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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D] 해외네티즌 "직접 걸어 다니며 제작한 한국, 대동여지도"
등록일 : 20-10-10 15:23  (조회 : 43,502) 글자확대/축소 확대 축소 | 프린트


지도 제작자 김정호는 1861년 한반도의 모든 산과 골짜기를 몇 년 동안 직접 걸으며 매우 정밀하고 거대한 한국 지도를 제작했다.


1804년 황해도 태생인 김정호는 1861년 발간된 한국의 지도인 대동여지도(大同女圖)를 연구하고 편찬하기 위해 한반도 전역을 산과 계곡을 거쳐 걸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호의 죽음에 관한 내용은 여러가지 설이있다. 
1866년 대동여지도 후기본이 간행된 이후 김정호의 자취에 관한 소식은 끊기게 되었다.
일본 총독부의 한 문서에 따르면 한국의 대원군이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개정본을 본 후,
국방에 중요한 민감한 성격의 내용(기밀)을 포함함으로써 격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문서에 따르면 대원군은 김정호를 체포하여 투옥시켰고 지도는 파괴되었다.

그러나 대동여지도의 원목인쇄판은 숭실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이는 사실이 아니다.
더욱이 최한기, 신헌 등 지도개발을 도운 인물들은 유죄판결을 받지 않았다.
한국사학계는 이 문건이 일제강점기 일제의 통제를 받던 총통부가 조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000.jpg

002.jpg




<댓글>


soyfox
혹시 위 내용에 대해 수정할 점이 있거나 더 자세한 디테일을 아는 사람은 댓글을 달아줘!

PS : 몇몇 전문가들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순전히 그의 탐험에 의존했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고있어.  아마 그는 지역 귀족들이 소장하고 있던 개인 지도를 부분적으로 참조했을 수도 있다고 해.   또 다른 전문가는 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조선 정부가 편찬한 이전의 지리 자료들을 조사했다고 주장하고있어.




lolsbot360
난 다 알고있었어!




jkjeffrey7
난 김정호의 후손이다!



ㄴ soyfox
    쿨!! 그래서 혹시 그 이후에 김정호에게 무슨일이 일어난건지 알려줄수있어?



AwkwardImprovements
너무나 아름다운 지도




JobWorth9358
김정호는 나의 조상이야 (직계조상은 아닐지몰라도..)
나는 청도김씨 인데 내가 조부모님 댁에 갔을 때 청도김씨 족보를 본적이 있어.
그는 부유한 양반(양반이긴 했지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족보가 돈과 거래되었을 가능성은 낮아.
몇가지 포인트를 집어보자면




seitengrat
한반도 전체를 이렇게 지도로 그릴 수 있다니 너무 신기해.
디테일 레벨은 와우!! 인상적인 건 지도가 가지고 있는 절제된 표현력이야.




BananaTheCannon
독도는 어딨냐




Illuminatirighthere
다람쥐가 앉아서 니가 던져주는 음식을 먹으려고 기다리는 것 같은 모양이야.




jdog99123
이 게시물 아래 포켓몬고 광고가 떠있네 lol
만약 김정호가 포켓몬고 앱을 가지고 있었다면 얼마나 많은 포켓몬을 잡았을지 상상해봐.
농담이고 너무 인상적인 지도야!




savahan
"일본 총독부의 한 문서에 따르면 한국의 대원군이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개정본을 본 후,
국방에 중요한 민감한 성격의 내용(기밀)을 포함함으로써 격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 구글맵 19세기버젼




Angie_114
뇌의 한 조각같아




k8track
안타깝게도 그는 높은 산들의 높이를 지도에 표시하지 않아서 크게 쓸모있지는 않은 지도야.



ㄴ Noctilux4
    지질학 처음공부해보지?




Sherryzann
1861년? 와우! 상상하지도 못했네.



ㄴverygneiss
지도 제작 기술은 이미 19세기에 널리 퍼져 있었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영국의 지질 지도는 1890년대의 조사에 기초하고 있고.




zerton
아름답다..




bedulge
확대해서 보면 디테일이 더 쩔어.



