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충청북도 음성에서 태어나 1963년 충주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충주고 2학년 때 '외국학생의 미국 방문 프로그램(VISTA)'에 선발되어, 3학년 때 미국을 방문하였다. 이때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보고 외교관의 꿈을 더욱 키우게 되었고,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 진학하였다. 1970년 2월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5월 외무부에 들어갔다. 외무부에 재직중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에 유학하여 1985년 4월 행정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72년 주뉴델리 부영사를 시작으로 1976년 주인도대사관의 1등서기관, 1990년 외무부 미주국장, 1992년 외무부 장관 특별보좌관, 1996년 외무부 제1차관보와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 수석비서관, 2000년 외교통상부 차관, 2002년 외교부 본부대사, 2003년 대통령비서실 외교보좌관을 거쳐 2004년 제33대 외교통상부 장관이 되었다.
1993~1994년 제1차 북한 핵위기 때 주미국대사관 정무공사로 재직하면서 한국과 미국 사이의 대북정책을 조율하는 실무 총책 역할을 하였다. 또 1997년 북한 노동당 비서를 지낸 황장엽이 망명할 때 중국과 필리핀을 오가면서 밀사 역할을 하여 망명을 성사시키기도 하였다. 외교통상부 내에서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알려져 있으며, 철두철미한 업무 처리로 정평이 나 있다.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재직중인 2006년 2월 유엔 사무총장직에 출마할 것을 공식 선언하였다. 같은 해 10월 9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단독 후보로 추대되었으며, 14일 유엔 총회에서 공식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공식 임명되었다. 이로써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2007년 1월 1일부터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분의 타임라인대별로 대북정책과 대북정책 실효성과
그동안 탈북자 관리 미비에 따른 외교적 실책에 대해서 UN 관계자들에게 메일이나 편지 보내야될거 같네요
후 진짜 이분이 UN에서 일하면서 우리나라에 역사적 책임도 전가도 필요없는 다문화를 밀어붙이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공헌했다는것은 확실합니다.
후 솔직히 국가 운영하는 방식을 봐도 그렇고 우린 다문화를 할 주제가 안되는데
다문화로 인해서 필수적으로 우리나라의 복지 사각지대에 몰린 사람들의 현실과 다문화 우대정책 그리고 탈북자 외면등을 주제로 내용을 쓰고 보낼때 UN과 관련된 누구한테 보내야할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이분이 UN에 자리잡음으로 인해서 헛된 망상적 가치를 부축이기 때문에 더더욱 문제라고 봅니다.
UN에서 주는 상받은 인물이나 관련 국가부서들을 살펴보면 반드시 다문화와 관련이 있는 인물과 부서들입니다.
지금 다문화를 찬양하는 문화에 이분이 필수적 지지 기반사항을 만들고 법무부나 외교통상부 장관들이
다문화찬양으로 인해 불체자관리가 미비하며 본인도 반XX씨처럼 외국물 먹길 바라며 법적 외교적으로 온건적 대처를 하고있죠
후... 이분이 UN에 계시는건 우리나라의 평화를 위해서도 그 외 반XX씨의 경쟁자나 그 윗라인에게 이 나라의 현실을 알려야 될것 같습니다.
우리는 다문화에게 아무런 역사적 도의적 책임도 없고 우리가 다문화를 실시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으며
난민을 받을 주제도 안된다는걸 왜 반XX씨나 법무부에서는 깨닫지 못하는지 외국에 알려야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써 부끄럽지만 더이상은 우리나라안에서 방법이 없느거 같네요
티@
http://news.sidaesori.co.kr/sub_read.html?uid=1371§ion=section1
2006/09/23 [05:54] ⓒ 시대소리
이런 글이 있었는데 정말로 사실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각국과 각진영의 입장을 공정하게 반영하여야 할 유엔사무총장이 숭미일변도의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에게 돌아갈 경우, 유엔은 갈리총장, 아난 총장으로 이어져 내려온 나름대로의 공정한 기운은 소실되고 영미의 정치적 요구를 충실히 반영하는 괴뢰 사무총장으로 유엔이 전락하게 되는 사태가 전개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