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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 정전 60주년,포로들의 판이한 운명, 中 네티즌 반응
등록일 : 13-07-27 19:13  (조회 : 29,825) 글자확대/축소 확대 축소 | 프린트

짧은 번역 할려다 마침 중국에서 특집 기사를 냈네요.
다음 부턴 짧은거 할 생각입니다ㅋㅋ
 
 
 
휴전 60주년 포로들의 판이한 운명

전쟁.jpg


한국 전쟁중,국적이 다른 10만명의 포로가 생겼다.그들의 운명은 포로가 됬을때 탄피가 떨어져 전쟁은 끝났지만, 반면 다른 한쪽에선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됬었다.그들의 기구한 운명은 판이하게 달랐다.

 

연합군 포로는 호송되어 벽동 수용소로 옮겨져 중국 지원군이 관리했다.1953년 9월 쌍방의 포로 교환때,수용소에 있던 연합군 포로는 1만명이 넘었다.사진은 1950년 운산 전쟁중,중국 지원군 39부대에 포로로 잡힌 미국 병사들이다. 



중국과 북한 포로는 전쟁 초기 대부분 부산 수용소로 또는 거제도로 옮겨졌다.전쟁이 끝난후,중국과 북한 포로는 대략 10만명이였다.사진은 1950년 9월 25일,미군이 서울을 수복할 당시,시민 한명이 북한군 포로에게 발끼질을 하고 있다.(역자주,한국이 먼저 서울을 수복한걸로 아는데 미국에서 먼저 수복을??) 



1950년 8월 17일,북한의 303부대가 고지전에서 5명을 제외한 26명의 미군 포로를 총살했다.사진은 미군 생존자가 총살에 가담한 북한 군인을 지목하고 있다.지목과 동시에 사형이 집행됬다. 



전쟁 초기,수용소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다수의 연합군 포로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줄줄이 죽어갔다.1951년,휴전이 논의되자,벽동 수용소 상황은 호전되었다.포로들은 더 이상 굶주리지 않았으며,각종 오락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사진은 1952년 2월 16일,미군 포로가 수용소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벽동 수용소,포로들은 매일 약 6시간 수업을 받았다.사진은 두명의 병사가 삐라를 흩고 있다. 



남쪽 상황,연합군은 북한과 중국 포로들에게 개조활동을 시키고 있다.신부를 초정해 그들에게 사상 교육을 시켰다.사진은 1951년 1월 24일,거제도 수용소, 중국 지원군 포로는 한국 고아를 위해 양말을 만들고 있다.(역자주,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기사는 중국 기사입니다.제 의견이 아닙니다.) 



사진에 왼쪽은 연합군에서 나온 성경책이다.오른쪽은 지원군에서 나온 물건이다. 



해방전쟁중,중국 인민 해방군은 전 국민당 병사들을 재편성했다.오히려 미국과 대만은 역 이용할 기회를 얻었다.항복한 군인들은 미국과 대만의 결정하에,수용서 내에 지위권을 얻어 식량과 물자 배달을 조정했으며,심지어 북한과 중국 포로를 폭력으로 대했다.사진은 한 포로가 수용소를 탈출하려 들자,다른 포로에 의해 강제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불리한 환경속에,중국 포로들은 여러번 반발했다.그리고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 유명한 '거제도 사건'이다.1952년 5월,중국 포로들은 소용소 관리 하던 미국 사령관 토드 준장을 납치한다.토드 준장은 폭력을 시인하며,안전을 보장과 석방할 것을 밝혔다.'거제도 사건'후,미국측은 수용소 포로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다.사진은 1952년 5월 15일,지원군 포로가 기자회견에서 토드 준장이 안전 보장을 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1949년 맺어진 《제네바 조약》규정엔 전쟁이 끝나는 즉시 포로 전원을 송환 해야한다고 밝히고 있다.북한과 달리,미국측은 자신이 포획한 포로들이 중국과 북한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이들을 활용해 어떻게 이득을 얻을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이른바 '이데올로기 전쟁'이다.미국측은 포로 본인이 원하면 남을 수 있거나 또는 본국으로 돌아 갈 수 있다는 규정을 뒀다.북한과 중국 그리고 소련은 강하게 반대했다.전쟁이 끝나고 15개월 동안 송환 문제에 있어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다.1953년이 되자,쌍방은 송환하는데 협의했다.——60일 안에 본국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자는 본국으로 돌려 보내는 것으로,또는 중립국으로 송환이 결정됬다.어디로 갈지 90일의 시간이 주어졌다. 



