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화차같은 무기를 사용할때는 대규모 병력이 침투할때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대규모 병력들이면 영점조준없이 아무대나 막쏴도 대부분 명중하거나 피해를 줄것같네요..
소규모 병력이야 굳이 화차를 쓰지않아도 막아낼수있으니 화포낭비만 되겠죠.. 소중대병력 적군막으려고 대포나 탱크 동원하는꼴이니..
신기전은 세종 시절 실전배치 1477년 편찬된 병기도설에 그 설계도가 전해져 세계우주항공학회(IAF)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로켓 설계도로 공인.
신기전은 대신기전, 중신기전, 소신기전, 산화신기전이 있으며 추진체의 약통에 화약을 넣고 그 위에 폭탄을 장착. 약통 윗면과 발화통 아랫면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도화선으로 연결.
타격지점으로 날아갔을 때 폭탄의 발화통이 자동적으로 폭발하도록 설계되었군요.
(또한 화차는 손잡이를 자유롭게 조종 신기전의 발사 각도를 다양하게 하여 사정거리 조절이 가능)
이외에도 임진왜란시기는 이순신 제독의 불패의 함대신화를 만든 원동력인
조선의 앞선 조선술과 고려시대 이미 세계 최초의 함대 함포사인 진포대첩등을 기반으로한 전쟁시작부터 끝까지 근대적 함포해전을 세계 최초로 구현하였고 그외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의 활약(철갑선인 거북선의 원형도 이미 고려시대에 등장)
그리고 세계 최초의 시한폭탄인 비격진천뢰등을 선보이면서 동북아 조 명 왜가 참전한 대규모 전쟁이였군요(200여년 이렇다할 큰 전쟁 없이 평화에 찌들어 군편제등이 안이해졌던 조선이 지들끼리 미개하게 서로 약탈 아프리카 콩고마냥 자국민까지 팔아 인신매매 노예 수출로 조총수입질을 쳐하며 100여년 단련되어진 왜구 정규병을 상대로
초기 한달여의 파죽지세의 대규모 기습전에서도 이후 빠르게 선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게 이런 앞선 기술력때문이군요. 여기에 이미 1600여년 전부터 세계 최초의 귀족뿐 아니라 서민을 위한 경당같은 교육제도와 인프라에 앞선 선진 관료 중앙집권화로
이미 이른 시기부터 대한족이라는 정체성의 확립으로 자발적 의병들의 게릴라전등 민관 합동으로 외세를 몰아내는데 큰 기여)
거북선이 철갑선(鐵甲船)인지 여부는 1880년대 이래 130여 년 동안 가장 인기 있는 토론 주제 중의 하나였다. 초창기 거북선 연구자들 중에 거북선이 철갑선이었다는 주장한 사람 중에 다수는 특이하게도 한국인들이 아니라 서양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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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철갑선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거북선이 철갑선이라는 주장 자체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1960년대 이후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새로운 철갑선 주장은 거북선의 철갑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인 주장을 펼치는 것이 특징이다. 최석남 전 육군통신감이나 고 박혜일 서울대 교수는 거북선의 철갑이 조선 시대 성문처럼 나무에 얇은 쇠판을 붙이는 방식을 사용했다고 생각했다.
전통 무기 연구가인 신재호도 1998년 일본 전통 선박도 방패에 철판을 덧씌우는 사례가 많다는 점을 참고해, 거북선 개판에도 철판을 얇게 만들어 나무판에 붙이는 방식을 적용할 수 있고, 이 경우 전체적인 무게에는 변동이 없으므로 복원력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란 주장을 내놓았다. 1999년에는 교토대 물리학과 교수인 사쿠라이 다케오 교수가 거북선 복원 설계안을 기초로 복원력을 실험한 결과 2~8mm급 철판을 개판에 덧붙여도 거북선의 복원력에 별 문제가 없다는 계산 결과를 발표해 철갑선 주장의 생명력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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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넘은 논쟁의 이면
이처럼 거북선을 놓고 장장 130년 넘게 국내외 학자들이 기나긴 논쟁을 벌인 것은 그만큼 거북선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이 높다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편으로 조선 수군이 임진왜란 이후에도 거북선을 계속 보유했고, 그 같은 수군이 공식적으로 1895년에 해산된 점을 생각하면 이 같은 논쟁은 아쉬운 측면도 있다. 거북선이 철갑선이라는 주장이 외국에서 제기될 때는 조선에 거북선이 남아 있거나 최소한 실제 거북선을 목격한 사람이 살아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 해군 원정대가 1885년 거문도를 점령하기 2년 전인 1883년 한국을 찾았다가 거북선을 목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1884년에는 미국의 포크 해군 대위가 경남 고성에서 거북선 잔해를 목격한 기록도 남아있다. 유길준이 거북선이 세계 최초의 철갑병선이라고 주장한 《서유견문》을 펴낸 해도 바로 1895년이었다.
