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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4-29 14:54
5.18에 대한 정리.
 글쓴이 : 끄으랏차
조회 : 1,508  



개인적 의견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따지자면 너무 많이 거슬러올라가고 훑어야 하니 그냥 이 글에서는 하나만 짚고 가겠습니다.

먼저 저는 총칼 무장해서 시위하고 뭐 이런거 동의는 안한다는걸 전제합니다만.


먼저 대한민국은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나라입니다.

헌법에 명시가 되어있죠.

5.18 사태당시에 정권을 잡은 세력은 국민의 주권행사에 의해 정상적으로 권한을 얻은게 아닙니다.
군부 쿠데타에 밀실 선거로 정권을 잡은.. 굳이 따지고 들자면 대한민국 헌법에 위배되는 정권입니다.

즉 애초에 정당성이 없는 정권입니다.

과장 좀 보태면 북한이 특수부대 파견해서 정부 및 주요기관 점거하고 행정력을 행사하는것과 
동일한 맥락입니다.

이 경우에 국민의 입장에서는 그 정부는 인정할수 있는 정부가 아닙니다.
이미 총칼로 정권을 탈취한 세력에 대해 똑같이 총칼로 저항했다고 해서 
그게 잘못인거 같지는 않네요.

그게 만약 잘못이라면요.

총칼로 협박해 강제로 한일합병 체결하게 만들고 정권 장악해서 우리나라 지배한
일제에 대해 총칼 들고 일어난 독립군도 잘못이라는 얘기밖에 더 됩니까?


제 의견이 틀렸다라고 생각하신다면.
복잡하게 하실 필요없습니다.

전두환이 정당하게 국민의 선택으로 당선된 대통령이라는걸 입증하시면 됩니다.
전두환이 정당한 대통령이라 당시 국민 절대 다수가 여기에 동의하고 의혹이 없는 경우라면
애초에 제 의견의 전제 자체가 무너지기때문에 간단하게 논파가 됩니다.
그거만 증명하시면 끝납니다.

조금 더 추가하죠.

12.12 사태와 5.17 쿠데타. 그리고 이로 인해 전두환및 군부세력이 실권을 잡는게
모두 국민 동의하에 이뤄진것이라는걸 증명하시면 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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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긴날개 12-04-29 14:59
   
핵심을 짚어주셨네요.

가생이 정게에서는 대체 왜 5.18이 폭도다, 위안부는 자발적이었다 이런 주제까지 논쟁해야 하는지 잘 이해가 안가는데

기본전제, 즉 당시 '반란군'이 누구냐가 핵심입니다.
만약 광주시민이 반란군이라면, 무장해서 궐기한건 잘못이지요. 당연히 진압해야죠.

그런데 당시 반란군은 광주시민이 아니라 전두환 아닌가요?


아랫분들 논리대로라면,
리비아에서도 시민군들은 폭도에 불과하죠. 감히 정부를 상대로 무기고를 털고, 탱크를 몰고 독자적인 정부까지 꾸렸으니까요.
북한에서 주민들이 김정은 왕조에 무장봉기해도 그냥 아랫분든 논리대로라면 폭도에 불과합니다.
반면 김정은 자체를 반란군으로보면 주민들의 무장봉기는 정당한 항쟁이 되겠죠.
하얀유혹 12-04-29 15:08
   
끄으랏차님 찟긴날개님 두분 의견에 동의 합니다.

일개 기업에도 스파이들이 있읍니다.
한나라에 간첩들이 없다면 말이 안되지요.
그렇치만 일부단편적인 부분으로 큰흐름을 왜곡해서 바라보지 않았으면 하네요.
다문화싫어 12-04-29 15:15
   
정말 두분다 논리가 단순하면서 이해가 쉽군요.
5.18에 반감을 가지신 분의 반론이 어떻게 될지 기대가 되는 군요.
짜짜로니 12-04-29 15:16
   
5.18 광주폭동은 폭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제 생각입니다.
     
하얀유혹 12-04-29 15:34
   
님은 무얼먹고 사실까... 문득 생각이 드네요...
짜짜로니님은 짜짜로니먹고 사시나봐요..ㅎㅎㅎ
          
파스포트 12-04-29 20:50
   
나도 로니 님 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대요?    유혹님,    근대 당신은 이슬만 먹고사나요?
한지골똘복 12-04-29 15:19
   
그당시 대통령은 최규하였으니 님이 말한 정당성이 없다는 정권이란건 말이 안되는거 같구요. 북한의 특수부대에 대한 예도 맞지 않는거 같네요. 

하지만 전두환이 그당시에 실권을 잡은건 맞으니 반대쪽 입장에서 보면 반란군이라고 보더라도 틀린말은 아니지요. 그러나 광주에서 일어난 시위도 어떻게 보면 반란군으로 볼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반란군vs반란군의 싸움이죠.

