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카시가 전성기를 누리게 된건 미 행정부내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발표를 하고 나서 부터입니다. 그리고 얼마 뒤 57명으로 수정했습니다.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매카시즘 광풍이 불어닥치는데 수백명이 실질적으로 구속되었으며, 그 과정속에서 만명 넘게 미국인들이 직장을 잃게 되었습니다. 많은 경우 단지 조사받는것 만으로 직장에서 쫓겨나고 인생이 파탄났죠. 하지만 대부분은 근거가 희박했습니다.또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도 매카시즘의 표적이 되기도 했습니다.
영화계에서는 삼백명 이상의 배우와 감독, 작가들이 매카시즘의 광풍이 부는 동안 비공식적인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직업을 잃게 되었습니다.
매카시가 미육군을 건들이기 시작하자 그의 몰락은 시작되었습니다. 미육군 안에 공산주의자들과 소련 스파이들이 활개치고 있다는 근거없는 주장을 하고, 청문회에 불려나온 육군 장성들을 모욕하곤 했습니다. 미육군 청문회에서까지 이런 실질적 근거가 없는 주장을 하자, 본격적으로 논박에 들어간 미육군측 변호사들에게 매카시는 완전히 코너에 몰리게 됩니다. 그러자 매카시는 계속되는 근거없는 비난과 협박을 하게 되었고 티비로 시청하던 국민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겁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 매카시가 간첩이라고 고발한 사람들 가운데 몇명이 실제로 간첩임이 드러났습니다. 이것에 대해 당시 막강한 정보력을 가졌던 에드가 후버 국장이 매카시에게 어느정도 정보를 주었다고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가 공개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간첩"이라고 지목한 사람은 160명정도인데 실제로 그 가운데 간첩으로 드러났거나 의심되는 사람은 채 몇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당시 매카시즘에 희생되었던 만명이 넘는 대다수는 무고한 사람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