포로들이 본국으로 송환을 거부하기 위해,연합군은 중국 포로들이 반공 표어를 입혔다.심지어 몸에다가 대만 국기를 세기게 했다.사진은 1953년 9월 27일,지원군 포로들이 판문점에서 자신의 몸에 세기지 말라며 연합군쪽을 향해 항의하고 있다. 



사진은 1953년 9월, 중국 포로들이 송환되고 있다. 



사진은 1953년,송환된 북한 여성 군인들이 대규모로 미군의 행위를 폭로하고 있다.(역자주,다시 한번 말씀 드리지만 이 기사는 중국 신문입니다.절대 제 의도는 아닙니다.마오쩌둥 개객이,김일성,김정일,김정은 개객이,공산당 개객이) 



송환된 병사가 송환해준 미국 기사를 때리려 하고 있다. 



지원군 포로중 3분 2는 대만으로 향했다.그 외에 소수는 중립국인 인도를 신청했다.사진은 1954년,대만으로 가는 지원군 포로이다. 



사진은 1953년 6월 26일, 부산, 한 여인이 한국에 남기로 결정한 북한 병사에게 불을 붙여주고 있다. 



사진은 1953년, 한 미군 포로이다——존 데니스 송환 현장에서 자신의 이름이 미군 포로 명단에 없다는 걸 확인하자 망연자실하고 있다. 



연합군 포로들은 대부분 본국으로 송환됬다.사진은 1955년 2년간의 포로 생활을 끝낸 미군 파이럿인 하워드 피셔 중위가 집에 돌아오자 침대 위로 뛰어 나르는 모습이다. 



사진은 1953년, 북한의 포로였던 영국 병사가 본국으로 돌아와 부인과 환여의 키스를 하고 있다.. 



연합군 포로들은 각자 다른 길을 선택했다——한국군의 300명 포로들은 북한으로,미국군 21명은 중국으로 선택했다.미국 병사들이 중국을 선택하자,미국에서 강하게 항의했다.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손가락질 하며 반역자라고 했다.그러나 중국을 선택한 이유는 당시 미국 내에서 극단적인 반공인 매카시즘과 냉전 분위기가 강했었기 때문이다.사진은 1954년 1월 26일, 판문점, 호킨스와 그 외 2명의 병사들이 중국행을 선언했다. 



사진은 1954년 1월, 본국으로 송환을 거부한 5명의 미국 병사들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트럭 옆에 표어는 '우리는 평화를 위해 남을 것이다.'(역자주,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공산당이 싫어요.) 



중국으로 간 알렉스 페이퍼는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냈다.'미국에선 절대로 평화를 위해서 싸우지 않을거에요.평화를 위해 싸우자고 주장 하는 자는 고발 될것이며, 목숨을 잃을겁니다.'사진은 1953년, 페이버 가족이 그가 보낸 편지를 읽고 있다.(역자주,세뇌교육 ㄷㄷ해.또 한번 말하지만 전 공산당이 싫어요!!)