반란군들이 나라전체를 장악하고 있는데 그 반란군들을 전부 없애야만 민주화가 되는데 만약 다 없애고 광주시민들이 장악했다고 가정하였을때 그이후엔 어떻게 될까요? 과연 민주화가 될까요?

그중에 추앙된 한명이 한동안은 나라가 어지럽고 반란군이 재발될수 있다는 명분으로 독재를 할수도 있겠죠.

그당시 최규하는 과연 광주시민이 폭동이던 시위던간에 성공해서 전두환을 몰아내주길 바랬을까요?
     
하얀유혹 12-04-29 15:31
   
ㅎㅎㅎㅎ

실권이 있었던 사람은 전두환씨였구요.실권이 없었던 사람은 최규하씨였어요.
어떻게 실권이 있는사람과 없는사람을 동등하게 볼수 있나요.?
그때당시에 5.18민주화 운동은 최규하씨를 향한운동이 아니라 구테타를 일으킨 전두환씨을 향한 운동이였읍니다.
그리고 가정이란 언제나 수많은 다른결론이 나오는거라서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드네요.
          
한지골똘복 12-04-29 15:54
   
동등하게 본다기보단 정권은 최규하정권이 맞다는거죠. 아무리 최규하가 허수아비고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대통령은 최규하라는 그 명분을 무시할순 없습니다.

그리고 시위하다가 계엄군에 의해 처음 총상을 입은 희생자(부상)는 시민이 맞지만 최초로 죽은 사람은 시위대에 의한 경찰 4명입니다. 그이후 계엄군이 발포해서 시민2명이 사망했구요. 그래서 시위대도 반란군이란 표현을 쓴거구요.

또 많은 민간인사망자 중에서 대다수가 시위대가 쏜 총에 맞아 죽었구요. 뭐 총을 잘 다루지 못하고 오발로 인해 죽었다고도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한동안은 광주를 장악한지 궁금하군요.

여튼 니가 잘했냐 내가 잘했냐를 떠나서 폭동으로 변질된건 사실입니다.
               
하얀유혹 12-04-29 15:58
   
사람옷을 입혔다고 해서 허수아비가 사람이 될순 없읍니다.
난박까 12-04-29 15:19
   
5.18사태당시 대통령이 누구엿죠?최규화 대통령 이 최고 책임자아닌가여?
     
하얀유혹 12-04-29 15:32
   
책임자가 실권이 없다면 이름뿐인 감투일뿐이지요.
서울시민2 12-04-29 15:39
   
여기선 광주폭동 논란이 많네요;
     
하얀유혹 12-04-29 15:41
   
본질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꾸 껍질만 바라보고 이해할려고 해서 말이 많아지는것 같네요.
그리고 광주폭동이 아니라 광주민주화운동 이랍니다.^^
          
서울시민2 12-04-29 15:56
   
민주화운동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까 어떤 분이 올리신 사진에서 군인이 시위대의 차량에 깔려 숨져 있는 사진을 보고 이제는 광주폭동이 민주화운동이었는지도 헛갈리네요@,.@
          
파스포트 12-04-29 20:51
   
폭동 맞는대요?
난박까 12-04-29 15:55
   
1. 38곳의 무기고 탈취는 조직적으로 계획적으로 이루어졌다. 어떻게 우연한 분노가 4시간 동안에 무기고를 털어 무장하겠다는 동시다발적 생각을 가져 올 수 있는가?

2. 트럭과 장비가 동원되어 38곳의 무기고가 동시 다발적으로 털렸다. 그리고 모든 무기와 탄약을 도청으로 집결시켜 조직적으로 무기를 나누고 무장했는데 이게 우연히 벌어졋다는게 가능한가?

3. 경찰서의 무기를 턴사람들의 행보와 무기고를 턴 사람들의 행보는 분명 구분된다. 경찰무기를 턴사람들은 조직적 활동 없이 무기를 반납하거나 구타당했지만 무기고 탈취는 작전을 연상시킬만큼 치밀하고 계획적이다.

4. 전화나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진실이 외면되었다면서 전화와 인터넷도 없는 시절 어떻게 각지에 흩어진 무기고의 무기와 탄약이 도청으로 운반되고 병력이 집결되었는지 배후에서 선동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그러한 일이 우연히 발생하는게 가능한가?

5. 장갑차가 연대나 여단 수준으로 자유롭게 운영되었고 무수한 중장비 사용역시 마찬가지였다. 장갑차는 운전병의 시아를 가리기 때문에 운전을 할 줄 안다고 해도 지휘관과 관측병 탄약병 등의 호흡이 완벽하게 일치되어야 운행이 가능하다. 또한 장갑차를 이용한데 있어서는 연료와 탄약 보급 같은 별도의 보급병과가 필요하다. 아무리 예비군들이 많아도 그런 장갑차와 중장비를 대열을 유지하고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선 수개월의 훈련이 있어야 한다. 장비를 운행지침을 만들고 법규를 통일하고 수신호를 맞추고 이러한 것이 없이 장비를 운영했다가는 사용미숙으로 엄청난 민간인들이 사상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연히 분노에 따라 예비군의 현역당시 보직이나 학생들이 운영했던 장갑차가 마치 수십개월 함꼐 훈련한 군인들 수준처럼 능수능란하여 군인들을 밀어내며 자유롭게 광주시내를 활보했다는 말이 되지 않는다.

