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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1-10 18:54
악의신.이오시프 스탈린. 독재의 최고봉.제09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226  

이 숙청의 규모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당시 소련에서 불과 다섯 명 뿐이었던 원수들이 두 명만 남고 몽땅 처형되었다는 것만 언급해도 충분할 정도다. 

 

미하일 투하쳅스키와..(여기서 투하쳅스키의 경우는 실제로 반(反) 스탈린 음모를 꾸몄다는 설도 있다.

 

실제로 투하쳅스키와 스탈린은 적백내전 당시 사령관정치장교의 관계 때문에 이후에도 사이가 매우 안 좋았으며, 투하쳅스키가 러시아 제국 귀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공산당 내에서도 매우 이질적인 인물이었다.)  

 

알렉산드르 예고로프, 바실리 블류헤류가 이 기간 동안 '반혁명 분자', '독일/일본의 첩자' 등 말도 안 되는 날조된 혐의를 받고 비밀재판을 거쳐 목숨을 잃었다.

 

좀 어이없는 것은 예고로프와 블류헤르가 투하쳅스키의 비밀재판을 맡았던 군사재판장이었다는 사실이다.

 

블류헤르는 처형 직전 만주에서 일본군의 도발을 쳐부수는 승리를 거둔 바가 있으며 장제스의 고문으로 파견되어 그와 몇 년간 일하며 우정을 쌓은, 꽤 준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건만

 

일본의 여간첩에게 유혹당해 정보를 일본에 바쳤다는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고 고문 담당자와 싸우다가 살해당했다.

 

예고로프는 결국 두 경쟁자를 가지쳐내는데 성공했지만 그도 서기장 동무의 싸늘한 눈초리는 결국 피하지 못했다. 

 

예고로프는 1939년 2월 22일 감옥에서 옥사했다고 알려져 있다. 재판 직후 즉결 처형당한 투하쳅스키나 블류헤르에 비하면 낫겠다 싶기도 하지만 그 기간에 당연히 극심한 고문이 있었으리라고 예측해볼 수 있다.

 

하여간 옥사로 끝난 것으로 보아 투하쳅스키보다는 죄가 덜하다고 판단되었던 모양. 참고로 투하쳅스키는 1937년 8월에 처형당했다.



결국 살아남은 원수는 위에서 언급했듯 무능하기 그지없는 '스탈린의 예스맨' 클리멘트 보로실로프와 보로실로프보다는 유능했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세묜 부됸니 뿐. 여기에는 작은 에피소드들이 있는데 보로실로프는 스탈린의 술 친구이기도 할 만큼 개인적으로 스탈린과 친했기에 살아남았고 보로실로프와 친하거나 그가 보호해준 장교들 상당수가 살아남아 독소전에서 활약했다.

 

보로실로프는 스탈린과 굉장히 친해서 그와 접시를 던지며 싸웠다고도 하고 같이 뱃놀이를 갔는데 스탈린이 "너 독일(or 영국) 스파이지!" 하니까 보로실로프는 스탈린의 뺨을 때렸다고도 한다.

 

추가로 니키타 흐루쇼프는 그들이 접시 싸움을 하는 걸 구경했다고 한다. 물론 개인적으로 싸워도 보로실로프는 열심히 스탈린 앞잡이를 했다.



그런가 하면 부됸니는 NKVD 요원들이 사무실을 덮치자 이들과 완력으로 맞섰다. 당시 그의 나이 56세. 그리고 그들이 주춤하는 사이 잽싸게 스탈린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받은 스탈린이 "아, 그건 오해다." 라며 간단히 그 자리에서 혐의를 풀어줘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당대 인물들에겐 숨이 턱 막히겠지만 후대 인물들에겐 나름 재밌게도 정보기관의 체포에서 저항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이렇게 땡깡을 부리는 것이었다.

 

자기에겐 죄가 없으리라 확신하고 순순히 체포되는 사람들은 못해도 10년 형씩은 받았지만 길거리로 뛰쳐나가 자신을 납치하려 한다고 소리지르고 난동 부리는 사람들은 요원들이 당황해서 체포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적어도 달아날 틈은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원수급 이하 수많은 장성들, 영관급 장교들도 이 풍파에 쓸려나갔는데 투하쳅스키의 추종자였던 콘스탄티 로코솝스키도 폴란드 스파이 활동 등의 혐의로 NKVD에 끌려가 발가락들이 전부 쇠망치로 짓이겨지고 아홉 개의 치아가 부러져나갈 정도로 극심한 고문을 받은 끝에 사형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독소전이 시작되고 무능한 장성들이 전사 혹은 해임되기 시작하자 임시로 소장 계급을 부여받고 군적에 되돌려졌다.