전쟁 포로중 한명인 클란스 아담스는 아프리카계 미국 병사다.그가 중국을 선택한 이유는 인종 차별을 꼽았다.중국에 온후, 우한대학에서 수학 했다.그리고 학교에서 알게된 동기생과 결혼했다.1966년 중국 국내 정치가 소용돌이 치고 있을때,그는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갔다.이미 '반역자'라는 블랙리스트에 올라와 있던터라,그의 미국 생활은 하루 하루 힘들었다.중국에 남아 있던 사람들도 각 종 이유로 미국으로 돌아가거나 타국으로 갔다.오직 한명만이 중국에 남아 생활하다 2004년에 세상을 떴다.사진은 1966년,클란스 아담스와 그의 가족이 미국으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지원군 병사인 장경천을 모델로한 영화《영웅아녀》중,대만식 단어인'나를 향해 쏴라'는 영웅 왕청의 구호로 기억되고 있다.그러나 영화에서 자기를 희생했던 내용과는 달랐다.장경천은 미군 포격을 받고 생포 당한다.생존하기 힘들었던 포로 생활을 끝으로 국내에 돌아왔지만 온갖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결국 1981년 당의 처분에 따라 탈당 조치를 받게 된다.사진은 2013년 1월 22일,강경천 랴오닝성에서 찍은 사진이다.왼쪽은 장경천의 군인증이다.  



본인이 선택하여 본국으로 돌아갔거나 혹은 다른 나라로 망명한 포로외에도,선택권이 없어 남게 된 포로들도 존재한다.사진은 한국 전쟁중 포로였던 한국 병사 한명이 탈북하여 2003년 한국으로 돌아왔다.이 병사는 21세때 병사가 되어,72세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그가 말하기를,전쟁이 끝난후 수많은 포로들이 명단에 없어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체 북에 남게 됬다고 밝혔다. 
 
 
 
 
추천수가 많은 순위부터 번역했습니다.

----댓글 반응----



腾讯无锡市网友 勇往直前
역사의 전쟁은 매우 가혹하다.전 세계 사람들이 이 시대를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평화를 사랑하자! 우리 다 같이 살기 좋은 시대를 만들자!



腾讯南京市网友 极限战士
할아버지 보고 싶다.할아버지가 08년에 돌아가셨어.그는 한국 전쟁에 참여한 공병이야.우리 할아버지가 대단한거 같애.그럴 수록 그가 그립다.



腾讯网友 风哥也疯狂
우리는 조국과 인민을 위해 청춘과 목숨을 받쳤던 당신들을 영원히 잊지 않을겁니다.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고향에 오셨을때,조국과 인민들은 당신들을 또 한번 잊지 못했습니다.당신들은 우리 조국과 인민의 수치가 아닌,인류 평화를 위해 싸우셨으며,조국의 안위를 위해 싸웠습니다.당신의 몸이 불구가 된다한들 우리는 영원히 당신들을 사랑할 것이며,잊지 못할 사람들입니다.(역자주,손발이 없어질 뻔 했어요...)



腾讯恩施州网友 偷着乐
역사를 볼때,자세히 살펴 봐야 한다.그래야 똑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으니깐.이것으로 인류의 역사는 또 한번 진보하는 거다!



腾讯网友 /mg香思
이건 전쟁이였지 미술이나 정치가 아니였다.



腾讯昆明市网友 水绒
전쟁은 정말 비극이다.사진만 봐도 죽음의 공포를 느낄 수 있다.신체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우리들은 오늘의 생활을 더 귀하게 여여야 할것이다.



腾讯网友 我要善良
냉전에 사용된 정치체계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요구했었다.시대는 반대로 당신들 전부를 희생의 댓가를 요구하고 있다! 역사는 당신들이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했던 과오들을 증명할 것이다.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는 현실을 똑똑히 볼것이며 두번 다시는 똑같은 일이 벌어져선 안된다!



腾讯网友 人淡如菊
나라를 지키기 위해,우리 아버지도 한국전쟁에 참여 했다.산강링구에서 부상을 입어 장애인이 되었다.뭐라 할말이 없다.다만 전쟁이 다시 한번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腾讯韶关市网友 粤北楚国人の
전쟁은 어디에나 있다.아니 볼 수도 있고 못 볼 수도 있다.전쟁은 이득을 쫓다 나타난 최종 결과물이다. 
 