6. 광주시민은 주모자 없이 우발적인 무장봉기를 펼쳤는데 동시 다발적인 공격을 통해 향토예비사단과 공수여단을 퇴각시키는 엄청난 작전을 펼쳤다. 그것도 우연히 지휘부 없이.
     
하얀유혹 12-04-29 16:01
   
난박까님....
그때당시 사람이 한두명 뿐이였나요.?
제가 님집을 침입해서 1시간이면 님집에 숨겨놓은것 95%는 찾을수 있어요.
          
난박까 12-04-29 16:16
   
일반 시민들이 무기고 위치를 다안다고요? 하얀유혹님은 그러면 동시다발적으로 군부대의 무기고와 경찰의 무기고위치를 일반시민들이 침입해서 가져 올 수 있다고 말하시는건가여?
               
하얀유혹 12-04-29 16:19
   
ㅎㅎㅎ
그지역사람이라면 그지역에 대해선 님보다 훨~씬 더 많이 알꺼라고 생각이드네요.^^
                    
한지골똘복 12-04-29 16:21
   
그지역이라고 무기고 안다고 하는건 진짜 오바인듯.
                         
하얀유혹 12-04-29 16:25
   
그지역이 태평양만큼 넓습니까.?
전 님이 오버인듯...
그지역에 대해 예전부터 입으로 전해지는 정보도 많이 쌓였을테고 그지역만큼
그곳에 사는사람들보다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사람이 있을까요.?
                         
한지골똘복 12-04-29 16:30
   
무기고를 누가 입에서 입으로 전합니까? 정규군으로 38곳 무기고 4시간만에 털라고 해도 힘이 드는데 일반 시민이 무기고 위치 정확히 알고 그렇게 터는게 말이 되나요?

일단 님 지역에 있는 경찰서 단한곳만이라도 무기고 위치를 알아보세요. 어디서 듣던 누구한테 듣던간에 한달안에 한곳이라도 한번 알아보세요. 그럼 님 말 인정해 드릴게요.
          
난박까 12-04-29 16:23
   
거기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탈북자 증언도 있으니
http://blog.daum.net/sionvoice/13155024
               
난박까 12-04-29 16:26
   
그리고 5월  18일날 일반인들이 정말로 군인들의 총에 맞고 죽었나여?
임신부를 군인이 총검으로 찔려서 죽였다 카더라 학생머리 가죽 벗겼다 카더라
카더라라가 5월 18일날 대대적으로 광주에서 퍼졌죠
               
하얀유혹 12-04-29 16:42
   
모범시민이시네요.
정부는 님같은 시민을 좋아라 합니다.

처음에 글을 썻듯이 간첩들의 활동을 부정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큰틀에서 바라보셨으면 하네요.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목소리는
구테타를 일으킨 장본인들을 향한 목소리 였다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후아앙 12-04-29 16:04
   
광주사람들 원한이 깊은거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걸풀데가 없으니까 어느한곳을 공격하는것두 알구요.
그리고 광주사태 전두환이 잘못한거 맞지만 석연찮은 구석이 꽤 있습니다. 여튼 결론은  정치인들한테 지역감정 이용 당하는건 진짜 미련하다고생각합니다. 저는 경상도라고해서 한당을 찍어본적도 없고 . 사람보고 다찍었지요.
그만좀 합시다. 같은 나라구석끼리 언제까지 전라도 경상도할겁니까. 내부로 무너지는게 제일 치명적입니다.
대표적으로 중국이 한 예구요. 종북세력 있는거 아시면.. 이거부터 해결해보세요.. 얘들 선동하는거부터 해결하고 진지하게 얘기해봅시다. 솔직히 저도 국방비 아깝습니다.  그렇다고 뻔히 보이는 종북세력 냅두고 해군기지 를 어떻게 반대를 합니까? 솔직히 현정부 많이 해먹는거 뻔히 압니다. 근데 야당 보면 구리구리한게 너무 많이 보입니다. 왜 밥을 떠먹여줘도 못먹는지 ㅋㅋ 국민들 찍을데가 없어서 이번에 새누리당 찍은 건 아시는지?
     
하얀유혹 12-04-29 16:09
   
당사자가 아니면 충분히 이해한다는말 그렇게 쉽게 할수 있는말 아닙니다.
그리고 주제와 관련없는말은 게시판에 따로 해주셧으면 하네요.
난박까 12-04-29 16:35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계엄령 선포할떄 당시
10.26 이후의 권력공백기를 맞이하여 국민은 북한의 남침을 가장 걱정했습니다.

