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 이후 제2공화국 시기, 한국전쟁때 민간인 학살(보도연맹 사건을 비롯해 거창 민간인 학살 사건, 나주 경찰부대 학살 사건 등등) 진상조사를 위해 유족들이 결성한 유족회가 있었는데, 박정희가 5.16 쿠테타 일으키고 집권하자마자 '혁명재판'의 이름으로 이 분들을 싸그리 잡아들이고 그리고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 진상조사(그러니깐, 죽은사람들 유해,뼈 찾는 활동하는거 자체를 '죄'로 규정,) 하는거 자체가 북괴에 이익을 주는 이적행위'라고 규정짓고 유족회에 계신분들 전부다 싸그리 사형 내지 무기징역, 20년 징역등 때렸죠..
(여기에는 국군에의한 민간인학살뿐만 아니라 심지어 인민군에의한 민간인학살 피해자분들도 같이 포함시켜서 그저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활동행위 자체를 '죄'로 만들어낸게 박정희였습니다. 죽은사람들 뼈자체도 못찾아가게끔 만들어낸거죠. 그래서 민간인 학살 자체에 대한 진상규명 조사가 오랜기간동안 '금기'의 영역으로 묶여버렸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청산 위원회(이거 정부. 국가기관에서 조사한 자료입니다.)에서 직권조사, 작성한 보고서 내용들 쭉보면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극심했는가를 잘 나타냅니다.
재판 과정에서 너무 억울했는지 어떤 유가족 한 분은 법정에서 손가락 깨물고 자해하는 일까지..(손가락 깨물고 자해했던 이 유가족 한분은 뒷날 재심해서 무죄로 판결, 명예복권되셨습니다.(http://v.media.daum.net/v/20101214100413275)
참고로 박정희는 'CIC 계통의 정보장교' 출신입니다. CIC방첩대는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과 매우 깊이 관여했었습니다.(당시 CIC 방첩대장이 김창룡)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및 유해들 수습하는거조차 '죄'로 몰아갔던 시절이었습니다. 철저히 은폐하고 금기시했던것이었고, 죽은자는 말이없고, 가해자들은 죽은자들 향해서 '인민군 부역자들이니 단죄한거다'이렇게 몰아간거죠.
제가 기존에 서양사(독일 중심 유럽사)에 관심가지다 한국현대사에 관심가지고 깊이 연구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이 사건 접할때였습니다. 나치의 유대인 홀로코스트는 멀리있지않습니다. 우리나라에 전국구로 깊이 퍼져있습니다. 학살의 주체가 국군이든 인민군이든 떠나서 한국전쟁 자체가 민간인학살. 아주 극심했습니다. 그만큼 비극이었구요.
보도연맹에 대해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 시기까지만해도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수록(적어도 그 이명박 정부도 보도연맹에 대해서는 정부의 과오라고 인정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조차도 검정교과서 검정기준에 보도연맹 사건 기술하는거 자체는 그대로 뒀어요.)되곤했는데, 현 박근혜 정부 오면서 이 보도연맹 관련한 내용은 싹 사라졌더군요..(국정교과서에서 현대사 부분 다 찾아보곤했지만, 보도연맹 관련한 기술 단 한줄도 못봤습니다.)
역설적으로말하자면 극우쪽 사람들이 봤을때도 이건 언급하는게 부담감이 크다는걸 간접적으로 시인한 부분이라고 그렇게 봅니다. 극우세력들, 뉴라이트세력들조차 이 사건에대해서는 도저히 쉴드를 치지못하는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