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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 中 네티즌,한국의 경복궁이 자금성보다 더 독특해
등록일 : 13-03-05 18:25  (조회 : 39,288) 글자확대/축소 확대 축소 | 프린트

중국의 인터넷 게시판에, 우리나라의 경복궁과 중국의 자금성을 비교하며,
자금성은 크기만 할 뿐, 색채나 기교등이 경복궁보다 못한것 같다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중국 네티즌 반응 입니다.
 
 
001.JPG
 
 
 

 
 

令FQ嫉妒的韓國
중국의 자금성은 크기는 크지만,
색채의 조합이나 기교는 경복궁보다 못한 것 같아.
보라고, 자금성 모습은 칙칙하고, 색감도 단조롭고, 사용된 색도 적어,
경복궁 모습은 독특해, 기하학적 무늬도 생동감이 있고, 색감도 다양해.
 
 

xwc19890516
게시자, 참을 수 없게 하는군.
 
 

     令FQ嫉妒的韓國
     경복궁은 아주 정교해,
     자금성은 시홍스 차오지단(역주-계란에 토마토를 넣은 볶음요리) 같아!
    
 
 
     煜Instrument
     >>>>>令FQ嫉妒的韓國 한국은 두부에 쪽파 넣은 색 같지 않나?
 
 

     花小姐mmmm
     >>>>>令FQ嫉妒的韓國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한국은 내가 싼 똥색 같아.
 
 

     棉花糖醋鱼
     와하하하하, 너는 한국이 누구한테 배워 지었는지조차도 모르고 있어!
 
 

     今宵月下见
     >>>>>令FQ嫉妒的韓國 자금성의 역사가 긴지,
     경복궁의 역사가 긴지 한번 물어보고 싶다,
     우리가 자금성에 살고 있을 때, 한국은 초가집 시대였어.
 
 

      °丿轻浮
      게시자 한국 빵즈네, 자금성이 얼마나 호화스러운데, 한국은...
 
 

xsb1992827827
한국의 이 궁은 작은 다락방 같아.
 
 

     令FQ嫉妒的韓國
     경복궁은 몇 가지 색을 사용했는데?
     자금성은 그냥 시호스 차오지단이야.
 
 

     xsb1992827827
     >>>>>令FQ嫉妒的韓國
     한국은 노비라서 밝은 금색을 사용할 수가 없었어, 알어?
 
 

     令FQ嫉妒的韓國
     >>>>>xsb1992827827 지금 나랑 역사 가지고 좀 해보자는 거야?
     중국의 역사상 궁궐은 모두 청기와를 사용했어,
     궁궐 꼭대기는 모두 파란색이었다고,
     파란 하늘을 의미하고, 하늘과 서로 통하다라는 뜻이야,
     원나라 때 몽골사람들이 라마교를 믿어서,
     황금색을 사용하는 게 습관화 된 거야,
     후세에 명,청나라 시대에 이런 습관들을 그냥 따른 거고,
     나중엔 밝은 황색이 청나라 황실을 대표하게 된 거야,
     그리고 황궁의 기와와 등급은 상관없어!
 
 

     xwc19890516
     >>>>>令FQ嫉妒的韩国
     내가 오히려 너랑 동북역사를 가지고 좀 해보고 싶다!!
 
 

吧友113.57.220.*
게시자, 내가 올린 한국 건물, 경복궁은 옛 건물이 아니라 새로 지은 거야,
진정한 경복궁은 예전에 훼손됐어.
 
 

     倪珞沂ミ
     한국의 경복궁은 작고 더럽지만, 얘네들 화장실은 아주 크네,
     화장실이 아주 커!
 
 

     moderato丶沐格
     그래서 얘네들은 화장실에서 사는 게 맞는 거야.
 
 

     zhou2192455
     한국도 고건물이 있어? 모두 콘크리트가 아니고?
 
 

吧友113.57.220.*
경복궁은 산자이야, 제발 산자이랑 정품을 비교하지 말아 줘, 고마워~
 
 

     吐槽宿寂寞
     >>>>>令FQ嫉妒的韩国 아~~~~웃겨 죽겠네~~~
     반도 왜민이 어떻게 우리 대단한 중화의 기개를 알겠어?
     역사상 조선은 국왕만 있었는데,
     어떻게 황궁이라고 말할 수가 있었겠어?
     어떻게 왕족의 건물에 우리 중국의 장엄함이 있겠어?
 
 

     笑准提
     빵즈국은 소국에 백성도 적으면서
     (역주-소국과민, 노자가 그린 이상사회, 작은 나라 적은 백성),
     존나 잘난체하네.
 
 

吧友58.254.49.*
게시자, 우선 검색 좀 해봐, 괜히 체면 구기지 말고,
최근에 재건한 건물과 우리나라의 중요한 문화재랑 비교하고 있네,
정신이 어떻게 됐냐?
 
 

744695326
경복궁이 중국 왕족의 건물보다 한 단계 아래 있는 것 처럼 보여,
이것으로 한국은 중국의 속국임을 알 수 있지,
왜냐하면 얘네들은 황실의 황금색이나 중국의 홍색을 사용할 수 없었으니깐!
 
 

     tcjtsw
     게다가 얘네들은 국왕급이잖아.
 
 

     你编织的等待
     그냥 보통 대가족이 있는 집 같은데,,,,,,
     교가대원(역주-청나라 때 부호의 저택, 방이 313칸이나 된다고 하네요.)
     랑 비교 해도 못할 듯...
 
 

法律及相关政策
사람마다 기호가 다른 거야,
네가 자금성을 시홍스 차오지단이라고 말하면,
나는 경복궁을 김치라고 하겠어,
 
 

      阿塔0325
      한국 사람들의 미적 감각은 아주 좋은 편이야,
      게네들의 미용, 복장, 전자제품 등등에서 볼 수 있어,
      하지만 중국의 오래된 문화재와 비교할 수 없지...
      그냥 객관적인 사실을 이야기한 거야..
 
 

a31961760
경복궁은 90년대에 재건된 거야, 이미 예전에 없어졌지,
예전 경복궁은 우리 중국과 정말 비교할 수 없어.
 
 

     杨柳倒影
     전 세계에서 자금성과 비교할 수 있는 건물은 몇 개 안돼!
     자금성의 위대함은 전 세계가 알고 있다고!
     한국의 경복궁은 세계에서 아는 사람이 없어!
 
 

     c8531535
     오늘 지식을 하나 얻었네, 경복뭐시기를 가르쳐줘서 고마워~하.
 
 

     风雨视人
     중요한점은 예전에 지금의 자금성보다 수배 컸던 황실이 없다는 거야,
     그렇지 않았으면 더 웅장했을 텐데..
 
 

似水年滑
이걸 어떻게 비교하냐?......
포함된 역사와 독특성을 이야기도 하지 않고...
게시가 지능적 악플러 같네...
 
 

liuzheng012
게시자 뭐 경복궁?? 첫 번째 사진? 색맹도 색채조합이 뭔지를 알겠다..
뭐 난 또 흑백 사진인 줄 알았지,,이 2층짜리 건물도 궁이라고 부르는 거야?
우리 작은 동네에 건물도 이것보다는 더 멋있어!!
한국은 이제야 인터넷이 되는 거야?
그래도 이건 너무 식견이 좁은 거야, 아니며 웃기려고???
 
 

锋之前端
한국의 국왕한테 물어봐, 홍색이랑 황색을 사용할 수 있는지..
 
 

chetan1
요즘 교육은 사람을 망치고 있어.
 
 

高级AAF
게시자 일가견이 있네..
 
 

海上的烟火
한국의 화장실이랑 중국의 자금성을 비교한다고?
 
 

夢中看紅塵い
너는 지금 고대 중국을 이해 못 하고 있어...
 
 
 
sxz1997
자금성은 중국 천자의 황궁이고,
경복궁은 중국의 속국 조선 국왕의 왕국이야,
등급 자체가 다르다고.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sxz1997
중화의 위엄, 삼성 노비의 빵즈는 중국의 성지를 순례해라!
 

 

 

啵了个呗
한국의 그런 건물들은 중국에 있어,
경복궁 위에 쓰여있는 글자도 한자이고,
중국이랑 고대역사를 비교하다니,
진짜 굴욕을 자처하네, 웃겨..
 
 
 
sxz1997
왕궁PK황궁? 게시자 머리가 성문에 부닥쳤나 봐.
 
 
 
sxz1997
내성 천안문pk경복궁 광화문, 광화문이 완패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摘繁花一抹
지금의 자금성은 대부분 만주족이 남긴 것들이야,
중국 56개 민족중에 하나인 만주족의 궁전이
빵즈의 지금 모조 건축물보다 훨씬 예뻐,
만약 당나라의 대명궁, 진나라의 아방궁이었음,
빵즈는 더 쪽팔려 죽었어.
 
 
 
珍妮玛耀廉
너희 그 현대 복제품은 오래된 자금성과 비교할 자격이 없어
 
 
 
武田美子
경복궁 뒤에는 큰 산이 있고, 멀리서 바라보면, 풍경이 아주 아름다워,
풍수가 아주 좋은 곳이지,
자금성은 민가가 아주 밀집한 곳에 세워져 있었어,
경복궁의 이런 풍경과 색감보다 부족하지,
자금성은 진짜 한국의 경복궁과 비교할 수 없어,
너무 차이가 나, 특히 규모와 섬세한 기교에서는 차이가 더 커,
그냥 사실을 이야기 한 거야...
 
 
 
堵口憋城管
게시자는 북경에 있는 조선족 같아.
 
 
 
埋葬苦楚最寂寞
한국이 비교할 수 있는 모든 문화는 현대예술밖에 없어,
역사를 놓고 비교하면,
오래 축적된 중국의 역사와 어떻게 비교하냐?
비교하면 한국이 무식하다고 이야기 하는 것과 같은 거야.
 
 
 
高桥殿下执事长
경복궁은 자금성의 화장실같은 수준이야!
 
 
 
lxp19920
빵즈 낯짝도 두껍네..
 
 
 
笑准提
ㅅㅂ,게시자, 너희 한빠는 수준 좀 있으면 안되겠냐?
어떻게 감히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이랑 우리 자금성이랑 같이 논 하냐?
너 머리에 문제 좀 있지????
 
 
 

번역기자:치명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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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만세 13-03-05 18:28
   
아니 장애새끼들 .. 왜 비교하냐 .. 각 나라마다 차이는 있는 거지  특히 마지막 댓글 남의 나라의 문화재를 쓰러져가는 초가집으로 만드네
알틱 13-03-05 18:30
   
감사히 잘 봤습니다.
깡슈 13-03-05 18:33
   
엄청 발광하네
햄돌이 13-03-05 18:34
   
경복궁도 일제를 안거치고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자금성이랑 비교 가능하다.
     
오랜습성 13-03-06 03:43
   
임진왜란때 우리 백성들이 불태웠습니다 ㅋㅋㅋㅋ 전부다요 ㅋㅋㅋ
          
켈이건 13-03-06 13:44
   
선조가 개병.신이라..
정치는 지금이나 그때나 당파싸움으로 피폐했고..
이순신장군도 아마 전사가 아니라 당파싸움에 희생되었을거임.
그 당시 서쪽은 의병활동도 활발했지만 더러운 동쪽은 왜놈들에게 빌붙었지..
원균같은 개쇆이땜에 이순신장군이 개고생하고..
               
달밝은밤 13-03-06 20:41
   
켈이건/ 그리고 이순신장군도 전사가 아니라 당파싸움에 희생되었을거다?

ㅋㅋㅋ 이 사이트는 왜 이리 기록에 의한 사실을 내팽기고
추측성 허구를 사실로 말하는 무식이들이 많은거죠?
          
달밝은밤 13-03-06 20:37
   
잘못된 역사지식을 퍼트리는 당신 때문에 댓글 남깁니다.
선조가 피난가고 일본군이 오기도 전에 백성들이 불태웠다? 허위입니다.

일본군이 도착해서 경복궁의 규모와 모습을 기록한 문서가 일본에 있습니다.
경복궁을 상세하게 그린 그림도 첨부되서 말이죠.
고니시는 국왕의 의자에 앉아 감회를 말하기도 했고

일본군은 경복궁에서 상당기간 거주하다 평양성 전투 패배 이후 한양에서 퇴각하면서 경복궁을 불태우고 도주하면서 소실되었습니다.

잘못된 지식 퍼트리지말고 제대로 알기 바랍니다.
마이너프레… 13-03-05 18:35
   
자금성은 언어도 문화도 사뭇 다른 한족의 주인 만족의 것 - 이런 리플 하나 달면 끝
햄돌이 13-03-05 18:36
   
광복후 10%밖에 남아있지 않았던 경복궁이 지금은 25%까지 복원했다
안양라이 13-03-05 18:38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짜짱바퀴들 발광
썅썅바뽀샤 13-03-05 18:39
   
비교하지 마요~ 각자의 개성이 있답니다.
배신자 13-03-05 18:39
   
아직도 갈길이 멀죠.

전부 복원하려면...

일제 넘들이 궁안의 건물을 개인한테 파는 바람에

그거 다시 회수하느라 진땀 빼고 있고.

진짜 궁을 파괴하고 거기다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었으니 얼마나 개자슥들인지...
     
햄돌이 13-03-05 18:43
   
안에 동물원짓고 미술관짓고 창고로쓰고 그냥 하나의 공원으로 만들었죠
외교 13-03-05 18:39
   
천안문 vs 광화문은 뭐야.....
천안문 너무 중국스럽게 빨개...싫다;
광화문 닥승.

