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퓨 굿 멘"은 매우 재밌는 영화다.
소송을 좋아해서(물론 걸리는 것보단 거는 걸 좋아한다는 뜻) 허구헌 날 소송으로 밤낮을 지세우며, 변호사가 안 좋은 배역으로 등장하는 농담이 넘쳐 흐르면서, 법정 드라마라면 환장을 한다는 미쿡 사람들 취향에 맞게 '군 내부의 범죄'를 다룬 법정 드라마이기도 하다.
오래된 영화니까 스포일러 어쩌구 할 거 없이 줄거리를 대충 얘기하자면, 미쿡의 최전방 G.O.P.라 할 수 있는 쿠바 관타나모 기지에서 병사들 간의 체벌 행위로 인한 사망 사건이 발생하고, 결국 이것이 사병들의 단독 행위가 아닌 사령관 제셉 대령의 직접 지시에 의한 것임이 밝혀지면서 미쿡 최전방을 지키는 애국심 투철한 군인도 잘못을 저지른 이상, 정의의 한 칼을 피할 수는 없었다...는 훈훈한 얘기 되시겠다.
이 영화 얘길 왜 꺼냈냐 하면, 이 영화의 후반부와 결말이야말로 미쿡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어떤 가치를 공유하고 지켜나가고자 하는가에 대한 힌트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증과 증언이 확보되자 궁지에 몰린 사령관 제셉 대령(잭 니콜슨 분)은 캐피 중위(탐 크루즈 분)에게, 그 동안 투철한 애국심 하나로만 살아온 자기 같은 군인을 '그깟 의지도, 애국심도 없는 부하 하나 잘못됐다고' 감히 죄인 취급하는, 세상 물정도 모르는 샌님 같은 이 법무관 애색히한테 정말 하고 싶었던 얘길 속시원하게 내갈기게 되는데...
"축복받은 너 같은 놈들이 커피샵에서 원두 커피를 들이키는 동안, 우린 이 최전방 관타나모 기지에서 미국을 지켜왔다!! 그러니 뭣도 모르면서 그딴 잣대를 우리한테 들이대려 하지 마라.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아!! (필자 첨가ㅋㅋㅋ)"
그 말을 들은 캐피 중위는 싱긋 웃으면서 대략 이런 취지의 발언을 한다. (영어 대사인데 지금은 기억이 안나고 그냥 취지만 대충 의역해서 쓴다)
"콩밥 맛있게 드세요.^^"
미쿡은 과연 제셉 대령의 나라일까? 캐피 중위의 나라일까?
물론 답은 뻔하다. 캐피 중위.
이유는?
그저 상부로부터 명령받은 가혹행위를 수행했을 뿐인데도 억울하게 불명예 제대를 하게 됐지만, 사실 누구보다도 '정의'를 사랑했던 멋진 고참 해병이, 도대체 우리가 잘못한 게 뭐냐고 분통을 터뜨리는 후임병에게 던진 정말 멋진 한마디가 그것을 대변해 준다.
"우린 명령은 지켰지만,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더 큰 정의를 저버렸기 때문이야."
미쿡이 참 문제 많은 나라인 건 모두가 안다.
하지만 미쿡은 적어도 '옳은' 것을 지향하고 있다.
미쿡이 가진 하드 파워(이를테면 군사력)는 엄청나지만, 그것만이 그들의 '패권'을 설명해 주진 못한다.
(이를테면 중국 같은 나라가 지금 미국의 자리에 있다면? 한번 상상해 보기 바란다.)
탐 행스가 주연한 '스트릿 어브 필라델피아'에서도 미쿡은 결코 '현실'을 택하지 않는다.
위 선임 해병이 말한 그런 '정의'가 미쿡 주류(보수)가 수호하고자 하는 바로 그 가치인 것이다.
물론,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이라는 다소 냉소적인 단서가 붙을 수도 있긴 하겠다. 하지만 그런 것조차도 안되는 나라가 있으니 이 작은 차이가 나는 정말 부럽기만 하다. (빙고. 바로 우리가 사는 이 나라다.)
건전한 보수는 기존의 낡은 생각, 또는 물질적인 기득권이 아니라 어떤 '가치' 있는 전통을 수호하려 한다.
그리고 그 가치는 사회 일반의 어떤 합의에 의한 '정의'에서 그 기반을 찾는다.
박통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좋다.
개인적인 호불호는 말 그대로 취존(취향 존중)의 대상이니까.
그런데 그것이 '우리 사회가 과연 어떤 가치를 우선할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면, 과연 거기에 '현실적'인 어떤 고려가 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사회적 정의, 자유민주주의의 원칙, 그리고 그것들을 체계화한 헌법 등을 쓰레기통에 쓸어담아가면서까지 우리가 그를 소중히 여기거나 숭배해야 하는가?
정의로운 보수, 올바른 보수라면 그 답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 역시 캐피 중위처럼 말해야 하지 않을까.
"나름 잘 했다고 해드릴게요. 이제 그만 역사로(만) 남아 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