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한번 작성해봐야지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글이 길어질 것 같고 여건도 좋지않고
(무엇보다 귀찮고;) 해서 미루고 미루다가...
새벽에 문득 아 한번 써볼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찾아왔습니다(낄낄)
아무래도 역사적인 관점으로 접근을 하려 하니 동아시아 게시판에 올리는 것이 좋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만, 대만의 반한감정 자체가 정치적으로 이용이 되고 그것이 곧 국민정서가 되어
한국에 사사건건 말도 안되는 날조로 시비를 거는 근본적 문제가 되고있다 보니 정치 게시판에 올리는 것도
게시판 성격에 큰 위배가 되는 것은 아니리란 생각이 들어 이곳에 씁니다.(ㅋ)
우선 대만의 반한감정의 뿌리를 찾아가면 2차 세계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1941년.
이때는 나치당이 독일을 장악하고 폴란드를 집어삼킨 후, 프랑스를 거쳐 유럽대륙을 전화로 몰아가던 시기입니다.
이때까지는 유럽에 한정된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1941년 12월 8일 일본이 하와이를 공습하자 미국이 참전결정을 내리고 미국 본토 전체의 산업시설을
군수산업화 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흔히 밴드 오브 브라더스라고 알고있는 미국 공수부대도 이때 만들어집니다. 그리하여 유럽대륙+미국+아시아 전체가 전쟁의 포화에 휘말리게 되는 본격적인 2차 세계대전의 막이 오릅니다.
2차대전은 잘 아실테니 스킵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미국을 포함한 연합군이 독일을 제패한 시점에서 중국과 전쟁중이던 일본을 미국과 소련이 연합으로 공격하기로 합의합니다.
중국은 당시 일본이 침략하기 전까지 장제스의 국민당,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내전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1931년 만주를 침공하고, 6년 뒤 1937년에는 중국 본토를 침공하자
서로 원수지간이 되어 총질하던 국민당과 공산당의 장제스, 마오쩌둥이 손을 잡고 일본과 맞서 싸우기 시작합니다.
일본으로서는 당시 중국의 전력이 크지 않았으므로 전쟁이 금방 끝나리라 생각했지만 국민당과 공산당 연합의 게릴라에 중국 본토 점령이 쉽지 않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침략에 대해 수차례 경고하던 미국이 석유 등 자원을 금수하는 조치를 내리며 자원수급마저 끊어버리자 일본이 하와이를 공습하게 되죠.
그런 상황 속에서, 조선독립군이 국민당, 공산당과 함께 일본군과 맞서 싸우고 있었던 겁니다.
당시 김구의 임시정부도 중국 상해에 있었고, 이승만도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죠.
이때 중국 국민당 장제스가 김구의 임시정부를 물심양면으로 굉장히 도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일본이 핵폭탄 2방과 도쿄 공습으로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고 일본군을 전원 철수합니다.
이때 한반도에는 소련이 북쪽에서 내려오고 미연합이 남쪽에서 올라가는 방식으로 일본군의 퇴로를 차단하며 싸웠고, 양 군대가 중앙에서 만나게 되는 선이 바로 한반도 북위 38도선, 소위 38선이 됩니다.
조선이 독립하며 38선을 중심으로 북쪽은 김일성의 공산정부, 남쪽은 이승만의 자유민주정부가 수립됩니다.
이렇게 되기 전까지 북측과 남측이 굉장한 기세로 서로를 견제하고 싸웠는데 그 과정에서 남북이 통일된 하나의 정부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던 김구가 암살당하죠.
한반도의 상황이 복잡하게 되고 있었습니다만 중국도 만만찮습니다.
일본군이 물러가자 일찍부터 내전중이던 국민당과 공산당이 서로 다시 총질을 시작한겁니다.
결국 당시 강대국이었던 소련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국민당을 밀어내고 중국 전체를 점령하게 됩니다.
그리고 장제스는 대만으로 쫓겨나죠.
당시 장제스는 조선의 독립운동을 도왔고, 임시정부 수립도 도와주었으며, 독립군과 함께 싸운, 일종의 동료 내지는 동지라고 여겼으므로 조선군이 국민당을 도와줄거라 믿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게다가 당시 장제스의 국민당은 미국의 지지를 받고 있기도 했죠.
