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4-15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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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1월 23일 : 한보철강 (현 현대제철) 부도 처리 확정
- 1997년 1월 30일 : 한보건설 및 한보그룹 최종 부도 처리
- 1997년 3월 20일 : 삼미그룹 부도
- 1997년 3월 21일 : 한보건설 법정관리 신청
- 1997년 4월 7일 : 한보 청문회(4/7 ~ 4/25)
- 1997년 4월 18일 : 진로그룹 부도유예협약
- 1997년 4월 22일 : 진로그룹 부도
- 1997년 5월 2일 : 외국인 주식투자한도 확대(20% → 23%)
- 1997년 5월 20일 : 대농그룹 부도유예협약
- 1997년 6월 2일 : 한신공영그룹 부도
- 1997년 7월 2일 : 태국 밧 화 폭락
- 1997년 7월 15일 : 기아그룹 협조융자 신청, 사실상 부도, 청와대 확대경제장관 회의.
- 1997년 8월 14일 : 인도네시아 루피아 화 폭락
- 1997년 8월 15일 : 재경원 종금사에 외화자금 긴급지원 검토 (3억$이상)
- 1997년 8월 25일 : 금융시장 안정 및 대외신인도 제고 대책
- 1997년 8월 27일 : 무역관련 자본자유화 폭 확대조치 시행
- 1997년 8월 30일 : 재경원 증시 안정대책 발표
- 1997년 9월 1일 : 무디스 방한 협의(9/1 ~ 9/5),주식매매수수료 자율화 시행
- 1997년 9월 10일 : 산업은행 외환채권 발행(15억불)
- 1997년 9월 19일 : ASEM 재무장관 회의 및 IMF/세계은행 총회 부총리 참석
- 1997년 9월 22일 : 진로그룹에 대한 6개사 법정관리를 신청
- 1997년 9월 29일 : 외환시장 개장 40분만에 대미달러 환율이 1일 변동폭 상한선인 964원까지 상승, 사실상 거래 중단
- 1997년 10월 15일 : 쌍방울그룹 부도
- 1997년 10월 16일 : 태일정밀 부도, IMF 조사단 한국방문
- 1997년 10월 17일 : 대만 외환방어 포기
- 1997년 10월 18일 : 외국환 관리규정 전면 개정안 발표(외자유입 관련 자유화 조치)
- 1997년 10월 20일 : 당정 금융시장 안정대책 발표(근로자주식저축 1년연장, 한통주상장연기, 3년이상 투자 배당 소득분리과세)
- 1997년 10월 21일 : IBCA, 현행 국가신용등급 유지 발표
- 1997년 10월 22일 : 기아자동차 법정관리 신청
- 1997년 10월 23일 : 홍콩 증시 폭락
- 1997년 10월 24일 : 미국 S&P사, 한국 국가신용등급 하향조정
- 장기 : AA- → A+
- 단기 : A1+ → A1
- 1997년 10월 27일 : 강경식, 금융외환시장상황과 기아사태후속조치 등 보고, 미국 무디스사, 한국 국가신용등급 하향 조정
- 장기 : A1 → A2
- 단기 : P1 → P2
- 1997년 10월 28일 : 미국 다우존스지수 하루 만에 7.2% 하락
- 1997년 10월 28일 : 주가지수 500선 붕괴, 미국 투자기관 모건스탠리, '아시아를 떠나라' 라는 보고서를 띄움. 주가 500선 붕괴, 강경식, 한국은행에 외환시장개입중단 지시(재판에서는 불인정)
- 1997년 10월 29일 : 정부 금융시장 안정대책 발표(연기금3조 규모 주식매입, 채권시장개방확대, 기업구조조정)
- 1997년 10월 30일 : 외환시장 개장 8분만에 대미달러 환율이 1일 변동폭 상한선까지 또다시 폭등, 사실상 거래 중단
- 1997년 10월 30일 : 주유소 북새통
- 1997년 11월 1일 : 해태그룹 부도, 유가 인상
- 1997년 11월 3일 : 해태그룹 화의절차개시신청, 외국인 주식투자한도 확대(23% → 26%)
- 1997년 11월 4일 : 뉴코아 부도
- 1997년 11월 5일 : 불름버그, "한국 가용 외환 보유고 20억달러" 보도.
