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박원순) : 도대체 얼마나 되는 돈을 갖고 있나요?
답(구로카와 지마키) : 1974년 이 재단 창립 당시 도요타자동차가 출연한 30억 엔, 1980년 추가 출연 40억 엔, 그리고 다시
1995년 50억 엔, 1998년 50억 엔, 1999년 30억 엔이 이루어졌는데 거기에 이자와 수익이 더해져 지금 총 자산은 310억 5천만
엔 정도 됩니다.
문 : 그럼 누가 돈을 낸 건가요. 도요타자동차인가요 아니면 그 오너인가요?
답 : 자동차 쪽이지요.
문 : 한국에서는 상속세의 면탈 수단으로 공익재단을 만들어 출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여지는 없었나요?
답 : 개인이 낸 것이 아니라 회사 수익의 일부를 출연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문 : 재단에 대해 여전히 기업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 않나요?
답 : 물론 도요타자동차에서 출연한 재단이기 때문에 전혀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고야 할 수 없겠지요. 회장 역시 창립자 가족 중의 한
사람(도요타 다쓰로)이지요. 그러나 99% 는 독자적으로 움직인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재단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에이지 전
회장이 20여 년간 회장으로 있으면서 재단에는 기업이 절대로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한 영향도 있고, 더구나 도요타자동차 자체적으로 사회공헌팀이
있어서 거기서 여러 가지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구태여 재단에 요청할 일도 많지 않아요. 게다가 우리는 강직한 이사진과 각계 인사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있어 독립성의 전통을 확보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문 : 어떤 사람들이 이사진으로 있나요?
답 : 과거 일본변호사연합회장과 도쿄 대학 총장을 지낸 기무라 나오사부로 선생이 이사장이고, 이사들도 대부분 교수들입니다. 일본 NPO
센터 대표이사도 이사로 들어와있습니다.
문 : 도요타자동차에서 와 있는 분은 없나요?
답 : 현재 도요타자동차의 상담역, 명예회장, 고문 세 분이 들어와 있습니다만 대체로 명예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 : 그럼 아무래도 영향력을 미치지 않을까요?
답 : 이미 이 재단은 30년 가량을 활동해 오면서 지원의 영역과 원칙이 서 있고 제 3자적인 선정위원회에서 지원 결정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독자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 : 어떤 분야에 지원을 해왔습니까?
답 : 도요타 재단은 크게 보면 세 가지 분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연구 지원과 시민활동 지원, 그리고 동남아시아 관련 프로그램입니다.
주력 분야는 역시 연구 지원인데, '다원적 가치사회의 창조'라는 기치 아래 다양한 문화의 상호이해, 새로운 시민사회의 구축, 시민사회시대의
과학과 기술에 관한 학술연구를 지원하는 것입니다. 시민활동 분야는 사실 아무도 시민 섹터의 중요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던 20여 년전부터 시작된
지원입니다. 금년에는 시민활동 지원에서 2,000만 엔, 시민사회 프로젝트라고 하여 시민단체, 전문가들의 연구활동에 금년에만 1,500만 엔을
사용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 프로그램은 그 지역에 활동중인 지역단체들에 대한 지원과 연구교류 지원, 인도네시아 소장학자 지원, 번역출판
지원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아시아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동남아시에 지속적으로 지원을 하는 것이지요.
문 : 그렇게 지원한 돈이 얼마나 되는가요?
답 : 1999년에 지원한 금약이 301건에 42억 엔 정도 됩니다. 한 해 전인 1998년에는 296건에 43억 엔 정도,
1997년에는 263건에 역시 43억 엔 정도 됩니다. 더 늘어나지 않은 것은 경기침체로 이율이 낮아서인데 경제가 좀 나아지면 지원금도 늘어날
것으로 생각됩니다.
문 : 동남아를 지원하는 것은 현지 NGO 에 직접 지원하는 건가요, 아니면 일본 NGO 를 통해 지원하는가요?
답 : 저는 일본의 NGO 에 대해 아직 충분한 신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운영이나 모금에서 아직 충분하게 성숙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우리가 직접 동남아의 NGO 들로부터 신청을 받아 선정을 하고 있습니다.
문 : 신뢰를 갖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요?
답 : JANIC 이나 JVC 는 자신만이 국제협력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지나치게 자만심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NGO,
정부, 재계의 3자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긴급인도지원 조직체인 JAPAN FORUM 이라는 것이 생겼는데 JVC 는 이것에 반대했습니다. 정부나
재계의 지원에 대해 지나치게 몸을 사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문 : 일본에는 '기업시민'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거기에 관해 쓴 책도 본 적이 있는 이게 무슨 말인가요?
답 : 기업도 엄청난 숫자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고 이들은 시민이기도 하지요. 기업이 이들의 자원봉사활동을 지원하거나 스스로 기금을
모아 시민사회에 기부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것을 일러 기업시민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웬만한 기업이라면 사회공헌부가 다
생기고 있고 기업들의 연합체인 경단련도 '1%클럽' 이라는 걸 만들어 수익의 1% 를 사회에 기부하는 기업들을 장려함으로써 이러한 시대적 조류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문 : 사무국장님도 도요타자동차에 오래 근무하다가 이리 이전하였다는데?
답 : 그렇습니다. 32년간 도요타자동차에서 근무하다가 이리로 옮겨 이제 7년여 되었는데 처음에는 사실 적응이 잘 안 되었지요. 사업의
일선에서 치열하게 사는 입장에서 보면 재단 업무가 별로 신통치 않아 보였고 더군다나 연구하는 분들이 영 마음에 안 들었거든요. 그런데 와서 보니
그분들의 역할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고 특히 민간영역, 시민운동이 앞으로의 역사를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화가 된 것이지요. 지금은
큰 보람을 갖고 삽니다.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아무리 독립된 재단이라고 하더라도 역시 기업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자율성을
강조하는 시민단체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내가 진짜 완전 독립되어 있는 미국의 포드나 카네기 등의 재단과 완전히 계열사처럼
되어 있는 한국의 예를 들었더니, 그는 그럼 도요타 재단은 그 중간쯤 되겠다고 하였다. 그렇다고 해도 그는 시민단체의 행사에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다. 대기업의 재단 관계자가 시민단체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한국에서는 별로 없는 일이다. 성숙한 시민사회는 기업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환경의 변화다. 소극적으로 끌려가기보다 그러한 시대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려 하는 일본의 사례를 보면서 우리 기업도 좀 배워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