이 흐르는 곳에서 모여 앉아 휴전선 너머 들어와서 첫 식사를 하였다. 그 때 내 다리의 무릎 상처가 부어오르고 송곳으로 찌르는 듯 아파나서 행군을 더 할 수 없게 되자 조장이 조원을 데리고 어디론가 다녀오더니 나에게 북한군 군복을 가지고 와서 입히는 것이었다. 그 날이 6월 9일 북한 사리원시에서 한참 떨어진 주변으로 생각된다.

조장이 가지고온 군복을 입어보니 소매가 등을 덮을 정도로 커 보이는 것이었다. 우리 조원들은 나를 보며 치료를 받으려 병원에 가야 한다며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산에서 내려와 보니 이미 전에 갱생 차(병원 차)가 도착하여 있었다. 조장이 차를 가지고 온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것을 보니 평안북도 선천 전상자병원에서 왔다고 소개하는 것이었다.

나와 헤어지면서 ‘평양에 올라가 전투임무 수행보고를 하고 꼭 시간을 내서 병원에 찾아가겠으니 가서 치료를 잘 받으라’ 고 하는 것이었다. 그해 10월30일 태천 군관학교 가는 날까지 병원 치료를 받았다.

광주봉기의 북한군 침투 총화는 6월 15일 김일성과 김정일의 직접적인 참석 하에 평양에서 하였다고 한다. 남한에 침투되었다 전사한 사람 모두에게는 공화국 영웅 칭호가 수여되었다. 분견대 대장 2명은 조선인민군 교도지도국(특수전 사령부)작전부에 승급 배치하였다고 한다. 김일성은 소좌급인 분견대장들에게는 대좌의 군사칭호를 수여하였다고 한다. 조장들은 7명이 살아 돌아 왔는데 각 군단부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상위급 군사칭호를 상좌로 승격시켜 배속하였다고 한다. 조장들 7명 모두 공화국 영웅 칭호를 수여 받았다고 한다.

이들 중에는 이미 전에 남한에서의 전투 공로로 하여 공화국영웅들이였는데 2중 3중 공화국영웅칭호를 받은 사람들이 여러 명이 되었다. 나는 이 모든 사실을 후에 병원에 찾아온 조장에서 듣게 되었다. 10월 9일경 나에게 중앙당 연락소 정치위원과 조장이 병원에 찾아 왔었다. 병원에 찾아온 조장을 보니 상좌의 계급장을 달고 있는 것이었다. 3중 공화국 영웅칭호를 받은 것이다.

정치위원이 그 때 나에게 하는 말이 광주봉기 참가로 하여 1010군부대가 인명손실이 크고 해산 명령을 하여 다른 곳에 있는 대남연락소들에 배속 되었다는 것이다. 전투 총화에서 김일성은 ‘평화 시기에 금싸라기처럼 귀중한 혁명동지들을 잃을 수 없다. 국가에서 수많은 투자를 하여 키운 귀중한 동지들이 희생된 것은 국가의 커다란 손실이다. 앞으로는 평화 시기에 남한에 침투하여 전투를 하지 않는 방향에서 하라.’ 며 명령을 하였다고 정치위원이 말하는 것이었다.

그 때 정치위원이 하는 말이 ‘내일 병원에서 행사가 있으니 참가하라’는 것이었다.

정치위원과 조장이 도착하는 날 나는 병원의 입원호실에서 청소 밀대로 방바닥을 청소 하고 있었다. 조장이 나에게 ‘치료는 어떻게 받고 있어?’라며 물어 보길래, ‘구급치료만 받은 상태입니다.’ 라고 대답하자 ‘뭐? 그게 정말이야?’ 라며 나의 다리에 감겨진 붕대를 풀고 자세히 보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병원 문을 열고 어디론가 나가는 것이었다. 그 날 우리 조장은 내가 아직까지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병원 초급당 비서를 찾아가 권총을 꺼내 그이 가슴팍에 겨누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데 10일이 지나도록 치료를 해주지 않고 밀대 청소를 시키고 있어?’라며 야단을 쳤다는 것이다.

선천 무력부전상자 병원에는 군사임무 수행 중 사고로 다쳐 팔, 다리가 끊어진 사람이 차고 넘쳤으니 나의 경력내용을 모르는 병원에서는 그럴 만도 한 일이었다.

훈련에서 요구성이 강하고 일단 성이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이나 대원들을 무척 사랑하고 인정이 많은 사람이다.