그럼에도 마오쩌둥에게 패배해 대만으로 도망치게 되자 미국과 조선, 특히 조선에 적지않은 실망감을 갖게 되고, 이때부터 반한감정이 출발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은혜를 배신으로 갚는 민족이다, 배은망덕하다는 거죠.
우리로서는 남북한이 갈려서 전쟁이 터질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게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연합군이 일본과 조약을 체결하며 독도를 넣느냐 빼느냐 갖고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이 발벗고 뛰고있던 와중이라 누굴 돕고 할 여유가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만 대만의 국민당 입장에서는 그걸 배은망덕이라고 여겼던 겁니다.
결국 한반도에선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남북전쟁이 시작이 되죠.
그리고 대만도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식민지를 거쳤습니다만 어째서 친일 성향이 그토록 강한가.
한반도는 5천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고조선부터 시작해서 유구의 역사를 거친, 빛나는 문화재산을 보유하고 있고, 그만큼 광대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대만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대만은 최초부터 국가라는 개념이 없는, 수십개의 토착민족이 각자 살아가는 섬이었습니다.
영화 아포칼립토 같은 그런 섬나라였죠.
그러다 최초로 국가적인 무엇인가가 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17세기 네덜란드의 식민지화입니다.
당시의 식민지는 오로지 약탈을 위한 식민지였습니다. 대만 토착민들을 화약으로 무력제압한 네덜란드는
대만으로부터 오로지 약탈을 일삼았고, 그 이후 청나라의 식민지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다가 일본군이 들어와서 대만을 식민지화 합니다.
일본군이 들어올 즈음에는 세계의 식민지 문화가 굉장히 변화하던 시기였습니다.
증기기관 이후 석유자원이 부각되며 공장이 들어서고 대량생산이 시작되던 시기였죠.
식민지도 바뀔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존의 식민지가 자원과 노예의 약탈을 위한 식민지였다면,
근대의 식민지는 일방적 교역이득을 위한 식민지로 변화하기 시작한겁니다.
영국, 프랑스가 그렇게 했고, 일본도 그렇게 했죠.
일본이 한반도를 점령하며 가장 먼저 한 것이 바로 교역입니다.
제대로 교역이 되려면 우선 도로가 필요하고, 값싼 물건을 생산할수 있도록 공장도 필요하죠.
이를테면 중국이나 필리핀 같은 데서 저임금으로 수주받고 값싸게 물건을 만들도록 하는, 그런겁니다.
그러려면 허허벌판에 농민들 뿐이어서는 안되는거죠. 그래서 도로를 놓고 공장도 만들어주는 대신,
그 돈을 전부 빚으로 만들어 등골을 빨아먹는 식으로 만드는겁니다.
열심히 일을 해도 수중에 돈은 몇푼 안 떨어지고, 버는 돈 대부분 도로놓고 공장세운 빚을 갚는 식이 되는거죠.
그런 상황에서 일방적인 교역이득을 얻는 것이 근대의 식민지입니다.
한반도가 그러했고, 대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선은 이것을 분명히 불합리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대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대만은 애초부터 국가가 없었고, 네덜란드와 청나라 식민지때 오로지 노예계급으로서 약탈만을 당해왔던 토착민족의 섬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본군이 들어와서 도로를 놓고 병원과 학교를 만들고 집도 지어줍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면 몇푼 안되지만 돈도 벌수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역사가 없었기 때문에 대만으로서는 일본의 식민시절이 그야말로 천국이었던 겁니다.
그러다 일본이 패망하고, 중국에서 공산당에 패배한 국민당이 대만으로 쫓겨나며 대만의 새로운 주인이 됩니다.
국민당의 장제스가 대만을 집권하기 시작하자 핍박이 시작됩니다. 이때 토착민족들이 국민당의 폭정에 굉장히 죽어나갔고 폭동도 있었다고 합니다만, 결국 국민당이 대만 전체를 장악하게 되죠.
지금도 대만에서는 중국 한족들이 권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고, 토착민족들은 멸시와 괄시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투표권이 있기 때문에 친일은 친일성향대로 놔두고, 그들이 갖고있던 반한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대만이 되고 있는겁니다.
이래저래 길게 썼는데, 기억력에 의존해서 쓰는거라 군데군데 오류가 있을수 있습니다.
영화 한편 추천드리고 글 마무리 지을까 합니다.
국민당이 들어오기 이전, 일제치하 시대의 대만 토착민들의 삶을 다룬 영화, 시디그 발레 입니다.
3시간이 넘는 영화입니다만 굉장히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