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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 한국인은 중국인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나?
등록일 : 13-03-09 21:13  (조회 : 27,758) 글자확대/축소 확대 축소 | 프린트

한국인들은 중국인들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내용:
글쎄, 이건 5천만의 사람들이 15억의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느끼냐에 대한 이야기군.
이 포스트에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중국인들에 대한 한국인의 다양한 태도를 리뷰해보는 것이다.

이 포스트에서 '너 중국인은 한국에 가면 대충 이런 대접을 받을 거임', '너 중국인은 한국에 유학갈 때 또는 한국에 취업할 때 대충 이런 대접을 받을 거임'식의 개인적인 예측을 남발하는 것은 자제하고 싶다.
 
중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 중 첫번째 유형은, somewhat favorable이라 불리는 유형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에 대해 우러러보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 때 중국은 세계 최고의 찬란한 문명을 가졌었다는 걸 많은 한국인들이 기억하고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삼국지 등의 중국 고전을 즐겨 읽고 유교적 가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두번째 유형은, '아 중국인 좀 짜증나' 유형이다.
중국이 최근 많은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중국인 개개인은 평균적인 한국인보다 못 사는 게 사실이다.
가끔 성공한 중국인이 한국에 비즈니스나 공부 목적으로 오는 경우가 있으나,
한국인의 눈에는 졸부가 한국을 방문했다는 식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좀 있다.
아무튼 그 부자는 한국인의 눈에는 매우 시끄럽고 매너가 빵점인 것으로 보이는 게 사실이다.
물론 한국인들도 20년전에는 그런 느낌이었다는 걸 한국인들 자신도 알고 있다.

그 다음 유형은, 중국을 열렬히 싫어하는 유형이다.
중국 어부가 우리 서해로 자꾸 넘어오는 것도 이런 태도를 좀 부추기고 있으며,
이민 문제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온 이민자들은 아무래도 많은 수가 하찮은 일에 종사하며,
한국인들이 종종 이민자들에 대한 불만을 터뜨릴 때, 그 불만의 화살이 아무래도 중국인 노동자쪽에 많이 쏠린다.
더럽고 범죄자스러운 중국인 노동자들이 너무 싫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001.jpg
 
 

 
 
댓글:
 
 
 
FarFromKorea
중국의 전통적인 가치들이 중국보다는 한국에서 더 존중받는듯하군
 
 
 
MsShannie G
한국인 대부분은 한국인이 아닌 사람에게 좀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어.
심지어는 한국계 미국인에 대해서도 좀 거부감이 있지.
그러니 한국인이 중국인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가지는 것도 이해가 갈만하지.
아무튼 중국인은 한국인이 아니잖아?
아무튼 양국은 그럭저럭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그런 건 좋은 점이지.
난 양국 모두 대단한 국민들과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ㄴ Carlos
맞아, 한국계 미국인에 대한 일종의 질투심 같은 게 좀 있지.
하지만 글로벌화 되면서 그런 반감도 최근엔 많이 줄고 있어.
난 여기서 중국인 선생을 몇 명 알게 되었는데, 한국 문화를 정말 즐기더군.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매우 잘생겼다고 생각하더군.
그런데, 한국인이 중국인을 좀 깔보는 게 사실인 것 같다고 불평을 할 때가 있어.
심지어는 나의 미국계 중국인 친구도 같은 불평을 했어.
그리고 한국 남자들은 가급적이면 외국 여자를 사귀어 보려고 하는데 한국 여자는 그냥 한국 남자를 사귀길 원하더군.
한국인들은 뭐랄까,
자기들이 다른 나라 사람보다 잘났다는 관념이 약간씩은 있는 거 같아
 
 
 
feld_dog
좀 재밌는 건, 한국전쟁에서 중국이 했던 역할에 대해 뭐라 말하는 한국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거야.
한국인들은 지금까지도 미.소 때문에 남북이 분단된 거에 대해서 미.소를 많이 비난하지만,
이상하게 중국은 별로 비난을 안 해. 한국전쟁 때 북한이 밀리고 밀려서 거의 질 뻔 했는데,
중국이 도와줘서 전세가 역전되었잖아
 
 
 
Unknown
개인 하나하나를 보면, 중국인들은 졸라 나이스 피플이야.
하지만 중국이라는 거대한 집단이 되면 좀 거만하게 군다
 
 
 
ㄴ rebeccacao.com
개인 하나하나를 보면, 미국인들은 졸라 나이스 피플이야.
하지만 미국이라는 거대한 집단이 되면 좀 거만하게 군다.
 
 
 
ㄴ Unknown
그래, 하지만 미국인들은 절대로 한국인들에게 '니네 문화는 우리 문화의 카피일 뿐이야'라고 말하지 않겠지
 
 
 
guitard
중국에서 한국으로 이민온 사람들은, 한국내에서는 숫자가 상당하지.
소수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러므로 시간이 흐르면 한국내에서의 그들의 인권도 많이 올라갈 거야.
물론 지금은 좀 한국인에게 무시당하는 게 현실이지
 
 
 
Thomas
나도 그 질문(한국인은 중국인을 어떻게 생각하나?)의 대답이 듣고 싶군.
내 아버지는 날 미국 시민으로 만드셨지. 아버지 말로는, 한국인은 혼혈을 개만도 못하게 취급한대.
우리 엄마와 엄마 친구들의 이야길 종합해 보면, 한국인은 한국인 빼고는 다 싫어하는듯.
요즘 세대들은 좀 덜하려나?
 
 
 
Unknown
이 봐 토마스, 넌 한국의 역사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 같군. 거의 모든 나라들이 한국을 침범했었어.
거의 모든 나라들이 한국의 한조각이라도 차지하려고 했었어(일본, 중국, 만주, 몽고, 서구열강).
모든 사람들이 다 너를 괴롭히면 너는 어떻게 되겠니? 너 또한 모든 이를 싫어하겠지.
그건 심리학의 기본이야. 하지만 서로 소통을 하면 오해가 줄어들지
 
 
 
ㄴ Sam
자국에서 살 땐 아무런 차별도 받아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한국으로 오면 얼마나 이상한 대우를 받는지에 대해 The Korean이 몇 번 포스팅을 한 적이 있지.
그런 이상한 대우를 받다보면 한국인이 인종차별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
 
 
 
ㄴ Thomas
세계의 역사를 보면, 거의 모든 이가 모든 이를 침범했었어.
난 신세대는 생각이 좀 다를거라고 봐. 요즘 세대는 거의 침략전쟁을 경험하지 않았잖아
나는 여러 문화권을 경험해 봤어. 중국과 일본도 자주 방문해. 근데 거기선 아주 좋은 대우를 받지.
한국에서만 좋은 대우를 못 받고 있어. 한국에 40년간 가보지 않았으니 지금 가보면 또 다를수도 있지
 
 
 
ㄴ Thomas
//Unknown 너의 발언은 Omar Abdel-Rahman와 나눈 대화를 떠올리게 하는군.
그는 우리 모두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고 말했지. 그리고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했어
 
 
 
kuiwon
근데 Wu Yuanchun은 한국계 중국인 아니었음?
 
 
 
ㄴ Sam
그가 자신을 어떻게 간주하는지 모르겠군. 연변에서 온 Korean-Chinese에게 물었지.
자신을 어느 나라 사람으로 생각하냐고. 대답은 '중국인'이었어
 
 
 
ㄴ kuiwon
내가 보기엔, 한국인들이 조선족을 전통적인 중국인과 다르게 보는 것 같아
 
 
 
kuiwon
한 명의 한국인이 이중적인 태도를 가지는 경우도 가끔 있지.
내가 아는 어떤 사람도, 중국 고전을 매우 좋아하지만, 현대의 중국인들은 좀 별로로 여기더군
 
 
 
Roboseyo
1800년대 중반에는 한국은 중국의 속국임을 자랑스러워 했대.
하지만 요즘에 중국에 대해서 들려오는 말들은, 거의 편견에 기반하고 있어.
중국은 더럽다 뭐 이런류 말이지
 
 
 
Helen Melon
한국계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중국인의 이미지:
-중국인은 좀 싸구려 티가 난다. 홍콩인은 좀 괜찮다
-중국인은 시끄럽다. 골프 코스에선 더욱더
-중국인은 카피만 한다
-중국인의 집은 끈적한 냄새가 난다
-중국인은 가난하지만 도박을 좋아한다
-붉은색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Holme
중국계 미국인 내지는 중국인들이 한국쪽에 대해 갖는 인상:
-한국인은 사회성이 좀 부족하다(socially awkward). 중국인도 그렇지만, 중국인은 스스로 그걸 안다
-한국인도 시끄럽다
-한국녀들은 성형수술해서 졸라 예쁘다
-한국인들도 카피캣이다
-한국인들은 누구를 만나건, 한국이 정식 국가라는 걸 인식시키려고 졸라 노력한다. "한국에선..."류의 설명을 졸라 열심히 한다. 하지만 중국인은 "중국에선..."류의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나이스한 편이지만 중국인들은 매너가 좀 없다
-한국 관련 뉴스는 큰 히트가 되는 일이 잘 없지만, 중국 관련 뉴스는 언제나 빅 히트
-한국어가 만다린의 커스텀 버전이라고 얘기하면 한국인이 졸라 싫어한다
-뭔가 한국인이 큰 성취를 이루면 졸라 기뻐한다. 탁구, 배드민턴 등...그러나 중국인은 중국인의 성취에 별 관심 없음
 
 
 
ㄴ SoahmZ
한가지 얘기하자면...Hyundai와 Honda가 비슷한 발음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현대는 한국말이라고. 혼다는 창업자의 이름이고
 
 
 
David
"사실, 중국과 한국 사이엔 엄청 다양한 레벨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고 있어.
상대의 유골을 수집하는 것 외에도 말이야. 한국과 중국은 서로 협력해야 되" <-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아멘이라 말하고 싶군
 
 
 
Helen Melon
난 사실 중국인을 매우 존경한다능. 그들은 매우 털털하고 순수해.
마치 한국의 30년전을 보는 거 같아.
지금은 한국이 욕심이 가득한 땅이 되었지만 한 때 순수했는데 중국인을 보면 딱 그 느낌이란 거지.
아무튼 한국과 중국이 서로 도와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
 
 
 
shadowgunman
일본도 한국에 몹쓸짓을 했고, 중국도 했지. 중국은 지금도 하고 있어.
어부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고 북한을 통제하는 것이라든가 뭐 이거저거 있잖아.
하지만 한국인은, 일본에 비해 중국은 좀 좋게 보는 경향이 있어
 
 
 
John D.
중국 정부도 역사왜곡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
뭐 예를 들면 고구려가 중국의 속국이었다 이런 식으로
 
 
 
pmk812
두가지만 얘기할께
1) 한국인은 인종을 가지고 차별한다기 보다,
계급을 가지고 차별해. 인종에 전혀 관심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클래스를 더 신경쓴다고.
중국인 노동자의 경우, 사회의 하층민이라는 클래스이기 때문에 무시당하는 거야.
중국에서 왔다고 무시당하는 게 아니고
2) 혼혈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군.
서양피와 동양피가 섞인 한국 아이의 경우, 한국 사회에서 정말 참담한 대우를 받아.
과거엔, 그런 아이를 보면 '아 미군 남자하고 한국 여자하고 결혼해서 나은 아이구나'라고 단정지을 정도였지.
미군 남자하고 결혼하려고 애쓰는 한국 여성을 좀 깔보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어.
미군 부대 근처엔 창녀촌들이 좀 있었고...사람들이 자꾸 그런쪽으로 연관지어서 생각하는 거지.
동서양의 피가 섞인 아이를 깔보는 행동에는 그런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는 거
 
 
 
rakshas
한국인이 중국인에 대해서 가지는 인식과 관련해서,
최근의 몇몇 사건들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한국-중국의 역사적인 부분까지 이야기 하는 게 맘에 들었어
그리고 내가 여러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중국계 미국인이나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해서 어케 생각함?
그냥 일반적인 미국 사람으로 생각함 아니면 아시아인일 뿐이라고 생각함?
난 중국계 미국인인데, 도쿄에서 몇 년 살았었는데,
날 중국인으로 보지 않고 그냥 미국인으로 보더군. 한국에선 나같은 사람에 대한 시각이 어떤지 궁금함
 
 
 
pmk812
//rakshas 뭐 항상 그렇겠지만, 케이스 바이 케이스겠지.
근데 일본인이 길에서 널 봤을 때, 니가 중국계 미국인인줄 어떻게 아는지 그게 좀 궁금하군.
널 그냥 대만 사람이나 싱가폴 사람으로 볼 수도 있잖아?
 
 
 

번역기자:최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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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문가 13-03-09 21:14
   
잘보고갑니다.
세계no1한국 13-03-09 21:16
   
늦었당. 잘보고 갑니다~
메론TV 13-03-09 21:16
   
중국에대해 생각하는 3가지중 첫번째로 알고있는사람은 ㅄ

우리나라 역사도 중국 못지 않게 찬란한데

우리가 대단하다는걸 못느끼고 중국이 대단하다고만 느낌 ....
KrowKR 13-03-09 21:28
   
지극히 개인적이고 객관성없는 글을 저렇게 해놨으니 애들이  과연 어떻게 생각할지..
Boss 13-03-09 21:29
   
짜증 나느게 아니라 철천지 원수지.
고독 13-03-09 21:29
   
별로 인종에 관해서 생각해본적없는데 차별이 좀잇긴한거같네요
     
천리마 13-03-10 22:50
   
조금 있는건 아닐 터인데요..
부활 13-03-09 21:33
   
중국의 고전...
기만과 술수, 속임, 전쟁, 살육의 기록들...
     
웃기SP 13-03-10 00:16
   
성룡523=  백인 혼열이  추앙받는다..한국에서 50년 살지만 그런소리  첨들어 본다..성룡523=  이늠 자체가  한국인이 아님 ..한국 현대사도  모르는게  어디 다른데서  살다 기어 들어 와서 헛소리  하넹 ㅉㅉㅉ..
서라벌 13-03-09 21:35
   
이놈들 뭘 알고 떠드나.. 진짜 제대로 아는 놈들은 하나도 없어 보이네.
중국에 대해 우러러보이는 마인드를 가졌다는건 뭘 말하는거냐? 몇 백년 전 중화사상을 말하는건가?
그리고 우리가 언제 1800년대 중반에 속국인걸 자랑스러워 했냐. 도대체가 한국에 대한 인식이 개판이여..
     
성룡523 13-03-09 21:46
   
그러게 ㅡㅡ;;
무슨 한국-미국 혼혈인을 처참하게 바라본다느니;; 백인혼혈은 추앙받다시피(?)하는데
한국어가, 중국어의 커스텀 버전이라고 하면 기분나빠한다?? 전혀 비슷하지도 않아서 이런 주장을 하는 중국인조차 없는데..
심지어 한글은 표음문자라서 영어에 훨씬더 비슷한데.. 일본어면 몰라도
일본어는 한자 쓰니까 중국어와 어느정도 비슷하지만;;; 한국인들은 한자도 안쓰는데..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의 모양만 딱 한번 봤어도 저런말은 안나올텐데 -_-;;

진짜 서양인들이 동아시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구나.. 완벽하게 문외한이네
          
서라벌 13-03-09 21:48
   
쯧.. 동아시아에 대해서 모른다기 보다는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르는거죠..
양놈들이 무식하고 관심이 없어서 그런것도 있지만 우리가 알리지 못한게 가장 큰 잘못입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에 대해서 널리 알려야하는데 아직까지 많이 부족하죠.
               
성룡523 13-03-09 21:59
   
저번에 어떤 동영상 봤는데
해변에서 사람들 붙잡고 이름 어느나라 느낌인지 물어본다는식의 인터뷰해서
스즈키 이치로, 잭키 찬, 브루스리 같은 동아시아 초 유명인들 10명정도 물어봐도 아무도 모르던데 ㅡㅡ;;

그나마 한명 알고있던게 싸이더라구요.. 싸이 위엄 ㄷㄷ;;
요즘 유행하는거니까 아는거인듯;; 진짜 동아시아에서 유명하다고 하는것들 미국에서 완벽한 듣보잡임..
          
미소고 13-03-09 22:01
   
우리가 한자를 안쓴다고 생각하는 사람도있다니..ㅡ.ㅡ 낸가 중국하면 떠오르는 "불량식품" 도 한자로 된문장이고 중국도 대한민국도 모두 한자잖아 한자로 표기안하고 한자를 못읽는다고 한자를 안쓰는건 아니잖아
               
성룡523 13-03-09 22:19
   
한자어랑 한자랑 다르죠... 불량식품 한자로 쓰면 누가 알아보나요 솔직히;;
아이스크림은 외래어로 영어에서 따온 "한글"입니다.. 국어사전에 있는 한글이죠 한글로 표기했으니까
아이스크림과 마찬가지로 불량식품도 한자에서 따온 외래어라고 할수있죠 한글이죠 이건
한자어랑 한자랑은 전혀 다릅니다..
제 말에 들어간 한자어들, 한자로 바꾸면 전 아무것도 못알아봅니다..

중국,일본에서는 한국은 한자 안쓰는나라라고 못박더라구요.. 당연하죠 걔네 입장에서는
한자 써서 한국인한테 보여줘도 전혀 못알아먹구;; 자기들 보기엔 한국인들 쓰는글 알아먹을수 있는게 하나도 없는데ㅋㅋ
               
티나한 13-03-09 22:55
   
음~ 영어에도 어원이 라틴어든 타언어에서 온 단어가 무궁무진하게 많지만
라틴어 한다고 말하진 않잖습니까?
발음도 다르고 글자도 다르니 외래어일 뿐 한자를 쓴다고 할 수 있을지.
불량식품 이라고 말해도 중국인이 알아듣긴 할까요? ㅋㅋㅋ
          
웃기SP 13-03-10 00:01
   
성룡 523 =  이자식 한국인 아님..머 백인 혼열이 추앙받어..미국부대 근처에 창녀촌이 있었고  그거 땜에  싫어 했던거다  씨 불  늠아 ..백인 혼열이 추앙받는다는 말은 살다살다 첨들어 본다  별거쥐세퀴가  한군 현대사  하나도 모르는게..어디 딴데 살다 기어 들 어와서  한국인 행세  하넹 잡 종  세퀴~
               
천리마 13-03-10 22:54
   
욕설은 삼가 합시다.
달기 13-03-09 21:37
   
잘보고 갑니다
개수작 13-03-09 21:39
   
여전히 한국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많네 ㅎㅎ 한국이 많이 안알려져서 그런가
둥가지 13-03-09 21:42
   
지구의 암세포 종족
꼬퉁퉁이 13-03-09 21:46
   
솔직히 말하자면 중화사상을 가진건 소수 1%의 한자를 배운 선비들이였을뿐이고
일반백성들은 별로 좋게 생각하지는 않은데다 1600년대 청나라가 들어선 이후로
중화사상도 쫑나버리고 오랑캐가 점령한 대륙 보다 조선이 훨씬 낫다는 소중화사상이 들어섰기 때문에
1800년대에 중국의 속국임을 자랑스러워 했다는건 좀 어불성설
흔히 한국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말을 하지
우이잉 13-03-09 21:50
   
한국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있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안보이는데..ㅡㅡ;
블루하와이 13-03-09 21:50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에 대해 우러러보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 

화자 자체가 짱깨를 떠 받들고 글을 쓰고 있는거 같네 ~

그러니 댓글도 꼬라지가 ㅈ ㄹ 이지

6.25 때 소련 보다 짱깨 니들 때문에 1.4 후퇴 하게된게 난 더 화가나더라 ~

짱깨 바퀴벌레 종자들도 방숭이랑 함께 좀 안 사라라져 줄라나 ~



잘 보았습니다 ~
IceMan 13-03-09 21:51
   
Unknown
개인 하나하나를 보면, 중국인들은 졸라 나이스 피플이야.
하지만 중국이라는 거대한 집단이 되면 좀 거만하게 군다

ㄴ rebeccacao.com
개인 하나하나를 보면, 미국인들은 졸라 나이스 피플이야.
하지만 미국이라는 거대한 집단이 되면 좀 거만하게 군다.

원래가 개인과 집단은 다른거져, (^&^)
초롱초롱 13-03-09 21:52
   
잘 보고 갑니다
헤스타 13-03-09 21:53
   
첫 번째 유형은 진짜 뭔가요.

물론 중국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빌어먹을 물량이요.
대체 우리나라 어디에 중국을 대국이라 칭송하며 그들의 '자칭' 찬란한 역사를 받들던가요?
(일빠는 있을지언정 중빠는 진짜 못 봤음)

미국은 한중일 관계에 대해 생소할 것이고, 어느 정도 잘못 아는 점은 이해합니다.
근데 자기가 무슨 한중일에 관한 박사인 척하면서 잘못된 정보를 뿌리는 놈들은 진짜로 나쁜 자식들입니다.
     
꼬퉁퉁이 13-03-09 21:57
   
이번에 미 의회에서 고구려사 가지고 장난친거나
샌프란시스코 조약 때 일본 로비로 독도를 이랬다가 저랬다가 바꿔버린
미국놈들 간섭할꺼면 경제와 정치만 간섭하시길
     
승냥이 13-03-09 23:58
   
맞아요 진짜. 지들이 무슨 아시아 박사라도 되는것처럼 유언비어 퍼트리는 양놈들 꼭 있더라구요. 진짜 짜증나서 원...
깐다르바 13-03-09 21:55
   
사실 난 중국인에 대해 사람마다 다르다고 특정짓고 중국인은 어떻다하는 일반적인 잣대로 재진 않았지

근데 베이징 올림픽때 서울 한복판에 떼거지로 모여서 오성홍기들고 미친 돼지새끼들처럼 시위하면서 한국사람 몰려다니면서 단체로 폭행하는걸 보고 이 새끼들은 사람새끼들이 아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떻게 남의나라 수도 도심 한복판에서 그 지랄을 떨수 있는지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린다.

씨 발 짱깨새끼들;; 그 이후부턴 중국인을 많이볼 기회도 없지만 봐도 사람대접 안할려고 한다.
응답하라 13-03-09 21:59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관대한 것은 사실임.
역사적으로 중국에 침략도 많이 당하고, 북한과의 관련해서도 그닥 좋은 관계가 아니었는데
이런쪽으로 중국에 대한 적대감은 별로 없는게 좀 이상하긴 함.

일본에 대한 적대감의 반도 안될듯..
     
KNVB 13-03-09 22:03
   
아마 현재는 우리가 중국보다 생활수준이 높고 잘 살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월한 입장에 서면 관대해진다고 생각함.  일본이 만약 지금 한국보다 못 산다면, 그래서 일본을 우리가 내려다보는 입장이라면, 과거 역사 만행같은게 있어도 적대감이 덜할 듯. 과거 잘못은 잘못대로 저질러 놓고 부유하기도 하니까 일본이 더 얄미운 건지도..
          
성룡523 13-03-09 22:12
   
아 생각해보니 그런 이유가 크겠네요.. 하긴
중국인 하면 가난하고 못먹는 애들이라는 이미지가.. 안씻고;; 지저분하구..
뭔가 얄밉다는 이미지라기보다는 뗴놈;; 못살고 떄많이 나올거같구ㅋㅋ

중국이 국민소득이 5천달러 정도 되는데 한국이 2만5천달러 정도
세계 평균이 9천달러 정도인데 중국은 평균 반밖에 안됨;; 일본은 4만5천정도..
근데 찾아보니 신기한게 중국이 90년대까지 한국이랑 국력이 비슷했음..
2000년 들어서서 중국이 전체 GDP가 한국 2배 정도였고, 아주 최근에야 5배정도로 늘어났네요
13억 인구로 고작 20년전까지 국력이 5천만밖에 안되는 한국이랑 전체 GDP가 비슷했었다니;;
그때 우리보다도 훨씬 못살았다는건데 얼마나 못산거지...ㄷㄷ;;
정말 불쌍한넘들..뗴놈들;; 얼마나 살기 힘들지 한국에서 태어나도 이리 살기 힘든데
     
성룡523 13-03-09 22:08
   
그렇죠.. 저도 그게 마음에 안듬
일본이랑 싸운 역사가 임진왜란,2차대전때 합쳐서 100년도 안되는데

중국은 ㅡㅡ;; 뭐 대체 몇천년이나 싸워왔는지... 그냥 한국 역사 자체가 중국한테 안먹히고 살아남기.txt
이거임;; 중국은 뭐 1,2차 세계대전 이외에 가장 큰 규모의 전쟁이라는
수,당vs고구려 대전도 했었고.. 진짜 어마어마하게 한국인 역사적으로 많이 죽였죠
또 조공, 여자도 보내고 속국으로서 굴복한 역사도 많고

일본이랑 진짜 넘사벽 비교자체가 안되는 원수같은 나라인데.. 물론 일본도 피해 많이 줬지만
최근에 피해 많이준게 일본이라서 그런지 반일감정이 반중감정이랑 너무 비교가안됨;;
625가 더 최근인데 그러고보면;;
진짜 최근까지 역사적으로 꾸준히 대규모 전쟁을 중국이랑 해놓고도 왜 반중감정이 이리 적은지..
중국 아니었으면 우리나라 분단도 안됐을텐데..

중국이 진짜 까야될 나라임.. 우리나라 역사보면;; 중국인들이 죽인 한국인이
일본, 다른나라사람들이 죽인 한국인 다 합쳐봐야 중국인에 비해 1%밖에 안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진짜 죽일놈들.. 당나라는 연합해놓고도 신라 뒤통수치고;; 예나 지금이나 외교관계는 최악

중국 국경 맞대는 나라중에서 친한나라가 없다죠 인도랑 베트남이랑도 싸우고 한국,일본 말할것도 없고..
          
서라벌 13-03-09 22:14
   
글쎄요.. 전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느 나라나 인접국과는 전쟁을 경험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중국이랑 큰 전쟁을 했던것을 꼽으면 먼 옛날 한나라가 고조선 멸망 시켰을 때랑 고구려가 북위나 후연, 수, 당과의 전쟁인데 너무 옛날이지 않나요. 그 이후로 우리가 전쟁을 치른 나라는 중국이라기 보다는 여진족, 몽골, 만주족이죠. 중국과는 전쟁도 많았지만 우호적이었던 관계도 길었던 데다가 식민지배를 당한적은 역사상 일제시대를 제외하면 없죠.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일본보다야 나쁜 감정이 적은겁니다.
               
성룡523 13-03-09 22:15
   
청나라가 조선을 일본 못지않게 속국으로 삼았죠.. 고려때는 공녀라고 해서, 예쁜 여자들 골라다가

그 여자들 바쳤습니다.. 중국 왕보고 섹스하라구요.. 위안부보다 더 굴욕적이라고도 할수있죠;;

한국 왕이 중국 황제한테 가서 무릎꿇고 절해야됬었고.. 일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수천년간 할짓 못할짓 다한넘들이죠..

전쟁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초 대규모로.. 1,2차 대전 말고 제일 규모 큰 전쟁이 고구려vs수,당 전쟁이랍니다

중국인이 죽인 한국인이 얼마나 많은데요;;
                    
서라벌 13-03-09 22:19
   
속국이라.. 속국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단순히 조공-책봉 관계로 속국이라 단정짓는다면 동아시아에서 중국 속국 안한 나라가 없을겁니다. 우리가 중국에 고개숙였다고 우리의 자주권이 침해당하고 내정간섭이 있었던 것은 아니거든요. 그리고 조공도 갖다 바치고 얻는게 있으니까 바치는겁니다. 그러니 조공무역이라 하지요. 사실 조공으로 우리가 오히려 이득을 본적도 많습니다.
님께서는 아무래도 조공-책봉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의 특수한 정치.외교적 특성을 잘 모르시는듯.
                         
성룡523 13-03-09 22:21
   
청나라-조선은 내정간섭도 많이 하고 잘 모르지만 다른 속국 관계랑 차원이 다릅니다
시모노세키 조약이라고 있는데, 청나라가 일본한테 져서 "조선이 독립국임을 인정한다"고 청나라가 그때 서약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인정안했죠

그리고 독립문 아시죠? 그거 청나라 사신들 왔다갔다 하던 문인데, 거따가 독립문지어서
청나라한테 독립했다고 지은 문입니다.

독립문같은거는 유명한데 잘 모르시네.. 청나라-조선 말고는  다른 관계는 속국이라고 하기 힘든건 알죠
조공가지고 말하는게 아니예요.. 청나라-조선은 확실히 속국임.. 교과서에도 나오는데;
시모노세키나 독립문 이런거 배우잖아요
                         
서라벌 13-03-09 22:26
   
독립문은 사대관계를 철폐하고 완전 자주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상징적으로 만든거죠.
그때 우리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고종이 황제에 즉위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독립문을 만든거죠. 그리고 시모노세키 조약같은건 근대 일본의 농간이죠. 우리가 청의 지배를 받았다?? 말도 안돼는 소리.. 청의 지배를 받았다는건 일본이 조선을 먹기 위해 명분을 내세운겁니다. 어차피 조선이 청의 속국이니 우리가 청으로부터 조선을 독립시켜주고 대신 너희를 보호해 주겠다.. 이런 개소리인거죠. 그리고 그 전에 프랑스였나 서구 외교사절이 와서 청에 조선의 개항을 요구한적이 있습니다. 조선이 중국의 속국이니 니들이 대신 개항을 허락해 달라 이거죠. 그때 중국에서는 조선이 조공을 바치기는 하나 자주국이므로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근데 뭘 가지고 청이 조선에 내정간섭을 했다는 말입니까?
                         
성룡523 13-03-09 22:32
   
ㅡㅡ; 뭘 사대관계를 철폐해요.. 그럼 독립문이라는 의미가 독립을 했다는건데
그전엔 독립이 안됐다는거지 자기 멋대로 해석하시네.. 이건 정설인데
님같은사람을 국뽕이라고 하는거임..
청나라한테 조선 개항 요구한거 그거도 보세요 다른나라든 우리나라든(독립문세움) 다 청나라가 조선 지배하는거 알고있었고 당시 전세계의 통념이었죠..
청나라가 조선 개항하기 싫어서 억지부린거지 청나라 스스로도 전쟁 져서 억지로 개항요구 당한겁니다 거부하고싶은데 어쩔수없이 하니까 핑계댄거지..
참 시모노세키 뭐 일본의 농간 --; 일본이 청나라한테 "조선이 독립국임을 인정해라!" 라고 한건데 이게 뭘 농간입니까?? 일본이 "청나라는 조선을 속국으로 삼으라!!"고 한것도 아니고 반댄데;; 뭘 농간 ㅡㅡ;; 억지부리시네..아니 시모노세키조약이 어쨰서 일본의 농간입니까;; 일본이 조선 먹을려고, 우선 청나라한테 독립시킬려고 한건데.. 청나라가 조선 내정 다 간섭하니까;;
                         
성룡523 13-03-09 22:35
   
전부다 독립국이라고 하시네 ㅋㅋ 최소한 "청-조선" "원-고려" "일본-대한제국"

이 3번은 우리나라가 다른나라에 먹힌게 맞습니다..

청나라와는 독립문이 있고 일본과는 독립기념일이 있는데...... 독립이 되기 전엔 독립이 안됐다는거지 ;;

이 당연한 사실을 가지고 참;; 이상한 사람이네

이거진짜 제말이 ㄱ한국 학자들이 주장하고 당연시되는 정설이고 딴데가서 그런말하시면 비웃음당함 진짜 ㅋㅋㅋ 어디가서 한국사람이라고 하지마세요 쪽팔리게..

님이 하는게 다 역사왜곡임.. 쪽바리들 하는짓 고대로 하시네;; 짱개들 동북공정이지 그게..
                         
서라벌 13-03-09 22:36
   
참 답답하네.. 나보고 국뽕이라네.. 어이가 없어서.. 그래서 청나라가 내정간섭한 예시가 뭡니까? 뭘 가지고 내정간섭을 했습니까? 그리고 일본이 조선을 청으로부터 독립시킨다는건 터무니 없는 말장난입니다. 자신들의 조선 지배를 정당화하려고 내가 너희를 청으로부터 독립시켜주고 보호국이 되주겠다.. 이게 일본놈들 제국주의 논리인데 그걸 믿으시다니?
내가 국뽕인게 아니고 당신이 식민사학에 쪄든겁니다. 정말 당신은 일본이 조선을 청으로부터 독립시켜줬다고 말하는겁니까? 청이 내정간섭을 했다면 예시를 보여주십시오. 어떤 것에서 내정간섭을 했는지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청도 명과 별 다를것 없었습니다. 일년에 몇 차례 조공사절 주고받는게 다였지 그 밖에 무슨 간섭이 있었단말입니까?
                         
서라벌 13-03-09 22:39
   
나보고 역사왜곡한다는 개소리 하지 말고 어디서 식민사학에 쪄들어와가지곤..
예시를 보여달라니까? 난 지금 내 옆에 국사교과서 있는데 원나라에 우리가 식민지배나 속국이었다는 구절 안나오고 청도 마찬가지임.. 우리가 식민지배를 받았던 때는 유일하게 일제시대밖에 없음. 뭘 알고 나댑시다..
                         
성룡523 13-03-09 22:46
   
청나라는 경제적인 개입만이 아니라, 군사개편, 관제개혁까지 한 것이다. 관제개혁이라 하면 아문제도, 통리군국사무아문(군무,내무업무를 담당. 갑신정빈이후 의정부로 통합되다 내부무로 부활)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외교 및 통상업무 담당, 갑오개혁까지 존속) 외아문(통리기무아문) 군제를 친군영으로 세우고 하부에 4영(좌우전후영)을 두게 했다는점, 그리고 청국방식으로 조선의 군사훈련을 했다는점.

청나라가 조선에 대해서 다른나라와 협약을 맺은것들.. 1888년 웨베르가 주선한 육로 통상조약, 1886년 10월 청나라와 러시아가 협정을 맺는데(이홍장-라디겐스키 협정) 러시아가 조선영토를 점령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영국 철수. 그래서 청나라는 조선의 종주권을 가지게되고 ~~~ 찾아봐도 쉽게 찾을수 있네..
                         
성룡523 13-03-09 22:50
   
정치, 군사적으로 청나라가 하라는대로 해야했고, 조선이 다른나라와 협약 맺는게 아니라 청이 대신 해줬고

무엇보다 "조선 스스로가 독립을 했다는 의미로 독립문을 설치"했고 ㅡㅡ;;

아니 독립문은 어떻게 반박 못하니까 뭐 사대주의 ㅋㅋ 사대주의 철폐한다고 독립문 설치하는 나라가 어딨습니까 ㅋㅋㅋ

일본 시모노세키 조약은.... 순전히 일본이 "독립시켜줬다" 이딴말 안했음 날조 하지말고

"일본이 조선 먹을려고, 일단 청나라한테 '너네 조선 독립국인거 인정해라'" 라고 조약맺은건데..

아니 일본이 조선 먹을려고, 청나라한테 독립시킨다음 일본이 조선 먹은거라니까????? 일본의 농간 ㅋㅋㅋㅋㅋㅋ

일본이 조선 먹을려고 청나라 조지고 나서, 조선이 독립국이라는걸 그떄 조약맺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보인가..

국뽕이라는 단어는 딲 이럴떄 쓰는거임.. 국뽕이네 완전 국뽕;; 마약 지대로 맞았네 ㅋㅋ
                         
서라벌 13-03-09 22:50
   
그거야 근대에 들어와서 얘기 아닙니까. 근대에 청 말고 일본이나 러시아, 서구 열강 등등 전부 조선을 노리고 있었는데. 저건 근대에 들어와서 조선을 사이에 두고 벌인 신경전이죠.
그럼 청나라랑 경쟁했던 러시아도 조선의 종주국임? 서로 영향력 넓히려다보니 저리 된거지 조선이 청나라 거여서 청이 그랬다는거?
                         
성룡523 13-03-09 22:57
   
청나라가 "영국아... 너네가 조선 영토를 침략하는구나. 침략 하지 말어라"하고 협정을 맺은건데

조선이 독립국이었으면 영국이 왜 청나라랑 이걸 조약을 맺습니까........조선이랑 맺지

저기 내정간섭한거 군제 개편도 청나라식으로 바꿔야했고 저거 다 보여줬는데도 참..

영국이 그럼 조선영토에 대해서 협약을 할떄 러시아랑 맺습니까?? 청나라랑맺지 당연히.. 청나라 속국인데

왜 영국이 러시아한테 허락받고 조선 침공하는게 아니라, 청나라한테 허락받아야 침공가능한거임??

네이버에 "청나라 내정간섭" 쳐도 존나 수백가지 찾을수 있으니깐 알아서 찾으쇼.. 당신같은 국뽕은 첨봅니다 ㅋㅋ
                         
서라벌 13-03-09 23:03
   
아이고 답답아.. 당신이 말하는 내정간섭은 근대에 들어와서 조선이 아무 힘이 없을 때의 내정 간섭 아니냐. 그때는 삼국 간섭이라 해가지고 청나라 뿐만이 아닌 러시아, 일본도 조선에 대한 내정간섭을 했는데. 그리고 신식 군대 훈련까지 일본한테 맡겼었지. 그럼 일본 속국인가? 당시 영국이 저랬던건 조선보다야 청나라랑 말이 통했으니까 그런거지. 당시 조선이 저런 근대식 조약을 대등하게 할 입장이었나? 그런식으로 따지자면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어찌되지? 포츠머스 조약은? 이거 전부 조선 지배에 대하여 인정받는 조약인데 그럼 조선이 미국 속국이었구만? 미국한테 허락받고 미국이랑 조약 맺은거니까.
                         
서라벌 13-03-09 23:06
   
시모노세키 조약에서 조선이 완전독립국을 인정하라는건 니들이 조선한테서 내정간섭 그만하라는 요구였지. 무슨 주인한테 허락 받는 그런 거로 생각하는건가? 근대 조선이 주권이 어디 있었나? 제발 근대에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는 그때 상황가지고 말하지 말고 근대이전 조선이 청에 어떤 부분에서 내정간섭을 받았는지 좀 말해봐.
                         
성룡523 13-03-09 23:11
   
인정하네 ㅋㅋ 조선 말기에 청나라한테 내정간섭 받은거.. 그래 조선 후기에 청나라 속국이었지

그러니까 중국 역사가 일본보다 더 개11새끼인거 아님???

청나라때 조선 후기 속국으로 삼고, 내정간섭 쩔게 하고

위안부 못지않은 공녀 만들어서 보내서 섹스하라고 보내고

전쟁도 임진왜란보다 비교도안되게 스케일 큰 전쟁 엄청많이 해서 한국인 역사적으로 수천만명 죽이고;;;

모든게 맞아떨어지는구만 ㅋㅋ 뭐 조선이 첨부터 끝까지 청나라 속국이다 이런말 한적도없고 당신이 지어낸 주장이니 혼자 반박하삼
                         
서라벌 13-03-09 23:24
   
아니 이런 비융신이 다 있나.. 청의 속국이었다면 청의 시작부터 봐야지. 근대 이전에 청의 내정간섭을 갖다대라니까 갖다 대는게 전부 근대 개화기 밖에 떠들지 못하니? 그때 당시는 청의 속국이었다기 보다 애초에 나라꼴이 제대로 되어있질 못했는데 청의 속국이면 어떻고 러시아 속국이면 어떠냐? 당시 일본, 러시아로부터도 내정간섭을 받았는데 왜 청나라한테만 속국이냐? 당신 논리의 모순을 모르겠어?
그리고 당신 대체 몇 살이냐? 공녀를 섹스하라고 보냈다고?? 말하는 꼬라지 봐라. 천박한 거 보니까 딱 좆중딩인데? 아가야 공부 더 하고 와라.. 되도 않는 개소리 하지 말고.
아직 배울 게 더 많이 남아서 니가 뭘 모르는구나.
                    
굿잡스 13-03-09 22:57
   
성룡인지 잡룡인지

이양반 뭐도 모르면서 헛소리 늘어 놓긴 ㅋㅋ

웃긴. 딱보니 그냥 어글로 잽형 패턴글 싸지르기하군 ㅋㅋ
                         
성룡523 13-03-09 22:59
   
뭐도 모르는건 당신이지.. 당신이 독립문이나 시모노세키 조약이 뭔지는 아냐 ㅋㅋㅋㅋ

진짜 무식하면 용감하다느니.. 욱일기 비슷한거 달아놓고 쪽바리짓하네 ㅋㅋ
                         
굿잡스 13-03-09 23:17
   
캐무식한 소리 그만 쳐하길 바람. ㅋㅋ

딱 보닌 무슨 청나라 조선 어쩌고  청왕조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모르면서

원나라 들고와서 공녀 어쩌고

딱보니 그냥 잽 극우 패턴에서 내내 헛소리 쳐하는 무식한 잡소리로 싸지르기

하는 쯧.
                         
