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네거티브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4·11 총선을 앞둔 여야의 선거운동이 그렇다. 여러 사실 중에서 상대방의 흠집이나 약점을 집중 부각시키거나,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며 공격하는 네거티브가 대세다. 유권자들에게 서로 ‘뭘 하겠다’고 정책을 제시하는 ‘기대의 경쟁’은 뒷전이다. 대신 ‘상대방은 나쁘다’며 분노를 자극하는 ‘선악(善惡)의 대결’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이다.
여·야, 청와대는 불법사찰에 대한 전·현 정권의 책임을 따지는 ‘삼각공방’을 닷새째 이어가고 있다. 진상 규명보다는 총선 전 특별수사본부냐, 총선 후 특별검사냐를 둘러싼 정치 공방이 뜨겁다. 2007년 대선 당시 도곡동 땅·BBK 수사와 이명박 당선인 특검으로 이어진 ‘정치의 사법화’가 되풀이된 셈이다.
지난달 30일 사찰 문건을 폭로한 민주통합당은 이를 총선 호재로 판단하고 연일 공세다. 박선숙 사무총장은 3일 “불법사찰은 본질적으로 TK(대구·경북) 특정 지역과 특권 반칙 세력의 조직적 범죄행위”라고 비난했다. 또 박영선 의원은 국가정보원·기무사령부의 관여 의혹도 제기했다. 하지만 그가 근거로 든 원충연(구속 기소)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조사관의 수첩은 2010년 11월 언론에 108쪽 정도 공개된 바 있다. 재탕식 폭로가 된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불법사찰을 자행한 정권이 문제지만, 선거를 앞두고 야권의 전방위 폭로가 결합돼 파문이 자극적으로 증폭되고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도 네거티브 폭로전에 나섰다. 이날은 ‘나꼼수’ 진행자인 민주당 김용민(서울 노원갑) 후보가 2004~2005년 출연한 인터넷 성인방송을 표적으로 삼았다. 장덕상 부대변인은 “김용민 후보가 테러 대처 방법이라며 ‘미국에 유영철을 풀어 부시·럼즈펠드·라이스를 아예 강간해 죽이자’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방송 3사 주말 특집으로 포르노를 상영하자’ 등 막말을 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김 후보의 글로 옮기기 어려운 성행위 묘사 발언도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김 후보는 트위터에 “옳지 않은 발언을 한 것에 대해서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또 새누리당 강요식(구로을) 후보는 박영선 의원의 가족을 거론했다. 그는 “박 후보의 남편은 회원권 가격이 7500만원인 서울클럽의 회장이며, 아들은 미국 시민권자로 연간 학비 3000만원인 외국인 학교 초등과정을 졸업했다”며 “박 후보 본인과 가족은 1% 특권층이면서도 서민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이 네거티브 공세에 기운 건 당장 효과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해명이나 검증의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몰아붙여 흠집을 낼 수 있다는 거다. 자극적인 말에 솔깃해 하는 유권자들도 적잖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유권자들은 인물과 공약을 검증할 기회를 원천봉쇄 당하는 셈이다. 장훈(정치학) 중앙대 교수는 “우리 선거문화가 자극적인 ‘과거 캐기’를 반복하는 과거지향적 캠페인에 매몰돼 있다”고 말했다.
그뿐이 아니다. 여야의 공천 과정에서 여론조사 조작, 계파 간 나눠먹기, 무자격자 공천 등이 확인됐다. 국민경선 등으로 정당의 외연을 넓히겠다던 여야는 스스로 장벽을 높임으로써 유권자의 선택권을 제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