그건 그렇고 중국 건물이랑 비교하자면
중국은 건물자체가 굉장히 위압적이라고 해야되나? 압도하려하는 느낌이 있는데
우리나라 건물은 기품있고 우아하다는 인상이 드네.
cypher1004 13-03-05 18:40
   
그냥볼땐 몰랐는데 비교해 놓으니까 경복궁 진짜 우아하네..
ultrakoo 13-03-05 18:41
   
자금성이 만들어진 시기 1400년초고

조선의 궁들은 1300년대 후반인데

시기적으로 차이는 얼마 안되는 비슷한 시기인데

중국얘들 참 병맛 같이 구는게 흥미롭다.

자금성이 위해한 문화유산인것을 가만히 있으면 알아줄것을 스스로 똥칠하는 것이 중국답다.
     
마음없는꽃 13-03-06 03:11
   
자금성이 만들어진게 명 3대 황제인 영락제때이고

조선의 궁권이 만들어진게 태조 이성계 시절이니

조선의 궁궐이 훨씬 빠르긴 하네요

신흥국인 명을 인정하네 마네하전 시절이니 ㅋㅋ
다다다다다 13-03-05 18:42
   
일제가 파괴한 것도 엄청나지만..임진왜란 때 불탄게 개크리..

그 이전에는 기와가 청기와였다고 하는데 지금의 검은기와가 아니라..
     
햄돌이 13-03-05 18:44
   
삼국때 기와가 다양했데요 청기와도있고 붉은기와도있고..
     
mymiky 13-03-05 19:37
   
맞아요. 원래 경복궁 기와는 청기와였고, 지금도 발굴현장엔 청기와와 금으로 입힌 장식물들이 출토되고 있어요.
왜란때 조선궁에 들어온 일본인들이 경복궁보고, 감탄했다니, 얼마나 멋졌을까요?
거기다, 조선초기는 아직 고려풍이 많이 남아있었을텐데...ㅜㅜ
거기다, 2,3층의 복층건물과 각 건물사이에 난간복도까지 다 연결되어 있었다고 함.
넌내게모욕 13-03-05 18:42
   
문화와 역사의 차이가 있는건데..
무슨 전자제품 비교하듯이 비교하다니..
자금성을 직접 보거나 관심있게 찾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각각 특색이 있는건데 어디가 색채가 어때서 구리니 뭐니..
그리고 그렇게 자국이던 타국이던 문화재를 깍아 내려서 남는건 뭐니..?
각시탈 13-03-05 18:44
   
진짜 경복궁 뒷배경 아름답다요~
ultrakoo 13-03-05 18:44
   
경복궁 1395 완공

자금성 1421 완공


이민족 노예히던 듕궤 답다
몽키매직 13-03-05 18:44
   
흔한 어그로 글이고만 ㅋㅋㅋ
짱개들 욱했네 ㅋㅋㅋㅋ
백발마귀 13-03-05 18:46
   
짱깨들 지은 건물보면 얼마나 사악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저렇게 지을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역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조아라하고 13-03-05 18:46
   
자금성 멋지더만...... 중국가서 놀란건 뭐든지 크다는거....-.,ㅡ;;;; 해자 크기만 보고 지렸었다...

땅떵이가 커서 그런가.... 건물도 죄다 크게 넓게 웅장하게 지어놨던데..... 늬들것도 좋기만 하더만.. 비교할건 없지...

한국의 美와 중국의 美는 기준이 다르니..... 비교할건없지...쩝....

그리고 금색 옻칠은 우리가 개발해서 거의 전량을 진상한것 아닌가???? 황금과 거의 동일한색을 내는건 조선의 옻말곤.....

미친듯이 달라고 지지고 볶아 댄걸로 아는데..... 그것때문에 조선이 개고생했다고.....-.,ㅡ;;;
     
햄돌이 13-03-05 18:49
   
황칠나무라고 우리나라에서만 나는 특산물이었죠
     
mymiky 13-03-05 19:39
   
나도 이말 하고 싶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중국 무식한 애들이 조선황칠을 알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조선은 황색 쓰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금성에 황칠은 조선에서 진상한 원료로 만들었어, 애들아 ㅋㅋㅋ 깝치지마...
파르라니 13-03-05 18:47
   
짱골라스러운 댓글들을 볼 수 있어 좋았음 ...
해금 13-03-05 18:47
   
우리나라 왕궁은 거의다 사라졌다고 보시면 될거에여...

일제에 의해 모두 해체되거나 파괴 되었져.

지금 남아 있는 궁들은 일부일 뿐이네여.

전에 일제강점기때 찍은 사진 본적이 있는데 정말 왕궁쪽으로는 기와의 바다가 펼쳐져 있더라구여.

그만큼 궁의 규모가 엄청났다는 걸 알 수 있는 것이져.
     
골룸옵퐈 13-03-06 03:03
   
생각하니 빡치네요, 일본놈들 다 쓸어버리고 싶다 진심..
Refreshed 13-03-05 18:50
   
전 북한 다음으로 중국을 싫어하지만

개인적으로 자금성이 더 멋있네요.
짱깨새끼들이 작작 쳐들어왔다면 우리나라 관광 산업이 지금보다 훨씬 더 발달했을듯
     
햄돌이 13-03-05 18:52
   
일제를 탓해야죠

그전에 몽고, 왜구 들이 안쳐들어 왔어도

일제때 온 국토가 파헤쳐지죠
realquick 13-03-05 18:51
   
프랑스의 저명한 조경학자가 한중일 대표 성의 특색을 말할때 경복궁이 가장 대단하다고 한것을 모르나보군. 이미 북한산과 한강까지 조경으로 생각한 거대한 궁이라고.
     
각시탈 13-03-05 18:54
   
진짜 멋있긴 해요~  어찌 저런 그림이 나오노~ ㅋㅋㅋ
     
햄돌이 13-03-05 19:01
   
다른 외국인들 눈에도 경복궁이 제일 환상적임
     
Orphan 13-03-06 13:58
   
그런걸 원림이라고하죠...
중국은 인공물로 자연을 압도할려고...
일본은 자연을 작게만들어서 인공물안으로 들고 들어 올려고하고..
대한민국은 자연속에 인공물이 어떻게하면 조화롭게 있을수 있을까 고민하는...

그래서 작고하신 최순우 선생같은분은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서서...
를 노래하였죠
얄밉지 13-03-05 18:53
   
하하 중국인들이 흥분하는 것도 쟈들 시각으로 보면 당연한듯. 솔직히 자금성은 불가사의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엄청난 건축물임. 이건 세계가 인정하는 것이고. 경복궁은 한국나름대로 아주 멋진 건축물임. 솔직히 이런걸로 누가 낫다 못하다 논쟁하는 것이 어리석은것. 각자 나름대로 멋이 있는 것임.
     
노호홍 13-03-05 19:06
   
맞는 말이네요. 문화에 우열을 가리는것 자체가 잘못된듯...
메론TV 13-03-05 18:54
   
자금성보다 경복궁이 더 좋지 ㅋ
인천쌍둥이 13-03-05 18:56
   
썩을 짱개놈들 경복궁은 1394년에 착공하여 1395년에 준공되었고 자금성은 1406년에 착공되어 1420년에 준공되었다
쪽바리가 경복궁의 건물들을 허물고 조선총독부를 세워 경복궁의 90%을 훼손하였다
자금성의 금칠도 몽고군이 칠한거임 명,청나라때 그냥 이어감
더 중요한건 경복궁 34만 평방미터 자금성 72만 평방미터
 
고작 두배차이다 인구수 비례해라 짱개야
긔빵맹 13-03-05 18:56
   
지들이 자금성에 살았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왕이 살았겠지 너희 그때나 지금이나 걍 양민이지 ㅋㅋㅋㅋ
뭉치 13-03-05 18:57
   
중국 자금성이 9999간이라고 알려졌지만.. 실제는 8200간정도...

우리 경복궁을 포함한 원래 조선궁궐은... 생각보다 훨씬 큰 7800간...

규모에서도 별로 차이가 안났었음...ㅡ.ㅡ
씹덕후후후 13-03-05 18:57
   
잘보고갑니다.

자금성 사진을 보니까 색이 암울하네 ㄷㄷ
알로하 13-03-05 18:58
   
경복궁과 그 안의 역사는 눈물이네요.. 왜놈들 아오 진짜...
중국의 자금성도 멋지지만 우리 경복궁도 좋죠
각 나라의 고유미와 정서가 있어 특색있는건데 훼손된 우리궁과 자금성의 크기만 가지고 답하는 치졸한 댓글이 많네요
우리의 궁과 사찰들은 처마모양 손으로입힌 색채등 디테일하게 봐야하는데 ㅎㅎ
근데 얘네 붉은색과 금색 참 좋아하네
이런것도 문화차이겠죠
제니큐 13-03-05 18:59
   
댓글 안달수가 없네.. 짱깨들 니네들은  경복궁만한 것도 없쟎어.. 자금성이 니네들거냐?  하여간 수천년을 이민족밑에서  노예생활이나 한 것들이니  ... 원나라가 니네 한족이냐?  아님  청나라가 니네 한족이냐?  ㅋㅋㅋㅋ
참  ㅄ들이  지롤발광을 해도 유분수지. 어디서  노예생활만 수천년한  짱깨들이  남의유물을 가지고  왈가왈부 지들것처럼 얘기하네.
너꼼수 13-03-05 18:59
   
왜구들이 훼손한 경복궁..  원래 엄청 크고 넓고 아름다웠는데.. 죽일늠의 쪽바리들.. 에혀..
양앵민이 13-03-05 19:00
   
자금성도 한번 다 뿌개서 해체하고 재조립 해봐야 그런 소리 못하지 ㅋㅋㅋㅋ 맞을라꼬 역사를 논해 ㅋㅋ
     
알로하 13-03-05 19:01
   
재조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알로하 13-03-05 19:02
   
그나저나 경복궁은 보면 볼수록 기품있고 우아하네요
지붕끝이 버선코처럼 올라간것 좀 보소 디테일이 쩜..
stabber 13-03-05 19:03
   
청나라 노예 생활에서 나온 건물들 가지고 찬양하는 건 역시
노호홍 13-03-05 19:04
   
자금성 건설 부역에 끌려간 노비들의 자손들이여 실컷 자랑해라
얄밉지 13-03-05 19:06
   
중국민들 흥분하지마십시오. 자금성이 위대한 건축물이라는 것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온세상이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경복궁역시 한국인이 자랑하는 건축물로서 개인적으로 아름다운 건축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마다 고유의 문화재가 있는 것이고 역사적 유물을 가지고 누가 위다 우열을 가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
모라고라 13-03-05 19:07
   
ㅋㅋㅋ 잘보고 갑니다~ :)
BRITANNICA 13-03-05 19:08
   
1. 엄밀히 말하자면 중국이라는 나라는 관념상의 제국을 뜻하는 말입니다. 中國이라는 말에서도 드러나듯이 남만,서융,북적,동이로 대변되는 오랑캐와 문명의 본류인 중화를 나타내는 화이관적 세계를 나타내는 개념상의 나라입니다. 이러한 정통성을 중국공산당이 차용을 했고 중국이라는 이름을 달면서 구체적인 실증보다는 허구의 것으로 사용하는 느낌입니다. 예를 들자면 선비족의 당나라, 몽골족의 원나라, 만주족의 청나라처럼 중국이라는 말은 공간과 지리상의 특성이자 동아시아문명을 중심이라는 이중적인 뜻을 가지고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실제적 국가와 이러한 국가를 지지하는 중화민족이라는 허구의 민족을 급조해내면서 중국사해석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지금의 중공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정말로 중국인가 물어봐야 합니다. 단지 역사상 중원왕조라고 부를 수 있는 문화적 정통성을 주장할 명분이나 민속, 민족적 연계라도 있는가 말이지요. 신해혁명때 멸만흥한의 슬로건을 외치면서 한족 중심의 삼민주의를 강조하는 저의에는 중국인들의 역사가 정복왕조와는 별개의 이민족에 고통받는 민중사 중심으로 봐야 한다는 걸 말해주는 겁니다. 35년동안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다고 한들 도조히데키가 한국인이고 히로히토가 자랑스런 한국인이 되는건 아니지요. 그것도 문혁이후에 모조리다 파괴해버린 문화재나 정신문명을 볼 때 지금의 중공은 그냥 이름 뿐인 중국입니다. 조선후기 노론들이 말했듯이 중국은 이미 망해버렸지요. 만주족에게 말입니다. 중공은 청나라의 후계자가 아닙니다.

2. 유교사상이 시작한 곳은 중국이지만 중국내에서 유교가 정통 국가통치 이데올로기로 숭배받은 적이 없었고 대다수의 민중신앙을 조직한건 노장사상-도교와 불교입죠. 그 말은 유교적 합리주의가 사회 내부에 침투하여 의식을 형성한게 아니라 진시황의 아방궁을 지을 때쯤의 전제왕권의 반복이 재탕, 삼탕되는 역사라는 겁니다. 수양제의 운하사업이나 명나라의 만리장성 개축처럼. 단순히 왕조의 영광을 찬양하는 대규모 토목공사정도를 시행하는데에는 역대 중원왕조의 사회적 토양이 그러하다는 겁니다. 반대로 조선은 후기에야 성리학 파시즘으로 비난받기는 하지만 유교적 합리성이 극단적으로 존중받는 시기입니다. 원래의 조선의 건국의 기획이 권력자의 왕조찬탈보다는 유교식 대동사회의 유토피아를 만들려는 것에서 차이가 나는 부분이지요. 경복궁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제왕조에서는 백성들 동원해서 운하파고 성 쌓는것이야 문제가 아니겠지만 한국사의 대부분은 언급한 대로의 합리성이 있엇던 시기였기에 왕조의 찬양을 위해서는 이런 논리가 전혀 안 먹혀 들어갔던 겁니다. 대신에 실록에서 보여지는 사관중심의 기록문명과 보학에서 알 수 있듯 한국사의 전통은 백성들을 쥐어짜는 웅장한 건축물이 아니라 정신세계에 있는 겁니다. 이미 조선기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이집트의 스핑크스나 진대의 만리장성과 아방궁이 별로 좋지 못하다는걸 안것이지요. 문화유적이 웅장한 나라는 반대로 빈약한 정신사회를 반영하는 겁니다.
     
