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국제정치학 교수 "日, 대한민국의 외교(外交)실수 노리고 있다"
<포럼>日, 대한민국의 外交실수 노리고 있다
박인휘/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근대 인류가 경험한 혁명적 수준의 발달과 정신세계의 풍요함 한가운데에는 ‘국가이성(理性)’의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통상 국가이성에는 국가의 생존 강화를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는 마키아벨리적 관점과 동시에 인간들의 집합체로서의 국가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정당성의 기반을 중시해야 한다는 관점이 공존하고 있다.세계화 시대에 그물처럼 얽혀 있는 국제질서에서 어느 하나의 관점으로 외교행위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한 정부 이외에 수많은 사적 행위자의 등장으로 인해 그야말로 외교는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적 게임을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일본이 보이고 있는 일련의 외교 행태(行態)는 어떤 기준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27일에는 일본 정부의 군대위안부 강제 연행 책임을 인정한 ‘고노 담화’까지 부정하고 나섰다.첫째, 적어도 독도 문제와 관련한 일본의 기본 스탠스는 우리의 실수를 기다리자는 전략이다. 국제사법재판소(IJC)에 제소하겠다는 주장이나, 또 한국이 독도를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일본 중의원의 결의문 채택도, 결국은 대한민국의 반박논리를 유도해내서 그것을 분쟁지역의 근거로 삼겠다는 속셈으로 보인다.둘째, 일본 정부는 지난 21일 독도 문제와 관련한 구상서(口上書)를 우리 정부에 보내면서 사전에 언론을 통해 전달 시간까지 알리는 언론 플레이를 전개했다. 통상 외교가에서 그러한 서한 자체가 워낙 이례적인 일이지만, 그 같은 중차대한 외교행위에 국가이익의 본질과 무관한 고려는 한마디로 납득하기 어렵다.셋째, 언론 보도를 보면 올 하반기 자민당의 집권 가능성을 점치면서 노다 요시히코 내각이 독도 문제에 관한 한 더 이상 쓸 카드가 없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럴수록 일본의 외교 방식은 국내정치 상황과 깊이 연동돼 있다는 인상을 갖게 한다. 오늘의 외교를 ‘양면게임’이라고 부를 만큼 외교와 국내정치의 상호 의존성이 높아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다른 나라의 고유한 정체성 문제가 일본의 국내정치적 상황 변화보다 가볍게 여겨져선 안된다.사실 주변을 돌아보면, 이웃한 나라끼리 사이 좋은 사례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선진 문명국의 대표주자 격인 영국, 프랑스, 독일 등도 과거 영토 문제를 포함한 민족 고유의 정체성을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을 빚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도덕에 기반한 국가이성의 발현이 오늘날과 같은 안정적이고 공동체적인 유럽의 질서를 낳았다. 국제법은 전통적으로 관행(慣行)을 중시하고, 우리는 독도를 역사적으로는 물론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관계로 독도 영유권 주장과 관련한 전통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또한 일본이 불법 점유를 시작한 1905년 이전에 독도가 우리의 영토였다는 역사적 근거는 충분히 제시돼 있다. 따라서 논쟁을 계속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대한민국은 동북아시아 국가로서의 정체성이 그 어느 나라보다도 강하다.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이 우리의 국가이익을 실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라는 의미다. 동북아시아의 평화는 한국과 일본의 협력관계를 필연적으로 요구한다.하지만 보다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다이내믹한 동북아시아를 꿈꾸는 시점에 요즘 같은 일본의 외교 행태는 분명 문제가 있다. 오랜 경제침체가 쉽게 회복되지 않고, 한국과 중국의 성장이 이전과 달리 빨라지고 있으며, 후쿠시마 사태 이후 일본인의 마음 속에 관용(寬容)의 미덕이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외교적 협량(狹量)은 일본에 부메랑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일본은 결코 외교의 금도(襟度)를 넘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