위의 이야기는 훗날 담당 간호원에게서 들어 알게 되었다. 다음날인 20일 아침 9시 경에 간호원이 2명이 담가 대를 들고 들어와서 앉으라는 것이었다. 당가에 앉아 병원회관으로 들어가니 전상자병원 직원들과 환자들 모두 모여 있는 것이었다. 나는 좌석 맨 앞자리에 담가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 주석단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니 병원 원장과 초급당 비서, 우리 조장과 연락소 정치위원 등 여러 명이 나와 앉는 것이었다.

회의 시작을 알리는 것과 함께 사회자가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감사문을 전달하는 모임을 시작하겠습니다.’ ‘당중앙위원회 위임에 의하여 조선인민군 1010군부대 정치위원동지가 보고를 하겠습니다.’ 이어 정치위원이 주석단에 나오더니 ‘조선인민군 1010군부대 전투원 김명국 동지는 앞으로 나오시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당가에 들리어 주석단으로 나갔다. 정치위원이 ‘조선인민군 1010군부대 전투원 김명국 동지는 1980년 5월 전투공로로 하여 조선로동당에 입당하였음을 선포합니다.’ 라며 조선로동당 당원증을 수여하였다.

당원증을 수여받고 내려가는 줄 알고 당가에 돌아앉는데 그냥 앉아있으라는 것이었다. 정치위원이 이어 ‘김명국 동지는 같은 전투공로로 하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기훈장1급, 자기 목숨을 바쳐 지휘관을 보위한 업적으로 하여 국기훈장1급을 수여합니다.’ 라며 국기훈장2개를 나의 앞 가슴왼쪽에 달아주는 것이었다. 그 때 땅과 하늘이 다 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날 모임이 끝나고 담가에 들리어 병동으로 들어가 보니 원래 내가 입원하고 있던 호실이 아닌 독방에 침대1개만 놓여있고 갖가지 시설이 잘 갖추어진 고급스러운 호실로 옮겨주는 것이었다. 조장과 정치위원이 그날 밤 나와 잠을 함께 잤다. 정치위원이 나에게 ‘1010군부대가 해산한 조건에서 병원 퇴원 후 집으로 가겠는가? 아니면 군사복무를 계속 하겠는가?’ 라고 묻는 것이었다.

집으로 가겠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대학으로 가는 것을 의미하는 소리인 것이다.

나는 그때 정치위원에게 ‘군관이 되고 싶습니다.’ 라고 하자 정치위원은 나에게 ‘9월 아니면 10월에 다시 오겠으니 병 차도를 보고 군관학교에 보내주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훗날 10월 27일 이라고 생각되는데 정치위원이 나를 데리러 온 것이 아니라 태천군관학교(특수전 사령부 군관학교) 당위원회에서 군사칭호가 중좌인 사람이 나를 데리러 왔었다. 병원에서 태천군관학교에 떠나기 전 성대한 환송모임을 조직하여 주었다. 하여 나의 일생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태천군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훗날 나는 ‘태천군관학교’에서 1년간 공부하다가 다리부상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교육과정을 소화하기가 힘들어 훈련강도가 낮은 강건 종합군관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2년 후 북한군 교도지도국산하에서 지휘관으로 군사복무를 하게 되었다. 그 후 나는 군사훈련과정에 허리와 손이 심하게 다쳐 손가락을 절단하는데 까지 이르러 더는 군사복무를 할 수 없었으므로 군대에서 제대되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질문: 북한 군부에서 5.18광주사건에 참가하였다가 사망한 군인들에 대한 묘비를 세웠다고 하던데 사실인지 말씀해 주세요.

대답: 사실이야. 북한 군부는 광주 사건에 침투하였다가 사망한 군인들의 이름이 적힌 묘비를 북한 평안남도 평원군 원하리에 세웠다. 일반적으로 묘비라는 것은 <죽은 사람의 이름과 죽은 날자, 죽은 원인> 적혀 있지 않나. 묘에 묻힌 사람이 없으니까 이름이나 날자, 원인 같은 것을 밝히지 않았다.

평원군 원하리에 적혀있는 묘비에는 사람의 시신이 없고 5.18광주 사건 때 남한에서 침투하였다가 남한 군인들과 전투에서 싸우다 죽어 북한으로 돌아오지 못하였으니까 이름만 적어 기념비처럼 세운 묘비야. 묘비에는 이름만 적혀 있고 ‘...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 전사들을 조국은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라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다. 일반 사람들은 평원군 원하리에 있는 묘비가 무엇 때문에 죽은 군인들의 묘지인지 모르고 있어.

