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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D] [한국전쟁] 우리가 몰랐던 참전 간호사들의 이야기
등록일 : 17-07-16 13:56 (조회 : 18,055) 글자확대/축소 확대 축소 | 프린트

한국전에 참전한 국내/외 용사들의 감동의 스토리에 평소 관심이 많아서 
관련 자료들을 찾아 보곤 하다가 페이스북에서 몇년전에 알게된 
(한국전 참전용사 디지털 기념관-단체장이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단체의 
포스팅 내용을 살펴보던중 미국 간호학위 관련 단체에서 게시한 
Captivating Snapshots of Nurses During the Korean War 
(한국전에 참가한 빛났던 간호사들의 스냅샷과 뒷이야기)
약 11장 정도의 한국전 참전 간호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발견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국내에 거의 소개 되지 않은 내용이었고 또한 그당시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느껴 볼수 있는 내용이라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2013년 해당 사이트에 포스팅 된 내용이나 역사적으로의 가치에 중점을 두고
한국에 관련된 내용이어서 옮기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USS Repose 라는 병원선이 등장하는데 맨아래 부분에 부연설명을 
남기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한국전에 참전한 간호사들의 헌신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보시고 나면 이부분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시리라 생각 됩니다.



001.png




During the Korean War, which ran from June 25, 1950 until July 27, 1953, nurses performed vital and heroic functions often above and beyond the call of duty. Not only did they carry out regular nursing roles, they also sutured injuries, triaged patients without the help of a doctor, set up blood transfusions, administered antibiotics and made sure that medical supplies were kept in stock. They were innovative when supplies dwindled and administered quality health care despite the enormous amount of casualties. These nurses made a difference in the lives of thousands of servicemen, and the following 10 snapshots offer a behind-the-scenes glimpse into their lives during the conflict.

1950년 6월25일 부터 1953년7월 27일 까지의 한국전쟁 기간동안, 파병된 여군간호사들은  그들 본연의 직무수행을 뛰어넘어 종종 영웅적이고도 중요한 직무를 수행했었습니다.
정규적인 간호직무를 수행하는것 뿐만이 아니라, 부상부위를 봉합하거나, 군의관의 도움이나 명령없이도 부상자를 분류한다든지, 수혈을 실시한다든지, 항생제를 투여한다든지 의료용품 재고가 있는지 확인했었습니다. 
또 여군간호사들은 의료물품 공급이 줄어들때 정말 혁신적으로 직무를 수행했었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한 경우에도 양질의 건강관리와 최선을다한 치료를 제공하려 했었습니다. 이런 여군간호사들의 헌신은 수천명의 군인생명을 구했으며 그들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리고 아래의 10장의 스냅사진은 전쟁의 충돌속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뒷이야기를 보여줍니다.. 



10) Enjoying Thanksgiving Aboard the USS Repose 
USS Repose on November 27, 1952. Lieutenant junior grade (LTJG) Caldie Green of the US Navy Nurse Corps is shown helping Corporal Richard Hollander eat his Thanksgiving meal..jpg


This photo was taken aboard the USS Repose on November 27, 1952. Lieutenant junior grade (LTJG) Caldie Green of the US Navy Nurse Corps is shown helping Corporal Richard Hollander eat his Thanksgiving meal.
The USS Repose was a hospital ship that served briefly during the final stages of WWII. In 1950, the USS Repose sailed for Korea, arriving in September of that year. She filled an important role as a station hospital in Incheon (where the photo was taken), Busan and Chinnampo. The ship also transferred 301 patients to Yokohama in Japan. The USS Repose later provided vital medical services during the Vietnam War, where she earned the moniker “Angel of the Orient.”

10) 병원선(USS Repose)에 승선해서 추수감사절을 즐기는 모습.
이 사진은 1952년 11월27일 USS Repose 에 승선한 모습을 찍은것 입니다. 해군간호봉사단 소속의 Caldie Green 중위가 Richard Hollander 상병이 추수감사절 칠면조 다리를 먹는것을 도와 주는 모습입니다. USS Repose 병원선은 세계2차대전 막바지에 잠시 참전했었으며 한국정쟁이 발발한 1950년에 한국으로 출항해서 같은년도 9월경에 참전하게 됩니다.

