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는 모든 국민, 시민이 왕인 정치 체제다. 모든 국민이 왕이니 국정의 문제들에 대한 결정은 다수결로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든 시민이 참석하는 회의를 통해서 의사를 결정하였다. 그런데 이런 민주주의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같은 비판자들이 보기에는 '개판'이고 본질적으로 중우(衆愚)정치였다.
그런데 혹시 국민의 수가 많아 모두 모여서 회의를 하기 힘들면 대의원들이 회의를 하게 되는데 만약 대의원을 선거로 뽑게 되면, 잘 생겼거나 똑똑하거나 마음이 착해서 주위에 인심을 얻었거나 아니면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나 대의원을 하고 싶은 사람이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대의원들은 특수집단이 될 것이고 왕(국민)들 전체의 의견과 다른 결정을 하게 될 우려가 있다.
예를 들면 현대 자동차 조합원이 3만명이나 되기 때문에 대의원을 선출하여 대의원대회를 열어서 결정을 한다. 그런데 대의원을 선거로 뽑으니 대의원대회는 전체 조합원 중에서 조금 유별난 정서와 생각을 가진 특수집단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대의원대회의 결정은 전체 조합원의 의사와 다른 결정을 자주 하게 된다. 만약 제비뽑기로 대의원을 뽑으면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아테네 사람들은 그렇게 하였다.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은 재판관들은 각 동네(소공동체) 별로 인구수에 따라 제비뽑기로 뽑은 보통의 평범한 시민들, 500명이었다. 그들은 하루 일을 못하는 만큼 일당을 국가로부터 받고 재판에 참여했다. 그들은 원고와 피고의 변론, 주장을 듣고 다수결로 판결을 하였다. 먼저 유죄인가 무죄인가를 판결하고 다음으로 형량에 대한 원고의 주장과 피고의 주장 중에서 하나를 다수결로 결정하였다.
그렇다면 현대 민주주의에서 선거를 통해서 대의원을 선출하는 것 자체가 벌써 민주주의로부터 이탈이고 철인정치론적인 요소를 일부 가미한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즉 보통 사람보다는 똑똑하거나 현명하거나 전문적 지식이 있거나 경험이 많거나 적극적 의지가 있는 사람을 대의원으로 선출하는 것은 모든 시민이 꼭같은 권리를 가진 왕이라는 순수한 민주주의의 원리에는 맞지 않는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는 제비뽑기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생활에서도 더 자주 실천해보아야 할 것 같다. 민주주의의 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다. 민주주의의 원리에 대한 개념을 분명하게 정리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더 민주화하고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더 발전시키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런데 현대의 선진국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당 정치'를 발전시키면서 철인정치적 요소를 더 많이 가미하였다. 즉 유럽 선진국 정치는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철인정치를 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일관된 정치 철학과 국정 비전과 정책 설계를 가지고, 또 그것을 기획하고 실천에 옮길 지식인들을 확보하여 정당은 그람시가 말한대로 '현대의 군주'로서 역할을 한다.
현대 민주주의 선진국에서 정당은 대중정당이라 할지라도 지식인, 철학자들이 이끄는 집단, 철학의 공동체다. 그래서 플라톤이 꿈꾼 철인 정치는 현대 민주주의 선진국들에서 다른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플라톤이 상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민주주의의 옷을 입고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정당이 없다. 그래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앙꼬 없는 찐빵이다.
그래서 국민은 끊임없이 왕의 귀환을 상상하고, 박정희 독재를 향수한다. 스스로 왕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개판인 민주주의보다는 정조나 세종 같은 철인(哲人) 왕의 시대를 그리워 한다. 그것은 아테네 시절부터 그러했고 우리가 보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또한 그렇듯이, 철인정치론의 비판과 변증법적 종합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곧 중우정치, 선동정치, 금권정치로 타락하기 때문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의미도 모르는 인간이
다수결 찾고 있네 ㅉㅉㅉ
머리에 뭐가 들었으니 아무리 말해줘도 이해 못하겠지
다수결은 수단이지 민주주의가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