천리마 13-03-05 19:31
   
유교는 서한 무제때 동중서의 건의에 따라서 국교로 정하고, 국자감(국립대학교 정도) 설치 하였습니다.
          
BRITANNICA 13-03-05 19:34
   
따지자면 이학과 심학에 지친 신유학에서 벗어나 유학경전을 다시 보는 고증학은 청나라 때에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건 사상이 제도적 학술기관에서 흡수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사회문화상을 만들어내고 질서를 추출해 내는 그 이념을 말하는겁니다. 이런 정도의 유학은 고려기 성종이후에도 있습니다. 단지 조선은 그러한 제도권에서만 유통되는 수준을 넘어서 아예 문명자체를 만들어낼 정도로 급진적으로, 전폭적으로 수용한 점에서 레벨이 다르지요. 유학이 있었다라고 말을 할 정도면 에도막부에도 유학이 도쿠가와 가문의 통치이념이 되었기에 유학은 일본의 국교다라고 말을 할 끈덕지가 되는 겁니다. 현실은 고쿠가쿠에 의해서 외래사상으로 취급받은게 고작이지만요. 중국과 일본에서는 유학이 기술의 문제지만 한국에서는 종교적 냄새가 나는게 큰 차이입니다.
고니 13-03-05 19:09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중국인거냐 ㅋㅋㅋ

전세계적으로 역사의 개념 중에 제일 웃긴게 중국 :)

그리고 크다고 다 좋다는 생각은 중국인이니까 나오는 발상이 아닐까 `ㅡ`
NASRI 13-03-05 19:16
   
역사 운운하는데 경복궁이 자금성 보다 더 오래된 건축물입니다.

경복궁 1395년

자금성 1421년

그리고 경복궁이 모습을 잃어버린건 일본 때문입니다.
1926년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 앞에 조선 총독부 청사를 짓고
이듬해에 정문인 광화문을 치워버림으로써 경복궁은 완전히 제모습을 잃어 버리고 말았죠.
짱깨가싫다 13-03-05 19:18
   
중국 자금성도 웅장하고 멋있어요
그런데 경복궁도 건물 자체는 웅장하진 않지만 뒤에 있는 북한산 때문에 굉장히 웅장한 느낌을 주는것 같아요
진짜 풍수가 좋은듯
에버모션 13-03-05 19:19
   
짱깨야 니들 조상이 한족이지? 그럼 너의 역사에서 한족이 이민족에게
노예로 지낸 역사가 길까요? 아니면 지배한 역사가 길까요? 
한번 역사 도표 꺼내서 비교해봐라!  어디서 노예를 같다붙여 짱깨씨가
짱깨가싫다 13-03-05 19:21
   
원래의 경복궁은 그 크기가 자금성이랑 비슷했던거 아시나요??
창덕궁, 창경궁, 경운궁 모두 같은 담장 안에 있던 궁궐들 이었어요
그런데 일제때 쪽바리들이 와서 다 허물어 버렸고 축소시켜버렸죠 지금 남은 경복궁은 원래 경복궁의 1/3 크기에요
모래곰 13-03-05 19:21
   
일단 말하자면 경복궁의 역사가 자금성보다 더 일찍 지었졌고
지금의 경복궁은 이성계가 지었을 당시보다 당연히 못하죠.
어디서 말하기는 대원군이 지은 경복궁보다 이성계의 경복궁이 크기에선
더 컸다는 말도 있더군요.
지금은 복원된게 25%정도 되나?
일단 청와대부터 시작해서 복원하기 힘들죠.
그리고 우리나라 궁은 청기와를 썼다는 기록이 있더군요.
붉은 기와도 있었다고 말하고요.
중국은 침입자를 쉽게 발견하기 위해서 궁궐을 지을 때
암살방지를 위해 돌을 많이 사용했다고 하더군요.
반대로 고려, 조선은 그런 위험이 적어서 나무를 많이 사용했고요.
그래서 고려궁궐인 만월대가 작기는 하지만
아름답기는 우리나라 궁궐이 낫다고 중국사신이 그랬다고 하더군요.
경복궁은 만월대와 달리 층으로 지은 궁궐은 아니라서 위압감은 적지만
크기는 엄청 크죠.
일단 우리나라 건축은 자연과 조화를 중요시여깁니다.
중국의 웅장함을 중시여기는 건축과 개념이 많이 다르죠.
굳이 비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잭더리퍼 13-03-05 19:24
   
자금성이랑 천안문 실제로 중국여행가서 두눈으로 다 봤던 것들이지만
정말 실망했던 기억밖에 없는데 뭘......
자금성은 규모는 무식하게 클지 몰라도 각 건물마다의 개성이나 자연과의 조화 따위는 전혀 없는
그야말로 건조하고 삭막한 건물들의 나열일 뿐임. '미적 감각'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더군.
천안문이나 자금성이나 둘 다 시뻘건게 역시 사회주의 짱개다운 조잡함이 넘쳐 흐르더라.
천리마 13-03-05 19:26
   
지금의 경복궁은 임진년 왜란때 불타 소실된 것을, 고종때 흥선대원군이 재건한 것인데, 그걸 다시 일제가 온갖패악질을 하여 부시고 축소하고, 엉뚱한 박물관을 만들고, 앞에다는 총독부를 지어 훼손한 것을 다시 고증에 따라서 재건한 것임. 문화는 우열을 가릴수가 없는것인데 무슨 화장실운운 하는것을 보니 중국인들의 수준을 알수 있겠다.
빠다코코넛 13-03-05 19:26
   
문화재를  비교하고 자시고 할게 뭐있냐 ㅡㅡ
초콜릿건빵 13-03-05 19:26
   
자금성을 짓는 노역일에 동원돼 봐야. '조옷 같다'는 말이 입에서 나올 거다.
vvvv 13-03-05 19:28
   
경복궁도 좋고 자금성도 좋지
광화문도 좋고 천안문도 좋다 이거야
그런데 천안문같은 역사적 유물에다가 사진걸어놓고 표어 갖다 붙인 짱개들의 미적 센스는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다
     
외교 13-03-05 19:29
   
좋아요
     
햄돌이 13-03-05 19:41
   
ㅋㅋㅋㅋ
mymiky 13-03-05 19:29
   
왜 이런걸로 싸우는지 모르겠네-.-;; 중국애들 참 시간이 남아 도는 모양...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mymiky 13-03-05 19:54
   
문화혁명 당시에 자금성 다 부서버리자고 말한게 중국 본인들 아닌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그때 홍위병들이 다 부셔버렸으면 지금은 중국애들 반응이 어떻했을지? ㅋㅋㅋㅋㅋ
참, 궁금하네요 ^^

주은래가 참,, 훌륭한 총리였죠.
군대보내서 자금성 지키게 했으니.... 오늘날, 관광상품으로 돈벌고 ㅋㅋㅋ
수숫 13-03-05 19:31
   
개인적으로 궁궐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경복궁이 자금성보다 낫다고 자부할 수있는게 두가지 있는데 바로 곡선의 미와 자연지세와의 조화라고 봅니다. 우리나라 궁궐이나 성들의 공통된 특징이라 할수 있는데 중국의 궁궐중에 곡선을 가진 궁궐은 없죠. 또 한 북악산을 뒷배경 삼아 배치된 근정전은 경복궁의 꽃이죠. 자금성의 태화전보다 규모나 위엄은 떨어지지만 더 아름답다고 해야되나..
발렌시아 13-03-05 19:31
   
잘하는것이라고는 떡쳐서 무수한 새끼들 번식시키는 재주밖에 내세울게 없는 수천년 노예 한족들이 정신이 나갔군ㅋㅋ
산다라봄 13-03-05 19:37
   
일단 비교글로 분란을 일으킨 원래 게시자 조선족 새끼의 만행에 대해 짱깨들에게 대신 사과하며..

자금성은 거대하지만 차가운 느낌. 경복궁은 웅장하고 아늑한 느낌.

짱깨 니들이 역사를 제대로 배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장개석 vs 모택동의 중국내전 당시 장개석은 미군에 의해 보급을 받으며 부유해 모택동의 인민군보다 군대도 10배나 많았지만 전쟁에 패배하고 대만으로 쫓겨났지.

모택동의 팔로군 내 최선봉에 조선독립운동무장부대가 존재하며 모택동을 사상적으로나 무력으로 도와준 최측근이었는데 당시 팔로군 20%가 조선인들로 이루어 졌단걸 니들이 알고있을지 모르겠다.

이를 증명할 근거로는 6.25당시 수양제의 100만대군보다 많은 중국 인민들을 북한 지원군으로 보내 희생시켰다는 점으로 중국을 통일할 수 있게 도와준 조선인들에게 의리를 지킨것이다. 그만큼, 당시 조선의 인재들을 아꼈고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이지. 인민군 100만의 목숨을 희생할 만큼.

니들은 창피하고 쪽팔려서 이제는 한족의 중국을 부정하며 소수민족 연합체라고 중화사상을 포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5000년중 4500년이상을 타 민족에게 정복당해 노예생활하던 역사인걸 인정하기 싫을만도 하다.

역시 징기스칸이 한족을 히틀러가 유태인 청소한것처럼 전부 몰살시키려고 했을때 성사됐어야 한다.

징기스칸이 저러려고 했어도 자기네 역사라고 우기면서 위인전 출판하고 그러고 있겠지?

마치, 독일이 히틀러도 우리 위인이라고 하는거랑 뭐가 다를까. 니들 좋아하는 체면 구기게.
하이하이루 13-03-05 19:38
   
잘보고가요~
mr준 13-03-05 19:43
   
다 고유의 멋이있는거지.......
IceMan 13-03-05 19:52
   
잘 보고 갑니다~
김홍길동 13-03-05 20:00
   
?? 창덕궁보면 아직도 청기와인 누각이 존재하는데???..... 조선후기떄 거의 거의 10만군대가 쓸 분량에 화약재료로  기와 염색해다가 새로 갈아엎엇는데 ㅋㅋㅋㅋ??ㅋ?ㅋㅋ? 글고 자금성이 경복궁보다 50년 늦는데 ㅋㅋㅋㅋ 마록도 단순 칸수로만 따지면 9999칸에 자금성이가 7000여칸에 경복궁이나 ㅋㅋㅋㅋ 누각크기에서는 차이가 좀 나지만 단순 칸수로 비교하면 ㅋㅋㅋ 말고도 풍수지리나 색 배열이나 각 전각의 의미나 벽화의 세심한 손길을 알겟어? 걍 똥색으로 도배하면 그게 멋진줄 알지, 애초에 원나라풍(몽골)을 못버린거면서 ㅋㅋㅋㅋ
     
mymiky 13-03-05 20:17
   
하긴, 원래 베이징은 요 거란인들이 발해인들 데리고 건설한 도시라서 ㅋㅋㅋ
거기다, 지금 자금성이 있는 그 근처에 명이 불태워버린 원나라 황궁이 있었죠.
자금성 자체는 원나라 황궁을 많이 본따 지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영향을 안 받을수가 없었을듯..

그리고, 한국인들도 많이 모르는데
또한, 경복궁의 초기모습도 원나라 황궁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경복궁의 설계자가 어떤 환관인데, 원에서 유학한 초엘리트였음. 건축에 천재적인 소질이 있는..
이 환관이 알려지지 않은건, 훗날 왕자의 난때 이방원(조선 태종)의 반대 편에 줄 섰다가 숙청되었기 때문임;;;
이름이 뭐더라 -.-
대신, 경복궁 각 전각에 이름을 붙인 정도전은 아직도 유명하죠..
역시 양반과 환관의 신분의 레벨차이인가 ㅋㅋㅋ
정도전은 기억나는데, 환관이름은 기억이 안나네..;;;
햇살조아 13-03-05 20:01
   
자금성 자 (금!) 성이란점 압도하는 웅장함과 호쾌함 대국다운 건축물. 중국인들은 자긍심을 가져도 좋다. 자신들의 위대한 건축물의 알아봤다면 타국의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느낄줄아는 눈도 키웠으면 좋겠다. 아직 요원하겠지만 언젠간 그렇게 될것을 믿고있다. 우리가 그랬듯이.
김홍길동 13-03-05 20:03
   
걍 드럽게 크기만한 누각들이 궁궐미없이 나란히 배치되어잇는것과 경관 자연과의 조화 등등을 생각해 만든 경복궁하고 같나??  정도전이 막 지엇을 무렵의 경복궁은 경회루가 3층누각이엿더랫지 ㅋㅋㅋㅋㅋ 말고도 일본 고니시 장군은 경복궁을보고 "진시황제의 궁궐을 본거같다" 면서 눈물을 흘리며 용상(왕의 의자)에 측근들과 절을햇다고고니시 측근이 쓴 조선정벌기란 책에 나와잇지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홍길동 13-03-05 20:04
   
중국의 똥색 기와는 언제봐도 속이 매스꺼워진다 저 매캐한 주위환경하며 일반인은 궁벽에 손도 못대게 성벽아래 개울을 파놓는거하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선도 졔네나 쪾바리마냥 성벽 더 높게짓고 우물파자고 말하는사람도잇엇는데 전부 기가당햇지 ㅋㅋㅋㅋㅋㅋㅋㅋ
mymiky 13-03-05 20:06
   
개인적으로, 저는 경복궁보다 창덕궁이 더 좋아요.
조선왕들도, 경복궁보단 창덕궁에서 더 오랜기간 머물렸고, 조선후기의 정궁으로써의 기간도 창덕궁이 더 깁니다. 경복궁은 남자같이 좀 딱딱한 느낌이라면, 창덕궁은 여성적이고 아늑한 느낌이죠.
정원도 수려하구요. 마지막까지 조선왕실의 가족들이 창덕궁에서 생활했기에 그나마 조선 5궁중에서
훼손이 덜된 궁이라는 점도 마음에 드는 이유.