USS Repose 는 부산과 남포항을 거쳐 인천에서 중요한 병원선 거점으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그후  USS Repose호는 301명의 부상병을(중환자추정) 일본 요코하마로 수송하게 됩니다.  그리고 뒤에 베트남 전에 참가하게 되어 중요한 의료선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며 '동양의 천사' 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9) Helping A Patient With His Meal Aboard the USS Repose


ow that’s service with a smile! This photo was also taken aboard the USS Repose, this time on Thanksgiving Day 1952 in Incheon, South Korea. Pictured above is LTJG Weece Wood of the US Navy Nurse Corps with Private first class (PFC) Jack Newman. Despite the difficult circumstances of war and the stressful conditions, Wood is shown spreading joy and cheer.
There was a general shortage of qualified nurses during the Korean War, so the Navy swelled its ranks by calling on reserve nurses from WWII. Civilian nurses were also brought into service, and some were placed aboard hospital ships such as the USS Repose.
 
 9) USS Repose에 승선한 부상병의 식사를 도와 주는 모습
이제 웃는 얼굴로 환자를 돌보다 ! 
이사진 역시 한국 인천에 USS Repose가 정박한 당시 1952년 추수감사절날 찍혀진 사진 입니다. 
사진속 인물은 해군간호봉사단 소속의 중위 Weece Wood와 부상을 입은 일등병 Jack Newman의 모습입니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가득찬 전쟁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Wood중위는 즐거움과 활력을 전해 주려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간호사는 부족했었습니다, 그래서 해군은 이를 채우기 위해 세계2차 대전때 참가 했던 예비 간호사들을 모집했으며 일반신분의 간호사들도 역시 모집했으며 또 그중 일부는 USS Repos 병원선에 배치되기도 했었습니다.


8) Taking An X-ray Aboard the USS Repose


The scene above shows PFC George E. Anthony about to have his arm X-rayed. Nurse Lieutenant Rita Camp is ready to offer support, while X-ray technician Harry Palo prepares the equipment. Commander Bruno Junnila can be seen on the right. The photo gives us a glimpse of life aboard the hospital ships, and some insight into the quality of care servicemen received (although you’ll notice that no-one in the photo is protected from the X-rays).
One of the nurses stationed aboard the USS Repose during the Korean War, Lieutenant Eveline McClean, spent half the day working in the kitchen, then took care of patients throughout the night. She says that she “loved her work” but adds that it was “very, very sad at the same time.”

8) USS Repose 에서 엑스레이 촬영
위의 사진은 일등병 George E. Anthony 가 팔을 엑스레이 촬영하는 모습입니다.
엑스레이 촬영기술자인  Harry Palo 가 촬영장치를 준비하는 동안 간호소위 Rita Camp가 도울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오른쪽에 중령 Bruno Junnila도 보입니다. 사진은 병원선의 생활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의무담당직들의 근무환경을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사진에서는 그 누구도 엑스선촬영시 방사선으로 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정쟁중에 USS Repose 에 승선해서 간호직을 담당했던 사람중 한명인  Eveline McClean 소위는 부엌에서  하루의 반을 일했으며 그러고 나서 밤에는 환자를 돌봤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직무를 사랑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덧붙여 그일은 동시에 매우매우 슬픈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7) 8055th  Mobile Army Surgical Hospital (MASH) Unit Nurses Tending Injured Soldiers

Here we see nurses tending to wounded servicemen at the 8055th Mobile Army Surgical Hospital (MASH). This picture was taken in August 1950, just one month after the hospital arrived in Busan, South Korea. Arriving on July 6, it was the first medical unit to reach the country.
Some MASH units received up to 1,000 casualties a day, and although the surgery was crude at times, 95 percent of the casualties admitted to the hospitals left alive. Dr. Dexter Ball, who served in two different MASH units between 1950 and 1951, says that his unit was constantly moving with the frontline ? amounting to 12 location changes in a single year. MASH units (at least in the beginning) only accepted patients who needed emergency surgery.