실제로 김일성은 11월 3호 청사에서 남한에 전민봉기를 유도하라는 비밀지령을 내렸고, 이어서 12월20일에는 남조선에 ‘신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으니 인민무력부는 신호만 떨어지면 즉각 출동할 수 있도록 24시간 가동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존재하지도 않던 ‘신군부’라는 말은 이때 김일성이 최초로 사용한 단어였죠.

4월 21일, 사북탄광 노동폭력사태가 발생하자 김일성은 노동자를 포함한 전 계급이 들고 일어나 전민봉기를 일으키라고 간첩들에 지시했습니다.

1980년 3월부터 5.18직전까지 색출한 간첩사건만 7건, 남침징후 첩보 5건에 이어 5월 10일에는 일본내각으로부터 북한이 남침을 결정했다는 정보까지 입수되어 정부와 군은 바짝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안보에는 관심조차 없는 3김시대의 정치권과 재야세력으로 불리는 불순세력들은 때가 왔다며 최규하 주도의 과도정부를 유신잔당이라 몰아치면서 즉시 퇴진하라며 압박을 가했고, 이에 최규하 정부는 연내에 헌법개정을 마치는 대로 정권을 이양할 것을 수차 약속하면서 재야세력이 요구하는 대로 학원자유화를 허락했고, 2월 29일에는 윤보선, 김대중, 지학순 등 긴급조치 위반자 687명에 대해 사면-복권을 단행하는 등 유화조치들을 취했습니다.

재야세력이 말하는 이른바 ‘서울의 봄’, 신나는 계절이었던 것이죠. 김종필은 공화당, 김영삼은 신민당을 이끌고 있었지만 김대중은 신민당에서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여 뛰쳐나와 학생세력과 노동자세력을 이끌어온 재야세력을 결집시켜 ‘국민연합’이라는 사실상의 혁명지휘부를 결성하고 학생과 노동자들을 선동하면서 폭력시위를 지휘하기 시작했습니다.

4월 하순부터 시작된 대학생 시위는 5월에 접어들면서 전국 규모로 확산됐고 이에 고무된 김대중은 5월7일, 제1차 민주화촉진국민선언문을 발표하여 최규하 정부의 즉각 퇴진-전국내각구성 등의 요구조건을 내걸며 정부를 압박했고, 학생 등을 향해서는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김재규도 김주열이나 김상진 못지않은 애국충신”이라며 과격시위를 선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김대중은 4월 10일, 5월 1일, 5월 10일 3회에 걸쳐 북악파크에서 문익환, 예춘호, 장기표, 심재권 등 이른바 김대중내란음모 집단을 이끌고 전국 폭력시위에 의한 국가전복 계획을 수립하고 김대중의 혁명내각을 작성까지 했다고 합니다.

5월15일은 서울역에 10만 시위대가 모여 급기야 버스로 시위를 막던 경찰을 깔아 죽이는 정도에 이르렀고, 이 때문에 당시 내무장관은 소요진압이 경찰의 범위를 넘는다며 정부에 계엄군의 개입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서울역 시위에 극도로 고무된 김대중은 5월 16일, 제2차 민주화촉진국민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5월 22일을 기하여 군인, 경찰을 포함한 전국의 무든 국민은 검은 리본을 달고 전국적으로 봉기하여 정부에 저항할 것이라는 최후통첩과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정부가 전복되고, 국가가 혼란에 빠져 남침조건을 마련하도록 해줄 것인가, 아니면 김대중이 이끄는 재야세력과 이들의 조종을 받는 복학생 조직을 분쇄할 것인가! 최규하 정부는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이러한 위기를 맞이한 정부의 선택이 바로 5.17 조치였던 것이죠.

5월17일,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긴급히 소집하고, 10.26 이후 선포됐던 지역비상계엄(제주도 제외)을 전국계엄으로 확대하고 5.18일 새벽 2시를 기해 전국 136개 국가시설을 보호하고 31개 주요 대학을 점령하기 위해 25,000명의 계엄군을 배치하는 한편, 5.17 자정을 기해 이른바 김대중 내각을 구상했던 김대중, 김상현 등 24명의 내란음모자들을 체포하고 학생 주동자들을 구속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최규하 정부와 계엄당국이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전국은 무법천지가 됐을 것이고, 북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북한군은 제2의 6.25남침을 시도했을 수도 있다고 보입니다...

---> 당시의 민주주의에 대한 요청은 최규하 대통령의 이행약속에도 불과하고 너무 조급했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시위대에 의해 경찰이 깔려죽는 일까지 벌어지는데 과연 정부가 그냥 가만히 있어야 했을까요?