[[거북선의 철갑이 조선 시대 성문처럼 나무에 얇은 쇠판을 붙이는 방식을
사용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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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주장은 개인적으로도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그런 식이라면 고작 얇은 철조각으로 장식한 배를
진정한 의미의 철갑선이라도 할 수 있을지.....???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 최초의 철갑선은
1860년대 영국에서 건조된 HMS 워리어호로 알고 있습니다만......
임란 당시 화포를 비롯한 무기를 만들 철도 부족한 실정에
한가하게 배에다가 귀하디귀한 철조각을 덕지덕지 붙이는 거야말로
더구나 당시 조선에 온 일본선의 대부분은 수전-화력전보다는
빠른 수송과 이동에 목적을 두고 건조된 배들인지라 자체의 내구성도 떨어지지만
배안의 무장 또한 화포거치를 거의 못하고 고작 조총이 화력의 대부분인 수준이었는데...
목재로만 둘러도 충분히 방호가 가능한 배에다가 실제로 귀한 철조각을 붙였다면
그야말로 닭잡는데 소잡는 칼 쓰는 격이며, 자원낭비의 뻘짓이 아닐런지......!!!
사실 어쩌면 보다 중요한 것은 철갑이 필요했는지 여부라고 할 수 있다. 거북선이 철갑선이란 직접적 증거가 없다고 생각했던 언더우드 조차도 1933년 《영국왕립아시아학회 한국분과지》에 발표한 그의 논문(Korea Boats and ships)에서 “거북선 개판의 두꺼운 나무 판자만으로도 충분히 일본군의 조총 사격은 막을 수 있겠지만, 적의 화공에는 어떻게 대처했는지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의문을 표시했다.
거북선의 경우 판옥선 같은 통상적인 형태의 선박과 달리 외부 공간 출입이 제한된다. 개판에 십자로로 길을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경사가 있는 개판 위를 해상 항해 중에 걸어다니기가 결코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적이 개판에 불화살 공격을 가한다면 불을 끄기 쉽지 않다. 즉 거북선 같은 밀폐 구조 갑판을 가진 목제 함정은 통상적인 형태의 목선에 비해 화공이 가장 결정적인 취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물에 젖은 이엉이나 거적을 거북선 개판 위에 덮는 방법이 있지만 쉽게 떨어질 수 있고, 해가 강한 계절에는 짧은 시간 안에 말라 버릴 수 있어 일종의 임시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거북선 개판에 얇은 철판이 씌워져 있었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들은 거북선의 철갑이 방어력 강화 목적이 아니라 적의 화공 방지용이라고 생각한다.
고대에서부터 이후 근대의 함포함대가 온전히 자리잡기 전에는 동서양 화공은 누구나 즐겨하고 예상되던 전술 방식(왜구의 화공 유무나 혹은 방비로 인한 화공 무쓸등을 떠나)
조선 이전부터 앞서 고려의 수군이 강화된 배경에는 왜구뿐 아니라 여진구 즉 여진족 해적등의 기승도 한몫.
