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 콘텐츠의 세계화 역사를 시대별로 파악하고 해설한 글입니다. 정치나 국제 정세가 한국 콘텐츠의 세계화에 영향을 미쳤지만, 한국의 크리에이터들이 그 벽을 어떻게 넘었는지도 기술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일본 칼럼 내용입니다.
댓글반응은 따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본 칼럼 내용 >
일본을 압도하는 '한국 콘텐츠 ' 부동의 인기인 이유 … 30년 전 이미 시작된 세계화
인터넷으로 국경과 언어, 창작자와 소비자 등 모든 경계가 사라졌습니다 .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전 세계에 콘텐츠를 발신할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
그런 시대이기 때문에 '그 나라다움 ' '자기다움 '에서 가치가 나옵니다 . 세계인들은 그 나라에서만 표현할 수 있는 , 자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새로운 콘텐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시대의 변화를 잘 포착해 세계적인 히트를 쏟아내고 있는 한국. 신간 '콘텐츠 보더리스 '에서는 BTS, '사랑의 불시착 ', '오징어 게임 ' 등 현재 기세가 오른 한국 콘텐츠의 사례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세계로 발신하는 방법을 해설하고 있습니다 . 본 기사에서는 그 책에서 발췌하여 3회에 걸쳐 여러분께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 제 1회입니다 .
지금 한국 콘텐츠는 유튜브나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글로벌 플랫폼을 주전장으로 전 세계의 시선을 끌고 있습니다.
BTS의 그래미상 노미네이트 (2021, 2022)와 '오징어 게임 '의 히트 (2021) 등 한국 콘텐츠의 흥행으로 '몇 년 사이에 한국 콘텐츠 업계가 세계화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는 인상을 받고 계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
■세계화 조짐은 90년대부터
하지만 한국이 콘텐츠의 세계화에 힘을 쏟기 시작한 것은 30여 년 전부터입니다 .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콘텐츠의 세계화 역사를 알아보겠습니다 .
한국 콘텐츠의 세계화는 1990년대가 기점입니다 . 왜냐하면 , 1990년대는 세계 각국이 다른 나라에서 제작한 영화나 음악 , 즉 '글로벌 콘텐츠 '에 주목하기 시작한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
1995년 , 일찌감치 그 흐름을 읽은 한국의 대기업 식품회사 CJ그룹이 미국의 영화사 드림웍스에 3억 달러를 출자합니다 . 이전까지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엔터테인먼트를 '내수 산업 '으로만 여겼기 때문에 CJ그룹의 해외 출자는 당시 한국 내에서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
그리고 1990년대는 한국의 3대 연예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 , YG엔터테인먼트 , JYP엔터테인먼트의 전신이 되는 회사가 창설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 이들 3대 기획사가 없었다면 지금의 K-POP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후 계속해서 세계에서 활약하는 K-POP 아티스트들을 배출해냅니다 .
이때부터 세계적으로 글로벌 콘텐츠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지만, 당시 아시아 시장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양질의 콘텐츠는 일본 드라마와 홍콩 영화 정도였습니다 .
하지만 일본 드라마는 2차 이용료가 비싸고 저작권 등 라이선스 취급이 까다로워 수입을 시도한 사업자들이 벽에 직면했습니다 . 또 홍콩 영화도 1997년 중국 반환을 계기로 많은 배우와 제작 자금이 대만과 미국 등으로 빠져나가고 말았습니다 . 그런 상황을 읽고 움직이기 시작한 곳이 바로 한국입니다 .
한국은 가능한 한 빠르게 콘텐츠를 패키지화해 팔기 쉬운 형태로 만들어 중화권 수출을 시작했습니다. 1993년에 '질투 ', 1997년에는 '사랑이 뭐길래 '라는 한국 드라마가 중국에서 크게 히트를 치면서 아시아 시장에서 일본과 홍콩의 구멍을 메운 것입니다 .
이 시기의 수익은 지금에 비하면 그다지 크지 않지만, 이를 계기로 한국은 '콘텐츠나 문화로 글로벌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 '는 점을 깨닫고 해외 진출에 힘을 쏟게 되었습니다 . 1990년대 말경부터 한국은 콘텐츠 보더리스의 가능성을 실감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일본 시장에서 성공한 2000년대
1990년대 시작된 한국 콘텐츠의 세계화는 2000년대 들어서 본격화됩니다 . 이 시기는 한국 콘텐츠에서 일본 시장이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 왜냐하면 , 2001년에 보아가 일본서 데뷔하였고 , 2003년에는 드라마 ‘겨울연가 ’가 NHK에서 방영돼 주연 배우 배용준의 인기도 맞물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 이른바 ‘한류 열풍 ’이 분 것입니다 . 그 후 2005년에는 동방신기가 일본에 데뷔 , 2008년 싱글 ‘Purple Line’으로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했습니다 .