굿잡스 13-03-09 23:19
   
ㅋㅋ 그리고 무식한 눈에 뭐로 보이지

방사능 위험 표시물과 잽전범기도 구분 못하는 ㅋㅋ 그냥 무식한

티 그만하고 잠이나 주무심. ㅋ
                    
나물밥 13-03-10 00:30
   
성룡이사람은 근대사를 똥으로배웠나 어떻게저런해석을할수가있지?
서라벌님이하는말이 거의다맞구만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중국과한반도는 정치 경제 문화 역사적으로 땔래야땔수가없는데
중국의 6부? 정부체제를 따서 우리네식으로 쓴것도 다 청의내정간섭이다?ㅋㅋㅋㅋㅋ
시모노새·끼같으니라고ㅋㅋ 시모노세키조약은 서라벌님이 잘설명해주셨는데 당시 조선의 상황과 국제정세를 보고판단해야지 ㅂㅅ짓거리하고있네진짜ㅋㅋ
그래 조선은 반만년역사중 중국에 속국이었고 러시아에도 속국이었고 아관파천때ㅌㅌ했으니 그뒤로 일본에 식민지되고 현재는 미국의속국이다 됐냐?ㅋㅋ그러니얼른 니네나라로꺼져라 대륙인지 섬인지는 모르겠지만ㅋㅋ혹시 섬짱깨?ㅋㅋ
                    
나물밥 13-03-10 00:33
   
무식하면 지가믿고있는 지식만 생각하고 개방적인 사고를 하지못해 의견및정보의 수렴을 하지못하고 마친가지로 한 문제의 단면만보는데 이건 전형적인 일본 넷우익 복사판ㅋㅋ무식자ㅋㅋ
          
웃기SP 13-03-10 00:07
   
성룡523= 이세퀴는 아무리 봐도  한국인이  아님..쪽꾹  스파이나..그런쪽  인간임..
     
서라벌 13-03-09 22:10
   
일본이야 직접적인 식민지배를 받았으니 중국보다 감정이 안 좋을 수밖에 없죠.
우리가 역사상 중국과 많이 싸웠지만 우호적일 때도 그만큼 많았습니다.
반면 우리가 전쟁에서 패했을지언정 식민지배를 받았던 적이 있나요? 국권을 잃고 식민지가 되었던 적은 한 번도 없죠..
          
성룡523 13-03-09 22:15
   
청나라가 조선을 일본 못지않게 속국으로 삼았죠.. 고려때는 공녀라고 해서, 예쁜 여자들 골라다가

그 여자들 바쳤습니다.. 중국 왕보고 섹스하라구요.. 위안부보다 더 굴욕적이라고도 할수있죠;;

한국 왕이 중국 황제한테 가서 무릎꿇고 절해야됬었고.. 일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수천년간 할짓 못할짓 다한넘들이죠..

전쟁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초 대규모로.. 1,2차 대전 말고 제일 규모 큰 전쟁이 고구려vs수,당 전쟁이랍니다

중국인이 죽인 한국인이 얼마나 많은데요;;
          
응답하라 13-03-09 22:20
   
원나라때 고려왕이 중국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던 때도 있었어요.
이때 자주권이 완전 상실되고 중국의 속국이었죠
               
서라벌 13-03-09 22:23
   
원나라가 중국입니까? 몽골이죠.. 그리고 자주권이 완전히 상실된건 아닙니다. 엄연히 고려 정부가 있었고 고려의 군사가 있는데 자주권이 상실되었다뇨.. 자주권이 상실되려면 우리의 정부가 완전히 사라지고 외세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아야 하는겁니다. 일본이 강제 합병하고 조선총독부를 설치한 것 처럼요.
                    
응답하라 13-03-09 22:25
   
님아 수-당-송-원-명-청
이런식으로 이어지지 않나요?
그 당시에도 정동행성이라고 설치 했었어요
                         
서라벌 13-03-09 22:29
   
수당송원명청은 중국 대륙에 존재했었던 왕조들이구요. 그게 다 중국 한족이라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원나라 세운 사람이 누굽니까. 칭기즈칸 아닙니까? 언제부터 칭기즈칸이 중국인이 되었는지..
                    
성룡523 13-03-09 22:27
   
원나라가 중국이 아니라 몽골이라는건 맞는얘깁니다만.. 보통 속국이라고 하면 "정치"적으로 독립되어있지 않으면 속국이라고 봅니다.. 조공 이딴건 아무소용없구요
왕이 원나라가 "이사람을 왕으로 삼으라!" 라고 하면 고려가 삼아야 했구요.. 전혀 독립적인 정치 못했습니다..
정치라고 하면 이 지방에서, 수도에서 이런 행정법을 시행하라~ 하면 우리가 하고싶은대로 할수있어야하는데
원나라가 반대하면 못했습니다.. 변발도 그렇고, 몽고인들이 고려군대한테
"같이 일본 쳐들어가자!" 하면 무조건 가야했구요ㅕ.. 님은 역사공부 좀더 하셔야할듯..
원나라가 고려 안먹었으면 그럼 뭐 말이됩니까.. 삼별초까지 만들어서 반항하고 강화도까지 튀었는데
결국 다 져서 왕이 무릎꿇고 항복했는데.. 뭐 속국이 아니라니 말도안되죠;;
                         
서라벌 13-03-09 22:32
   
책봉관계로 속국을 따지면 안 된다니까요?? 이해를 못하시네.. 물론 고려시대 원나라의 간섭은 다른 때보다 심한 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반속국 내지는 반식민지라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완전 자주권을 잃었다고는 못합니다. 그때 당시 왕실이 원의 입김을 받았다고 고려를 원나라 사람이 다스렸습니까? 고려 정부가 완전히 해체되어야죠. 게다가 군권까지 상실했어야 비로소 자주권을 잃어버리는겁니다. 역사 시간에 뭘 배우시는지.. 국사 교과서에 고려시대 원 간섭기라고 배우지 원 식민지라고 배웁니까? 거기다가 고려는 원나라와 국경분쟁까지 했었는데 완전 속국이랑 국경 분쟁도 하는군요.. 처음 아는 사실이네요.
                         
성룡523 13-03-09 22:37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3&dirId=130102&docId=166251148&qb=6rOg66CkIOybkOuCmOudvA==&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RgVI035Y7vVsstQaFP0sssssssh-377874&sid=UTs603JvLDsAABfFhKs

이거나 읽으세요 지식인에 "고려와 원나라의 관계는 어떘나요??"라고 물어보시면

100이면 100 속국이라고 하니까.. 더이상 논쟁 의미없는게 님같은 사실 주장하는 사람 첨봄

혼자 그렇게 생각하세요 저는 교과서에도 나오는 정설을 반박하는 사람을 설득할 이유를 못찾겠으니깐
                         
성룡523 13-03-09 22:40
   
그리고 왕 이름에 "충렬왕" 뭐 이런식으로 충~~ 어쩌구 이름 붙었는데

그게 왜 그런지 아십니까?? 고려가 원에 충성을 다한다 이런 의미입니다.. ㅡㅡ;;

아니 다른나라 왕 이름이 "딴나라에 충성을 다한다" 이런 이름을 왕에 붙이는 나라가 어딨습니까??

속국이라고 하면 이정도를 속국이라고 하는겁니다..

뭐 대단한거 엄청난거를 속국이라고 하는게 아니에요


딱 이정도를 보고 다른나라는 이걸 속국이라고 봅니다..
                         
서라벌 13-03-09 22:43
   
지식인이 무슨 만능입니까? 지식인 답변한 사람이 사학과 교수라도 되는가보죠?
난 지금 국사 교과서를 가지고 있다니까 그러네.. 원 간섭기라고 명명되어있지 식민지배나 속국이라고는 안 되어있거든요. 속국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었는데 단순히 왕의 책봉을 해줬다는걸로 속국이면 속국 아니었던 때가 없었다니까..
원이야 좀 간섭이 심했으니 어느 정도는 말이 되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일말의 자주권이 없다는 건 말이 안돼지.. 그럼 고려라고 따로 부를 필요도 없지. 그냥 원이지.
                         
통일하고파 13-03-09 22:44
   
속국하면 떠오르는 것 : 책봉
과거 명청과 조선의 관계는 바로 책봉의 관계입니다. 속국이라하면 중앙정부에서 그 지역(속국)의 통치자를 임명합니다. 몽골시대 고려왕이 바로 이런 형식이지요. 그렇기에 몽골은 수시로 고려왕을 파면하기도 하였고(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정왕) 체포, 유배를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조선은 왕이 즉위를 하면 중국에게 통지하고, 책봉형식을 빌은 인정만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첫째왕자를 즉위시키든, 둘째왕자를 즉위시키던 조선의 마음이었습니다.
                         
응답하라 13-03-09 22:48
   
원나라 때는 속국이 맞아요.
당연히 우리 나라 국사책이니깐 속국이니 이런말 쓰고 싶지 않은거죠..
그당시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 정도 였고요..
입성책동이라고 해서 속국이 아닌 중국의 하나의 성으로 만들자고 건의될 정도 였어요..
                         
서라벌 13-03-09 22:59
   
아 정말 속국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애매한데.. 그래도 저는 고려의 원 간섭기를 완전 속국으론 보지 않거든요. 해석의 차이인가? 뭐 좋습니다. 원 간섭기는 속국이었다고 합시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완전 자주권을 잃어버렸던 때는 아닙니다.
                         
성룡523 13-03-09 23:00
   
국뽕.

그냥 국뽕이라고 인정하는게 제일 좋음 ㅋㅋ
                         
굿잡스 13-03-09 23:01
   
원과 청이 한족 역사인가???? 무식한 ㅋㅋ

정복왕조사에 대한 개념도 없이 싸지르는 ㅋㅋ


<만주족의 한족 대학살>

명말청초 대학살의 기록들

[양주십일기],[가정을유기사],[강변기략] 등의 사서에는 청군의 만행이 기록되어 있어,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아래에 나는 청조의 관방자료 내지 제 삼자의 서술을 토대로 이러한 만행들에 대한 보다 종합적인 자료들을 모아서 서술했다.


1.청조의 관방학살기록자료

우선, 청조는 자신이 행한 학살에 대한 예고격인 자료를 발표하였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청세조실록] 17권 순치2년 6월 병인중의 기록이다.
“ 이 포고령을 공표한 이후, 북경성 내외와 직속 각성에서의 모든 백성은 10일 안에 변발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이를 위반할 시, 어떤 변명도 허용하지 않으며, 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自今布告之后,京城内外,直隶各省,限旬曰尽行剃完。若规避惜发,巧词争辩,决不轻贷”。并宣称:)

이와 동시에,
“변발령을 지켜서 투항하는 지역은 기존의 지위와 부를 보존하게 될 것이다. 만일 반항하는 지역은 대군을 출동시켜, 모든 것을 초토화시키고,살륙할 것이다.”
“所过州县地方,有能削发投顺,开城纳款,即与爵禄,世守富贵。如有抗拒不遵,大兵一到,玉石俱焚,尽行屠戮。


청조는 1649년 사천성에서 또 다른 포고령을 발하였고, 그 어감은 앞서와 유사하다.
“일반 백성과 반란군이 혼재하여 구분하기 어렵다. 그래서 모든 성주민을 죽이거나, 혹은 남자만 죽이고, 여자는 남겼다.”(民贼相混,玉石难分。或屠全城,或屠男而留女)
청조의 다른 관방자료인 [동화록] 5권 순치원년조에는
“본조의 명령인 변발과 만주복식을 따르지 않는 자는 용서없이 죽인다.” (不随本朝制度剃发易衣冠者,杀无赦)
진강지부의 포고에 의하면

“가족 중 한 명이라도 변발을 하지 않으면 전가족을 몰살시킨다. 만일 한 가족이 변발하지 않으면 부락 전체를 몰살시킨다.”

(一人不剃发全家斩,一家不剃全村斩)고 하면서, 반항자의 머리를 잘라, 전체 백성을 공포로 몰아 넣었다.


순치 2년(홍광원년 1645년), 강년순무 토국옥은 “변발하고, 복장을 바꾸는 것은 새로운 왕조의 제일 중요한 정책이고, 모든 지역에 걸쳐서 실시되어야 한다. 만일 귀족, 군인,일반 백성 등이 자신의 머리를 보존하고자 하면 머리카락을 잘라야 할것이고,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으면 머리는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남산은 옮길 수 있으나, 이 명령은 바뀔 수 없다.”
(剃发、改装是新朝第一严令,通行天下,法在必行者,不论绅士军民人等,留头不留发,留发不留头!南山可移,此令不可动!)


이상의 청조의 공식적인 자료에서 ‘전성을 도륙한다.’,’도륙을 실시한다.’,’죽이되 용서하지 않는다’,’전가족을 몰살시킨다’(“屠全城”、“尽行屠戮”、“杀无赦”、“全家斩”、“全村斩”) 등의 흉악한 위협을 찾아 볼 수 있다.

이하의 글에서 청조의 위협이 결코 입으로만 끝난 것이 아닌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청군 입관 전의 대학살

우선, 청군 입관 전, 요동지역 한족을 대상으로 한 대량학살의 기록이 초기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천명9년 정월 , 누르하치는 9차 명령을 내려서, 소위 ‘무곡지인’이라 하여 곡식의 수확량이 5금두를 넘지 못하는 가난한 한족 인구를 적으로 삼아 사로 잡아서 관내로 돌려 보내게 하였다. 최후로 정월 27일 명령을 내려, 각지에서 조사된 이 한족인구들을 모두 살해하도록 했다. 즉, 공개적인 종족학살이었다.
천명10년 10월 3일, 누르하치는 한족을 비판하여 ‘간첩을 숨기고,굴욕을 겪는 데 익숙하며, 반란이 끓이지 않는다’며 팔기의 각 패륵과 총병관으로 하여금 병사를 대동하여, 촌락에 한족을 만나면, 말에서 내려 곧장 사살하도록 했다.

제삼자인 조선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13년 5월조에 요동인구의 참상에 대해 이렇게 써있다.
“비록 청이 요양을 획득했지만, 이 지역 주민중 이들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 많이 변경을 넘어 왔다. 적이 크게 이르자 주민 중에는 변발을 원하지 않는 의로운 자는 거의 압록강에 투신하여 죽었다”(时奴贼既得辽阳,辽东八站军民不乐从胡者,多至江边…… 其后,贼大至,义民不肯剃头者,皆投鸭水(鸭绿江)以死)

3. 청조 입관 이후의 대학살



1) 청조관방자료 및 제삼자의 자료

청조는 입관 이후, 자신들의 대학살을 적나라하게 인정하였다. 이것은 순치 7년 2월 청의대산서총독 동양량이 이르길,
“대동, 삭주, 훈원 삼성에서 이미 대학살로 인해 백성이 존재하지 않음”

청조의 자료 <명청당안>에 의하면, 순치 7년 11월 21일 모든 성주민을 도륙하여 겨우 5명의 범인만이 남아서 이들을 석방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삭주지>에 따르면, “성을 도륙하여 마주치는 것은 모두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광주대학살은 중립적인 제삼자의 자료가 있다. 이태리소속 예수회 수도사 마르티니(1614~1661)가 기록한 <달단전기>에 따르면, “대학살은 11월 24일부터 시작하여 12월 5일까지 계속되었다. 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여, 일률적으로 잔혹하게 학살하였다. 그들은 다른 말은 결코 하지 않고, 단지 ‘죽여라, 이 반란자들을 모두 죽여라’고만 외쳤다.”(두문개:<청대서인견문록>53페이지, 중국인민대학출판사, 1885년 6월판)

네덜란드의 사신 요한 니어호프는 <중국달단대한황제조정에 대한 동인도회사 파견원의 보고>에서 “달단의 전군은 입성직후, 모든 성내는 처참한 광경이 벌어졌다. 모든 병사는 파괴를 시작하고, 닥치는 대로 약탈하고, 부녀, 아동, 노인의 울음소리는 끓이지 않았다. 11월 26일부터 12월 15일까지 각지의 거리에서 들리는 것은, ‘반란자들을 살해하라’는 소리였다. 도처에서 비명소리, 도살, 약탈이었고, 부자들은 목숨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고, 저 무도한 학살자로부터 겨우 도망칠 수 있었다.”(사도림 저, 이영칭 역 <남명사>131페이지, 상해고적출판사, 1992년 12월판)

2) 속세로부터 떨어져 있던 출가인이 기록한 대학살의 규모

<광주시종교지>에 따르면 청 순치7년(1650), 청군이 광주를 정벌 죽은 자가 70만명에 이르렀다. 교외의 오룡강에 진수화상이 사람을 고용하여 시체를 수습하여 화장하였다.
주의할 만한 것은 광주의 70만명 사망 기록은 당시 직접 시체를 수습한 스님이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직접적인 기록이고 사료적인 가치가 높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보다 가치 있는 것은 이 숫자가 지금에 광주시 대불사 홈페이지에도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출가인은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다. 청조의 대학살을 경험한 후, 그는 “모든 현에 촌락이 없고, 촌락에는 집이 없고, 집에는 사람이 없다.사람은 모두 사라졌다.”고 적었다.

관방자료에 의하면,

북경지역“눈을 들어 보면, 논과 밭이 황량하다”(위주원, 통진민고소, 황청조의, 권1),하남성 “온통 황량한 풍경이고, 사람은 극히 적다”(이인룡, 간황의관미력소, 황청조의, 권4), 호광지역”천리를 둘러 보니, 인적이 끓기었다.”(류여모, 간황흥둔소,황조경세문편권34)

청조 최고위 통치자의 대학살 참여 증거

순치2년 11월 15일, 양주십일대학살의 실행자였던 예친왕 다석은 학살 중 미모가 빼어난 여인 103명을 획득하였다. 이들을 각각의 청조 최고위층에 헌납하였는 데,
순치제에게 10명, 섭정왕 도르곤에게 3명, 부정정친왕 치얼합랑에게 3명, 숙친왕 호격에게 2명, 영랑왕 아제격에게 1명을 바쳤다(<청초내국사원만문당안석편>중 197페이지).

3) 서로 다른 시기 인물들의 기록과 지방지의 기재

곤산대학살 : “모두 합해 성중 인물들 중 도살당한 사람이 10명 중 4명에 달하고, 침하에 떨어져 죽은 사람이 10명 중 2명, 도망친 자는 10명 중 하나이다.”<곤신양현속수합지>권 51,
“살륙이 끝나자, 성문으로 도망쳐서 물에 빠져 죽은 자, 부녀,어린이의 수는 헤아릴 수도 없다. 곤산 정상에 중 료중이 부녀 천 명과 어린아이들을 숨겼으나, 수색하여 모두 죽이니, 피가 강처럼 흐르고, 폭포처럼 떨어졌다.”<연당견문잡기 >


남창대학살 : “부녀는 각 팔기군으로 분배되어 졌고, 밤낮으로 병사들의 노리개가 되었다. 칼에 맞아 죽는 자, 물에 빠져 죽은 자, xx한 자, 10명 중 7,8명이 되었다.”(서세박<강변기략>)

광주대학살 :”광주에서 학살이 일어나 살아 남은 자가 드물었고, 도망친자는 바다에 빠져 죽었다.”(어재전<속명기사본말>)

남웅대학살 : “집집마다 제비집이 비워졌고, 시체는 산과 같이 되었다. 죽은 자는 머리가 잘려졌고, 산자는 포로가 되었다. 피는 땅을 덮어, 어미잃은 아이는 젖을 찾았다.”(청군문서 진잔규,<웅주점가가>)

가정대학살: “시민들 중, 목을 매달아 죽은 자, 우물에 빠져 죽은 자, 강에 빠져 죽은 자, 피범벅이 된 자, 사지가 잘린 자, 수족이 잘리어졌으나 아직 죽지 않은 자, 뼈와 살이 찢겨진 자들이 부지기수였다. 청병은 집 위를 달려서, 통행에 제지를 받지 않았다. 성내의 난민은 거리에 돌을 쌓아 막고자 했으나, 도망칠 수 없었다. 모두 강에 투신하여 죽었고, 강물은 시체로 넘쳐 제대로 흐르지 못했다. 대낮에 길에는 간간이 스스럼없이 행해졌고, 반항하는 자는 양손을 나무판에 못을 박아 강간했다. 청병은 마주치는 사람마다 재물을 바치라 했고, 그 획득한 재물을 허리에 둘둘 감아, 만족하면 백성을 석방했다. 다른 병사를 만나면 또 다시 똑같은 일을 당한다. 바치는 재물이 부족하면, 즉시 칼이 휘둘려지고, 재물이 다하면, 곧 죽음을 당한다.”([가정을유기사])

조주대학살: “병사들의 학살로 인해 시체가 십여만에 이르렀다.” 게양현 관음당 해덕화상 등이 시체를 수습해서 서호산에 화장해서, 유골을 서호남변에 묻었다. 복건성 동안현 학살 당한 자가 5만명에 달했다. 범천사 주지 석무의는 시체를 수습하여 절 동북쪽 1리밖에 묻었다. ‘무사정’이라는 정자를 지어서 ‘만가지 선이 함께 귀의한다’고 새겼다.

상숙대학살 : “길을 걸으면 다리 밑 하천을 말랐고, 퇴락한 집에 우물물도 말랐다. 곳곳에 시체만 쌓여 있으니, 오천여 구가 넘었다. 남녀 중 포로가 된자는 수를 세기도 어렵다. 연못 옆 나무에는 사람 목이 걸려 있는 데, 모두 마을 주민의 몸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양주대학살 : 이 일은 길게 말하지 않아도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유명한 <양주십일기>이외, <양주성수기략>에도 이 일이 기록되어 있다. “처음 고걸의 병사가 양주에 이르렀을 때, 주민들은 호수주변으로 피난했으나 많은 사람들이 적에게 해를 입었다. 북쪽은 경계가 엄했으니, 성밖주민들은 모두 성안이 의지할 만하다 여겨, 성안으로 몰려 들어 갔다. 들어 가지 못한 자는 그 머리를 조아려 입성을 탄원하여, 애끓는 소리가 대지를 진동시켰다.공은 마침내 문을 열어 그들을 받아 들였다. 성이 함락당하여, 예왕의 지휘하에 학살이 행해졌고, 7일이 지나서야 마침내 멎었다. 겨우 공의 시체를 수습했으나, 날씨가 더워서 시체가 변질되어 알아 보기 어려웠다.”([명계남략])

각지에서 변발에 반항하는 자는 분산하여 학살이 행해졌다. “가을이 되어 새 명령이 발포되어, 변발하지 않는 자는 참형에 처해졌다. 명령 발표 후 마을에 변발하지 않는 자는 모두 군대로 이끌려 와, 아침에 끌려온 자는 아침에 죽고, 저녁에 끌려온 자는 저녁에 죽었다.”(<진확집>권 30)

유명한 <강음성수기>에는
“모든 성내 주민의 살해가 끝나자 칼로 성문이 봉해 졌다. 성 내에는 어떠한 것도 남지 않았다. 절의 탑에 숨어 있던 승려 등 53명만이 남았다. 성을 지키기 81일, 성내에 죽은 사람은 9만 7천명, 성밖에서 죽은 사람은 7만 5천명에 이르렀다.”

4) 청군의 성폭행([양주십일]과 [강변기략] 중 항시 볼 수 있는 자료는 열거하지 않음)

순치 2년 7월 30일, 청군이 사진에 이르러 “보이는 자 마다 금은을 찾아 내어 노략질한 후 칼을 휘둘러 죽였다. 여인은 음행을 위하여 배로 보냈다.”,”주민을 마주쳐 끌고 가서, 숨긴 물건이 발견되면 배를 갈라 죽였다.”(<연당견문잡록>)

순치2년, 청군은 양주대학살을 행한 후, 무석에 이르러, “배안에는 모두 양주로부터 얻은 여인들이었다. 모두 값비싼 보석으로 장식하고, 화장을 했다.”(<명계남략>권4)

순치 원년(1644) 4월, 청병이 산서성 주질현에 이르렀을 때, 생원 손문광의 처 비씨가 사로잡혔다. 부인은 다른 방도가 없음을 알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내가 금은을 마른 우물에 숨겼으니, 그것을 취하자” 청병이 기뻐하여, 우물주위로 데려가 물속을 살필 때, 부인은 몸을 던져 죽었다. 금도 부인도 잃은 청병이 화가 나 큰 돌을 던져 버리고 가버렸다.(민국 <주질현지>권6)



청의 흥안총병은 부녀를 강탈하여 수가 100명에 이르렀고, 음란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큰 침상을 만들어서 처첩 십여명을 함께 침상에서 차례로 탐했다. 다시 땅에 나무 말뚝을 박아, 첩들 하나 하나씩 음문을 그 뾰족한 말뚝에 박는 놀음을 한후, 시체는 강에 버렸다.”(<평관지> 권12)

청군이 강음에서 대학살을 한 후, 청에 반항한 부녀는 강간한 후 죽였다. 지방지에 의하면 그 수는 101명에 이른다.(도광 <강음현지>권 20 <열녀>)

5) 청이 노획한 한족 노예

숭정 11년 동지에서 12년 봄까지 청군이 기부에서 산동에서 획득한 한족 포로가 46만 2천 3백여명에 달한다. 숭정 15년 동지에서 16년 여름까지 청군이 획득한 포로는 36만 9천명에 달한다.(<청태종실록>)

청군은 입관이후 계속해서 백성들을 사로 잡아 포로로 삼았다. 순치 2년 8월 병부에 명하길,'포로들을, 이전 예에 따라 성을 공략하다 부상당한 병사들에게 하사하라'고 했다.
(<청세조실록>)

한족 노예들은 주인의 학대를 받았을 경우, 대량으로 xx하였다. 강희 초년, “팔기병 집안에서 매년 xx하는 자가 2천명이 넘었다.”([청사고]),이를 보건대, 청군의 입관이후,몇 십년간 xx한 한족의 수는 10만명을 넘었으리라 본다.

만주인의 혹독한 학대로 인하여, 대량의 한족 노예는 도망쳤다. “수개월 동안, 수만명의 노예가 도망쳤다.”<청세조실록>, 청의 통치자들은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1626년 <도인법>을 제정, “도망친 노예를 은닉하면 참수형에 처한다. 그 이웃의 10집, 100집, 지방관도 처벌을 받을 것이다.” 이로 인해, 청조에 투항한 유명한 배신자인 정남왕 화종명조차, 도망친 한족 노예를 숨긴 이유로 강제로 xx했다.

4.대학살의 규모에 대해 추정

필자가 명청교체기 인구변천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명대 중국 인구는 최후로 행해진 공식 통계에 의하면, 51,655,459명이고, 조사시기는 명 광종 태창 원년이었다. (명 가종실록 4권)

청조 최초의 전국적인 인구조사는 청 세조 순치제 8년에 실시되었는 데, 이 때 인구수는 10,633,326명이었다. (청 세조실록 61)

청조가 전국을 완전히 통제한 청 성조 강희제 21년 (1682년, 입관후 48년) 전국 인구는 19,432,753명이었다. 이는 명 광종 태창 원년 인구의 단지 36%이다.

이상의 인구 숫자는 당연히 정확한 것은 아니다. 당시 인구에 따라 세금을 납부해야 했으므로 많은 인구수가 조사되지 못했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명대 실제 인구를 대략 1억에서 2억 사이로 추정한다. 비록 청조에서도 이러한 인구은닉현상이 있었지만, 청군의 입관이후, 인구 감소는 최소로 잡아도 5천만이상이다. 48년 동안 새로운 세대들이 계속 태어난 것을 고려하면, 청조 입관 직후 수년 간 인구 감소는 5천만명을 휠씬 상회할 것이다. 즉, 인구감소가 1억을 초과했을 가능성이 크다.
                         
성룡523 13-03-09 23:02
   
명청과 조선도 책봉으로 속국이라고 말하잖아요.. 저사람도

내가 혼자 주장하는게 아니라, 당신 혼자 주장한다는건 인정하죠??


중국이 한국 역사 통틀어서 일본보다 더 개1새끼라는게 명백한 사실인데 ㅋㅋㅋㅋ

심지어 지금 당장 분단된것도 아주 직접적으로 중국떄문인데.. 중국만아니었어도 100% 남한주도 통일 됐는데;

어거지를 쓸라하니까 혼자 말도안되는 주장을 하는거지 ㅉㅉ 국뽕도 적당이 해야지

아니면 화교? 짱꺠 유학생인가? 역사왜곡 그만하쇼 하튼

책봉하면 속국임 보통 다른나라에서 그정도 가지고 속국이라고 부름
                         
통일하고파 13-03-09 23:05
   
중국인들은 온 천하를 자기들 기준으로, 국적인 질서로 4가지 등급으로 나누어서 생각을 했습니다.

첫번째 등급은, 물론 한족을 핵심으로 하는 '화하'입니다.
華夏, 가장 빛나는 문화를 누리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두번째 등급은 '내번(內藩)'입니다.
한족은 아닌데 한족과 어울려 살면서 중국의 통치권 안에 있는 민족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청나라때의 몽고나 만주,티베트,신강위구르 같은 민족이구요.

-세번째 등급은 '외번(外藩)'입니다.-
중국의 일부는 아니지만 중국의 무력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주권을 갖고 있으면서
중국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중국 주변의 나라입니다. 조선, 베트남, 버마, 태국, 유구, 등등
대부분, 오늘날 독립국이구요. 서양에선 tribute 컨츄리라고, 공물국이라고 보고있긴 한데,
여기서부턴 중국영토로는 치지 않습니다.

네번째 등급은 '외이(外夷)'입니다.
실제로는 중국의 영향권에 속하지 않는데도 중국인들이 잠재적으로 자신들의 질서에 속해있는 것으로 여기는 나라와 민족으로 외번 이 외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들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청조의 일본-일본은 조공허가가 안났기 때문이라나?, 인도, 영국 등 외국.

이전의 조선같은 경우를 살펴보면, 네가지 범주 중에서 세번째인 외번에 속하게 됩니다. 외번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중국의 종주권을 인정하긴 하지만 중국에서도 확실하게 주권은 인정해주고 있습니다.

어느 범위가 속국이고 어느 범위가 독립국인지는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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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miky님이 하신 말씀인데 이게 옳은 말같네요.
                         
서라벌 13-03-09 23:10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쟁이 틀어진건 이해하겠는데, 그럼 왜 러시아는 안까냐?
소련 정권 무너졌으니까 안까는거냐? 따지고보면 북한에 제대로 된 지원해준건 소련 아니냐? 중국처럼 직접적인 군을 파견해 주지 않았다 뿐이지 김일성한테 군사적 지원 어디서 해줬어? 근데 왜 러시아는 안까?
그리고 책봉으로 속국이면 중국 속국 아닌 나라가 없다니까 말귀를 못 알아듣네. 일본도 일본국왕으로 책봉당했으니 속국이고 베트남도 속국이고 티벳도, 그 이전의 왕조 역사도, 전부 중국 속국이구나? 애초에 당신이 말하는 중국이나 제대로 정의해봐. 조선이 책봉당했다고 속국이었으면 소수의 만주족에게 지배당한 다수의 한족은 전부 노예 아니냐?
조선 얘기 꺼내기 전에 이것부터 따져보는게 어때? 만주족한테 지배당한 한족은? 그들이야말로 제대로된 식민지배 당한거지 멍청아.
                         
성룡523 13-03-09 23:14
   
소련도 그떄 한국에 피해줬지 625때 피해준거 맞는데 역사적으로 게속 치고받은게 아니라

중국은 4300년동안 계속 한국인 꾸준하게 죽였지... 내정간섭하고 여자 뻇어가고

일본은 왜구 해적 침략해서 꾸준히 약탈하고 임진왜란 피해 엄청주고 또 속국삼아서 나라 뻇었지 한 100년 정도되나 합치면


중국>>>>>>>>넘사>>>>>>>>>>>일본>>>>다른나라임.. 중국이 제일 개1새끼ㅋㅋ 이거 뭐 역사적으로 보면 부정할수가 없음
                         
성룡523 13-03-09 23:17
   
만주족이 한족 지배한거 맞는데 내가 저 위에 맨처음부터 말했는데 혼자 이상한 주장 만들어서 반박하네 ㅋㅋ
지금 중국은 다민족 국가니 독립국인 몽골의 원나라를 제외하면 중국이 한나라뿐이다 이렇겐 못하는거고 수나라,당나라,청나라 이정도면 한국에 엄청나게 피해줬지..
단순 책봉뿐 아니라 청나라 같은경우는 내정간섭 쩔게 했는데 이거 뭐 일본 저리가라임;; 완전 한국 철천치 원수지 이건
                         
서라벌 13-03-09 23:20
   
아니, 중국이랑 치고받고 싸운건 나도 아는데. 전쟁을 하면 죽는 사람이 우리만 있었냐?
수천년 기간 동안 중국이랑 싸웠다고 중국이 나쁜놈이면 중국도 우리를 나쁜놈으로 봐야지. 전사자가 중국엔 없었음? 전쟁하면 우리는 중국인 안죽였나? 어차피 전쟁은 다 그런거야.
그리고 당신이 중국을 싫어하는 거 가지고 뭐라고 하는거 아니다. 나도 중국 싫다.
다만 나는 그래도 반중감정이 반일을 앞서지는 않거든. 앞으로 대비하고, 경계해야할 대상은 중국이긴 하지만 말야. 다만 내가 하고픈 말은, 역사상 중국과 많이 다투어왔지만 우호적이있던 기간도 꽤 길다. 그리고 우리가 일본에게는 직접적인 지배는 받았어도 중국에게는 그런 적이 없으니 아무래도 반일감정이 더 앞서지 않겠나 이 말이야.
근데 직접적인 지배 이 얘기에서 당신이 속국이니 뭐니 식민지배니 개소리가 나온거고.
중국을 싫어하려면 싫어하시라고. 나도 좋아하는건 아니니까. 근데 다만 뭘 좀 알고 까불었으면 좋겠음.
                         
성룡523 13-03-09 23:24
   
지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사자가 나왔으니까 중국도 한국 싫어해야 된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침략전쟁을 일으킨쪽이 나쁜게 당연하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 평화롭게 지낼수 있었는데 지들이 욕심나서 먹은거 가지고

일본이 진주만 침공해서 미국이 일본에 핵폭탄 날렸으니까 일본인도 미국 싫어해야겠네?????

말이되나 ㅋㅋ 지들이 평화깨고 선빵쳐놓고 ㅋㅋㅋ 피해자가 가해자를 싫어해야지

가해자가 피해자를 싫어해야된다고 하네 저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가 중국 침략전쟁해서 죽인 숫자랑, 중국이 우리 침략전쟁해서 죽인 숫자랑

어느게많음?? 비교가 되나 솔직히 ㅋㅋㅋㅋ 시1발 당연히 중국이 한국한테 나쁜짓한거지


짱깨 화교가 합리화하고있네 ㅋㅋㅋㅋㅋㅋㅋ뗴놈녀석
                         
서라벌 13-03-09 23:29
   
에효.. 너란 놈은 답이 없는 거 같다. 애초에 너는 토론을 할만큼 성숙된 인간이 아닌듯.
말귀도 못알아듣고.. 대체 수백, 수천년 전 전쟁한거 가지고 반감이 일어나면 대체 지구상에서 서로 우호적인 국가가 몇이나 될까? 너 개인적인 감정으로 중국 싫어하는건 알겠는데, 말도 안되는 거로 일반화 하지 마라. 그리고 침략은 중국만 했니? 고구려는 중국 안 털었냐? 물론 중국 본토를 아주 먹은적은 없지만 고구려 영토확장은 어떤 식으로 했는데? 중국이 너희 땅해라 하면서 양보해줬니? 역사적으로 근접 국가간에 전쟁이란 일어날 수도 있는건데 그런 사소한거 하나하나 따지면서 뭘 어쩌겠다는거여.. 애초에 내가 당신보고 중국 싫어하지 말라고 강요를 한것도 아니고 약간의 견해차가 있는것을 말 참 더럽게 하네.
                         
성룡523 13-03-09 23:35
   
너는 지능이 낮은듯.. 청-조선, 원-고려 를 속국 인정 안하는사람 내가 태어나서 처음봤다ㅋㅋ
국뽕이라 그런지 학자들의 정설을 말하면 나보고 못알아듣는다 하고


처음에 너는 "청나라가 조선 내정간섭한게 뭐가있나?? 찾아와바??" 했던거 알지???????

내가 진짜 찾아오니까 나중에는 내정간섭 쩔었던거 후반에만 그렇다고 말바꾸는둥ㅋㅋㅋㅋ

쳐발리니까 뜬금없이 말귀를 못알아먹고 자세가 안됐다느니 니가 이렇게 말바꾸고 틀린 사실을 대놓고 말하는데도 똑같이 말할수 있을까??ㅋㅋㅋ

내가 아니었으면 아직도 "청나라는 조선에 내정간섭을 한적이 없다"로 알고있었겠지..

으휴;; 국뽕님 공부더하든가, 아니면 아는척을 하지마셈.. 아는척하고싶으면 지식을 늘려야할듯
                         
성룡523 13-03-09 23:37
   
일본보다 더한짓 했다는게 사실이고 그 사실을 지적했는데

나중에 한다는소리가 "그딴식이면 세상에 우호국가가 어딨냐ㅋㅋㅋㅋㅋ"

그럼 일본이랑도 우호국가 하면 되곘네 ㅋㅋ 너나 짱꺠, 쪽바리 좋아하렴 ㅋㅋ 자존심도 없는 저능아녀석
                         
서라벌 13-03-09 23:49
   
결국 끝까지 말귀 못알아먹네.. 이래서 어린 애들이랑은 논쟁하면 안돼는데..
내가 청의 내정간섭을 요구한건 당연히 근대 개화기 이전이다. 멍청아.
애초에 근대 이후에 청 말고 러시아, 일본한테서도 내정 간섭을 받았는데 왜 청나라만 가지고 따지냐? 청나라한테 내정간섭 받아서 속국이면 러시아, 일본한테서도 받았으니 러시아, 일본 속국도 되는거냐? 내가 말을 바꾸는게 아니고 니가 비융신인거여.. 청의 내정간섭을 이야기하려면 사대주의 하던 근대 개화기 이전을 가져왔어야지 무슨 시모노세키조약이여.. 그리고 어떤 학자가 청-조선, 원-고려를 속국이라 하니? 누군지 이름이나 대 봐라. 난 지금 옆에 교과서를 껴놓고 교과서 보면서 말을 하는데 넌 뭘 가지고 말을하냐? 교과서가 있는 나보다 네놈이 정설이라 할 수 있냐?
애초에 너란 놈은 다른 사람의 견해는 이해하려고를 하질 않아. 내가 너보고 짱깨 싫어하지 말랬냐? 아무래도 직접적인 지배를 받은건 일본 쪽이니까 일본을 더 싫어할 수도 있다 라고 말했지 내가 그래야 된다고 했던? 더 이상 너 같은 꼬꼬마랑은 상대 못해주겠으니 혼자 떠들어라. 너란 놈은 평생 저 잘난 맛에 살겠지.
                         
성룡523 13-03-09 23:57
   
원나라 때는 속국이 맞아요.
당연히 우리 나라 국사책이니깐 속국이니 이런말 쓰고 싶지 않은거죠..
그당시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 정도 였고요..
입성책동이라고 해서 속국이 아닌 중국의 하나의 성으로 만들자고 건의될 정도 였어요..