당시 쨉의 기록
<고려선전기 高麗船戰記>는 왜함대에 종군한 69세의 소토오카(外岡甚左衛門)가 1592년 7월 28일 부산포에서 작성한 전황기록문서이다. 임진왜란을 일으키게 된 자국내의 사정과 부산포 침공 이후 일본 수군이 겪은 연패의 참상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7월 10일에 있었던 안골포해전(安骨浦海戰: 九鬼嘉隆과 加藤嘉明이 이끄는 왜함대와의 교전)에서 목격된 거북선의 활약상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즉, “… 9일(朝鮮曆 10일)의 진시(辰時: 오전 8시경)부터 적의 대선 58척과 소선 50척 가량이 공격해왔다.
대선 중의 3척은 맹선(盲船: 장님배. 귀선에 대한 왜측의 별명)이며, ‘철(鐵)로 요해(要害)하여’ (철을 입혀 방비하였다는 뜻) 석화시(石火矢), 봉화시(棒火矢), 오가리마따(大狩우) 등을 쏘면서 유시(酉時,오후 6시경)까지 번갈아 달려들어 쏘아대어 다락에서 복도, 테두리 밑의 방패에 이르기까지 모두 격파되고 말았다. 석화시라고 하는 것은 길이가 5척 6촌(약 117.6cm)의 견목(堅木)이며, … 또 봉화시의 끝은 철로 둥글게 든든히 붙인 것이다. 이와 같은 화살로 다섯칸(1칸은 약 1.25m), 또는 세칸 이내까지 다가와 쏘아대는 것이다.…”(鍋鳥家에 소장된 筆寫原本에서).
평소에도 쨉의 식근론 타령질이나 쳐하더만 여전히 요리조리 어설픈 물타기 말장난하군.한심한(올려준 내용에 대한 기본 정독도 못하는 수준에. 쯧)
3) 경상좌수사의 인갑기록
<인갑기록 鱗甲記錄>은 1748년(영조 24)에 작성된 경상좌도수군절도사 이언섭(李彦燮)의 장계 초본에 나오는 내용으로, 거북선의 철갑을 뜻하는 내용이 국내의 기록에서 나타난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이 장계는 거북선에 대한 건의문인데, 거북선과 누선(樓船)을 비교하여 거북선이 전술적으로 뛰어남을 거듭 지적하고, 또한 임진왜란 때의 이순신의 공적을 높이 칭송하면서 누선을 거북선으로 대치할 것을 극구 주청하고 있다. 특히 거북선의 철갑을 뜻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즉, “이른바 거북선은 누각을 만들지 않고, 판으로써 덮개를 하고 그 위에 거듭 인갑을 하였고…”. 여기서 ‘이른바 거북선’의 ‘이른바’는 바로 이순신의 ‘창제귀선’으로부터 그 특징이 유래된 바로 그러한 거북선을 지칭하는 것이며, 그것은 누각을 만들지 않고, 목판으로 덮개를 하고, 그 위에 거듭 “인갑을 입혔다.”라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인갑(鱗甲)’은 무엇인가? 이것은 쇠 또는 놋쇠를 비늘 모양으로 이어 만든 갑옷을 지칭하는데 쓰이는 낱말이다. 즉, 거북선 철갑은 단조(鍛造)된 철엽(鐵葉)을 비늘모양으로 귀배판(龜背板)에 장착하여 만든 갑옷인 것이다
서구권에서 실망하는게 사무라이에 환상을 가진데 반해 내전에서만 투닥거렸지 실제 외부 전쟁을 벌인적이 거의 없고 딱 한번이 임진왜란입니다. 근데 곳곳에서 민간인(의병)한테도 깨진 실패한 전쟁이기도 하고 조선에 대한 인지도가 너무 없다보니까 그 외 사무라이가 상대할만한 인지도 있는 강력한 적이 필요한거고 억지로 시대를 끌어올려 고스트오브 쓰시마같은 게임을 만들어서 고려군은 싹 빼고 몽골과 대적한것처럼 만드는 겁니다.
우리나라 문화에 관심을 가져준것은 고마운데 제대로 고증을해서 만든건 아닌것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JXrk-diGNE 정확도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기는 해도 저정도 까지는 아니에요
총통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저리 짧으니 정확도가 떨어지죠
소총으로 보자면 총신이 짧은겁니다
임진왜란이라 하니... 당시 왜병들중 귀화한 병사도 상당히 많았슴..
