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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ch]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 지출한 금액은 당시 국가예산의 280배
등록일 : 17-08-17 13:13  (조회 : 11,906) 글자확대/축소 확대 축소 | 프린트

https://headlines.yahoo.co.jp/article?a=20170816-00052599-gendaibiz-bus_all


 매년 이 시기가 되면 태평양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미디어에서 다루어진다. 그 전쟁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고 있지만 그 대부분이 정치적 관점 또는 군사력에 관한 것이며, 경제적인 관점에서의 논의는 많지 않다. 

 하지만 역사를 되돌아 보면, 전쟁과 경제는 뗄래야 뗄 수없는 관계에 있고, 경제력은 전쟁수행 능력 그 자체인 것이 현실이다. 경제라는 단면에서 태평양 전쟁을 되돌아 볼때 무엇을 보아야 하는 것일까.


국가 예산의 280 배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전쟁에 많은 비용이 소요될 수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로 어느 정도의 금액이 전쟁에 소요되는지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적다. 

사실, 태평양 전쟁의 전비의 실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전쟁 중이라고해도 일본 정부는 매년 예산을 짯었고, 기록도 존재하고있다. 그래도 금액이 명확하지 않는 것은주로 두 가지 이유가있다. 

 하나는 군부가 폭주하고 동남아시아의 점령 지역에서 군표 (어음의 일종)과 스스로 현지 통화를 남발한 재원을 바탕으로 자금을 현지 조달했기 때문에 그만큼의 금액이 확실하지 않은 경우이다. 

 또 하나는 태평양 전쟁 그 자체가 일본 경제의 기초 체력을 완전히 오버 한 전쟁이며, 이로 극도의 재정 인플레이션이 발생. 전쟁 기간에서 이미 엔화의 화폐 가치가 상당히 훼손 해 버린 때문이다. 

전비의 실태는 잘 모르겠다고 말해지지만, 어느 정도까지라면 추측할 수 있다. 옛 대장성이 전후 정리 한 자료에 따르면 태평양 전쟁 (중일 전쟁을 포함)의 명목상의 전비 총액 (일반 회계와 특별 회계)은 약 7600 억 엔이다. 

 금액만 들으면 의외로 적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중일 전쟁 개전시의 GDP (엄밀하게는 GNP)이 228 억엔이므로 전비 총액의 GDP 비율을 계산하면 무려 33 배가된다. 또한 국가 예산 (중일 전쟁 개전 당시의 일반 회계)에 대한 비율은 280 배의 천문학적 숫자이다. 

 무엇보다,이 숫자에는 조금 함정이있다. 태평양 전쟁의 전비는 너무 방대하고, 세금을 통해 조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전비의 대부분은 일본 은행에 의한 국채 직접 인수에 의해 투자되었다. 

 현재의 양적 완화책에도 통하는 곳이 있지만, 일본 은행이 무제한 윤전기를 돌렸던 것이므로, 당연히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전쟁은 가격 통제가 깔려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표면화하지 않았다 (이것도 현재로 통하는)이 여전히 전쟁이 시작되면 물가 수준은 점점 올라 갔다. 이 재정 인플레이션은 종전 후 준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폭발하게 된 것이지만, 전비의 실태를 생각할 때이 인플레이션을 고려하여야한다. 

(중략)

 이러한 전비 부담은 결국, 예금 봉쇄하여 국민의 재산을 강제 징수하는 형태로 보상이 이루어졌다. 세율이 높아져 자산의 90 %가 세금으로 부과되며, 많은 부유층들이 이에 따라 재산의 대부분을 잃게되었다. 

 한편, 전쟁의 다른 쪽 당사자인 미국의 모습은 어땠을까. 태평양 전쟁은 미국에게 큰 전쟁 이었지만, 그래도 일본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부담이 가벼웠다. 

 미국의 제 2 차 세계 대전의 전비 총액은 약 3000 억 달러. 개전 당시 미국의 GDP는 920 억 달러이므로, GDP 대비 3.2 배가된다. 미국은 태평양 전쟁 때, 유럽에서는 대 독일 전쟁을 싸우고있다. 초대형 전쟁을 두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이 정도의 부담으로했음을 감안할 때, 당시 미국 경제의 기초 체력의 크기를 알 수 있다. 

 참고로 제 1 차 세계 대전 때 영국이 사용한 전비 총액도 당시 GDP의 3.8 배 정도였다. 국가의 존망을 건 전면전도 무제한으로 돈을 쓸 수있는 것은 아니다. GDP의 3 배에서 4 배 정도라는 것이 무리없이 전면전을 수행 할 수있는 한계인 것으로보고있다. 

그 점에서 보면 태평양 전쟁은 처음부터 무리가 있었던 전쟁이라는 해석이 될 수밖에 없다. 

 다이에의 창업자인 나카우치씨가 징병되어 전쟁터로 향했던 때 일본군은 굶주린 가운데 미군 기지에서는 아이스크림을 자유롭게 먹고있는 것을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지만 숫자로부터의 체력 차이는 이러한 일상적인 광경에 반영된다.


(후략)


댓글 반응

負けるのが分かって軍部が暴走して多くの犠牲者を出してしまった。昭和17年に玉砕したガダルカナルの戦いでアメリカの軍事力を知ったはずなのに何故その後、戦いを継続したのか。東條をはじめ軍部上層部の責任は重大であると思います。

지게 될 줄 알고도 군부가 폭주 해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 내고 말았다. 1942 년 옥쇄한 과달카날 전투에서 미국의 군사력을 체험했을 텐데 왜 그런 싸움을 계속했는지. 도조를 비롯한 군부 상층부의 책임은 중대하다고 생각합니다. (찬성 2479/ 반대 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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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기자 : GOD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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