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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독재라는 것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니다.
지구 역사상 위대한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독재자였다. 그것이 바로 운명적 역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독재를 미화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역사가 일천하던 시절에 이야기들이다. 한국에서 박정희 시절에는 독재가 그렇게 낮설은 광경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다.
아래 어느 분이 박정희의 쿠테타와 독재에 대해서 지독하게 혹평을 가하는 글을 읽으면서 일견 맞는 말이지만, 일견 틀린 말이기 때문에 나는 조금 난감했던 것이 사실이다. 수구꼴통을이 박정희의 독재마저 미화시킨다고 역정을 내는 것도 사실은 내가 봐도 볼짱 사랍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같이 좌파면서도 박정희의 독재를 옹호해줘야 하는 이유가 몇가지 분명히 있다. 그럼 그게 과연 무엇일까? 독재까지도 허락해야만 하는 이유란 과연 무엇일까?
박정희가 정권을 잡기 전에 한국의 상황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세계 140개국 중에 120권의 최하위 빈민국이였다. 그것도 미국의 식량지원 없이는 국민들이 생존 조차 어려운 국가였다고 봐야 한다. 지금의 아프리카 국가들과 비슷한 처지였던 것이다. 국민소득 70달러의 최빈민국에서 민주주의를 하면 과연 얼마나 멋진 민주주의가 나올 것인가? 자유당 정권이 독재로 무너졌다지만 독재보다는 무능하고 부패때문에 무너진 것이였다. 이어서 들어선 장면정권은 국가를 제대로 이끌만한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나라 자체가 있는지 없는지 혼돈속에서 하루 하루가 끔찍한 고통속에서 지내야만 했다. 이때 혜성처럼 국민을 위해 나타난 사람이 바로 박정희라는 선각자라는 것이다.
박정희가 총칼을 들이대고 권력을 장악했다고는 하지만, 박정희 같이 무혈 쿠테타는 역사상 찾아보기 힘들다. 더욱이 국민들은 이들에게 박수까지 보내줬고, 배고픈 국민들에게 이제는 우리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싹을 보게 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혁명이 아니고 무엇이더란 말인가? 쿠테타는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자신의 권력을 탐했을 때에만 성립된다. 국민이 죽어가는데 가만 있는 놈들이 더 나쁜 놈들이다. 국민을 살리기 위해 누군가 나서야만 했기에 그것을 우리는 혁명이라고 한다.
그 당시 대한민국은 얼마나 지독하게 가난했는가? 보리고개를 차마 못넘기고 죽어가던 군상들...그리고 학비가 없어서 학교를 못다는 사람들..양말이 없어서 맨발에 고무신을 신도 다니던 사람들...양은 그릇이 빵구나면 떼우고 떼워서 써야 하는 군상들..차마 배고파서 자신의 몸뚱아리 하나를 팔아서 동생들 학비를 대주기 위해서 양공주가 되었던 사람들..김치도 담궈먹을 수가 없어 무를 소금에 절여 짠지를 먹던 군상들..동사무소 앞에서 배급쌀을 받어먹던 사람들...6.25 상이군인들이 상처를 이끌고 남의 집 앞에서 구걸하던 시절들..문둥병애 걸려 길거리에서 헤매던 사람들..여름이면 각종 전염병으로 죽어가던 사람들..머리 짤라 가발공장에 팔아서 남편 생일상 차려주던 아낙들..집안의 가재도구를 하나 둘씩 전당포에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들녘에 나가면 배고품에 눈이 핑핑돌고, 물로 허기를 채우면서 "설마 산입에 거미줄 치냐"면서 위로하던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정부는 무엇을 했던가? 그 알량한 것도 권력이라고 정치깡패들이 돌아다니면서 장사꾼들을 괴롭히지 않았던가? 조금 배웠다고 못배운 사람 앞에서 꼴값을 떨면서 권위를 부리지 않았단가? 이런 위정자들을 보고 분노가 일어나야만 "정의"로운 사람이다. 불의를 보고 못본척 하는 인간은 지식인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아마 미국이 아니였다면 북한에게 이 땅을 내줘야 했던 것이다. 국방을 미국에 의존하고, 식량을 외국에 의존하고, 무슨 낮짝으로 국민들을 대면할 수가 있더란 말인가? 그런 지옥을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박정희 처럼 "철의 지도자"가 나와야만 가능할 것이 아니였던가? 민주주의는 나중에 하더라도 일단 지옥부터 벗어나야만 한다. 그래서 나중에 박정희를 죽으라고 욕해도 좋으니 ,일단은 이 사지로 부터 국민들을 구출해줘야만 하는 것이였다.