7) 8055 육군야전외과병동 에서 간호사들이 부상병들을  돌보고 있는 모습.
사진에서는 8055 육군 야전외과병동에서 부상병을 돌보고 있는 간호사의 모습입니다.
이 사진은 1950년 8월에 찍혔습니다. 그리고 한달여 후에 야전병동은 남한의 부산으로 후퇴하게 됩니다. 
1950년 7월6일, 처음으로 의료부대가 한국에 도착하게 됩니다.
일부 육군야전외과병동 부대는 하루에 1000명의 부상병을 받기도 했습니다. 비록 제대로 정식으로 이루어지짐 못하는 수술이 계속되었지만 공식적으로 입원병사의 95퍼센트 정도가 살아서 병동을 떠날수 있었습니다.  Dexter Ball 군의관은 1950 부터 1951년 동안 두곳의 야전외과 병동에서 근무했으며  군의관의 부대는 최전방의 전선을 따라 지속적으로 옮겨 다녔다고 합니다.  최종적으로 약1년동안 12곳의 전선을 이동했다고 합니다. 육군야전외과병동은 최초개설 당시에는 응급수술이 필요한 부상병만을 수용했다고 합니다.


6) A Moment to Relax At the 8055th MASH

Dr. Harold Secor from the 8055th MASH unit and a nurse taking some time out to relax. Milton Weinberg, another member of the 8055th,.jpg

In this photo, we see Dr. Harold Secor from the 8055th MASH unit and a nurse taking some time out to relax. Milton Weinberg, another member of the 8055th, explains that the unit was not always busy. There were downtimes, during which they relaxed or read books, and “sometimes the nurses would have a little dance.” Medical equipment and conditions were generally adequate, even though procedures were carried out in tents and the surgical tables were nothing more than stretchers on trestles.
Of course, sometimes there were so many casualties that staff were kept working at a furious pace. Julia Baxter worked in a MASH unit as an operating room nurse and says that at one point there were so many wounded soldiers waiting for care that they had to extend their shifts. “We worked eight hours on and eight hours off for about a month before changing to 12 hours on and 12 hours off,” she remembers.

6) 8055 육군야전병동의 여유로운 한때.
이 사진에서 8055 육군 야전의무 부대의 Harold Secor 군의관과 간호사가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을 볼수 있다. 8055 의무부대의 또다른 멤버인 Milton Weinberg는 병동이 항상 바쁘지는 않았다고 한다 (전투에 따라 다름) 야전 의무 부대의 업무중단 기간 동안에는 책을 읽거나 쉬거나 그리고 때로는 간호사들이 작은 오락시간을 가졌다고도 말해 줬다.
의료장비의 상태는 전반적으로 적절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절차는 모두 야전병동 텐트 안에서 이루어 졌으며 수술대는 다리가 달린 이동 들것이 사용되어 졌다고 했다. 물론, 때로는 엄청난 수의 사상자들이 몰려서 병동의 모든 스텝들은 쉴틈없이 계속 사상자들을 치료해야 했다고 한다.

야전병동 부대의 수술실 간호사로 일한  Julia Baxter가 회상하기로는 한순간에 엄청난수의 부상자들이 생겨나 대기할때는 교대시간을 연장해가면서 환자를 돌봐야 했다고 한다. 
그녀는 이렇게 기억했다 " 우리는 8시간 일하고 8시간 쉬는 교대로 일을 했으며 그시점으로 부터 한달 전에는 12시간을 일하고 12시간을 쉬는 교대로 환자를 돌봤어요"


5) NORMASH Nurse Caring for An Injured Soldier
n July 1951, Norway’s Red Cross unit, the Norwegian Mobile Army Surgical Hospital (NORMASH), arrived in Korea..jpg

The US wasn’t the only nation to operate MASH units. In July 1951, Norway’s Red Cross unit, the Norwegian Mobile Army Surgical Hospital (NORMASH), arrived in Korea. Beginning active duty on July 19, NORMASH operated until November 10, 1954. During this time the unit serviced a total of 90,000 patients, including American, Canadian, British and South Korean troops, as well as North Korean and Chinese prisoners of war. Above, Norwegian nurse Captain Petra Drabloe treats Canadian soldier Lance Corporal M.R. Stevens, who was injured in a gas explosion.
At times, these medical units had to get creative with their supplies. Dr. Harold Secor recalls some of the many ways they were forced to improvise, including salvaging an operating table “from a bombed-out Korean hospital” and using “foil from X-ray packs for X-ray shields.”