ㄴ EthiopianKing1620
와 미쳤다. 이보다 더 인상적일 수 없다.




comp_informatics
저거 혹시 간도에 있는 백두산이야??




thebestthateverdidit
김정호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진 영화도 있어 "고산도, 대동여지도"
개인적으로 난 엄청 이 영화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꽤 흥미로웠어.




Jimmy_Fromthepieshop
글쎄.. 그냥 어린 남학생의 실수아닐까.  그냥 구글맵으로 볼수도 있었는데



ㄴ_WhatUpDoc_
북한지도는 구글에서 접근불가야 ㅋㅋ




bo60
남자 혼자 지도를 만들기 위해 전국을 걸어다녔다는데 내가 아는바로는 이건 거짓말이야.
조선은 각 지역마다 충분히 이런 종류의 지도가 이미 많이 만들어져 있었어.
김정호는 그냥 그것들을 하나의 위대한 명작으로 편집한 에디터 였을 뿐이야.
그가 전국을 누비며 걸어다녔다는 이야기는 당시 조선의 지도 제작능력을 깎아내리고자 했던 일본인들이 만든 거짓말이야.



ㄴDanielK747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1800년대에 이렇게 거대하고 정확한 지도를 만들었다는게 완전 미쳤어



ㄴsoyfox
맞아. 한국의 위키페디아를 참고해보면 그가 전적으로 탐험에 의존해 이 지도를 제작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이 있어.




yakitori_stance
아니 어떻게 1800년대에 이렇게 하루종일 돌아다니면서 지도 만들수 있는 돈을 마련하는거야?
몇년동안 걸어다니면서 언젠가 지도가 완성되겠지.. 라는 생각만으로 가능한거야? 음식은 어떻게 사먹고?




savahan
이 사업은 한국의 상인들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만들 수 있었어.
반면에 정부에서는 적극적으로 반대했지. (적들이 이 지도를 이용해서 침략할수 있기 때문에)




linuxhanja
조선 후기에는 외부 세력 (중국이 모든 수입 관세와 세금을 빼앗아갔어)과 내부 세력(부패)으로부터
심각한 예산부족의 문제에 시달렸었어.   식민지 정부(일본)가 조선의 토지 권리를 확인하기 위해 토지조사를 가장 먼저
실시해야 했고 그를 위해 일본의 자금 지원을 기다려야 했지.




Stercore_
노르웨이에선 어느 한 남자가 나라 전체를 돌아다니며 전국에 있는 방언에 근거해서 완전히 새로운 문자와 언어를 만들었는데,
그게 오늘날의 노르웨이의 글자야.



ㄴBeachdaddybravo
그게 언제였는데? 완전 흥미로운데.



ㄴStercore_
1800년대 후반.  노르웨이가 독립 한 이후야.



ㄴBeachdaddybravo
아니 그래서 노르웨이 글자가 1800년대 후반에 합쳐진거라고?
 아니면 내가 이해를 잘못하고 있는건가? 좀 더 디테일하게 알려줄 수 있어?



ㄴStercore_
음. 그게 아니라 노르웨이 언어는 수 세기동안 진화해왔어.
그렇지만 우린 오랫동안 덴마크와 연합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덴마크 글자로 쓰여있었지.
1814년 우리가 독립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언어를 쓸 문자가 없었어.



yomuthabyotch
나 어디에선가 읽은것 같은데 조선시대에는 (아마 그 전부터 일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가정에서는
지도제작자와 같은 방랑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게 관례였다고 들었어.
이런 이유때문에 게스트룸을 지었다고 하던데.. (잘사는 집들)




번역기자:싸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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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빗 20-10-10 15:25
   
잘 봤습니다
뱁새눈 20-10-10 15:27
   
대동여지도가 조금 더 일찍 등장할 순 없었을까?
일빵빵 20-10-10 15:28
   
잘 봤습니다 .
아베OO럽 20-10-10 15:29
   
이거 잘못된거라고 십여년 전부터 꾸준히 올라왔는데도 아직도 이렇게 알려졌네.
하긴 "고산자"라는 영화로 아주 판타지를 그려서 그거보고 진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나
일본넘들이 식민사관으로 고산자가 정부의(이씨왕조) 엄청난 탄압에도 이렇게 완성했다는
조선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를 위해 퍼트렸던걸 아직도 그대로 믿는 사람이거나.