이거 안보이냐ㅋㅋㅋㅋㅋㅋㅋㅋ 야 너는 쳐발리면 다른사람보고 나이어린애취급하냐 보통?
갑자기 나이어린애... 진짜 똘구인가;;; ㅡㅡ;; 정신 나간 사람인가..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우리나라 교과서에 속국이라고 써있을리가 있나.. ㅋㅋ 당연히 그런건 안써있지
어차피 속국이라고 써있지 않다고 해서, 속국을 부정한다고 할수도없음. 속국이 아니다 라고 적혀있는것도 아니니까
다만 고려 왕들의 이름을 충~~~ 붙여서 "원나라에 충성한다" 라는 이름 붙인거랑
원나라가 고려 군사들 이끌고 일본 침략하자! 하면 해야된다는거랑

청나라가 경제, 군사적으로 조선에 내정간섭해서 청나라식으로 바꾼거랑 이런게 적혀있으면
속국이다. 라고 할수있는거지

니말대로 조선말기에 다른나라가 내정간섭 쩔게 했으니까 제대로된 독립 자주국가가 아니라고 할수있는거 아니냐?
당연한걸 가지고 말하네 ㅋㅋ 그떄 조선이 제대로된 자주국 취급은 못받았지
다른나라가 청나라한테 가서 "조선 여기여기 개항해라"라고 하는 시점인데

우리나라교과서에 속국이라는 단어가 등장안하는게 의미가 있나 ㅋㅋ 짱깨 유학파녀석
짱깨 옹호할라고 별 궤변을 다 부리네 ㅋㅋㅋ
KNVB 13-03-09 21:59
   
외국나가보면 한국만큼 외국인에게 친절한 나라도 없다는 걸 절실히 느낀다. 미국가면, 한국인은 아직도 동양계라고 무시받고 차별받는다. 어딜가나, 텃세라는 건 기본적으로 다 있는거다. 원래 집떠나면 고생이고, 외국가는 사람은 그 불편 감수하고 가는거다. 그 불편 감수하기 싫으면 외국에 안가면 되는 거지.
얄밉지 13-03-09 22:01
   
한국인은 중국인들의 오랜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한다. 또한 현재 그들의 근면성과 애국심은 본받을만 하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은 60년전 전쟁을 했다. 중국입장에서는 변방 외국의 작은 전쟁에 불과했지만, 한국에서는 생존을 건 전쟁이었다. 또한 대다수 한국인들의 인식은 북한뒤를 봐주는 것이 중국이고 통일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아직 반중감정의 사람들이 많다. 현재 중국인들의 일부 부정적인 인식들(시끄럽다, 졸부)등등도 사실 과거 전쟁, 반공에 대한 지배적인 사회분위기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파생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미래 아시아 발전에 꼭 함께 나가야하는 협력자이며, 지난 20년 수교이후 중국과 한국은 관계가 해가 갈수록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앞으로도 더 좋은 한중관계를 기대해본다.
미소고 13-03-09 22:08
   
일본에 대한 감정은 역사적인 감정이고 중국에 대한 감정은 인간자체에 대한 감정이지 한국에 있는 중국인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중국에 있는 중국인은 불량식품을 만들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쏘리하지만 그게 이미지
히힛 13-03-09 22:10
   
미국내에서는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구나
중국의 찬란한 문화 유교 가치관? 엿이나 먹어 ㅋㅋ
그런거 누가 신경 써 요즘 조선시대도 아니고
당장 한국의 가치관도 모르는 젊은 새대들인데
한국내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99% 냄새나는 바퀴벌레
그리고 1% 시끄러운 졸부 끝
     
얄밉지 13-03-09 22:14
   
99는 또 뭐냐. 하여간 정확한 수치도 제시안하고 선동질은 ㅉㅉ
          
히힛 13-03-09 23:46
   
짜장인가?정치글도 아니고 선동은 또 머야ㅋㅋ
아니면 말지 바퀴벌레 관한글에 진진 털기는
아무튼 대부분 이미지는 그렇잖아
너가 짜장이 아니라는 조건에 너같은 애들 몇몇 극히 극소수 빼고
오캐럿 13-03-09 22:18
   
일부 댓글러들.. 정확히 모르면서 진지 모드이네..

//최감독/님.. 수고하여 주신 번역 정독으로 잘 봤습니다...^^!
현금 13-03-09 22:27
   
음////
플로에 13-03-09 22:29
   
재밌는 글이었습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
아기건달둘 13-03-09 22:31
   
잘봤어요
TheCosmos 13-03-09 22:34
   
서양인들의 관점에서보면, 조선이 중국의 속국이나 그에 준한다는 것으로 보여진다는 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늘 조선이 중국에게 '관례적인' 조공과 상국대우를 했다고 하지만. 국명에서부터, '조선과 화령을 두고 명 황제에게 물어본 것', 왕이 바뀜에 중국에 통보하고 형식적이지만 이에 동의한다는 것을 받아오는 것만 보더라도, 서양사에서 흔히 나오는 공국이나 제후에 준하는 것일 태닌깐요. (그들과 우리의 사정이 많이 다르다는 것에도 불구하고)
김질럿 13-03-09 22:53
   
한국인이 중국을 싫어하는 점- 역사왜곡(동북공정), 이어도 영유권 주장
한국인이 일본을 싫어하는 점- 역사왜곡(위안부, 임나일본부설 등), 독도 영유권 주장
     
코코아요 13-03-09 23:02
   
그외에도 중국이 역사적으로 깡패국가였고 현재도 깡패짓을 하는 거랑
6.25때 공산당의 이름으로 북한을 도와줘서 통일이 눈앞에서 무사된것
최근에는 중국인들의 몰상식한 행동때문이죠...

과거의 중국인보다 현재의 중국인이 더 ㅄ같은게 사실이죠. 공산당독재나라 졸부나부랭이나
무식한하층나부랭이뿐
코코아요 13-03-09 22:59
   
guitard
중국에서 한국으로 이민온 사람들은, 한국내에서는 숫자가 상당하지.
소수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러므로 시간이 흐르면 한국내에서의 그들의 인권도 많이 올라갈 거야.
물론 지금은 좀 한국인에게 무시당하는 게 현실이지
---------------------

조선족의 실체에 대해서 좆도 모르고 쳐갈겨쓴글이네요.  현재 조선족은 비슷한언어를 사용함으로
일반 외노자에 비해 배이상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죠. 그리고 다른외노자에 비해 비자특혜를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극도의 험한이 되어 중국내 험한을 주도 하고 있으니 어찌 안미워할수 있겠습니까;;
오웬춘을 필두로 그 많은 범죄와 불체자들;; 한두명도 아니고 50만명이 넘는 숫자까자;; 그리고 생활속에서
격는 저들의 무개념한 행동까지(공산당에서 자라 자유를 누릴줄 모르고 새치기가 자유인줄암)

그리고 당연히 먼 이국땅인 한국에 대한거라 그런지 틀린게 한두군데가 아니네요 ㅋㅋ 서양인과 한국인의
혼혈이 극도로 무시당한다라...그래 보이지 않느데요? 요즘 서양인과 혼혈인 청소년보면 잘만지내던데요?
커뮤니티에 모습을 들어내기도 하고 방송에서 나온걸 봐도 차별받는 다는 말도 없고 인상도 없어요;
차라리 대우받으면 모를까;;  차별을 받는건 동남아쪽 혼혈아들이죠. 이건 숨기고 싶어도 현실이라 ㅋ;
짜져섬국 13-03-09 23:00
   
중국이 순수하다는 말에 물 뿜고 말았네-_-; 얘네는 중국인을 진짜로 만나보고 나서 댓글을 단 건가? 중국인이 순수해? 국가에 대한 자만심에 쩔다 못해 하늘을 뚫고 우주를 찌를 기세인데 이게 순수한 거임? 중국인이랑 직접 이야기해보면 얘네들이 중국인, 특히 한족이란 자부심이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얼마나 기만한지 알 수 있을거다-_-
     
코코아요 13-03-09 23:03
   
중국놈들 다수가 미국에 있죠... 재미교포의 10배가 넘을걸요 ㅋ; 그리고 공산당나라답게
사이버전사도 많죠. 다른 미국커뮤니티보면 중국까는 글이 대부분인데 이쪽이 이상하네요 ㅋ
실제로 무개념중국인이 휠~씬 많죠;
굿잡스 13-03-09 23:06
   
저위에 짜장인지 잽극우인지 썽룡인지 잡룡인지 모르겠지만 캐무식한 소리 ㅋㅋ

뭔 원 청이 짱개 한족 역사임???  철저하게 한족들 수백만을 도륙한 정복왕조의 피비린 나는 역사인데

뭔 캐소리 ㅋㅋ

몽골 원나라가 세계 경영할때 1.5계급 부마국으로 주변국에 나라 유일하게 존속했던게 그나마 고려이고

한족 짜장들은 원나라시절 최하층 노예등급으로 살던 시절임.

어디서 짱개들이 울 나라와 비교질 쳐함.


 
-- 짐이 보건대 지금 천하에서 자기의 인민과 사직을 가지고 왕위를 누리는
 
나라는 오직 삼한(고려)뿐이다. 우리의 선왕 때로부터 그 후 거의 100년 가
 
까운 기간에 부자가 계속 우리와 친선관계를 맺고 있으며 또 서로 장인과 사
 
위관계로 되었다. 이미 공훈을 세웠고 또 친척이 되었으니 응당 부귀를 누려
 
야 할 것이며 어떤 나라보다 먼저 국교를 맺었으니 추숭하는 예절을 어찌 늦
 
출 수 있겠는가 --
 
 
 
 사람들이 원제국 시기에 고려의 생산력이 완전히 박살 난 상황에서 공물만
 
바치는 거의 속국처럼 이해하는데 현재는 이런식으로 보지 않습니다. 도리
 
어 무인 100여년시기에 가면서 특정 무인가문을 지키기 위해 군사가
 
사병화 되면서 고려의 전성기 중앙 군사력의 기반이 약화 붕괴되고
 
도리어 강화도에 쳐박혀 있거나 일부 무인들이 남아 대몽항쟁질 한다면서 
 
내륙까지 민간인들의 실질 피해가 많았음.(이들을 끌어 내기 위해
 
몽골이 내륙까지 휘젖어 버림)
 
도리어 충선왕때 세계를 경영하던 원의 부마국이 되면서 당시 1계급
 
몽골에 견주는 1.5계급의 대우를 받았던 게 고려입니다.(한족은
 
당시 최하층 노예계급)
 
나름 자주권도 주어졌고 생산력도 회복되어 어느정도
 
돌아간 상황이였음.
 
이후 공민왕의 개혁은 이전의 실질적 동북아 3강의 황제국의 자주권 실현의
 
도모였지 고려가 막장에서 급격히 피치를 올려다는 식이 아닙니다.
 
 
 
이는 원래 일본 원정을 준비하고 실행하기 위해 고려에 설치되었던 기관이었다. 정식명칭은 정동행중서성(征東行中書省)이다. ‘정동’은 일본정벌을 뜻하는 것이고, ‘행중서성’은 중앙정부 중서성(中書省)의 지방파견기관을 뜻하는 것이다. 원은 지배지역에 지방행정기관으로 행중서성을 설치했다. 이것이 현재까지 성(省)이라는 행정단위로 남아 있다.
지금까지는 일본 원정을 포기하면서 필요 없어진 정동행성이, 고려를 통제하는 기관으로 변했다고 보아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동행성이 고려를 통제하기 위해 설치된 기관이라고 보지 않는다. 고려에 대한 통제 기능은 일시적으로 발휘되는 경우가 있었을 뿐, 대부분의 시기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점은 정동행성의 구조와 여기서 활동한 인물들의 성격에서 나타난다. 정동행성에는 기관의 수장으로 승상(丞相 : 종1품)이 있고 그 아래 평장정사(平章政事 : 종1품)·우승(右丞 : 정2품)·좌승(左丞 : 정2품)·참지정사(參知政事 : 종2품)·낭중(郎中 : 종5품)·원외랑(員外郎 : 종6품)·도사(都事 : 종7품) 등이 있었다. 이런 구조에서 정동행성의 수장인 승상에는 고려왕이 임명되었다.
또 몇 년 동안을 제외하고는 평장정사 이하 참지정사까지의 고급직위(종1품에서 종2품까지)에 대한 임명은 없었고, 낭중·원외랑·도사와 같은 하급직위(종5품 이하)만이 채워져 있었다. 하위직 마저도 대부분 고려인으로 충원했고, 원의 관리가 임명되는 평장정사·좌승·우승·참지정사 등의 요직을 비워두는 것이 관례였다. 더욱이 원(元)이 간섭할 필요가 있는 문제가 생기면 정동행성을 통하지 않고 사신이 직접 와서 처리하는 일이 많았다. 내정간섭을 위해 설치된 기관이라면 이런 식으로 운영되었을 리가 없다.
정동행성보다는 그 부속기구인 이문소(理問所)가 폐단이 더 컸다. 원나라의 다른 행성들에도 설치되어 있던 이문소(理問所)는, 본래 개경에서 원과 관련된 범죄행위를 다스리는 업무를 맡았다.
 
http://dk7117.egloos.com/2364101
     
서라벌 13-03-09 23:15
   
그러게 말입니다. 역사를 그때 당시 상황속에서 상대적으로 인식해야죠.
고려가 원나라에 간섭을 받았으니 속국이라? 애초에 원나라에 침략당하고 살아남은 나라가 있었습니까? 부마국이 되었던건 지금으로 따지면 치욕이나 그때 당시로는 오히려 국제적으로 지위가 높았던거죠. 송나라, 금나라가 고려만큼 버텼나요? 걔네들 금방 무너지고 직접적인 지배 받을때, 그나마 나라꼴 유지한게 고려죠. 근데 사람들이 그걸 몰라요. 그저 깎아내리기 바쁩니다.
     
성룡523 13-03-09 23:19
   
청이 짱꺠 한족 역사래 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한적도 없는말 지어내서 반박하는거봐 저능아 IQ 80짜리 인증하네 ㅋㅋㅋㅋㅋㅋㅋ
          
굿잡스 13-03-09 23:21
   
썽룡인지 잡룡이니 무식한 티 그먄 쳐하길 바람.

쭝국 하니 현재 짱국이 고대 그냥 가상의 관념적 중국이라는 단어와 현대 짱국을

그대로 동일시 해서 윗글에서 쳐해놓곤 ㅋㅋ 어구 ...
               
굿잡스 13-03-09 23:24
   
애초에 현재 한족 90퍼센트에 무슨 소수민족 어쩌고 쳐하는 짱국이야 말로

원나라시절 최하층 노예계급에 청나라 시절에는 수백만이 도륙당하고

변발에 복식도 파차오에 캐관광 당한 역사나 제대로 쳐알고 헛소리쳐하길 바람.

그리고 만주족이 자금성 들어와서 한족들 도륙한다고 조선은 초기 외에는 제대로

신경쓸 틈도 없으서니 ㅋㅋ.
               
성룡523 13-03-09 23:27
   
청이 한족 역사라고 한적이 없는데, "저새끼가 청이 한족역사래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라고 완전히 없는 말 지어내서 반박하다가

내가 그런말 한적 없다고 정확히 지적하니까 쫄려서 구라나 계속 치네


내가 청이 한족역사라고 한거 가져오면 니가 이긴거고

못가져오면 니가 진거다 ㅇㅋ??


쳐 발리는일만 남았다 너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성룡523 13-03-09 23:30
   
구라치고 없는말 지어내는 난독증 한마리가 댓글창 아예 망쳐버렸네 ㅉㅉ;;;

이래서 사람이 지능이 높아야되
                         
웃기SP 13-03-09 23:41
   
성룡523= 쪽바리군..ㅉㅉㅉ공부좀 더하고  와라 조공한다고 속국이 아니다  ㅄ  세퀴야~
                         
성룡523 13-03-09 23:43
   
조공한다고 속국이라고 내가 했다고 생각하는 등신.. 아까는 짱꺠라면서 ㅋㅋㅋㅋ

진짜 이런 저능하고 무식한 난독증녀석은 멸종되어야할듯..
                    
서라벌 13-03-09 23:31
   
청이 한족 역사가 아닌 걸 아는 놈이면 조선이 중국 속국이라는 소리를 하기 전에 노예생활했던 짱깨들을 먼저 비웃어야지 않냐? 너놈 말이 틀리지 않냐.
                         
성룡523 13-03-09 23:38
   
"중국"이라고 하면 무조건 한족만 중국이냐???

청나라는 한족이 개발린거 당연한거아님??

청나라는 중국역사 아님?? 청나라가 중국 역사가 아니라고 하는게 정설인가?
                         
서라벌 13-03-09 23:42
   
그걸 아는 놈이 그따위로 말하냐? 현재 짱깨들의 말도 안돼는 역사관이랑 너랑 다를게 뭐가 있냐. 중국 본토의 대다수의 한족은 극소수의 만주족에게 수백년 지배를 받았는데 겨우 조선이 조공 바쳤다고 억울해 하는 너 아니냐. 조선이 청나라에 조공 바친게 그렇게 억울했냐?
그럼 한족 짱깨들은 수치심에 전부 칼물고 죽어야지.. 노예였는데.
그리고 역사는 돌고 도는거야. 청나라 세우기 이전에 여진족은 조선에 조공 안 바쳤냐? 여진족 애들이 조공 열심히 갖다바치고 조선에서 관직도 내려주고 했는데 그럼 여진족 입장에서 조선한테 엄청나게 털린거고 존나 억울해 죽을 일인가?
                         
성룡523 13-03-09 23:47
   
조공바친거밖에 모르냐 ㅄ
일본이 한짓 = 침략전쟁, 내정간섭(100년쯤)
중국이 한짓 = 침략전쟁 내정간섭(수천년)

짱꺠와 쪽바리가 한국 역사의 원수같은 국가고 짱꺠까 훨씬더하다


기본적인 논리가 이건데

이게 뭐 어디가 틀림?

한족들이 만주족한테 억울해할려고 해봤자 중국이라는 나라로 통일됐는데 누구한테 억울해해 ㅋㅋ 억울해 하든지 말든지


짱꺠가 일본보다 나쁜놈이라고 하는게 틀린점이 뭐가있지? 난 모르겠는데

옛날일이 너무 오래됐다고 해봤자 625때 대규모 침략전쟁, 그것도 국제적으로 불법 개입한게 중국인데 임진왜란 저리가라지 국가가 분단까지 됐으니

중국=한국을 분단시킨나라 이렇게 딱 정의해도 되는건데

갑자기 무슨 한족얘기 ㅋㅋㅋ 그새1끼들이 뭘하든 나랑 뭔상관 ㅋㅋ
                         
웃기SP 13-03-09 23:47
   
성룡523= 이세퀴는 한국 사람이  아년게 분명 해요  저런 쉐키하고는  말안하는게 답입니다
                         
성룡523 13-03-09 23:51
   
그러니까 이새끼들 논리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짱꺠가 한국한테 한짓들은, 한족이 한짓이 아니다


중국은 오직 한족만이 중국이고, 나머지 민족들은 중국이 아니다

중국은 단일민족 국가이다

청나라는 중국역사가 아니다.


고로, 청나라가 우리조상들에게 한 나쁜짓은 중국이 한 나쁜짓이 아니므로 중국을 싫어해야할 이유가 안된다


이거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정설이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네같은 또라이도 가끔 있는법이다.



그리고 여기서 서로의 주장이 뭔지도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는 웃기SP라는 침팬지 한마리 ㅋㅋㅋ
                    
웃기SP 13-03-09 23:34
   
성룡523=  이자식 짱개임..꺼져  니네 나라로~
                         
성룡523 13-03-09 23:37
   
내가 짱꺠 까고 쟤네 둘이 짱깨 옹호하는거 알고 말하는거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이딴 완벽한 난독증은.... 답이없다
                         
굿잡스 13-03-09 23:42
   
청나라는 중국역사 아님??>

쥐랄함 ㅋㅋ 짱개식 이야기 쳐해놓곤 짱개 꺼지란다 ㅋㅋ.

뭔 청사가 짱국사임?? ㅋㅋ 정복왕조 이민족사지 ㅋㅋ

아니면 울 처럼 35년간 일제 강점기처럼 만주족 강점기라고 쳐하던지 ㅋㅋ


하긴 한족 역사가 캐관광으로 정복 따구리 다스려지면 수백년가니

노예생활에 젖어 감이 안오나 보네 ㅋㅋ
                         
굿잡스 13-03-09 23:49
   
<정복왕조>
[ dynasty of conquest , 征服王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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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정복왕조
1. 특색
미국의 사회경제사학자 비트포겔이 붙인 중국의 이민족 왕조를 일컫는 역사적 명칭이다. 중국 대륙의 일부 또는 전부를 정복한 요(遼)·금(金)·원(元)·청(淸) 등의 왕조를 가리키며 이들은 중국 사회에 동화·흡수된 전대의 침투왕조와는 달리, 치열한 민족의식을 보였으며 수·당 이후에 나타났다.동아시아에서는 예로부터 북방의 삼림·초원지대에 사는 수렵·유목민 사회와 남방의 평원·계곡지대에 사는 농경·도성민(都城民) 사회와의 사이에 커다란 정치적·문화적 대립이 있어, 항쟁·침략·정복·지배 등 다양한 역사적 과정이 전개되었다.

그 최초의 예가 흉노족(匈奴族)이 세운 유목제국과 진(秦)·한(漢)나라와의 대립·항쟁인데 흉노가 패하여 그 제국은 멸망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정치력이 약해지는 삼국시대 말기부터 흉노를 비롯한 5호(五胡)의 많은 유목민족이 다시 중국 침입을 시작하여 화북(華北) 땅에 여러 정권을 수립하였다. 이들은 선비족(鮮卑族)에서 나온 북위(北魏)왕조에 흡수·통일되어 유목민의 화북정권으로서의 북조(北朝)가 성립되었으며, 강남에 근거를 둔 한족 정권인 남조와 대립하였다. 얼마 후 이 남북 왕조는 수(隋)나라로 통일되고, 중국의 문화사회를 중핵으로 한 고대 동아시아 제국으로서의 당(唐)나라가 성립되었다.

이와 같은 유목민 국가와 중국과의 관계를 비트포겔은 전자가 고도의 정치문화를 지닌 후자의 사회에 침투하며 흡수되어간 것으로 간주하여 수·당 이전의 유목정권을 '침투왕조'라고 불렀다. 그런데 당제국이 멸망한 뒤 북방에 나타난 몽골계 거란족(契丹族:遼)은 연운(燕雲) 16주라는 중국 영토의 일부를 탈취하고 새로 등장한 송(宋)나라를 압박하였다. 거란족과 교체하여 등장한 퉁구스계의 여진족 국가인 금(金)나라는 더욱 깊숙이 중국 땅으로 들어가서 황허강[黃河] 이남까지 빼앗고 강남으로 피해간 남송정권과 대립·항쟁하였다.

이어 나타난 몽골족은 금나라와 남송을 병탄(倂呑)하여 중국 전토를 지배하였으며 유라시아의 원(元)나라와 4한국을 포함한 유목민 대제국을 수립하였다. 원나라가 멸망한 뒤에는 명(明)나라가 일어나서 북방으로 쫓겨간 유목정권을 억압하였으나, 16세기 중엽 금나라의 후신인 후금국(後金國)이 일어나서 중국 전토를 정복하고 청(淸)나라 정권을 이룩하였다. 이들 북방의 여러 왕조는 수·당 이전의 나라들과는 확실히 달라서 중국 사회가 지닌 정치력이나 문화의 매력에 압도되지 않고 오히려 이들을 정복·지배하였으므로 비트포겔은 이들을 '정복왕조'라고 하였다.

참조항목금, 카를 비트포겔, 원, 청, 요 역참조항목복합국가, 여진족

http://terms.naver.com/entry.nhn?cid=200000000&docId=1140463&mobile&categoryId=200001113
                         
성룡523 13-03-09 23:49
   
그러니까 이새끼들 논리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짱꺠가 한국한테 한짓들은, 한족이 한짓이 아니다


중국은 오직 한족만이 중국이고, 나머지 민족들은 중국이 아니다

중국은 단일민족 국가이다

청나라는 중국역사가 아니다.


고로, 청나라가 우리조상들에게 한 나쁜짓은 중국이 한 나쁜짓이 아니므로 중국을 싫어해야할 이유가 안된다


이거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정설이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네같은 또라이도 가끔 있는법이다.
                         
서라벌 13-03-09 23:52
   
이 새끼는 끝까지 말귀를 못 알아듣네. 내가 중국을 싫어하면 안된다고 그런적 없다고 주구장창 말을해도.. 답이 없구나. 모자란 인간 계몽시키기가 이렇게 힘들구나.
                         
굿잡스 13-03-09 23:55
   
잡룡이니 쉰룡인지 캐무식한 헛소리 계속쳐하길 바람. ㅋㅋㅋ

무식한.

역사 운운하면 최소한 역사에 대한 지식이나 개념정립 부터 하고.

현재 중공 즉 반청복명 어쩌고 처하면서 일어난 현재 짱국과 이전정복 왕조는

당연히 당시 성격이나 세계관 자체도 한족과는 철저히 다르고 분리해서

봐야할 왕조사이고

그거랑 현재 짱국 즉 6.25때 짱국이 인해전술 쳐해서 오늘날 남북한 분단쳐한

거랑 분리해서 이야기 해라 말이다 무식한..

에고 초딩도 참... 짱개 진짜 박멸쳐하고 싶으면 제대로 역사나 알고

쳐하길 바람 짱개 동북공정질에 일조쳐하면서 캐무식에 짱개 어쩌고 헛소리

말것.
                         
굿잡스 13-03-09 23:59
   
썽룡인디 닭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사에 대한 개념이 없나 본데

쉽게 말해서

한족 짱개 역사는 그냥 저 열도 왜국사와 성향이 같다 보면 됨.

애초에 열도의 문명 자체가 우리 손에서 빚어져 가야가 왜가야 만들고

이후 백제가 아스카 도시문명건설해서 열도 지배하듯 하면서 이후

우리나라할때 나라 헤이안 시대 열었듯


애초에 서토에서 실제로 인정되는 최초 상나라 역사 자체가 이미 한족사가

아니라(이대 한족들은 미개한 문명 수준)

 동북방에서 내려온 선진 청동국가체형 민족이 한족 쳐바르고 군림

하면서 500여년을 다스리면서 도시문명부터 정치 성곽 예악 제례등 모든

것을 가르치고 꽃피운 역사에서 시작된 것임. 이후 수많은 이민족 정복

사로 점철되었고. 이런것 구분하고 현대 반청복명으로 일어나 중공 역사에

한해서 6.25때 이야기 하고 싶으면 해서 모다구리 쳐하던지 .

알겠음??? 더 설명해줘???
                         
성룡523 13-03-10 00:01
   
청나라가 중국역사가 아니냐고 그래서??????????????

대답을 못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청나라가 어느나라 역사도 아니라고 할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청나라가 어느나라 역사인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굿잡스 13-03-10 00:04
   
????? 돌대가리인가 한글 모르는 초딩인가??

위에 몇번이나 올려 났구만 ㅋㅋ

이민족 정복왕조사  안보임?? 아니면 만주족 강점기로 쳐해야 그나마 바른 표현.


한글 모르면 초딩 다시 들어가기 바람. 아니지 요즘은 유치원가기 전에 다 떼지? ㅋ
                         
성룡523 13-03-10 00:06
   
너는 "나라이름 맞추기" 해서

"이민족 정복왕조" 라는 나라가 있어요!!!!!!

혼자 우겨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기SP 13-03-10 00:10
   
성룡523= 이늠은 한국인 자체가  아녀요..스파이임  저런것들  하고 말 섞지마셈..
                         
웃기SP 13-03-10 00:21
   
성룡 523= 이늠 중국이 한짓이;  몇천년  일본이 한짓이 100년  이늠  쪽국 스파이넹..일본 2ch한말하고 똑같넹 쪽 바리  세퀴였넹 ..
TOP707 13-03-09 23:08
   
중국은  일본이  갖고있지  않은  의리는  있는것  같다. 내가  알았던  일본남자와  중국남자들을  전체로  볼수  없지만  중국인이  인간적인면이  더  있긴 하드라구~
굿잡스 13-03-09 23:11
   
<송나라 짱개들을 비웃는 고려인>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41611&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A%B3%A0%EB%A0%A4+%EB%B6%80%EB%A7%88%EA%B5%AD&sop=and


고대나 현대나 제대로 안씻는다고 짱개들 비웃던 건 똑같은...ㅋ


그리고 우리나라 5천년 역사에 울 나라가 한족들은 쳐바르고 살아지 그나마 털린것도

고구려 휘하 부용세력으로 있던 실위(몽골)과 후대에 고구려 문명권 계통의

만주족에 의한 북방 민족이였음.

그나마 몽골 실위도 천년사직 고구려 기간에는 끼소리도 못하고 고구려 부용의 거란 8대부

족에게도 발렸던게 실위였고.. 후대 만주족의 전신 여진 말갈은 그야말로 우리의 전형적 부용

세력이나 우리 민족 계통인 부여계의 예맥 말갈이였고. 고려시대 조선 건국 이성계의

휘하 무력세력이였고 조선시대에는 벼슬까지 하면서 조선 영향권 아래에 있던 세력이고.
강쉐이 13-03-09 23:22
   
개인적으로 난 쨉애들보다 짱깨 애들을 더 싫어한다;;

쨉애들이야..나라에서 우경화 바보 맹글어서 다른건 안보려는 특성이 있지만..한편으론 자신들보다 강한건 어쨋든 인정하는 편이다..

근데 이늠의 짱깨들은 대체가 답이 없다..

그냥 무식하다..수준자체가 무식해서 말 자체가 안통한다..

나름 자본주의적.민주주의적 요소를 다소 수용하곤 있다쳐도..나라 전체가 후진국이라서..시민의식이라던지.사람간의 가장 기본적인 예의라던지 하는 것에서부터 전혀 의식이 없다..

쨉애들이랑은 니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먼가 토론의 형식이라도 가져볼수 있지만..짱개애들은 그냥 답이없다.

난 지구상에서 짱개애들이 제일 싫다...같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종족이 맞나..신기할 뿐이다
하이하이루 13-03-09 23:24
   
잘보고가요~
굿잡스 13-03-09 23:28
   
<조선의 창업을 도운 만주족. 명을 정복하게 도운 팔기군 조선영>

만주족 제국의 흥망 조선시대 
2004/05/16 00:13


http://blog.naver.com/les130/80002455994
 

['淸史'의 저자] 任桂淳 교수가 말하는 만주족 帝國의 흥망 


무식한 30万명이 유식한 1억5000万명을 지배한 시스템의 비밀

 

●『전쟁의 勝敗를 결정짓는 것은 인구수나 경제력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다』
●淸太祖 누르하치는 조선태조 李成桂의 부하였던 몽거테무르의 6代孫.
●中原을 제압한 滿州八旗에는 병력 3000의 朝鮮營이 소속돼 있었다.
●한때 세계 GNP의 30%를 생산했던 大帝國은 왜 쇠퇴했나?
●「팍스 시니카」 시기를 거치면서도 산업혁명을 이룩하지 못하고 곧장 쇠퇴기로 접어든 까닭은 파우스트 정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鄭 淳 台 月刊朝鮮 편집위원(社外)
 
30만명이 1억5000만명을 지배한 체제

 滿洲八旗(만주팔기)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한양대학교 사학과 任桂淳 교수(56)는 저서 「淸史-만주족이 통치한 중국」을 발간하자마자 중국을 다녀왔다. 그런 任교수를 서울 남대문에 있는 사단법인 동아시아 경제연구원의 원장실로 찾아가 8월27일과 28일의 이틀간 14시간에 걸쳐 인터뷰했다.
 ―중국에 개최된 학회에 다녀오셨다면서요.
『8월22일부터 25일까지 北京에서 제9차 國際淸史硏討會가 열렸습니다. 세계의 청사 연구 학자 80여 명이 모인 연구토론회인데, 저는 이 회의엔 매번 꼭 참석합니다』
―이번에 발표하신 논문은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1899년 荊州(형주)에 주둔하고 있던 八旗兵(팔기병)이 知縣(지현) 등 한인 관료를 구타한 사건에 관한 연구 분석이었습니다. 논문 발표 이외에 발언의 기회를 한번 더 주어서 이번에 발간한 「淸史」의 내용도 소개할 수 있었습니다』
―팔기병이 제 아무리 淸朝의 핵심 무력이었다지만, 兵士인 주제에 군수나 현감에 해당하는 지방장관을 그렇게 욕보일 수 있었던 것입니까.
『八旗는 백련교도의 반란 등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능력을 드러내 18세기 중반 이 후 그 권위가 추락되어 버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漢人관료들은 주눅이 들어 꼼짝 못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청조는 30만명의 만주족이 1억5000만명의 漢人을 지배한 정복 국가로 출발했습니다』
―무식한 소수가 유식한 다수를 지배한 셈이군요. 八旗를 전공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미국 일리노이 대학의 로이드 이스트만 교수 밑에서 중국사를 공부할 때 중국인 친구들이 「너희 나라는 우리나라에 조공을 하지 않았느냐. 조공국이 바로 속국」이라면서 은근히 부아를 돋우었습니다. 그래서 「너희 漢族(한족)은 한족왕조들보다 북방 소수민족이 세운 정복왕조들에 의해 더 오랜 기간 지배를 받지 않았느냐」고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만주족이 세운 청조는 대 표적인 정복왕조로서 北京으로 천도한 164 4년 이후 268년 동안 중원에 군림했는데, 그것을 무력으로 뒷받침한 것이 八旗였습니다』
―팔기라면 만주팔기뿐만 아니라 몽고팔기 , 漢人팔기도 조직되어 있었으니까 현대적 용어로는 多國籍軍(다국적군)이군요.
『淸朝의 창업기에 조직된 몽고팔기와 漢人 팔기는 병력 부족으로 고민했던 만주팔기의 날개 역할을 했습니다. 북방 유목민족이 흥기할 때의 페턴을 보면 먼저 주변 유목민족과 연합하는 과정을 거친 다음 中原 정복에 나섰습니다』

현대 중국의 모양을 결정한 淸朝
 
―淸朝가 중국 25왕조 가운데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淸朝는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168 0~1780) 팍스 시니카(Pax Sinica)를 이룩했습니다. 이러한 평화와 번영은 1670년대에 1억50000만이었던 인구를 1850년대에는 4 억3000만으로 증가시켰습니다. 또한 내몽골, 외몽골, 신장(투르키스탄), 서장(티베트 )을 정벌하고 효율적으로 통치하여 역대 어느 왕조보다 광활한 영토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多민족국가를 오늘날의 중국에 유산으로 물려주었습니다. 국토와 민족 구성 등의 면에서 현대 중국의 모양을 결정한 왕조가 바로 淸朝입니다』
―淸朝가 소수민족이 건립한 왕조임에도 불구하고 다수 漢人을 장기간 통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明朝의 정치제도와 사회질서를 계승하면 서 만주족 고유의 전통과 제도를 보완하는 뛰어난 컴플러마이즈(절충)의 능력입니다. 청조는 정치, 사회세력간에 견제와 균형 (check and balance)을 이룬 중앙집권적 전제국가를 수립하여 유연성 있게 체제를 운영했습니다』
―만주족은 우리 삼국시대 때 고구려에 복 속된 민족으로서 말갈이라고 불렸습니다. 통일신라 시기에 말갈은 고구려 유민들과 함께 발해를 세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발해를 민족사에 포함시키고 있는 만큼 말갈족의 후신인 만주족이 세운 淸을 우리 민족사에서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앞으로 연구되어야 할 대목입니다.
『수렵민이었던 만주족은 오랜 옛날부터 백 두산과 흑룡강 사이에 생활터전을 잡고 살아왔는데, 先秦(선진) 때는 肅愼(숙신), 兩漢(양한) 때는 邑婁(읍루), 魏晉南北朝(위진 남북조) 때는 勿吉(물길), 수-당 때는 말갈, 宋代 이후에는 女眞(여진)이라고 했고, 17세기에는 스스로를 滿洲族이라고 불렀습니다. 퉁구스족 계열로서 우리 민족과 인종적 친연성도 깊습니다』
―일본의 사료에 따르면 발해의 지도층은 고구려 유민이었지만, 다수 민족은 말갈족입니다. 따라서 발해를 우리 민족사에 포함시키면서 淸을 민족사에서 배제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 아닙니까. 淸은 우리 민족사에서 外史로라도 다루어야 한다는 국내 일부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중국 학계의 일부에서는 발해는 물론 고구려까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번 淸史연토회에서 제가 「청조는 정복국가」라고 말하자 어느 중국인 학자는 「중국의 소수민족이 세운 청조를 어떻게 정복국가라고 규정할 수 있느냐」고 반론을 폅디다. 희안한 억지 논법이지만, 어떻든 中原을 침략해 들어온 온갖 민족을 모두 다 중국인이라고 포용한 결과가 오늘의 중국을 56개 민족의 多민족국가로 만들 수 있었던 까닭입니다』 ―여진족은 조선왕조의 창업 당시 李成桂( 이성계) 휘하에서 상당한 역할을 담당했지요. 이성계 자신은 全州李氏(전주이씨)라고 하지만, 그의 4대조가 동북면으로 이주 한 이후 오랜 세월이 흘렀던 만큼 그 家系에도 여진족의 피가 섞여 있었다고 해야 자연스럽지 않겠습니까.
『고려 말기 한반도의 동북지역, 즉 함경도에는 여진인과 고려인들이 혼거했으므로 그럴 개연성이 높습니다. 특히 이성계의 私兵 집단에는 여진족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예컨대 지금의 함경북도 북청지역은 여진족 추장 퉁두란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그가 함경남도 함흥 지역의 토호인 이성계에게 굴복하고 의동생이 되어 李之蘭 (이지란)이란 이름을 받았지요. 나중에 그는 조선왕조 개국공신이 되어 建州衛(건주위)를 정벌하기도 했습니다. 이성계의 휘하에는 이밖에도 斡朶里族(오도리족)의 만호 猛哥帖木兒(몽거테무르), 火兒阿(할아) 의 만호 阿哈出(아하추) 등이 종군하고 있었습니다. 일개 지방군벌에 불과한 이성계가 중앙정계에서 강력한 실력자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여진족이라는 배후세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淸太祖 누르하치의 家系

―누르하치의 선조는 누구입니까.
『建州左衛(건주좌위)의 開祖(개조) 몽거테무르가 바로 누르하치의 직계조상입니다. 아하추는 建州本衛(건주본위)의 개조가 되었지요. 태조 이성계는 조선왕조 창업 후 여진족의 대소 추장들에게 만호, 천호의 직첩을 새로 주었습니다. 이리하여 창업 초기의 조선왕조는 두만강 하류 孔州(공주 )에서 상류 甲山에 이르기까지 통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태조는 여진족에 대한 동화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습니다』
―그러던 여진족이 조선왕조와 등을 돌리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왕자의 난을 거쳐 태조 이성계의 제5자 方遠(방원: 태종)이 등극하자 안변부사 趙思義(조사의)가 태조의 계비 康(강)씨와 그 소생인 태자 方碩(방석)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목으로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 반란에 여진족이 가담함으로써 조선조와 여진족은 적대관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태종은 오늘날의 회령에 자리잡고 있었던 몽거테무르를 회유하여 만호의 지위를 보장하고 입조를 시켰습니다. 그러다 태종 5년( 1405) 몽거테무르가 明朝에 입조하자 조선조는 이에 대한 보복조처로 慶源(경원)에 설치되어 있던 무역소를 폐쇄했습니다. 태종 10년(1450)에 몽거테무르는 오도리 부족을 이끌고 압록강 북쪽 鳳州(봉주)로 이주했으며 건주좌위를 개설했습니다. 그후 그는 세종의 허가를 얻어 6500명의 오도리 부족을 이끌고 다시 회령으로 돌아왔는데, 세종 15년(1433)에 楊木答兀(양목답월)과 嫌眞兀狄哈(우디케)의 습격을 받아 피살되고 그를 따르던 오도리족은 건주본위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후 건주본위도 조선과 明의 협공을 받아 풍비박산이 되지요.
『세조 13년(1467)에 건주본위의 제3대 지도자 李滿住(이만주)가 康順(강순)과 南怡 (남이) 장군의 조선군와 싸우다가 패사했습니다. 李滿住가 바로 아하추의 손자입니다』
―그러면 건주본위로 도망쳤던 몽거테무르의 잔당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몽거테무르의 死後에 明朝는 그의 동생 凡察(범찰)을 건주위의 지휘사로, 그의 차남 董山(동산)을 건주좌위의 지휘사로 삼았습니다. 董山의 5대손이 바로 누르하치입니다』
―누르하치의 흥기 과정은 어떠합니까.
『누르하치는 청년시절 明의 요동총병 李成梁(이성량)의 공격으로 조부와 부친을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후일을 기약하며 이성량에게 온갖 충성을 다 바쳤습니다. 그는 25세가 되던 1583년 5월에 琿河(혼하 ) 상류 허투알라(興京: 요녕성 신빈)를 거점으로 삼고 起兵(기병)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비교적 멀리 있는 부족과는 선물과 결혼을 통해 화친을 맺고, 가까운 부족은 무력으로 정복하는 遠交近攻(원교근공)의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또한 明朝에는 친히 여러 차례 조공을 하는 등 종속적인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明 조정이 그의 세 력확장을 경계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특히 明의 요동총병 이성량에게는 뇌물을 많이 먹였다고 합니다. 1588년에 明 조정은 누르하치에게 건주좌위 도독첨사의 지위를 내렸습니다』
―이성량은 평안도 위원(渭原) 사람으로 살인죄를 범하고 압록강을 넘어 요동으로 도망쳐 군에 입대, 공을 쌓아 明의 장군이 되었던 인물입니다. 그는 만주 전역의 군사권을 쥐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교역과 상권에 개입하여 막대한 재물을 축적했습니다. 지금도 요녕성 錦州(금주) 인근의 廣寧城(광녕성)에 가보면 이성량의 공적을 기리는 牌樓(패루)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또한 그는 신흥세력인 누르하치와도 그 이익을 나누어 먹었는데, 그러는 동안 누르하치의 세력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진 겁니다. 결국 1591년 11월, 이성량은 누르하치의 팽창을 막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요동총병직에서 해임당했습니다. 다만 寧遠伯(영원백)이라는 작위는 그대로 유지하고 나이가 많아 퇴임한다는 형식이 취해졌습니다.