예상을 뛰어넘는 한류 열풍의 크기에 한국도 놀랐습니다만, 이 시대에는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
당시에는 보아, 동방신기 등이 일본에서 활동하기 위해 일본에 거주하면서 일본어를 처음부터 배우고 , 일본어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 때로는 일본인의 취향에 맞는 새로운 곡도 만들었습니다 . 즉 , 처음부터 일본을 겨냥해 프로듀싱했다는 것입니다 .
다만, 이러한 현지화 전략은 한국의 대형 연예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된 보아나 동방신기라서 실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왜냐하면 , 이렇게까지 준비하는 데에는 엄청난 초기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
지금은 K-POP 아티스트가 애써 현지에 살거나 그 나라의 언어로 말하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 하지만 K-POP 장르가 확립되지 않았고 , SNS가 발달하는 과정에 있었던 2000년대에는 현지화하지 않으면 성과를 내기 어려웠습니다 .
그 후 2010년을 전후로 한국 콘텐츠의 활약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됩니다 .
일본에서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전 세계를 시야에 넣습니다. 라이선스 관계를 정리하는 등 해외 진출을 위해 힘을 쏟는 업계에 많은 기업이 투자했고 , 정부도 콘텐츠 관련 공공기관을 설립해 지원했습니다 .
어떤 장르든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려면 미국에서 인정받는 것이 필수적일 수 있습니다. K-POP 걸그룹 원더걸스가 한국 콘텐츠 최초로 그것을 이뤄냈습니다 .
원더걸스는 일본에서도 유명한 박진영이 만든 그룹으로, 박진영은 당시 그들과 함께 미국에 살면서 미국 활동에 주력했습니다 . 그 결과 2009년에 한국 아티스트로서는 최초로 원더걸스의 'Nobody'가 미국의 싱글 히트 차트인 빌보드 'HOT 100'에 진입했고 , 2010년에는 총 27회 북미 투어 공연을 실현했습니다 .
그리고 2012년에는 싸이의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 '이 당시 역대 최고치의 유튜브 조회수를 갈아치우는 대히트를 기록하며 전 세계를 열광시켰습니다 . 2010년을 전후해 K-POP이 이룬 성과로 K-POP 등 한국 콘텐츠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노하우를 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미국에서 원더걸스와 싸이가 활약하는 동안 일본에서는 카라, 소녀시대 등 한국 걸그룹들이 대히트했습니다 . 드라마의 인기가 중심이었던 '1차 한류 열풍 '과는 달리 카라와 소녀시대가 일본 K-POP의 선구자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
또한 배우 장근석이 드라마 '미남이시네요 '를 계기로 큰 인기를 얻기도 한 이 시기를 '2차 한류 열풍 '이라고 부릅니다 .
■정치나 국제정세가 콘텐츠 수출에 영향
하지만 이후 한국 콘텐츠는 일본에서 한동안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한국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 정치나 국제 정세가 콘텐츠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습니다 . 2012년 8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에 상륙하면서 한일관계에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
또한 2016년에는 사드 (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 배치 방침을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악화하여 중국으로의 콘텐츠 수출도 어려워졌습니다 .
그 영향으로 일본과 중국으로의 한국 드라마 수출과 K-POP 아티스트의 TV 출연이 격감 . 큰 시장이었던 일본과 중국에서 이익을 내기 어려워지면서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
하지만 TV에서 볼 수 없게 되긴 했지만 , 한국 콘텐츠의 팬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 라이브 콘서트를 개최하면 티켓은 매진되었고 교류 이벤트도 성황을 이뤘습니다 . TV 등의 대중매체에 출연하지 않아도 열기를 고조할 수 있다고 실감한 한국 콘텐츠는 이때부터 ‘탈 대중매체 ’를 찾기 시작합니다 .
마침 2010년대는 유튜브와 각종 SNS의 보급이 가속화된 시기이기도 해서 타이밍도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의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은 이러한 도구를 능숙하게 사용해 직접 세계로 발신하기 시작했습니다. SNS에서는 상대 국가의 방송국이나 제휴처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 정치적인 리스크도 최대한 피할 수 있습니다 . 공개 시기나 시차에 개의치 않고 전 세계로 동시에 발신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
이러한 장점을 일찍부터 경험한 한국의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은 2010년대 중반부터 적극적으로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어 냅니다 . 그 결과 BTS와 블랙핑크의 뮤직비디오는 여러 차례 유튜브 조회수 1억 회를 돌파했고 , ‘오징어 게임 ’은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가 열광한 드라마가 됐습니다 .
번역기자: 푸른울림해외 네티즌 반응가생이닷컴 www.gasengi.com
위 출처의 변형,삭제등은 절대 허용하지 않습니다.또한 어떠한 형태로든 가생이닷컴 모든 번역물의 2차 가공,편집등은 절대 허용하지 않습니다.*노골적인 인종차별성 댓글 및 부적절한 글은 통보없이 삭제 합니다.(또는 댓글 금지조치)-운영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