 

이후 군단장이 되어 독일군의 공세를 막아내고 역관광을 펼치면서 원수까지 승진했다. 하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 금속제 틀니를 하고 살았고 금속 발가락이 내장된 부츠를 신고 절뚝거리면서 걸어야 했다고 한다.



대숙청은 다섯 원수 중 3명을, 11명의 부(副)국방 인민 위원 전원과, 모든 군관구 사령관, 16명의 야전군 사령관 중에 14명, 67명의 군단장 중에 60명, 199명의 사단장 중에 136명, 397명의 여단장 중에 221명, 모든 연대장의 50%이상을 포함한 전체 장성들의 90%, 영관급 지휘관의 80%를 골로 보내버렸고 그 희생자는 35,000명에 달했다.

 

이들 중 대다수는 보직해임으로 그쳤지만 1만 명 가량은 NKVD에 끌려가 수감, 고문, 심하면 처형되었다.

 

특히 전투부대 지휘관으로서의 영관급 장교는 대부분 심해야 굴라그 수감으로 그쳤지만, 경험을 어느 정도 쌓은 참모장교 및 장성들은 총살된 경우가 많았다. 그

 

나마 1941년이 되자 해임된 이들은 80% 가량 복직되었지만 조직관리 및 대부대 지휘통제 경험자가 거의 괴멸한 피해를 복구하기엔 턱도 없는 상황이었다.

 

특이한 것은 후일 적군 최고의 명장으로 거듭나는 게오르기 주코프는 예조프의 숙청 리스트에는 들지 않았지만 베리야가 실권을 잡은 뒤 숙청 리스트에 올랐다.

 

그런데 그가 할힌골 전투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자 베리야는 슬그머니 리스트에서 이름을 지웠다.



당연하지만 이 숙청의 칼날은 육해공 병종을 전혀 가리지 않았다. 위에 언급한 육군 외에도 소련 공군과 해군의 주요 지휘관들이 대거 숙청당했다.

 

공군의 경우 스페인 내전 참전 등의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조종 장교와 지휘관들이 대거 수감, 사형을 당했고 설계국의 주요 기술자들은 사형당하지는 않았지만 수감당했다.

 

해군의 경우 제정 러시아 시절부터 파촘킨 반란 사건 등 러시아 혁명 과정에 깊이 관여해서 숙청을 피했다는 인식이 있지만, 실제로는 마찬가지로 주요 장교단이 대거 숙청당했다. 

 

니콜라이 쿠즈네초프등 일부 고위 지휘관들이 숙청 대상자들의 신원 보증을 해주며 저항했지만 그들의 노력만으로 숙청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단지 소련 해군의 경우 육군이나 공군에 비해 이전부터 듣보잡 수준의 전력을 가져서 상대적으로 그 피해가 적어 보이는 것 뿐이다.

 

그리고 해군이나 공군의 경우 설계/정비 기술자나 조종사 등 숙련된 인적 자원의 비중이 더욱 컸기 때문에 그 피해는 육군에 비해 크면 컸지 결코 작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대숙청으로 인해 붉은 군대의 지휘체계가 사실상 붕괴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시기 소련군은 정규군인 붉은 군대만이 아니라 바로 저 숙청을 주도한 NKVD 산하 준군사조직마저 숙청의 후유증으로 엉망진창이 되어 연대를 대위나 (영어로 소령은 Major라고 쓰니 소령으로 번역하는 게 맞지만 당시 소련군의 계급 분류로는 대위부터가 영관급을 가리키는 선임장교에 속했고 Major는 대령의 바로 아래 계급에 해당했다. 소련군에 중령 계급이 분화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3년이다.) 

 

소령이 지휘하는 게 당연하다시피 한 상태가 되어버렸고 때문에 대령 사단장이 속출했으며 여단장 계급으로(여기서 계급을 알아보면  당시 소련 장성 계급은 지휘 가능한 부대 수준으로 표기되어 여단장, 사단장, 군단장, 야전군 사령관(2급 군사령관, 대장급), 전선군 사령관(1급 군사령관, 원수급)으로 구분되었다.)  

