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영국 BBC의 일본특파원 마리코 오이가 쓴 기사인 "일본의 역사교육이 빠뜨린 것"을 주제로 열린 토론 댓글들입니다.
이 토론에서 yuna 씨란 분이 등장하는데요, 한국계 미국인으로, 아래 보시면 이 분야에 대해 상당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으시네요.
거의 반대여론을 홀로 무찌르고 계시고 있습니다.
저 스스로 이 분야에 대해 많이 안다 여겼던 저였지만, 이번 번역을 하며 새롭게 깨달은 바가 많습니다.
즐독하세요~!
<아래 글은 미국인 블로거가 BBC 기사를 읽고 포스팅한 내용입니다.
댓글 논쟁중인 yuna 란 분과는 다른 순수 미국인 입니다.>
BBC 특파원 마리코 오이 씨의 기사를 우연히 읽게 되었습니다. 주관이 뚜렸하면서 신선한 기사였는데요.
한국에서는 물론 한국 밖에서도 교육을 받아 본 저로서 같은 경험을 한 마리코 오이씨의 생각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방식(왕의 이름과 년도
등을 외우는 방식)은, 케이스 별로 여러 자료와 근거를 들어 설명하는 방식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영국식 역사교육이 훨씬 학생에게 유익할 것이라는 점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오이 씨의 기사를 보면:
"내 친구 몇 놈은 11학년이 되던 해 세계사 수업을 선택 수강했다. 내가 일본을 떠나 호주로 가게된 것도 그맘때다. 당시 호주에서 처음 역사를 배웠을 때의 흥분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연대기 순으로 역사를 배우지 않는다니! 호주에선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케이스 별로 묶어 배우고 있던 것이다.
그래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나는 호주 선생님의 우려(내가 영어를 쓰는 것은 고사하고 말도 제대로 못했던 때니까)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내 '국제선택과목'으로 삼았다.
내 생애 첫 영문 에세이는 '난징 대학살'이었다"
이 기사를 읽었을 때 댓글을 훑어보다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 기사에 반박하는 일본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제한 댓글이었는데, 일본 역사교육이 왜 주변 아시아국가들로부터 압박을 받아야 하느냐는 거다. 영국 총리 캠런이 인도를 방문했을 때 그는 과거 점령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고, 미국 또한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들
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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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ckRamone
"기사에 반박하는 일본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제한 댓글이었는데, 일본 역사교육이 왜 주변 아시아국가들로부터 압박을 받아야 하느냐는 거다. 영국 총리 캠런이 인도를 방문했을 때 그는 과거 점령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고, 미국 또한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들고 있다."
정말 쇠기에 경읽기로군. 뭔가를 하라고 강압적으로 시키는 게 아니잖아. 역사를 배울 수 있는한 최대로 많이 배우고, 진실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진실되게 배우고, 그러고 나서 이에 대한 스스로의 철학을 세우자는 얘기잖아. 일어났던 사건을 일어나지 않았다고 시치미 때자는 것이 아니고, 노골적인 사건들을 축소 보도하자는 것이 아니고, 특정 사건들만 각색해서 영광을 돌리자는 게 아니고, 엘리트 관료주의 정부에 의해 생각까지 지시당하자는 게 아니고! 아서라,
일본을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일본에서 정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우익정책을 너무 효율적이게 펼쳐왔어. 아 그리고 덧붙여서, "쟤도 그랬는데 왜 나만 가지고 그래"라는 식의 손가락질을 하자는 것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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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vin Miles> ChuckRamone•2 days ago
네 말에 동의해. 하지만 현재 중국과 한국은 일본의 어두운 과거사를 들어 현대 일본일들을 채찍질하고 있어. 가끔 인종차별 등을 꼬집어 독설을 퍼붙지. 설령 일본인들이 전쟁 당시 모든 피해자들의 이름을 줄줄 외우고 다닌다 해도 지금 일어나는 반일시위와 보이콧이 끝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
일본을 디스하는 것 자체가 중국과 한국정부의 주요 정책 수단이니까.
더 우려되는 건 중국과 한국의 젊은이들의 뇌에 심어지는 반일심리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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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int> Kevin Miles•2 days ago
"일본을 디스하는 것 자체가 중국과 한국정부의 주요 정책 수단이니까. 더 우려되는 건 중국과 한국의 젊은이들의 뇌에 심어지는 반일심리이지 않을까."