 
 


번역기자:아놔짜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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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하드 13-07-27 19:18
   
한국전쟁이 마지막 세계급 전쟁이였으면 좋겠습니다.
이상태로 대규모 전쟁이 또 터지면 아마 사람 뿐만 아니라 자연 동물들도 다 죽을테니
     
회색도시 13-07-27 22:01
   
명언 입니다.
     
통일하고파 13-07-27 22:04
   
하지만 그후 더큰 전쟁인 베트남전쟁이나 다국적군이 공격을 한 이라크는 뭔지요..
          
천년의시 13-07-28 07:50
   
그 쓰레기들이 한짓은 폭동으로 인식해야죠 ㅇ
감디 13-07-27 19:19
   
흠,,,
mymiky 13-07-27 19:33
   
엊그제 목요일, 금요일 KBS파노라마에서 재일의용군 할아버지의-내딸 미요코/ 미군포로들을 다룬 작품이 연달아 방송하더군요. 일본에 있다가 조국에 전쟁이 났다고 전쟁을 지원했는데, 결국 돌아가지 못하신 할아버지가 일본에 두고온 딸을 찾는 이야기였고, 미군들이 수용소에서 경험을 다룬 내용이였는데
상당히 짠하고 하여간, 볼만했습니다. 장진호 전투가 몹시 추워서 많이 얼어죽었다는 것과
포로수용소에서 올림픽이 벌어졌다는거, 중공군의 모택동 사상의 강제주입.. 저기 위에 공산국가라서 평등할꺼라고 생각하고 중국으로 갔던 미군들이 현실에 실망하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온 이야기.. 등등..
추천합니다. 케베스 홈피에서 재방송으로 보세요..
푼수지왕 13-07-27 19:40
   
거제도 포로수용소 상황이 참 기가 막혔음.  UN군이 식량배급해주는 거 먹고 포동포동 살이찐 북한군 포로들이 자체로 식량해결이 힘들어 비짝 마른 한국군 경비병들에게 '이 거지 새끼들아! 우리한테 절하면 이거 주마!'하고 배급받은 고기 흔들고 놀려대는 일이 벌어졌던.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 하며 포로식량 배급하는건 유엔군 소관이었지만 한국군의 식량사정은 한국군이 해결해야하는 판이었으니 그런 희극이 벌어졌었음.
포로수용소장인 도드준장이란 자는 북한군을 무슨 인디언 보호구역에 끌려온 인디언쯤으로 알았는지 멋도모르고 포로수용소 안으로 경비도 제대로 안데리고 들어갔다가 북한군 포로들한테 되려 포로가 되는 세계사에도 드문 일이 벌어졌음. 
물론 포로수용소내의 주동자들에게는 계속 북측의 지령이 날아갔고 그대로 움직였고... 자체내에서 공산포로와 반공포로로 갈라져 심각한 폭력사태가 벌어졌고... 새벽이 되어보면 포로수용소 막사앞에 시체가 내던져있는 모습이었던.
결국 미군은 포로가 된 도드를 해임하고 포로수용소를 탱크를 앞세우고 무력으로 밀고 들어가서 폭동사태를 진압을 시켰음.
푼수지왕 13-07-27 19:42
   
UN군에게 포로가 된 건 그렇고 그 반대의 경우.
북한군에게 포로가 된 국군이나 UN군들은 고문이나 폭행등의 심한 가혹행위를 당하는 일이 많았고
반대로 중공군은 포로대우를 북한군에 비해서는 잘해준 편이었음.

하지만 역시 이들 역시 북한의 일방적인 선전을 그대로 인용하는 모습을 보니 동맹은 동맹이구나 싶은....
투애니원 13-07-27 19:43
   
잘 보고갑니다..
넌몰라도되 13-07-27 19:44
   
아놔짜증나님인줄 알았다는....(나 님팬)
예상은 했지만 ....참 적나라하네요.
예상치 못한 선택을한 (한국쪽의)포로들의 삶을 보여준적이 있는데. 저사람들 특히 (중공쪽의)양키들의 그후의 삶이 궁금하네요. 너무 감사히 잘봤습니다.
Schwarz 13-07-27 19:47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기레기는 어디나 차고 넘치네
지들 유리하게 북한 수용소 얘기는 겉만 핥고 연합군 수용소의 내용만 더럽게 써놨네
미화실력이 일본못지 않아
아놔짜증나.
     