임진왜란 틈타 建州여진을 통합
 
『明 조정에서 이제는 누르하치의 세력을 꺾어버려야 하겠다고 작심했을 때 공교롭게도 임진왜란이 발발한 것입니다.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하여 明이 조선에 원군을 파견하자 누르하치도 출병을 자청했습니다. 당시 4만여 명의 明軍을 이끌고 조선으로 들어온 제독 李如松(이여송)이 바로 이성량의 아들입니다. 누르하치의 요청은 朝-明 양국 모두에 의해 거절당했지만, 그 무렵엔 그가 그만큼 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누르하치는 明 조정의 견제가 소홀해진 임진왜란 기간 중에 그 권력을 굳히기 위한 정복전쟁을 감행하여 海西(해서)여진과 조선의 6진에까지 세력을 확장했지요. 그러면서도 그는 계속 明 조정에 조공사를 파견하여 공물을 바쳤고, 1595년에는 明 조정에서 여진 수령에게 부여하는 최고의 명예직인 龍虎將軍(용호장군)의 지위를 받았습니다』
―그 무렵, 조선 조정에서는 누르하치에게 사신을 파견하여 여진족의 허실을 탐색하게 했던 일이 있었지요.
『1595년 선조 임금의 命을 받은 申忠一(신 충일)이란 무관이 누르하치가 거주하던 허투알라성을 방문하고 귀국하여 「建州紀程圖記」(건주기정도기)라는 보고서를 썼지요. 이 보고서에는 여진의 산천, 군사, 풍속과 관련한 97개 조의 기사와 정밀한 지도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첩보활동을 했던 신충일이 귀국해서는 곧 파직을 당하고 말았지요. 건주에 가서 누르하치가 준 호복을 입고 그에게 다섯 번 절하고 세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를 행함으로써 조선국왕의 사신으로서 국위를 손상시켰다고 탄핵되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조선왕조에서는 그때까지도 여진을 한 단계 아래의 나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야 어떻든 세력을 확장한 누르하치는 1599년 몽고문자를 차용한 만주문자를 제정함으로써 만주 고유의 문화를 유지하고 민족의식을 함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합니다. 이어 1601년에는 일사불란한 전투집단 八旗를 확보하였고, 1610년에는 寧古塔(영고탑: 길림성 지역)을 점령함으로써 건주위 관할을 넘어 장거리 원정까지 수행할 수 있는 군사력과 노동력을 갖추게 됩니다. 그러니까 1583년 起兵 당시 10만에 불과했던 만주족은 이 시점에 이르러 40만~50만의 인력을 확보하게 되는 것입니다. 드디어 1616년 정월 초하루 누르하치는 汗(한)에 올라 국호를 金(금), 연호를 天命이라고 일컫습니다. 누르하치의 金은 12세기에 阿骨打(아골타)가 세워 중국의 화북지방을 차지한 金과 구별하기 위해 역사에서 後金(후금)이라고 서술하고 있지요』
―누르하치와 新羅金氏(신라김씨)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누르하치의 姓이 愛新覺羅(애신각라)인데, 만주어에서 애신은 「金」, 각라는 「族」을 뜻하지요.
『황해도에 살던 新羅 金氏가 여진 지역으로 넘어가 아골타의 조상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기는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1912년 청나라가 멸망한 후 만주황족의 다수가 자신들의 성을 金씨로 삼았던 일입니다. 저는 金씨 성을 가진 중국사람을 만나면 으레 「만주족이냐」는 질문을 하는데, 「그렇다 」고 말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디다』

光海임금의 이중외교

―1618년 누르하치는 開戰문서인 이른바 七大恨(7대한)을 발표하고 요동의 군사거점 撫順(무순)에 선제공격을 가한 다음 약탈을 감행합니다. 요동군의 대패에 놀란 明朝는 10여만명의 원정군을 보냈으나 다음해인 1619년 3월, 무순 부근의 사르후에서 궤멸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조선은 1만5000명의 군사를 파견하여 명군을 돕습니다만, 전세가 불리하자 재빨리 후금군에게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조선군을 지휘한 姜弘立(강홍립)이 출병 전에 광해군을 독대하여 「대세를 관망하여 대처하라」는 밀명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르후 싸움은 후금과 명조에게 있어서는 요동 통치권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전투였습니다. 이 결전에서 압승한 누르하치는 이후 開原(개원)과 鐵嶺(철령)을 점령하여 명군의 방위선을 돌파하는 한편 여진의 葉赫(예허)부족을 정복하여 요하 동부 전역을 수중에 넣게 되었습니다』
―사르후 전투의 명군 최고지휘관인 요동경략 楊鎬(양호)와 요양총병 劉綎(유정) 등은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쟁쟁한 장수들입니다. 하지만 유정은 전사했고, 양호는 패전의 책임을 지고 처형되었습니다. 어떻든 임진왜란 때 明의 도움을 받은 조선으로선 明 조정의 원병 요청을 거절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불같이 일어나는 후금과 등을 돌릴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강홍립의 항복은 국가이익 추구를 위한 광해군의 2중 외교였던 것입니다. 항복 후 강홍립은 곧 누르하치를 만났는데, 조선의 입장을 설명하여 양해를 얻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누르하치는 항복한 조선군을 모두 조선으로 귀환시켰습니다. 다만 강홍립 등 지휘부만 억류시켰는데, 이는 조선이 明 조정의 의심을 받지 않게 하려는 누르하치의 배려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조선의 2중 외교는 1623년 仁祖反正(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퇴위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사르후 전투 후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明 조정은 명장 熊廷弼(웅정필)을 요동 전선에 파견하여 패잔부대를 재편하고 방어를 강화, 누르하치의 공세에 일단 성공적으로 대처합니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웅정필은 환관으로서 세력가인 魏忠賢(위충현)의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처형당함으로써 요동의 최후 방어선이 무너지고 맙니다. 누르하치는 파죽지세로 심양과 요양을 점령하고 1625년에는 심양으로 천도하여 盛京 (성경)이라고 개칭했습니다』
―누르하치가 요동에서 明 세력을 축출할 수 있었던 것은 滿洲八旗(만주팔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任교수께서는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서 만주팔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으셨고, 1993년에는 중국의 세계적 출판사인 三聯書店(삼련서점)에서 「淸朝八旗駐防興衰史」(청조팔기주방흥쇠사)라는 연구서를 중국어로 출판한 이래 만주팔기에 관한 한 세계적 권위자가 되셨습니다. 만주팔기를 쉽게 설명해 주십시오.
『팔기제도는 1601년 누르하치가 창설한 만주족의 독자적인 행정제도인 동시에 국민개병제적인 군사제도로서 중국 정복과 통치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누르하치는 처음에 자기 휘하의 부족을 4개의 니루로 재편했습니다. 300명으로 구성되는 니루는 여진 사회에서 전투나 수렵을 할 때 조직되는 전통적인 기본단위였지요. 니루의 총령은 니루어전이라고 불렀습니다. 전시가 되면 니루의 구성원들은 스스로 식량, 갑옷, 투구, 병기, 군마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5개의 니루는 하나의 잘란으로 조직되어 잘란어전이 지휘하고, 5개의 잘란은 다시 하나의 구사로 조직되어 1명의 구사어전이 통솔했습니다. 구사는 8가지 깃발 색깔에 따라 정황기, 정백기 등의 8旗로 조직되었습니다. 구사어전은 7500명을 지휘했으므로 八旗는 이론상 6만의 장정으로 조직되었던 것입니다』
―만주팔기에는 조선인 출신들도 참여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주팔기에는 병력 3000의 朝鮮營(조선영)이 소속되어 있었는데, 「滿洲八旗氏族通譜」(만주팔기씨족통보)에 의하면 팔기에 편입된 조선의 성씨가 72姓에 달했습니다』
―누르하치는 후금을 세운 후 정복사업을 계속 추진하던 과정에서 귀순한 漢人과 몽골인의 숫자가 급속히 증가함에 따라 군사력의 규모가 더욱 확대되지 않았습니까. 팔기는 초창기에 어떤 지도체제로 운영되었습니까.
『누르하치는 1615년 아들과 조카들 가운데 4명을 호소이버얼러(和碩貝勒)로 삼아 1旗씩 지휘하게 한 뒤 각기 휘하 旗의 군사와 민사를 맡겼고, 얼마 뒤에 4명의 버얼러를 추가로 지명하여 군정을 논의하는 의정회의에 참석토록 했습니다』
―누르하치가 거느린 만주팔기는 승승장구하여 요하를 건너 遼西(요서) 지방을 공격합니다. 외가닥 통로인 遼西走廊(요서주랑 )을 달려 山海關(산해관)만 돌파하면 바로 명나라의 수도 北京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산해관은 北京의 최후 보루로서 난공불락의 요새였을 뿐만 아니라 그 100km 전방에는 名將(명장) 袁崇煥(원숭환)이 지키는 寧遠城(영원성: 요녕성 금현)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영원성 공성전에서 누르하치는 서양식 대포인 홍이포의 파편을 맞아 중상을 입고 말가죽에 싸여 후송되던 중 1626년 9월30일 만 67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홍타이지의 조선 침략

―누르하치의 아들 15명 가운데 하필이면 제8자인 홍타이지(皇太極: 태종)가 후계자가 되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누르하치는 8명의 버일러(패륵: 王) 중 누구도 독재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8王이 다함께 국정을 논의하여 처리하라는 유지를 남겼습니다. 누르하치가 사망하자 여러 버일러들이 홍타이지를 汗으로 추천했는데, 즉위 초 홍타이지는 大버일러에게 소속된 旗에 대한 지휘권이 없었기 때문에 한동안 명목상의 汗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누르하치 못지않은 영웅의 풍모를 갖춘 지도자로서 요동 지배를 굳히는 동시에 국가조직을 군정과 민정으로 분리하여 버일러들의 권한을 축소 제한함으로써 전제군주 관료국가체제를 확립해 갑니다. 홍타이지는 버일러로부터 旗의 행정권을 박탈하는 과정에서 중국식 행정기구를 설치하고 明朝의 유능한 관리들을 대거 흡수했습니다. 이 무렵 그 수가 부단히 증가한 漢人 투항자들은 노복이 아닌 자유민으로 편입되었는데, 이는 중국본토로 영토를 확장해 나가고 자 하는 그의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홍타이지는 우리 민족에게 최대의 수모를 준 인물입니다. 그는 즉위 다음해인 162 7년 丁卯胡亂(정묘호란)을 도발합니다. 도발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홍타이지는 조선으로 출정하는 阿敏(아민 : 누르하치의 조카) 등 장수들에게 東征(동정) 목적의 하나는 조선을 항복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조선령 假島(가도)에 조선의 지원을 받으면서 군영을 개설한 明의 장수 毛文龍(모문룡)을 토벌하는 것임을 상기시켰지요. 아민은 만주팔기 가운데 양남기를 중심으로 편성된 3만병을 이끌고 의주를 공략했고, 동시에 일부 병력은 모문룡의 근거지인 鐵山(철산)을 공격하여 그를 가도에 고립시켰습니다. 조선에서는 광해군이 1623년의 쿠데타에 의해 쫓겨나고 인조가 집권하고 있었는데, 인조 조정은 親明排金(친명배금) 정책을 명확히 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淸史」에는 『아민이 평양을 함락시키자 강화도로 피신했던 조선의 국왕은 사신을 보내 화친을 제의했고, 이에 아민은 부장을 파견하여 정묘강화조약에 조인했다. 조약의 내용은 明朝와 국교를 단절하고 후금과 동맹을 체결하며, 조선왕의 동생 原昌君을 후금에 인질로 보내고, 매 년 공물과 재물을 바친 것이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사료를 근거로 한 것입니까.
『淸史稿(청사고) 太宗本紀(태종본기)의 기록에 따른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과 練藜室記述(연려실기술)에 의하면 화친 조건의 골자는 다음 두 가지입니다. 즉, 조선은 후금과 형제지국이 되고, 금나라와 화친하는 동시에 명나라와도 우호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明과 패권을 다투는 상황에서 후금 軍이 조선 깊숙이 침략하기 어려웠다는 점으로 미루어보면 저는 우리쪽 사료가 史實에 부합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민은 압록강을 도강하고부터 줄곧 인조 조정에 화의를 먼저 제의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정묘호란을 일으켰겠습니까. 당시 후금은 경제사정도 비교적 양호하여 약탈 등의 경제전을 감행해야 할 필요성도 별로 없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청사고의 기록을 조금 더 취신합니다』
―조선이 중립 정도만 지켜주어도 좋다는 것이 후금의 희망사항이 아니었겠습니까, 고려의 경우 송나라-금나라 양국과 동시에 조공책봉 관계를 갖기도 했습니다.
『조선과 후금 양측 모두가 화의 내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기록했던 측면도 있을 수 있겠지요. 이런 부분은 앞으로 관계사 연구를 통해 해명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조선의 위협을 제거한 후금은 한동안 수비가 철저한 산해관을 공격하지 않고 遵和(준화)와 通州(통주) 등 화북 북방지역을 수차 약탈하다가 서쪽 내몽골 방면으로 진격했다. 내몽골 차하르部의 추장 林丹汗(임단한 )이 명조에 의존하여 후금의 서쪽 진출을 저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629년 후금은 차하르部를 공격하여 1만여 명의 포로를 획득했다. 홍타이지는 동서로 양 날개를 이루고 있던 조선과 몽골을 정벌함으로써 북방으로부터 명조를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

朝鮮 정복은 가능해도 통치는 불가능

―1633년, 싸우지는 않고 私利(사리)만 도모하던 모문룡이 원숭환에게 주살당한 후 그 부장인 孔有德(공유덕)과 炅仲明(경중명 )이 명군 1만4000명을 이끌고 후금에 투항하여 도원수와 총병관으로 중용되었습니다. 이때 조선측에서 공유덕과 경중명의 투항을 방해했다고 홍타이지에게 트집을 잡히고, 이것이 또 1636년 丙子胡亂(병자호란)의 도발 이유 중 하나가 됩니다.
『연전연승을 한 홍타이지는 1635년 자기 민족의 칭호였던 여진을 폐지하고 대신 만주를 사용할 것임을 선포했습니다. 이어 1636년 5월15일, 그는 나라 이름을 大淸으로 바꾸고 황제 즉위식을 거행했습니다』
―황제 즉위식에는 각국의 朝賀(조하)사절단이 참석하여 예물을 바치고 배례를 올렸으나 조선 사신 羅德憲(나덕헌)과 李廓(이곽)은 藩臣(번신)으로서의 배례를 한사코 거부했습니다. 조선 사신이 홍타이지에게 배례를 올린다는 것은 明과의 조공책봉 관계를 폐기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홍타이지의 측근들은 조선 사신들의 목을 벨 것을 주장했지만, 홍타이지는 「원망을 사는 구실이 되는 것을 짐은 바라지 않는다」면서 조선 사신을 석방하여 귀국시킬 것을 명했습니다. 그 대신 귀국하는 사신 편에 조선국왕을 책망하고 아울러 조선왕 자를 인질로 보내라는 내용의 국서를 부쳤습니다. 나덕헌과 이곽은 이런 국서를 가지고 가면 문책을 받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귀국길에 통원보의 여관에 묵으면서 국서를 슬쩍 내버리고 내용만 베껴 쓴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조선 조정에서는 청나라의 요구에 대해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갑론을박을 거듭한 끝에 묵살하기로 하고 회답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해 12월 홍타이지는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조선 親征(친정)에 나섰습니다. 조선 조정에서 좀 융통성을 보였다면 병자호란은 예방할 수도 있었던 전쟁이었습니다』

 <청군의 선봉장인 馬夫大(마부대)는 기병 6000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자마자 속도전을 감행했다. 마부대 軍은 산성 중심으로 방어진을 친 조선군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의주-안주-평양-황주-평산-개성을 잇는 당시의 제1대로를 질풍같이 달려 불과 1주일만에 한성을 바로 찔러왔다. 仁祖는 강화도로 몽진하려 했으나 마부대 軍에 의해 길이 끊겨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농성을 했다. 남한산성은 청군의 주력부대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근왕병들은 청군에 의해 모두 격퇴되었고, 고립무원의 농성군은 식량 부족과 추위 때문에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었다.
 남한산성에 들어간 신하들은 척화파와 주화파로 나누어져서 치열하게 대립했다. 항전을 계속할 경우 내부 반란이 벌어질 상황에 빠졌다. 결국 주화파 崔鳴吉(최명길)의 제의에 따라 인조는 1637년 1월30일 남한산성을 출성하여 삼전도(송파나루)에서 홍타이지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항복의 예를 올리고 말았다>

―(仁祖조정의 남한산성 농성시기의 행적을 기록한) 南漢日記(남한일기)를 보면 仁祖로부터 항복을 받은 직후 홍타이지는 受降壇(수항단) 아래로 내려가 바지를 내리고 오줌을 찍 갈깁니다. 그것은 禮(예)나 숭상하는 조선조에 대해 모욕을 주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그런데도 조선을 직할 식민지로 삼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홍타이지도 조선은 정복할 수는 있어도 통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선의 大義名分論(대의명분론)과 자존심이 그만큼 치열했던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한반도가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 中國에 편입되지 않고 독자성을 지킬 수 있었던 배경입니다』
―조선을 굴복시킨 홍타이지는 본격적으로 明朝를 공략하게 되지요.
『1638년 홍타이지의 동생 도르곤이 北京 북방 密雲城(밀운성)을 돌파, 계속 남하하여 山東까지 진격했습니다. 이 침공 작전에서 청군은 50城을 공략하고 8城을 항복시켰으며 46만명의 포로를 획득하는 대전과를 올렸습니다. 청군이 만리장성 이남 화북지역에서 연전연승을 하면서도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명나라에 산해관이라는 철옹성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설사 산해관 이남의 땅을 점령하더라도 산해관의 명군에게 퇴로를 차단당할 우려가 있었던 것입니다』

 <청군이 산해관을 함락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산해관의 外城에 해당하는 錦州(금주), 松山(송산), 杏山(행산), 塔山(탑산)의 4 개 城을 먼저 제압해야 했다. 1640년 淸의 대군은 금주성을 포위했다. 明의 구원군이 금주성으로 달려오다 청군에 의해 진로가 막히자 송산성에 집결했다. 明 조정은 송산성을 사수하기 위해 洪承疇 (홍승주)를 총독으로 임명하고 오삼계 등 8인의 총병을 비롯한 13만명의 병력을 지휘하도록 했다. 홍타이지는 명군이 송산성에 집결했다는 보고를 받자 심양에서 급히 송산성으로 달려왔다. 송산성은 청, 명 두 나라의 명운이 걸린 일대 격전장이 되고 말았다. 홍승주는 우선 굳게 지키며 청군이 피로하기를 기다리는 작전을 세웠다. 하지만 北京 조정의 병부상서 陳新甲(진신갑)은 지구전에 따른 군사비의 가중을 염려하여 속전속결을 재촉했다. 결국 홍승주는 본의 아니게 청군에 대한 정면전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다. 송산성 전투는 명군의 대패로 끝나고 말았다. 송산성뿐만 아니고 산해관의 외성 모두가 청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이 전투에서 명군 5만3000여 명이 섬멸되고 홍승주는 포로가 되었다.
 그럼에도 北京 진입의 관문인 산해관만은 건재했다. 홍타이지도 산해관을 정면 공격으로 돌파할 수 없었다. 이런 교착상태에서 홍타이지는 1643년 9월 盛京에서 급사했다. 왕족회의에서는 여섯 살 난 아홉째 황자 福臨(복림)을 황제로 추대했고, 누르하치의 열네 번째 아들 도르곤을 섭정왕으로 삼았다.
 명나라는 농민반란군에 의해 무너졌다. 1643년 3월 李自成(이자성)은 서안을 점령하고 大順이란 이름의 나라를 세워 스스로 王이라 칭했다. 이어 1644년 4월25일에 그가 北京을 함락시키자 明의 마지막 황제인 崇禎帝(숭정제)가 황궁 뒤 경산에서 목을 매 xx함으로써 明朝는 294년만에 멸망했다>

모택동의 李自成 평가

―재미있는 것은 모택동이 중국의 전통적 영웅들인 한무제, 당태종, 송태조 등을 평가절하한 반면 이자성을 크게 평가했다는 점입니다. 산해관 서쪽 角山(각산)의 만리 장성에 올라가 보니까 이자성의 石像(석상 )까지 세워 놓았습디다. 이자성의 평균주의가 마오이즘과 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공산 중국의 역사가들은 「이자성의 반란이 성공했다면 1789년 프랑스혁명과 마찬가지로 새로 출현한 부르주아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권력을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거나 「오삼계 등 봉건세력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만주 오랑캐와 손잡고 이자성 밑에 모인 진보적 세력을 제거함으로써 자본주의 맹아의 성장이 반세기 이상 지연되었다」는 등의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任교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자성의 군대는 北京을 점령하면서 약탈 , 살인, 강간 등으로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이자성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는 비전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그의 무리는 流賊(유적)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1644년 봄, 明의 대군 중 망국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던 장수는 산해관 총병 오삼계 뿐이었다. 오삼계는 李自成의 北京입성을 저지하기 위해 대군을 거느리고 北京으로 올라가던 중 숭정제가 xx하고 北京이 이미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일단 산해관으로 철수했다. 이런 오삼계에게 北京에 있던 그의 아버지로부터 한장의 편지가 당도했다.
「나는 闖王(틈왕:이자성)에게 항복했다. 너도 항복하는 것이 좋겠다」 이자성은 오삼계와 손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오삼계는 이자성의 부장이 그의 애첩 陳圓圓(진원원)을 납치했다는 소식을 듣고 淸의 섭정왕 도르곤에게 사자를 파견하여 항복의사를 전달했다. 당시 도르곤은 14만명의 병력을 이끌고 산해관으로 진군하던 중이었다. 이자성 또한 오삼계가 항 복할 의사가 없음을 간파하고 산해관으로 진격해 왔다. 오삼계는 내부의 적부터 토벌한다는 구실로 도르곤에게 항복하고 청군을 산해관 안으로 끌어들였다. 도르곤은 오삼계의 정병 4만을 포함한 18만 명의 대군을 휘몰아 이자성 軍을 격파하고 北京으로 진군했다. 이자성 軍이 6월4일 北京을 포기하고 섬서 방면으로 도주하자 6월6일 청군은 北京에 입성했다>

漢人으로써 漢人 제압

―北京에 입성한 淸 지도부는 통치의 명분을 세우기 위해 漢人들을 어떻게 회유했습니까.
『淸 지도부는 「明과 천하를 놓고 싸운 것이 아니라 流賊 이자성과 싸웠다」는 점을 강조했지요. 특히 도르곤은 天命을 잃어 멸망한 명조 대신 청조가 천명을 받아 내란으로 고통받는 백성을 구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명조를 타도한 적을 토벌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명조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의 죽음을 애도하게 하여 민심을 수습했던 것입니다』
―北京 등 화북의 漢人들의 다수가 청군의 점령정책에 반대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백성들을 구휼하고 원수를 갚아주고 질서를 확립해 주는데 왜 반대하겠습니까. 명조의 관리들이 거의 대부분 청조에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청조로선 漢人 관료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이에 따라 관리의 임용에 있어서 (1개 직책에 만주족 1인과 한인 1인씩을 복수로 보직하는) 滿漢倂用制(만한병용제)라는 절묘한 회유책을 시행했던 것입니다』

 <1644년 10월1일, 北京에 입성한 홍타이지의 후계자 福臨(복림)은 천지사직에 제사를 지내고 태조, 태종의 유지를 받들어 황제의 자리에 올랐음을 천하에 선포했다. 국호는 종전대로 大淸으로 하고, 수도를 燕京 (연경:북경), 연호를 順治(순치)로 정함으로써 명조에 이은 새로운 왕조가 中原 무대에 등장했다.
 北京 천도 이후 淸 조정은 이자성 軍에 대한 추격전을 감행했다. 이자성은 섬서 지방 등지를 전전하다 다음해인 1645년 호북성과 강서성의 경계 지점에서 촌민의 습격을 받고 피살되었다. 이자성과 함께 위세를 떨치던 사천 지방 농민군의 지도자 張獻忠(장헌충)도 청군의 공격을 받고 1646년 12월 전사했다.
 화북지방과는 달리 강남 지역의 한인들은 청조에 적대적이었다. 청조에 저항한 것은 농민군 뿐만이 아니었다. 北京에서 쫓겨난 명조의 유신들은 명조의 후예들을 옹립하여 남경, 운남, 복건 등지에 南明(남명)정 권들을 세워 청조에 저항했다>
―청조는 항복한 한인부대를 앞세워 남명정권을 정벌하지 않았습니까.
『1644년 당시 팔기병의 총수는 16만9000명에 불과했고, 이 가운데 만주팔기병의 수는 전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나머지는 몽고팔기와 한인팔기였습니다. 게다가 북방 출신인 만주팔기와 몽고팔기는 습도가 높은 남방의 아열대성 기후에 익숙하지 않아 자주 질병에 시달렸고, 말을 타고 활을 쏘는데 능한 기마병이었지만, 산과 물이 많은 중국 남방 전선에 적응할 수 없었지요. 이에 비해 항복한 명군들은 소총과 홍이포 등을 사용하여 요새와 성을 공격하는데 능했기 때문에 그들로 綠營兵(녹영병)을 조직하여 토벌전의 선봉에 세웠습니다. 즉, 한인들로 편성된 군대를 오삼계, 경중명, 공유덕, 尙可喜(상가희) 등 한인 장수에게 맡겨 남중국을 정벌하게 하고, 만주족 장군들은 그들의 보좌관으로 임명하여 감시하도록 했습니다』
―한인으로써 한인을 제압했군요. 청조가 남명정권을 토벌하던 무렵이 바로 北伐(북벌)을 국책으로 정했던 조선 효종의 재위시기(1649~1659)였습니다. 만주팔기가 농민군과 남명정권을 토벌하기 위해 남하한 시점에서 북벌을 감행했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없었겠습니까. 만약 조선이 남명정권과 동맹을 맺었다면 남북에서 협공하는 형세를 이룰 수도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청조의 중추 군사력인 팔기가 농민군이나 남명정권과 직접 전투를 했던 것은 아닙니다. 반란군과의 전투는 한인 장군들의 부대(綠營兵)가 수행했습니다. 팔기는 북경 -서안, 북경-진강 계선의 주요 도시에 집중 배치되어 돌발사태에 대비한 기동력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사람과 물자가 집중되던 요소요소에 駐防(주방)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심양과 寧古塔(영고탑)에는 奉天將軍(봉천장군)과 영고탑장군이 지휘하는 팔기를 배치했던 만큼 설사 효종조의 조선군이 북벌을 감행했다고 하더라도 성공할 수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효종조의 북벌 계획은 국내정치용이었지 현실성은 전혀 없었던 탁상공론이었습니다』
―청조가 중원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던 대표적 한인 장수는 오삼계, 경중명, 상가희 등 3인이었습니다. 1662년 康熙(강희) 원년에 이르면 이들 3인이 행정, 군사, 치안을 담당하는 지역이 三藩 (삼번)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남명정권들의 멸망 후 삼번의 왕들은 「사냥철이 지난 사냥개」의 신세가 되고 맙니다. 배신자 들의 말로라고 할까요.
『삼번의 왕들은 그 세력이 매우 강대해져 명목상으로는 淸에 예속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藩內(번내)의 모든 인사와 재정을 독단적으로 처리했습니다. 그들은 팔기병 수의 절반에 해당하는 10만의 병력을 보유했지요. 삼번을 한꺼번에 진압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강희제는 우선 平西王 오삼계를 겨냥하여 대장군의 印章(인장)을 회수하는 등 세력을 삭감시킵니다. 청조의 속셈을 간파한 오삼계는 1673년 興明討胡(흥명토호)라는 反淸의 기치를 내걸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강희제는 삼번왕에 대해 교묘한 이간책을 구사하여 연합전선의 형성을 견제하면서 1683년까지 하나하나 토벌해 버립니다』

무식한 소수로 유식한 다수를 통치

―오삼계가 흥명토호의 기치를 높이 들었는데도 한인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삼계는 운남지역 남명정권의 永曆帝(영력제)를 체포하여 죽인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復明(복명)을 주장할 대의명분이 없었지요. 더욱이 삼번왕들은 자신의 통치구 내에서 터무니없이 무거운 세금으로 백성들을 괴롭혔기 때문에 청군이 진압에 들어가자 백성들은 오히려 淸의 진압군에 가담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삼번의 난 때문에 적지않은 한인들이 청조에 충성을 바치게 되어 청조의 통치가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청조의 對 한인 정책은 협조하면 유화책을 구사하지만, 반항하면 철저하게 도살하는 유혈강경책이었지요, 예컨대 화남과 화북을 잇는 군사적 경제적 거점이었던 揚州城(양주성)을 함락시켰을 때 청군은 끝까지 저항한 한인 80만명을 학살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팔기는 반문명적이고 야만적인 군대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만주족은 중국인구의 0.03%에 불과했습니다. 소수가 다수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본때를 보인 것입니다』
―무식하고 가난한 소수의 만주족이 유식하고 부유한 다수의 한인을 정복하고 중원의 새로운 패자로 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명 정권의 부패와 통치력의 약화 때문이었습니다. 기근과 농민폭동 등으로 명조 스스로가 국가로서 존속할 요건을 상실한 것입니다.
 둘째, 만주족이 초원이나 깊숙한 산림지대가 아니라 중국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은 전략지역인 요동과 인접한 지역에 거주함으로써 그들 고유의 전통과 특성을 유지하면서 중국식 생활양식과 정치제도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누르하치가 그의 부족을 일사불란하게 통치하기 위해 全 부족민을 팔기로 조직한 강력한 군대를 보유했기 때문입니다. 넷째, 팔기와 중앙행정기구를 조직하는 데 있어 중국의 관료제도와 사상을 받아 들였고, 한인 관료와 지식인을 적극 수용하여 협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팔기군은 강남지역을 정벌할 때 반청세력에 대하여는 잔인하게 학살하기는 했지만, 北京에 진입했을 때는 이자성 軍과는 달리 약탈, 살인, 강간을 삼가하고 민간인들을 구휼하여 한인들의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중국 화북지역의 한인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북방민족과 혼혈되었던 만큼 강남의 漢人들과는 달리 이민족에 대한 반감이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유화책과 강압책을 조화시켜

―任교수께서는 천하쟁패전에서 승자를 결정짓는 것은 인구수나 경제력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라는 사실을 강조하신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오늘의 한반도 상황에서 他山之石(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역사적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청조는 중국을 정복하고 통합하는 과정에서 강압정책을 시행하기도 했지만, 한 문화의 대부분을 받아들이는 유화정책을 채택하고 만주족의 특성과 지도력을 보존하는 독특한 통치정책을 구사함으로써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가 통치한 1680년부터 1780년까지의 100년간에 사상 유례없는 평화 와 번영을 누리는 팍스 시니카(Pax Sinica )를 실현했습니다. 팍스 시니카의 실행 프로그램은 무엇이었습니까.
『청조는 절대다수이며 문화수준이 높은 漢族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유화책과 강압책을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실시하여 사회통합을 이루었습니다. 원래 만주족은 武를 숭상하고 힘센 젊은이를 우대하는 수렵사회의 가치관과 天은 大國이나 大君을 돕는다는 天命觀을 가졌습니다. 반면 한족은 孝를 존중하고 노인을 공경하는 유교 가치관과 天은 중국문화를 수호하고 聖人을 돕는다는 天命觀을 가졌습니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淸의 지도자들은 정치적 지도이념으로 유교를 채택하고, 백성들에게 유교사상을 주입했습니다. 그리고 明의 관 료와 지식인들을 적극 등용했으며, 과거제를 실시하고, 방대한 편찬사업을 추진했습니다. 또한 전쟁과 재해에 의해 파괴된 농촌경제를 신속히 회복시키는데 정책의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청조가 한족을 회유하기 위한 유화책으로 일관한 것은 아닙니다. 청조는 全國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귀순한 한인에게는 관대했으나 저항하는 명군과 유민은 철저히 도살해 버렸고, 그들의 복종을 확인하고자 변발과 만주복 착용을 강요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정복자인 팔기 관병을 위하여 3차에 걸쳐 한인의 토지를 강점하고 많은 한인을 노예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속박하여 조금이라도 反淸의 기미가 보일 경우 즉시 처 벌했습니다』

과거 실시로 체제 불만 제거

―청조가 과거제도를 유별나게 중시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과거제를 통해 능력과 장래성이 있는 漢人을 관료로 발탁하겠다는 목적도 있었지만, 이를 통해 사대부와 지방의 紳士(신사) 계급을 통제하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과거 합격자가 관직에 바로 등용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生員, 監生, 貢生, 擧人 등의 학위소지자로서 사회적 특권을 누릴 수 있었고, 상급 시험인 進士試에 응시할 자격을 부여했습니다. 청조는 이들이 관계에 진출하기 위해 지옥과 같은 多단계의 과거준비에 얽매이게 유도함으로써 체제에 불만을 가질 겨를이 없도록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청대의 과거합격자 110만명 중 관료가 되었던 사람은 2만7000명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만주족에 대해선 그 강건한 기풍을 진작시키기 위해 과거에 응시하는 것을 가능한 한 억제했고, 최우수 득점자 3명을 선발하는 최종시험인 殿試(전시)의 경우, 장원, 방원, 탐화에는 한인만을 뽑았습니다』
―청조가 만주에다 버드나무 울타리를 치고 다른 민족의 출입을 금지하는 封禁(봉금)정책을 강행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만주족의 土風(토풍)을 지키려는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청조는 발상지(본거지)에 사는 만주족이 한족식 집을 짓거나 한족교사를 초빙해 글을 배우는 것조차 엄격하게 금지했습니다. 中原에 들어간 만주족들은 元을 세운 몽골족처럼 한족에게 몰리면 언제라도 말을 타고 바람처럼 달려 고토로 되돌아간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중의 얘기입니다만 청조는 대만이나 산동반도 같은 곳은 쉽게 할양했지만, 조선에 대한 종주권은 결코 포기하려 하지 않아 청일전쟁까지 치렀습니다. 그 이유는 조선이 그들의 본거지와 인접해 있기 때문이었지요』
―청조는 명조가 왜 망했나를 철저히 분석하여 개혁정책을 추진해 나갔다고 합디다.
『명나라의 멸망 원인은 관료의 부패와 환관의 발호였습니다. 명조의 황궁에는 10만 명의 환관과 궁녀들이 있었고, 이들이 정치에 개입하여 국정이 문란해졌습니다. 청조는 환관과 궁녀의 수를 400~500명으로 대폭 줄여 부패를 방지하고 황실의 비용도 크게 절감했습니다』
―그렇게 청신한 기풍의 진작을 강조했던 청조가 한족 여성의 纏足(전족)을 금지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족은 後唐(후당) 시절 이후 차츰 번져 온 한족 여성의 폐습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북방 기마민족이 만리장성 이남 지역으로 쳐들어와서 한족 여성들을 납치해 가는 짓 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전족을 했던 것입니 다. 젖먹이 때 전족을 하여 발의 성장을 억제시켜 놓은 여성은 성인이 되어서도 뒤뚱거려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전족을 한 여성은 북방민족의 약탈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런데 명-청 시대에 이르러서는 전족한 여성이 남성들의 성적 취향을 만족시킨다는 이유로 유한계층에서 크게 유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만 만주족 여성들의 전족만은 엄금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청조는 한족의 약화를 은근 히 조장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經世致用學派의 몰락 원인

―청조 초기에는 黃宗羲(황종희), 顧炎武( 고염무) 王夫之(왕부지) 등 經世致用學派( 경제치용학파)가 일어나 사상의 발전을 주도했습니다. 특히 황종희가 지은 明夷待訪錄(명의대방록)에서는 천하를 사유재산으로 인식하는 家天下的인 관념의 전제군주제를 비판했을 뿐만 아니라 重農抑商(중농억상 ) 정책에 반대하면서 상공업은 민생의 근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고염무는 명조의 멸망 원인을 新儒學(신유학) 때문이라고 보고 관념적인 宋性理學과 형이상학적인 陽明學을 비판했습니다. 또한 科擧(과거) 위주의 경직된 경전의 해석이 결국 중국인의 사고를 고정적인 틀에 묶어버려 정치적 현실을 직시할 능력과 이민족의 침략을 막을 능력을 갖지 못하게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세치용학파가 건륭제 이후 갑자기 몰락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청초의 경세치용학파는 어지러운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잘못된 현실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明淸교체기에는 그와 같은 비판이나 저항이 가능했지만, 이후 사상통제가 강화되고 文字獄(문자옥)을 통한 탄압이 계속되자 학자들 사이에는 자신의 안전만을 위해 전전긍긍하는 풍조가 번져갑니다. 그리고 경세의 학문을 한다고 해도 관계에 진출하지 못하면 당장 현실에 적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섣불리 當代史나 國事를 논하다가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여 주로 고대의 史籍과 고전의 내용을 조사하고 해석하는 考證學(고증학)만 발달합니다. 그러나 고증학의 전성은 사상의 빈곤을 불러옵니다. 왜냐하면 고증학이 본질적으로 정치와 현실에서 도피하다 보니 학문을 위한 고증이 아니라 고증을 위한 학문으로 本末이 전도되는 경향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문자옥은 진시황의 焚書坑儒(분서갱유) 이상의 사상탄압이었죠.
『청조는 변경이나 군사문제를 연구한 책, 夷狄(이적)을 비난하는 내용을 담은 책, 명조를 칭송한 모든 논평서 등 모두 2320종의 서적을 禁書(금서)로 정하고, 이런 금서를 보관하거나 편찬한 수천 명의 사대부와 관료들을 가혹하게 처벌했습니다. 王錫侯 (왕석후)라는 학자는 康熙字典(강희자전)을 비판하고 避諱(피휘)해야 할 청조 황제의 廟號(묘호)를 무엄하게 수록한 字典을 만 들었다고 해서 처형되었으며, 그 가족 21명은 노비가 되었고, 편찬을 후원한 江西巡撫(강서순무) 역시 처형되었습니다』
―무시무시한 공포정치였군요.
『그래도 明 태조 朱元璋(주원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명 태조는 朱氏 천하의 안전을 위협할 만한 세력을 그의 생전에 제거해야 한다는 속셈 때문에 터무니없는 트집을 잡아 개국공신과 그 일족, 장령, 관료 등 수십만 명을 주살했습니다』