잠시 유보된 민주주의는 불편을 초래하겠지만, 무너진 국가 안보는 전쟁을 유발할 수 있고 국가위기라는 최악의 소용돌이로 몰고 갈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부분을 통치자가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계엄조치와 국회 해산이 결국 전두환 등의 신군부에 의한 정권장악에 유리하게 작용을 했다고는 봅니다...

그런데 이런 결과도 당시 정국을 주도하는 서로 대립적인 입장에서 올 수 있는 정치역학적인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물론 6.10항쟁은 국민들의 군부독재 타도와 직선제 개헌을 위한 요구와 시대적 요청을 묵살 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집권세력이 굴복한 거죠...

제가 민주화에 대한 요청을 일방적으로 평가절하할 생각은 없습니다...하지만 민주화도 국가안보를 고려해야 합니다...국가가 없다면 민주주의는 생각도 할 수 없습니다...따라서 급진적 모험주의가 100% 옳을 수만은 없으며, 특히 민중봉기를 유도해 민주화를 실현한다는 생각도 그것이 통제되지 않았을 때의 비극을 생각한다면 결코 올바른 방식이 아닙니다....

님께 간단하게 질문하죠...탈북자들이 증거 하나 없이 떠든다는 게 어떤 근거로 말씀하시는지 그 근거를 말씀해 보시죠...
난박까 12-04-29 16:36
   
이건 전두환 대통령이 나중에 검찰조사 받을때 나온 내용

님께서 거의 단정적으로 광주5.18은 전두환 작품이다 이렇게 주장하시는데, 이와 관련하여 전두환이 검찰조사에 대한 답변서를 제출한 적이 있습니다...물론 님은 안 믿는다 하겠지만, 그래도 일부 내용은 당시의 기록문서와 대조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참고하시길.....

1. 광주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의 광주상황에 대하여 파악된 내용은 어떠하였으며, 광주사태가 발생한 것은 언제, 어떤 경로를 통해 처음 알았는지, 그후 광주사태의 상황은 어떻게 파악하였는지.

▲합동수사본부는 자체적인 국내정세 정보 수집체제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치안본부로부터 학원소요사태 등 국내정세정보를 입수하고 있었음. 따라서 광주지역 상황도 치안본부의 국내정세보고에 의하여 파악하고 있었음.

▲1980년 5월21일 계엄군과 경찰이 광주시를 전면 철수한 이후부터는 치안본부의 정세보고의 부족으로 광주지역의 정확한 상황파악이 불가능하였음.

2. 당시 주영복 국방장관, 이희성 계엄사령관 등 군 최고 지휘부와는 어떤 방법으로 대책 등을 협의하거나 논의하였으며, 최규하 대통령과는 어떤 방법으로 광주사태에 대한 대책을 협의하거나 논의하였는지.

▲군이 군사작전을 수행하는 경우 작전계획의 수립, 작전부대에 대한 작전 지휘등 군사조치는 군의 전권사항이므로 군통수체계에 있지 않은 어떠한 기관도 이에 관여할 수 없음. 또한 군사작전에 관련된 전투정보의 모집 ·분석도 일반정보기관(중앙정보부와 보안사령부)이 아닌 군자체의 작전 및 정보기관(작전참모부와 정보참모부')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임. 따라서 광주사태기간 중 군통수체계상에 있지 않았던 중앙정보부장서리나 보안사령관은 소요진압작전에 관련된 군사조치 사항에 대하여 주영복 국방장관이나 이희성 계엄사령관과 대책을 논의하거나 협의를 한 사실 없으며 전투정보도 모집 분석한 바가 없었음,

▲군이 군사작전을 하는 경우 일반정보기관의 임무는 전투정보가 아닌 국내 ·외 일반정세를 모집, 군에 제공하여 군사작전에 참고토록 하는 데 국한되어 있음. 따라서 「광주사태」 기간 중 중앙정보부는 북한의 군사동향에 대한 정세판단에 전념하였음. 북한은 '광주사태'가 발생한 1980년 5월18일에 전군연대장급 이상 전원회의를 소집하여 유사시 군사행동에 돌입할 것을 결의하였으며 동월 19일에는-북한전역에서 무기검열, 대피소 점검, 군수동권검열을 실시하는 등 전쟁준비계획을 총점검하였음. 그리고 「광주사태」가 폭동단계에 이른 동월 21일에는 전군에 비상태세를 발령하고 김일성이 전군에 전투태세 돌입을 지시하였음. 전두환 당시 중앙정보부장서리는 북한의 이와 같은 군사동향을 최규하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한편 주영복 국방장관에게 통보하여, 미국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항공모함과 미7함대를 한국 해역에 증파하여 대북경계에 임하도록 조치하였음. 또한 합동수사본부는 충앙정보부, 보안사령부, 검찰등 전수사력을 '광주사태'를 틈탄 북한간첩의 침투 및 국내 불순분자의 사회혼란 조성 행위를 차단하는 데 집중하였음. 그 결과 광주사태를 무장폭동으로 유도하라는 지령을 받고 남파된 북한간첩 이창룡(당시 46세, 평양시 거주)을 검거하였음. 보안사령부가 「광주사태」와 관련하여 취한 조치는 없었음.