- 1997년 11월 6일 : 한국은행 실무진, 총재에게 IMF행 건의
- 캉드쉬 IMF 총재 "한국 금융시장은 동남아 국가와 같은 위기상황 아니다"고 언급하여 한국의 신용도가 회복된 것으로 예측
- 1997년 11월 7일 : 주가 최대 폭락
- 1997년 11월 9일 : 정부가 종금사 달러를 지원 검토
- 1997년 11월 10일 : 원화환율, 달러당 1,000원 돌파, 김영삼 대통령, 외환위기 심각성 인지, 환율사상 처음으로 달러당 1,000원 돌파.
- 1997년 11월 14일 : 김영삼 대통령 IMF행 결심, 강경식 부총리,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에 라마다르네상스호텔에서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청와대 보고에서 "미국 등 우방으로부터 돈을 빌려 보겠으나 여의치 않으면 IMF로 가야 한다"고 설명. 김영삼 대통령, 사실상 IMF로 갈 것을 지시.
- 1997년 11월 16일 : 미셸 캉드쉬 IMF 총재 극비 방한,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인터콘티넨탈호텔에 도착.
- 1997년 11월 17일 : AMF(아시아통화기금) 관련 차관회의(마닐라), 외국언론, 한국 IMF구제금융 요청 가능성 시사, 프랑스 경제 전문지 레 제코, IMF 한국에 400-600억달러 긴급지원 검토 보도 재경원 '사실무근'이라며 부인
- 1997년 11월 18일 : 한국은행, 정부에 IMF구제금융 요청 촉구
- 1997년 11월 18일 : 연합뉴스, 김수석 "현단계서 IMF 자금지원 요청계획 없다", 김인호 경제수석 간담회 일문일답에서 19일 발표할 금융시장 안정대책에서 "IMF 지원 대책 포함되어 있지 않다"
- 1997년 11월 19일 : 강경식 부총리, 김인호 수석 경질, 임창렬 재경부 장관에게 신임 부총리 임명, 금융시장 안정 및 금융산업 구조조정을 위한 종합대책 발표 (환율변동폭 확대, 부실채권정리기금 확충, 부실금융기관 조속한 정리, 채권시장 추가 개방). 연합뉴스(재정경제원 관계자는 "강경식 전경제부총리와 김인호 전청와대 경제수석이 전날 밤 여의도 모처에서 대책의 골격을 잡고 이를 이날 아침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안다"면서 곧 발표될 대책에 외화확충방안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 1997년 11월 19일 : 임창렬 부총리, 금융시장 안정대책 발표.
- 1997년 11월 20일 : 스탠리 피셔 IMF 수석부총재 방한, 1일 환율변동폭이 2.25%에서 10%로 확대됨, 그러나 환율은 다시 확대된 변동폭 상한선까지 폭등, 사실상 거래 중단됨
- 1997년 11월 21일 : 김영삼 대통령, 박태준 자유민주연합 총재,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 조순 총재와 회담
- 1997년 11월 21일 :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공식 신청 발표
- 1997년 11월 22일 :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 요청 발표
- 1997년 11월 23일 : 재정경제원, IMF 협의단(단장 강만수 차관) 편성, IMF의 실무협의단 1진이 김포국제공항으로 입국
- 1997년 11월 24일 : 일본, 야마이치증권 창립 반세기만에 파산 선고
- 1997년 11월 25일 : IMF 실사단 공식활동개시, 국무회의 : 예금자 보호법 등 4개 법안 새행령 개정안 채결
- 1997년 11월 25일 : 금융시장 안정 및 기관투자가 주식매입 기반 확충
- 미국 S&P사, 한국 국가신용등급 하향 조정
- 장기(2단계) : A+ → A-
- 단기(1단계) : A1 → A2
- 1997년 11월 26일 : IMF 휴버트 나이스 대표단이 김포국제공항에 도착, 금융시장 안정 및 기관투자가 주식매입 기반 확충
- 1997년 11월 28일 : 임창렬 부총리,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일본 방문. 미쓰즈카 대장상과 원조회담에 들어갔으나 "IMF로 가지 않으면 지원은 없다"라는 대답만 돌아옴.
