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정부의 ‘탈원전 로드맵’은 발전 가능성 높은 원전산업에 발목을 잡는 걸까요? 그 답은 60년 넘은 전세계 원전산업이 현재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원전업계의 주장과 달리 전세계 원전 시장은 선진국 중심에서 개발도상국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습니다.
전세계 핵발전소의 숫자를 살펴보면, 원전산업은 ‘장밋빛’처럼 보입니다. ‘세계원자력협회’(WNA) 통계를 보면, 7월 기준으로 가동 중인 핵발전소는 30개국에서 446기가 있습니다. 현재 건설 중인 핵발전소는 59기로,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중국과 러시아, 인도에 집중돼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폴란드와 터키만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벨기에·프랑스·독일·이탈리아는 계획이 없습니다.
한수원 등은 외국에 핵발전소를 지어 이윤을 남기는 사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해외시장 진출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원전 운영 기술을 얻어 독립한 중국이나 자체 기술을 보유한 러시아에 핵발전소를 수출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때 원전산업을 이끌던 미국·프랑스 등은 이미 사업을 접었습니다. 고리1호기 건설사업을 수주했던 미국 원전업체 웨스팅하우스는 올해 파산했습니다. 미국에서 에너지 가격 하락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강화된 안전규제로 많은 비용이 추가로 들면서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웨스팅하우스의 모회사인 일본 도시바도 해외 원전시장에서 철수하기로 했습니다. 프랑스도 2025년까지 전체 58기 가운데 17기를 폐쇄하기로 했습니다. 프랑스 원전업체 아레바가 사업난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전업계는 1기당 건설 비용(약 4조원)을 따져보면 전세계 원전시장이 640조원 규모라고 말하지만, 핵발전소 건설로 이윤을 남기기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런 탓에 원전업계가 신규 원전 건설을 고집하지 말고 ‘폐로 시장’ 등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세계적으로 설계수명이 돼 영구정지에 이르는 핵발전소가 2040년께 300기가 넘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우리나라의 기술력은 선진국의 80% 수준이며 원전 해체에 필요한 상용화 기술 58개 중 41개를 확보하고 있다”며 “원전 해체산업 선도 국가가 될 수 있도록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원전업계는 한수원·한전 등에 파견된 인력이 3천명이라고 말하지만, 원전 해체산업 등에 진출하면 고용이 늘어날 가능성도 큽니다. 실제로 미래창조과학부가 2016년에 펴낸 ‘원자력백서’를 보면, 핵발전소 관련 인력은 2014년 기준 3만3497명으로 지난 9년 동안 평균 5.3% 늘어나는 데 그쳤습니다. 원전 건설만 고집하는 것이 원자력공학과 학생의 ‘일자리 창출’을 막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