30세 이하의 젊은 한국인들은 일제시대에 대해 전혀 감정이 없어. 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되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을꺼고. 마치 25살짜리 미국인에게 진주만 공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묻는것과 같은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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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vin Miles> will.i.aint•2 days ago
지금 일본에 대해 비합리적 분노를 야기하는 중국과 한국의 교육체계에 대해 논하고 있었거든?
물론 일본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야.
1△2▽
TheKorean> Kevin Miles•2 days ago
난 한국에서 벌써 수년간 살고있지만 학교에서 반일감정을 가르친다는 얘긴 금시초문인데? 물론 일본이 전쟁 중 벌인 극악무도한 범죄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그게 반일이라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인데?
5△1▽
Kevin Miles> TheKorean•2 days ago
아 너가 못들었다면 절대 그런 일이 없었다는 거네. 어쩌면 좀 더 관심을 갖었다면 알아챌 수 있지 않았을까?
한국인 아이가 섬뜩하리만한 반일감정을 토로하는 걸 본적이 있어. 내가 낙관주의적이라 망정이지, 난 이걸 교육의 책임으로 돌리고 싶어. 한국인들의 유전적 결함이 아니라.
반일이 아니랬지? 현시대를 살아가는 일본인을 모욕하기 위해 어두운 과거사를 들추는 것은 분명 반일감정이야. 다시말하지만 다른 국가들이 이런 짓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아냐. 그냥 이런 짓꺼리 자체가 잘못됐다 말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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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a_at_marmotshole> Kevin Miles•2 days ago
The Korean의 말에 동의할 수 밖에 없네. 예전에 일본과 맞서 싸운 유관순, 안중근, 이순신 등에 대해 세세하게 배웠었어. 그 내용들의 선동성을 말하자면, 대적관(역자주: 북한을 주적으로 인지하는 관념)을 가르칠 때에 비해 10%도 안되는 수준이었어. 아주 명료하게 기억하는건, "반공" 포스터를 그렸던 것. 북한인민들을 악마로 표현하곤 했지. 북한 간첩을 접했을 때 몇번으로 전화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포스터를 그렸어 (112나 113이었던 걸로 기억해).
한국 어린이들이 그린 반일 독도 포스터를 인터넷에서 봤나보네. 하지만 내가 한국에서 겪은 교육체계는 그런 것을 가르치지 않았어.
적어도 한국의 경우, 일제시대와 관련된 역사교육이 지금의 반일감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거야. 너와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말이지. 반일감정은 한국인들 내면에 깔려있는 것이고, 언론이나 스포츠경기 등을 통해 그것이 과장돼 드러나는 것이지.
7△1▽
3gyupsal> yuna_at_marmotshole•2 days ago
난 몇년 전 한국 중학교에서 일했었고 '독도의 날' 행사를 체험했어. 한국인 혼혈아를 가진 미국인 아버지로서 절대 내 아이를 "일본을 침몰시키자" 가르치는 한국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 다짐하는 계기가 됐지. 이것이 인종차별이라 여겨 반대하는 것이 아니야. 한국의 이런 교육을 반대하는 이유는 너무 유치하고 한국을 이끌어갈 다음 세대를 올바로 양성하는 데 실패할 것이기 때문이지. 그리고 최근 초등학교의 반 전체가 독도에 대한 내 중립적인 반응을 친일이라 보고 나에 대항해 무력시위를 하기도 했어. 그날 수업주제는 제3세계의 저임금이었는데, 이게 한국인의 성질을 건드리게 될 줄이야. 요는, 최근 몇년간 독도가 한국의 파쑈적 분노를 야기하는 도구로써 사용되어져 왔는 거야. 내가 일했던 중학교의 학생들은 바위덩어리 독도에 너무 꼴린 나머지 일본 후쿠오카의 자매학교에서 견학 온 일본인 학생들의 관심에 무관심으로 답했지.
