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38·여)씨는 2001년 한국에서 공장을 다니던 파키스탄인 A(44)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김씨는 “결혼하자”는 A의 청혼을 받아들여 같은 해 혼인신고를 했다. 결혼 6년째에 접어들던 해, 남편은 본국에 자주 갔다. 의심이 든 김씨는 연락처를 수소문해 파키스탄을 찾았다. 알고 보니 파키스탄 현지에는 남편과 10년 전 결혼해 자녀 다섯을 둔 ‘또 다른 아내’가 살고 있었다. 다섯 자녀 중 두 아이는 김씨와 결혼한 이후 낳은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김씨는 혼인 무효 소송을 냈다.
법무부는 19일 국내에 합법적으로 체류하기 위해 한국인 여성과의 결혼을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인과의 결혼으로 합법 체류 자격을 취득한 외국인은 2006년 2827명에서 2009년 7275명으로 급증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 중 상당수가 의도적으로 체류 자격 획득을 노리고 한국 여성과 결혼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외국인고용법은 외국인 노동자의 체류 기간을 3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과 결혼하면 합법적으로 장기체류 자격을 얻을 뿐만 아니라 2년 뒤엔 국적도 취득할 수 있다.
의도적으로 정신장애가 있는 여성과 동거해 국적 취득을 노리는 사례도 있다. 국내에 5년째 불법 체류 중이던 방글라데시 출신 B(41)는 지난해 초 기차역에서 가출한 여성 정모(30)씨와 마주쳤다. 정씨가 정신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안 B는 정씨에게 햄버거와 신발을 사 주며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동거 3개월 만에 둘은 혼인신고를 했다. B는 손쉽게 장기체류 자격을 얻었다.
법무부 출입국기획과 안규석 사무관은 “방글라데시 현지에 ‘나이가 많거나 혼자 사는 여자, 정신지체자를 집중 공략해 임신시키라’는 정보가 돌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여러 여성에게 한꺼번에 청혼하는 황당한 사례도 있다. 불법체류자 보호소에 수용돼 있던 방글라데시 남성 C(39)의 따뜻한 편지와 선물에 감동한 한국인 여성 윤모(44)씨는 결혼을 상의하기 위해 C를 찾았다가 당황했다. 이미 C와 결혼을 약속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을 면회소에서 만난 것이다. 윤씨는 C와 결혼하기 위해 원래 남편과 이혼까지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국내 취업을 희망하는 외국인이 늘면서 한국인과의 결혼을 체류 연장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엄격한 심사를 통해 이를 단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혜진 기자
홍혜진 기자 [hjh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