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메다.
다들 알다시피 은하철도 999호의 종착역이지.
M31 혹은 NGC224라고도 이 은하는, 우리가 사는 곳과 흡사하게 생겨서 굉장히 아름답다 하더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여행하길 원했었고, 그 덕에 철도사업이 호황이었던 모양이야.
표 팔아서 생기는 수입이 제법 짭짤했던 거지.
와...그런데, 진짜로 옛말 틀린 거 하나도 없더라.
왜 꽃의 붉음이 열흘을 넘지 못한다고들 하잖아?
그 말처럼 이 장사도 느닷없이 찬 서리를 맞게 된 거야.
사정은 이래.
1944년도엔가?
독일의 천문학자 W.바데가 이 은하가 매초 275km의 속도로 지구로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는데.
그게 문제였어.
혼자 알고 말았으면 조용히 끝났을 것을, 이 븅신새끼가 권위 있는 과학지에 그 사실을 떠벌인 거야.
졸라 잘난 척을 하고 싶었던 거지.
어떻게 되었냐고?
말하면 뭐해. 시쳇말로 좆 됐지.
생각해봐.
안드로메다은하 전체가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다는데, 굳이 비싼 돈 주고 거기까지 갈 필요가 있겠냐고.
대가리에 총 맞지 않고서야 그런 미친 짓을 할 놈이 없지.
게다가 요즘 같이 어려운 시기에 말이야.
당연히 열차티켓은 팔리지 않았고, 그 때문에 은하철도 999호는 운행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대.
뭐, 어쩔 수 없지.
사업하는 입장에서야 타산성이 맞지 않으면 접을 수밖에.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척 아쉬워.
은하철도 999호를 타고 먼 우주를 여행해보는 게 내 꿈이었거든.
그런 얘기를 들은 게 아마 내가 열 살 때쯤이었을 거야.
그리고 세월이 흘렀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내 머릿속에서도 은하철도 999호는 잊혀져갔지.
근데 웃기는 얘기 해줄까?
나중에 대가리 크고 나서 우연히 은하철도 999호를 봤다는 거 아냐.
그것도 미사리에서.
사랑하는 현주를 열두 토막 내고 그걸 묻으러 갔는데, 어이없게 은하철도 999호가 거기에 서 있더라고.
열차카페로 개조된 채로.
이봐, 그 표정은 뭐야.
난 현주를 사랑했어.
내가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를 죽일 만큼 무례한 놈으로 보여?
난 그렇게 무례하진 않아.
정 못 믿겠으면 현주에게 물어보든가.
아무튼, 꿈과 낭만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순간이었지.
그냥 커피나 한잔 하고 나왔는데, 돌아서는 기분이 참 찌글찌글하더군.
맛없는 커피 값을 만원씩이나 받아 처먹어서는 아니었어.
집에 와서 곰곰이 고민해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희망(希望)’이란 단어가 사라진 게 그 후부터가 아닐까하고.
그리고 이건 내 생각인데.
메텔은 알고 있었을지도 몰라.
세상이 이렇게 좆같이 될 것을 말이야.
.
.
큭큭, 나쁜 년, 알고 있었으면 미리 말을 했어야지.
그럼, 현주는 안 죽었잖아.
------------------------
한 15년전 쯤 쓴 거네요
하드코어한 얘기에 꽂혀 있던 시기
왠지 야구파타 진빠성이 이렁거 좋아할 거 같아서...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