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삼성전자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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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청와대로 들어갔다. 박 대통령은 내게 말했던 대로 이 회장에게 “중화학공업에 손을 대면 어떻겠습니까”라고 했다. 이 회장이 “중화학공업이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십니까”라고 묻자 박 대통령은 “조선이나 자동차, 전자공업 중 하나를 해보십시오”라고 제안했다. 이 만남이 계기가 돼서 이 회장은 전자공업을 채택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삼성전자다.
이병철 호암자전에 삼성전자 설립과 육성은 박정희의 지시라고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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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은 <호암자전>에 “그들을 설득하다 못해 부득이 대통령에게 직접 전자산업의 장래성을 설명하여 이것은 국가적 사업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더니, 즉시로 전자산업 전반에 관한 개방 지시가 내려 삼성전자공업의 설립을 보게 되었다”고 적었다. 대통령과의 독대를 통해 업계의 반발을 무마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밝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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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대한민국의 전자산업이
1967년의 닭까지 마시오와 돈병철의 청와대 회동에서
닭까지 마시오가 지시하고, 삼성의 돈병철이가 이를 잘 수행해서
대한민국의 전자산업이 꽃을 피우고 성장한 것처럼 써 놓았네?
그리고 그 근거라는 것이
삼성이 돈병철이를 미화하기 위해 만든 '호암자전'이야?
뭐 이런 쌩등신이 다 있어?
대한민국의 전자산업이 시작된 것은
1959년 금성사 (현 LG)가 진공관 라디오를 설계하고 생산한 것에 기원을 둔다.
이때 생산된 라디오가 히트를 쳤고
1962년 정부가 "논어촌에 라디오 보내기 운동"을 펴면서 급성장을 했다.
1967년이 아니라 1959년부터.
그리고 금성이 라디오를 비롯해 1960년에 선풍기를 생산했는데 이것도 대히트.
1963년부터는 흑백TV 생산을 준비했는데
닭까지 마시오 정권은 전력 수급 문제를 이유로 부품 수입을 금지해서 TV 생산을 못하다가
1965년 말에야 TV 생산 허가.
금성사가 최초로 YV 생산 판매한 것이 1966년.
이런 식으로 금성사가 전자 제품으로 돈을 쓸어담자
돈냄새 맡는 것에는 도가 튼 돈병철이가
청와대에 들어가 자기도 전자산업에 참여할테니 금융을 지원해달라고 애걸복걸해서
닭까지 마시오의 지원하에 뒤늦게 전자산업에 참여.
하지만 뒤늦게 참여했기 때문에 기술 격차 극복이 안됨.
이런저런 방법으로 금성사 기술 훔치기에 혈안.
금성사 협력업체를 끼고, 금성사 생산 라인을 둘러보며 생산 기술을 훔치고
구미 TV 공장과 창원 공장 정문 근처에 직원을 상주시켜서
하루 출하량이 얼마나 되는지 카운트하느라 눈이 시뻘개졌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금성사를 따라잡으려고 애를 썼으나
1980년대 중반까지 계속 뒷꽁무니 졸졸.
1980년대에 칼라 TV 생산이 시작되었는데
삼성은 일본으로부터 기술과 금형을 몽땅 들여와서 국내에서 찍고 조립해서 판매.
핵심 CRT는 일본에서 직수입.
국내에서 CRT 개발하고자 했으나, 일본에서 기술 제공 거부.
CRT의 핵심이 전면부 Shadow Mask 생산.
일본은 금형 제공도 거부.
삼성은 자체 개발 시도했으나, 금형 개발 실패.
외주 처리를 시도했으나 이것도 실패.
결국은 자체 설계 및 금형제작을 하던 금성사에 Shadow Mask 금형 제작을 의뢰.
마음씨 좋은 (등신 같은?)은 금성사는 이를 수락.
창원 금형사업부에서 금형 설계하고 제작하여 삼성에게 건네 줌.
이런 실정이었는데
마치 닭까지 마시오와 돈병철이가 대한민국 전자산업의 아버지인 것처럼 지껄여좋았네?
뭐 이런 등신이 다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