이 한국 중학생들은 전세계 누구도 관심조차 갖지 않는 그 바위덩어리 섬 때문에 해외친구를 만들기회를 잃은거야. 내가 먼 일본에서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 학생이었다면, 집에 돌아가자마자 헐레벌떡 다케시마 깃발을 치켜들지 않았을거야. 그냥 한국애들이 ㅂㅅ 같았다 마음속으로 생각하겠지.
5△▽
yuna_at_marmotshole> 3gyupsal•2 days ago
위에 "전세계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다 했을 때 후쿠오카 학생들의 부모님도 포함되는 거겠지?
일본은 이미 독도와 센카쿠열도를 원하는 그들의 입장을 확실시하고 있어. 이 게임에서 순진한적 하면서 이것이 한국과 중국의 정치적 세뇌라 주장하는 것 자체가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야.
2△2▽
stereohype> yuna_at_marmotshole•a day ago
난 한국과 일본의 중학교 모두에서 근무해 본 또다른 외국인 선생으로서, 한국의 교육체계가 세뇌를 하고 있다 명확히 주장할 수 있어.내가 일본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자 한국 학생들은 내게 욕설과 원숭이 제스쳐를 지어 보냈어.
독도-다케시마 이야기를 일본에서 꺼냈을 때 학생들은 대부분 무관심했어. 독도 이슈는 한국의 즉각적이면서도 모욕적이었던 반응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그들의 일상생활에 전혀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아.
하지만 제발 한국에서의 내 경험이 틀린 것이었다 말해주길 바래. 내가 한국을 잘못이해한 것이라 말해주길 바래.
7△5▽
yuna_at_marmotshole> stereohype•a day ago
재차 강조하지만, 한국교사들의 '수업계획서'에 반일감정을 가르치자는 내용은 없어. 일본애들이 무관심했다는 것은 그들이 이에 대해 안좋은 감정이나 불편을 겪을 사안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야.
독도 이야기를 들은 한국인들이 즉각적이면서도 모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해. 이와 관련된 역사를 배웠기 때문이야. 독립된 국가로서 성장하기 위해 주변국의 엉터리 역사인식에 대항 했어야 했던거지.
4△1▽
JP> yuna_at_marmotshole•19 hours ago
"재차 강조하지만, 한국교사들의 '수업계획서'에 반일감정을 가르치자는 내용은 없어. 일본애들이 무관심했다는 것은 그들이 이에 대해 안좋은 감정이나 불편을 겪을 사안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야."
아래는 한국정부가 인정한 역사교과서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일본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이죠.
"고등학교 한국근ㆍ현대사, (주)금성출판사, 2003년 초판, 2009년 6쇠.
조선 총독부는 병합 직후 임시 토지 조사국을 설치한데 이어 1912년에는 '토지 조사령'을 공포하여 본격적으로 토지 조사 사업에 나섰다. 일제는 이 사업이 지세를 공정히 하고, 토지 소유권을 보호하며, 토지의 생산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선전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토지 소유권을 새로이 법적으로 확정하여 지세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또, 토지의 매매와 저당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일본인이 쉽게 토지에 투자할 수 있게 하였다. (p. 156)
1918년에 토지 조사 사업이 끝났을 때 사실상 농민의 소유였던 많은 농토와 공공 기관에 속해있던 토지, 마을 또는 집안의 고유지로 명의상의 주인을 내세우기 어려운 동중ㆍ문중 토지의 상당 부분이 조선 총독부의 소유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분쟁이 일어났지만, 그 해결은 일제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조선 총독부는 이렇게 빼앗을 토지를 동양 척식 주식 회사를 비롯한 식민 회사나 일본인에게 헐값으로 팔아 넘겼다. (p. 156)"
하지만 서울대 이용훈 교수를 비롯한 몇몇 한국학자들은 이 교과서의 설명이 근거가 없고 틀렸다 주장합니다. 객관적 수치를 들어 반박했죠.
"대안 교과서 한국 근ㆍ현대사, 기파랑, 2008.
토지조사사업에 의해 소유권이 사정된 토지는 전국적으로 총 1,910만 7,520필지에 달했다. 그 가운데 소유지의 신고대로 소유권이 사정된 것이 1,900만 1,054필지로 99.5%의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그 반면에 무신고지로 국유지로 편입된 것은 주로 분묘지나 잡종지였는데, 도합 8.94필지 (0.05%) 에 불과하였다. 총독부가 신고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한국 농민에게 신고를 강요하고, 전체 토지의 40%에 달하는 무신고지가 발생하자 국유지로 몰수했다는 기존의 주장은 원래부터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 (p. 85)"
일본인들은 이렇게 근거 없이 일본에 잘못을 뒤집어 씌우는 교육을 '반일교육'이라 부릅니다.
