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독일에 가있는 대한민국의 광부들을 격려하러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의 울창한 산림에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당시 대한민국은 전쟁과, 무분별한 산림훼손으로 민둥산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귀국하자마자 산림녹화에 수많은 지시를 내렷지만
정부가 소극적 태도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유신을 맞아 ‘국토녹화 완수 10*** 계획’을 발표해 치산녹화에 더욱 박차를 가했고 행정력 강화를 위해 소속 부처를 농림부에서 내무부로 변경하는 강력한 조치를 취하엿습니다.
박통은 "우리산이 푸르르게 되기 전에는 독일을 가지 않겟다" 고 할 정도로 이 그린사업에
열정을 솓았습니다.
그에 비에 북한은 아직도 민둥산인곳이 많습니다.
치산녹화
산림법 제정(1961. 12. 27)
국토녹화 촉진에 관한 임시조치법 공포(1963. 2. 8)
치산 녹화 7*** 계획(1965~1971) 성안(1965. 4. 1)
산림청 개청(1967. 1. 9)
수계별 산림복구종합계획(1967~1976) 확정
치산녹화사업 10*** 계획 확정 발표(1973. 3. 10)
영일지구 사방사업(1973~1977)
지리산, 가야산, 덕유산일대를 자연학습도장으로 개발 결정(1977. 1. 18)
자연보호에 대한 전 국민운동의 전개를 위해 민간단체를 조직하여 운영하라고 관계부서에 지시(1977. 10. 5)
육림의 날 선포(1977. 10. 7)
자연보호협의회 창립총회(1977. 10. 28)
자연보호 범국민궐기대회에 참석하여 자연을 보호하는 것은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1977. 11. 5)
서울 미아1동 자연보호회와 어머니회 회원들과 우이동 등산로에서 자연보호운동 전개(1978. 9. 23)
자연보호헌장 선포(1978. 10. 5)
청와대에서 자연보호 회의 주재(1978. 10. 13)
북한산 계곡에서 비서실 직원들과 자연보호운동 실시(1979. 10. 8)
제2차 치산녹화 10*** 계획 확정(1979년)
일부 / 이하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