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3월 16일 흑인 빈민 지역인 남부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이른바 '두순자사건' 을 집중 보도함으로써,
한국인과 흑인 사이의 인종 갈등을 야기하여 폭동을 악화시켰습니다.
언론공세로써 흑인들의 백인들에 대한 분노를 한국인에게 돌아가도록 한 것.
이날 저녁부터 흑인들은 거리로 뛰쳐나왔고, 초기에 폭동이 일어나면서 경찰력으로도 막을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자.
미 정부는 주방위군 6,000 여명과 연방군 1,000 여명을 투입했습니다.
하지만 진압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미 정부.
주방위군과 연방군이 사태를 장악하기전까지 31명이 사망하고 1,300여명이 부상당했으며 3010명이 연행되었습니다.
LA폭동사건은 근본적으로 백인 주류 사회에 대한 증오의 폭발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