뭘 백두산에 몇번을 오르고 금강산을 몇번 오르고 했다는 거짓말을 ㅋㅋㅋ
그 전에 나온 자료들 취합해서 만들었다고 알려졌고 그걸 독해하는 능력이
좋았다라는거. 그리고 그걸 꾸준히 지속해서 완성했다는것이 대단한것이였지.
그리고 왕조에서 뭘 막어ㅋㅋ 지도만들때 열람권한등의 편의도 최대한 해줬는데.
     
미스트 20-10-10 16:39
   
와우..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직접 본 것 같으시네.
          
부스러기 20-10-10 16:49
   
천상의 컨렉션 에서도 나오고 역사스페셜인가에서도 나온 야기 입니다.
지방 관청에 지도가 잘 그려져 있었다고. 그~ 토대로 잘 기록 했다고 ,모자란 부분만 직접
조선이 그리 허술한 나라 아니였음을  시사하죠. 모아 기록 한 것만 해도 되단 한거죠.
세계 유래 없는 기록에 나라 였으니.
          
후아이오 20-10-10 17:08
   
윗분이 쓰신게 그냥 보통 배우는 정설이에요
          
또돌이표 20-10-10 18:32
   
기본적으로 걸어다니면서 저런 지도는 못만들어요.
최소한 삼각법 정도는 써야 해요.
그러니까 지도상의 세 점을 찍고 그 점에서 각각의 거리를 재면 정확한 지도가 그려질 수 있어요.
서울에서 인천 그리고 수원을 그냥 돌아다니면 아무런 지도도 못그려요.

마치 2D 에서 3D 를 구현하는 것처럼 폴리곤 같은 작은 삼각형을 계속 이어 붙어야 지도가 완성되요. 당연히 혼자선 못합니다.
혼자 걸어다녀서도 못하구요.

아마도 삼각법에 의거해서 의심스러운 부분(삼각형이 안그려지는) 은 직접 답사했을 수 있지만 전체를 전부 답사하기엔 인생이 너무 짧아요.
          
magnifique 20-10-11 11:39
   
직접 걸어다닌건 절대 아니고 당시에 있는 지도들의 합본이라고 보는게 통설
     
굿잡스 20-10-10 22:09
   
보물 제1538호 : “동국대지도(東國大地圖,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는 세로가 2m72cm에 달하는 대형 조선전도로, 표현된 범위는 조선과 만주의 일부를 아우르고 있다.

우리나라 지도에서 혁신적인 분기점을 그은 정상기의 <동국지도> 원본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판단되는 지도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 종이가 아닌 세폭의 비단에 그려진 것으로 1755년-1757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 당시 모사한 자료 중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http://m.shinmoongo.net/2547

15세기 제작된 세계지도.

조선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이 지도는 조선 시대에 학자들이 제작한 거의 유일한 세계지도로서 조선 전기의 세계지리학의 결집체라 하겠다. 17세기에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의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가장 훌륭하고, 사실상 유일한 세계지도였다. 또한 세계적으로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신대륙이 알려지기 전에 만들어진 세계지도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ti/view.do?tabId=01&code=0&subjectId=ti_019&levelId=ti_019_0070#self
황룡 20-10-10 15:30
   
잘봤습니당~!@@!
cafeM 20-10-10 15:30
   
대동여지도는 크기에 깜짝 놀람
바두기 20-10-10 15:46
   
잘봤습니다.
Tobi 20-10-10 15:51
   
잘 봤습니다....
moveon1000 20-10-10 15:55
   
진지하게 대동여지도는 직접 걸어가면서 만든건 아니라고..
허까까 20-10-10 15:57
   
김정호가 전국 이곳저곳 답사한 건 맞는데 흔히 알려진 건 지나치게 과장/왜곡된 거고, 실제론 이미 나와있던 여러 지도들을 취합해 만들었습니다. 답사는 이 과정에서 몇몇 확인차 갔던 거죠. 이외에 조정에서 불태워버렸다는 둥 감옥에서 죽었다는 둥 일제가 왜곡한 게 너무 많아요.
큰솔 20-10-10 16:02
   