자금성은 제국의 황궁에 어울리만한 기개를 가지고 있지만, 암살을 막기위해 나무도 안 심었다고 할 정도로 삭막한 궁궐입니다. 그래서, 중국황제들도 대대로 자금성보단 행궁에서 보낸 시간이 더 깁니다.
원명원이라던가, 이화원, 열하행궁- (청의 여름별장, 박지원의 열하일기 속 배경..)
통밀케익 13-03-05 20:06
   
자금성도 여러차례 소실됐습니다.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검색해보니 지금 태화전(자금성의 정전)은 1695년에 재건된 거라고 하네요.
김홍길동 13-03-05 20:07
   
중국의 자금성은 알려진바로는 9999칸, 조선의 경복궁은 7500여칸으로 알려져잇다, 어디서 작다 논하냐 ?? 궁궐 크 기만 논하면 진짜 어마어마하게 크고 조선은 궁궐만 5개 운영햇는데 ㅋㅋ 개인사저엿던 경운궁을 뺴더라도 3개에 궁궐을 저정도 크기로 운영햇는데 ㅋㅋㅋ 어디서 설사색 기와 새끼들이 ㅋㅋㅋㅋㅋ
바령 13-03-05 20:08
   
솔직히 일본성도 멋있던데. 담이 높은게...
중국성은 그냥 크기만 큰거 같음...
     
김홍길동 13-03-05 20:13
   
중국성도 보면 참 머싯는거 많음; 일본 성도 보면 막상 크기로는 별로 안큼..;; 가고시마성 크기가 경복궁 내에 경회루 정도고.... 일본황궁은 경복궁에 1/3도  자금성에 1/4도 안댐...;; 현재 존재하는 성도, 조선에 존재햇던 망루 수준이고 ; 애초에 섬나라 특징만 살아잇던 나라 동아시아 궁궐개념이나 상징성도 모르니.... 그냥 영국이나 필리핀같이  섬나라특징인 성만 드글드글한나라
     
모래곰 13-03-05 20:18
   
지금 일본성이 정말 진짜라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오사카성도 시멘트로 만든거예요.
오다 노부나가의 기후성도
실제 모습을 보면 그냥 암자입니다.
일본이 잘나갈 때 다시 싹 멋지게 새로 만들었습니다.
날조죠.
     
mymiky 13-03-05 20:25
   
일본성과 비교하기엔 좀 아니고,
일본 교토에 가면, 고세라고, 헤이안시절부터 도쿠가와 막부가 타도될때까지 일왕이 살던
그 곳이 [자금성-경복궁-고세] 비교할만하죠.

지금 일왕이 살고 있는 도쿄에 살고 있는 궁은 도쿠가와겁니다.
고세빼곤, 장군들이 살던 궁은,, 중국이나 한국하고 비교하려면, 행궁(?)개념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물론, 100% 다 같진 않겠지만..
원래 일본은 한중같이 중앙집권국가가 아니라, 각 지방마다 영주가 따로 다스리던 나라라..;;;
김홍길동 13-03-05 20:09
   
고구려의 궁궐인 안학궁의 크기가 자금성 이상인건아나?ㅋㅋ 개발이 많이되지않던시기라 궁궐에 쓰이는 나무들이 깔리고깔렷던 삼국시대 궁궐을 모르나?ㅋㅋ 말고도 고려 궁궐에 단층없이 전부 2~3층인건아나? 당나라 궁궐에ㅐ 배ㅣ해  발해궁궐이 작다고 발해가 제후국이라고 헛소리하다가 발해 궁궐터 발견됫는데 그게 당나라 궁궐급이라 아닥한거 기억안나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캐럿 13-03-05 20:11
   
위의 댓글중 경복궁과 자금성을 비교해 단 댓글러들중 아이디가..
우선 글 게시자 아이디가 令FQ嫉妒的韓國(한국의질투)..
경복궁과 자금성을 비교한 아이디가 武田美子(일본식 이름)..
어그로꾼들.. 미꾸라지에 소금 뿌린 듯..ㅋㅋㅋ

//치명적이야/님.. 수고하여 주신 장문의 번역 정독으로 잘 봤습니다...^^!
바우리노재 13-03-05 20:11
   
임진왜란때 경복궁은 왜군이 아니라 일반 양민과 천민들에 의해서 잿더미가 된겁니다.

왜군이 쳐들어오자 선조는 불과 100명 남짓한 무리만 이끌고 간밤에 서둘러서 궁궐을 떠났고, 이에 성난 민중들이 경복궁에 난입해서 약탈하고 불태웠죠.
     
mymiky 13-03-05 20:36
   
보통, 이렇게 알려져 있는데,
선조 당시 실록엔 그런 말은 없고
반세기 후에 선조수정실록에 등장합니다.

선조실록은 광해군시기 북인파들이 썼고,
수정실록은 인조의 서인파들이 썼습니다. 각기 정치입장이 달랐죠.
서인들은 광해군을 몰아내고 북인들을 숙청시킨 집단입니다.
서인들은 강경노선으로 호란을 불러왔고, 백성들을 지탄을 받습니다.
인기가 하나도 없었죠;;; 또한 이런 백성들의 분노를 무서워해 북한의 김정일처럼
강제로 억누르는 정책을 썼습니다. 과연? 그들이 만든 수정실록이 사실일까요?

선조실록에 따르면, 선조가 피난한건 4월 30일이고,
일본군이 입성하여 고니시가 도착해 조선성을 본건 5월 3일, 
일본군의 종군승려가 경복궁 소실을 보고 탄식한 기록은 5월 7일입니다.

5월 3-7일 이 사이 경복궁이 불에 탔습니다. 과연? 누구의 소행일까요?
전, 일본군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우리노재 13-03-06 21:59
   
ㅋㅋㅋ 아예 논문을 한편 쓰세요. 공인 되면 바로 서울대 사학과 전임교수로 임용되시겠네

주류 사학자들 의견을 뒤엎어버리는 해석이니, 당장 국가고시 및 한국사 검정시험 내용부터 수정해야겠네요
               
mymiky 13-03-06 23:49
   
주류 사학자들 의견이 백성들이 불을 질렸다고 확증하진 않아요.
다만, 각종 책에서 저 수정실록을 인용하는 구절이 많죠.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인용되고,,그래서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인데
그러니까. 그 수정실록은 왜란당시의 기록이 아니라, 그후 50년뒤에 이야기란 말입니다.
정작, 당시 선조실록에는 백성들이 불지른 이야기는 안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면, 왜 이같은 이야기가 퍼졌을까? 그건 서인파들이 역사적으로 승리자이기 때문입니다. 승리자가 역사를 쓴다, 뭐 이거죠.. 그러니, 정권을 조선후기까지 내내 잡은 서인파의
주장이 살아남은 것이구요

오늘날은, 좀 더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게 역사학의 화두입니다.

한중록, 불쌍한 혜경궁 홍씨도 어떤 면에선 사도세자 죽음과 연관이 있다는 점.
백제 의자왕과 조선의 광해는 그냥, 단순히 기록에 적힌  폭군이 아니라는 점

기록에 적혀 있다고 다 100%그대로가 아니라,
당시 정치상황과 샐록의 숨은 행간을 찾는게 현재 역사학입니다.

당장 국가고시와 한국사 검정시험에서
왜란때 경복궁이 전소되었다는 사실을 배우지
 
그 불을 백성들이 내었느냐? 일본군이 내었느냐?를 묻지는 않습니다. - 이건 학자들도
주장이 엇갈립니다.
카아트 13-03-05 20:22
   
자금성과 경복궁의 기둥 하나만 봐도 차이가 나죠.

궁궐에 기둥을 이어붙인 나무를 쓰는게 더 고급일까요 아니면 통나무그대로 쓰는게 더 고급일까요?
이어붙인 나무를 쓴다면 수백년된 나무가 필요 없겠죠. 그래서 궁궐의 기둥은 자존심과 부의 상징이기에 절대 이어붙인 나무를 쓰지 않았죠.

그래서 경복궁의 모든 기둥은 둘레가 3미터가 넘어도 속이 꽉찬 진짜 통나무 입니다. 
그러니 수백년된 나무를 써도 크기가 그이상 커지지 않는거죠.
 
반면 자금성의 둘레가 10미터가 넘는 기둥을 가까이서 보면 나무를 이어서 만든 합판입니다.
하지만 큰 통나무 같이 보이게 했죠.
이것만 봐도 궁의 성격이 매우 달랐다는게 나오죠.

즉, 중국은 넓은 지역을 통치하기위해 사절단에게 국력을 과시하는 것이 주 목적이고
한국의 궁궐은 자연의 미를 그대로 살려 아름다운 궁궐을 만드는게 주 목적이였죠.

그러니 미적인 차원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거죠.
Chaeja 13-03-05 20:23
   
지랄들 하고 앉아있네 ;;
새문명 나올때마다 역사 재편찬 하고있는 쉐이들이 무슨 역사를 논하고 자빠졌음 -_-?
어제의 영웅이 오늘은 역적이 되는 죤내 희안한 역사를 가진...것도 지들 역사도 아니고 전부 이민족 역사인 주제에 먼 개소리가 주절주절 저렇게 많은건지 ㅉㅉㅉ
징기스칸 어쩌고 저쩌고 개헛소리 시불더만 요즘은 그딴소리 안하는거 보니 어디서 욕좀 처먹은듯?
너넨 그냥 원래 너네대로 갈라져...그래야지만 역사를 논할수 있음.
어거지로 하나로 뭉쳐서 한 나라의 역사로 보기엔 니들역산 너무 중구난방에 모순이 많아.
크리스탈과 13-03-05 20:24
   
짜장면들이 코미딘게 지들이 올려서 비교하고 지들끼리 열폭한다는거죠 ㅋㅋ
ㅠㅠㅠ 13-03-05 20:33
   
그래도 중국댓글은 솔직한면이 있네요.
블루하와이 13-03-05 20:36
   
잘 보았습니다 ~
포푸포 13-03-05 20:37
   
크기웅장함은 자금성이긴한데
외관은 경복궁이 갑이네
복원한걸 감안하더라도 애초에 색채부터 자금성은 좀...
오발탄 13-03-05 20:38
   
★ 그 위대한(?) 중국인이 지금은 짝퉁천국에

독만두와 가짜분유나 만들고 있으니 매우 자랑스럽기도 하겠다.

그리고 청나라는 한족의 역사도 아니잖아?

한족 노예가 만주족 주인의 웅장한 문화재를 자랑하는 셈이잖아?
일본점령 13-03-05 20:42
   
비록 지금은 짱께의땅으로되어있지만  과거 우리 조상의 주무대인 요동에 고구려땅 동북삼성의 위상에 감히 저 젓만한자금성이 도전할수있겟냐?
고구려의 수도성터였던 오녀산성,국내성,평양성  거기에 발해의수도 성터는 또어떻고

경복궁도  쪽바리 씨풀 원숭이새끼들이 건딜지만않앗어도 자금성따위 눈에들어오도안한다
짱께들아 요동땅건딜지마라 우리문화재 훼손도하지말고
xtzl 13-03-05 20:50
   
경복궁이 뭐 볼게 있나...

크기고 왜소하고 그냥 한옥식 건물에다 황토색 흙마당이 전부인데....
     
mymiky 13-03-05 20:53
   
아는만큼 보이는 법이죠 ㅋㅋㅋ
돼지눈엔 돼지만 보이구요 ㅋㅋㅋ
굿잡스 13-03-05 21:03
   
<자금성을 능가하는 조선의 궁궐.>


 
조선의 500년 도읍지이며 현재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은 이미 중세 고려의
 
(개인적으로 발해 신라 체재의 연장으로 금 고려 시대도 남북국 시대의 연장
 
으로 불러도 무난할 것으로 파악됨. 실제 파고 들면 금나라는 신라인 황제와
 
고구려인의 연합국 성격이 매우 짙음) 4경의 하나로 중시된 곳입니다. 고려
 
시대에는 수도인 개경을 중심으로 서경 역시 중시했고 이미 천년 수도로 유
 
럽의 최대 도시인 로마 이상의 규모와 국제적 대도시였던 전통적 동경(서라
 
벌)과 함께 남경으로서 그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선 건국 초기 고려의 토착 세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남경인 지금의 서울
 
을 수도로 천도하면서 본격적인 조선의 중심 도시로 거듭나게 됩니다.
 
물론 서울은 단순히 중세 고려시대 뿐 아니라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이 본격
 
발굴되여 학계에서 10여년의 연구를 통해 백제 한성 500년 시대의 수도였음
 
이 가시화 되어지고 있음.
 