帝王學의 달인, 康熙帝와 擁正帝

―청조의 황제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군주 는 누구였습니까.
『팍스시니카 시기의 康熙帝(강희제), 擁正帝(옹정제), 乾隆帝(건륭제)가 발군이었지요. 강희제의 재위기간은 60년간이지만 여덟 살에 등극했으므로 실제 그의 통치기간은 50년간입니다. 결단의 군주였던 그는 삼번의 난과 南明 정권을 평정하고 백성들의 조세부담을 경감시켜 청조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무인 기질의 그는 帝王學에 뛰어나 청조의 틀을 짰을 뿐만 아니라 朱子學과 數學, 자연과학 등에 정통한 好學人(호학인)으로서 중국 최대의 자전인 康熙字典(강희자전) 등의 편찬사업을 주도했습니다. 옹정제는 재위기간이 12년간으로 비교적 짧았지만, 親王들의 영향력이 잔존해 있던 팔기를 황제의 군대로 완전 장악했고, 巡撫( 순무) 이상의 지방장관이 중앙행정기관을 거치지 않고 황제에게 각종 정보를 직보하는 奏摺制度(주접제도)를 정착시켰으며, 太子密建法(태자밀건법)을 제도화하여 후계다툼을 원천봉쇄했습니다(태자밀건법은 후계자를 공표하지 않은 채 그 이름을 써서 상자에 넣고 밀봉하여 황제 집무실 내의 「正大光明」이라 쓴 현판 뒤에 두었다가 황제의 붕어 후 대신들의 입회하에 개봉하여 후계자를 공표하는 제도). 또한 변방 소수민 족에게까지 충효사상을 강조하는 유교사상을 전파하고 鄕約(향약)을 시행케 함으로써 체제를 강화시켰습니다.
 옹정제의 용이주도한 개혁이 없었다면 건륭제의 治世 60년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옹정제가 등소평이라면 건륭제는 江澤民(강택 민)인 셈입니다. 건륭제의 문화사업 중 가장 빛나는 업적은 四庫全書(사고전서)의 편찬이었습니다. 사고전서는 經, 史, 子, 集 4부로 분류되어 있는데, 여기에 채록된 서적의 수가 무려 3500종, 8만 권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건륭제 치세의 화려함 속에는 퇴영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 징후가 만주팔기 출신으로 건륭제의 총애를 받은 군기대신 和王申(화신)의 엄청난 부정부패사건으로 나타났지요. 건 륭제의 붕어 직후에 사사된 화신의 재산은 당시 청나라의 20년분 세수와 맞먹을 정도였습니다』
―명말 관료정치의 부패가 재현된 것이군요. 창업기의 청신한 기풍이 사라지고 사치풍조가 만연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건륭제가 번영에 도취되어 집권 마지막 20년 동안에 개혁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건륭제의 집권 후기는 세제를 비롯한 경제개혁, 官紀(관기) 숙정 작업이 필요한 시기였습니다. 그런데도 군주로서 총명이 흐려진 건륭제는 개혁의 시기를 놓친 것입니다. 건국 초기에 훌륭하게 작동했던 滿漢倂用制(만한병용제) 같은 것도 이 무렵엔 만주족과 한족의 화합을 이루는 절묘한 메커니즘이 아니라 양측 모두 책임을 지지 않는 제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비현실적인 법과 제도를 고치지 않으면 어떤 체제든 망하게 되어 있지요. 최근의 우리도 금융법과 노동법을 고치지 않아 IMF 위기를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산업혁명을 이루지 못한 까닭
 
―중국은 인쇄술(종이), 화약, 나침반(자석 )을 발명한 전통적인 기술 선진국이었습니다. 프란시스 베이콘은 위의 3대 발명품에 대해 저술방식, 전쟁방식, 항해방식을 바꾸었다고 지적하고 어떤 황제나 종파나 천재도 그것들만큼 인간에게 더 큰 힘과 영향을 미친 것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더욱 이 팍스시니카 시기의 청조에서는 도시가 번성하고 상업이 발전했는데도 불구하고 왜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하버드 대학의 석학 존 킹 페어뱅크 교수는 청조의 이런 현상을 「발전이 없는 성장」이라는 말로 집약시킨 바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상업자본이 중심이 되어 산업 혁명을 일으켰는데, 중국에서는 상인이나 수공업자를 천시했습니다. 관리가 되면 자손 몇 대까지 잘살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상공업을 하겠습니까. 官 본위사회에서 과학자를 어디 우대합니까. 발명권 같은 것은 그냥 빼앗아버렸습니다. 이런 사회구조와 가치관 때문에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로의 발전에 실패했습니다. 또한 淸朝는 너무 오랫동안 무사태평의 시대를 누렸습니다. 그 시기에 유럽 제국들은 서로 피 터지게 전쟁을 했습니다. 산업혁명도 군사문화가 발달해야 일어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은사인 로이드 이스트만 교수는 중국의 산업혁명을 가로막은 네 가지 이유를 제시했는데 매우 인상적입디다. 요약하면 대충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찬미했을 뿐 자연을 정복하려는 욕망이 없었다. 서구 문명을 일으킨 파우스트 정신이 부족했다.
 둘째, 상업을 천시하는 사회구조 때문에 유능한 인재가 文에 집중되었다. 상인도 돈을 모으면 文人의 지위를 얻으려 했다.
 셋째, 사업에 대한 투자가 정부의 수탈 때문에 불안정했다. 公行이라고 불리는 길드 조직은 정부관료로부터 기부와 선물을 요구받았다.
 넷째, 비교적 안정된 시장의 수요로 해서 자본집약적인 생산방법의 개발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이스트만 교수는 청조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동시대의 조선왕조는 그보다 더욱 심하지 않았습니까. 유교 유일사상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창조성과 독창성은 나오기 어려운 것입니다.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유교문화권 국가의 경제 성공에 감명을 받은 서구 학자들 중에는 유교를 강력한 개발 이데올로기로 보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허만 칸 같은 이는 산업화, 근대화를 추진할 때 유교 윤리가 서구의 프로테스탄티즘보다 낫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유교가 근대적 발전에 대립하는 요소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문제는 다양성을 거부하는 유일사상 체계를 강요하는 데 있었던 것이지요』
―조선조는 왜 팍스 시니카 시대의 淸朝의 문물을 배우지 않고 외면했을까요.
『조선조는 淸朝와 조공책봉 관계에 있었지만, 내면적으론 淸을 괄시했지요. 그런 모습은 中國을 다녀온 正祖代의 실학자 박지원이 지은 「熱河日記」(열하일기)에 재미있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淸朝의 급작스런 몰락은 조선조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십니까.
『동아시아의 질서가 급격히 붕괴되고 말았지요. 그런데 만약 19세기 이후의 제국주의 시대에도 청조가 국체를 보전할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면 열강에 노출된 조선왕조의 「티베트化」를 시도했을지도 모릅니다. 청조는 그들의 본거지이자 인접한 조선에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력을 유지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 인터뷰에서는 청조의 쇠퇴 과정, 서구 열강의 침략, 태평천국 등의 반란, 自强을 위한 개혁, 청조의 멸망 등에 관한 부문까지 문답이 이뤄졌으나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 그러나 그 대체적 줄거리와 任교수의 견해는 별항 기사 「청사의 주요 내용과 평가 」에서 일부 소개되어 있다>●
     
비가오는밤 13-03-09 23:42
   
"이거 다 읽는 사람 아무도 없다," 에...

내 전재산과 오른쪽 새끼 발가락을 건다.
          
천리마 13-03-11 12:06
   
님 발가락 잘릴가봐 다는 않읽었슴.
     
천리마 13-03-11 12:42
   
이자성이 노략질을 했다는 내용은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이자성이 노략질을 했다고 했는데 이자성이 노략한 것은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고자 관료,지주를 대상으로 한것이지 일반 백성에게는 세금도 걷지 않는다는 약속을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굿잡스 13-03-09 23:39
   
<만주족의 서토 지배 방식>

1.<유강 정책>

 

청조의 對 한인 정책은 협조하면 유화책을 구사하지만, 반항하면 철저하게 도살하는 유혈강경책이었지요, 예컨대 화남과 화북을 잇는 군사적 경제적 거점이었던 揚州城(양주성)을 함락시켰을 때 청군은 끝까지 저항한 한인 80만명을 학살했습니다.
『만주족은 중국인구의 0.03%에 불과했습니다. 소수가 다수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본떄를 보였다.>

 

2.< 과거 제도는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고도의 전술>

 

과거 실시로 체제 불만 제거

―청조가 과거제도를 유별나게 중시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과거제를 통해 능력과 장래성이 있는 漢人을 관료로 발탁하겠다는 목적도 있었지만, 이를 통해 사대부와 지방의 紳士(신사) 계급을 통제하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과거 합격자가 관직에 바로 등용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生員, 監生, 貢生, 擧人 등의 학위소지자로서 사회적 특권을 누릴 수 있었고, 상급 시험인 進士試에 응시할 자격을 부여했습니다. 청조는 이들이 관계에 진출하기 위해 지옥과 같은 多단계의 과거준비에 얽매이게 유도함으로써 체제에 불만을 가질 겨를이 없도록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청대의 과거합격자 110만명 중 관료가 되었던 사람은 2만7000명에 불과했습니다』

 

3.< 만주족 고유의 풍습과 연고지를 지킴>

『만주족의 土風(토풍)을 지키려는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청조는 발상지(본거지)에 사는 만주족이 한족식 집을 짓거나 한족교사를 초빙해 글을 배우는 것조차 엄격하게 금지했습니다. 中原에 들어간 만주족들은 元을 세운 몽골족처럼 한족에게 몰리면 언제라도 말을 타고 바람처럼 달려 고토로 되돌아간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중의 얘기입니다만 청조는 대만이나 산동반도 같은 곳은 쉽게 할양했지만, 조선에 대한 종주권은 결코 포기하려 하지 않아 청일전쟁까지 치렀습니다. 그 이유는 조선이 그들의 본거지와 인접해 있기 때문이었지요』

 

4.< 전족등 악습을 폐지않고 생활속에서 그들의 힘을 약화시킴>

 

청신한 기풍의 진작을 강조했던 청조가 한족 여성의 纏足(전족)을 금지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족은 後唐(후당) 시절 이후 차츰 번져 온 한족 여성의 폐습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북방 기마민족이 만리장성 이남 지역으로 쳐들어와서 한족 여성들을 납치해 가는 짓 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전족을 했던 것입니 다. 젖먹이 때 전족을 하여 발의 성장을 억제시켜 놓은 여성은 성인이 되어서도 뒤뚱거려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전족을 한 여성은 북방민족의 약탈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런데 명-청 시대에 이르러서는 전족한 여성이 남성들의 성적 취향을 만족시킨다는 이유로 유한계층에서 크게 유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만 만주족 여성들의 전족만은 엄금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청조는 한족의 약화를 은근 히 조장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5.< 언론 장악>

청조는 변경이나 군사문제를 연구한 책, 夷狄(이적)을 비난하는 내용을 담은 책, 명조를 칭송한 모든 논평서 등 모두 2320종의 서적을 禁書(금서)로 정하고, 이런 금서를 보관하거나 편찬한 수천 명의 사대부와 관료들을 가혹하게 처벌했습니다. 王錫侯 (왕석후)라는 학자는 康熙字典(강희자전)을 비판하고 避諱(피휘)해야 할 청조 황제의 廟號(묘호)를 무엄하게 수록한 字典을 만 들었다고 해서 처형되었으며, 그 가족 21명은 노비가 되었고, 편찬을 후원한 江西巡撫(강서순무) 역시 처형되었습니다』


6. 변발이라는 혁명적 풍속을 받아 들이게 함으로서 청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확인시키도록

하였고 이에 반항할 경우에는 가차 없는 처단이 이루어졌다.

- 조선의 경우는 도리어 청에 대한 치욕이니 말을 하지만 실상 두번씩이나 조선의 청에 대한

반항 이후의 처벌은 대륙에서의 경우에 비하면 도리어 온건하다 할만큼 대륙에 대한 저항 세력의 청의  진압은 너무도 무자비하고 강건했다. 그리고 문화적 부분에서도 청은 조선을 인정한 반면대륙의 경우에는 가차없는 만주족 방식을 고수 하도록 철저한 정책을 폈다.

 

7,< 조선과 만주족의 관계>

 이성계의 私兵 집단에는 여진족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예컨대 지금의 함경북도 북청지역은 여진족 추장 퉁두란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그가 함경남도 함흥 지역의 토호인 이성계에게 굴복하고 의동생이 되어 李之蘭 (이지란)이란 이름을 받았지요. 나중에 그는 조선왕조 개국공신이 되어 建州衛(건주위)를 정벌하기도 했습니다. 이성계의 휘하에는 이밖에도 斡朶里族(오도리족)의 만호 猛哥帖木兒(몽거테무르), 火兒阿(할아) 의 만호 阿哈出(아하추) 등이 종군하고 있었습니다. 일개 지방군벌에 불과한 이성계가 중앙정계에서 강력한 실력자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여진족이라는 배후세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르하치의 선조는 누구입니까.
『建州左衛(건주좌위)의 開祖(개조) 몽거테무르가 바로 누르하치의 직계조상입니다. 아하추는 建州本衛(건주본위)의 개조가 되었지요. 태조 이성계는 조선왕조 창업 후 여진족의 대소 추장들에게 만호, 천호의 직첩을 새로 주었습니다. 이리하여 창업 초기의 조선왕조는 두만강 하류 孔州(공주 )에서 상류 甲山에 이르기까지 통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태조는 여진족에 대한 동화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습니다』

 

8.청나라가 후기 서양 열강이나 일본에 당한 이유중의 하나도 만주족의 대륙에대한 피지배인들의 저항

을 없애기 위해 비 무장과 따로의 군벌적 세력을 용납하지 않았기에 이후 중앙 정부의 힘이 약화 되면서

지역마다 각개 격파를 할수 없는 상황에서 당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 물론 이후 각지역에 군벌세력이 등

장하면서 혼란이 발생했지만.



참고로 청황제의 성씨가 울나라에는 너무도 흔하지만 서토에서는 없는 쇠금자 김씨 성임. 여전히

살아있는 직계후손들이 김씨성을 사용하고 있고.
헤스타 13-03-09 23:48
   
싸움 구경 왔습니다. 참 댓글 달 땐 좀 조심해서 써야 된다는 걸 다시 한 번 새기게 되네요.

왜 국뽕이라고 시비를 거셔서 이리 많은 사람들에게 다굴을 맞으셔요, 성룡님.

조금만 더 생각하시고 댓글 다셨으면 이런 참사가 일어나진 않았을 텐데요.
     
성룡523 13-03-10 00:03
   
새삼 짱깨 화교나 유학생들이 한국 인터넷에 많이 상주한다는걸 느낌 ㄷㄷ;;
          
서라벌 13-03-10 00:09
   
말 좀 똑바로 해라. 누굴 짱깨 취급을 하는거냐. 누가 보면 내가 짱깨 후빨한줄 알겄다.
왜곡하는 꼬라지가 동북공정 저리가라구만.
               
성룡523 13-03-10 00:17
   
내가 짱꺠 싫어하는 이유 쭉 적어놨는데

그런 이유면 우호하는 나라가 어딨냐는 둥 짱꺠 옹호하는 발언 한게 너 아님?

ㅄ 인가 위에 뭐라고 말했는지 갖고올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구려 침략전쟁해서 짱꺠들이 우리나라 사람 엄청 많이 죽였다니까--------내가 짱꺠 싫어하는 이유

수백,수천년전 전쟁 얘기하면 우리도 중국인들 죽인거 많다는둥ㅋㅋㅋㅋ짱꺠 싫어하는 이유가 안된다고 주구장창 얘기했잖아??????/

짱꺠 유학생이나 화교 취급받아도 할말없는 주장 계속 해놓고 짱꺠 옹호를 안했대 ㅋㅋㅋ
          
웃기SP 13-03-10 00:30
   
성룡523=이늠 논리가  일본 2ch논리하고 똑같은..중국이 우릴 수천년  침략 했다  일본은 고작

100년 침략 했는데  왜 중국한텐 아무말  안하냐..쪽바리 세퀴  인정  하넹..
          
capella 13-03-10 18:14
   
와,,,진짜 로긴하게만드네,,,답답하신분이네 님 엄마가 일본인인 혼혈이지?
블루하와이 13-03-09 23:51
   
속국이니 뭐니 ㅈ ㄹ 도 방숭이 넘들이 유투브에서 죄다 날조해서

영상 계속 올리고 있다는것을 기억 하시기를요 ~

짱개나 방숭이나 도진개진 그 놈이 그놈들이라는게 현실 이니까요 ~

링크 안 걸테니 일주일 이내로 한국 (韓国) 으로만 검색해도 주루룩 나오니까요 ~

방숭이 혐한 넘들 얼마나 심하게 날조및 허위사실 날조하는지

유투브만 둘러 봐도 아실겁니다 ~

진짜 골떄리는 날조 영상들 넘쳐납니다 ~

최근 방숭이 넘들이 확실히 영상 많이 올립디다 ~

그러니 두 놈들다 상종 못할 넘들이라는 겁니다 ~
서라벌 13-03-09 23:54
   
에효.. 뭣 모르는 꼬꼬마 새퀴 하나 계몽하는데 힘들어 죽겠구만. 어디서 얄팍한 잡지식은 주워들은게 있어가지고
끝까지 말귀는 못알아듣고.. 이런 놈은 상대를 마는건데..
     
성룡523 13-03-10 00:03
   
그러니까 이새끼들 논리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짱꺠가 한국한테 한짓들은, 한족이 한짓이 아니다


중국은 오직 한족만이 중국이고, 나머지 민족들은 중국이 아니다

중국은 단일민족 국가이다

청나라는 중국역사가 아니다.


고로, 청나라가 우리조상들에게 한 나쁜짓은 중국이 한 나쁜짓이 아니므로 중국을 싫어해야할 이유가 안된다


이거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정설이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랑 이상한 사람 둘이 싸우는게 지금 이거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중국 짱꺠들이 싫다고, 청나라랑 중공군625 침략 애기하니까 하는 소리가 이거 ㅋㅋㅋㅋㅋ
          
서라벌 13-03-10 00:06
   
븅신아 나 귀찮으니까 멍청한 답글 그만 싸질러라. 내가 누누이 말하는데, 난 중국 싫어하지 말라고 한 적 없다. 대체 넌 뭘보고 개소리 하는거냐? 애초에 내가 했던 말은 짱깨한테는 일본이랑 달리 직접적인 지배를 받은적은 없으니 반일감정보단 못할 수도 있다 였고, 그 말에 니가 속국이니 뭐니 말도 안돼는 꼴깝을 떨어서 그걸 가지고 논쟁을 한거지 무슨 내가 짱깨 후빨을 했냐?
애초에 글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난독증 새퀴가 무슨 논쟁을 하겠다고 설쳐대냐 설쳐대기는.
               
성룡523 13-03-10 00:11
   
귀찮으면 꺼지던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글도 제대로 못보는 난독증 화교, 짱깨주제에 한국인보고 한글 못읽는다고 우기네 ㅋㅋㅋ

짱꺠는 청나라가 엄연히 내정간섭하고, 공녀라고해서 위안부 못지않게 예쁜 여자들 모아다가 중국에 바치고, 침략당하면 군대도 보내주고, 군대 체계도 청나라식으로 바꾸고
한국 왕이 중국에 가면 무릎꿇고 인사해야되고, 일본은 서양식으로 조약맺었을 뿐이지
실질적으로 다른나라는 속국 취급했고, 실제로 청나라한테 가서 "조선 여기여기 개항해라"라고 요청하거나
"조선 여기여기 침공하지말라"라고 청나라와 영국이 조약을 맺을 정도로 속국신세였고
일본에 전혀 못지않게 지배와 간섭을 받았다는걸 주구장창 설명해도
지가 못알아먹으면서 주구장창 나한테 못알아먹는다고 반사만 계속 ㅡㅡ;;
대체 중국이 일본보다 못한게 뭔데???????

한족 역사랑 만주족 역사가 또 따로있고 만주족들이 한 나쁜짓은 중국이 아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아까 저 욱일기 단 미친놈이랑 둘이 꿍짝도 잘맞더만ㅋㅋㅋㅋㅋㅋ
                    
서라벌 13-03-10 00:16
   
너 지금 나보고 난독증이라고 하는거냐? 이래서 미친놈들은.. 지가 미친 줄 모른다더니.
청나라 내정 간섭은 근대 개화기 이후니까 들이 대려면 그 이전의 것을 갖다 대라고.
개화기 얘기해서 뭐하냐? 내정간섭을 청나라 한테서만 받았냐? 실질적으로 다른 나라가 속국취급했다는 개소리도 그만해라. 그것도 개화기에 힘 없는 조선을 가지고 동아시아 정치외교의 특수성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서양놈들이 지 멋대로 생각을 한거고.. 애초에 개화기 이전을 갖다대라니까 말귀를 못 알아들어. 그래 넌 우리가 짱깨 속국이었고, 그런 패배주의에 빠져서 살아라. 짱깨가 너 좋아할거야. 알아서 스스로 속국이었다고 만세 부르는 너같은 놈 있어서 말이다.
                         
성룡523 13-03-10 00:22
   
근대 개화기 이후에 내정간섭한건 내정간섭이 아니냐????????????????

아까부터 속국 맞다는 사람 둘 나오고 위에도 나보고 위로해주는 사람 나오고, 너랑 욱일기 단 저능아 둘이서 우기고 있는데

미친놈이 미친놈인줄 모른다는건 딱 너를 두고 말하는거야...

개화기 이후에 한일이랑 이전에 한일이랑 대체 뭐가 달라 ㅋㅋㅋㅋㅋㅋㅋㅋ 바보인가 진짜 ㅋㅋㅋㅋ
                         
서라벌 13-03-10 00:26
   
너는 개화기 이후에 개나소나 다 조선에 찝쩍거렸는데 유독 청나라 하나만 골라서 속국이라며. 당시 조선이 주변국들 중 내정간섭 당하지 않은 나라가 없는데 왜 다른나라 다 제쳐두고 청나라 속국이냐? 당시의 특수성을 생각을 해야지 븅신아. 내가 널 어떻게 이해를 시켜야겠냐. 아니 러시아, 일본 놔두고 유독 청나라한테만 속국이 되는 이유 좀 설명해 보라고.
                         
성룡523 13-03-10 00:30
   
이미 당시 경제나 군대 체계가 청나라 식이었다는거 위에 말했지 "이미 조선은 내정간섭을받고있었다" 그리고 추가로 "개화기 시절 협약을 볼때, 청나라가 조선을 대표하여 협약을 맺었다"라는거랑

예를들어서 내가 몇번이나 말했지만, 영국이 조선을 침공하고싶다.

그러면 누구랑 협약하냐??????????

청나라지.


청나라랑 협약을 맺어서 조선의 어디어디 침공하겠다 이렇게 협약을 할 수 있는거야.

러시아는???? 마찬가지지.. 청나라지.


위에 내가 영국이랑 청나라 협약 맺은거 써줬잖아???

근데 왜 다른나라랑 청나라랑 동급인데??????? 개화기때 조선이 속국이면 청나라 속국인데?? 근거 갖고왔잖아???
                    
capella 13-03-10 18:27
   
중국은 원래부터 적국또는 일부 몇몇소수민족은 피가섞인 형제국같은것이지만 일본은 자식같은나라가 부모 스승나라를 쳐들어와 갖은만행을 저지른 나라니까 싫어합니다. 그리고 둘다 우리나라한테 나쁜짓많이 했습니다. 근데 일본은 지들이 한 나쁜짓을 잘못한게 없다고 인정도 안하니까요. 그리고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사인식 방법이 다른데서 오는 혼돈을 느끼시는거 같은데 현대중국처럼 땅으로 역사를 인식하는게 아니라 그 주체인 민족별로 역사를 인식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현대짱개는 과거역사의 중국이 아닙니다. 청나라는 만족 역사입니다. 지금중국인은 구십프로가 한족. 만족은 혈연적으로 왕실이 우리나라와 더 가까운 형제국같은 관계입니다. 그시대에 한족은 만주족의 노예민족이나 다름없었죠.
          
서라벌 13-03-10 00:08
   
그리고 청나라 중국 역사가 아니라고 한 적도 없다. 다만 청나라 역사를 현재 짱깨들처럼 잘난 지들 역사, 주체적인 역사가 아니고 지배받았던 치욕적인 역사로 관점을 고쳐야 한다는거지. 만주족한테 수백 년 지배당한 한족인데 현재 짱깨들은 청나라 역사를 자랑스러워 하거든. 네놈 떠드는 꼬라지도 그짝이고. 그런식이면 잠시나마 일제에 합병당해 식민지배당한 한국이니 일본역사도 우리 역사고 우리가 주체가 되는거냐?
               
성룡523 13-03-10 00:14
   
중국역사가 아니라고 한적없다? 그래 중국역사 인정하는거지??
당연하지 여기서는 "중국"이 관점인데, 갑자기 "한족" 이왜나와ㅋㅋㅋㅋㅋㅋㅋㅋ 한족은 나올 이유가 하나도 없지 ㅋㅋㅋㅋㅋ중국은 다민족국가인데ㅋㅋㅋ
현재의 "중국"을 싫어하는 이유라면 중국의 역사, 중국이 한짓을 싫어해야지
예전 한족 나라 만주족 나라 이딴 옜날 개념이 무슨 의미가있다고 ㅋㅋ 현재 시대가 다민족국가인 중국이 아니면 모를까
                    
서라벌 13-03-10 00:21
   
그러니까 너는 짱깨 싫어하라고 존만아. 혼자 개소리 하지 말고.
너가 되도 않는 잡지식으로 속국 운운하니까 그걸로 시비가 붙은거지 누가 짱깨 싫어하지 말랬냐? 끝까지 말귀를 못 알아 듣는구만. 너 같은 놈은 말로 하면 안돼. 몽둥이가 약이지.
맞아야 이해를 하겠냐?
                         
성룡523 13-03-10 00:23
   
그래 짱꺠 종특 나왔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식하게 안되면 주먹으로 해결하기 ㅋㅋㅋㅋㅋ

짱꺠들이 지들 잘못한거 부정 못하겠으니까 몽둥이까지 들겠대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라벌 13-03-10 00:27
   
존나게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하는 말 아니냐 아가야. 내가 언제 짱깨 후빨했냐?
내가 언제 뭘 부정했지?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쑈를하는구먼.. 내가 짱깨 싫어하지 말라는걸로 논쟁중이냐? 속국이냐 아니냐로 논쟁 중이지. 아 나 더 이상 안하려니까 너 혼자 실컷 키보드질 하고 정신승리해라.
                         
성룡523 13-03-10 00:31
   
내정간섭 하면 속국이라고 해서

내정간섭한거 가져오니까

개화기떄 내정간섭한건 다른나라도 마찬가지니까 속국 아니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른나라가 내정간섭할떄 청나라 통해서 했다니까????????/

아가리 싹닫고 몽둥이 꺼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굿잡스 13-03-10 00:08
   
그러니까 이새끼들 논리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짱꺠가 한국한테 한짓들은, 한족이 한짓이 아니다 >???


야 이양반 번역기 돌려 읽나?? 말귀 진짜 못알아 듣네 ㅋㅋ

위글에서 그리 속국 운운하고 싶어 쳐하고 싶은 인간인감?? ㅋㅋ 어이없는.

당시 진짜 속국이야 말로 짱개 한족들이고.

짱개 어쩌고 쳐하고 싶으면 6.25나 이야기 쳐하든지 ㅋㅋ

애초에 한족은 울나라에 쳐바르고 살아서니 ㅋㅋ.

무식해서 ㅋㅋ

천년 사직 고구려가  한족 쳐바르는 북방 민족들 선비 거란 실위(몽골), 말갈(후대 여진 만주족)들 다 휘하 부용 세력으로 거느리고 살든 북방의 왕중의 왕이라서

그래서 태왕이라는 소리를 하는 것임.

이리 쳐말해도 말귀 못알아 들으면 그냥 짐싸들고 조용히 주무시던지 ㅋㅋ
               
성룡523 13-03-10 00:15
   
짱꺠 = 만주족, 한족 다 일컬어서 현재의 "중국" 에 해당하는 역사를 통칭하는말

한족이라는 개념자체를 꺼낼 이유가 없었는데 먼저 꺼내서 헛짓하고 ㅄ짓한 침팬지 저능아 1위 = 굿잡스 ㅋㅋㅋ


아니 한족이란 단어가 애초에 나올 이유가 하나도 없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굿잡스 13-03-10 00:17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딱보니 그냥 무식한 것보다

애써 짱개식 허구의 동북공정에 동조하고 싶어 캐소리질 하는 것이

눈에 뻔하게 흘러 가네 ㅋㅋ

에구 애썬다. 그냥 본인 나라 가서 노세용~~ ㅋㅋ
               
굿잡스 13-03-10 00:16
   
심지어 조선 중기에 일어난 후금의 전신 금나라의 여진족 조차

신라계가 말갈 부락을 통합하면서 나온게 여진족이고 이들이 다시 반요사상의

고구려계(발해)와 연합해서 나온게 금나라임. 그리고 이 금나라 한족 송나라가

수도까지 털어 군주들 만주로 압송해버리고.


이후 고려말에도 이성계가 거느린 무력 기반이 여진족이였고 이들은 조선 초중기

까지 조선내에 벼슬을 지내면서 조선 영향력 아래에 존재하든 세력이였음.

이들이 이후 서토 한족 명나라 털어버린 주역들이고.
                    
성룡523 13-03-10 00:20
   
이 침팬지 말하는거 계속 들어보니까

"논점"이라는걸 전혀 잡을줄 모르는 저능아임...


내가 중국 싫어하는 이유 ---------------청나라, 중공군625때 한짓 나쁜짓이다, 짱깨 싫다


이러니까 하는말이 주구장창 "중국은 한족이 중국이고, 청나라떄문에 한국인이 중국인 싫어해선 안된다" 이것만 반복 ㄷㄷㄷ

무슨 한족 한족 계속 반복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애초에 한족이라는 말을 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짱꺠들 한국 인터넷 사이트에 왜이리 많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굿잡스 13-03-10 00:23
   
ㅋㅋㅋ 역사 운운하면서 역사에 대한 근거하나 제대로 못올리는

무대뇌가 뭔 헛소리질 쳐함 ㅋㅋ

그냥 짱국 나라 가서 놀아~~ ㅋㅋ 뭐하려 한글 열심히 사용한다고

누가 동조해줌??? ㅋㅋ 캐무시나 당하지 ㅋㅋ
                         
성룡523 13-03-10 00:27
   
지금 너의 주장을 요약해준다

성룡이

"청나라가 한 나쁜짓, 중공군이 한 나쁜짓 떄문에 짱꺠가 싫다" 라고 하니까..

굿잡스가

"중국은 한족이 중국이고, 청나라떄문에 한국인이 중국인 싫어해선 안된다"

라는 주장을 하면서...

굿잡스 : "성룡은 역사 잘 모르는 짱꺠래요 ㅋㅋㅋ 너네 나라 가라ㅋㅋㅋ"

하는거냐?ㅋㅋㅋㅋㅋㅋㅋㅋ


뭔가 이상하지 않냐 니가봐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버모션 13-03-10 00:26
   
댓글에 욕하면서 싸우면 예전 같으면 아이디 정지 먹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나보네요 ..
그리고 속국을 안 당한 동아시아 나라가 어디 있다고 조선은 속국이다 이리 강조를 하는지
역사나 제대로 공부하고 댓글 달았으면 좋겠군요
     
서라벌 13-03-10 00:29
   
제 말이 그말입니다. 그런식으로 따지면 속국 안한 나라가 어딨다고.. 개화기 조선이 정신 못 차릴 때 내정간섭 당한거로 청나라 속국이니 뭐니.. 개소리를 쳐합니다. 멍청한 놈 가르치기 너무 힘듭니다.
          
성룡523 13-03-10 00:32
   
속국 다 맞는데?????? 동아시아에 중국에 정치에 간섭을 받는 나라가 "정치"가 대표적으로 속국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지표인데 ㅋㅋㅋ 정치적으로 독립되어있지 않으면 속국이지 말이라고 하나
               
서라벌 13-03-10 00:37
   
그러니까 무슨 정치를 내정간섭을 받았는지 좀?? 알려 줄래? 무슨 정치를 내정 간섭을 받았니.
개화기 내정간섭 같잖은 개소리 하지 말고 근대 이전 걸로 좀 대봐.
그리고 동아시아 외교관계의 특수성으로 현재 사학계에서도 규정한다. 니가 뭔데 속국 운운하냐?
굿잡스 13-03-10 00:29
   
우리나라 최초의 교과서

<신단민사>

교과서 형식으로 저술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사교과서. 1923년 처음 출간되어 만주와 해외동포, 독립군 사이에 널리 읽혀졌다. 저자는 조선 고종 때 대사성, 문헌비고찬집위원, 규장각 부제학을 역임한 김교헌 선생이다. 책이 나올 당시는 일제 강점기로 만주에서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졌던 시기다. 당시 독립군과 동포들에게 읽힐만한 역사서의 부재를 안타까워했던 저자가 규장각과 당시 전해지던 각종 사서를 섭렵하여 저술했던 역사서이다.

광복 이후 1946년 재출간되었는데 "신단민족의 역사서"로 단군과 동아시아민족사를 저술한 유일한 역사서이자 교과서로 그 가치와 의미를 평가받고 있다.


제3편 근고(近古)
제1장 려요시대
제2장 고려와 금나라 때
제3장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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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토끼 13-03-10 00:30
   
아니 성룡이 맞다고 생각하는건 저뿐인가요.. 속국 안당한 동아시아 나라가 대부분이라고 조선이 속국짓한게 사라지나요.. 이런걸 국빠라고 해야하나,, 일본애들이나 중국애들 역사왜곡만큼 우리나라도 뭔가 왜곡된게 심한듯. 우리나라가 속국짓했지만 딴나라도 다했으니까 속국이라 치지말자^^이거임? 역사는 제대로 인식하고 앞으로 나가는거지 일본 중국애들 그렇게 싫어하면서 우리역사는 미화해야하나요?
     
성룡523 13-03-10 00:32
   
당연하죠. 국뽕들이 괜히 국뽕이 아닙니다
     
마법사토끼 13-03-10 00:32
   
애초에 성룡 말하는 목적이 조선은 중국 속국이었다! 가 아닌데 그냥 짱깨로 몰고가네 사람들이,,
     
굿잡스 13-03-10 00:33
   
속국 안당한 동아시아 나라가 대부분이라고 >??? 말이어 똥임?? ㅋㅋ

아이디 분신술인감 ㅋㅋ 첫댓글로 같은 어그로 아이디로 썽룡 어쩌고 하는 ㅋㅋ
          
성룡523 13-03-10 00:34
   
지한테 불리하면 아이디 분신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욱일기 달고 하는짓이 딱 쪽바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굿잡스 13-03-10 00:36
   
ㅋㅋㅋ 역사 운운하면서 제대로된 역사 개념 조차 근거 하나 올리지 못하고

캐무식 열폭질 쳐하면서 웃긴 ㅋㅋ

그것도 가생이 첫 댓글로 어그로질 하는 인간들 보면 뻔한 패턴질하면 ㅋㅋ

식상한데 뭐 다른 것 없음??? ㅋㅋ
          
마법사토끼 13-03-10 00:35
   
저 위에 님하고 의견같으신 서라벌님이 하신말씀이세요 ㅎㅎ
     
서라벌 13-03-10 00:35
   
아 귀찮아.. 조공-책봉 관계는 동아시아에서 수천 년 전부터 의례적으로 있어왔던 외교관행입니다.
책봉은 단순히 조선에서 왕 뽑아 놓으면 그저 중국 측에서 어 그래 하고 확인만 하는 수준이었고 어떠한 간섭도 없었습니다. 조공 또한 무역의 한 형태로 갖다 바치고 끝나는게 아니고 하사품이란 명목으로 거래를 하는겁니다. 중국이 책봉 해줬다고 직접적인 내정간섭을 한 것이 없는데 명분상으로 책봉 당했다고 속국입니까? 대체 내가 왜 이런걸로 국빠 소리를 들어야 하는건지?? 바른 말을 해도 욕 처먹네. 개인적으로 공부를 좀 더 하시던가요.
          
성룡523 13-03-10 00:36
   
청나라는 경제적인 개입만이 아니라, 군사개편, 관제개혁까지 한 것이다. 관제개혁이라 하면 아문제도, 통리군국사무아문(군무,내무업무를 담당. 갑신정빈이후 의정부로 통합되다 내부무로 부활)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외교 및 통상업무 담당, 갑오개혁까지 존속) 외아문(통리기무아문) 군제를 친군영으로 세우고 하부에 4영(좌우전후영)을 두게 했다는점, 그리고 청국방식으로 조선의 군사훈련을 했다는점.

청나라가 조선에 대해서 다른나라와 협약을 맺은것들.. 1888년 웨베르가 주선한 육로 통상조약, 1886년 10월 청나라와 러시아가 협정을 맺는데(이홍장-라디겐스키 협정) 러시아가 조선영토를 점령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영국 철수. 그래서 청나라는 조선의 종주권을 가지게되고 ~~~ 찾아봐도 쉽게 찾을수 있네..








조공,책봉만 있었던게 아니란다 ㅋㅋㅋㅋㅋㅋ 이미 조선은 청나라 식으로 조직 개편하고 청나라 식으로 군대 개편하고

청나라가 다른나라의 내정간섭에 관여하고있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라벌 13-03-10 00:39
   
아니 븅신아 근대 얘기 꺼내지 말라니까? 당시 조선은 누가 손대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인데 왜 유독 청나라한테만 속국이냐고. 그럼 일본이 가쓰라 태프트 밀약이나 포츠머스 조약으로 조선 지배의 정당성을 미국한테 받아냈으니까 미국이 조선의 종주국이고 조선은 미국 속국이냐? 당시 청나라가 가장 가까웠고 가장 내정간섭이 심할 때였으니까 그런거고. 애초에 그런 내정 간섭이 조선이 외부적인 것에 신경쓰지 못할 때 이뤄진거지 그 이전에 멀쩡할 때 언제 내정간섭이 있었냐고.
                    
성룡523 13-03-10 00:41
   
우리나라가 미국, 러시아 식으로 조직 개편하고, 미국, 러시아 식의 군대 조직을 갖고있었냐?

근대 이전부터 명백히 청나라의 간섭을 받고있었냐? 아니냐?


일본이 내정간섭할때 누구 좆발르고 한건줄 아냐?? 청나라다.

미국은??? 청나라 개 좆발른 일본한테 말한거다.


조선의 주권이 청나라 -> 일본 한테 이렇게 넘어간거다

그래서 우리나라 점령한나라가 두개다................ 청,일본,원나라(몽골)


독립문도 세워졌다. 청나라한테 독립할떄

독립기념일도 있다. 일본한테 독립할때.

ㅇㅋ????
                         
서라벌 13-03-10 00:47
   
그니까 개화기 조선이 대외적으로 신경쓰지 못하고 나라꼴이 개판일때 한정적이라는 거 아니냐 존만아. 그 이전에, 세도정치 하기 전에 영,정조 시기에 우리가 청나라한테 내정간섭 당한 일 있냐? 말 좀 해봐라. 당시 청나라가 입김이 셌던건, 지리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조선이랑 가장 가까웠던 나라가 청나라여서 청나라 입김이 좀 더 셌던거지 이해를 못하냐?
          
마법사토끼 13-03-10 00:38
   
그게 심해서 청나라가 감놔라 배놔라 하던시절이 있었단 얘기를

고등학교 근대사시절에 배운적 없으신가요.. 전 분명히 그렇게 들었거든요.
굿잡스 13-03-10 00:31
   
썽룡 왈


캐관광 역사 =짱개사 ㅋㅋ

미국에게 캐관광 당하면 미국사=짱개사??? ㅋㅋ

이게 짱개식 허구의 역사 공정패턴이지 ㅋㅋ
     
마법사토끼 13-03-10 00:34
   
내가 님한테 댓글달라고 가입함요.

제가 읽은바로는 성룡523님이

"난 일본이 우리나라한테 한짓보다 중국이 우리나라한테 한짓이 더 심해서 싫어!"

라고 느꼈거든요?

근데 저위에 님하고 서라벌님이 우리역사 열등감이라도 폭팔했는지

"성룡 너 짱깨니? 우리 중국한테 털린적 없거든 ㅡㅡ"

요로코롬 반응했는데 이게 정상적인 대화인가요?
          
성룡523 13-03-10 00:37
   
그니까 ㅡㅡㅡㅡㅡㅡㅡㅡㅡ;;;;;;;;;;;;;;;;;;;;;;;;;;;;;;;;

진짜 개 황당한게 그거.....................


얼빵 똥덩어리 없는 침팬지 수준의 지능덩어리들...........
          
굿잡스 13-03-10 00:40
   
ㅋㅋㅋ 이양반은 제대로 한글도 안읽고 어그로 아이디에 눈에 보이는 옹호?? 질일세 ㅋㅋ

기본적으로 저 양반은 역사 운운 쳐하면서

기본 현재 반청복명으로 나온 중화 인민공화국 즉 중공과 과거 이민족 정복사 즉

비트포켈이고 학자들이 정의하는 정복왕조의 개념 조차 제대로 모르면서 헛소리질

쳐하다 논리가 안되니 무슨 그렇다고 짱개가 우리 어쩌고 이쥐랄 계속 쳐하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거지??