5) 노르웨이 여군간호사가 부상병을 돌보고 있다.

한국전 당시 야전병원부대를 운영한것은 미군 뿐이 아니었고 1951년 7월에 노르웨이 적십자봉사단, 노르웨이 육군야전의무부대(NORMASH) 등이 한국에 도착했다. 노르웨이 육군야전의무부대는 1951년 7월19일 부터 1954년 11월10일까지
활동을 했다. 이 기간동안 모두 9만명의 환자에게 봉사했다.
미군 캐나다군 영군군 한국군부대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북한군과 중국전쟁포로들 에게도 의료봉사를 했다. 
위 사진속 노르웨이 Petra Drabloe 간호대위는 가스 폭발사고에서 부상을 입은 캐나다 M.R. Stevens 일병을 치료했습니다.
어떨때는, 의료부대가 직접 의료물자를 스스로 구하거나 해야 했었고  Harold Secor 군의관은 즉흥적으로 즉석에서 치료를 위해 행동해야 할때가 많았다고 회상했다. 
폭탄이 떨어진 한국 병원에서 수술대를 구해서 사용하거나 엑스레이 포장상자에서 알미늄 호일을 빼내서 방사선 보호구로 사용해야 했었다고 말했다.


4) Army Nurse with Helicopter Ambulance Crew
This early 1950s photo shows Colonel Agnes Maley of the US Army Nurse Corps posing with a helicopter crew. .jpg

This early 1950s photo shows Colonel Agnes Maley of the US Army Nurse Corps posing with a helicopter crew. Although air ambulances had been used in previous conflicts to transport casualties, it wasn’t until the Korean War that the US used dedicated helicopters to carry the injured from the frontlines to field hospitals. They also transferred patients from field hospitals to hospital ships for additional care.
According to the National Museum of the US Air Force, the aeromedical evacuation system, in conjunction with other factors such as antibiotics and modern surgical methods, reduced the number of deaths from injuries by 50 percent compared to WWII.

4) 육군 여군간호장교가 응급헬리콥터 조종사와 함께 있다. 
1950년 전쟁발발후 미육군간호부대 Agnes Maley 대령이 응급헬기 조종사와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다. 
비록 응급헬기가 사상자 수송에 이용되기 이전에 약간의 충돌이 있었지만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최전방의 전선에서 부상자를 야전병원까지 후송하는데 전용헬기가 사용되지는 않았다. 또한 헬기는 환자들을 야전병원에서 병원선까지 추가적인 진료를 위해서 수송했다.
국립(US) 공군 박물관에 따르면  항생제나 현대적 수술방법과 같은 요인과 함께 공군응급의료대피 시스템의 구축은 세계2차대전과 비교해 볼때 부상자의 사망률을 50%나 줄였다고 한다. 


3) Flight Nurse Arriving At Japan’s Tachikawa Air B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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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tured above is Captain Lillian Kinkela (later Keil). In 1938, Kinkela, a trained nurse, began her career as a flight attendant with United Airlines, before becoming a flight nurse during WWII. Described as an “airborne Florence Nightingale,” she served on 250 evacuation flights throughout WWII and 175 during the Korean War. Kinkela carried out the crucial work of caring for patients while en-route to medical facilities.
During the Korean War, there were just 30 Air Force flight nurses in the entire Far East, so Kinkela was something of a rarity. However, the fact that she is one of the most decorated women in US military history attests to the vital importance of her role.

3)  일본 타치카와 공군기지에 도착한 공군간호사 
사진속의 Lillian Kinkela (나중에 Keil로 바뀜) 대위. 
1938년에 대위는 간호사 훈련을 받게 되는데 세계2차대전 즈음 공군간호사가 되기 전에 그녀는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승무원으로의 경력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공수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airborne Florence Nightingale) 로 불리어 졌으며, 세계2차대전에서 그녀는 250회의 사상자 수송작전을 수행했으며 한국전쟁에서는 175회의 수송작전에 참가했습니다. 
 Kinkela 는 메디컬 시설로 환자를 수송하는 동안 환자를 돌보고 치료하는 중대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한국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약 30명의 공군간호사들이 극동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Kinkela 대위은 매우 진귀한 존재 였습니다 어쨋든,  그녀는 미국 군인의 역사상 매우 훌륭한 간호사 였으며 그녀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 했었다는것은 사실 입니다.