 

군단을 지휘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그것도 저 계급이 부족한 간부를 충당하기 위해 쾌속 진급시킨 계급이었다. 어떤 때는 1938년에 참모학교를 졸업하고 대위가 되어 사단 참모장교로 배치되고 보니 사단장부터 예하 연대장들까지 전부 숙청당한 상태라 대위가 사단 최선임자여서 월 단위로 진급을 거듭한 후 부임 2~3개월차에 대령으로 사단장이 된 경우도 흔했다.

 

더 불쌍한 건 사단장이 되고 나서 숙청의 칼날에 걸린 자들도 상당히 많다는 것. 참모였을 때 잡혀갔으면 수감으로 끝날 것을 사단장으로 잡혀가는 바람에 뒤통수에 바람구멍이 뚫린 사람도 꽤 많다고...



여담이지만 스탈린의 라이벌 아돌프 히틀러는 군부 대숙청을 매우 부러워했다고 한다. 

 

프로이센 출신 장교단이 자신의 말을 잘 안 따라서 전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 히틀러는 "스탈린처럼 군부의 고집불통 짬밥들을 모조리 숙청해야 했는데... 그래야 그처럼 군부를 수족처럼 부릴 수 있었을 텐데..." 라고 스탈린을 부러워했다고 한다.

 

물론 히틀러의 망상과 달리 실제로는 독일 육군이 승승장구한 이유 중에 그 군부 고위 장교들의 높은 숙련도 덕분이 굉장히 컸으니(여기서 실제론 몇몇 장군은 1차대전식 개념을 벗어나지 못하긴 했지만, 대부분 다른 나라들보단 훨씬 혁신적인 교리 연구 및 이해에 충실했고 유능했다.)  숙청을 따라했으면 더 빨리 패망했겠지만...



스탈린이 시시콜콜 간섭했던 독소전쟁 전반기와는 달리 후반기엔 간섭을 자제하여 소련군이 창의성 있게 잘 움직여 나간 건데 히틀러는 정반대로 해석했던 것.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이후 히틀러는 정말로 그를(스탈린) 따라했다. 암살 미수사건에 가담했다고 여겨진 장교들이 전선에서 소환되어 과장되거나 짜맞춘 결론으로 처형되었다.

 

그런 숙청재판을 주재한 재판관 롤란트 프라이슬러를 히틀러는 "프라이슬러는 우리의 비신스키(모스크바 재판의 수석검찰관)_     다"라며 스탈린식으로 숙청할 것을 주문했다.



결국 군부의 경우 위에서도 말했듯이 당연히 수 많은 유능한 군인들이 좌천되거나 처형당하고 살아남은 장교들도 소극적으로 작전에 임하게 되었고, 그 결과 소련군의 급격한 약체화를 불러와 겨울전쟁과 독소전쟁 초기에 신나게 얻어터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거기다 이 숙청은 군인 뿐 아니라 소련 각계각층 인사와 민간인까지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파장이 대단히 컸다.

 

고위층 장교 한 명 잡아 없애기 시작하니 가족 관계며 친분 관계까지 사다리 타고 계속 내려오는 걸 거의 다 가지 쳤을 정도. 부모가 잡혀가면 그 다음에 남은 아이들은 대체로 인민의 적의 자식들을 수용하는 고아원으로 이송되었고, 성인이 된 뒤에는 사실상 유형지나 다름 없는 시베리아의 도시들에서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약 받은 채로 살아가야 했다.

 

니콜라이 예조프의 딸도 숙청 당한 뒤 이 테크를 탔다. 그러나 흐루쇼프 시대, 숙청 희생자들에 대한 복권이 이루어졌을 때 이들 중 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 거주권을 발급해주는 보상도 이루어졌다고 한다.

 

참고로 투하쳅스키 원수의 경우 아내와 형제들까지 모두 처형되는 멸문지화를 당했다. 딸은 고아원으로 갔다.



역사가들의 조사에 따르면 대숙청 직전인 1934년 17차 전당대회 참석자 명단에 실린 대의원 1966명 중 1108명이 체포되고 그 반 이상이 불귀의 객이 되었다.

 

또한 당 최고기관인 중앙위원회 위원 139명 중 110명이 처형당하거나 xx 또는 의문사했다.