즉 이미 기원전 18년 부터 기원후 475년 웅진(공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
 
지 500여년의 백제 수도로 풍납토성의 성벽 둘레는 3.5킬로로 연 100만명을
 
동원해야 가능한 규모로 4,5세기경에는7,80만에 이르는 국제적 규모의 대도
 
시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고대 도시문명의 특징은 서토의 왕조와는 달리(서토는 평지에
 
조성된 정방형 형태) 평시 업무는 평지성 외에 유사시를 대비한 산성
 
을 배후로 두는 것이 전통적 방식으로 이런 산성은 다른 나라에서 요새적 규
 
모의 작은 형태의 성격과는 달리 전시에 그 일대의 백성을 수용하고 생활하
 
면서 정사를 추진할 수 있는 도시형 형태로 상당한 규모로 조성되는 등 성곽
 
의 나라, 고도의 산성 기술을 구축한 게  특징입니다.(우리는 평지형 성곽 
규모도 상당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라는 말.)
 
 
한성 백제 500년 서울 풍납토성

http://blog.naver.com/seoulbaekje?Redirect=Log&logNo=100144630961


 
백제는 이런 평지형 풍납토성 외에 배후 산성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크기들
 
이 몇곳 존재하며 평지성으로 한때 풍납토성과 더불어 백제의 중심 도성으
 
로 추정되었던 몽촌토성도 존재합니다.( 성곽의 전체둘레는 2,285m이며 총
 
면적은 21만 6,000㎡이지만, 외성을 합할 경우 총면적은 30만 2,500㎡에 달
 
함)
 
즉 <서울이라는 공간은 이미 2천여년의 유서 깊은 역사를 간직한 곳임을 새
 
삼 알았으면 하네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조선은 경복궁을 주궁궐으로 해서 동궁에  창덕궁과 서궁으로 경희궁을
 
두고 창경궁과 경운궁(덕수궁)을 수시로 활용하면서 연결된 공간의  5궁 체
 
재의 규모로 가히 도시급 크기임. 서구인이 자금성의 크기와 위용에 놀랬다
 
고 하지만 실상 조선의 이런 연결된 5궁의 규모는 자금성을 능가한다는 사
 
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제법 되더군요.>  (이미 삼국시대 고구려의 안학궁이
 
나 발해의 상경용천부의 건축물들은 7대 불가사의라는 타지마할를 능가할
 
뿐 아니라  당대 서토의 도성 건물을 능가하는 동아시아 최대급의 위용을 보
 


<사진>과 함께 좀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로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50733&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A%B2%BD%EB%B3%B5%EA%B6%81&sop=and
굿잡스 13-03-05 21:10
   
     
햄돌이 13-03-06 18:47
   
고구려 안학궁이 당나라 대명궁보다 작았다고 하는 사람있음
http://blog.naver.com/peece51?Redirect=Log&logNo=140176851689 <<주소

그 사람들이 안학궁 중궁이 대명궁 중궁보다 규모가 크다는 사람들은 환빠라는데요
          
굿잡스 13-03-07 13:34
   
당나라 대명궁은 고구려 이후에도 계속해서 증축된 건물임.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tkdgurdl45&logNo=130155097883

고구려의 안학궁은 5세기 초 장수태왕때 지어진 건물로

당시는 서토에 당나라라는 국호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절임.(북방 이민족인 선비족 북위가

내려와 장안을 정복하고 북조사를 세운 남북조 시대임. 남조은 찌그러져 있어

백제 군사력에 의해 (남조 까지 정벌하던 북위 기병 대군을 내리 격파)

그나마 목숨부지 하고 살던 시절임)


참고로 서토 성과 우리나라 성의 분명한 차이점을 알아야 하는것이

서토 왕조의 성은 기본 평지성에 정방형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주요 대도시형

성곽에는 그에 버금가는 도시형 산성을(유사시 일대 백성을 다 수용하고 생활할수 있

는 행궁으로) 함께 셋트형으로 구축해 놓기에 단지

평지성만으로 규모를 말하는 건 곤란함.

고구려 안학궁만 봐도 불과 750미터 떨어진 곳에 대규모의 대성산성이 셋트형으로 구

축해 놓았음
               
굿잡스 13-03-07 14:00
   
<대성산성>

대성산성은 묘향산의 지맥인 대동강 북쪽의 을지봉(270m)을 중심으로 남쪽에서부터 소문봉·장수봉·북장대·국사봉·주작봉 등 6개의 산봉우리를 연결하는 타원형의 포곡식 산성이다. 그런데 주작봉과 소문봉 사이 남문이 있는 골 안에서는 2중으로, 주작봉과 국사봉 사이 골 안에서는 3중의 겹성으로 쌓았다. 산성의 규모는 둘레 7,076m, 성벽 총길이 9,284m, 면적 2,723㎢이다.


성벽은 대성산과 그 부근의 사암과 화강석을 사각추 모양으로 다듬어 서로 어긋나게 물려 벽돌 쌓듯이 쌓아올렸다. 성벽의 바깥 부분은 큰 돌로 쌓고 안쪽 벽은 돌과 흙을 다져넣었다. 국사봉, 주작봉, 소문봉, 장수봉 등 전망이 좋은 곳에 장대를 설치했다. 성벽에는 요소마다 방어용 시설인 치(雉)를 세웠는데 지금까지 65개소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1978년에 복원한 남문을 비롯하여 20여개의 크고 작은 문터, 행궁, 병영, 창고 등 20여 곳의 건물지, 고구려시기에 흔히 볼 수 있는 붉은색 기와들과 21종의 수막새기와가 발견되었다.

성안에서는 구룡못, 잉어못, 장수못 등 170여 개의 연못을 두어 물을 이용하였는데 그 대부분이 장수봉과 을지봉 중턱에 있다. 연못은 찰흙과 막돌을 섞어서 바닥을 굳게 다진 다음 그 위에 다시 조금 큰 돌을 깔아서 물이 새지 않도록 하였다. 그밖에도 금동불상, 불경이 들어 있던 돌함 등의 유물과 유적이 많이 발견되었다. 평양 전경과 대동강, 보통강의 경치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주작봉 마루에는 1975년에 문을 연 혁명열사릉이 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cid=200000000&docId=1158077&mobile&categoryId=200001104
코코아요 13-03-05 21:13
   
누가 비교하는거 올린건진 몰라도 자금성도 대단하죠... 이미 인정하는데 굳이 저렇게 난리칠 필요가;

하여간 저런거 보면 짱개들 중화사상수준이 느껴지네요... 빨간놈들;; 공산당놈들;
지금나우 13-03-05 21:19
   
아니 솔직히 자금성이 더 멋진건 인정해야죠 ㅡㅡ; 우리나라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중국은 황제국이니 당연히 더 멋지게 지을수밖에..... 이건 뭐 민족의 우월성 그런거 비교할것도 아님...
     
굿잡스 13-03-05 21:25
   
자금성은 건물자체가 크기는 한데 담장이 시망 ㅋㅋ.. 그리고 저 사진에는 나무가 제법 촘

촘하게 관광용으로 만들어 논 것 같은데 실제는 휑했음. ㅋ
     
자유생각 13-03-05 21:34
   
크게 짓긴 했어도 멋지다고 할 수는 없죠.  역사적으로 자금성은 급조된 왕궁에 불과합니다.
          
지금나우 13-03-05 21:41
   
자금성은 14년, 경복궁은 1년만에 만들어진걸로 아는데 다른가요?
               
굿잡스 13-03-05 21:46
   
경복궁을 1년만에??? ㅋㅋ 장난 하세요. 현대에도 그리 못하구만 ㅋㅋ

조선의 궁궐은 5개의 궁궐이 하나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거의 단일

구조입니다. (단순히 경복궁만 있는게 아님).


이게 일제시대 잽놈들이 우리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궁을 파괴하고

동물원이니 총독부니 짓고 헐면서 공간을 끊어 버리고 다시 현대에

도시화가 되면서 나뉘어져 마치 조선 궁궐은 저 경복궁 하나로 인식하는데

전체적 면적은 자금성을 능가합니다.
                    
지금나우 13-03-05 21:54
   
경복궁 :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다섯 개의 궁궐 중 첫 번째로 만들어진 곳으로, 조선 왕조의 법궁이다.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후 종묘, 성곽과 사대문, 궁궐 등을 짓기 시작하는데 1394년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인 1395년에 경복궁을 완성한다.
                    
지금나우 13-03-05 21:58
   
창덕궁 : 1405년(태종 5) 완공되었으며, 면적 43만 4877㎡이다. 태종(太宗)이 즉위한 후 1404년(태종 4) 한성(漢城)의 향교동(鄕校洞)에 이궁(離宮)을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하고 창덕궁이라 명명하
[출처] 창덕궁 | 두산백과
                         
굿잡스 13-03-05 22:07
   
물론 단편적 경복궁 하나만 보면 그렇죠. 앞서도 말했지만 기본 조선은

경복궁을 중심으로 5궁체재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조선 왕의 제사를 모시는 중요한

종묘만 해도 단일 목조 건물로는 101미터로 세계최장

길이이고 유교적 격식에 따라 엄격하고 절제 단선적 미를 강조했습니다.

조선 초기 이성계 당시의 한양의 경복궁은 실제 제 역할을 하지 못했어요.

이미 그 당시 500년 중심지인 고려의 개경 궁궐인 만월대 등의 건축물의

위용이나 도시 크기나 발달이 상당했으니.


다만 일개장수 였던 이성계가 쿠테타를 통해 고려왕조를 엎고 나자 정몽준

같은 반이성계 고려 충신 세력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고려 당시 운영되는 4경 체재(수도 개경과 서경 그리고 동경(서라벌) 및 남경

(서울)에서 개경의 토착세력의 입김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경인 오늘날 한양에

본격적 천도를 서두러게 됩니다.

한양은 제대로 국정 운영으로 돌아 갔던게 세종대왕 시기임.
                    
지금나우 13-03-05 22:04
   
가장 큰 궁궐들만해도 1년밖에 안걸렸는데요;
                         
토박이 13-03-06 01:32
   
자금성 14년과 경복궁 1년의 차이점.

경복궁은 건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궁궐을 말하는 것입니다.
1394년(태조 3) 10월,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은 이성계를 반대하는 전통세력의 기반이 강하게 남아있고, 풍수지리, 조세미(租稅米)의 수상운송, 군사지리적 조건 등을 고려해 한양으로 옮겼습니다.

위에 나온 사진은 경복궁(궁권) 건축물 중에 하나인 "근정전" 사진입니다.
경복궁 안에는 강녕전, 연생전, 경성전, 사정전, 근정전, 근정문(광화문) 등.. 많은 건축물이 있습니다. 

경기좌도의 인부 4,500명, 경기우도 인부 5,000명, 충청도 인부 5,500명을 징용.
 총 1만 5.000명의 인부가 동원되어 1차완성은 내부 중심부만 1년이 걸린것이고 나머지 부분은 몇년 뒤에 완성 됬습니다.  총 공사 기간은 경복궁이 더 오래 걸렸습니다.
자금성의 14년은 건물 1개의 공사 기간이 아니라 성 전체의 공사 기간입니다.  성 전체 규모가 크니 공사기간이 길지요. 자금성 건축물 1개만 짓는 다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창건
1392년 조선 왕조를 개창한 태조는 즉위 3년째인 1394년에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열어 1394년(태조 3년) 한양에 천도하자 먼저 종묘 및 사직의 건설에 착수한 다음, 청성백 심덕부에게 명하여 궁궐을 짓게 했다.

처음 새 궁궐을 지으려고 잡은 터는 고려 때의 남경 이궁(南京 離宮) 자리였으나 너무 협소하여, 거기서 남쪽으로 조금 옮겨 지금의 경복궁 자리에 건물을 배치하고 전각을 세웠다.(태조실록 6권 3년 9월 9일)

새 궁궐 경복궁은 태조 4년(1395년) 8월 경기좌도의 인부 4,500명, 경기우도 인부 5,000명, 충청도 인부 5,500명을 징용하면서 시작되어, 같은 해 9월 29일에 1차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 때는 궁궐 내부 중심부만 이루어졌고, 궁궐을 감싸는 궁성이나 궁궐 앞에 세워지는 의정부나 육조 등의 관청은 몇 해 뒤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 해인 1395년 음력 10월 태조는 입궐하면서 정도전에게 새 궁궐과 주요 전각의 명칭을 지어 올리게 하였는데, 경복궁의 명칭을 비롯하여 강녕전, 연생전, 경성전, 사정전, 근정전, 근정문, 정문(현재 광화문) 등 주요 건물의 명칭은 이때 지어졌다.

이후 1411년 태종은 경복궁에 금천을 파도록 명하고 이듬해에는 경회루를 건축하였다.

경복궁이 조선왕조의 법궁다운 면모를 갖춘 것은 세종대왕 때였는데, 1426년 왕명을 받은 집현전에서 경복궁의 각 문과 다리의 이름을 지어올렸으니 광화문, 홍례문(현재 흥례문), 일화문, 월화문, 건춘문, 영추문, 영제교 등이 이때 지어진다. 그리고 1429년 사정전과 경회루의 중수를 시작으로 주요 전각을 새로 짓거나 중수하였다.
               
지금나우 13-03-05 22:04
   
제가 어렸을때 자금성다큐를 봤었는데 계단에 들어가는 거대한 돌 옮기는데만도 2만명이 동원되서  몇달을 옮겼다는데 급조라면.....
                    
굿잡스 13-03-05 22:20
   
고려말 조선 초에는 여전히 중심지가

서울(한양) 보다는 개경이였습니다.