번역 감사합니다
하늘나비야 20-10-10 16:05
   
옛날에는 숙박시설이 없는 마을에선 그냥 제일 잘사는 집이나 양반집 찾아가서 하루 묵을 수 있는지 물어 보면 대체로 무료로 재워 줬다고 하죠 식사도 제공하고 그래서 전설의 고향 보면 길가는 과객이온데 하면서 하루밤만 묵어 가게 해달라고 하면 옹고집같은 구두쇠나 심술궂은 집 아니면 다들 잘 곳이랑 간단한 식사라도 내 주는 내용을 종종 볼수 있습니다
인왕 20-10-10 16:07
   
잘봤습니다.
운드르 20-10-10 16:18
   
아무리 우리 강토가 작네 좁네 말들 하더라도
개인이 전부 발로 다니며 실측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전부 편집이죠. 실측했으면 북부 지방이 그리 심하게 왜곡됐을까요?
뽀로록 20-10-10 16:26
   
대마도 누가 도려냈냐
merong 20-10-10 16:29
   
동네마다 있었던 지도를 취합했다...
그 얘기는 저런 정확한 지도를 동네마다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보급되어 있었다는 얘긴가요?
1860년대에 말이죠.
그 당시 지도는 베껴 그릴때마다 점점 오류가 심해졌을겁니다.
김정호 한명이 아니라 몇백명의 김정호급 지도제작자가 전국에 있었군요.
     
아베OO럽 20-10-10 16:50
   
고산자를 높이 평가한 이유중 하나가 바로 도해의 독해능력이였죠.
각 지방이나 고을에 관련 지도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드라마에서 보았듯이 현대의 지도와는
많이 다른형태로 어디에 무엇이 있는 정도지 그것을 실측에 가까운 대비율이 많이 부족한데
김정호는 산세나 지형, 아전등 관리가 말하는 이동거리 등둥을 유추해 그 대비율까지 감안을 해서
지도를 제작한거죠.
그래서 지금의 지도와 비슷해 보이고 그래서 대단하다고 하는겁니다.
     
또돌이표 20-10-10 18:34
   
베껴 그릴때마다 오류가 심해졌을거라는건 그냥 망상이구요.
지도의 기본은 거리 입니다.
아무리 수백번을 베껴 그려도 숫자까지 틀리진 않아요.

서울 대구 297킬로 라는 걸 두 점을 찍어서 거리를 표기하면요.
누가 이걸 베껴도 크기는 차이가 날 수 있겠지만 거리가 297킬로 라는건 안바뀝니다.

누군가가 오류로 소수점을 잘못찍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서울 대구 29.7킬로..
그럼 대번에 알죠. 한자로 쓰는 숫자를 헷갈릴 순 없어요.
          
merong 20-10-10 19:27
   
대동여지도는 거리가 쓰여져있지 않은걸로 압니다.
도로가 곡선으로 그려져있고, 일정거리마다 점이 찍혀 있지 않나요?
즉, 서울-대구가 선으로 이어져 있고, 279개의 점이 찍었던 것으로 압니다.
물론 km 는 아니었겠죠.
감독 20-10-10 16:29
   
잘봤습니다.
비이콘 20-10-10 16:33
   
잘봤습니다..
음그러니까 20-10-10 16:38
   
대동여지도 만들고 있을때 영국은 지하철 만듬
ashuie 20-10-10 16:39
   
일제가 안끼는곳은 어디냐 대체
최적 20-10-10 16:40
   
한자가 틀렸네요. 계집녀가 들어가다니...대동여지도(大同女圖)--->大東輿地圖,
qufaud 20-10-10 17:00
   
한 사람이 전국을 다 걸어다녀야만 확인이 된다면 저런 지도 교통 편리한 지금도 못만들어요
그 때도 요즘같은 분업이라는 시스템이 있었다는 얘기죠
지방마다 관청이 있고 관청에는 관리가 있고 관원 관속이 있는데
그 사람들 할일 중에는 지역 관내도를 만들고 관리 보존하는 일도 있었다는 것이죠
지역 관내도는 지역 사람들만큼 정확하고 세밀히 주기적으로 몇번이고 재측정해 그릴수 있는 사람들 있나요 없죠
생각을 해보세요 그보다 몇백년 이전의 임진왜란 때도
이순신 장군이 그 복잡한 리아스식 다도해 해역을 손바닥 보듯이 꿰뜷고 작전을 펼칠수 있었던 이유를요