제대로 윗글에서 한글이나 읽고 이런 열심히 서포터하심?? ㅋㅋ
               
마법사토끼 13-03-10 00:46
   
서포터요? 저는 사실 중국이 우리나라를 속국으로 만들었니 뭐니는 별로 상관안해요.

근데 제가 의문을 가지는건 왜 성룡523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사소한 말한마디로

가차없이 늘어지냐는거죠. 

비트포켈,학자들이 정의하는 정복왕조의 개념? 님이 한번 늘어놔보세요.

되게 아는게 많은척하시네.. 역자학사세요? 아직도 논란의 여부가 많아서 학자들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부분을 가지고 늘어지는거 보기 싫습니다.
                    
굿잡스 13-03-10 00:48
   
ㅋ 갈수록 캐논리에 난독증?? 사소한?? 작은??

이양반 한글 모르남?? 위에서 저양반이

 댓글 몇개를 달았는데 그 열폭질한 내용을 ㅋㅋ

이정도면 그냥 스포터가 아니라 무슨 쌍으로 노는 ㅋㅋ 아는 쪽임?? 분신술 사용?? 위에서 한글 알면 제대로 정독이나 하고

논리적으로 이야기 하길 바람.
웃기SP 13-03-10 00:36
   
일본 스파이 세퀴들  많이  침투 했넹..일본 2ch  논리가  일본이 한국 근대화 시켜주러 100년 침략 했다고  하죠 중국이 우릴 수천년 속국 시키고  침략 했다고  하죠..그런데  왜  중국한텐 아무말  안하고  지들  일본 한테만  뭐라고  하냐고..  성룡523=  이런늠의 논리는..말이 안돼지요  결론은 쪽국 스파이  세퀴들  이간질임..  우리역사를 깎아  내리려는 일본 쪽국 논리  그대로임.....
     
성룡523 13-03-10 00:37
   
짱꺠 싫어하고 쪾바리도 싫어하면 되잖아????????? 개 저능아야..
          
웃기SP 13-03-10 00:42
   
너같은 쪽바리는 아지지..개 자식아..퉤~
               
성룡523 13-03-10 00:42
   
할말없다 = 욕이 나온다
     
마법사토끼 13-03-10 00:38
   
ㅎㅎ 나도 일본 많이 싫어해요. 중국이 싫다고 일본이 좋다는건 아니거든요?
에버모션 13-03-10 00:40
   
속국을 안당한 나라가 없는데 왜? 하필 조선만 강조하고 있는지?에 대한 글이지요
중국에 한국은 멸시를 당했다라고 이야기 하고 싶은건가요?
현재 한국은 중국을 멸시하고 있습니다 피장파장이네요
     
성룡523 13-03-10 00:42
   
짱꺠논리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라벌 13-03-10 00:43
   
그니까 니놈 논리가 한국은 역사적으로 속국 생활했으니까 븅신이다, 라고 까는게 니 논리 아니냐.
내가 그게 어이가 없다니까? 근데 무슨 짱깨논리야. 니가 짱깨 논리지. 짱깨 편 드는건 너 아니냐?
아주 짱깨한테 나라 갖다 바치지 그러냐?
               
성룡523 13-03-10 00:46
   
속국 생활했으니까 븅신이다-------------------------------이렇게 받아들이는게 마법사토끼 이사람한테 얼마나 바보같은 상황으로 보이는지 모르겠냐 ㅋㅋㅋㅋ


속국 취급하고, 전세계가 조선을 청나라 속국 취급했는데, 짱꺠를 싫어하면 안된다??????????

다른나라도 개화기때 조선 힘 약할떄 다 개짓했으니까 청나라도 똑같으니까 싫어하면 안된다????????/


짱꺠 실컷 옹호해놓고 짱꺠편든다고 뒤집어씌우는거봐.......닭대가리네 ㅋㅋㅋㅋㅋㅋ
                    
서라벌 13-03-10 00:50
   
내가 언제 짱깨 옹호했냐고? 직접적인 지배를 당한건 일본쪽이니까 일본이 더 싫을 '수' 도 있다고 말했지. 내가 일본을 더 싫어해야 된다고 명령조로 말했냐? 그리고 속국 취급 당한건 우리가 근대에 힘이 없어 그런건데 누굴 탓하냐? 왜 짱깨만 탓하지? 차라리 그때 당시를 논하려면 결국 최종적으로 조선 먹은 건 일본이니까 일본 탓을 더 해야지. 자꾸 말이 산으로 가는데, 짱깨 싫어하려면 싫어해라. 더 이상 말귀도 못 알아듣는 놈이랑 무의미한 논쟁하기 싫다.
               
성룡523 13-03-10 00:47
   
우리나라가 미국, 러시아 식으로 조직 개편하고, 미국, 러시아 식의 군대 조직을 갖고있었냐?

근대 이전부터 명백히 청나라의 간섭을 받고있었냐? 아니냐?


일본이 내정간섭할때 누구 좆발르고 한건줄 아냐?? 청나라다.

미국은??? 청나라 개 좆발른 일본한테 말한거다.


조선의 주권이 청나라 -> 일본 한테 이렇게 넘어간거다

그래서 우리나라 점령한나라가 두개다................ 청,일본,원나라(몽골)


독립문도 세워졌다. 청나라한테 독립할떄

독립기념일도 있다. 일본한테 독립할때.




"독립문"은 독립해서 세운게 아니냐????????????????????????????????

그럼 "독립문"은 누구한테 독립해서 세운거냐???????????????


아니면 "독립문"은 독립도 안했는데 세웠냐???????등신이라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굿잡스 13-03-10 00:45
   
썽룡아 알아

잽 왜국이 수천년 우리 속국이였으니 ㅋㅋ

공무역 조공 개념과 속국 개념도 구분못하는 캐무식한 ㅋㅋ
          
에버모션 13-03-10 00:46
   
성룡523 > 아니 누구보고 짱깨래? 전에 짱깨랑 댓글로 싸우다가
 '왜구'라는 아이디 정지 먹었습니다만 그리고 조선의 속국을 강조하는
님이 일빠 아니면 짱깨 아닌가요? 한국인 중에 누가 속국이라고 강조합니까?
               
성룡523 13-03-10 00:48
   
우리나라에 "독립문" 있는거 압니까?

어느나라한테 독립해서 세운겁니까?
                    
굿잡스 13-03-10 00:52
   
????????????? ㅋㅋㅋㅋㅋㅋㅋ 바버 아님??

독립문 있으면 다 독립 했냐 이런 뜻임??? ㅋㅋㅋ 어구..

이 독립이란 자주적 의미의 정신적 독립을 말하는 것이고.

무슨. 진짜 속국적 개념이란 말이지 한마디로 짱개처럼 국호 지워지고

노예 하층민으로 다구리 당하는게 속국이고 자기 국호가지고 공무역 관계로

어느 정도 당시 서열이 정해지는 건 고대나 현대가 국제 역학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질서임 이걸 이해 못하는 무식한.
                         
성룡523 13-03-10 00:56
   
정신적 독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연히

http://terms.naver.com/entry.nhn?cid=807&docId=947758&mobile&categoryId=1948

"청국으로부터의 독립" 이라고 적혀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청나라 사신 지나다니는 자리에 만든건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정신적 독립 의미한다는 근거 갖고와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굿잡스 13-03-10 00:57
   
이런 서열 관계는 말이지

삼국시대 고구려가 신라와 백제를 아우르면서 윗서열에서 놀던 때에도

있던 것으로 어느 나라가 강하면 그외 나라가 자연스럽게 굽히는 식은

얼마든지 존재했고 수나라가 고구려에 쳐망하고 나서 당나라 이세민도

초기에 돌궐에 속국적 예로 조공바쳤든.

그렇다고 이게 실질적 당나라가 속국이라는 뜻도 아니고.

한나라는 초기에 유방이 흉노 묵틀 대선우에 생포되어 진짜 해마다

정기적 조공과 규약에 따라 진짜 속국적 예로 다스려진 경우들이 존재하고

알겠음??

그외 몽골의 원이나 만주족 청이고 한족을 철저한 속민으로서 노예적

강등 생활을 했고 만주족 복식과 변발에 저항하면 도륙당했음.
                         
성룡523 13-03-10 00:58
   
무식하면 닥치는게 상책이다

근거는 없고 니생각만 ㅋㅋㅋ
                         
굿잡스 13-03-10 01:00
   
무식하면 닥치는게 상책이다

근거는 없고 니생각만 ㅋㅋㅋ >????

너 말하남 무식한 ㅋㅋㅋ.
                         
굿잡스 13-03-10 01:09
   
진짜 캐무식해서 못놀겠다 ㅋㅋ

그럼 니 말대로면 독립문 하나 세우면 그나라가

독립국 되는 거임??? ㅋㅋㅋ

조선이 독립국 행사하는데 왜 청은 가만 보고 있남???

캐무식. 조선과 청은 특수한 관계였고 당시 정복왕조 만주족은

현대 미국같은 위세로 러시아등 국제적 중요

국경 협약이나 문서는 다 자신만의 만주족 문자로 협정을 맺으면서

한족과는 철저히 분리 이중적 정치 구조와 지배논리를 구사했고

그들의 본토인 만주는 한족 봉금으로 자신들의 돌아갈 고향이며

우리와 역사 지역적으로 가까운 특수관계로 청의 사신방문 에서도 언제나

서열 제 1위로 앞에 있었던 것이고.

이런 걸 아남??
서라벌 13-03-10 00:42
   
애초에 이래서 머리가 달리면 역사를 논하지 말아야 해. 역사를 논하려면 그 당시 시대의 특수한 상황을 깔아놓고 생각을 해야 되는데 단순히 개화기에 청나라가 내정간섭을 했으니 조선이 청나라 속국이라는 멍청한 논리는 어디서 나오는거냐. 당시 조선의 상황은 세도정치로 나라 말아먹고 나라 꼴 개판인 상태에서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치하던 시절이라 서구 열강의 침략을 막을 힘도 없고 근대적 조약을 맺을 형편도 아니고 한 것이니 그 때를 틈타 청나라가 내정 간섭하고 일본이 간섭하고 러시아가 간섭했던거지. 그시대에만 한정되었던 사실을 가지고 마치 조선이 수백년간 속국이었던 듯이 말하니 기가 차는거다. 조선이 속국이라고 말하려면 청나라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내정간섭 당했던 증거를 가져와라. 개화기 혼란했던 시대상황 가져오지 말고 존만아.
     
성룡523 13-03-10 00:44
   
개화기 이전부터 엄연히 조선의 국가 시스템 자체가 청나라 시스템 그대로 하라는대로 고쳐서 청나라식 제도와 청나라식 군대를 갖고있었음에도 인정을 못하는 저능아..

니가 나보다 IQ 높으면 손에 장을 지지고 패배 인정한다 ㅋㅋㅋ 진짜 저능아 주제에.. 지 아이큐 몇인지도 모르는놈이 ㅋㅋ 머리 운운하긴..
          
웃기SP 13-03-10 00:47
   
성룡523=쪽바리  는 가라~..한글배워와서  이간질이노  ..왜놈 시퀴~
          
서라벌 13-03-10 00:51
   
그니까 개화기 이전에 어떤 국가 시스템이 청나라 시스템 그대로 따라했는데? 가져와봐.
 뭘 가지고 청나라 제도라고 하는거냐. 아주 대단한 역사학자 납셨구만. 뭘 가지고 청나라 제도냐?
의정부 서사제가 청나라 제도냐? 육조직계제가 청나라 제도냐? 군 제도에서 임란 이후 삼수병 체제가 청나라 제도냐? 5군영 설치한게 청나라 제도냐? 말 좀 해봐라.
               
성룡523 13-03-10 00:56
   
관제개혁이라 하면 아문제도, 통리군국사무아문(군무,내무업무를 담당. 갑신정빈이후 의정부로 통합되다 내부무로 부활)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외교 및 통상업무 담당, 갑오개혁까지 존속) 외아문(통리기무아문) 군제를 친군영으로 세우고 하부에 4영(좌우전후영)을 두게 했다는점, 그리고 청국방식으로 조선의 군사훈련을 했다는점.
                    
서라벌 13-03-10 01:08
   
그니까 그건 개화기 이후 잖아 씹어먹을 새퀴야. 그 이전 것을 가져오라고 몇 번을 말하냐?
그것 밖엔 갖다 댈게 없니? 그리고 청국방식으로만 했냐? 일본 방식으로는 안 했냐? 애초에 신식 군대 자체가 서양식인데 개소리하고 자빠졌냐.
굿잡스 13-03-10 00:43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위에 쌍으로 기어 들어와서 쳐노네 ㅋㅋㅋ

예전 인조이 재팬식 잽극우들 노는 방식대로 ㅋㅋ 웃긴 ㅋㅋ

역사 운운하면서 근거 한줄 제대로 안하고 지들 무식한 캐소리로 쌰지르기나 쳐하곤

어디서 한명 불러 왔는지 동시에 난독증 헛소리까지 ㅋㅋ  쌍바퀴로 노는 ㅋㅋ
     
에버모션 13-03-10 00:50
   
일빠 아니면 조족. 짱깨 같은 어글로 입니다
굿잡스님 그런건 상대 하지말고 무시하세요 수고 많으시네요
          
성룡523 13-03-10 00:54
   
http://terms.naver.com/entry.nhn?cid=807&docId=947758&mobile&categoryId=1948



"독립문" 에 대한 설명이다

엄연히 "청국으로부터의 독립" 이라고 젹혀있는거 보이냐????????????


역사적 사실 하나더.

"시모노세키 조약"이라는게 있다.

일본이 조선을 먹고 싶어서, 일단 청나라가 조선을 먹고있었기 떄문에 청나라를 개발른다

그리고 "시모노세키 조약"이라는게 있다.

1. 조선이 자주독립국임을 인정한다 이게 조약에 있다.


일본이 조선을 먹을려면 누구한테 뻇어야하나? 청나라다.

그래서 청나라한테 시모노세키조약을 맺어서 독립국을 만들고, 일본이 먹었다

후에 "가쓰라 태프트 밀약"같은걸로 미국이 일본의 조선 점령을 인정함


고로, 한국의 주권을 먹은 나라는 청나라->일본 으로 이동하는거임

ㅇㅋ?

이게 아니면.. "독립문"은 우리가 독립도 안했는데 독립문이라고 세운거임?

"시모노세키 조약"은 일본이 조선의 독립을 내세운 이유가 뭐임??

독립국인데, 갑자기 독립국 인정하라고 뜬금없이 조약맺음???????????????

말이 되는소리가 있고, 안되는 소리가 있는법이다. 청나라는 조선 먹었었고


그 이유떄문에 짱개 싫다는데, 지금 얘들이 그게 짱깨 싫어할 이유가 안된다면서 억지부리는거다.
               
웃기SP 13-03-10 00:58
   
이세퀴  웃긴 늠임  청나라가 일본 처럼 군대가 주둔했냐.. 잠깐 간섭기 가지고 속국 이라니..니네 나라로 가야 쪽바리  세캬 ~ 누가 들음 진짜  ..우리가  지배만 받고 산 민족인줄 알겠다  개세퀴야~
                    
성룡523 13-03-10 01:01
   
조선 군대 자체가 청나라식 군대에 청나라 시스템이었거든... 왜? 청나라가 그렇게 하라그래서 ㅋㅋ
청나라 간섭이 싫어서 청나라로부터 독립할려고 독립협회가 활동했는데
속국도 아닌데 뭐로부터 독립한다는건지 그때 독립협회가 했던 짓은 그럼 개 뻘짓이냐 ㅋㅋㅋㅋㅋㅋㅋㅋ
처음엔 나보고 짱꺠라더니 갑자기 할말없으니까 쪾바리래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능아 침팬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기SP 13-03-10 01:09
   
성룡523  개자식아 청나라가 ..여진족이 세운 나라인건 아냐 ?  임진왜란 당시에..청나라가  우리나라를 어버이  나라라고 병역 10만을  보내 준다고 한거..우리가  대면 사대주의로 거절했지..그런 부분을  간과  하고 속국 속국 하는..니늠이  쪽바리란 증거야..똥 바께  안찬 늠아..쪽바리  인증 하넹  ..개 세 퀴..
나물밥 13-03-10 00:53
   
속국이 식민지아님?ㅋ
그럼 일제강점기때 조서총독부마냥 중국의 속국 통치하는기관이 조선에 있었음?ㅋ 윈때말고ㅇ
그리고 원나라도 중국에속한다 따지면 광해군때 군대파병한건 중국내전에 강홍립파견한거?ㅋ
정복전쟁을벌일만큼 강국은아니었으나 미친듯한 수성의 능력을 보여주는 나라가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는 우리민족특성인데 그걸 중국왕조도 아니까
그냥 형식상 아우나라라고 조공바치라한거고 조선도 상대적으로 훨씬큰 나라와 마찰빗어 싸울순없으니 그냥 조공으로 쉬쉬한거지 이런해석이 당연한거아님?ㅋㅋ시.발 교과서에도 원간섭기라 나오는데 간섭받으면 다 속국되는거?ㅋ 어찌이리 단면만볼까ㅋㅋ국뽕이란 단어는또 처음보네ㅋㅋㅋㅋㅋ 에라이 니뽕이다ㅋㅋ
     
서라벌 13-03-10 01:01
   
역시 이렇게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춘 분이 나오는군요. 속국이라 하면 자주권이 없는 상태여야 합니다.
나라에 정부가 없고 외교권도 없고 군사권도 없어야 비로소 자주권이 없다고 합니다.
일제시대엔 우리의 정부가 사라지고 조선총독부가 조선을 통치하고 일본인 총감이 와서 다스렸죠.
헌데 청나라가 청나라 관리 파견해서 청나라의 통치기구가 조선을 다스렸답니까? 미친놈 하나가 헛소리 합니다.
          
성룡523 13-03-10 01:04
   
자주권이 없으면 그건 그냥 나라 자체가 성립이 안되는거고 ㅋㅋㅋㅋ 그러면 "조선"이 아니라 그냥 "청나라"인거지

속국이라고 하면

어떤 나라가 있고,

다른나라가 있고

어떤 나라가 정치적으로 독립적이지 못한게 속국이지

이거 부정하면 뭐 미친놈하나가 헛소리하는꼴이고 ㅋㅋ
               
서라벌 13-03-10 01:07
   
그니까 정치적으로 예속 당한게 뭘 가지고 말하는 건데?? 책봉 관계로 예속당했다는거냐?
예시를 대 봐. 뭘 가지고 정치적으로 독립을 못해?
                    
성룡523 13-03-10 01:09
   
관제개혁이라 하면 아문제도, 통리군국사무아문(군무,내무업무를 담당. 갑신정빈이후 의정부로 통합되다 내부무로 부활)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외교 및 통상업무 담당, 갑오개혁까지 존속) 외아문(통리기무아문) 군제를 친군영으로 세우고 하부에 4영(좌우전후영)을 두게 했다는점, 그리고 청국방식으로 조선의 군사훈련을 했다는점.
               
웃기SP 13-03-10 01:11
   
쪽바리야..  청나라는 본디..우리 민족과  관계가  깊은  여진족이  세운나라야  ..

청나라  황족들이  금씨  인건 아냐??  저능 한 종자야 ㅉㅉㅉ..
               
천리마 13-03-11 00:09
   
이사람은 논리도 없고 어디서 주어들은걸 계속 반복 하기만 하네.
서라벌 13-03-10 00:59
   
애초에 독립문을 가지고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광복절이랑 같은 의미로 보는 게 말이 안돼는 거지. 성룡새퀴 말마따나 그날이 청나라의 압제로부터 독립한 날이면 오늘날 광복절 말고 청으로부터 독립한 기념일이 따로 있어야 되는 것 아니냐? 이름이 독립문이라고 진짜 무슨 지배에서 해방되는 그런거라고 생각하냐? 단순한 이름만으로? 븅신도 이런 븅신이 있나.. 독립문에서 말하는 독립이란 사대외교의 철폐, 완전한 자주독립을 말하는거다. 지배에서 벗어나겠다는 말이 아니라.http://terms.naver.com/entry.nhn?cid=1630&docId=543865&mobile&categoryId=1630
 여기 설명을 봐라.
'높이 14.28m, 너비 11.48m. 사적 제32호. 지정면적 2,715.8㎡. 갑오경장 이후 자주독립의 결의를 다짐하려고 중국사신을 영접하던 사대외교의 표상인 영은문(迎恩門)을 헐고 그 자리에 세운 문으로서, 자주민권과 자강운동의 한 기념물이다.'
사대외교의 표상인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자주민권과 자강운동"의 한 기념물이다 라고 나오지 청나라의 압제로부터 독립한 날이라고 나오든??
     
성룡523 13-03-10 01:01
   
청나라로부터라고 안나오면 청나라로부터 안나오냐????????? 내가 갖고온거 "청나라로부터의 독립" 적혀있는건 뭐냐???///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다" 라고 적혀있는걸 가져와야지 멍청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라벌 13-03-10 01:06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이라는게 낡아빠진 사대주의를 철폐하고 근대로 나아가겠다는 의미지 아직도 이해가 안가냐? 니 말마따나 우리가 청에 예속당헀으면 왜 청에서 독립한 기념일은 없는건데?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위에 안 보이냐? 자주민권과 자강운동이라고? 사대주의를 폐하고 진정 완전한 독립국이 되겠다라는 말인데 무슨 청나라의 지배에서 독립이냐? 누구한테 그렇게 배웠냐? 교과서가 그렇게 말하더냐 너희 학교 선생이 그러더냐?
               
성룡523 13-03-10 01:07
   
청나라에서 독립한게 왜 없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독립했으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청나라가 일본으로 바뀐거니까 독립기념일이 없지 바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라벌 13-03-10 01:12
   
시모노세키 조약은 일본놈들이 조선 먹으려고 조선에서의 청의 간섭을 막은 거지 무슨 독립이냐. 미친놈아. 이건 진짜 미친놈이구만. 일제가 조선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깔아놓은게 그거고, 우리가 독립시켜줬으니 우리거다 라는 논리인데 넌 그걸 사실이라고 하는거냐??? 이건 진짜 큰 일 낼 놈이네. 제대로 미친놈이구만. 너랑은 더 이상의 논쟁이 무의미하다.... 끝까지 설명해 보려고 했는데 그냥 미친놈이었어. 세상에 일본이 청나라로부터 독립시켜줬다는 논리라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성룡523 13-03-10 01:14
   
시모노새키 조약이 이건데???????//

1. 청나라는 조선을 완전한 독립국으로 인정한다.


일본이 조선 먹을려고 조선의 독립을 청나라로부터 인정하게 했는데

우리나라가 청나라로부터 독립했다 해도 일본한테 먹히는 처지인데 어떻게 "독립기념일"을 만들수 있냐 이거야....


응??????????????????????????????


우리가 청나라로부터 속국이었는데, 그게 일본의 속국으로 바뀌었어

근데 너는 지금 "청나라로부터 독립했는데 독립기념일은 왜 없냐" 라고 묻고있잖아 저능아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멍청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라벌 13-03-10 01:21
   
끝까지 미친놈이네 이거. 그래서 니 결론은 일본이 청나라로부터 독립시켜줘서 일본 만세 불러야 한다는 소리냐? 애초에 그 조항이 일본이 조선을 먹기 위한 최대 걸림돌이 청나라였고, 청나라의 개입을 완전 봉쇄하기위해 청의 내정간섭을 막기위해 집어넣은 조항인데 그 조항 의 뜻을 해석하지는 못하고 있는 그대로 읽는거냐? 이런 무식한 새끼가 있나.. 너는 글자를 그저 읽는대로, 발음나는대로 믿고 해석하냐? 당시의 상황은 고려를 못해? 청나라가 조선을 지배했으면 조선을 지배한 통치기구는 어디가고 조선을 지배했던 청의 관리는 어디 있는데? 단순 내정간섭이 어떻게 지배로 바뀌냐?
               
성룡523 13-03-10 01:09
   
관제개혁이라 하면 아문제도, 통리군국사무아문(군무,내무업무를 담당. 갑신정빈이후 의정부로 통합되다 내부무로 부활)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외교 및 통상업무 담당, 갑오개혁까지 존속) 외아문(통리기무아문) 군제를 친군영으로 세우고 하부에 4영(좌우전후영)을 두게 했다는점, 그리고 청국방식으로 조선의 군사훈련을 했다는점.







조선의 시스템은 청나라의 간섭으로 이미 청나라 시스템을 도입하고있었다............
     
성룡523 13-03-10 01:06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당시 청나라) 사대외교의 표상인 영은문을 헐고!!!!!!!!!!!!!!!!!!!!!!!!!!!!!!!!!!!"




보이냐??

독립문을 거따가 지은게, 청나라로부터 독립할려고 지은거다

이게 교과서에 나와요 임마 똘구년아 ㅋㅋ
          
서라벌 13-03-10 01:10
   
그니까 사대외교의 표상인 영은문을 헐고라는 말을 이해를 못하니??? 사대외교를 폐한다는거지 무슨 청으로부터 독립을 하니. 애초에 청에 매인적이 없는데. 미친거 아니냐? 너 같은 놈은 살다살다 처음본다???/
               
성룡523 13-03-10 01:12
   
http://terms.naver.com/entry.nhn?cid=807&docId=947758&mobile&categoryId=1948
청으로부터의 독립이라고 적혀있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나라 독립협회가 청으로부터의 독립 활동을 했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청나라 사신 드나드는곳에 독립기념으로 세운거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나라 독립협회 사람들은 개 뻘짓한거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속국도 아닌데 뭘 독립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라벌 13-03-10 01:15
   
그니까 너는 단어를 해석할 줄 모르는 븅신이라 이거야. 독립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고 무조건 일제에서 해방하듯이 그런 독립밖에는 생각을 못하니... 독립협회는 외세에 의존하지 말고 자주적인 내정개혁을 이루자는게 핵심이다. 청으로부터의 독립이 사대관계의 독립을 말하는거지 애초에 우리가 지배를 받았으면 조선의 정부라는게 있어서는 안돼지 조선의 정부가 존재하고, 조선의 관리가 나라를 운영하는데 청국의 지배를 받아? 청국에서 파견한 관리가 왜 없니.
                         
성룡523 13-03-10 01:19
   
"사대관계의 독립을 말하는거다" 라는게 니생각이 아니라 근거있는 소리냐?????????/

근거 갖고와바 새1꺄 빨리

안갖고오면 쳐발린거 인정해라

또 내가 정부라는게 없으면 나라가 인정이안되고 그냥 "청나라"인거고

어떤나라가 있고, 다른나라가 있는데 어떤나라가 정치적으로 독립이안되어있으면 속국이라고 했다


니가 주장하는 독립문의 독립이라고 하면 뭐 어떻게 독립인건데?????????????

단순히 "청나라를 좋다고 생각합니다......"라는 생각을 버렸다고 독립문을 세웠단거냐?????

난 분명히 독립문이 "조선이 청나라로부터 독립을 했다는 기념으로 세웠다"라는 근거를 가져왔다.

너는 "그 독립이라는 개념이 단순히 사대적인 개념으로서의 독립만을 의미한다"는 근거를 갖고와라

아니면 쳐발리던가
                         
서라벌 13-03-10 01:25
   
아까 증거를 댔잖아 미친놈아. 니가 증거랍시고 갔다댔다는 것에 청나라로부터 독립했다는 말만 있지 구체적으로 청의 압제로 부터 벗어났다, 우리의 주권을 되찾았다 라는 말 있어?
애초에 자주민권과 자강운동이라는 말로 설명이 안 돼냐? 하아.. 너같이 너 꼴리는대로 문자 해석하는 놈은 처음 봤다. 지나가는 사람 길을 막고 물어봐라. 누가 니 말에 동조하나.
그리고 정치적으로 독립이 안됐다는 앵무새 소리 그만 떠들고 어떻게 정치적으로 독립이 안됐는지 설명좀??
                         
성룡523 13-03-10 01:26
   
관제개혁이라 하면 아문제도, 통리군국사무아문(군무,내무업무를 담당. 갑신정빈이후 의정부로 통합되다 내부무로 부활)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외교 및 통상업무 담당, 갑오개혁까지 존속) 외아문(통리기무아문) 군제를 친군영으로 세우고 하부에 4영(좌우전후영)을 두게 했다는점, 그리고 청국방식으로 조선의 군사훈련을 했다는점.







조선의 시스템은 청나라의 간섭으로 이미 청나라 시스템을 도입하고있었다............

조선은 청나라의 간섭을 이미 개혁기 이전에도 받고있었기 때문이다


너 이거에 대답한적 한번도 없는데 등신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정도로 청국의 간섭에 시달리다가, "독립"한 후에 청나라 사신이 드나들던 곳에 독립문을 세워서 실제 독립국이 된거다

시모노세키 조약에 "독립국을 청나라가 인정한다"는 조항이 분명히 있다

그럼 그전에 "독립국이 아니다"라는 소리는? 당연히 청나라 속국이란거지

"독립국은 아니고 속국도 아닌데 뭐 그저그런 국가였다" 이럴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연히 청나라 간섭받고 시스템 청나라껄로 바꿨어도??

어거지를 부리면 이렇게 망하는거야
진짜인간 13-03-10 00:59
   
성룡523이 말한 속국의 개념이 아닙니다.
그리고 조선이 명에 조공무역한것은 앞서 말씀하셨듯 실리적인 측면이 강하고요

조공무역
이는 강대국으로 군림하였던 중국 역대의 왕조가 주변의 약소국가에게 행한 대외정책의 한 형식으로서, 예물로써 바쳐지는 공물에는 의례 하사(下賜) ·상사(賞賜)라는 명목의 답례물이 따르게 마련이어서 이는 국가 사이의 공식적인 물물교환을 의미하는 관무역(官貿易), 또는 공무역(公貿易)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중국의 역대왕조에 조공외교(朝貢外交)를 하여왔는데, 그것은 강요에서라기보다는 증답(贈答) 형식의 문물교환을 통해 보다 많은 선진문물을 수용하려는 적극적인 것이어서 조공사(朝貢使)를 자주 보내어 필요한 물화를 요구하여 가져오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사신단(使臣團)에 의한 교역과 상인단에 의한 교역으로 무역이 이루어졌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특히 명(明)나라는 조공과 회사(回賜)의 형식 이외에는 모든 외국 무역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그것도 3년에 한번 하는 삼년일공(三年一貢)으로 제한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에서는 더 많은 명나라의 문물을 얻기 위해 연삼공(年三貢)을 하겠다 하여 하정사(賀正使:정월 초하루) ·성절사(聖節使:明皇帝의 생일축하) ·천추사(千秋使:明 황태자의 생일축하)에 동지사(冬至使)를 추가하였고, 다시 수시로 사은사(謝恩使) ·주청사(奏請使) ·진하사(陳賀使) ·진위사(陳慰使) ·진향사(陳香使) 등의 사신편에 조공품을 보내고 답례품을 받아왔다. 이때의 사신(使臣) 일행은 정사(正使) ·부사(副使) ·서장관(書狀官)을 비롯해서 40명에 이르렀는데, 이들이 가지고 간 조공품 이외의 물건으로 사무역(私貿易)이 행하여지기도 하였다.

적당히 비위 맞춰주고 실리를 취한 외교정책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이 조공의 의미가 자주권을 상실한 나라의 의미입니까?
그리고 백두산정계비는 지역경계선인가? 내가 알기론 국경선 분쟁으로 알고 있는데
백두산정계비 = 1712년(숙종 38년) 백두산에 세운 비석으로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선을 표시한 경계비이다
마법사토끼 13-03-10 01:00
   
후, 여기수준 알만하네요. 그냥 하는짓이

"야 우리나라 과거를 모욕해? 넌 극딜이다! 쪽바리! 짱깨!"

딱 요수준. 사람들 생각좀 바꿔볼려고 눈팅하다가 오늘 가입했는데 참..

내가 여기 개소문 망하고 가생이로 옮겨탄지 어언 4년째 되가서 정도 많이 붙었는데 보면 볼수록 안타깝네요/

일본이 개같은짓했을때 뜨는 번역글보면 항상 나오는 댓글이 있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나라는 거의 수모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걸 인정하고 더이상 그 수모를 당하기 위해 애쓰지는 못할망정

"야 그때는 진짜 혼란스러워서 잠깐 당한거 뿐이거든 ㅡㅡ 딴나라애들도 우리 막 털었거든ㅡㅡ

그러니까 그때 털린건 털린거라고 치면안됨."

요따구 논리나 피고있으니..
     
성룡523 13-03-10 01:02
   
그렇죠.. 국뽕 수준이 그럼 ㅡㅡ;;

진짜 무슨.... 속국이라고 하면 무조건 쪽빠리 짱꺠 취급하면서 정작 지들이 짱개 옹호하는 주제에;


완전 눈막고 귀닫고 마약먹은 국뽕임..
          
웃기SP 13-03-10 01:15
   
여진족  자체가  조선을  어버이 나라라고  했다  이늠아  임진왜란 당시에..여진.에서  10만 보내준다는거  우리가  명나라 사대로  거절한거고  그여진족이 세운 나라가  청나라다  이늠아..쪽바리  식민 사관에  찌든세퀴  공부 많이 하면 뭐해 ~ ㅉㅉㅉ
     
마법사토끼 13-03-10 01:03
   
물론 속국이란 말은 조금 심하다고는 생각됩니다.

 언어를 조금 순화하셔서 쓰시는편이 좋았을꺼라 생각되네요.

이래저래 힘든 역사니까요.
     
서라벌 13-03-10 01:03
   
우리 역사가 수모의 역사 밖에 없다는 당신의 논리야말로 일제가 심어놓은 식민사학의 잔재지.
우리가 어떻게 수천년의 역사를 영위해 왔는데? 조공-책봉의 외교적 시스템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대체 뭘 말하겠다는건데? 우리가 수모의 역사면 일본도 수모의 역사요, 베트남, 몽골, 기타 등등 중국 대륙 주변 국가는 전부 수모의 역사구만? 진정 수모의 역사는 짱깨들 아닌가? 흉노한테 침략당해, 선비족 한테 침략당해, 여진족, 몽고족, 만주족... 우리는 침략을 당하고 조공은 바쳤을 지언정 나라는 잃은적은 없다만?? 만주족한테 수백년 지배당한 짱깨는 수모의 역사가 아닌가?
     
capella 13-03-10 19:08
   
와,,우리나라는 거의수모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거지 지들이 오랑캐라고 부르던 이민족들한테 수천년간 지배당한한족 그래도 지금은 중국땅이니까 다자랑스런 우리역사야 이소리는 우리입장에서보면 이토히로부미가 한국의 위인이라는 개소리고, 고대사 내내 빌빌거리다가 글도 없고 도자기도 못만들던 넘들이 근대들어서 젤먼저 서양문물 받아들여서 잘나가기 시작한 일본, 어딜봐도 우리나라보다 자랑스런 역사가 없는데,,,식민 역사교육의 표본들이구만,,,암,,,일본이 참잘해놨지,,역사를 잊은민족에게 미래는없다? ㅋㅋㅋ 개코가 다웃겠네 일본서기 판타지인거 알만한 사람들은 다아는구만
진짜인간 13-03-10 01:00
   
성룡523 역사공부를 수박겉핥기 하지마시고 맑은눈으로 잘 학습하시길 바라마지 않겠습니다.
     
성룡523 13-03-10 01:02
   
"독립문"이 뭔지나 공부하쇼 국뽕씨
stabber 13-03-10 01:02
   
Roboseyo
1800년대 중반에는 한국은 중국의 속국임을 자랑스러워 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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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워했다고?? 청나라에서 노예생활한 한족들이 그런 말을 했을까
에버모션 13-03-10 01:03
   
청나라와 금나라는 중국이 아니지요 청나라 역사서 만주원류고를 보면
만주 원류고 :  중국 청나라 때 건륭제의 명을 받아 편찬한 만주 지역의 역사 및 문화에 관한 책

만주원류고에서 금나라는 신라에서 나왔다라는 기록
만주원류고 서문에서 애신각라가 금나라와 같은 갈래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금나라 종실의 후예로 적고 있다.

만주원류고 서문 첫머리에
금나라의 기원이 되는 금나라, 진한, 신라에 관한 이야기가 서술되고 있다.

만주원류고 권8 길림편에서는
길림은 주이전에는 숙신땅이고 한이후에는 읍루말갈에 속했다가
당초에는 신라의 계림주가 되고 이어서 발해요에 속했다고 하였다.
길림은 청나라 황실의 본거지 였다.

만주원류고 권7에는
금시조 출자가 고려와 신라로 혼동되는 것을 지적하고 신라왕성에서 금의 국명이 나왔다고
단정하고, 금사지리지에서 주장하는 것은 견강부회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고려 예종 10년(1115년)의 기록에 의하면, 생여진(生女眞) 아골타가 황제라 일컫고 금나라를 세웠다.

금나라를 세우기 전 고려 예종 4년(1109년)에 여진에서 사신이 왔다.
사신은 ‘옛날 우리 태사 영가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우리 조종이 대방(고려)에서 왔으니
자손에 이르러서도 의리상 귀부함이 마땅하다며 지금 태사 오야속도 역시 대방을 부모의 나라로 삼나이다’라고 했다

금나라 태조 아골타가 고려 예종에게 보낸 국서에 보면 ‘형인 대여진 금국 황제는 아우 고려 국왕에게
글을 부치노라.
우리 조상은 한 조각 땅에 있으며 거란을 대국이라 섬기고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 하여 공손히 하였다.

중국의 지도자 주은래(周恩來)가 북한 방문 때 양심고백을 했었다.
청나라 뿌리는 후금이요 여진이었다. 그들 조상은 신라의 마의태자가 아니면 그의 형제들이나 왕족들이 분명하다.

고려의 기록과 청나라 역사서에 분명 금나라는 신라의 후손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중국의 총리조차 금나라와 청나라는 신라의 후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청나라가 조선을 속국으로 삼든지 말든지 신라의 후손이라 크게 문제될게 없어 보입니다
알겠습니까? 일빠씨 아님 짱깨씨?
black★barry 13-03-10 01:04
   
ㅇㅅㅇ 중국은그저그런데 요새 중국이북한지원많이해줫자늠 근데2009년개마고원에서 자원채취현장이 확장된걸보아
중국은 자원을가져간다
이런뜻 하지만 이런문제도생각해야함
왜냐면 통일이된다고치면 중국이 강대국이됫을꺼임
굿잡스 13-03-10 01:13
   
진짜 잡룡인지  캐무식해서 못놀겠다 ㅋㅋ

그럼 니 말대로면 독립문 하나 세우면 그나라가

독립국 되는 거임??? ㅋㅋㅋ

조선이 독립국 행사하는데 왜 청은 가만 보고 있남???

캐무식. 조선과 청은 특수한 관계였고 당시 정복왕조 만주족은

현대 미국같은 위세로 러시아등 국제적 중요

국경 협약이나 문서는 다 자신만의 만주족 문자로 협정을 맺으면서

한족과는 철저히 분리 이중적 정치 구조와 지배논리를 구사했고

그들의 본토인 만주는 한족 봉금으로 자신들의 돌아갈 고향이며

우리와 역사 지역적으로 가까운 특수관계로 청의 사신방문 에서도 언제나

서열 제 1위로 앞에 있었던 나라가 조선이였고.


조선이 서구 열강과 조약을 맺을 때도 그래서 청이 조선과는 특수한 관계이지 조선의 조약은

조선 스스로가 알아서 할 문제임을 그래서 그렇게 말한 것이고.

무슨 독립문 하나로 그걸 세우고 안세우고로 독립 어쩌고 캐소리 ㅋㅋ

일제 35년 강점시기 그럼 유관순 누나가 독립문 세우면 울 나라 독립 된 것임??ㅋㅋㅋ
     
서라벌 13-03-10 01:17
   
븅신이 단어 해석을 할 줄을 모릅니다. 독립이란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한테 지배를 받았다.. 라는 식으로 해석하는게 웃기지도 않을 따름입니다. 외세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적인 내정개혁을 표방해서 세운것이 독립문이고 독립협회인데 독립이라는 말 뜻을 몰라요. 혼자서 일어서는게 독립 아닙니까? 꼭 누군가한테서 해방이 되야만 독립입니까?
          