고려 황궁 만월대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41611&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B%A7%8C%EC%9B%94%EB%8C%80&sop=and


지금 우리가 보는 조선 고궁이나 풍광은 임진 이후 소실된 상황에서

전란으로 오는 목재의 부족이나 일제의 파괴이고

기록상으로 보면 고려 말 조선 초에는 여전히 도시 풍광에서 고려 시대의

목조 건축양식이 많이 남아 있어 다층 구조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조선의 고궁에서도 지금은 보이지 않는 왕이 다락방에서 잠을 자는등

다층 구조를 암시하는 기록등이 나오고요.


이후 조선은 유교적 정치 이념이 위정자의 엄격한 청백리였습니다.

고려 시대처럼 귀족 세습도 아니고 3대에 걸쳐 과거에 합격 못하면 양반의

지위도 상실되는 등 고려와는 또다른 대변혁의 사회상을 보여주면서

건축물에도 권력자라도 엄격한 제한을 두었죠.

고려 시대 권세가들의 장원급 건축물이나 면적을 보면

몇백미터에 개인 사병까지 두면서 상당한 고루 건축물들을 자랑했죠.

단순히 건축물이 크다고 그 나라나 사회상의 수준이 올라 갔다고는 볼수 없는..


실제 조선 초중기 세종대왕이 이끌고 이룩한

조선의 정치 문화 과학 사회 인본 제도등은

명보다 훨씬 앞선 선진 대국이였습니다.

(노비에게도 출산 휴가를 주고 양반도 함부로 하인에게 몹쓸 짓을 하면 엄벌을

받았으며 조세정책에 대해 백성에 투표까지 했던 나라가 조선이였음)


이후 17세기 대동법의 시행으로 조선내에 화폐의 발달과 상공업이 활발해지면

서 후기 영정조시절 다시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본격적 신분질서가 와해되는

양상과 함께 근대적 사화상들이 출현하기 시작했고요.
닌누꼬 13-03-05 21:25
   
잘보고갑니다
patron 13-03-05 21:27
   
중국이 훨씬 웅장하긴하제
페닐 13-03-05 21:29
   
중국애들도 어지간히 교육 받은 애들은 이미 알고 있을걸...
걔들 유적지라는거 대부분이 문화혁명때 부숴지고 최근에 대충 다시 만든거란걸...
자유생각 13-03-05 21:30
   
자금성이 규모면에서 경복궁보다 크지만 그렇게 큰 차이는 아닙니다.  일제때 파괴된 부속건물과 외부관청들을 고려하면 경복궁도 자금성 못지 않은 규모죠.  자금성 자체가 중국인들 특유의 허풍 때문인지 실제보다 과대평가된 감이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건축관으로는 북악산까지도 궁궐의 범위로 볼 수 있으니까 단순히 평수 따지는 것 자체가 웃기는 겁니다.

그리고 자금성의 미적감각이 떨어진다는 점도 공감이 가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금성 건축 자체가 정치적 목적에 따라 굉장히 단기간에 이루어졌고 그러다보니까 설계의 재활용이 많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조립식 건물을 큼지막하게 지어놓은 것과 같지요.  자금성이 크고 유명하긴 해도 아름다운 건축물이라고 하긴 힘들겠죠.
굿잡스 13-03-05 21:34
   
우리 고구려 문명권의 한계통인 만주족이 다시금 북경을 정복하면서 제일 먼저 뜯어 고친게

하늘에 제사 지내는 원구단입니다. 

이게 보면 서토 한족들의 수리 세계관은 짝수로 분화 즉 2,4 로 이어지고 우리의 북방 기마문화권은

홀수의 세계관으로 1,3,9로 분화하는데 원구단 구조마저 이렇게 만들었죠.

(서토애들은 짝수의 대칭형 안정형을 선호하고 우리는 불안정성을 역동성으로 느끼는 기질을 가짐)



현재 짱국의 수도인 북경이 오늘날 정치의 중심지가 된 이유는 산라계 황제 아골타와 고구려인(발해)

연합국의 금나라가 요나라를 무너뜨리고 한족 송까지 멸망시켜 버리면서 이들 군주들을 만주로 압송해버림.


이에 쫓겨 내려가 남송을 세우고 북쪽은 다시 우리 고구려인 장호에 의해 북경의 대수로와 도시 기반의

중도라는 수도를 건설하게 됩니다. 이렇게 금나라는 동북아의 패자로서 100여년을 군림하다

이후 몽골이 다시 북경을 장악하면서 기존의 중도에서 다시 확장 이후 명이 남경에서

올라와 자금성을 짓고 다시금 이민족 만주족이 서토를 정복하면서 자금성의 주인이 되어 오

늘날 짱국 수도가 북경이 된 것임.
굿잡스 13-03-05 21:38
   
sxz1997
중화의 위엄, 삼성 노비의 빵즈는 중국의 성지를 순례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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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ㅋㅋㅋㅋㅋㅋ

쥐랄함. 정작 자신들이 독재 공산당의 노비로 이전 왕조시대나 다를 것 없는 인권 정치 문화 생활 수준이면서 뭔 ㅋㅋ..

일부 공산당이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 나머지는 개인의 정치적 의사표시나 시위마저도 제대로 못하는

노예사회가 뭔.. 스스로 느끼고 부끄러워 할줄도 모르는 ㅋ.



민주주의가 무슨 가만히 앉아서 떨어지는 떡고물인줄 아남??

(우리 고대 노비들의 저항 운동인 망이망소이 난부터 조선시대의 동학 혁명이나

파란만장한 근현대의 정치사들 함 보길 바람. 어떻게 대한민국이  식민지와 전쟁으로

초토화 그리고 분단속의 극심한 이데올로기적 대립속에서도 경제뿐 아니라 민주주의

라는 양대 산맥을 이루어 내는 기적같는 성과를 이룩한 피눈물로 범벅된 역사를)
     
오랜습성 13-03-06 03:40
   
뭔소리임?매국노들에 의해 강제합병당한건데 정작 고종도 반대했고.
          
굿잡스 13-03-06 11:10
   
?????
나임ㅎㅎ 13-03-05 21:45
   
근데 그거아니 짱깨야..?? 니들도 우리나라같은 색깔이였는데 원나라세우면서 니들도 뭐 속국이나 마찬가지지.. 몽골족한테 먹혔잖아 몇백년동안;; 지들은 뭐 최고였는줄알어ㅠㅠ.. 지금 우리가 치파오 변발등.. 모든게 다 몽골족의 의식이라는거..ㅠㅠ 지들은 지들껏도 없으면서 개지랄ㅋㅋ
꽃피는봄 13-03-05 22:16
   
sxz1997
자금성은 중국 천자의 황궁이고,
경복궁은 중국의 속국 조선 국왕의 왕국이야,
등급 자체가 다르다고.

등급을 따지니 짝퉁중국이...  성채가 짝퉁은 아니겟지만 조선의궁이 자금성보다 15년이상 먼저 지어진걸 알고나있니 바퀴스탄들아..  그넘 니들은 러시아 속국이니.. 이것들은 모든걸 부피로만 판단하네..

지금의 한족중심 중국이 다스렸던 기한을 생각해봐.. 누가 누구속국이여 븅들
둥가지 13-03-05 22:20
   
중국따위가 ㅋ
뜨리미 13-03-05 22:32
   
자금성 지어지기 전까지 아시아 최대궁이 경북궁이였지 않음??

경북궁 면적이 자금성하고 거의 차이없는걸로 아는데...
굿잡스 13-03-05 22:45
   
대개 성곽을 쌓을 때 높은 산을 베고 있다. 가끔 언덕이나 산기슭을 나와,
또한 구불구불 둘러 있는 것이 보인다. 큰 것이 날아갈 듯 치첩이 솟아 있고,
작은 것도 우뚝하게 표관이 웅장하다.

환취(황해도 봉산군에 있는 누각)는 날아갈 듯 아름답고, 총수(산 이름)는 구름이 이어졌다.
보산(관<關> 이름)에는 서기가 날아오르고, 금암(관<關> 이름)에는 시내가 통과한다.

[개성은] 봄바람에 술집 깃발이 나부끼고, 달밤에 음악소리 들린다.
그 민물(民物)은 풍성하여 실로 다른 고을에 비길 것이 아니고,
풍기(風氣)는 밀집하니 또한 서경(평양)에 견줄 바가 아니다.

[서울은] 트인 길과 통한 거리는 바르고 곧아서 구부러짐이 없고,
잘라낸 듯한 처마에 우뚝 빛나는 집이다.
모든 집은 높은 담이 있어서 바람과 불을 막고,
방마다 북쪽 창을 뚫어 더위를 피한다.

[서울에는] 종고라는 다락이 있다. 성 안의 네거리에 있는데 매우 높고 크다.

서울 안에 우뚝 솟았고, 길가에 높고 높도다.

시끌벅적 수레와 말 소리가 울리고,  끝없이 어룡 유희가 나온다.

식기는 금, 은, 동, 자를 섞어서 쓰고, 품물(品物)은 바다와 육지의 진기한 것이 고루 많다.

경기 안의 경치로는 한강이 제일이다.
누대는 높아 구름을 막고, 물은 푸르러 거울처럼 비춘다.
나루로는 양화도가 있는데, 물산(物産)이 또한 번성하다.

활은 중국의 제도에 비하면 조금 짧다. 그러나 화살은 매우 잘 나간다.



-명(明)의 동월(董越)이 1488년의 조선을 보고 1490년에 쓴 조선부[朝鮮賦]-
     
굿잡스 13-03-05 22:46
   
이 나라는 풍요하여 많은 쌀과 보리가 나고, 과일로는 배, 호두, 무화과, 밤, 사과, 잣,
그리고 무진장한 꿀, 약간의 비단, 다량의 면화와 베를 생산하고 있다. 지하자원으로는
금과 은 광산은 적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말과 소, 양질의 노새, 당나귀, 게다가 전 국토에 걸쳐
수많은 호랑이가 서식하고, 그 밖에 갖가지 다양한 동물이 있다. 그들이 만든 공작품은
정교하고 아름다워서 그들이 솜씨가 좋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사람들은 피부색이 하얗고
건강하고 대식가들이며 힘이 세다. 그들은 터키 인의 활과 같은 작은 활을 매우 잘 다루고,
독을 바른 화살을 사용한다고 한다.

역대의 조선 국왕들은 가장 훌륭하고 중요한 도시에 큰 궁전을 지었는데,
그곳에 수많은 가신을 거느린 관청이 있었다. 서민들의 집은 대부분 기와지붕이며,
그 밖에는 초가지붕으로 그다지 청결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귀인과 부호들은
결이 고운 식물로 짠, 정교한 장식이 있는 극히 질 좋고 광택이 나는 돗자리를
집안에 깔고 있는데, 일본인이나 일본에 오는 포르투갈 인들은 그것을 매우 진귀하게 여겼다.

우리는 나가사키에서 조선으로부터 들여온 몇 벌의 백의를 보았는데, 그 옷에는
더할 나위 없이 섬세하게 공을 들인 자수를 해 놓았다. 그것은 어떤 부분은 짠 것인지
아니면 실과 바늘로 꿰맨 것인지 여간한 시력이 아니고서는 구별이 불가능 할 정도였다.
이상의 내용들이 조선을 여러 차례 방문했던 사람들을 통해 관백의 궁정이
조선에 대해 입수했던 정보의 요약이다.

 

-루이스 프로이스(Luis Frois, 1532~1597년)의 일본사(Historia de Japam)-


 

(5월 3일) 술시(戌時) 조선의 도읍 동대문으로 진입, 거기서 황성(皇城)의 모습을 바라보

니 옥루금전(玉樓■x殿) 늘어선 기와집, 널따란 성벽들의 조형미는 극치에 달하고 수천만

헌(軒)과 늘어선 대문들, 보귀로운 모습은 이루 말로 다할 길이 없다. 그런데도 막아 싸우

려는 병사들은 보이지 않고 대문은 굳게 닫혀 있어 온통 적막하였다. (중략) 내리(內裏)

안으로 들어가 보니 궁전은 텅 비었고 사대문은 제멋대로 열려있었다. 그제야 전각을 자

세히 살펴보니 궁궐은 구름위에 솟아있고 누대는 찬란한 빛을 발하여 그 아름다운 모습

은 진궁(秦宮)의 장려함을 방불케 하더라. (중략) 후궁(後宮)에는 화장품 향기가 감돌고

산호의 대상(臺上)에는 화려한 거울이 덧없이 남아있다. 난 향기는 전각 밖까지 풍기고

사람 살던 자취도 그렇거니와 하염없는 구슬로 장식한 침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건

물마다 문이 열려 있고 궁문을 지키는 자 없으니 어디를 보아도 처량하기 짝이 없다. 그

토록 용맹한 고니시도 천자(天子)의 옥좌(玉座)에 절을 하고 신성하고 고아한 분위기에

휩싸여 두 눈에 눈물이 괴니 소오스시마, 아리마, 오무라도 따라 눈물을 흘리었다.

-에도시대의 문헌 "조선정벌기 (朝鮮征伐記)"에서-
smilla 13-03-05 23:12
   
경복궁의 지붕이나 단청, 창호에서 보면
자금성보다 조형미나 색채감이 훨씬 더 뛰어남..