그런 전국 관내지도를 다 모아서 고산자 김정호한테 편집과 판본제작을 부탁했다는 것이지요
그만한 일을 지원하고 맡기려면 상당한 권력및 재력가여야 하는데
일설에는 그 후원자가 대원군 이하응이었다는 말도 있던데 암튼 전국 지역의 관내지도 모아주고
그 일만 하라고 할 정도면 상당한 재력과 권력이 작용되었을 것은 틀림없고 조력자들도 있었을 거란 거죠

이걸 조선총독부 왜인들이 폄훼하려고 조작질 해서
자동차도 오토바이도 자전거도 없던 그 시절에 일곱번 백두산에 오르고 짚신 살돈이 어쩌고 개질알 떤거죠
그럼 언제 그 어마어마한 크기로 편집하고 언제 판본을 새기고 만들어 그것도 혼자서, 장난치나 왜구들

대동여지도 실제 크기 : 가로 4m x 세로 7m (남북 120리 x 22첩)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26089
mymiky 20-10-10 17:16
   
한글이 파스타 문자의 영향을 받았다는 가설을 가지고 만든 영화ㅡ 나랏말싸미

김정호 혼자 여기저기 발품 팔아 돌아다니며 지도 만들고
흥선대원군의 미움을 받았다는 통설을 토대로 만든 영화ㅡ 고산자

둘다  옛날부터 점검 없이  일제때부터 내려오던 ~~ 카더라로 만든 영화;;;

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해서
최신 학설정도는 좀 알아보고 영화를 찍었으면 좋았을텐데  ㅉㅉㅉㅉ

이미 학계에선 더이상 쳐주지도 않는

쉰밥 취급 받는 내용을 가져다가 영화 만들어서  아주 거하게 말아먹음 ㅡㅡ;;
지하 20-10-10 17:24
   
조선조 때 거리를 측정하는 기준은 ‘척(尺), 보(步), 리(里)’였습니다. 흔히 쓰는 자(尺)는 일반적으로
주척(周尺: 6치 6푼자)이며, 주로 도로나 토지의 측정에 쓰였다.
그 단위는 6척(尺)-1보(步), 360보(步)-1리(里), 3,600보(步)-10리(里), 1식(息)-30리(里)라는 규정이 있었다.
흔히 도리식수(道里息數)라 하여 30리(里)를 1식(息)의 단위로 사용했다.
조선시대의 역로조직(驛路組織)은 대개 30리마다 1개역을 설치해 운영했으며, 이 역에 도착하면 휴식을 취하게 했다.
우리나라 고지도에 나타난 리수(里數)에 남북(南北) 3,202리, 동서(東西) 1,230리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위와 같은 방법으로 국토를 실측했기 때문이다

기리고차(記里鼓車)라는 거리측정 기계장치가 세종 23년(1441) 발명되어 거리 측정에 이용됐으며.
기리고차는 거리측정 장치가 부착된 수레로 10리를 갈 때마다 스스로 북을 울리도록 고안된 기계장치로
오늘날 자동차에 부착된 거리 측정용 미터계기와 같은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각 도, 각 읍 간의 거리를 기리고차를 이용해 실측 조사를 했다
또한 규형(窺衡)’이라는 거리 측정용 기계가 발명되어 실용화 되었다.