1△▽
yuna_at_marmotshole> JP•19 hours ago
내가 이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첫번째 교과서 내용 어디에 40%를 몰수했다는 주장이 있지? "일본의 손에 들어간 무신고지의 대부분이 농민이나 가문, 마을 등의 소유였다" 했지!
제시된 지문만으로는 근거없는 '반일교육'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는데? 넌 할 수 있다는 거야?
1△1▽
JP> yuna_at_marmotshole•18 hours ago
교과서에서는 "1918년에 토지 조사 사업이 끝났을 때 사실상 농민의 소유였던 많은 농토와 공공 기관에 속해 있던 토지, 마을 또는 집안의 고유지로 명의상의 주인을 내세우기 어려운 동중ㆍ문중 토지의 상당 부분이 조선 총독부의 소유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분쟁이 일어났지만, 그 해결은 일제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고 되어있어.
고등학생들이 이 지문을 읽었을 때 조선총독부가 한국인들로부터 땅을 착취했다는 인식이 생기겠지. 하지만 사실은 0.05%였다는 거야. 0.05%의 땅은 무덤과 사용목적이 불분명한 땅들이었다고. 한국 교육자들은 진짜 대책이 없어.
1△▽
(역자주: 아 번역하다 빡쳐서 손이 떨리네요.. 잘 읽어보시면 JP 이넘의 독해능력이 좀 많이 떨어집니다. 이 두 지문을 합쳤을 때 문맥적 핵심은 "무덤이나 사용목적이 불분명한 땅"의 경우 조선총독부가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몰수 했다는 뜻이며, 유교사상이 뿌리 깊게 박힌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 조상님의 무덤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지요. 읽으시다 설령 헷갈려하지 마세요!)
The_Korean> JP•17 hours ago
너 말이 좀 웃기다. 실제 수치들을 인터넷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나? 아래 링크 클릭해봐.http://kosis.kr/feature/featur... 조선총독부가 1918년부터 1945년에 수집한 통계치가 모아져 있어.
그럼 국유지 관련 자료를 찾아볼까? 날짜별로 구분해서 볼수도 있네. 먼저 일본 우익에 희소식 하나를 전해줄게. "1918년에 토지 조사 사업이 끝났을 때 . . . 토지의 상당 부분이 조선 총독부의 소유가 되었다."는 부분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걸 인정해. 1918년 조선총독부의 국유지는 272,076町이었고, 이는 조선총독부가 주장하는 22백만町의 전체 한국 땅 중 1%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지.
근데 잠깐만, 더 있어. 1925년 국유지를 보자. 6.5백만町이야. 이시점에서 이미 조선총독부의 국유지는 한국 전체 땅의 40%를 쉽게 뛰어넘어. 다시 말하지만 이 수치들은 조선총독부에서 발표한 수치들이야.
따라서 위에 오해의 소지가 있던 부분을 수정하자면, "40% 땅도둑질은 1925년이었고, 1928년이 아니었다"야. 정말 근거없는 반일교육이다 그치?
2△1▽
3gyupsal> yuna_at_marmotshole•an hour ago
의심의 여지 없어. 일본인들은 자국민의 통합을 위해 한국인들 갈구길 즐기니까. 일본 우익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할 때나 제주도를 사들이자는 주장을 할 때 정말 동기를 이해하기 어려워."
전세계 누구도"라는 표현을 썼을 때 내 말은 일본이나 한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을 말한거야.
0△▽
Kevin Miles> yuna_at_marmotshole•2 days ago
너의 경험담에 의견을 달리하지만, 중요한건 한국의 반일감정이 '가벼운 정도'를 넘어 섰다는 거야. 또 나는 학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었어.
내가 지금 한국인들은 싸잡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란 걸 알아줬으면해. 그랬다면 나도 일본에 발행된 교과서로 일본인들을 싸잡아 미워하는 몇몇 한국인들과 다를 바가 없을테니까.