질문: 남한의 검찰과 경찰조사 기록 자료를 보면 경찰이 4명, 군인이 23명, 민간인이 166명이 광주사건당시 죽은 것으로 확인 됬어요. 신원 미 확인자가 12명이라고 조사기록에 나와 있어요. 북한에서 200명 정도에서 내려왔다 살아 돌아간 인원이 17명밖에 안된다고 하였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어디에 갔다고 생각하세요?

대답: 나는 지휘관이 아니니까 그 내용은 잘 몰라. 대장을 호위하는 전투성원으로 조장이 지시를 주면 그것만 수행하였기 때문에 그 내용은 알 수가 없는 거야. 김일성이나 김정일은 5.18광주사건에 북한군을 침투시킨 조직자이니까 알겠지. 대남연락소 내부 규정에는 전우가 죽으면 흔적을 없애려고 땅에다 묻어 버려. 마지막 남는 사람은 붙잡히게 되면 자폭하게 되어 있어. 만약 전우가 부상당해 대오의 행군에 지장을 준다고 생각되면 죽여서 땅에 묻어버린다.

옷 속에 여러 가지 유형의 작은 물체를 항상 가지고 다니는데 고성능 폭약 3킬로 그람이 터지는 위력과 맞먹는다. 광주사태가 진압되면서 우리 부대는 모두 갈라졌는데 혹시 남한의 산속이나 도시 속에 숨어 있다가 훗날 북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면 남한에 이미 전에 알고 있던 조직선과 연계하여 해외로 탈출했을 수도 있다. 혹시 남한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신분을 세탁하고 사회 각 분야에 잠복하여 지금도 간첩행위를 하고 있을지 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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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명의 맺는말

북한 김일성의 명령을 받고 남파되어 1980년 5월 광주사태에 참가한 조선로동당 중앙당 연락소 전투원의 증언을 이것으로 끝마친다. 필자는 인터뷰한 글을 마감하며 해방 후 대한민국의 잘못된 과거사를 바로 잡아 올바른 국가관과 정체성을 세워주길 국민들에게 부탁드린다.

5.18광주 사태 당시 북한군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난 국군 장병들과 시민들, 경찰들에게, 또한 이 나라를 지키고 있는 국군 장병들과 애국적인 국민들에게 이 글을 삼가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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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ysglmetp 12-07-23 11:32
   
6,25전쟁은  왜 일어났는가 ??

남한에  좌익이  너무 많아서  정세가  안정되지 못하고
지식인들은 마르크스 책을 읽고 환상에 젖어서 공산주의가 되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다 똑같이 잘살게 해준다니
빨갱이 좌익이 되어서  나라 전체가  시끄러웠습니다.

북한에서 김일성 명령받고 남한에서 숨어 지내면서 좌익활동 하던 박헌영이
김일성한테  남한은 온통 좌익이 많고, 공산주의를  좋아하니
지금 전쟁하면  반듯이 승리한다고  김일성에게 다짐하면서
김일성이 6,25 전쟁을 일으킨것 입니다. ( 박헌영 이 이야기는  기록에 나온것 입니다.)

북한은 지금도 호시탐탐 남한 국민들이 친북세력이 되서 빨갱이 집단되기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쉬지않고 남한에 침투하고,  사람들을  쇄뇌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모두  정신차리지 않으면  언제 북한에 먹힐지 모릅니다.
전쟁 안하고도  종북세력으로 통일 시킬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나라불만, 정부불만을  국민들에게 이끌어내서
정부에  반대봉기 들게 만들어서  공산화 시킬려고 합니다.
삼족오m 12-07-23 11:40
   
출처가 지만원....
할 말 없군
태을진인 12-07-23 12:14
   
북괴에서 김일성 기록을 보면 남쪽에서 우리형제가 피를 흘리고 있는데 기강이 이게 뭐냐?라고 호통쳤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코피아난 12-07-23 12:28
   