 

당시 모스크바의 당 간부용 아파트 단지에서 대숙청 종결 때까지 가장이 무사히 남아있던 가구는 겨우 두 가구에 불과했다는 소름끼치는 전설이 있다.



반혁명 즉결 재판을 통해 유죄선고를 받은 사람만 해도 겨우 2년 동안 1,345,000명에 달한다. 게다가 정확한 숫자는 아직도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심지어 소련이 멸망한 뒤 공개된 비밀해제 문서들에는 각 마을과 시마다 인구비율당 체포 할당량을 주기까지 한 것이 드러났다.

 

그런가 하면 2차대전이 한창이던 때와 종전 후에도 별의 별 꼬투리를 다 잡혀서 끌려간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희생자 숫자는 더 많아지는데 대전 후 중국에서 벌어진 문화대혁명,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킬링필드 등과 함께 일당독재 국가가 막장테크를 타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려주는 사례인 셈.

 

다만 흔히 알려진 2000만 명이 죽었다(경우에 따라서는 4000만까지도 간다)는 주장은 사실과는 다르다.

 

실제로 대숙청으로 죽은 사람의 수는 60만 명에서 200만 명 사이로 보고 있으며 90만에서 130만 명 사이로 보는 게 정설이다.



아무튼 이런 막장행위를 주선한 스탈린도 인재 부족에 대한 인식+예조프에 대한 견제의식+그외 잡다한 생각으로 인해 이 숙청을 완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고 1938년 '스탈린의 깨새끼' 예조프를 자르고 NKVD 장관에 '스탈린의 힘러' 라브렌티 베리야를 임명한다.

 

예조프가 스탈린의 눈 밖에 난 결정적인 사유는 볼쇼이 극장에서 열린 NKVD 설립 20주년 기념식에서 예조프는 마치 자신이 주인공인 양 행세했고 그때 참석한 스탈린은 이를 보고 그의 정치적 야심을 의심, 숙청할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결국 1940년, 스탈린은 예조프를 처형해버린다. 즉, 숙청 담당자가 너무 숙청했다고 숙청당한 것으로 이 대숙청은 대미를 장식한다. 물론 대숙청의 후폭풍은 별개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밀한 의미에서 숙청이 완전히 끝났다고 할 수는 없었다. 1939년 발트 3국이 소련에 합병되자 그곳에 있던 수많은 지도층 인사들이 베리야에게 숙청되었다.

 

그리고 포로로 잡힌 폴란드 장교들을 대거 처형한 카틴 학살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참고로 대숙청을 감독한 이가 베리야로 잘못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베리야는 예조프가 남긴 후유증을 뒷수습했다.

 

물론 그렇다고 베리야가 착한 놈은 절대로 아니며 전쟁 기간 동안 베리야의 손에 죽어나간 사람은 예조프와 맞먹을 지경이다.

 

스탈린식 정치는 베리야조차도 너무하다고 생각했는지, 베리야는 스탈린 사후 스탈린 노선을 폐기하는 정책을 펴지만 결국 니키타 흐루쇼프와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하고 처형당했다.



이렇게 예조프가 토사구팽당한 이유는 대숙청의 여파가 소련에 얼마나 심각했던지 누구든 이 책임을 져야 했고 이는 곧 지도자인 스탈린에게 돌아올 판이었다.

 

베리야는 취임 후 솔직히 공안기관의 오버를 인정하면서도 그걸 모두 예조프 탓으로 돌렸다.

 

그러니까 베리야는 막장으로 치달아 국가에 큰 해를 끼친 대숙청의 책임론에 대해 스탈린에 대해 실드를 쳐준 건데, 예조프를 임명한 것은 스탈린이기 때문에 스탈린이 그 책임에서 피해갈 수 없다.



이 대숙청이 가져온 가장 큰 불행한 유산은 소련인들을 모두 명령과 규범에만 기계적으로 순종하는 로봇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상부 지시 없이 훈련을 했다는 이유로 장교가 숙청되는 막장스러운 상황에서 다들 살아남기 위하여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다.

 

이런데 혁신적인 아이디어, 자발적인 도전 등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어떤 분야든 끊임없는 도전과 실패 그리고 피드백이 계속돼야 하는데, 모두 상관의 입만 쳐다보고 아무것도 안 하는 상황에서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이상.  끝.. 제 10편에서 계속~~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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