- 1997년 11월 29일 : IMF가 캉드쉬 총재에게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5가의 힐튼호텔에서 IMF 구제금융을 발표하고 기자회견 간담회 가짐
- 1997년 12월 2일 : 재경경제원(현 기획재정부), 9개 종금사 영업정지 법령
- 1997년 12월 3일 : 미쉘 캉드쉬가 싱가포르 항공편으로 김포국제공항에 도착,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 임창렬 재경부장관과 캉드쉬 IMF 총재, 공식적인 구제금융 합의서에 서명, 대기성 차관 제공에 관한 양해각서 체결.
- 1997년 12월 4일 : 대기성차관협약(Stand-By Arrangement) IMF 이사회 승인
- 총 210억달러 승인 : 대기성차관 75억 달러, 보완준비금융 135억 달러
- 1997년 12월 5일 : 고려증권 부도
- 1997년 12월 6일 : 한라그룹 부도, IMF 1차 지원금 56억 달러 제공.
- 1997년 12월 7일 : 대우자동차 (현 한국GM, 자일대우버스, 타타대우)와 쌍용자동차 인수 최종 확정.
- 1997년 12월 10일 : 환율이 3일 연속 1일 변동폭 상한선까지 폭등하여 외환시장 개장 40분만에 거래 중단, 기업어음(CP) 금리가 6일째 법정 상한선까지 치솟음, 회사채 유통수익률은 법정 발행금리 상한선인 연 25%를 초과함. 금융시장 전반이 마비됨,
- 미국 무디스사 한국국가신용등급을 준 Junk 수준으로 하향조정
- 장기(2단계) : A3 → Baa2(준 Junk)
- 단기(1단계) : P-3 → N∙P(투자부적격)
- 5개 종금사 추가 업무정지(대한∙나라∙신한∙중앙∙한화종금)
- 종금사 거래기업 및 개인예금자에 대한 지원
- 은행신탁계정의 CP 매입 한시적 허용
- 외국인 주식투자한도(50%) 12월 11일부터 적용 등
- 1997년 12월 11일
- 자본시장 전면개방
- 외국인 투자한도(1인당 한도 50%로) 확대: 개인당 7%, 종목당 26% 한도(12/10발표)
- 미국 S&P사 한국 국가신용등급 3단계 하향조정 : A- → BBB-
- 한국은행,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자금지원 발표
- 14개 종금사관련 지원 : 7조 3,000억 원(은행, 종금, 증권)
- 채권시장 개방확대
- 대기업 무보증, 보증회사채 개방(10% → 30%)
- 대기업 무보증 CB투자 한도 확대(30% → 50%)
- 중소기업 무보증회사채 및 CB 투자한도 폐지
- 1997년 12월 12일 : 동서증권 영업정지 처분 법정관리 신청
- 1997년 12월 16일 : 정부 환율변도 제한폭 폐지(17일 시행), 제3차 경제대책회의 내용 발표
- 최고금리 확대 : 연 25% → 40%
- 금융기관에 대한 외국인투자 대폭 허용 등
- 1997년 12월 18일 : 제15대 대통령 선거, 김대중 후보 당선, IMF 2차 인출 이사회 승인
- 1997년 12월 19일 : 세계은행 및 ADB 자금지원 협상 완료
- 1997년 12월 21일
- 미국 무디스사,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 등급으로 하향조정
- 장기(2단계) : Baa2 → Ba1(투자부적격)
- IMF 협의단 방한
- 1997년 12월 22일 : 미국 립튼 재무부 장관이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입국, 재무부 금융기관 외채만기 연장을 위한 정부지급보증 국회 동의
- 1997년 12월 23일 : 원화환율, 사상 최고치 기록(1995원), 국공채시장 등 채권시장 전면개방.
- 1997년 12월 24일 : 정부, IMF 구제금융 협상에 대한 신청 발표, 에어 뉴질랜드 김포~오클랜드 노선 중단[11]
- 1997년 12월 25일 : IMF 및 주요 선진국 자금 조기지원 발표
- 1997년 12월말 및 1998년 1월말에 걸쳐 100억 달러 조기지원 약속
- 1997년 12월 30일 : IMF 20억 달러 조기 지원(3차 지원)
- 1997년 12월 31일 : 부실 종금사 처리를 위한 가교종금사(한아름종금)설립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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