그 기록좀 봅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태을진인 12-07-23 12:28
   
               
코피아난 12-07-23 12:48
   
그게 북괴에서본 김일성 기록이요?? ㅋㅋㅋ환장한다 여기 가생이 스크랩글말고 당신이본 북괴 기록좀 보자구요
                    
태을진인 12-07-23 12:51
   
왜 당신 입맛에 맞는 자료를 원하죠?북괴가서 찾으시던가요?못믿겠으면 말아요 어짜피 당신은 음모론만 펼거잖아요 뭘 가져다 줘도 ㅋㅋ 상당히 의심의 근거가 있다는 뜻입니다.게다가 북괴간첩한테 살해당한 김일성 직계가족 증언이 있었음 말 다한거 아닌가요? 김선일씨 말하는거임
                         
코피아난 12-07-23 12:53
   
여보세요..(북괴에서 김일성 기록을 보면)<<<당신이쓴 말이야 쓰고도 당신말을 이해못하면 대화가 안되지~~
                         
태을진인 12-07-23 12:55
   
김일성 기록이 맞죠.북괴에서 탈북한 사람들이 증언한거랑 김일성 군부대 내용이니 기록이 맞습니다.우길걸 우기세요 낫놓고 기역자라고 말하면 이게 낫이지 어떻게 기역이냐 라고 말할 인간아
코피아난 12-07-23 13:02
   
북한을 안믿는데 기록은믿어???? 웃긴다 참^^
     
태을진인 12-07-23 13:15
   
북괴는 못믿는데 증언기록은 믿습니다.개정일을 못믿겟다는거죠.거기서 나온 사람들 말을 다 무시할수도 없잖아요?믿을만한 상황근거가 잇다면 재조사할 필요성은 있는거 아닐까요?누가 살인범으로 몰렸는데 복역하다가 진범이 나왔다면 재조사 해야하듯이요
          
코피아난 12-07-23 13:3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이가 뺨을 때린다 그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코피아난 12-07-23 13:38
   
출처 가져오라니까 왜 댓글 지우니 ㅋㅋㅋㅋㅋㅋㅋ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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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게시물 제목에 성적,욕설등 기재하지 마세요. (13) 가생이 08-20 251574
공지 정게 운영원칙 Ver.2018.03.27 (1) 객님 12-03 828890
12077 한글만세님은 보시죠 (69) 기억의습작 10-13 1129
12076 대량간첩설은 신뢰하기가 힘듭니다. (11) 졸려요 10-13 1186
12075 남북간 경협으로 한반도 긴장을 낮춘다? (11) 어흥 10-13 990
12074 우리나라 좌경화가 제일 우려스러운게 (64) 장인의언어 10-13 1497
12073 이번에 북한군 귀순 뉴스 보는데 이런 느낌 안들음? (10) Heizen 10-13 1225
12072 인터넷 검색창 ... (1) 뿍엑스 10-13 1125
12071 nll선은 영토선이 아닌건 맞습니다 (8) 태을진인 10-13 1220
12070 북한 붕괴는 먼 이야기입니다.. (6) 피콜로더듬… 10-13 1215
12069 김종인 "박근혜 공약위원장은 상식 어긋나" 비판 (3) x카이저x 10-13 1246
12068 불법체류자 단속검문 시행 (3) 뿍엑스 10-13 1546
12067 nll에 대한 뉴스와 이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6) x카이저x 10-13 1109
12066 정수장학회 문화방송 지분 30% 및 부산일보 매각 관련 뉴… (2) 위대한도약 10-13 1208
12065 좌좀과 일베충싸움이다면..... (4) 남생각 10-13 1251
12064 박근혜, 문재인이 어깨동무하자 표정이… (6) 위대한도약 10-13 1423
12063 개인적으로 박근혜보다 더 싫은 정치인이 있어요 (9) 호랭이님 10-13 1323
12062 홍사덕이 때문에 맨붕온듯 (7) 가가맨 10-13 1212
12061 NLL 박근혜의 평화수역 발언의 위험성 (1) x카이저x 10-13 1271
12060 nll 뚫리면, 경기도, 인천, 서울은 북한의 밥.. (7) 코로로 10-13 1226
12059 다문화.. (37) 팬더스 10-13 904
12058 이런 영화도 개봉하나보네요 ㅋㅋ (7) 7878 10-13 1208
12057 노무현의 nll 발언을 두고.. (9) 마리아리아 10-13 1074
12056 홍사덕 의원 아쉽군요 (15) 너드 10-13 990
12055 군소대선 후보들 (8) 무명씨9 10-13 967
12054 노무현 NLL (4) 속삭이는비 10-13 1136
12053 英 인터넷 음란 폭력물 차단 서비스 강화 (4) 뿍엑스 10-1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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