▲전두환 당시 중앙정보부장서리는 광주사태 기간 중 최규하 대통령에게 광주를 직접 방문하여 정부가 소요사태 관련자를 관대하게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선언하고 광주시민이 자율적으로 사태를 해결하도록 호소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정책건의를 하였음, 최규하 대통령은 전두환 당시 중앙정보부장서리의 정책건의를 받아 들여 1980년 5월26일 광주를 방문하여 담화문을 발표하였음.

3.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5월18일 오후 2시경 다른 지역에는 시위가 없는데 광주에만 시위가 있느냐, 빨리 진압하라는 명령을 진종채 2근사령관과 윤흥정 전교사 사령관에게 내렸다는데, 이희성 사령관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과 상의하여 소요 진압 명령을 내린 것이 아닌지.

▲전항 답변 참조.

▲전두환 당시 중앙정보부장서리겸 보안사령관은 광주소요진압 명령과 관련하여 이희성 계엄사령관과 상의한 사실이 없음.

4. 5월18일 광주에 11공수여단을 증파하기로 결정하였는데 그러한 곁정에는 어떻게 관여 하였는지.

▲제2항 답변 참조.

▲계엄군과 광주출동은 계엄사령부의 작전명령에 따라 이루어진 것임.

▲전두환 당시 중앙정보부장서리겸 보안사령관은 특전부대와 20사단 병력의 광주출동에 관여하거나 협의를 받은 사실이 없음.

5. 5월19일 계엄사령부에서 광주사태에 대한 대책회의가 열린 일이 있는데 참석한 사실이 있는지, 있다면 당시 어떤 내용이 논의되었는지.

▲전두환 당시 중앙정보부장서리겸 보안사령관은 1980년 5월19일 계엄사령부 대책회의에 참석한 사실이 없음.

6. 5월19일 당시 광주에 3공수여단을 증파하기로 결정하였는데, 그 결정에 어떻게 관여하였는지.

▲제2항 및 제4항 답변 참조.

7. 5월20일 당시 서울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20·사단을 광주에 또다시 증파하기로 결정하였는데, 그 결정에는 어떻게 관여 하였는지. 광주에 처음 투입되었던 7공수 여단 2개 대대 이외에 11공수여단, 3공수 여단, 20사단을 축차적으로 투입하였는데, 현지 지휘관인 31사단장이나 전교사 사령관으로부터 증파 요청을 받은 바 없음에도 투입한 이유는 무엇인지.

▲제2항 및 제4항 답변 참조.

8, 5일20일 밤 광주역에 서 3공수여단 병력이 시위대와 공방을 벌이다가 차량시위 등으로 밀리게 되자 시위대에 발포하여 사상자가 발생하였다는 주장이 있는데, 5월20일 광주역 상황과 관련하여 윤흥정 당시 전교사사령관에 의하면, 광주역은 전교사에서 약 4-5km정도 떨어져 있어 야간에는 총성을 들을 수 있는 거리인데 5월 20일 저녁 사령관실 밖에 나가 있다가 총성을 듣고 참모에게 상황을 확인한 결과 시민들이 과격하게 나오니까 공포를 쏜것이라는 보고를 받았다는데, 5월20일 광주역 상황에 대하여 보고 받았다면 보고 내용은 어떠하였으며, 그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보안사령부는 5월20일 자위권 발동사태에 대하여 보고를 받거나 상황을 인지한 사실이 없음.

9. 5월20일 오후 12시경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윤흥정 전교사사령관으로부터 공수부대의 시외곽 철수를 건의 받았다고 하려는데, 그러한 사실을 보고 받아 알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면 그에 대하여 어떤 지시나 조치를 하였는지.

▲보고 받은 사실이 없음.
난박까 12-04-29 16:38
   
10. 5월21일 오후 7시경 계엄사령관실에서 계엄사 대책회의가 열러 ① 계엄군을 광주시내로부터 외곽으로 전환 재배치, ② 자위권 발동, ③ 1개 연대를 추가 투입, ④ 전투력 공백 보전책으로 2개 훈련단 훈련동원 소집, ⑤ 폭도 소탕작전은 5월23일 이후에 의명실시, ⑥ 경계 ·강화 조치를 결정하였다는데, 그 회의에 참석하거나 회의결과를 보고 받은 사실이 있는지, 있다면 그에 대하여 어떤 지시나 조치를 하였는지.

▲5월21일 19시에 열린 계엄사 대책회의에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참석한 사실이 없음.