회색도시 13-07-27 22:05
   
맞는 말입니다.
고퐁빛독을 13-07-27 19:52
   
공산권 지들이 일방적으로 일으킨 전쟁 6.25 구만. .

전범들이 피해자 코스프래하는거 보소. 

반성을 해도 모자랄 판에.  .  . 완전 뻔뻔하네요.  쪽발이나 짱개나. ㅉㅉ
겔겔겔 13-07-27 19:57
   
파노라마에서 미군 포로들을 다룬 다큐를 했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면 찾아보세요.
미군 포로중에 몇분을 인터뷰했는데 그중엔  중국을 선택한 군인도 있습니다.
포로수용소 사정은 초반엔 매우 열악했다더군요.
북한이 관할할때까진 계속 열악했고 하루에 식량이 얼어붙은 감자 하나였다함.
이후 중공군이 관할하고 조금 편해졌는데 중공군은 대신에 체제 홍보를 했다함.
포로들한테 포로라고 안하고 학생들이라고 하면서 매일 교육시키는데 이때문에
포로간에 이념적으로 파가 갈리기도 했다함.

중간에 나온 흑인군인도 중국에 간 이유는 미국내 인종차별이였지만
중국을 떠난 이유 역시 인종차별 때문이였슴.
mr준 13-07-27 20:05
   
예전에 중국인이쓴 한국전쟁 중국포로에 관한 소설읽은적있었는데

대만을 택하지 않고
끝까지 신념으로 중국으로 돌아간 중국인포로들은
아이러니하게........포로로잡혔다는 구실로 ..........배신자의 낙인을 찍힌체 탄압을 받았음.....
大物 13-07-27 20:30
   
거제도 포로 수용소 사건은 우리와 중국측이 알고있는 사실이 좀 다른거 같네요.
전쟁직후 거제도에 북한과 중국포로를 17만명 수용하고 있었는데 수용소 내부에서도 공산주의자들과 반공주의자들의 파벌이 있었고 공산주의자들이 반공주의자들을 인민재판해서 수용소 내에서 100여명을 죽였죠.
이후에 미국인 수용소장을 납치하고 포로교환 정책에 반발하고 저항했던 사건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중국인들은
 떼로 모아놓으면 법도 질서도 사라지는걸 보면 떼놈들의 종특인듯.
지해 13-07-27 20:54
   
끔찍한 일입니다. 전쟁도. 포로도 ...
초롱 13-07-27 20:59
   
휴 !!!!! 아직도 아물지않는 전쟁의 아픔(분단의비극)이 언제나 가시려나...

아놔님 수고해주신 장문의 번역글(사진) 정독으로 잘 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
타샤 13-07-27 21:18
   
포로 교환 후, 한국에는 세가지 빨갱이가 생겨났지요.

1. 북한군에 잡혔다가 풀려난 한국군 빨갱이..
2. 거제도에 잡혔다가 한국에 남기로한 북한(혹은 중공) 빨갱이
3. 북한이 점령했던 곳에서 부역했던 빨갱이...

이 세 빨갱이는 이후, 연좌제에 걸려 대부분 열악한 삶을 살게 되요.

중국을 택한 미군은 이런 의미가 있는겁니다.

미국의 매카시즘이 바로 이런거니까요.
조금이라도 빨갱이에게 접근했으면(자의든 타의든) 그 놈은 빨갱이... 라는게 매카시즘이에요.

포로로 잡혔던 한국군도, 빨갱이가 싫다고 한국에 남은 포로 북한군도....
남한의 권력자, 기득권자에겐 그냥 빨갱이였고...