2△2▽
yuna_at_marmotshole> Kevin Miles•2 days ago
ㅇㅇ 동의해. 왜냐면 난 '가벼운 정도'라는 단어를 쓴 적이 없으니까. 난 '모든 한국인' 무리에 속하지도 않고, '모든 일본인을 싸잡아 비난'하지도 않아. 나 개인적으로 그 나라에 얽히고 섥힌 일들이 많거든. 하지만 다음은 슈피겔(역자주: 독일 시사잡지 이름) 링크야.
이렇게 된지 벌써 수십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영국인들은 독일인들을 나치와 엮는데 너무 집착한 나머지 '독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현대 독일에 대한 모든 관심을 묵살시키는 것이 거의 모든 영국인들의 즉각적인 반응이다. 영국 교육청은, 영국의 역사교육이 '히틀러화'의 희생양이 되어 간다면서, 영국의 학생들의 관점에서 독일은 1933년 등장한 '괴물'이었고 1945년 영국총리 처칠의 등장과 함께 깨알같이 고소한 죽음을 맞이했다 인식하고 있다.
슈피겔 잡지는 독일 잡지이고, 위 내용은 영국의 현재 역사교육에 대해 쓴 에세이야.
독일인들은 영국에서 발행된 역사교과서를 직접 읽고, 독일을 바라보는 영국인들을 시각을 분석하려고 해.
인간은 서로 비난만 일삼는 존재가 아냐. 인간은 서로를 이해하길 원할 뿐이야. 마리코 오이씨가 그랬던 것처럼.
5△1▽
One for all> yuna_at_marmotshole•2 days ago
'히틀러화'는 빙산의 일각을 뿐이야. 영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7~9개 수업(지리학, 과학, 역사, 영문학, 종교학 등)에서 1,2차 세계대전에 대해 수도 없이 언급해. 어떤 것들은 국가관이 섞여 있고, 대부분은 객관적이야.
실망스러운건 1945년 이후의 일에 대해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는거야. 난 현역 학생으로서 1,2차 세계대전에 대해 줄줄 읊어줄 수 있지만, 그 뒷일에 대해서는 전혀 몰라. 동독과 서독의 차이도 모르고, 베를린장벽이 어떻게 무너졌느지도 몰라.
영국인들이 독일을 싫어하는 건 2차대전 때문이 아니야. 1차 및 2차 대전, 둘 다 때문이야. 이 '미움'은 마치 매 성탄절 마다 놀러와서 내 장난감을 하나씩 부러뜨리고 가는 사촌동생에 대한 '미움'과 같은거지.
0△1▽
yuna_at_marmotshole> One for all•2 days ago
맞어. 하지만 독일인들은 (슈피겔 기자가 얘기했듯이) 영국인들의 반응에 놀라고 있어. 왜냐하면 히틀러는 독일인들 스스로에게도 악마이기 때문이지.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인들은 히틀러에 대해 거의 집착 수준으로 연구했어. 거의 매일 히틀러 관련 다큐멘터리가 TV에 2회씩 방영되곤 했지.
최근에서야 자아성찰이 끝났다 보고 이 '악마'와 결별을 선언하게 된거야.
일본들 또한 한편으론 같은 고통을 안고 살아가. 하지만 고통에 대한 이유는 좀 다르지. 마리코 오이씨가 언급했듯, 이부분에 대한 교육이 통째로 날아갔거든. 그리고 일본에는 히틀러와 같은 존재가 없어. 최고 전범으로 꼽히는 테노가 전후에도 잘먹고 잘살았으니까. (이 내용은 내 동독일인 출신 친구가 일본에서 근무한 후 나한테 들려준 이야기야.)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유럽과 동아시아의 입장 차이라는 거야.
0△1▽
One for all> yuna_at_marmotshole•2 days ago
동아시아의 상황을 보면 산타야나의 명언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 반복되는 역사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가 떠올라. 다음 큰 분쟁이 바로 여기서 비롯될거야.
유럽은 20세기동안 반짝했지만, 다음 세기는 동아시아가 주도할 것이라 본다. 물론 여전히 미국과 러시아의 입김이 유효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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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a_at_marmotshole> One for all•2 days ago
난 영광을 누리는 입장보다 영광을 이미 지낸 느낌이 더 좋아. 거의 죽어가는 느낌 있잖아. 왠지 그런게 멋져. 이런 감성.