이와같이 이미 조선초부터 실측으로 지도를 만들었던 문명국이였고
일본은 그당시 실측을 하지 못하고 나그네가 걸어가는(묵어가는) 날짜를 계산해서 거리를
측정했을 정도로 낙후 되었다고 조선 세종실록에 소개 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그후 히데요시가 그나마 거리 측정하는 계산을 도입했지만 정확하지 않아
1604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국으로 확대했다라고 일본 지도제작에 대한 실측을
했다라고 일본에 기록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일본은 지배하고 있는 식민지 조선이 자신들보다 뛰어났고
그당시 미개했던 일본이라고 소개했을리 없을 겁니다
그놈들 입장에서는 날조할수 밖에 없었겠죠
     
하늘그늘 20-10-11 00:10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요 ?
서양은 이미 위도 경도 측정하고 16세기에 메르카토르 도법이 나오는 판인데, 우리는 그걸 겨우 19세기에 비슷하게 만들었어요
열등한 열도도 유럽과 통상을 하면서 과학지식을 쌓아 갔는데, 우리는 소중화에 빠져서 쇄국이나 처하고 자빠졌다가 그저 그런 지도 하나 만드는데 남들보다 300년이나 뒤처진 겁니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 있으면 뭐하냐고요
써먹을 생각을 안했는데
          
굿잡스 20-10-11 02:03
   
? ?

300 년 어쩌고가 왜 나오는지요? ㅋ

위도는 이미 삼국시대등 천문학이 발달한 우리쪽도 구하기 나름 쉬운 거고 경도를 제대로  구하는게 어려웠군요. 특히나 항해를 자주해야 했던 유럽의 대항해시대 이후 잦은 사고로 이런 현실적 그들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자 1759년에 가서야 존 해리슨의 크로노 H4(회중시계)이 비로소 나오고 나서야 정밀 측정이 가능(19세기 대동여지도 이전에도 18세기 이미 여러 정밀 지도부터 앞서 15세기 세계적 지도를 제작해왔던게 조선. 일반인들도 한번은 들어본 간의 혼천의같은 조선시대 관측기구로 이미 조선은 서울을 중심으로 독자적 위도 경도의 기준을 가지고도 있었군요. 저런 조선의 정밀 지도등이 그냥 나온게 아님)
          
Jaguar1026 20-10-11 11:35
   
참 여러가지하시네
               
magnifique 20-10-11 11:43
   
오죽 답답하면 그러겠습니까 멍청한 민족도 아닌데 어줍잖은 소중화 성리학에 빠져 스스로의 과학 기술을 천시하고 뒤쳐져 종국엔 나라도 뺏기고 수치스러운 역사를 남겼으니
오늘비와 20-10-10 17:30
   
잘봤어용
윈도우폰 20-10-10 17:43
   
왜 대마도를 뺐냐? 오리지날 대동여지도에는 대마도가 포함되어 있는데...
우루사골드 20-10-10 19:23
   
잘 봤습니다
분석 20-10-10 19:25
   
관재(재산관리) 사병들이 오늘도 국방부 지적도를 들고 해당 사단 경계표식주를 체크하러 산타는 이야기를 못들어보셨겠죠?

실제로 지적도 들고 야산에 가보면 절벽 근처에도 경계표식주들이 박혀있다고 합니다. 그걸 지금도 체크하는게 일부 일이기도 하구요. (솔직히 최근에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
비알레띠 20-10-10 19:47
   
잘봤습니다..
가출한술래 20-10-10 19:56
   
잘봤습니다...
Jaguar1026 20-10-10 20:21
   
잘봤습니다
병아리쓸빠 20-10-10 20:27
   
독도는 어디갔냐?
     
다같은생수 20-10-11 14:15
   
* 비밀글 입니다.
드뎌가입 20-10-10 21:22
   
백두산 북쪽은 어딘가요?
연변은 아닌 듯한데
마고님 20-10-10 22:10
   
* 비밀글 입니다.
     
촐라롱콘 20-10-10 22:46
   
[[조선 후기에는 외부 세력 (중국이 모든 수입 관세와 세금을 빼앗아갔어)]]
.
.
과장이 심하기는 하지만..... 임오군란시기부터 갑신정변을 거쳐 청일전쟁 발발 이전까지는

울 나라에서 여러 외세들 가운데 청나라세력이 상대적으로 가장 강력했습니다.

특히 임오군란-갑신정변-청일간의 텐진조약 체결시기까지의 1882~1885년까지는

마건상, 멜렌도르프, 원새개 등이 외교-재정-군사고문 등의 명목으로 파견되어

당시 조선의 외교, 재정, 국방 등을 포함하여 다방면으로 간섭하던 시기였습니다.