왜구... 더 전 신라구.. 두개가 알고보면 동일한 면이 있는데... 둘다 내부의 환경이 피폐해질때로 피폐해지자 살궁리 찾아 해적질 나선것이란... 일본도 몇백년 끊임없는 내전이었죠.
어쨌든 그 내전에 단련된 왜병 보병 전투력은 좋았으니... 여진족 막기위해 북방으로 보내는데 당연히 공을 세워인정받기위해 열심히 싸웠다고...
그러자 너무잘싸운다고 저것들이 인간이냐고... 승리해놓고도 왜출신 귀화병들 다 죽여버렸다던..
물론 김충성같은 살아남은 예외도 있긴하죠.
비합리. 편견... 현재 일본주류나 한국 어떤세력들(물론 그것아니라도 인간이란게 어떤식으로던 어떻게든 편견있다고봄/인종,민족,이념같은 거창한거 뿐아니고.. 경제적등등 )
알기로 어느시기부터 고려왕이 몽골의 귀족들 보다 몽골내에서 파워가 더 쎘습니다. 정략결혼 부마국인게 크겠지만.
어쨌든 그것때문에 다루가치라고... 아무런 힘없이 고려왕에 찍소리못하는 지위가 되버림.
기황후 기철같이 나중에 고려귀족도 몽골내 파워를 이용 고려왕을 협박하는 지경에 이르는...
몽골의 대왜 원정이란게... 사실은 고려가 과거 삼국-그 이전부터 왜란 나라 원류가 결국 한반도 건너간 한반도 세력의 나라(bc3세기 규슈왜-야미따이(가/야(=해)밑에?)(가야 건국신화와 완전동일) - 4세기즈음 백제의 유목민계 좌현왕(참모총장겪-2인자-실권자-선비계만 있는표현=당시 백제 집권세력유추)인 곤지의 도왜 정리(야마토 본토 왜)) 임으로...
몽골보단 몽골등에 업고 고려가 원정 주도하지 않았을까... 최근들어 의문이 많이가는
당시 고려-몽골 역학관계가 고려지위가 생각외 엄청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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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장궁뽕에 빠진애가 여기있네
장궁병은 100년전쟁시기 프랑스나 이태리 파비스석궁병에 대해 우위를 가졌을뿐,
당시 영국장궁병이 같은시기 동아시아에 왔으면
사거리 밖에서 압도적으로 빠른 장전속도로 쏘아대는
미친관통력의 합성궁에 손도못써보고 전멸했어.
신기전이 무슨 정밀타격무기인가....
범위사격으로 무차별 살상을 목적으로하고...
압도적인 아우라로....적을 공황에 빠지게 만드는 전략병기지....
영상에 나온건 소신기전이라 볼수잇네.......대신기전으로 쐇으면 더 넓은 범위를 타격햇을텐데
암튼 독일사람....고생햇음...^^
신기전이 단순 화약추진 화살로 잘못알려진 경우가 엄청나서 리플에서 보듯듯 방패로 막으면 된다는 헛소리들을 하고 자빠졌는데 신기전은 단순 화살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유탄이었음. 추진부 앞에 폭발하는 부분을 달아서 목표에 꽂힌 후 폭발하는 그런 무기란 말임. 이건 예전 mythbuster에서 제대로 고증해서 실험을 했었는데(우리나라 박물관에서 제대로 자문해줬었음) 저긴 그런건 생략을 했으니.
https://youtu.be/yM2NcPwsngU 42초부터
문종이 오래살았더라면 그놈의 성리학 보다는 과학기술에 더 기여했다면 그당시로서는 제철 화포 활 조선이 뭐가 떨어지나....
이순신장군은 소년병 하나를 우리군사10명이 상대하질 못한다.
분명 키도 한국보다 작음에도 그들은 수많은 전쟁으로 다져진건 인정해야지 주조기술도 조선보다 떨어짐에도 백병전에선 비격진천뢰가 쓰기 전까진 이긴게 많지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