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본인이 입고 나온 옷들은 한복의 형식과는 좀 다른듯 하나 모델이 입고 나오는 옷들은 만듬새가 조선시대 초기 중기 후기 한복의 형식에 너무나 충실해서 놀랐습니다 소재는 다르지민 디자인이나 형식은 누가봐도 한복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꼭 전통한복 누에고치실을 쓴 본견 노방만을 인정하실지는 모르겠으나 린넨원단 또는 면 그리고 폴리에스터 원단으로 소재만 바뀐것 가지고 한복이 아니다 기모노 스럽다 말하는건 너무나 억지이기도 하고 글쓰신분이 너무 한복에 대해 모르시기도 한것입니다.
기모노와 비슷한 부분은 제가볼때 1도 없습니다 완전히 다른옷ㅜㅜ
가루녹차 (말차) 스타일은 확실히 일본식으로 굳어진 녹차 방식이죠..
한국 전통 녹차는 말려 쪄낸 입차를 우려내는 방식임.
그것도 어찌 보면 중국에선 예전 없어지고.. 입차 방식으로 바뀐
한중일, 삼국 다도문화는 대륙에서 .. 한반도 걸쳐 넘어가기에 .
각자 나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발전한건 사실임.
고조선 초기 무덤유적에서 후기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장식품의 출토상황으로부터 다음의 내용이 정리된다.
첫째는 고조선의 비파형동검문화인 하가점상층유적에서 출토된 장식단추는 그 양식과 종류에서 고조선의 하가점하층문화와 서로 계승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는 고조선의 하가점하층문화로 이어지는 소하
연문화의 ‘인형방식’ 웃옷에 나타난 둥근달개장식의 사용이 홍산문화로부터 비롯되어 일관되게 후기에 이르기까지 고조선 영역에 전반적으로 확산된 것은 복식문화의 시대적인 조형적 양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달개장식의 사용이 고조선 이후 여러나라시대에 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어지고 이후 고구려의 불꽃문양을 표현한 금관과 금동관200)등에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태양신을 섬기는 천신신앙201)의 문화적인 전통이 계승되어진 것으로 해석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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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모수의 (해)解는 하늘의 해, (모수)慕漱는‘머슴애’를 뜻하는 것으로 해모수는 해의 아들 즉 (일자)日子를 의미한다.208) 즉 고조선의 단군은 해의 아들이라고 불리었으며 태양신을 상징한다. 따라서 고구려는 홍산문화로부터 비롯되고 소하연문화를 이은 고조선문화를 계승하여 태양을 숭배하는 전통과 장식기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원형의 달개장식을 매개체로 하여 태양의 기능인 열과 빛의 모습을 복식 등에 표출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오랜 기간 통시적인 발달양상을 보이는 장식기법은 중국이나 북방지역의 복식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한민족의 고유양식인 것이다.
소하연문화의 ‘인형방식’에 나타나는 복식양식과 장식기법은 한국 고대복식의 원형이 중국이나 북방 호복계통에서 비롯되었다는 종래의 통설화 된 견해들이 모순임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아울러 홍산문화 복식의 특징적 요소들이 소하연문화로 이어지고 다시 고조선의 고유한 복식전통의 밑거름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옥과 청동 등을 재료로 한 원형의 장식기법은 홍산문화의 복식 전통을 이은 고조선의 고유한 장식기법으로 한민족 복식의 문화적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결정적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속자치통감 제이백일십사 원기삼십이]
《续资治通鉴 卷二百一十四 元纪三十二》记载:“后亦多畜高丽美人,大臣有权者,辄以此遗之,京师达官贵人,必得高丽女然后为名家。自至正以来,宫中给事使令,大半高丽女,以故四方衣服、靴帽、器物,皆仿高丽,举世若狂。”
"황후도 역시 고려미인으로 삼아, 대신유권자는 곧 이를 귀하게 여겨, 수도 고관귀인은 반드시 고려여자를 얻은 후에야 명가가 된다.
그렇게 된 이래, 궁중급사사령, 대반이 고려여자이며, 이런 이유로 사방의 의복, 신발과 모자, 기물 모든것을 고려를 모방해, 온 세상이 미친 것 같다."
[숙원잡기]의 기록에는,《菽园杂记》::“马尾裙始于朝鲜国,流入京师……于是无贵无贱,服者日盛。至成化末年,朝臣多服之者矣。阁老万公安冬夏不脱……。大臣不服者惟黎吏侍淳一人而已。此服妖也,弘治初始有禁例。”
마미군은 조선국(고려)에서 시작되어, 수도로 유입됬으며......귀천을 가리지 않고 복식이 날로 성했다. 성화말년에 이르러, 조정 신하들도 입게 되었다. 각로만공안이 겨울에도 여름에도 벗지 않았다.....이 복식은 요사하므로, 홍치 초시에 금지되었다.
하니하라 가주로(埴原和郞) ... 나라시대(奈良時代- 제50대 칸무(桓武) 왕이 784년 헤이안(平安)으로 천도하기 이전)까지도 한복을 입고 한국음식을 먹었으며 심지어는 한국말까지 사용했는데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 만엽집(万葉集) 등에 아직 조작되지 않은 부분은 한국어의 한국식 한자용어가 남아있다”고 말해 전체적으로 일본고사기들이 조작되었음을 밝혔다.
차이 김영진 선생은 현재 생활한복 유행의 선두 주자이자 그 자체로 훌륭한 전통 한복 디자이너입니다. 실제로 브랜드 라인이 여러 가지 있죠. 군복을 여성 원피스 형태로 크로스오버한 그의 안목은 수많은 양산품을 낳았을 정도입니다. 안목이 천박한 건 당신이죠, 품을 한껏 늘린 한복은 수천 년 한민족 복식 역사 중 극히 일부이며 당신이 아는 한복은 625전쟁 후 유행한 일종의 과장된 한복 형태입니다. 오늘날의 한복 디자이너들은 그 품위 없음에 개탄하며 조선 후기 이전의 여러 양식을 되살리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지요.
아는 게 없어서 하이엔드 급 한복을 보고 촌스럽다 운운.... 한복 평면 재단의 우아함을 일상복으로 탄생시킨 아주 괜찮은 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