또한 세관에 해당하는 해관의 세입-세출에도 깊이 개입했음은 물론입니다.~~~

더구나 조선의 여러 분야에 대한 청나라의 영향력과 세력기반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강력한 무력도

당연히 갖추어.... 임오군란~갑신정변 이전 시기의 최대 4~5천명에서

갑신정변~텐진조약 시기에도 2천명에 달하는 청나라군이 조선땅에 주둔했습니다.

산동출신을 필두로 한 화교들이 저 당시에 대거 조선에 진출한 것도 위와 같은 청나라의

뒷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굿잡스 20-10-10 22:54
   
* 비밀글 입니다.
               
촐라롱콘 20-10-10 23:15
   
* 비밀글 입니다.
                    
굿잡스 20-10-10 23:47
   
* 비밀글 입니다.
                         
촐라롱콘 20-10-11 07:48
   
상당히 과장되었다고 분명히 전제하고 글을 시작했고.....

임오군란, 갑신정변까지 언급했으면 후기인지 말기인지는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거
아닌가....???

원래 원 댓글은 후기와 말기 구분개념이 없는 외국인이 작성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수입관세를 빼앗아갔다는 걸로 봐서 임오군란~갑신정변 시기인 것은 분명한 것 같고...
(물론 수입관세를 직접적으로 빼앗았다는 것 또한 과장이지만....)

그리고 위 댓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더 자세히 알아보라니깐.....!!!
청나라 말기 만주족 병사가 폭행했던 이가 총독-순무인지 현령인지.....!!! ^^

현령이 맞다면 현령이 도대체 어떻게 봐서 도지사-주지사급에 해당하는지.....???
                         
굿잡스 20-10-11 10:48
   
??ㅋ

중구난방질을 애초에 왜 하남?

우리나라 왕조는 한번 세워지면 못해도 500년에서 길게는 천년씩 이어져왔는데

전기 시대와 중기 후기 그리고 왕조 말기가 다른 상황인건 기본(저당시는 만주족 청  본인조차  이미 서구열강에 이리저리 털리고 내부에서는  피지배 한족들이 발광하다보니 제대로 행정력이 이루어지지도 않던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시기구만)
촐라롱콘 20-10-10 22:37
   
대동여지도 이전 시기의 지도들은 말할 필요조차 없고

전근대시기를 통틀어 울 나라 지도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대동여지도에서조차

울 나라의 북방경계는 백두산을 기준으로 서쪽의 압록강과 동쪽의 두만강이 분명하네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도에 대한 미련을 아직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는 과대망상증 환자들이

아직도 많이 보이니...ㅉㅉㅉ

대동여지도 말고도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였던 조선왕조에서

만약에 간도가 우리 땅이었으면 진작에 관리들을 파견해서 관할해왔겠지.....!!!

그렇게도 기본적인 대굴빡조차 안돌아가나~~~??

만약 압록강~두만강이 북방경계가 아니라면 최전방 전초방어기지에 해당하는 4군 6진을

뭐땀시 압록강~두만강 이남에 설치했을까나~~~~???
     
굿잡스 20-10-10 22:59
   
대동여지도 이전 시기의 지도들은 말할 필요조차 없고

>>

??ㅋ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모사한 것 중 하나로 보는 18세기 동국대지도등이 이미 한반도와 일부 만주 지역을 그려 넣고 있는데 몬 헛소리 나열을 또 하는지? 쯧


그리고 역사상 요동 즉 동북삼성 일대는

우리 대삼한(예 맥 한)  즉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와 발해부흥국등으로 이어지는 수천년 우리 민족의 본거지이자 생활무대 였고 후대 만주족으로 족명을 바꾸는 여진과는 오랜 지역 공동체로

애초에 서토 하한족과는 전혀 무관하던 공간.

수천년 우리의 발 아래 있던 왜구에게 대한제국이 통수 맞고 이후에도 전범 쨉은 만주 침략질에  온갖 버러지 짓거리를 쳐하다  핵쳐맞고 급패망하면서 공백상태가 된걸

수천년 역사 이래 없던 피지배 서토 하한족들이 어부지리로 오늘날 점령.
          