11. 5월21일 오후 1시경 11공수여단 병력이 전남도청 앞에서 대치하고 있던 시위대에 발포하였고 밭포로 인하여 시민 다수가 사망하였는데, 그에 대하여 언제, 누구로부터 처음 보고 받았는지, 보고내용은 어떠하였으며, 그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하고 무슨 조치를 취했는지.

▲보안사령부는 5월21일 자위권 발동사태를 보고 받거나 상황을 인지한 사실이 없음.

l2. 전남도청 앞에서 발포가 행해진 이후에 계엄사령관이 자위권 보유를 천명하였는데, 그 경위는 어떠하였으며, 자위권 보유를 천명한 배경과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계엄사령관의 조치사항이며 자위권 발동문제에 전두환 당시 중앙정보부장서리겸 보안사령관이 관여하거나 협의를 받은 사실이 없음.

13. 계엄사령관의 자위권 보유 천명에 관하여 조언을 하거나 관여한 사실이 있는지.

▲전항 답변 참조.

14. 5월21일 3공수여단 병력이 전남대 앞에서 시위대에 발포하여 사상자가 발생하였다는 주장이 있는데, 5월21일 전남대 상황을 보고 받았는지, 보고 내용은 어떠하였으며, 그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하고 무슨 조치를 취했는지.

▲전두환 당시 중앙정보부장서리겸 보안사령관은 5월21일 3공수여단의 자위권 발동사태에 대하여 보고를 받거나 상황파악을 한 사실이 없음.

15. 위와 같이 광주사태가 진행 되는 동안 정호용 특전사령관이 현지에 수차례 내려갔는데 정호을 특전사령관과는 언제,어떤 경위로 광주상황을 의논하고 대책을 협의하였는지.

▲광주소요사태 진압작전 기간 중 전두환 당시 중앙정보부장서리겸 보안사령관인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을 만난 것은 1980년 5월25일 단 한번 뿐이었으며, 그 외에는 양인 간에 어떠한 접촉이나 대화가 없었음.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이 1980년 5월25일에 전두환 당시 중앙정보부장서리겸 보안사령관을 방문한 것은 광주에 출동한 특전사 병력이 작전수행상 필요한 편의복(평복)과 가발을 지원 요청하기 위한 것이었음.

▲광주사태와 관련하여 현지 31사단장이나 윤흥정 전교사사령관은 형식적인 지휘계통에 있었을 뿐이고, 실질적으로는 광주 현지의 보안부대와 광주를 방문한 정호용 특전사령관의 보고를 받은 이른바 「신군부 세력」이 대책을 협의하여 발포명령 등 작전지휘를 하였다는 주장은 광주사태를 정치 쟁점화하려는 일부인사에 의하여 조작된 거짓말임. 전두환 당시 중앙정보부장서리겸 보안사령관은 「광주사태」기간 중 출동 계엄군에 대한 작전지휘를 한 바도 없고 발포명령을 내린 사실도 없었음.

16. 5월21일 광주시내에 있던 계엄군을 시외곽으로 철수하도록 결정한 경위는 어떠하며, 그 결정에 어떻게 관여하였는지.

▲계엄사령부의 조치사항이며 보안사령부는 계엄군 철수문제의 결정에 관여하거나 계엄사령부와 협의한 사실이 없음.

17. 5월21일 오후 국방장관실에서 주영복 국방장관, 이희성 계엄사령관, 진종채 2군사령관, 장도영 보안사 보안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자위권 발동 등에 대해 논의한 사실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 논의된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정도영 보안처장에 의하면, 보안사령관을 대신하여 참석했는데 그 자리에서 진종채 2군사령관이 광주상황에 대해 보고하고 이어 자위권 발동 문제가 논의되었다는데 어떠한지, 그때 보안처장을 통해 어떤 의견을 표명하였는지.

▲정도영 보안사령부 보안처장은 국방부의 지시에 따라 1980년 5월21일 오후 5시경에 열린 「광주사태」 대책회의에 배석하였음. 동 회의에는 국방장관, 합참의장, 3 군 참모총장, 2군 사령관이 참석하였고 정도영 보안처장을 포함한 국방부와 각군의 계엄관계관이 다수 배석하였음. 대책회의에서는 진종채 2군사령관이 광주상황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며 계엄군의 광주시로부터의 철수문제가 논의되었음,

▲정도영 보안처장은 「광주사태」 대책회의의 배석자에 불과하였으므로, 회의 과정에서 어떠한 의견도 개진한 바 없음.

▲정도영 보안처장은 회의 종료 후 보안사령관에게 회의결과를 보고하였음. 회의 결과에 대한 보안사령관의 지시 또는 조치는 없었음.

18. 5월21일 전교사사령관을 윤흥정 장군에서 소준열 장군으로 전격교체한 결의는 어떠하며, 그 결정에 어떻게 관여하였는지, 윤흥정 장군이 광주사태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했기 때문이 아닌지, 당시 황영시 참모차장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과 협의하여 교체 결정을 하였다는데 사실인지.

