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있었겠죠.
이를테면 그냥 바닥에 까는 건 가능해도 쌓아올려 고정시키기가 어려운 배합이었다거나 혹은 쌓아올리는 건 가능해도 그걸 조각하거나 다듬는 게 불가능한 구조였다거나 하는 식으로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았겠음?
본문을 보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눌리는 압력에 따라 압축되는 배합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쌓아올린 건축물의 경우 반대의 상황이 연출되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을 테고요.
아니면 저 방식이 후대에 와서 발견된 방식일 수도 있고 말이죠.
아무튼 좋은 방법이 있었으면 바로바로 적용해서 써먹었겠지, 무덤에만 적용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해요.
조적식 건물은 수직력에는 강하지만 수평력에서는 약하며, 정밀하게 쌓지 않을 경우 높이 올리기도 힘들어 조적식만으로 5층 이상의 건물을 세우기 힘듭니다. 성벽은 안에 부재가 들어가고 벽의 두께가 매우 두껍기 때문에 높이 올릴 수 있지만 일반 건축물은 조적식 벽으로 하면 벽체가 너무 두꺼워 내부 공간이 부족해집니다.
더불어 우리는 석재가 풍부했고,
조선 사회 자체가 평민 중심 사회라 대규모 토목 공사는 백성을 괴롭힌다고 대체로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조선시대 무덤을 도굴해봐야 뭐 값나갈 물건들이 별로 없어서.
그시대 사상 자체가 소유한다는걸 없인여긴시대다보니 어디 고관대작 그보다 왕이라도
그안에 부장품이라고해봐야... 그릇몇개 정도 .... 도굴꾼들이 위험무릎쓰고 파기에는 나오는게 별로없음.
도굴꾼들이 어떤놈들인데 저기 값나가는거 있다고 하면 밑에서부터 파고올라와도 올라왔지
저건 도굴꾼들이 힘들어서 안해간것보다는 값나가는것이 없다고 생각하는게 맞지싶은데.
우리 집안도 대대로 내려오는 방식으로 장사지내는데..
석회랑 고은 모래랑 섞어서땅을파고 거기에 석회랑 모래 혼합물을 넣고 다진후 관모양으로 파내서 시신을
넣고 관뚜껑만 덮어서 그위에 다시 석회모래를 넣고 그위에 흙으로 덮음..
이방식이 잘돼면 미이라가 돼서 몇백년도 버팀..
조부님 묘를 저렇게 안장했음.
아버지는 평범하게 하시려고 했는데 문중사람들이...
묘자리는 명당이라고 조부님 주위로 누군지 모를 사람들이 돌아가며
수십구를 안장...참...
누구 묘인지 몰라서 이장이나 파묘도 못함.ㅋ
불법이라도 남의 묘 못건드린다고...
해결하려면 할 수는 있는데 뭐 한 두구도 아니고 수십구라...
앞으로는 화장이 완전히 정착하기를.
후손들에게 뭘 바랄 때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