그게 아마 내가 미국보다 유럽을 선호하는 이유인것 같아. 물론 프리맨 다이슨이 미국의 남은 날도 머지 않았다 했지만.
0△2▽
Kevin Miles> yuna_at_marmotshole•2 days ago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underdog complex (역자주: 우리는 작고 상대는 크다 생각하는 피해의식)에서 비롯됐다 말했지? 그건 명백히 잘못된 진단이야.
영국과 독일의 예를 들었는데 요점이 뭔지? 영국과 독일의 예가 진짜라면 오히려 내 논지를 강화시키게 되는데? 즉, 현시대를 살아가는 후손들을 비난하는 데 역사가 사용될 경우의 위험성 말이야.
아래 링크는 더 쇼킹할거야 확인해봐
https://www.youtube.com/w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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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s-Olaf Walter> Kevin Miles•a day ago
독일의 과거에 대한 대응은 여러 단계로 나뉘어 진행됐어. 먼저 국가사회주의와 히틀러, 그리고 주요 전쟁범죄에 대한 일반적 시각이야. 후에 홀로코스트에 집중됐다가 80년대에 이르러 지역적인 수준으로 연구가 진행됐지.
그러다가 '노예노동자'가 이슈화 되었어. 보상문제는 물론, 여기 엮인 기업들의 목록을 뽑는 작업이 진행됐지.
물론 아직까지 정보공개를 안하는 기업들도 있긴 있어. 90년대에 이르러서는 좀더 법적인 문제에 초점이 맞춰졌지. 또 "각 가정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에도. 독일의 전쟁범죄에 대한 역사연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최근 TV에 나왔던 다큐야: 제목은 "우리들의 어머니, 우리들의 아버지" http://www.youtube.com/watch?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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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a_at_marmotshole> Jens-Olaf Walter•21 hours ago
정말 상세히 짚어줘서 고마워. 희한한건, 독일에 있는 내 일본인 친구들이 독일의 이러한 부분에 대해 전혀 흥미를 못느낀다는 거야.
내 경우, 일본인 친구와 베를린에서 열렸던 히틀러 전시회를 보러 갔던 즉시 느꼈는데 말이야. 한국인들이 젊은 일본인들보다 '비유'를 더 예리하게 포착하는 경향이 있다는 건 사실인것 같아.
더 나이 많은 세대에서는 좀 달라. 현재 독일에서 사는 내 일본친구는 할머니가 이랬대 "이제 독일에 있으니까 안전할꺼야. 여긴 사람들이 일본인들을 그렇게 싫어하지 않거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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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a_at_marmotshole> Kevin Miles•2 days ago
너가 추천한 유투브 링크 "Don't mention the war"은 내가 얼마전에 사용했던 링크야. 내가 너였다면 내가 아는 것과 알수도 있는 것에 대해 섣부른 진단을 내리지 않았을거야. 나 또한 영국에 대해서도 얽히고 섥힌게 참 많아.
비난이 '가벼운 농담'이라니, 참 이상한 표현이네. Underdog sentiment는 가벼운 농담이 아니야. Underdog란 너네 나라가 그 자의적 의도와는 달리 타국에 의해 점령당했던 상태. 또 스포츠에 있어서도 대회의 스폰서 대부분이 상대측 선수를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상태. 바로 그럴때 생기는 억울한 느낌을 말하는거야. '비난'이란 단어가 이런 문맥에 어울릴 수 있다는 게 이해가 잘 되지 않아.
내 요지는 내가 이미 다 말했어. 일본은 비난여론 위에 있지 않아 (역자주: 즉, 일본이 비난여론이 나쁘다 자시고 할 처지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앞만 보고 가자"는 개같은 소린 이제 그만 집어 치우고 "뒤 좀 보고" 변화해야할 때라는 거야.
0△1▽
(역자주: 이 뒤에 나오는 대부분 여론이 일본을 비난하는 가운데, kevin miles와 yuna의 공방은 계속됐습니다. Kevin이 아무래도 전문성이 좀 떨어져 말빨에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너무 길어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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