2) Flight Nurse Checking Patient Records
Flight nurse First Lieutenant Victoria Malokas is shown here with C-54 aircraft commander Major George Cichy, looking over patient records in October 1952..jpg

Flight nurse First Lieutenant Victoria Malokas is shown here with C-54 aircraft commander Major George Cichy, looking over patient records in October 1952.
Alice Dorn, another flight nurse during the Korean War, explains that part of the challenge of the position was that nurses had to operate solo. “You couldn’t say, ‘My patient is doing this, I need some medical advice.’ You were really on your own. And hoped you made a good decision,” she recalls. One of the things that she disliked about the job was that she didn’t get to build a relationship with the patients. She says the soldiers “came on, they were your patient, you checked the records, you change dressing or gave IVs if it was necessary, or a sedation. But you didn’t see them after that.”

2) 공군간호사가 환자의 진료기록을 체크하고 있는 모습.

1952년 10월. 공군간호사 Victoria Malokas 중위가  C-54 수송기 지휘관인 George Cichy소령과 함께 환자의 진료기록을 체크하고 있다.

Alice Dorn, 또다른 공군간호사가 설명해주기를 한국전쟁동안에 공군간호사들이 당면한 문제들을 스스로 개척해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비행기라는 장소적 문제와 그로인한 심리적 외로움) 

내가 돌봐야 하는 환자 였고, 내가 의학적인 지식이 더 필요하다는점, 나는 혼자판단해야 했고 또 최선의 결정을 항상 내려야 했었다고 그녀는 회상했다. 

이런 일들중에 그녀가 싫어했던 일들 중에 한가지는 환자들과의 친밀감을 만들지 못했다는 거였습니다. 

그녀는 부상병들에 대해 이렇게 회상 합니다
"나의 환자였고 진료기록을 확인했고 붕대를 갈거나 링거를 주사하거나 또는 필요하다면 진통제를 주기도 했어요. 
그러나 그뒤론 두번다시 그 부상병들을 볼수가 없었죠

(단발적인 치료와 많은 부상자들로 인해  사람과 사람간의 정을 붙이거나 또는 사망자로 인해 더욱 정을 붙이기가 힘들었던점을 토로하는 형식의 글로 추정됨)


1) Army Nurses Cooling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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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general, conditions in Korea were harsh. The winters were freezing cold and the summers were scorching. Add to that the stresses inherent in the job ? such as accommodating 200 soldiers in a MASH that was only designed for 60, or scrounging for supplies ? and it’s easy to imagine how hard the experience must have been. Still, in the midst of these grueling circumstances (to which the nurses responded heroically), there was some time for fun and laughter. Above, dressed in stylish ‘50s bathing suits, three Army nurses douse each other with buckets of water to cool off in the heat.


1) 육군간호사들의 여름나기
일반적으로 간호사들에게 있어서 전쟁당시 한국의 사정은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겨울은 모든것을 얼게 할정도로 추웠고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그리고 간호사들은 고유의 직무외에도 스트레스를 받는 사항들이 또 있었다.  예를들면 야전육군병동 한개동은 60명의 부상병이 입원 생활이 가능한 규모 였으나 항상 200명의 부상병으로 가득차 있었다거나 부족한 물자를 항상 찾아다녀야 한다는 점도 있었으며 이런점은 간호사 들이 얼마나 힘든 일을 겪었는지 쉽게 상상할수가 있다.
이 어렵고도 힘든 상황속에서도 (간호사들은 용감히 대처 했다) 간호사들에게는 재미있고 즐거웠던 시간들이 있었다.

