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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6-02 21:17
북한은 광복을 쟁취 했다고 여김..01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221  

북한은 어째서.. 광복을 ‘쟁취한 것’으로 보는가?

 

– 독립운동에 대한 평가

 

 

 

한국에서는 광복을 ‘외세에 의해 어느 정도 주어졌다’고 배우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떨까?

 

토지몰수 등을 통해 친일청산을 철저하게 진행한 입장에서 북한은 일제의 패망, 그리고 독립운동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을까?

 

1983년 북한에서 출간된 ‘현대조선역사’는 일제의 항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아군부대들의 드센 공격과 인민들의 혁명적 진출 앞에서 더는 견딜 수 없게 된 일제의 ‘대본영’은 조선인민혁명군의 최후공격작전이 개시된지 불과 1주일도 못되는 1945년 8월 15일 황급히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다.” (김한길, “현대조선역사”, 일송정, 1988, 160쪽.)

 

즉, 북한 역사책은 민중들의 투쟁과 조선인민혁명군의 공격으로 일본이 항복하고 한반도에서 물러났다고 작성해 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근거로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

 

현재까지 한국에서 출간된 역사서적들에 기초하여 그 근거들을 살펴보겠다..

 

1. 일제에 용감하게 저항해온 우리민족

2. 일제로부터 어떻게 해방할 것인가.

3. 전민항쟁 준비단계

 1) 항일유격구와 군대

 2) 동북항일연군

 3) 조국광복회

 4) 국제연합군 제88여단(동북항일연군 교도려)

 

4. 전민항쟁

 1) 2차 세계대전의 종말

 2) 전민항쟁의 진행

 3) 국내진공작전

 

5. 동북항일연군 교도려와 소련군의 진주가 없었다면?

 

※ 현재 한국 역사책에서 19세기 말, 20세기 초 우리 민족을 ‘조선’보다는 ‘한국’이라는 표현으로 더 많이 부르고 있다. 1897년 고종이 선포한 대한제국의 약칭으로 ‘한국’이라고 쓰는 것이다. 그러나 1910년 8월 22일 한국병합에 관한 조약이 강제로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이라는 국가는 완전히 소멸되었다.

 

그러면서 대한제국은 ‘조선’이라는 지역 명칭으로 불려졌고 민중들 역시 ‘조선국권회복단’, ‘조선국민회’, ‘조선공산당’, ‘조선여성동우회’, ‘조선일보’ 등 조선이라는 명칭을 더 많이 썼다.

 

대한제국이 왕조 교체 없이 1392년에 설립된 조선이라는 나라의 연장선에 불과했다는 점, 오늘날 순종 역시 조선의 마지막 왕으로 불려왔다는 점 등에 기초하여 이 연재글에서 당시 한반도 지역을 ‘조선’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이 글에서의 ‘조선’이 현재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1. 일제에 용감하게 저항해온 우리민족

 

1) 반일의병운동

 

일본이 조선침략을 시작했던 것은 19세기 중반부터였다.

 

명치유신(메이지유신)으로 개화의 길에 들어선 일본에서는 서구 열강으로부터 ‘천황(天皇)의 국가’를 지키기 위해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정한론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일본은 조선이라는 땅덩어리를 차지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의 지원 하에 청나라, 러시아와 전쟁을 치렀다.

 

1895년 청일전쟁에 이어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맺어 미국의 지원(가쓰라-태프트 조약) 하에 우리나라 땅에 대한 배타적 독점권을 얻게 된다. (배타적 독점권 : 다른 나라가 넘볼 수 없는 독점권)

 

포츠머스 회담 2달 후인 1905년 11월 17일 일본은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했고 1910년 한일합방조약으로 조선을 완전한 식민지로 삼았다. (정식명칭은 한일협상조약. 일제의 강압에 의해 법적 형식이 결여된 채 불법적으로 맺어졌다. )

 

이로서 가혹한 일제 치하의 36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우리 민족은 일제가 조선에 대해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시점부터 단 한시도 독립운동을 그치지 않았다.

 

양반관리들의 비리와 부패에 저항하여 시작된 1894년 갑오농민전쟁(동학농민혁명)도 일제에 맞서 싸운 반외세투쟁으로 확대되어 최후까지 일본군들과 맞서 싸웠다.

 

 

 

갑오농민전쟁이 끝나고 살아남은 농민군은 곳곳에서 반일의병운동에 적극 떨쳐나섰다.

 

갑오농민전쟁 직후인 1895년 7월 유생 김원교가 이끄는 상원의병은 평안도 상원 읍내로 진격해 친일 관리들을 처단하고 황해감영군과 치열한 격전을 벌인 후 장수산에서 격문을 발표해 의병운동을 추동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 이후 의병의 수가 급증해 총 1만 여 명에 달했던 제천의병(대장 유인석)은 1896년 2월 충주성을 함락시키고 일본군의 공격을 여러 차례 물리치기도 했다.

 

이승룡이 주도했던 양근의병은 이천의병 등과 합세하여 남한산성에 입성하고 관군과 대규모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국가기록원, “중부 지역의 의병 전쟁과 의병장”)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반일의병운동은 더욱 양양되었다.