빨갱이와 연좌제를 이용해서 적당히 이용해 먹을 대상일 뿐입니다.
타샤 13-07-27 21:20
   
참고로 그 매카시즘에 입각해서 만들어진 법안이 국가보안법입니다.

거기엔 이런 내용이 있어요.

북한 주민과 접촉해서는 안된다(접촉하면 빨갱이니까)
북한 권역내에 들어가서도 안된다(들어가도 빨갱이니까;실수던 아니던)
해외에서 북한 주민을 접촉해도 안된다(접촉하면 빨갱이)
     
질질이 13-07-28 20:10
   
타샤님 매카시즘은 미국 반공 의원의 이름을 딴 반공히스테리 같은 겁니다. 매카시즘 하고 우리 국가보안법하고는 태생부터가 틀려요 제가 알기로는 국가보안법의 모태는 일제강점기의 치안유지법? 인가 하는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이 오해 할까봐
오캐럿 13-07-27 21:20
   
펜의 힘이란.. 저걸 본 중국인들은.. 일부 내용에선.. 백프로 의심치 않고 믿을 것 같기도..

//아놔짜증나/님.. 수고하여 주신 장문의 번역 정독으로 재밌게 잘 봤습니다...^^!
룡잉 13-07-27 21:48
   
진짜 감사하다..

남의 땅에와서 목숨걸고 싸워준다는게...
아기건달둘 13-07-27 22:43
   
잘보고갑니다
프리메이슨 13-07-27 22:58
   
그래도 야만적인 김일성의 군대보단 중공군이 훨씬 매너있었죠. 민가에서 잘일이 생기면 자기들이 헛간에서 자고 빌리는 물건이 있으면 꼭 사례를 하는 등등. 국공내전에서 민간인들의 지지를 얻어서 승리한걸 알고 그렇게했나 봅니다.
가출한술래 13-07-27 23:29
   
잘 보고 갑니다
공백이 13-07-27 23:41
   
중공군 쓰레기같은놈들이 참전만 안했어도 분단국가라는 타이틀도 없을테고 북한의 김씨일가도 없을테죠..
6.25라는 역사가 기억되고, 중국인들이 저런입장을 취하는ㅇ한 영원히 중국을 미워하고 차별할겁니다
stabber 13-07-28 00:45
   
그놈의 종교와 이념이라는 것 때문(물론 내면에는 독선과 탐욕이 깔려있지만)에 죽어나간 사람들...
김쫄깃 13-07-28 01:36
   
번역 잘 읽었습니다. 근데 본문 초반에 '호전적으로 변했다'는 표현은 문맥상 '호전되었다' 가 더 잘 맞을 것 같습니다.
자기자신 13-07-28 02:37
   
잘 봤어요
맥거리 13-07-28 09:03
   
전쟁 일어나서 만일 포로로 잡히면 조국도 아닌 가해국도 아닌 제 3국을 선택하라는 교훈이네요.ㅋ

그런데  영국은 저때도 이미 여자들이 트랜치코트 입고 있네요...
나와나 13-07-28 10:42
   
중공만아니였으면 허리가 두동강나는 일은 없었을텐데요
팜므파탈 13-07-28 11:18
   
잘보고갑니다 ㅎㅎ
가라시니 13-07-28 11:25
   
잘 봤습니다.재섭는 짱꼴라 새퀴들 땜에..
레몬과즙 13-07-28 14:10
   
잘보고갑니당
투애니원 13-07-28 15:12
   
이런참혹한 전쟁은 두번다시 일어나지말기를...
Joker 13-07-28 16:1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레이나♡ 13-07-28 23:50
   
잘보고갑니다!
오꼬미 13-07-29 03:35
   
아..사진하나하나가 왜이리 맘아플까요 송환목록에 자신의 이름이없다는걸듣고 망연자실하는 저모습은
특히나 맘아프네요
ckseoul777 13-08-01 15:18
   
아놔짜증나님 항상 재미있게 보고갑니다~수고하셨어요
통통통 13-09-12 09:03
   
번역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