경복궁.. 세련
자금성.. 웅장
굿잡스 13-03-05 23:52
   
성종 28권, 4년(1473 계사 / 명 성화(成化) 9년) 3월 13일(계묘) 3번째기사
일본국 경극전 경조윤 좌좌목씨 등이 사람을 보내 와서 토의를 바치다

일본국(日本國) 경극전(京極殿) 경조윤(京兆尹) 좌좌목씨(佐佐木氏)와 강기운 삼주 태수(江岐雲三州太守) 태선 대부(太膳大夫) 입도(入道)2907) 생관(生觀)이 사람을 보내 와서 토의(土宜)를 바쳤다. 그 서계(書契)에 이르기를,
“황제 폐하(皇帝陛下)의 수(壽)가 남산(南山)처럼 높고, 덕(德)은 동해(東海)에 젖으시어, 부상(扶桑)의 물이 조회하고 계림(雞林)의 들[野]이 성대하기를 빌고 빕니다. 신(臣)은 선조 이래로 대대로 일역(日役)에서 사사(士師)2908) 가 되니, 마치 진(晉)나라의 범자(范子)와 같은 자2909) 이므로, 오로지 궁마(弓馬)를 맡아 부조(父祖)의 업(業)을 실추시키지 않았습니다. 본조(本朝)에서는 정해년2910) 이래로 중원(中原)에 난리[風塵]2911) 가 나서 전쟁이 사방에서 일어나매, 신의 고을도 함께 싸움터 안에 들어가서 적을 많이 대하게 되니, 요역(徭役)에 나가느라 농상(農桑)을 폐기하여 피륙이 가장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사졸(士卒)들이 타지(墮指)2912) 의 재앙에 많이 곤고(困苦)하여 마치 백등(白登)의 포위2913) 를 당한 것과 같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귀국의 명주와 무명의 은혜를 내려 주시면, 삼군(三軍)에서 얼어 죽는 것을 구제하고 황제의 은혜를 만세토록 우러를 것입니다. 변변치 않은 토산물 몇 가지를 별폭(別幅)에 갖추어 적으니, 살펴주시면 다행으로 여기겠습니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5책 28권 4장 A면
【영인본】 9책 13면
【분류】 *외교-왜(倭)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State=2&mTree=0&clsName=&searchType=a&keyword=%EC%84%B1%EC%A2%85+%ED%99%A9%EC%A0%9C


성종 32권, 4년(1473 계사 / 명 성화(成化) 9년) 7월 26일(을묘) 2번째기사
일본국 인백단 삼주 태수 원교풍이 양영서당을 보내어 선물과 글을 올리다
 

일본국(日本國) 인백단 삼주 태수(因伯丹三州太守) 산명전(山名殿) 소필(少弼) 원교풍(源敎豐)이 양영 서당(亮瑛西堂)을 보내어 와서 토의(土宜)를 바치고, 아울러 사서(四書) 각각 1건(件)씩을 바쳤다. 그 서계(書契)에는 이르기를,
“공경히 생각하건대, 황제 폐하(皇帝陛下)께서 보위(寶位)에 오르시어 천운(天運)을 이어받으시니, 구방(舊邦)이 유신(維新)하며, 덕(德)이 하(夏)나라·은(殷)나라의 초정(初政)보다 뛰어나시고 도(道)가 요(堯)임금·순(舜)임금보다 위에 짝하시니, 지극히 축하하고 지극히 축수합니다. 신은 선조(先祖) 이래로 가세(家世)에서 상국(上國)3198) 에 빙문(聘聞)을 통하지 아니한 적이 없기 때문에, 경인년3199) 가을에 일개 암자승(菴子僧)과 석도문(奭都聞) 등을 차견(差遣)하여서, 옛날의 맹세를 닦으며, 또 토의(土宜)의 미미한 정성을 바쳤습니다. 다행히 금상 황제(今上皇帝)3200) 께서 왕위(王位)를 이어받으시는 초정(初政)을 만나서, 눈으로는 한(漢)나라 관리의 위의(威儀)를 보겠고, 귀로는 주(周)나라 시(詩)의 가송(歌頌)을 듣겠으니, 아아, 성대(盛大)합니다. 실로 문무(文武)의 나라인지라 영우(榮遇)하기가 너무나 크옵니다. 전사(專使)3201) 가 일을 끝마치고 동쪽으로 돌아오게 되매, 화로 동반(火爐銅盤) 1개와 동경(銅磬) 1개를 더하여 내려 주시니, 이미 후한 은혜를 받았으므로, 감격하고 기쁜 마음이 지극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지금 만복사(萬福寺)의 주지(住持) 양영 서당(亮瑛西堂) 등을 보내어 바다를 건너가서 박(薄)한 폐물(幣物)을 바치어 오로지 황제께서 왕위를 이으신 것을 배하(拜賀)하게 합니다. 신은 비록 먼 하늘, 먼 바닷가의 땅에 있어서 위궐(魏闕)3202) 아래에 달려가 마음을 바치지는 못하나, 구구(區區)한 단성(丹誠)3203) 을 엎드려 예찰(睿察)하여 주시기를 빌며, 그리하여 주시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신의 봉지(封地) 안의 백주(伯州)에 만복 선사(萬福禪寺)라고 하는 옛 사찰(寺刹)이 있는데, 허물어져 무너진 지가 세월이 오래 되었으므로 장차 다시 영조(營造)하려고 하여, 저번 때에 상국(上國)에 조연(助緣)3204) 을 구(求)하였으나, 너그러이 용납하여 주심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바라는 바는 대왕께서 관인(寬仁)으로써 포금(布金)3205) 의 봉시를 속히 행하여 주시면, 불각(佛閣)과 승방(僧房)을 일시에 다시 옛날처럼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길이 성수(聖壽)가 만안(萬安)하시도록 봉축(奉祝)하는 일단이 될 것입니다. 하정(下情)3206) 은 지극히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여 변변치 않은 방물(方物)을 별폭(別幅)에 갖추었습니다.”
하였는데, 그 별폭에는,
“활[弓] 2장(張), 백시 동대(百矢同臺) 1대(對), 대도(大刀) 10진(振), 관자 풍로(罐子風爐)·건명분(健茗盆) 2매(枚).”
이었다.
【태백산사고본】 5책 32권 15장 A면
【영인본】 9책 42면
【분류】 *외교-왜(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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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3198]상국(上國) : 조선(朝鮮)을 말함. ☞


[註 3199]경인년 : 1470 예종 원년. ☞


[註 3200]금상 황제(今上皇帝) : 성종(成宗)을 말함. ☞


[註 3201]전사(專使) : 특사(特使). ☞


[註 3202]위궐(魏闕) : 임금의 궁궐. ☞


[註 3203]단성(丹誠) : 진정에서 우러나는 정성. ☞


[註 3204]조연(助緣) : 절을 지을 때에 돈이나 재물로 도와 주어 인연을 맺는 일. ☞


[註 3205]포금(布金) : 베나 돈. ☞


[註 3206]하정(下情) : 윗사람에게 대하여 자기의 마음이나 뜻을 낮추어 이르는 말. ☞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State=2&mTree=0&clsName=&searchType=a&keyword=%EC%84%B1%EC%A2%85+%ED%99%A9%EC%A0%9C
     
굿잡스 13-03-05 23:56
   
중종 45권, 17년(1522 임오 / 명 가정(嘉靖) 1년) 6월 11일(병술) 2번째기사
세견선 허용에 관한 일본 사신의 상소문

예조가 아뢰기를,
“일본 사신들이 친히 대궐에 나아가 상소하고 싶어 하는데, 객인(客人)이 상소를 함은 사례에 어긋나는 것이라 계달(啓達)할 수 없는 것이기에 감히 품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다른 나라의 사신이 상소하는 예가 없었으니, 막아야 한다.”
하였다. 그의 상소에는,
“일본 국왕전(日本國王殿)의 중[僧] 대원(大原)은 거듭 머리를 조아리고 백 번 절하며 말씀드립니다. 우리 성문 신무(聖文神武)하신 금상 황제 폐하(今上皇帝陞下)께서 즉위하신 이래 만물(萬物)들이 제 스스로 뜻하는 대로 되어지며, 비가 와야겠다 하면 비오게 되고 볕이 나야겠다 하면 볕이 나게 되었습니다. 신이 진실로 간직한 바가 있어, 공구(恐懼)스럽지만 말씀드리고 싶기에 삼가 광화문(光化門)에 나아가 소(疏)를 올려 주문(奏聞)하오며 삼가 성지(聖旨)가 내리기를 바랍니다.”
했고, 그의 사(辭)에는,
“임종(林鍾)11016) 의 음률(音律) 속에 예법(禮法) 맡은 예조의 안내를 받아, 괴청(槐廳)11017) 의 그늘로 해서 다행히 보필(輔弼) 맡은 재상들을 접하게 되었으니, 지금 동쪽에서 온 중을 가엾이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일을 임금께 주달하여 들어주게 되고, 더욱 유익할 길을 강구(講求)하여 정히 서로 소득이 있게 되기를 거듭거듭 지극하게 빕니다.
금상 황제 폐하께서는 삼왕(三王)의 위에 있으며 만국(萬國)을 순박해지게 하시므로, 멀리 조선 나라에 와서 국은(國恩)을 입었고, 노성한 대신들과도 의를 맺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렇기는 하나 일본의 왕명(王命)을 욕되게 하고 있어, 사신으로서의 공력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되나 저일은 안 된다 하시고 이것은 가하나 저것은 부(否)타 하시는데, 진실로 선왕(先王)과 화호(和好)할 무렵 붕중(弸中)이 왔을 적에는 세견선(歲遣船)을 25척까지 승락해 주셨으면서, 신왕(新王)의 말은 버리시려는 것입니까? 지금 약조(約條) 중에서 두 가지 사항을 감하려 함은 어느 조항만 시행하시려는 것인데, 마치 수레에 예(輗)와 월(軏)11018) 이 없는 것과 같은 격으로서, 죄지은 내력도 없이 연락을 끊어버리게 되는 일입니다.
사신 승려 모(某)는 독정(禿丁)11019) 이 된 지 여러 해인데, 조잔한 몸으로 바다를 건너와 태평고(太平鼓) 소리를 들으며 유리각(瑠璃閣)에 오른 것이 두 차례나 됩니다. 간직하고 있는 속명도(續命刀)11020) 를 자비고(慈悲庫)에서 내오기 기다리고 있사오니, 억만년(億萬年)의 두 나라가 저의 남은 나이를 살게 해 주시어 모두 살아서 돌아가게 되기를 거듭거듭 지극하게 바랍니다.”
하였다.
순둥이 13-03-06 00:00
   
경복궁 불태운 쳐죽일놈의 쪽바리색히들!
ㅆㅂ! 자금성 크긴 크네. 근데 세련미가 없잖아.

번역 수고하셨어요.
     
오랜습성 13-03-06 03:38
   
임진왜란때 우리 백성들이 불태웠죠.
          
mymiky 13-03-06 23:53
   
일본군이 불태웠다는건 윗글만 잘 읽어봐도 나와요-.-
굿잡스 13-03-06 00:01
   
세종대왕이 이끌고 구축한 명보다 앞선 문화와 정치 제도, 과학 인본적 법률뿐 아니라

조선의 국제적 위치는 이미 세종시기에 여진족 절반이 조선 내로 다시 들어오게 됨으로서 이성계가

고려에서 조선을 개국한 기반이 된 여진족 세력이 조선내에 벼슬을 하며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되고

왜국(일본국)은 아예 조선을 황제로 부릅니다. 이는 류큐(오키나와) 등도 다르지 않게.


<즉 조선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오는 과정에서 고려 충신등 내부적 반발을 무마하면서 통합이 되자

명의 눈치를 보지 않고 초중기 조선만이 가진 독자적 황제적 지위에서 국제 질서를 조율했

던 선진대국의 위용을 보였던 나라였음>
     
오랜습성 13-03-06 03:37
   
초중기만요
굿잡스 13-03-06 00:27
   
아드 13-03-06 00:28
   
새삼스럽지만 경복궁 처마곡선이 참 아름답네요.
역시 곡선의 미를 아는 나라...
자금성 처마는 참 멋없게도 지어놨네ㅋㅋㅋㅋㅋ
아기건달둘 13-03-06 00:44
   
잘보고가요
좋은 13-03-06 00:47
   
허구한날 조작된 역사나 배우며 대중화주의란 허상에 빠져잇는데 경복궁이 자금성보다 일찍 지어진걸 알턱이 없는거죠..화재전의 경복궁을 완벽히 원형 그대로 재현해 놓은게 현재의 경복궁임ㅋ
     
mymiky 13-03-06 01:58
   
현재의 경복궁은 원형이 아닙니다-.-
아쉽게도 조선초 원형은 복원하기가 매우 어렵구요. 기술적 한계도 있고, 고증문제도 있죠.
현재 조선말기 흥선대원군 집권시기때로 복원중이고 그것도 복원률은 30%정도구요.
정식원형으로 하려면, 청기와부터 올리고, 지붕의 창문엔 금장식하고, 2,3층 복층건물에, 각 궁마다 난간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함.
          
토박이 13-03-06 05:09
   
경복궁은 건축물 이름이 아니라 궁궐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위에 비교사진은 근정전 입니다)
뉴스나 기사에서 25% .30% 복원 했다는 것은 고종당시 전체 전각 중 25%정도를 복원하였다고 하는것 입니다.

"청기와부터 올리고, 지붕의 창문엔 금장식하고, 2,3층 복층건물에, 각 궁마다 난간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함" 이라고 하셨는데요.  잘못된 정보군요.

경복궁 안 건축물중 하나인 근정전을 말씀 하시나 본데요.
기와는 수제기와를 사용하지 않고 공장기와를 사용했습니다. 문화제 회손이다라는 말이 나왔죠..
근정전은 2층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3층은 없어요.
"각 궁마다 난간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함"??" << 이말은 어디서 나온것 인지요?  많이 잘못 알고 계시네요.
               
mymiky 13-03-06 23:32
   
토박이님,,-.- 잘 읽어보세요. 왜 했던 말 또 하게 만드시는지?