▲전두환· 당시 증앙정보부장서리는 1980년 5월19일경 청와대로부터 군의 3성 장군 1명을 개각에 포함시킬 계획이니 군과 협의하여 추천하여 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에게 이 사실을 통고하였으며 이희성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윤흥정 장군출 추천받아 청와대에 보고하였음.

▲전두환 당시 중앙정보부장서리지는 이희성 계엄사정관이 윤흥정 장군을 추천한 배경과 경위를 알지 못함.

19. 5월21일 계엄군이 광주 외곽으로 철수한 이후 수차례 계엄군간의 오인사격이 있었는데, 보고를 받았는지, 왜 그와 같은 오인사격이 발생한 것인지, 이는 지휘계통이 2원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그러한지,

▲전두환 당시 중앙정보부장서리겸 보안사령관은 계엄군 오인사격 사태를 보고받은 바 없음.

▲계엄군간의 오인사격 사태는 전투상황이므로 보안사령부나 중앙정보부에는 보고되지 않음.

2D. 80년 5월27일 전남도청 및 광주시내 재진입 작전(충정작전)을 결정한 경위는 어떠한지, 그 결정에 어떻게 관여하였는지, 5월25일 오전 11시경 국방장관실에서 진압작전을 5월27일 오전 0시1분 이후 실시할 것을 결정할 때 회의에 참석하였다는데 사실인지.

▲「상무충정작전계획의 입안 경위」 참조.

▲상무충정 작전의 개시 일자를 1980년 5월27일 오전 0시1분 이후로 한 것은 주영복 국방장관의 결정에 의한 것인.

▲1980년 5월25일 국방장관실에서 주영복 국방장관, 유병현 합참의장, 3군총장, 연합사부사령관 등이 참석한 간담회가 있었는데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 국방부장관의 요청으로 동간담회에 배석하였음(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국방회의에 배석한 것은 이 회의 한번 뿐이었음). 간담회에서는 육군본부가 수립한 상무충정작전이 시행되는 경우 북한의 군사동향 등 국내 ·외 관련 정세에 대한 검토를 하였음. 그러나 상무충정작전에 대한 논의는 없었음.

21. 광주사태 기간 동안 광주 현지를 방문한 일이 있는지, 있다면 언제, 어떤 방법으로 광주에 갔으며, 현지에서 누구를 만나 어떤 일을 하였는지.

▲전두환 당시 중앙정보부장서리겸 보안사령관은 광주를 방문한 사실이 없음.
난박까 12-04-29 16:39
   
그리고 전두환대통령이 처음부터 혁명을 시작한건 아닙니다.
혁명이라는 진단부터가 잘못됐습니다.
전두환이 군사반란 혹은 혁명을 했다고 하면
대한민국 국호가 바뀌어야 맞는 것이죠
김재규가 김계원 정승화와 함께 대통령 시해후
불법적인 계엄선포준비 작업을 진행했지요.
정승화의 직속상관은 국방부 장관 노재현이었습니다.
김재규의 명령을 받들 이유가 없는것이고
김재규가 계엄선포 준비를 하라는 불법적인 계엄준비를
할려면 정승화 역시 쿠데타를 일으킬 마음이 있었거나
동조할 마음이 있었던 것이었고 실제 정승화는
김재규의 명대로 불법적인 계엄선포준비 작업을 하였으며
이는 정승화가 범죄인 이었으나
최규하 국무위원들이 이를 감지하지 못하여
부득이 범죄자 정승화는 계엄사령관이 됩니다.
이후 전두환은 김재규 체포후 정승화의 범죄사실 부분을
알게 되어 체포하려 하였으나 막강한 정승화는 계엄사령관이
되어잇었지요.
이것이 12.12가 일어나게된 이유였습니다.
즉 전두환은 적법한 법절차에 의해 정승화를 체포한것입니다.
범죄자 정승화를 체포하지 않아야 한다는
논리가 어떻게 성립되는지
이를 진실인양 퍼트리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토박이 12-04-29 22:31
   
소설을 써라...

그러면 최규하는 왜 하야(사임) 시키고 전두환이가 대통령이 된건가?  8월 사임 , 9월 대통령추임
그리고 정계 인사 들은 외 잡아들인것인가, 국회는 외 점거 햇는가?
전두환이가 흑심이 없었다면 최규하 대통력이 지속됬을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대통령 승인없이 참모총장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 정병주 특수전사령부 사령관, 장태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등을 체포 했다는게 말이 되는 일인가?
소설좀 그만 쓰시오 12.12 군사반란 때부터 계획된거란 말이오...  골수 님아...  정말 구역질 난다...

이양반아 소설을 쓸라면 역사를 제대로 알고 쓰써라 ..
하얀유혹 12-04-29 16:49
   
정부는 난박까님같은 시민을 좋아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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