촐라롱콘 20-10-10 23:20
   
서토는 뭐고 하한족은 또 뭔지....???

일반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환빠들이나 쓸 법한 외계인 용어들 좀 그만쓰면 안되나....?? ^^
               
굿잡스 20-10-10 23:40
   
??

허접소리나 하다보니 말장난 빼고는 할말 없군. 쯧

그래서 19세기 대동여지도 이전에 만주일대 북방을 그려넣은 지도가 우리에게 없음? ㅋ

그리고 멸만흥한 어쩌고 쳐하던 피지배 한족이 요동 동북삼성이랑 애초에 몬 상관? (요즘도 식근론 타령질하는 덜떨어진 토왜 진왜들은 간도등에 대해서는 무조건 전면 부정 합작노선임?ㅋ)
                    
촐라롱콘 20-10-11 07:54
   
[[한족이 요동 동북삼성이랑 애초에 몬 상관?]].....???
.
.
청나라 이전 명나라 시기에 명나라가 요동을 점유한 건 모르나....???
요동도사라는 직책은 그냥 폼으로 달고 다니는 건지....???
임란 당시 구원병을 끌고 온 명나라 장수들 가운데 조승훈의 직책이
요동(요양)부총병이예요~~~

그리고 간도 문제는 만주족의 청나라가 망하기 전에 이미 쫑나 버렸는데
뭔 말인지....??? 청나라가 망하던 시점까지도 계속 분쟁이 이어져오고 있었으면
또 몰라도.......
                         
굿잡스 20-10-11 10:41
   
* 비밀글 입니다.
                         
Jaguar1026 20-10-11 11:35
   
여전하네 여전해
iamafool 20-10-10 23:07
   
어떤 형식으로 제작되었던
각 분야에서 의지를 가지고 제작했다는 것이 중요
이런 것이 진정한 선비정신이 아닐지
존버 20-10-10 23:10
   
잘봤습니다.
자비스런 20-10-10 23:21
   
그 당시면 산에 야생동물(호랑이, 곰, 표범,늑대)이 득실득실할 시절이라
혼자 걸어서 측정했다는건 신빙성이 떨어짐  최소 2인이상 다녔을듯
날아가는새 20-10-10 23:49
   
잘봤습니다.
Elisif 20-10-10 23:53
   
비변사에서 일하던 공무원으로 전국각지에서 올라온 지도를 하나로 통합한게 대동여 지도.  고향을 크게 벗어난 적도 없으며 너무정확해서 옥살이 하고 어쩌고 저쩌고는 나라가 어려운 시절 영웅이 필요해서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대학교때 배웠음
골드에그 20-10-10 23:57
   
잘봤어요.
잔잔한파도 20-10-11 02:04
   
잘봤습니다
gaist 20-10-11 03:04
   
백두산 위쪽에 그려진간도...
자기자신 20-10-11 03:16
   
잘 보았네요
리토토 20-10-11 04:13
   
저 지도를 보측으로 저정도 정밀하게 그려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집중력과 집요함이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네요. 대단하신 분. 역사적으로도 위대한 인물들이 각 분야에서 마치 어두움을 밝히는 휏불처럼 불쑥불쑥 나타나는게 대한민국인 듯 합니다.
손부장 20-10-11 08:22
   
댓글들 보니 다들 배우신분들
구름바라기 20-10-11 10:39
   
잘봤어요
carlitos36 20-10-11 11:36
   
잘봤슴다.
구레나룻 20-10-11 13:22
   
잘봤습니다
A한빙결1 20-10-11 13:44
   
가만보면 초중고때 배운 역사가 하나도 맞는게 없어..
나도 모르게 식민사학자들한테 세뇌된것이지..
지금도 그 줄기들이 계속 우리 자식들한테
식민사관을 주입시키고 있는 중이고..
언제쯤이면 일제잔재를 뿌리뽑고
정확한 역사관을 후손들에게 가르칠수 있을까...

번역 수고하셨습니다
직장인 20-10-11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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