50년대 스타일의 수영복을 입은 간호사들의 사진이다.  무더위 속에서도 간호사들은 수영복을 입고 찬물 한바케스 씩을 서로에게 부어주며 열기를 식히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에 참가한 USS POSE (USS Haven - AH-12)
건조발주: 1942년 2월19일
출시 : 1944년 6월24일
폐선조치 : 1987년 



인천바다에 정박해 있는 모습 - 양쪽 날개는 헬기 착륙설비




인천바다에 정박해 있는 모습




미군 간호사 배속기념사진 (갑판위) 




헬기의 창으로 내려다 본  USS Haven 




1953인천에 정박해 있는 컬러사진 

번역후기)
평소에 관심이 많다고는 하나.. 생소한 표현들이 조금 있었습니다. 
그리고 국군에 관련된분들중에 이름없이 봉사하신분들도 많으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분들의 이야기도 어떤경로로든 전달 되었으면 합니다. 
USS REpose 관련해서는 나중에 따로 관련정보를 번역해 볼까 합니다. 
UN군들의 많은 헌신이 있었지만 찾을수 있는 자료가 미국에 한정되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양해해주세요 ^^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번역회원: ChocoFa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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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기자 : ChocoFa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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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Cosm.. 17-07-16 14:02
 
한창 수정중이시군요. 작업 화이팅입니다. :D
설중화 17-07-16 14:14
 
방대한 내용이군요
수고 많습니다.
권선비 17-07-16 14:40
 
정말 귀한 자료 잘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날로그 17-07-16 15:39
 
닭다리가 어마어마 해서..설명을 봤더니...칠면조 다리라고 설명이 나오는군요...

입 짧은 사람은...저 다리 하나 다 먹기도 벅차겠습니다......
sangun92 17-07-16 16:12
 
귀한 자료, 잘 봤습니다.
전쟁기념관에도 전달되었으면 좋겠군요.

그리고 Episode 8)에 잘못된 부분이 있군요.

"오른쪽에 지휘관 Bruno Junnila도 보입니다."

아마도 Commander Bruno Junnila의 'Commander'를 '지휘관'이라고 번역하신 듯한데
Commander는 지휘관이 아니라 '중령' 계급을 나타나는 것입니다.
해당 병원선은 해군 소속이고, 따라서 군의관도 해군 소속일 겁니다.
해군에서는 중령 계급을 'Commander'라고 부릅니다.
해당 군의관 사진을 보면, 칼라에 잎사귀 모양의 계급장이 보일 것입니다.
그 잎사귀의 색상이 금빛이면 소령이고, 은빛이면 중령 (Commander)입니다.

참고로, 해군에서의 대령은 Captain입니다.
Captain이 육군에서는 '대위'지만, 해군에서는 '대령'입니다.
     
ChocoFactory 17-07-16 17:06
 
네 ^^ 제가 그부분을 잘 몰랐습니다 ㅎㅎ
옮길때 다른사람들은 계급을 붙이는데 왜 커멘더라고 하나 고민했었죠 ㅎㅎ
감사합니다 알려주신사항 수정 했습니다. ^^
최순실 17-07-16 16:24
 
잘 봤어요.
보고있다 17-07-16 18:05
 
잘봤어요.
레스토랑스 17-07-16 19:31
 
잘보고있습니다
직장인 17-07-16 20:48
 
번역 수고하셨습니다
가출한술래 17-07-16 20:59
 
잘 보고 갑니다
모란 17-07-16 21:15
 
감사합니다.
한국전쟁과 일본의 제국주의가 더 알려졌으면 좋겠네요.
하누인 17-07-16 23:56
 
수고하셨어요~
자기자신 17-07-17 02:21
 
잘 보고갑니다
타싼 17-07-17 11:07
 
잘 봤습니다.~
롸우 17-07-17 12:57
 
잘 보고갑니다
무겁 17-07-17 12:59
 
잘 보고갑니다
사람이라우 17-07-17 13:12
 
잘 보고 갑니다
사계영희 17-07-17 17:50
 
대단한 분들이네요
도나스 17-07-18 00:02
 
젊고, 이쁘시면 뭘해도 천사지롱~
명불허전 17-07-18 19:44
 
해군간호봉사단 소속 여군의 미모가 거의 마릴린 먼로급이군요.
17학번 17-07-19 23:14
 
잘 보고 갑니다!
우체부 17-08-11 22:45
 
감사.. 잘보고 가여
크다 17-08-28 16:19
 
ㅇㅋㅇㅋ
shadia 17-09-03 09:14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