박정희의 초창기 정치는 아주 간단하다. 미국과 외국에 원조를 받지 않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자립경제"였고, 외국의 국방력을 빌리지 않더라도 외침으로 부터 나라를 지킬 수 있게 하겠다는 "자주국방"이였다. 박정희 초기에 북한은 국민소득이 우리에 비해 거의 3배에 가까운 200달러 국가였다. 국방력은 우리에 비해 무려 10배에 가까웠던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한국은 풍전등화가 같은 하루 하루가 기다릴 뿐이다. 벗어나야만 한다는 강한 의지가 바로 박정희식 독재정치였다. 김신조일당이 청와대 앞까지 와서 총질을 하던 시절이다.
그러던 것이 1972년에 와서 드디어 북한과 남한의 경제와 국방력이 대등한 수준에 이른다. 국민소득 250달러였다. 박정희 정권 10년만에 겨우 이룩한 성과였다. 그 때가 바로 한국이 겨우 자립경제에 기틀을 마련했고, 자주국방의 기조를 성립하던 해였다. 그해 7월 4일 에 남북한 공동성명을 했고 평화 기조가 최초로 시도되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박정희는 "유신"이라는 초법적인 최악의 법을 만들었을까?
바로 허리띠 졸라매던 국민들이 서서히 민주주의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던 시기이다. 배고품에서 겨우 벗어난 국민들이 요구가 여기 저기에서 분출되었고 국민들의 기강은 점점 느슨해졌고, 국민들의 반감이 서서히 증폭되던 시절이다. 자칫잘못하면 그동안 쌓아 놓은 경제성장 마저 송두리체 무니져 나갈 수 있던 위기의식이 박정희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절대 빈곤의 시절에는 모두 함께 일하지만, 상대적 빈곤의 시절에 들어서면 불평분만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 당시가 바로 그렇게 국가의 위기감이 팽대하던 시절이다. 물론 위대한 지도자가 또 나와 박정희 이상의 성과를 이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정은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듯이 박정희는 역사와 정면 승부를 벌이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독선이다. 그러나 박정희가 하고자 하는 의지에 비하면 그 알량한 경제성장은 터무니 없이 미약한 것이였다.그래서 그는 유신을 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유신을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일까? 국가는 경제적 효율성을 극대화 시키는 역활을 했다. 이때 비로서 새마을 운동 같은 1차 산업에서 벗어나 중화학 공업과 국가 기간산업을 집중시키고 제조업 중심으로 극변하던 시절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반기 박정희 정권 11년 보다 유신 이후 7년에 훨씬 경제적 효율성이 컸던 것이다. 국민소득 250달러가 1500달러로 성장했고, 수출은 300억달라에 이르게 된다.
박정희는 어차피 욕먹을 각오를 가지고 정권을 잡았던 사람이다.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가 벌였던 독재는 미화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국민들 입장에서 한번 돌이켜보자. 전국민이 82%가문맹자였던 나라가 5%의 문맹자로 변했다. 평균 수명이 47.9세였던 것이 59세로 변했다. 무려 12년이 늘어난 것이다. 이것은 경제 외적인 소득이다. 국민소득이 75달려였던 나라가 무려 1500달러로 변했다. 무려 20배의 성장이다. 일인당이 아닌 전체 소득으로 보면 인구 증가 1.5이므로 30배에 달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수출 3000불이던 나라가 300억불이라는 1000배의 수출 증가를 보여줬다. 실로 엄청난 것이였다.
만약에 누군가 다시 나와서 18년의 독재를 해서라도 지금의 국민소득 2만달러는 40만달러로 증가 시켜준다면 나는 그를 택할 것이다. 지금의 3000억불 수출을 300조달러 수출로 바뀌게 해준다면 나는 그를 택할 것이다. 독재를 하면 어때..어차피 국민이 행복하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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