 

당시 민종식 대장이 이끈 홍주 병오의병, 신돌석의 을사의병, 최익현의 홍주의병 등은 일제에 맞서 적극적으로 싸웠다.

 

1906년 5월 의병군 1,000여명이 일본군이 지키고 있는 홍주성을 점령하고 10여 일 동안 지켜내기도 했다.

 

일제는 토벌대를 배치해 1907년 8월부터 1911년 6월까지 무려 1만 7,000여명의 의병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럼에도 1908년에만 7만 여 명의 의병들이 1천 500여 회에 달하는 전투를 벌여 일제가 조선을 점령하는 데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

 

도처에서 일어난 의병에 맞서 일제는 1910년부터 1,624개소에 달하는 경찰·헌병기관, 1만 7915명의 헌병, 경찰들을 배치해 조선을 ‘완전한 감옥’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거대한 감옥’ 속에서도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일제가 축소해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1910년 9월부터 1913년 8월까지 3년 동안 의병의 전투회수가 70여차에 달하기도 했다.

 

 

의병전투 외에 영등포피혁회사 파업 등 노동자투쟁, 강원도 춘천군 서하면 농민들의 면사무소 습격 등 농민투쟁, 청년학생들의 동맹휴학 등이 도처에서 발발했다.

 

 

이러한 민중들의 분노가 거족적인 반일항쟁으로 폭발된 것이 바로 3·1운동이었다.

 

 

2) 3·1운동의 성과와 한계

 

 

 

3·1운동은 일제강점기 최대 전민족적 독립항쟁이었다.

 

 

조선총독부 공식기록에만도 총 집회인수가 106 여 만 명이라고 적혀있을 정도로 많은 수가 참가했다.

 

 

총 참가인원은 전체 조선 인구 1,678만 8천400명의 10% 정도로 추산된다. (3.1운동, 한국사콘텐츠)

 

 

전국적으로 총 232개 중 211개 부, 군, 섬에서 발생한 거족적인 봉기였고 우리 민족이 살아있다는 것을 세계적으로 시위했던 항쟁이었다.

 

 

3월 하순에서 4월 하순에 걸쳐 전국적으로 544회 봉기가 일어났고 4월 1일 하루 동안에만도 60회 이상 투쟁이 전개되었다.

 

 

3·1운동은 우리 민족해방운동사에 특기할만한 항쟁으로 기록되어 남북 모두 3월 1일을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3.1운동으로 우리 민족은 일제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지 못했다.

 

 

북한은 그 원인을 운동지도부의 나약성과 비폭력·무저항주의로 보고 있다.

 

 

당시 3.1운동 지도부는 비폭력·무저항주의에 입각한 평화적 시위와 열강에의 독립청원을 통해 독립을 달성하고자 했다. (이윤상, “3.1운동의 배경과 독립선언”,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8쪽.)

 

 

이들은 1차 세계대전이 종식되고 윌슨 미국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하면서 파리 강화회의가 개최되는 정세에 희망을 갖고 곽종석, 김창숙 계열은 파리 평화회의에 독립탄원서를 보낼 시도까지 했다.

 

 

민족대표들은 10여 년 전 총을 들고 일제와 맞서 싸웠던 의병들과 달리 외국청원에 희망을 품고 비폭력주의로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노선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은 총독부 정무총감 야마가타 이자부로에게 전화를 걸어 독립선언 사실을 알리고 연행되었다. (강준만, “한국 근대사 산책 6 : 사진신부에서 민족개조론까지”, 인물과 사상사.)

 

 

보성법률상업학교 학생 강기덕을 중심으로 하는 학생

 

들이 태화관으로 들이닥쳐 민족대표들이 탑골공원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비난했지만 당대의 논객이었던 박

 

희도는 “무저항 비폭력으로 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방

 

침에 따라 불가피하게 불참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표들이 잡혀가자 3·1운동은 명확한 지도부 없이 자연발생적으로 확산되었다.

 

 

시위는 주로 학생들이 주도하여 독립선언서를 읽고 시민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부르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민족대표의 입장에 영향을 받은 각지 만세시위 주도자들은 국제적 여론에 호소하고 미국의 도움을 받기 위해 국내에서 비폭력운동을 크게 전개해야 한다고 바라봤다.

 

태극기를 든 민중들은 일제의 무력진압으로 제대로 된 저항을 못한 채 쓰러졌고 수만명이 연행되면서 항쟁역량이 온전히 보전되기 힘들었다.

 

일부는 파출소에 진입하거나 돌을 던지며 일본 경찰들의 총칼에 맞서 저항했지만 결국 2-3달만에 7,509 명이 사망하고 4만 7천여 명이나 구속되었다. (조선총독부 공식 발표)

 

 

수원 제암리에서는 3.1만세시위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가 시위 지도부를 죽이고 잔혹한 학살을 감행하기도 했다.

 

 

제암리 학살 현장.

결국 3.1운동역량이 급격히 소진되면서 운동은 독립할 때까지 이어가지 못했다.

 

 

3·1운동 이후 절망에 빠진 우리의 민족해방운동은 우리 현실에 맞는 독립노선을 찾아 헤매게 되었다.

 

 

 

이상..          0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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