성룡523 13-03-10 01:22
   
"사대관계의 독립을 말하는거다" 라는게 니생각이 아니라 근거있는 소리냐?????????/

근거 갖고와바 새1꺄 빨리

안갖고오면 쳐발린거 인정해라

또 내가 정부라는게 없으면 나라가 인정이안되고 그냥 "청나라"인거고

어떤나라가 있고, 다른나라가 있는데 어떤나라가 정치적으로 독립이안되어있으면 속국이라고 했다


니가 주장하는 독립문의 독립이라고 하면 뭐 어떻게 독립인건데?????????????

단순히 "청나라를 좋다고 생각합니다......"라는 생각을 버렸다고 독립문을 세웠단거냐?????

난 분명히 독립문이 "조선이 청나라로부터 독립을 했다는 기념으로 세웠다"라는 근거를 가져왔다.

너는 "그 독립이라는 개념이 단순히 사대적인 개념으로서의 독립만을 의미한다"는 근거를 갖고와라

아니면 쳐발리던가
          
성룡523 13-03-10 01:23
   
머저리네 ㅋㅋㅋ 유관순이 독립문 세웠냐 그래서?

실제 독립국이 아닌데 독립문을 세우는데 청나라나 일본이 가만히 있겠다ㅋㅋ

게다가 청나라 사신들 들어왔다 나가는 길에 독립문 세웠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립한 후에 그걸 기념한느 의미에서 세웠다고 교과서에서도 배우거늘..


자주적인 "개념"만을 의미해서 세운거래. 독립이.

근데 근거는 없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굿잡스 13-03-10 01:29
   
이 돌대가리는 동아시아 특히 서토에서 조공에 대한 개념자체가 없는

유럽열강에게 쳐맞고도 청은 조공 받네 드립질 쳐한건 아남?? 에구..

니 논리면 현재 미국소비덕에 쳐사는 짱국이고 잽이고 독일이고 다 속국이네 ㅋㅋ

병잡하긴. ㅋㅋ
          
마법사토끼 13-03-10 01:35
   
ㅎㅎ;

국가이야기할때 독립이 나오면 누군가에게 강제적으로든 자의적으로든 지배를 받았으니까

나오는거 아닌가요? 제가 역사서를 잘못읽었나,,?

그이외에 나오는 예시가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보통 다른나라에게 내정간섭받거나 지배받다가 독립이라고 쓰더라구요.

보통요 보통. 님 생각말구 보통요. 님 뇌내 말구 보통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개념이나

역사서에서 단어의 쓰임새말이에요. 님보고있으니까 막무가내시네.. 아 논리적 모순 발견.

님이 '외세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적인 내정개혁'이라고 쓰셨으면

당연히 '그 이전에는 외세로 부터 영향을 받았다'라는 의미가 아닌지요 ㅎㅎ

설마 우리나라가 청나라,일본님 우리좀 통치해주세요 ㅜㅜ

하는 이완용 논리는 아니시겠지요? 내가 우리나라 참 좋아하는데

님하고 논리적으로 말할려면 우리나라 역사의 어두운 부분 계속 밝혀야하니까

그만할랍니다 쩝.. 누군 좋아서 우리역사 상처 후비나요..

다 필요한 역사 인식 과정이니까 그런거죠.
               
마법사토끼 13-03-10 01:43
   
여태까지 대화 라인 요약해볼께요 틀린거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a가

'난 중국애들이 싫어. 우리나라 너무 많이 괴롭힘. 일본보다도 싫어.'

라고 말했는데

b가

'뭐? 우리나라가 괴롭힘 당했다구? 말도안되는소리하지마. 그건 그냥 보기에만 그런거고

사실 상호간의 조약 비슷한거야.'

요 논리가 계속 이어지다가 지금처럼 싸움난거같은데요. 이거 a가 자신의 논리의

증명을 위해서는 중국이 우리나라 괴롭힌 역사를 말해야 하는데 필연적으로

우리나라를 까는것처럼 보일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단편적으로만 보고

'너 짱깨, 너 일빠'

막 요래요 ㅎㅎ

성룡님이 말씀하신것중에 '속국'이란 단어를 '심하게 내정간섭당함'이라고

바꾸면 우리나라 역사 맞는데 그냥 자신의 단어정의가지고

서로 싸우니까 결론이 안날수밖에없지 않겠나요.
                    
capella 13-03-10 19:21
   
그러니까 중국이란 정의에 대한 관념이 다른겁니다. 고대사나 역사에 별관심이 없고 교과서에나온대로만 대충알고 있는분들이 보기에 중국땅에사는 모든사람=중국인, 과거나 현재나 민족에 상관없이 전부 중국, 고대사나 역사에대해 많은 자료를 접하신 분들은 현재중국인들은 한족이 90프로기때문에 과거 우리나라를 심하게 내정간섭했던 청나라는 한족이 아니라 만주족 고로 현재 한족이 주류인 중국이 우리를 괴롭힌것이 아니라 왕실이 우리와 혈연적으로 더가까웠던 형제국같은것이기에 현재 중국을 대표하는 한족의 중국이 아닌것이지요, 그리고 조공관계는 앞서 님들이 말씀하셨듯이 저도 속국이란 의미가 아니라 국가간 무역에 더 가깝다고 알고있음
은구슬 13-03-10 01:16
   
만주강점기 청나라가 옛날 고구려 멸망후 아닌가요. 고구려는 당연히 우리나라 역사인데 중국이 대부분을 뺏어 먹었으니 어느 나라 역사다 딱히 대답을 하기가 어려운거죠 ?오해할만한걸 설명하지 않고 왕따만난 일진들처럼 욕싸지르는게 눈에 참 거슬리네요.
중국에 대한 내 생각은
통일 막은 원흉이고 지금도 북한 잡아 흔들고 있고
중공군에 짓밟히고 죽어간 수많은 조상들과
가족과 생이별하고 통일만 기다리는 이산가족 탈북자들
굶어죽고 얼어죽고 중국에 납치되 짐승처럼 팔려가는 북한녀들
노예처럼 일하고 다큰 딸자식 앞에서 중국주인한테 뺨맞고 얻어터지는
겉으로는 북한 내려놓는척 연기하면서 북한 먹을려고 통일방해하는
원수로 밖에 안보이네요.. 중국은 신장 위구르 내몽골 티벳 삼킨 악의축이자 베트남 한국전쟁의 원흉이네요.
굿잡스 13-03-10 01:17
   
어그로놈 딱 글 보니

잽 극우 캐논리 패턴으로 쳐 놀고 질 하네 쯧쯧...

수쳔년 진짜 우리의 속국 잽놈들이 헛지랄 하네 ㅋㅋ
서라벌 13-03-10 01:27
   
에효.. 답이 없다. 어떻게 설명을 하려 해도 말이 안 통한다. 그냥 넌 니 멋대로 살아라.
벽을 보고 이야기를 하는 기분이랄까.. 나 혼자 떠드는것 같은 느낌. 끝까지 지만 잘났고 자기 논리만 맞다는 억지.
 내가 어찌 이겨야 하나? 이젠 아주 글자 해석까지 지 멋대로 하시니..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너 멋대로 해라.
그러면 너는 또 혼자 정신승리하곘지. 새벽까지 혼자서 댓글 남기면서 지가 이겼다고 생각할꺼야.
이거야 말로 아큐정전의 아큐가 따로없지.
     
성룡523 13-03-10 01:29
   
관제개혁이라 하면 아문제도, 통리군국사무아문(군무,내무업무를 담당. 갑신정빈이후 의정부로 통합되다 내부무로 부활)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외교 및 통상업무 담당, 갑오개혁까지 존속) 외아문(통리기무아문) 군제를 친군영으로 세우고 하부에 4영(좌우전후영)을 두게 했다는점, 그리고 청국방식으로 조선의 군사훈련을 했다는점.







조선의 시스템은 청나라의 간섭으로 이미 청나라 시스템을 도입하고있었다............

조선은 청나라의 간섭을 이미 개혁기 이전에도 받고있었기 때문이다


너 이거에 대답한적 한번도 없는데 등신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정도로 청국의 간섭에 시달리다가, "독립"한 후에 청나라 사신이 드나들던 곳에 독립문을 세워서 실제 독립국이 된거다

시모노세키 조약에 "독립국을 청나라가 인정한다"는 조항이 분명히 있다

그럼 그전에 "독립국이 아니다"라는 소리는? 당연히 청나라 속국이란거지

"독립국은 아니고 속국도 아닌데 뭐 그저그런 국가였다" 이럴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연히 청나라 간섭받고 시스템 청나라껄로 바꿨어도??

어거지를 부리면 이렇게 망하는거야
          
서라벌 13-03-10 01:31
   
그니까 븅신아.. 그건 개화기 조선의 톡성상 내정간섭을 당했던 한정된 시기라고 몇 번을 말하냐..
조선이 처음부터 그랬냐고. 왜 자꾸 근대 얘기를 꺼내냐고. 앵무새냐? 같은 말 되풀이하게?
               
성룡523 13-03-10 01:36
   
개화기 이전부터 저 시스템 갖고있었잖아 개쓰레기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개화기떄 청나라 시스템을 갖고있었는데, "다른나라랑 똑같다"는 주장이 어떻게 나와 다른나라 시스템을 갖고있지느 않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 우리가 러시아식으로 군사훈련 하고있었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굿잡스 13-03-10 01:36
   
썽룡아 현대 잽이고 짱개도 미국식 관제로 개편되니

미국 속국이얌?? ㅋㅋ
     
성룡523 13-03-10 01:30
   
지금 이녀석

관제개혁이라 하면 아문제도, 통리군국사무아문(군무,내무업무를 담당. 갑신정빈이후 의정부로 통합되다 내부무로 부활)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외교 및 통상업무 담당, 갑오개혁까지 존속) 외아문(통리기무아문) 군제를 친군영으로 세우고 하부에 4영(좌우전후영)을 두게 했다는점, 그리고 청국방식으로 조선의 군사훈련을 했다는점.


이거 처음들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지 못들은거 5번정도 들었는데 계속 이것만 대답 회피하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떻게 못하니까 가는거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라벌 13-03-10 01:32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 내 이럴 줄 알았다. 내 예상이 딱 맞았지.
내가 가고나서 혼자 지가 이겼다고 정신승리할거라고 예상했는데 역시나구나. 혼자 만족스럽지?
               
성룡523 13-03-10 01:37
   
난 니가 절대 내 말에 반박 못하는 어쩔수 없는 근거를 보고서는

절대 정신승리를 하지 못하고

발끈해서 이렇게 와서 "너 정신승리하니??ㅋㅋㅋ" 같은 댓글달러 올줄 알았단다


이미 개화기이전부터 청나라식의 시스템을 운용할정도로 내정간섭을 받고있었다는 사실을 반박할수 없으니까 ㅋㅋ

이것만 반박못하고 계속 피해왔었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련님납쇼 13-03-10 01:29
   
성룡님 추접해요 ......냄새..나....
나물밥 13-03-10 01:30
   
재키찬아 하나만물어보자 니논리대로라면
숙종때인가 백두산정계비까지 세우면서 청이랑 국경분쟁이있었고 근대에와서 조선인들이 간도로많이이주해서사는데 청관리가 조선인괴롭히니까 고종이 간도지역으로 관리파견해서 조선인 괴롭히는거 막을려고 했는데 니입장에선 이건 무슨 행동이었냐? 속국에서일어난 반란이었냐?
     
성룡523 13-03-10 01:35
   
속국이라면 개념이 뭐냐?

정치적으로 독립되어있지 않은게 속국이지

나라자체가 없어야 속국 이거는 말이안되는거다

우리나라가 영국에게 침공받은다음 청나라가 "영국아, 니들 침공하지말라" 라고 "청나라"랑 조약맺은거 아니?

"시모노세키"조약이 "조선은 완전한 독립국임을 청나라는 인정한다" 라는 조항이 있는건 아니?

조선의 제도, 군사시스템이 청국의 간섭을 받아 청나라식으로 이루어졌었다는건 아니?


결정적으로, 청나라로부터 독립했다는 기념으로 독립협회에서 "독립문"을 세웠다는거 아니?

청나라 사신들이 드나들던 곳에, 청나라로부터 독립하기위해 활동하던 독립협회가 세운거란다.


그런 조선인 괴롭히는 청나라인 떄문에 불만을 가질수는있지. 그렇다고해서 정치적으로 완전하게 독립국으로 인정되는것도 아니고

실제로 타국이 청나라한테 와서 "조선의 개항을 요구한다"고 할정도로 조선을 독립국 취급을 안하고 속국취급을 했단다

딴나라들이 전세계에서 속국취급을 하는데 우리가 속국 아니라고 하는게 무슨의미가있겠니

아니 심지어 우리가 속국 아니라고 하는것도 아니고 속국에서 독립했다고 독립문까지 지었는데
          
굿잡스 13-03-10 01:43
   
속국이라면 개념이 뭐냐?

정치적으로 독립되어있지 않은게 속국이지

>>>>

썽룡아 좀 생각하자.

넌 기본 현대 자주국가라도 미국이라는 영향력 아래 자신의 정치적 역량이 일부

흔들리는 것과 짱개처럼 이민족에 모다구리 당해서 진짜 속민으로 노예 쳐발리는 것과

좀 구분해서 이야기 하자. 무식아.

그리고 아래 독립협회도 나오지만 이때의 독립 어쩌고는 우리 스스로 외세 열강의

시대 스스로 자주 독립국임을 내부적 결속과 자각심을 가지고 이겨내자는 의마가

강한 것임 무식한.
호이짜 13-03-10 01:34
   
Helen Melon
난 사실 중국인을 매우 존경한다능. 그들은 매우 털털하고 순수해.
마치 한국의 30년전을 보는 거 같아.
지금은 한국이 욕심이 가득한 땅이 되었지만 한 때 순수했는데 중국인을 보면 딱 그 느낌이란 거지.
아무튼 한국과 중국이 서로 도와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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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나도 그렇게 느겼어 서너달 동안 하지만 그후 그들의 욕심과 거만은 하늘을 찌르지
필슈나이더 13-03-10 01:35
   
여기에 왜이리 골빈사람들이 많노 도대체가 짱깨의 위험을 감지못하네;이 씹짱깨들 수뇌부들은 이미 대한민국 속국화를 진행한지 오래이고 한국 윗대가리들은 중국의 국책사업인 장기밀매사업을 언론차단 해가면서 괴담으로치부해버리고 한해 실종자는 계속늘어나는 추세이건만 그것도모르고 일본붙잡고 늘어지네;일본이 감기라면 중국은 암적존재인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네;인천먹히고 제주도 먹히고 서울먹혀봐야 차리지.일본은 독도를 먹을려고하지만 중국은 한반도를 먹을려고 합니다. 정신좀 차리쇼  역사가 보여주듯 씹짱깨는 한반도를 계속 침입해왔고 앞으로도 그럴꺼임.정신좀 차리쇼  소잃고 외양간 고치지말고
서라벌 13-03-10 01:36
   
아까 독립협회, 독립문가지고 떠들어서 마지막으로 글 남기고 간다.
http://terms.naver.com/entry.nhn?cid=1593&docId=543878&mobile&categoryId=1593]
들어가서 잘 읽어봐라. 어디 어느 구절에 청나라의 지배로부터 독립한다는 구절이 있는지.

(1) 자주국권 사상

독립협회의 자주국권 사상은 국가의 자주·평등 및 국가주권의 확립을 통해 외세의 침탈로부터 국권의 상실을 막고 자주 독립의 주권국가를 수립하려 한 근대적 민족주의 사상이었다.

첫째로, 독립협회는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침략으로부터 위협받고 있는 국가의 독립을 지키는 것이 최대의 민족적 과제라 인식하였다. 국가 독립의 수호는 국가 자주권을 지키는 데서 가능하고 국가 자주권의 수호는 국력의 배양에서 가능하며, 국력의 배양은 민력의 양성에서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따라서 독립협회는 민권 보장과 국민 참정에 의한 근대적 이를 통해 배양된 전 국민의 힘으로 외세의 간섭을 막고 국가 자주권을 지킬 수 있다는 이론을 전개하였다. 여기에서 독립협회의 자주국권 사상은 자유민권 사상과 결합되어 민주주의를 내포한 근대 민족주의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둘째로, 독립협회는 국가자주권론과 함께 국가평등권론을 제기하였다. 독립협회는 국제사회에서 평등한 지위와 권리를 가진다는 국가평등사상을 바탕으로, “우리나라를 다른 나라와 동등하게 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또 “우리 군주가 다른 나라의 군주와 동등하게 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독립협회는 종래의 화이적(華夷的) 세계관과 사대적(事大的) 질서관에 기초한 동아 문화권의 차등적 국가관과 불평등한 국제질서를 철저히 부정하였다. 사대주의의 상징인 영은문(迎恩門) 자리에 독립문을 세워 국가의 독립과 평등의 상징으로 삼았다.

뿐만 아니라, 청일전쟁 후의 일본의 간섭과 아관파천 후의 러시아의 간섭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당시 평등을 가장한 근대적 국제질서 아래 실제적인 불평등 관계를 비판하고, 개항 이후 열강과 맺은 모든 불평등 조약의 폐기를 주장하였다.

셋째로, 독립협회는 국가의 자주·평등권과 더불어 이권양도 반대론을 제기하였다. 독립협회는 국가의 자주독립은 자원과 산업의 자주적 개발을 통한 자립 경제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믿고, 어떠한 이권의 양도도 강력히 반대하였다.

나아가 이미 열강에 빼앗긴 이권도 외교 통로를 통하여 조속히 돌려받아야 하고, 회수가 불가능하면 매입해서라도 국가 이권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과거의 이권 양도가 대부분 비밀 외교로 이루어진 사실에 비추어, 공개 외교를 통해야 국가 이권의 상실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넷째로, 독립협회는 자주독립의 유지 방안으로 중립외교론을 제기하였다. 열강의 이권침탈을 우선적으로 막고 한반도에서 국제적 세력 균형을 최대한 유지시켜 개화자강의 시간적 여유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 자주중립외교를 주장한 것이다.

독립협회는 한반도에서 열강의 세력 균형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정부가 공명정대한 자주외교를 견지해야 하며, 자주외교를 위해서는 어느 나라에도 치우치지 않는 등거리 중립외교를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다섯째로, 독립협회는 자주국권의 근본적인 방법으로 개화자강론을 주장하였다. 대한제국의 독립이 열강의 세력균형 속에서 이루어진 명목상의 독립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세력균형이 깨어지기 전에 자주독립의 기초를 확고히 다져야 하며, 이것은 개화자강의 방법으로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이 개화자강은 체제 내적인 부분적인 개혁이 아닌 국정 전반에 걸친 일대 변혁, 즉 변법자강을 의미한다. 독립협회는 선진 과학기술문명 뿐만 아니라 근대적 정치문화까지 도입해 전면적으로 근대 체제를 갖추는 것을 열강의 근대적 침략세력을 막고 자주독립의 주권국가를 수립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2) 자유민권 사상

독립협회의 자유민권사상은 인권의 자유와 평등 및 인민주권의 확립을 통해 인권·민권을 보장하고, 국민의 단합된 힘으로 자주국권을 수호하여 근대적 국민국가의 수립을 추구한 민주주의 사상이었다.

첫째로, 독립협회는 국민자유권론을 제기하였다. 독립협회는 천부인권론(天賦人權論)에 근거해 신체와 재산권의 자유는 지배층의 전근대적 압제와 수탈로부터 보호되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 인식하였다.

따라서 독립협회는 죄형법정주의·증거제일주의·영장제도·공개재판권·피고변호권 등 근대적인 법률과 공정한 재판에 의한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려 하였다. 그리고 조세법률주의·재정공개주의, 재무와 조세 행정의 일원화를 통해 무명 잡세와 중세(重稅) 및 관인층의 수탈로부터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려 하였다.

또한 독립협회는 기본권의 하나로 언론(출판)·집회(결사) 등 국민의 정치적 자유권을 주장하였다. 언론의 자유는 천생권리(天生權利)라 주장하였다. 언론의 자유가 있어야 여론이 형성되어 국정을 바로잡을 수 있고 국민의 생명·재산권도 보장할 수 있다고 하여, 언론 자유는 국가 중흥의 긴급사라고 역설하였다.

언론과 함께 집회의 자유와 그 장려를 강력히 주장하였다. 더불어 정당의 출현과 그 활동의 자유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둘째로, 독립협회는 국민자유권론과 더불어 국민평등권론을 제기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천부인권론과 법 앞에서의 만민평등의식에 입각해 인신 매매의 부당성을 비판하고 양반 의식의 청산을 촉구했다. 나아가 노비제도와 반상제도(班常制度)를 현실적으로 철폐하고자 하여 신분 평등의 실현을 추구하였다.

또한, 독립협회는 남존여비 의식과 여성의 남성에의 종속적 지위를 타파하고, 여성의 인간적·사회적 지위를 향상시켜 남녀 평등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국민평등권은 갑오개혁을 통해 어느 정도 법제화되었으므로, 독립협회는 근대적 신법의 실천과 법률 적용의 평등을 주장하여 기회 균등의 평등사회를 구현코자 하였다.

셋째로, 독립협회는 국민의 자유·평등권에 이어 국민주권론을 제기하였다. 국가란 인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통치자와 피치자간에 통치 계약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회계약론에 근거하여, 국가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국가 기구는 국민을 위하여 설립된 것이므로, 국가의 주인은 바로 국민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국민주권론에 의해 국왕이 곧 국가라는 전통적인 군주국가관에서 탈피하여, 국민이 곧 국가라는 근대적 국민국가관이 나올 수 있었다.

넷째로, 독립협회는 국민주권론에 근거하여 국민참정권론을 제기하였다. 국민은 국왕과 지배층에게 운명이 맡겨진 통치의 대상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고, 주권을 가진 정치의 주체임을 천명하였다.

그리고 국민은 주권자로서 정부를 감독, 협찬할 권리와 의무가 있기 때문에 스스로 천부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국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국민참정의 논리를 폈다.

독립협회는 이러한 정치 원칙 아래, 공개 정치·여론 정치·의회 정치·정당 정치·입헌 정치 등 근대 민주주의 정치관을 가지고, 국민주권과 군주주권의 절충 형태인 입헌대의군주정체를 구상하여, 의회(상원) 설립을 통한 국민 참정을 실현코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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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침략으로부터 위협받고 있는 국가의 독립을 지키는 것이 최대의 민족적 과제라 인식하였다.

2.둘째로, 독립협회는 국가자주권론과 함께 국가평등권론을 제기하였다. 독립협회는 국제사회에서 평등한 지위와 권리를 가진다는 국가평등사상을 바탕으로, “우리나라를 다른 나라와 동등하게 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또 “우리 군주가 다른 나라의 군주와 동등하게 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3.따라서 독립협회는 종래의 화이적(華夷的) 세계관과 사대적(事大的) 질서관에 기초한 동아 문화권의 차등적 국가관과 불평등한 국제질서를 철저히 부정하였다. 사대주의의 상징인 영은문(迎恩門) 자리에 독립문을 세워 국가의 독립과 평등의 상징으로 삼았다.

뿐만 아니라, 청일전쟁 후의 일본의 간섭과 아관파천 후의 러시아의 간섭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당시 평등을 가장한 근대적 국제질서 아래 실제적인 불평등 관계를 비판하고, 개항 이후 열강과 맺은 모든 불평등 조약의 폐기를 주장하였다.

안 보이냐??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으로부터 독립을 '지킨다' 라고 나오지 않았니? 니 말대로 어디에 청나라의 지배로부터 독립한다는 말이 나오냐? 애초에 청의 지배를 받았으면 독립을 '지킨다' 라고 하겠냐? '되찾는다' 라고 하겠지.
이렇게까지 해도 못 알아먹으면 나도 어쩔 수 없다. 넌 혼자 정신승리나 해라.
     
성룡523 13-03-10 01:42
   
http://terms.naver.com/entry.nhn?cid=807&docId=947758&mobile&categoryId=1948

"청나라의 사신을 영접하던 장소인 영은문과 모화관을 허물고 청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중심사상으로 활동하던 독립협회가 세움"

봐라.ㅋㅋㅋ 자폭하고 있네

“우리나라를 다른 나라와 동등하게 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또 “우리 군주가 다른 나라의 군주와 동등하게 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건 뭐냐. 지금 우리나라가 다른나라와 동등하다는 소리냐, 동등하지 않단 소리냐??????/

우리 군주가 다른나라 군주와 같단 소리냐, 같지 않단 소리냐?????????????

말꼬투리 붙잡고 억지 피우고있네 ㅋㅋㅋㅋ "개화기 이전부터 청국의 간섭이 심해 청나라의 시스템을 유지하고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던놈이

독립문, 또 시모노세키 조약에서

"청나라는 조선의 독립을 완전히 인정한다" 라는 조약이 있었는데 이건 전혀 설명하지 못하지

청나라가 ㄷ조선의 독립을 인정한다는 조약을 왜하냐 그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본이 그냥 조선 먹으면되지 청일전쟁을 왜했고 저 조약을 왜맺었냐

몇번을 말해도 이상한 말꼬투리 붙잡아서 정신승리 운운하는꼴이란


너는 정신승리 절대 못해서, 발끈해서 못 떠나거나 그냥 쳐발리고 가는수밖에 없을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서라벌 13-03-10 02:03
   
븅신.. 역시 정신승리 중이구나. 우리나라를 다른 나라와 동등하게 해야 한다라는 말의 의미를 모르냐? 당시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고,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니 힘을 키워서 당당하게 주권국가로 나가자는 의미지 우리가 다른 나라와 동등하지 못하다는 말을 강조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냐? 그리고 당시 우리가 중국에 사대 외교를 하고 있었으니 중국의 황제와 조선의 국왕이 그럼 동등하겠냐? 그러니까 사대외교를 철폐하기 위해 동등해지자는 말이 아니냐. 넌 왜 말을 니 멋대로 해석하고 지어내냐? 아주 지 혼자서 멋대록 해석질이여.
그리고 개회기 이전부터 청국의 간섭이 심해 청나라의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무슨 시스템? 니가 올린 거 말이냐? 그게 근대 개화기 이후지 그 이전이냐? 영, 정조시대 어쨌느냐고 묻는 바에는 왜 대답을 못하니. 너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그저 문장 그대로를 해석할 뿐이지. 청나라는 조선의 독립을 완전히 인정한다는 것도 조선에의 내정간섭을 폐하고 일본이 먹겠다는 뜻이라는데 너는 왜 문장 그대로를 읽고 자빠졌냐? 독립이라는 말이 꼭 누군가의 압제로부터 벗어나는 것만이 독립이냐? 자식이 부모로부터 독립한다 라는 말 못 들어봤어? 자식이 부모로부터 독립 한다는 말이 부모의 압제로부터 해방한다는 뜻이냐? 부모의 도움 없이 홀로 선다는 뜻이지? 너란 새끼는 지 멋대로 해석하면서 지가 맞다고 우기고 있어. 당시 조선은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외세에 지나치게 의존했고, 그러다보니 잠깐 청국의 제도를 받아들인것을 가지고 청국의 속국이었다고?? 그럼 고려시대 당의 제도를 모방해서 2성6부제를 운영했는데 그럼 고려도 당나라 속국이냐? 당시의 특수한 시대적 상황은 고려하지 못하고 뭘 혼자 떠들고 지 말이 맞다고 정신승리하고 자빠졌냐. 일본이 그냥 먹으면 된다고? 일본이 그냥 먹을거 같으면 무조건 힘으로 누르지 한국 역사는 왜 왜곡하며 문화말살정책은 왜 하니? 무슨 일이있어도 명분이라는 게 중요한거다. 그러니까 독립을 인정한다는 구절을 집어넣고 청국의 내정간섭을 완전히 차단한거고 븅신아.
너처럼 문장 그대로 읽고 해석하다간 죽도 밥도 안돼 장애야.. 제발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봐. 문장 하나에 얽매이지 말고.. 모자란 자식아.
서라벌 13-03-10 01:39
   
애초에 독립의 참뜻을 모르는 놈이랑 무슨 논쟁을 한다고.. 독립하니까 일제해방 밖에 생각이 안나고 그러다보니 청나라한테도 지배를 받았구나.. 하는 머저리 같은 생각을 한거지. 홀로 독, 설 립. 홀로 일어선다. 자주적으로 내정개혁을 하여 독립을 지킨다, 이뜻을 가지고 청나라의 지배로부터 벗어났다는 터무니없는 망상을 지껄이니.. 저런 놈들 또 있을까봐 겁난다.
     
성룡523 13-03-10 01:43
   
http://terms.naver.com/entry.nhn?cid=807&docId=947758&mobile&categoryId=1948

"청나라의 사신을 영접하던 장소인 영은문과 모화관을 허물고 청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중심사상으로 활동하던 독립협회가 세움"

봐라.ㅋㅋㅋ 자폭하고 있네

“우리나라를 다른 나라와 동등하게 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또 “우리 군주가 다른 나라의 군주와 동등하게 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건 뭐냐. 지금 우리나라가 다른나라와 동등하다는 소리냐, 동등하지 않단 소리냐??????/

우리 군주가 다른나라 군주와 같단 소리냐, 같지 않단 소리냐?????????????

말꼬투리 붙잡고 억지 피우고있네 ㅋㅋㅋㅋ "개화기 이전부터 청국의 간섭이 심해 청나라의 시스템을 유지하고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던놈이

독립문, 또 시모노세키 조약에서

"청나라는 조선의 독립을 완전히 인정한다" 라는 조약이 있었는데 이건 전혀 설명하지 못하지

청나라가 ㄷ조선의 독립을 인정한다는 조약을 왜하냐 그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본이 그냥 조선 먹으면되지 청일전쟁을 왜했고 저 조약을 왜맺었냐

몇번을 말해도 이상한 말꼬투리 붙잡아서 정신승리 운운하는꼴이란


너는 정신승리 절대 못해서, 발끈해서 못 떠나거나 그냥 쳐발리고 가는수밖에 없을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굿잡스 13-03-10 01:45
   
그래 무식아. 짱국이 대외 외교관들 모시는 시설이나

잽이 미국 울나라 모시는 건물들 존재하니 울 속국이지?? ㅋㅋ 그런겨 ㅋㅋ
성룡523 13-03-10 01:45
   
여태까지 대화 라인 요약해볼께요 틀린거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a가

'난 중국애들이 싫어. 우리나라 너무 많이 괴롭힘. 일본보다도 싫어.'

라고 말했는데

b가

'뭐? 우리나라가 괴롭힘 당했다구? 말도안되는소리하지마. 그건 그냥 보기에만 그런거고

사실 상호간의 조약 비슷한거야.'

요 논리가 계속 이어지다가 지금처럼 싸움난거같은데요. 이거 a가 자신의 논리의

증명을 위해서는 중국이 우리나라 괴롭힌 역사를 말해야 하는데 필연적으로

우리나라를 까는것처럼 보일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단편적으로만 보고

'너 짱깨, 너 일빠'

막 요래요 ㅎㅎ
     
성룡523 13-03-10 01:46
   
딱 이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기SP 13-03-10 01:53
   
성룡523= 쪽바리  난 너글적은거 몇번보고 쪽바리  인거 알알다  한글  배워 와서  왜곡하느라 애쓴다 ..2ch하고 독같은  주장 하는거보고  확신했지..쪽바리  인정~
     
굿잡스 13-03-10 01:51
   
ㅋㅋㅋㅋㅋㅋ

우리나라가 괴롭힘 당했다구? 말도안되는소리하지마> 무식이 혼자 북치고 장구치네 ㅋㅋ

지금같은 자유무역 시대도 아니고 과거야 힘의 논리가 더 팽팽했던 시절에

우리내 고구려도 신라 백제 모다구리 했고 신라도 혹은 백제도 마찬가지고.

단순히 그런게 아니고 무식아

기본 반청복명으로 나온 현 중공과 정복 이민족사는 좀 구분해서 말해라는 거다

누누히.

그리고 어디 자꾸 국제 역학에서 과거나 오늘이나 어느 나라가 그 나라 국호와 자주권이

존재해도 주변 역학적 관계로 때론 영향력을 받는 부분을 무조건 속국 드립 치는 무개념은

좀 자제하자.  그리고 일제 시대 독립 협회 나오디?? 무식한 ..
          
성룡523 13-03-10 01:55
   
내가 말 안하려고 했는데 내가 멘사코리아 회원이거든

근데 얘 말하는거 너무 횡설수설하고 어리버리해서 진짜 너무 무식하고 체계가 없어서 전혀 못알아먹겠다

진짜 지능낮고 무식해보인다. 너랑 싸우는게 불가능해. 대체 뭔말하는지 모르겠어ㅋㅋㅋㅋㅋㅋㅋ
               
굿잡스 13-03-10 02:00
   
내가 멘사코리아 회원이거든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
마법사토끼 13-03-10 01:52
   
그리고 이글만 쓰고 갈께요. 서라벌님과 성룡님은 거의 속국이라는 단어의 정의싸움이거든요?

근데 굿잡스님은 아예 상식이 없는게 눈에 보이니까 댓글 안다는게 나을듯..

님논리 반박할께 수백가진데 논리는 가지고 얘기하라니..

님보다는 제가 교육 많이받았을듯 싶네요 ㅎㅎ
     
성룡523 13-03-10 01:56
   
진짜 딴놈은 몰라도 굿잡스 얘는 너무 무식해서 싸우는거 자체가 불가능함 ㅡㅡ;;;;;;;;;;;

진자 뭔 개소리를 하는거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길정도임 쟤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지하게 조선족이나 탈북자 아닌가? 생각이 든다;; 아니면 50넘은 나이먹은 사람이거나

진짜 적어도 저사람 20대 우리 또래로 보이진 않음 ㅡㅡ;;;
     
굿잡스 13-03-10 01:57
   
ㅋㅋ

님논리 반박할께 수백가진데 논리는 가지고 얘기하라니.. >??? 그 수백가지 중에

어디 하나라도 내보인적 있음?? ㅋㅋ 쌍으로 잘 노삼 ㅋㅋ뻔히 열폭질 보이는 ㅋㅋ
웃기SP 13-03-10 01:58
   
마법사 토끼= 아까  부터 니도 성룡글에  가만있다 가끔 나와서  동조 했지  니도 같은 부류  아니면..성룡523 하고  동일인이다~까고 있네  아무말 안하고  가만있다  뭐라고  ..관심있는늠이 주장하나  안하고  까는소리 하고 잡빠졌넹..
     
성룡523 13-03-10 02:00
   
너도 무슨 시1발 조선족같음 말투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통 한국사는 20대 또래가 이런말투 쓰나?????? 절대아닌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완전 나이먹은 사람이거나 탈북자, 조선족이라서

뭔 개소리하는지 못알아듣겠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적어도 저 서라벌 얘는 뭔소리하는지는 알겠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얘네둘 무슨 덤앤더머같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기SP 13-03-10 02:14
   
성룡523 이늠아 20살 처먹고  니가 20대면 알면 얼마나 알고  배우면 얼마나 배웠겠냐..

어디서 친일 사학자한테  애기듣고  그게 전부인줄  알지  미련한늠~
          
웃기SP 13-03-10 02:16
   
이늠이  지가 20대니  여기 인는사람이 다 20대인줄아나.. ㅉㅉ 20처먹고 알면 얼마나 알고  배우면 얼마나 배웠겠냐...그러니  한국인이  백인 혼열 추앙한다는 소리나  지껄이지  개 빙 신  인증하네  어린늠이~
     
마법사토끼 13-03-10 02:06
   
어르신 고정하세요 ㅎㅎ

제 스스로는 서라벌님과 성룡님의 말씀에 전부 그럴듯한점이 있다 생각해요.

다만 보기싫게 팩트를 가져다 줘도 인정안하고 다굴까는게 한심해보여서 좀 거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스스로가 떳떳하니까 운영자에게 문의해서 성룡님과 같은사람인지 물어보세요.

그러고보니 님 저어기 위에 성룡님하고 저를 잽 조선족 짱깨라고 매도하셨던분 아니세요?

유치한 이분법적 논리 보기싫습니다. 우리나라 까면 다 짱깨 쪽바리 조선족이야!

유치원생 수준이시군요ㅋㅋㅋ 애초에 성룡님이 자극적인 단어선택을 해서 그렇지

틀린말씀 하시는거 아니잖아요?  고등학교 졸업 하셨어요? 다 근현대사에 나오는건데 ㅎㅎ
성룡523 13-03-10 02:02
   
이쯤에서 정리

일본이랑 싸운 역사가 임진왜란,2차대전때 합쳐서 100년도 안되는데

중국은 ㅡㅡ;; 뭐 대체 몇천년이나 싸워왔는지... 그냥 한국 역사 자체가 중국한테 안먹히고 살아남기.txt
이거임;; 중국은 뭐 1,2차 세계대전 이외에 가장 큰 규모의 전쟁이라는
수,당vs고구려 대전도 했었고.. 진짜 어마어마하게 한국인 역사적으로 많이 죽였죠
또 조공, 여자도 보내고 속국으로서 굴복한 역사도 많고

일본이랑 진짜 넘사벽 비교자체가 안되는 원수같은 나라인데.. 물론 일본도 피해 많이 줬지만
최근에 피해 많이준게 일본이라서 그런지 반일감정이 반중감정이랑 너무 비교가안됨;;
625가 더 최근인데 그러고보면;;
진짜 최근까지 역사적으로 꾸준히 대규모 전쟁을 중국이랑 해놓고도 왜 반중감정이 이리 적은지..
중국 아니었으면 우리나라 분단도 안됐을텐데..

중국이 진짜 까야될 나라임.. 우리나라 역사보면;; 중국인들이 죽인 한국인이
일본, 다른나라사람들이 죽인 한국인 다 합쳐봐야 중국인에 비해 1%밖에 안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진짜 죽일놈들.. 당나라는 연합해놓고도 신라 뒤통수치고;; 예나 지금이나 외교관계는 최악

중국 국경 맞대는 나라중에서 친한나라가 없다죠 인도랑 베트남이랑도 싸우고 한국,일본 말할것도 없고..



이글 하나 썼다가 속국이다 속국 아니다로 몇백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중간에 짱꺠로 몰리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웃기SP 이사람이 이거보고 짱꺠라고 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난독 국뽕의 선구자


결론 : 그니까 우리는 중국을 싫어하면 됩니다.
     
필슈나이더 13-03-10 02:06
   
제가 하고싶은 말을 혼자서 계속 해오셨군요  지금이 쌍팔년도 처럼 뭐만하면 빨갱이로 몰아가듯 쪽빠리로 몰아가는 수모를 당하셨네요. 일본이 감기라면 씹짱깨는 암적존재인데 인간들은 그걸모름; 잉ㅣ 짱깨 수뇌부의 한반도 속국화는 진행됬음  인천 제주도 넘어가면 다음은 서울  그다음은 한반도 ㅂㅂ
          
성룡523 13-03-10 02:08
   
그렇죠.......... 국뽕 난독들이 많아서 제가 다굴 수모를 좀 겪었습니다.


아니면 짱꺠겠죠. 말투를 보아하니 조선족일 가능성도 꽤 되는듯
웃기SP 13-03-10 02:03
   
성룡 523  너글도  한쪽으로  엄청 치우쳤어...너 논리는  그대로 쪽바리 2ch  논리야..굿 잡스님이  너보다는 역사적으로  해박한  지식 을  가지고 있다  너 딱하나 들고 와서  ..그거도  한쪽으로  치우쳐서 보지  ..미련한늠..ㅉㅉ
     
성룡523 13-03-10 02:04
   
그래 국뽕난독 둘이서 서로 딸딸이 쳐줘라. 그게 좋겠다.

솔직히 말투 비슷한걸로 치면 니네 둘이 진짜 동일인물 같지만 ㅋㅋㅋ 똑같은 멍청이짓은 안한다
웃기SP 13-03-10 02:05
   
넌 쪽바리 잔아  꺼져라  고만~
굿잡스 13-03-10 02:05
   
근자에 사신이 그곳에 가서 물어보고 알았지마는, 임천각(臨川閣)에는 장서가 수만 권에 이르고, 또 청연각(淸燕閣)이 있는데 역시 경(經)ㆍ사(史)ㆍ자(子)ㆍ집(集) 4부의 책으로 채워져 있다 한다.국자감(國子監)을 세우고 유관(儒官)을 선택한 인원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었으며, 횡사(黌舍 학교를 말함)를 새로 열어 태학(太學)의 월서계고(月書季考)하는 제도를 퍽 잘 지켜서 제생(諸生)의 등급을 매긴다. 위로는 조정의 관리들이 위의가 우아하고 문채가 넉넉하며, 아래로는 민간 마을에 경관(經館)과 서사(書社)가 두셋씩 늘어서 있다. 그리하여 그 백성들의 자제로 결혼하지 않은 자들이 무리지어 살면서 스승으로부터 경서를 배우고, 좀 장성하여서는 벗을 택해 각각 그 부류에 따라 절간에서 강습하고, 아래로 군졸과 어린아이들에 이르기까지도 향선생(鄕先生 자기 고장의 글 가르치는 선생)에게 글을 배운다. 아아, 훌륭하기도 하구나!