제가 말하는 원형은 왜란 전, 태조~선조 당시의 경복궁을 표현한 겁니다.

[원래 , 조선초기 경복궁은 청기와에, 지붕엔 금장식물이 달려 있었고, 각 전각은
그 사이마다 난간으로 쫙, 이어져 있었음]=(전, 여기 진짜 원형을 말하는것)

그러다 왜란때 전소되고 몇 백년간 방치됨.

고종때 흥선대원군이 왕권강화의 일환으로 경복궁 복원함
하지만, 당시 나라의 제정상의 문제와 고증상, 과거의 영광을 100%재현하지는 못함.
그냥, 경복궁 자리에 이름만 같은 궁궐을 하나더 지었다고 봐야함.

일본군이 조선총독부를 지으면서, 경복궁 헐어버림, 625를 겪으면 훼손이 심각해짐

현제, 다시 흥선대원군 시절의 모습으로 복원중이고, 30%정도 진행됨.
과거대로 수제기와를 못 만드니 공장기와를 사용중이구요. =(님이 말씀하시는건 여기 이 상태를 의미하시죠?)
가출한술래 13-03-06 01:10
   
잘 보고 갑니다^^
히힛 13-03-06 01:17
   
색채나 곡선미는 역시 경북궁이지
웅장함은 역시 자금성이고
보통 코쟁이 외쿡인들은
아기자기하면서 곡선미와 색채가 살아있는 경북궁을 더 좋아할듯
SmaIl 13-03-06 01:30
   
뻔뻔한 짱깨들이 청의 궁궐을 마치 한족의 궁궐로 착각하나보네ㅋㅋㅋ
그래 건축은 너희 한족이 했겠지.노예처럼 여진족의 채찍에 맞아가면서ㅋㅋㅋ
번식력 하나로 살아남은 민족이 돼지같이 욕심만크네.
어서 소수민족들이나  해방시켜줘라.
     
mymiky 13-03-06 02:08
   
자금성은 명나라 한족의 궁이 맞구요-.-

청의 만주족들이 새주인이 되면서, 걍.. 자금성에 들어와 산거예요 ㅋㅋㅋ

사실, 만주족들은 후금정궁인 심양고궁이라고 심양에 있구요. 유네스코 문화제임.
다 짓기도 전에, 중원진출에 성공하는 바람에, 자금성이나 조선 경복궁보단 작은편이지만
만주, 몽골, 중국양식이 혼합된 특색있는 궁궐임.
자기자신 13-03-06 02:19
   
뭐라니 짱깨놈들이 크면 다좋은거냐 엉 경복궁은 우리조상님들이 소박하고 자연과 어루어져서 지어다나 뭐라나 자세히 모르지만 우리선조들은 소박함을 중요시했다 무조건 크면 다좋은줄아는 멍청한짱깨들이 소박함이 뭔줄모르지 ㅉㅉㅉㅉㅉ
골룸옵퐈 13-03-06 02:58
   
경복궁이 이렇게 보니깐 아담한게 웅장한 맛은 덜 하지만 예쁘네요.
확실히 색에 대한 감각은 울 조상님들이 좋으셨던 듯,
자금성은 딱 지금의 중국 이미지네.. 웅장하지만 더럽고 촌스러운.. 등등등.
tjdgus7023 13-03-06 03:09
   
짱깨들이 뭐라냐... 조선의 궁궐 경복궁은 1395년 중국은 그후 25년뒤 만들어진게 자금성인데  누가 자금성을 배꼈다고 하냐?ㅡㅡ
호이짜 13-03-06 03:19
   
자금성이 놀라운건 웅장함
경복궁이 놀라운건 세련미와  자연과의조화
자금성이 웅장하긴 하나 인위적이라 외국 건축학자들이
경복궁이 더 높게 평가 함
오랜습성 13-03-06 03:23
   
우리나라는 작고 아담하고 오밀조밀한 맛이 있고.한국은 동북아의 유럽이라 할만함.

근데 중국은 문화재    근처에다  너무 건물들을 많이 지어놓은것 같은.

확실히 중국 건물들은 웅장한 맛이 있죠.일손도 그만큼 많고

근데 중국에 있는 웅장한 건축물들은

자기 백성들을 혹사 시킨 전력때문에 암울한 역사도 같이 품고 있는....


일본은 백제가 남겨놓은것 외에는 볼것도 없는 미개한 문명



그리고 세계1차 2차대전에 피해입기이전의

조선 경복궁
개수작 13-03-06 06:15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통일하고파 13-03-06 08:04
   
잘봤습니다.
해금 13-03-06 09:30
   
대륙애들이 '여백의 美'를 알겠나여...

아마 萬년이 흘러도 절대 모를거에여~♡

'담백함의 미학'을 모르는 대륙인들은 각성하라!!
라임모히토 13-03-06 09:38
   
잘 보고 갑니다~
아침에주스 13-03-06 10:24
   
그래서 저 아이들은 어느족이야?
성씨만큼이나 종족이 많으니 원........
플로에 13-03-06 10:33
   
허허허 잘 읽었습니다. ^^
각각 추구하는 미가 다른데 비교하기 어렵지요~
입지사지 13-03-06 10:42
   
확실히
시홍스 차오찌단은 맛나요...
간단하면서 맛있죠.
토마토 싫어하는 사람도 반할 영양가 있는 음식입니다.
계란과 토마토를 볶아내는 아주 간단한 요리지만 최고입니다.
나나니 13-03-06 10:45
   
아프리카 토착민보고 미개하다고 할 놈들이네. 문화나 풍습이라는건, 다 그지역에 맞게 자연스레 형성되어오는거고, 어떤 것이든, 존중받을 가치가 있음을 언제 깨달으려나. 공산주의 사람들은 생각자체가 천하고 교양이 없음.
조이독 13-03-06 11:32
   
궁궐은 그 나라의 사상을 말해주는 데..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민본주의 사고가 강해서 그 구조도 상당히 개방적이라는 데 있다.. 군왕이 덕이 없으면 쫓겨나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는 유교중에서도 맹자사상 담겨있다.. 그래서, 경복궁에서 보면 그 시대치고 왕과 신하 그리고 백성의 경계가 높지 않았다.. 흉년이 들거나 가뭄이 들면 왕도 초가집에 살고, 적게 먹고 해야 하고 왕이 되어도 공부해야 하는 왕노릇하기 힘든 나라였다.. 그런 사상이 건축물에 담겨 있으니 한번 들어가면 절대 나오지 못하는 곳으로 만든 중국의 황궁에 비하면 얼마나 아름다운가?  건물은 곧 그 시대의 정신이다..
눈팅 13-03-06 12:14
   
잘보고가요
진이 13-03-06 12:59
   
한민족의 나라가 옆에 바로 떡하니 있는데
어디서 연변족을 나불거려 짱깨들ㅉㅉ
돌맹이 13-03-06 13:18
   
자금성을 논하기 이전에 모택동 사진하고 쓰레기 글을 덴 후에 이야기 하자.
ssal 13-03-06 13:41
   
자금성과 경복궁.. 들다 다른 매력이있는 문화제인데 비교를 왜할가... 일단 둘다 많이 파괴되서 지금 거의 기초밖에 않남은 문화제이다 자금서으이경우 총 4개의 외성을 자나야 마주할 정도의 거대한 크기를 자랑했지만 지금은 황제가 살았던 중심부만 남은 상황이고 경복궁또한 임진왜란때 거의 대부분이 소실되서 마찬가지... 중국 한족의 특성상 그리고 동에는 한국 남에는 인도 서쪽엔 아랍 서방가지 찾아왓던 중국특성상 자금성은 외형적인 웅장함과 거대함으로 상대국들의 기를 죽여야 할 필요성때문에 일부로 기와도 황금색으로 치장하고 일부로 거대하게 지었다는 당시 특성이있고 그에비해 외국과의 교류가 적엇던 경복궁은 지극히 한국스러운 전통을 살린 아름다운 궁이였다한다 위압감의 자금성과 비원 자연과의 조화를 생각하고 지은 경복궁중 어느게 낫다 못하다를 비교하는것 자체가 웃긴일이지 솔까말 자금성이 아무리 웅장하다한들 피라미드만하겟나?
지해 13-03-06 14:03
   
공부는 전혀 안하는 놈들이군...
풍류공자 13-03-06 14:58
   
잘 봤습니다.
고독 13-03-06 16:02
   
今宵月下见
    >>>>>令FQ嫉妒的韓國 자금성의 역사가 긴지,
    경복궁의 역사가 긴지 한번 물어보고 싶다,
    우리가 자금성에 살고 있을 때, 한국은 초가집 시대였어.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개소리마 ㅎㅎ
후진국이 지금 나불대서 뭐하냐?
지네가 불질러서ㅡ없앤건 생각않하나봐???
뭐 중국은 소수민족들만 끼리끼리 뭉쳐서 사니까 모르겟지
재넨 정교함을 몰라 그냥 지붕올리고 밑에 벽만 쌓아 올린게 그것도 궁이라고 ㅋㅋ 참
고독 13-03-06 16:04
   
왜란일어나서 없애진게 몇겐대 재네는 나불다냐 ㅎㅎ
질떠러지는 후진국은 입만 살앗다지요 ㅎㅎ
우왕ㅋ굿ㅋ 13-03-06 17:09
   
모르는 사실을 많이 알게되었네요

잘보고 갑니다
조니 13-03-06 19:22
   
포장 지만큰 마데 인 차이나
루트ex 13-03-07 05:44
   
중국서 3년전에 올린 댓글이 이제 등록됫다해도 농담처럼 안들리는 마당에
우리보고 인터넷 연결 됏냐고 묻는건가
♡레이나♡ 13-03-07 06:12
   
잘보고갑니다
달발근 13-03-07 07:25
   
문화제 X 문화재 ㅇ
회손 X 훼손 ㅇ
좋은 댓글인데 맞춤법에 신경써주시면 훨씬 더 좋을듯...
잘 읽고 갑니다.
굿잡스 13-03-07 14:06
   
윗글에 보니 당나라 시절 증축을 거듭한 대명궁과 고구려 안학궁을 비교하는 글이 보여서 하는 말입니다만

고구려의 안학궁은 5세기초 장수태왕때 지어진 궁으로 당시에 서토에서는 당나라라는 왕조는 존재하지도

않고 북방 선비족에 쳐발려 내려온 북위가 장안을 자치하고 북조사를 세운 시기였음.  그리고 이런

북조사가 남조를 다시 정벌하려다 우리 백제 군사력에 대규모 기병이 연패함으로서 남조가 겨우 숨쉬고

살던 시절이였던.
     
굿잡스 13-03-07 14:12
   
그리고 앞서도 언급했지만

서토은 기본 평지에 장방형의 건물을 구조로 하는 반면에

울 나라는 중요 대도시에는 평지성 외에 인근에 바로 대규모의 도시형 산성을 셋트형으로 만

드는게 도시 설계의 기본입니다.

즉 안학궁의 건물도 거대한 위용을 보이지만 이외에 바로 인근 750여미터 떨어진 곳에

유사시를 대비해서 정치를 행하고 인근 백성들이 생활할수 있는 대규모 도시형 산성으로

(유럽에서도 산성이라는 개념은 그냥 요새적 소규모 형태지만) 평지성 이상의 규모로

만들어 집니다.


<대성산성은 묘향산의 지맥인 대동강 북쪽의 을지봉(270m)을 중심으로 남쪽에서부터 소문봉·장수봉·북장대·국사봉·주작봉 등 6개의 산봉우리를 연결하는 타원형의 포곡식 산성이다. 그런데 주작봉과 소문봉 사이 남문이 있는 골 안에서는 2중으로, 주작봉과 국사봉 사이 골 안에서는 3중의 겹성으로 쌓았다. 산성의 규모는 둘레 7,076m, 성벽 총길이 9,284m, 면적 2,723㎢이다.

http://terms.naver.com/entry.nhn?cid=200000000&docId=1158077&mobile&categoryId=200001104 >

이는 삼국 남북국 시대를 거쳐 중세를 지나 조선시대에 까지도 변치 않는 것으로

조선의 5궁 뿐 아니라 인근에 북한 산성 남한 산성등 대규모 도시형 행궁들이 존재하는

이유이죠.  서토에도 무슨 별장 같은 개념으로 확대되기는 하지만

실질적 행정적 성격의 궁의 규모로 따지면 울 나라는 더 불어 납니다.


우리 나라를 성곽의 나라라고 하는 이유가 있는.. 그기에 건축물도 대규모로 짓고자

하면 못할 것도 없는 나라 였습니다.(이미 신라 조차도 출토된 기와 크기가 동아시아 최

대였음.이런 거대한 하중을 지대하면서 큰 건물을 짓는 건축물은 일찍이 다 습득하고

있었던. 열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나 탑,천수각등도 다 우리 백제인들의 작품과

이어져 오던 기업들 작품이고)
고구마11 13-03-09 12:53
   
크면 다 좋대 ㅋㅋ
kuijin 13-06-17 22:01
   
중국의 규모는 역시 엄청나지만 색을 칠하는 부분에서는 우리나라보다 못하는 감이 있군요.
kelvin 13-07-28 16:49
   
sxz1997
자금성은 중국 천자의 황궁이고,
경복궁은 중국의 속국 조선 국왕의 왕국이야,
등급 자체가 다르다고.

>> 후진국주제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쓰레기후진국 나라민도수준나오네
딤됴 13-08-17 17:10
   
솔직히 자금성 이상하게생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