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균은 이순신이 중앙에서 내려온 출전 명령을 거부하려하자 빠르게 이순신이 명령에 불복종하려한다는 상소를 올리고 이순신장군의 자리를 꽤찬 인물입니다 그리고 제차 명령이 내려오자 그게 쉽지 않다는걸 알게 되지만 결국에는 사지로 병사들을 이끌고 가죠
원균은 실로 망국에 어울리는 장수였습니다.
그리고 원균이 이순신 장군과 같은 공신이 된것은 찌질하기 그지 없는 선조 덕분이었죠
뚱님은 전쟁초반 일본군이 나타났다는 소식만 받고는 소중한 전력인 전함을 좌초시키고 도망친 원균이 이순신 장군과 동급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하셨죠?
이제 원균 이야기 팩트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여기서 님께서 이야기 하신 부분 줄여서 보여드립니다.
1593년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자 그의 휘하에서 지휘를 받게 되었다. 이순신 보다 경력이 높았기 때문에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되었으며 두 장수 사이에 불화가 생기게 되었다. 이에 원균은 해군을 떠나 육군인 충청절도사로 자리를 옮겨 상당산성을 개축하였고 이후에는 전라좌병사로 옮겼다.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 때 가토 기요마사가 쳐들어오자 수군이 앞장서 막아야 한다는 건의가 있었지만 이순신이 이를 반대하여 출병을 거부하자 수군통제사를 파직당하고 투옥되었다. 원균은 이순신의 후임으로 수군통제사가 되었다. 기문포해전에서 승리하였으나 안골포와 가덕도의 왜군 본진을 공격하는 작전을 두고 육군이 먼저 출병해야 수군이 출병하겠다는 건의를 했다가 권율 장군에게 곤장형을 받고 출병을 하게된다.
[출처] 원균 | 두산백과
상소를 올려 수군통제사가 되었다는 말은 안나옵니다.
이미 육군으로 원균은 빠졌고 이후 이순신이 백의종군 하면서 빈 자리에 수군으로 어느정도 공이있던
원균이 수군통제사가 되었습니다.
님이 말한 팩트 가져와보세요.
뚱님은 전쟁초반 일본군이 나타났다는 소식만 받고는 소중한 전력인 전함을 좌초시키고 도망친 원균이 이순신 장군과 동급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말씀 하셨는데 어디에 그런 소리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