-송나라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1123년의 내용)-

 

우리나라는 문물과 예악이 흥행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며 장삿배가 연이어 내왕하여서 값진 보배가 날마다 들어오니, 중국과 교통하여도 실제로 소득이 없을 것입니다. 거란과 영구히 절교하지 않을 터이면 송 나라와 교통함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하니 따랐다.
 <고려사절요 문종 12년>


 

왜국은 일본국이다.
본래 이름인 왜를 부끄러워 했는데, 극동에 있어서 스스로 일본이라 부른다.
지금 고려에 신하로서 속하고 있다.
-도화견문지(1080년경에 송나라의 곽약허가 지은 책)

 


“옛 사서(역사책)에 따르면 고려의 풍속은 사람들이 모두 깨끗 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그들은 항상 중국인이 때가 많은 것을 비웃는다.

(고려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목욕을 한 뒤 집을 나서며,

여름에는 하루에 두 번씩 목욕을 한다.”  -고려도경
서라벌 13-03-10 02:06
   
에효.. 글 쓰는 수준 하고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나 남발해대고, 문장 해석도 지 멋대로고, 무조건 국뽕이라고 몰아가는 거 하며.. 그럼 너는 친일식민사학에 쪄든 국까냐?
결론이 그니까 우리는 중국을 싫어하면 됩니다. 라고?? 정말 수준떨어져서 원.. 글을 그따구로 밖에 못 쓰냐?
진짜 나이가 몇 살이냐? 좆중딩 밖에 안 됐지? 이건 고딩 수준도 안 돼는데.. 이런 어린 놈이랑 대체 내가 뭘..
     
성룡523 13-03-10 02:07
   
이럴줄 알았다 너는 정신승리 절대 못해서 발끈해서 올수밖에 없다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간다면서 발끈해서 오셨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기SP 13-03-10 02:08
   
성룡523  웃기고  자빠졌넹  니같이  지식도 없이  청이니.독립문 하나 들고  ..그거도  니맘대로  해석하고

굿잡스님같이  해박한 지식과  방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한테  뭐라고  지껄이는 자체가  우습다  ..ㅉㅉㅉ
나물밥 13-03-10 02:08
   
난도대체 청국이 우리나라에 왕책봉인정하냐안하냐 말고 어떤 내정간섭을했는지 모르겠네.. 근대에와서 개화기때 우리나라가 이미근대화된 일본이나 청 두나라중 하나는 따라모방?식으로 제도개편해야했던건 당연한거아닌가? 그럼 어떤나라를보고배우는데? 조선이ㅇㅇ니논리의 잘못된점은 당시국제정세, 동아시아정세, 서구열강의 아시아침략, 그중조선이 처한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않는다는거다. 말잘했네 청이 조선은 자주독립국가라고 말한건 조선이 서구열강의 각축장이되니깐 행여나 뭐때먹을꺼있나 간섭하지말라는거지 이 간섭이란게 내정간섭 및 속국의 개념이아니라고. 국가들마다 영향력이라는게있는데 인접한 국가의 영향력은 서구열강들보다 당연히 강할수밖에없지? 청일전쟁 러일전쟁 다 당시국제정세를 봐야지...다설명해야되냐? 흥선대원군이랑 명성황후랑 다 끄집어 내야되?
     
서라벌 13-03-10 02:11
   
븅신은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모릅니다. 당시 시대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되는대로 떠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장 하나로 모든것을 설명하려하죠. 답이 없습니다. 당시 우리가 근대화로 나아가기 위해 지나치게 외세에 의존했던 잘못이 있었고, 그러자니 청의 제도를 모방한 바가 있는데 그걸로 속국이랍니다. 허허.. 그럼 지금 우리는 미국 속국입니까? 애초에 지금 정치 자체가 미국(서양) 정치체제 아닙니까.
자유민주사상이 우리나라 사상인가요? 외국에서 들여왔으니 오늘날 우리도 속국이겠군요. 이게 바로 성룡의 논리입니다. 아주 지멋대로죠.
서라벌 13-03-10 02:08
   
자기랑 논리가 틀리면 국뽕. 억지를 쓰는것도 아니고 열심히 근거를 갖다대도 혼자 멋대로 해석하는 놈이 무슨 국뽕 운운이냐. 국뽕 소리 안들으려면 열심히 자학하고 자학사관을 배워야 겠구나. 그래 우린 수천년간 중국의 지배를 받은 속국 나부랭이였다~ 자 이제 난 국뽕이 아니지? 제대로 된 역사관을 가지고 있으니 동북공정도 착착 진행되겠고 동북공정 열심히 도와줬으니 중국 정부에서 훈장이라도 내려주겠구나.
     
성룡523 13-03-10 02:10
   
이럴줄 알았다 너는 정신승리 절대 못해서 발끈해서 올수밖에 없다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간다면서 발끈해서 오셨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라벌 13-03-10 02:12
   
궁금해서 함 들어와봤다. 어쩔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발하면서 정신승리 할걸 기대하고 들어와봤지. 아니나 다를까. 너 잘난 맛에 살아라. 누가 뭐래냐.
     
필슈나이더 13-03-10 02:13
   
아니죠 저분은 과거를 거울삼아 병1신처럼 또당하지 말고 대비하자고 하는거임
          
성룡523 13-03-10 02:15
   
국뽕은 답이없다는게 느껴짐.. 저사람들이랑 얘기함 해보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필슈나이더 13-03-10 02:21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요 더러워서 피하지  그냥 상대 하지말죠. 꽉막힌 늙은 할아범탱이랑 얘기하는 느낌임
          
서라벌 13-03-10 02:18
   
과거를 거울 삼으려면 제대로 삼아야죠. 되도 않는 논리가 어떻게 거울이 됩니까?
거울은 있는 그대로를 비춰주는게 거울이지 지 멋대로의 자의적 해석질은 거울이 아닙니다.
웃기SP 13-03-10 02:10
   
설룡 523 니가 정신슬리 할려고 지럴허는거야  ..다른사람은..전체를 보지만  넌 너자신을  위한 정신승리 잔아  너같은 늠은 끈질기지.. 겪어 봐서  다알지~
추세추종 13-03-10 02:10
   
성룡이 얘기하고 싶은건 도대체 뭐냐? 과거 중국은 수천년간 수도없이 우리를 괴롭혀왔고 원나라 청나라에게 수백년간 식민지배를 당했는데 고작 일제에게 식민지당한 100년을 더 원통해하고 더 미워하는게 이해가 안간다는 거냐?
 관념적 단어인 중국때문에 말이 자꾸 새는 것 같은데 과거 우리가 굴욕적 저자세를 원나라 청나라에 취한건 틀림없는 사실인데 현재 중국 즉 중화인민공화국에 우리가 앙심을 품을 필요는 없는것 아닌가? 얘들한테 6.25로인한 분단으로 시비거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청나라때 노예생활 하던 애들이 손문을 기치로 멸만흥한을 내세우며 한족위주의 나라를 세운게 바로 중화인민공화국이고 52개 소수민족의 연합이라 하나 그 영향력이나 인구비례로 볼때 현재 중국 정체성은 한족에게 있다해도 과언이 아닌데 왜 원나라 청나라때의 일을 자꾸 끄집어냄? 원나라 청나라와 지금의 중국이랑 민족적 정체성이 같음? 중국놈들 동북공정 논리도 아니고 말이야..
당연히 우린 일본한테 더 빡침
식민지배 당할때의 그 일본원숭이가 새끼치고 또 새끼친게 지금 일본방사능원숭이임.
     
성룡523 13-03-10 02:12
   
625에 중국 시비걸 이유가 아주 충분한데ㅋㅋ

당신 얘기 하는게 중국애들 주장이랑 뭐가 다름?
          
capella 13-03-10 19:35
   
이 님은 정말 어떻게 이렇게 생각이 되지 일본피반정도 섞인 혼혈인데 한국인일가능성이 큼 중국이 우리나라한테 나쁜짓많이했지 근데 중국이 지들은 잘못없다고 우김? 막 생체실험하고 여자들 위안부로 끌고가놓고 그 위안부들은 원래부터 창녀였다고 우김? 청나라떄 공녀를 바치긴했지만 우리민족은 정부관리도 될수있었고 황후도 될수있었음
     
마법사토끼 13-03-10 02:20
   
'지금 중국애들이 옛날 청나라 원나라 송나라 금나라 명나라 전부 우리 '중국'역사다.

라고 말하고 있는게 결론적으로 화가난다' 라는게 제 생각인데 어떠세요?

전 중국애들 중화사상 되게 밉거든요 ㅎㅎ 물론 위에도 말했듯이 일본애들도 싫어합니다.

제 의견좀 펼쳐보자면 민족의식이란 실제 핏줄보다는 자라면서 보고 배움으로써

생겨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중국애들이청이든 원이든 금이든 우리나라의 역사다

라고 말하는것은 결론적으로 옛날에 우리나라(중국)이 조선 정ㅋ벜ㅋ함  이라고 말하는것과

다를바가 없어요. 그러니까 동북아공정역사를 듣는 우리나라 입장으로써는 빡칠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성룡님이 '난 중국 싫어'라고 말한거 같아요. 다만 일본이 더 싫다 중국이 더 싫다는

개인의 취향이니까 존중하는걸로 하죠 ㅎㅎ 더싸웠다간 이분들 서로 죽이겠음.
성룡523 13-03-10 02:14
   
국뽕 + 조선족들이 중국 까지 말라고 발광하는거였네

내가 일본 까지 말라고 하는 주장이 단 하나도 없는데다, 중국은 오히려 까자고 하고있는데 나한테 짱꺠래 ㅋㅋㅋ

진짜 말같지도 않은 주장이네 속국이란 논쟁은 뭐 개념이 다르니까 끝이 없다 치고

중국이 한국에 수천년간 못된짓 해왔는데 앙심 품을 필요가 없다는건 왠 개소리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라벌 13-03-10 02:17
   
결국 니 대가리 수준으로는 그렇게 밖에 이해할 수 없는거지.. 중국까지 말라고 발광한다고? 누가?
여기 아무도 그런 사람 없다.
          
성룡523 13-03-10 02:18
   
남자새끼가 한입으로 두말하긴 ㅋㅋ 간다고 했으면 가라 븅1신아.

추세추종 : 현재 중국 즉 중화인민공화국에 우리가 앙심을 품을 필요는 없는것 아닌가


이거 안보임? 니가 아무도 그런 사람없다고 "명백히" 틀린소리 했지?

인정해라 ㅋㅋ 넌 언제나 틀린소리나 하고다니지
     
굿잡스 13-03-10 02:17
   
애 완전 난독증 심한 중증이네 ㅋㅋ (멘사 회원 어쩌고 드립질까지 쳐하더만 ㅋㅋ)

아 손놨다 ㅋㅋ 귀에 무시  박았나?? 아니지 눈에 무시??ㅋㅋ
          
성룡523 13-03-10 02:18
   
인증해줄까? 너같은 머저리한텐 못믿을 말이냐?ㅋㅋㅋㅋ
               
웃기SP 13-03-10 02:21
   
성룡523..20대 처먹은 늠이  어디서 단편적인 지식가지고  어른들한테  까불지 말고  고만 가라~
나물밥 13-03-10 02:16
   
니가나한테단 댓글에 정치적으로 독립되어있지않은게 속국이라고 되어있는데 이말은 외교적으로도 독립되어져있지않다와 일맥상통하는건 알지? 정치와 외교는땔래야땔수없는거니까 설명은 생략할께ㅇㅇ
니가 계속 언급하는 시모노세키는 1895년에 맺은거고
조선이랑 일본이랑 맺은 조약이 하나있는데 이건 1876년이네? 강화도조약이라고 참 굴욕적인 조약인데 알려나모르겠다ㅎㅎ... 어떻게생각해? 정치적으로 독립되어있지 않은 속국 조선이 자주적으로 다른나라와 조약을 맺은거에 대해서 말이야ㅇㅇ
     
서라벌 13-03-10 02:19
   
애초에 성룡놈은 논리란 게 없습니다. 중간부터 이성의 끈을 놨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밖에 못함.
혼자서 멋대로 해석하고 정신병 수준임..
          
성룡523 13-03-10 02:21
   
처음에 니가 한말 말해줄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청나라가 조선한테 내정간섭을 했다고???????? 그런적 없는데????? 가져와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라벌 13-03-10 02:23
   
그니까. 언제 했는데?? 근대에 들어와서 말고 그 이전을 가져오라니까? 한번도 없었잖아. 조선이 외세에 의존하면서 청국의 제도를 수용했었던 구한말 말고 그이전, 18세기 이전에 언제 그랬냐고.
                    
성룡523 13-03-10 02:25
   
18세기 이전 이후가 뭔상관인데 거지년아?
                         
서라벌 13-03-10 02:27
   
그니까 그게 너의 문제야. 시대적 상황을 이해를 못한다니까?? 너가 근거랍시고 갖다 댄것은 세도정치 이후 조선이 맛이 가버린 상태에서,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치를 하느라 나라꼴은 개판인데 근대화는 추진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그러다보니 내정간섭이 심해지고 외세에 의존하면서 근대화의 일환으로 청의 제도를 수용했던건데 넌 그걸 가지고 속국이라며.
근데 조선이 진정으로 청의 속국이면 그 이전에 멀쩡한 상태에서도 그런 일이 있어야 하는데 왜 18세기 이전에는 내정간섭도 없었고 청의 제도도 없었냐고.
     
성룡523 13-03-10 02:20
   
"속국"이란건 독립되어있지 않다는 뜻이라고 했지, 강화도조약이면 더 명백한거 아니냐ㅋㅋ
"청나라와 같은나라다"라는걸 뜻하는건 전혀 아니지. 그건 합병이지 조선 자체가 청나라가 되는거지
          
서라벌 13-03-10 02:24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미치겠다.
강화도조약을 그딴식으로 해석하는구나. 논리는 달라도 기본 개념은 있을 줄 알았는데 진짜 미친놈이네. 더 떠들어봐. 푸훗! 독립되어있지 않다면서 외국이랑 조약을 체결해?? 풋!
               
성룡523 13-03-10 02:26
   
미국한테 불리한 조약 맺고, 러시아한테 불리한 조약 맺고, 일본한테 불리한 조약맺어도

어느나라에 속국이 아니라는거네 두나라한테 조약맺으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추세추종 13-03-10 02:18
   
아니 니 주장이 짱깨들 얘기랑 똑같다고
동북공정 논리 모름?
현재 중국애들이 과거 한국은 중국의 식민지였었다하고 으쓱하면 기분 안 좆같음?
내말이 이해가 안감?
     
성룡523 13-03-10 02:22
   
짱꺠들이 한국애들 4300년간 괴롭히고 625떄문에 분단 일으키고 조공보내고 여자보내고 내정간섭했으니

한국애들은 우리 중국을 까야된다고 함?
웃기SP 13-03-10 02:19
   
설룡523  20대면  니가 배우면 얼마나  배우고  알면 얼마나  알겠냐  어디서  친일 사학자 한테  배워서  그게 전부인줄알지  ..젊은 혈기로  어른들 한테 정신승리 할려고  하지말고  고만 꺼져라  ~
필슈나이더 13-03-10 02:19
   
혹시님들 조선족 아니면 중국 황금방패 이신가요? 왜이리 현실을 직시 못하시나요. 속국이 뭐임?힘없어서 조공받치는게 속국입니다. 조선을 그리만든 나라가 중국이고 지난세월 속국아니라고 정신승리하지말고 과거의 실책을 거울삼아 지금부터 씹짱깨들을 배척해야죠
     
서라벌 13-03-10 02:21
   
지금 성룡 놈 논리가 동북공정이랑 하등 다를 바가 없습니다. 조공-책봉 관계는 외교적인 의례일 뿐입니다. 의례적으로 했던 것일뿐 어떠한 간섭도 없었습니다. 근데 저놈은 근대에 잠깐 조선이 청국의 제도를 수용했다는 이유로 속국이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는데, 동북공정이 바로 이겁니다. 고구려가 중국 황제에게 책봉 당한적이 있으니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부이고 중국사라는 것이죠. 근데 이것을 바로잡자는게 정신승리입니까?
          
성룡523 13-03-10 02:24
   
중국사?????????? 지랄하네 ㅋㅋㅋㅋㅋ 내가 언제 중국사랬나
내가 필슈나이더가 하는말이랑 다른게 하나 없는데 쟤는 뭐 나랑 다른말하냐? 어거지 피우긴

속국이라는게 대단한걸 말하는것도 아닐뿐더러 중국사라는건 말한적도 없어 거지년아. 괜히 비약하고 날조하네 떠난다고 해놓고 솔직히 이긴거같지 않으니까 못떠남 ㅋㅋㅋㅋㅋㅋㅋ
               
서라벌 13-03-10 02:25
   
너가 속국 속국 거리는 논리 그대로를 중국에서 동북공정에 써먹고 있거든. 책봉 해줬으니까 우리 역사다. 이거지. 근데 뭐가 다르냐? 너 스스로가 속국임을 인정했잖아?
                    
성룡523 13-03-10 02:27
   
속국인거랑 중국사인거랑 다르다고 하면 끝인데? ㅄ
               
웃기SP 13-03-10 02:25
   
니말은 ..논리가 없어..넌 단편적인 주장으로  어거지  고만 피워라..딱봐도  니논리는 맞지가 않아..20대 처먹은 늠이..참..웃기구나.ㅉㅉㅉ
               
웃기SP 13-03-10 02:28
   
성룡523..니논리를 서라벌님이  정말 잘 지적해  주셨다..니..딱봐도  니는 아니라고  하지만  서라벌님 말이 맞다 정확히  보신거다..20살 처먹은  늠이  어른들 한테  고만 까불고  가라~
          
필슈나이더 13-03-10 02:25
   
고구려는 당연히 우리꺼죠 지들도 기록할때 고구려를  이민족으로 분류했는데  그리고 동북공정은 고구려 발지 조선이 아닙니다. 동북공정이 한반도를 국토를 겨냥한건 아니잖습니까.
     
마법사토끼 13-03-10 02:26
   
서라벌님 말씀대로 우리가 상호이익간의 관계로 조공을 바치던 시절도 있었지만

 중국쪽이 힘이 강해서 어쩔수없이 자존심다버리고 엎드렸다는 사실이 사라지는것도 아닌데

 이분들은 너무 역사인식을 못하시는듯.. 아니 안하시는거겠죠. 그리고 저기 굿잡스님은 도대체

왜 옛 고서적내용을 들고오시나요. 팩트 들고오실라면 좀 우리나라가 약했다고 생각될시절에

사실은 그렇게 약하지 않았다는 내용 뭐 이런걸 들고오던가 금나라가 신라의 자식국이고 이런걸

왜가져오는데요? 질로 안되니까 양 이런거에요?

막 그렇게 되도안하는 자료 들고오면 있어보일꺼같아요?

자기주장을 할려면 전부 긁어오지말고 거기에 담긴 내용을 뇌에 담고 정리해서 다시 써낸다음에

여기 다세요. 님같은분보면 한심함. 우리가 약한시절이 있었어 라고 말한다고

우리가 쌨던시절이 사라지는것도 아니고

우리가 강한시절 있었다 라고 말한다고

우리가 약했던시절이 사라지는것도 아니니까 이상한 자료 긁어오지마세요.

그것보다 내가 교수님한테 들은말 그대로 쓰니까 부끄럽다 ㅎㅎ
굿잡스 13-03-10 02:25
   
조공의 진짜 콤플렉스 주인공. 짱개 한족

전한
유방은 기원전 202년 재위 5년에 비로소 황제라 칭하고 노관을 연(燕)왕으로 봉한다. 그런데 기원전 201년 노관이 흉노에 투항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유방은 흉노가 갓 탄생한 한나라에 큰 골칫거리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40만 명의 대군을 동원, 흉노의 시조인 묵특선우((冒頓單于, 기원전 209∼174)를 공격한다. 그러나 기원전 200년 유방은 백등산에서 일주일 동안이나 포위되었다가 가까스로 구출되는 등 온갖 수모를 겪고 난 뒤 흉노와 화친을 맺는다.

당시 흉노와 한이 맺은 화친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그에 의하면 한은 거의 흉노의 속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첫째, 한의 공주를 흉노 선우에게 의무적으로 출가시킨다(이 관례는 문제(文帝, 기원전 179∼157) 때까지 계속되었다).

둘째, 한이 매년 술 비단 곡물을 포함한 일정량의 조공을 한다.

셋째, 한과 흉노가 형제맹약(兄弟盟約)을 맺어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

넷째, 만리장성을 경계로 양국이 서로 상대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는다.



이 합의는 기원전 198년 가을, 중국 종실의 공주가 흉노에 도착함으로써 발효되었다. 특기할 사항은 양 조정(朝廷)에 왕위 변동이 있을 때마다 새로운 혼인으로 동맹을 갱신했다는 점이다. 또 중국이 흉노에 내는 조공 액수도 한과 흉노 사이의 역학 관계에 따라 수시로 바뀌었는데, 대체로 한의 조공액은 매년 늘어났다. 기원전 192년부터 135년까지 적어도 아홉 차례에 걸쳐 한이 흉노에 대한 조공액을 인상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한이 흉노의 속국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을 흉노의 속국으로 만든 묵특선우는 흉노의 전성시대를 열었으며 우리 한민족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당시 동호(東胡; ‘동쪽 오랑캐’를 의미하는 한자어. 고조선 외에 부여, 예맥, 진번, 임둔, 진국 등 다양한 국가가 있었다고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가 매우 강성하였는데, 동호는 흉노를 경멸하며 묵특의 천리마와 연지(흉노의 후비(后妃)의 칭호)를 요구했다. 부하들이 동호의 무례함을 나무라며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라고 하자 묵특은 ‘인접한 나라 사이에 어찌 말 한 마리와 여자를 아끼겠는가’라며 순순히 동호의 의견을 따랐다. 당시 두 나라 사이에는 1000여리의 황무지가 펼쳐 있었는데, 동호가 이를 갖겠다고 나섰다. 신하들은 버려진 땅이므로 주어도 괜찮다고 했지만 묵특은 ‘땅은 나라의 근본이다’라며 동호를 습격하여 왕을 살해하고 백성과 가축을 노획했다.

패전한 동호를 대신하여 흉노는 유목기마민족의 패자로 떠올랐고, 묵특은 자신의 치세 동안 대대적인 정복활동을 벌여 아시아 초원에 있는 거의 모든 민족을 복속시켰다.

한족이 이른바 ‘흉노 공포증’에서 벗어난 것은 기원전 141년 한나라 무제(武帝)가 즉위하면서부터다. 괄괄한 성미의 무제는 고조 유방 이후 60 년간 지속된 굴욕적인 대(對)흉노 유화정책을 버리고 강경 대응에 나섰다. 무제는 기원전 129년부터 기원전 119년까지 10� 동안 여섯 차례에 걸쳐 위청과 곽거병 등으로 하여금 기병대를 이끌고 흉노를 공격하게 했다.

10년간의 한·흉노 전쟁으로 한나라도 막대한 손실을 입었지만 흉노의 피해는 더욱 컸다. 무제가 죽은 후 한나라와 흉노는 대략 300년에 걸쳐 공존하며 평화롭게 지낸다



후한

후한(後漢, 25-220)을 세운 광무제(光武帝, 25-57)는 중국 남부와 월남의 북부를 다시 정복했다. 기원전 209년에 묵특의 지휘아래 유목제국을 수립한지 250여년이 지난 AD 47년, 흉노제국에 내란이 일어나 몽골초원 전체가 산산조각이 났다. 덕분에 요서 초원지대의 오환(烏桓)과 선비(鮮卑)는 제일 먼저 흉노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실호기, 후한 명제(明帝, 57-75)는 전한 무제를 본받아 흉노를 다시 한번 통제해 보려 했다.

일찍이 AD 48년에 흉노제국이 남과 북으로 양분되자, 조정관료인 장궁(臧宮)은 흉노의 약세를 틈타 “고구려,” 오환, 및 선비와 연합하여 흉노를 공격하자고 주장했었다. 1 당시 광무제는 전쟁을 반대하는 자신의 신조를 강하게 피력했다. 49년, 광무제는 푸짐한 선물과 국경무역을 제공해 선비족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명제가 즉위한 다음 해인 58년 이후에 후한 조정이 선비 부족장들에게 정기적으로 갖다 바친 금액은 년간 2억 7000만냥에 달했는데, 그 규모는 같은 기간 동안 남흉노에게 바친 것의 세배에 달하였다.


북위때(남북조)


북위는, 한편으로는 정복한 중국 땅을 한족식 관료제도로 다스려 다른 유목민족에 대해 우위를 확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족중심의 유목민 전통을 바탕으로 부족의 정예들로 군대를 조직해서, 정복한 한족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시종일관 유지할 뿐 아니라, 쳐들어 올 가능성이 있는 다른 유목민족들에 대해서도 군사적인 우위를 지킬 수 있었다. 모용선비가 시작하고, 탁발선비가 이어 받은 2원적(二元的) 국가조직은 요(遼) 금(金) 청(淸) 같은 정복왕조의 귀감이 됐다. 만주는 거의 모든 정복왕조를 낳고 키운 산실이며 요람이었다

홍원탁 (서울대 교수)

만주의 여러 부족들 중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 해 가장 유목민적이었던 탁발 선비는, 전연(前燕)이 만들어낸 이원 통치 체제의 장점을 살려, 처음으로 북중국 전체를 지배하는 이민족 왕조를 수립했다.1 모용 선비족은 탁발의 북위(386-534)조정 내에 주요 지배귀족의 하나로 살아남았다. 변경지대의 한족들은 어느 때고 초원 혹은 삼림지대 출신의 이민족 부족 중 제일 강하다고 생각되는 편에 붙었다. 탁발 선비의 언어는 아마도 거란어의 직계 조어(祖語)이었을 것이다.2

부족 출신 군대 덕에, 보급이 잘되는 기병대를 보유했던 북위는 초원지대 깊숙히 원정군을 보낼 수 있었다. 거의 모든 부족들은 부대 단위로 조직되어, 할당된 지역에 거주하면서, 국경수비 공동체의 구성원 역할을 하였다.3 부족민과 군사에 관련된 문제는 각 부족 고유의 전통에 따라 처리되었다 정복된 한족 거주지역은 한족 관료들에 의해 통치되었으나, 고위직은 대부분 선비 귀족들이 차지했다. 전통적으로, 한족들의 이상은 능력주의 사회인데 반해, 유목민족들은 세습적 귀족제도를 고수했다. 북중국 귀족가문들은 대부분 한족이 아닌 이민족 출신이었으며, 이들은 정복왕조 중앙정부의 고위직을 대부분 독차지하였다.

중국대륙 북부의 선비족 유적지에서 발굴된 고고학적 유물들을 보면, 시베리아와 몽골초원 유목민들의 초기 예술적 전통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4 뿐만 아니라, 당시 선비족들이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북부에 위치했던 옛 박트리아와 교류가 있었고, 로마 통치하의 중동과 교역을 했으며, 초기적 불상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인도와도 접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낯익은 사람들은, 섬서성에서 발굴된 (5호16국 시대) 갑옷을 입은 말 모양의 토기를 보고, 고구려 토기라고 생각을 할 것이다. 특히 호흐호트(呼和浩特)에서 출토된(맨손으로 빚어 만든) 말과 마부의 토기는 신라 토기로 오인될 정도다. 한국 사람들은 이런 모양의 토기에 너무나도 친숙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정복한 중국 땅을 중국식 관료제도로 다스려 다른 유목민족에 대해 우위를 확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족중심의 유목민 전통을 바탕으로 부족의 정예들로 군대를 조직 해서, 정복한 한족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시종일관 유지할 뿐 아니라, 쳐들어 올 가능성이 있는 다른 유목민족들에 대해서도 군사적인 우위를 지킬 수 있었다. 모용선비가 시작하고, 탁발선비가 이어받은 2원적 국가조직은 요(遼), 금(金), 청(淸) 같은 정복왕조의 귀감이 되었다. 만주는 거의 모든 정복왕조를 낳고 키운 산실이며 요람이었다. Barfield(1989: 105)는 “한(漢)이 멸망하고 첫 번째 만주족 정복국가(탁발북위)가 등장하기까지는 150년이 걸렸고, 당이 망하고 나서는 75년이 걸렸으나, 명(明)이 망할 때는 거의 동시에 만주족 정복왕조가 들어섰다. 한족왕조가 망하고 나서 정복왕조가 들어서기까지의 시간은 점점 단축되었지만, 그 방식은 똑같았다.”고 말한다.






요나라때


거란(요나라)은 송과 적대적인 대치상태를 지속하다가,

결국 1005년에 송나라가 매년 20만 필의 비단과 10만 량의 은을

거란에게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평화조약을 맺었다.

1005년 조약과 1042년에 개정된 조약은 근 백 년간 평화를 지속시켰다.

송나라 조정은 열등한 지위를 수용하고, 계속 “조공”을 바쳤다.

송나라의 인구는 약 8천만에 달했으나, 티벳으로부터 몽골의 초원지대를 거쳐 만주에

이르는 북방 전 지역에는 대략 5백만 명 정도가 살았다

금나라
북송은 금(金)나라에 의해 멸망했고

남송은 몽골제국(원元)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원나라때
몽고족은 제1신분으로서 통치하고 색목인(위구르인, 아랍인등)이 제 2신분이었고 다음은 중원땅에 살았던 한인이(거란, 선비족) 3신분을 차지하고 끝까지 원의 지배에 항쟁했던 남송인이(한족) 4신분으로 특히 차별을 받으며 노예 계층으로 분류했다.. 원은 몽골어를 공식언어로 지정했고, 과거제를 폐지하는 등의 정책을 통해 한인의 정치진출을 막았습니다.

한인들의 역할이 축소된 것은 이미 칭키스칸이 세계제국을 이룩하였기 때문에 아랍인이나 위구르인이 중국에 많이 진출하여 재정과 무역 등의 실무를 맡아서 한 것도 이유로 들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한인을 억압하는 정책을 통해 그들의 반발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청나라때

청조의 對 한인 정책은 협조하면 유화책을 구사하지만, 반항하면 철저하게 도살하는 유혈강경책이었지요, 예컨대 화남과 화북을 잇는 군사적 경제적 거점이었던 揚州城(양주성)을 함락시켰을 때 청군은 끝까지 저항한 한인 80만명을 학살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팔기는 반문명적이고 야만적인 군대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만주족은 중국인구의 0.03%에 불과했습니다. 소수가 다수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본때를 보인 것입니다』

청조가 과거제도를 유별나게 중시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과거제를 통해 능력과 장래성이 있는 漢人을 관료로 발탁하겠다는 목적도 있었지만, 이를 통해 사대부와 지방의 紳士(신사) 계급을 통제하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과거 합격자가 관직에 바로 등용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生員, 監生, 貢生, 擧人 등의 학위소지자로서 사회적 특권을 누릴 수 있었고, 상급 시험인 進士試에 응시할 자격을 부여했습니다. 청조는 이들이 관계에 진출하기 위해 지옥과 같은 多단계의 과거준비에 얽매이게 유도함으로써 체제에 불만을 가질 겨를이 없도록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청대의 과거합격자 110만명 중 관료가 되었던 사람은 2만7000명에 불과했습니다

만주족의 土風(토풍)을 지키려는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청조는 발상지(본거지)에 사는 만주족이 한족식 집을 짓거나 한족교사를 초빙해 글을 배우는 것조차 엄격하게 금지했습니다. 中原에 들어간 만주족들은 元을 세운 몽골족처럼 한족에게 몰리면 언제라도 말을 타고 바람처럼 달려 고토로 되돌아간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중의 얘기입니다만 청조는 대만이나 산동반도 같은 곳은 쉽게 할양했지만, 조선에 대한 종주권은 결코 포기하려 하지 않아 청일전쟁까지 치렀습니다. 그 이유는 조선이 그들의 본거지와 인접해 있기 때문이었지요』

청나라는  만주족은 그들의 충성심을 확인 시키기 위해 변발을 강요했고 이에 반항하는 자들은 가차 없이 처단했다.

< 정사의 실제 기록>

남북조시대의  기마민족인 선비족(鮮卑族)이-<사기> <흉노전>에는

흉노를 호라 하고, 예맥 조선을 동호라 하였고,- 흉노가 동호를 하

북성으로 밀어내게 되는데 동호 ,예맥, 조선은 사기의 흉노열전,

조선열전, 소진열전에서 다르게 이칭 하지만 그 방향과 위치는 같

다. 즉 동호를 고조선으로 기록하고 있다.이후 후대

< 위지 동이전>에는 동호의(고조선) 후손이 선비, 오환이라 하고

예는 부여, 맥은 고구려라고 하여  선비, 오환, 부여, 고구려 등을

다르지 않는 갈래로  기록하고 있다.-

삼국지와 후한서는 선비 부여 고구려등을 동이 열전에서 함께 분류하고 있다
     
성룡523 13-03-10 02:28
   
너는 괜히 전혀 상관없는 긴 댓글 써서 논쟁 방해하고

조선족 혹은 50대 늙은이 말투로 횡설수설해서

다른사람이 전혀 못알아먹는 말만하고 실제로 누구와도 싸우고있지 못하니까

넌 꺼져 그게 논쟁에 도움됨 ㅡㅡ;
          
굿잡스 13-03-10 21:14
   
???

실컷 저 위에서 원이니 청이니 부터 조공 책봉 어쩌고로 어글로짓한 인간이 누구임??

(실컷 근거 말해주면 또 엉뚱한 소리나 하남 ㅋ)
가생이 13-03-10 18:16
   
이시간 이후 운영원칙 2,3항 위반 유저는 경고없이 블럭조치 합니다.
     
눈팅 13-03-11 09:01
   
오 댓글 열렸네요
     
천리마 13-03-11 12:55
   
가생이 님 통촉하시옵서서.
대만개새 13-03-10 18:40
   
좀더 정확한건 청나라가 중국은 아니란게지  중국과 청나라가 무슨 관계임  중국은 청나라에 멸망당한거 아니었어?  대만으로 도망갔잖아 거가서 원주민들 학살하고
오마이갓 13-03-10 19:55
   
잘보고가요~,
풍류공자 13-03-10 21:18
   
피터지게 싸우시네들.. 에휴
가출한술래 13-03-10 21:38
   
잘보고 갑니다
빈브라더스 13-03-10 23:41
   
이 많은 글들을 다 읽으니 먼가 뿌듯하네
Pacinous 13-03-11 00:04
   
기름덩어리 나라(중국)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알틱 13-03-11 00:57
   
감사히 잘 봤습니다.
자기자신 13-03-11 01:27
   
뭔 댓글이 왜이렇게 길어ㅋㅋㅋㅋ 무슨댓글수가 300개 넘네 하도 길어서 읽지않았음
라임모히토 13-03-11 02:11
   
잘 보고 갑니다~
산다라봄 13-03-11 02:45
   
한국사람이 생각하는 중국인 또는 중국인의 대우에 대해 불평을 하고 싶다면,
그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진지 부터 생각해 봐야한다.

다 너희 중국인들이 불법 밀입국으로 쌓아올린 이미지다.

그리고, 한때는 한족의 중원이라 자랑스러워 하더니 한족 왕조가 채 1000년도 안되고 나머지는 전부 이민족의 지배를 받은 역사임을 부정할 수 없게되자 다민족 연합체라고 금새 말바꾸는 꼴이라니.

가오리(고구려) 빵즈라고 욕하던놈들이 고구려도 지네 역사로 하고싶으니까 가오리만 빼서 부르는 치졸함도 참 중국 답다.

짱깨 색기들 근본없는건 예나 지금이나 쯧쯧..
레몬과즙 13-03-11 06:44
   
댓글이 너무 많아서 읽기도 힘드네요;; ㅋ
잘보고 갑니다~~
조이독 13-03-11 11:00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사람들이 보통의 우리나라사람보단 보통의 중국인이나 일본인을 깔본다...그러나, 만약, 그사람이 북경대학나왔다거나 중국의 공위공무원이나 유력엘리트계층이라면 누구도 쉽게 깔보지 못한다.. 그건 상대도 우릴 대할 때 마찬가지다... 색깔에 의해 반응이 나타나는 이유도 그 확률때문이지 .. 만약에 흑인이 오바마대통령 같고 백인과 같은 비율의 엘리트와 유력인사들이 존재한다면 누가 흑인을 백인보다 차별하겠나?  내가 차별을 받는다면 무조건적으로 이유없이 차별받는다 생각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내가 상대에게 못나게 보여서 차별받는게 본질적으로 맞다..
열등왜구 13-03-11 11:36
   
이햐..댓글들 너무 많네요.
그냥 중국은 앞으로의 한국의 이익을 위해 공생해야 하는 존재고
일본은 언젠가 전부 쳐죽여야 되는 놈들이고

이게 결론이죠.
천리마 13-03-11 13:10
   
중국과 우리는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일 뿐이지, 속국같은 개념은 아닙니다. 예컨데 남송은 요에게, 심지어 서하에게 까지 공물을 바쳤지만 속국 이라고 할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더구나 우리가 공물을 바친것은 조공무역의 일환 으로서 고구려의 장수왕조때는 중국의 북위나 남제등에 조공을 43회나 바쳤지만 무역으로 재물을 마련키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명조때의 조공을 너무 자주 조공하지 말라는 규정까지 둔것으로도 확인할수 있으며, 일본은 조공을 못바치게 한다고 노략질을 한것이 왜구 이기도 한것입니다. 현대에 와서도 우리가 가난했을 당시에는 미국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무역을  하기도 했으며(세금등), 미국은 가난한 나라와의 무역은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다만 미국에 의지한는 무역을 하기 때문에 경제 외적인 면에서 미국에게 약한면이 없다고 말할수 있지만 속국과는 다른 것이다.
     
굿잡스 13-03-11 14:48
   
중국과 우리는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일 뿐이지,>???

울 왕조사에서 가장 약했다는 조선조차 여진 ,왜, 류큐등에 황제소리 들으면서 자체적 독자

서열 외교라인을 구축한 나라를 약소국이다?? ㅋㅋ

글구 말이죠 북위 기병 대군을 막아 연패시킨게  백제 동성대왕임. 이때문에 남제등 서토 대륙의

동해라인을 백제에 상당부분 할양하는 기록들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고. 이런 백제 조차 고구려

를 제대로 맞상대 할수 있음? 조공이라는 단어가 그 당시의 실질적 국력보다는 그냥 쭝광주의 사고에 기인한 허세적 미화 명칭으로 사용된 시절이 더 많았음.
개미12 13-03-12 16:03
   
윗분이 말씀한대로 조공은 속국 개념이 아니라고 알고 있네요.. 류큐도 조선에 조공을 몇차례 왔었는데 그럼 우리나라가 류큐를 식민지 삼은걸까요?? 아니잖아요.. 조공은 상대의 권위를 인정해 주되, 경제적 이득을 받는거고.. 조공바친다고 조선에서 이것저것 바리바리싸들고 가면 명나라는 자기 쳬면이 있으니까 더 많고 더 좋은걸 하사한답니다..실제로 하사품이 더 많았다구하구요..그래서 조선에서는 좋다고 계속 싸들고 가니 명에서는 그만좀 오라고 할 정도로요.. 조공이라는건 외교의 한 방책일 뿐이죠.
어느 원시부족에서는 세력있고 재물이 넘치는 부족장이 자기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서 못사는 다른 부족들에게 재물을 나눠준답니다. 다른부족들은 그걸 받고, 그 부족장이 강하다는걸 인정해주는거죠..근데 이걸가지고 그 다른 부족들이 타부족의 노예다, 식민지 부족민이다 뭐 이렇게 보는건 말이 안되잖아요...

그리고 청나라의 내정간섭은 임오군란1882 이후부터라고 보면 되구요.. 그 이전에는 청과 조선은 조공관계가 있으나 식민지 관계와는 다른거라고 청에서 미국에 보고한 미국인 보고서(?)도 있드만요.. 개화기 이전부터 속국이였다는건 말두 안되죠..그렇게 생각하면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내는 모든 시험문제는 땡땡땡 틀릴거에요..억울하면 그 사람들이랑 배틀 해서 교과서 고치면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