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포(釜山浦)에서 출항한지 세 달째.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범아국(梵亞國) 도성(都城)인 양곤 앞 바다로부터
대략 오리(五里)쯤 떨어진 곳에 당도하였다.
좌군사(左軍司) 치저랑(治抵郞)과 우군사(右軍司) 아이유장(亞二柳將)은
천리경(千里鏡)을 꺼내 양곤 포구(浦口)의 동태를 살피고자 하였다.
시간은 묘시(卯時)경으로 이제 막 동이 틀 무렵.
"아직 어둑어둑한데다 해무(海霧)까지 끼어 잘 보이지가 않는구려."
"그러게 말입니다. 어찌하면 좋겠소이까?"
장수(將帥)들과 참모(參謀)들을 모아 작전회의를 열었다.
"우리 화력이 강하니 먼저 화포를 쏘아 공격한 후 적들이 당황하는 틈에
한번에 배를 몰아 들이쳐야 합니다"
해전(海戰)에 능한 수군만호(水軍萬戶) 수달(水獺)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옳거니",
"탁견(卓見)이구먼",
"역시 수달이여"
여러 장수들이 이에 동조하였다.
이 때 한 켠에 조용히 앉아 있던 책사(策士) 부분모달(夫芬模達)이 말하였다.
"적은 이미 우리가 오는 것을 알고 육지와 바다 두 곳 모두
방비(防備)를 철저히 해두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포구(浦口)에 먼저 화포를 쏜다면 우리가 온 것을 적이 알게 되고
육지는 물론 근처 바다에 있을지도 모르는 적선들로부터 협공(挾攻)을 받아
우리의 형세가 매우 불리하게 될 것입니다."
부분모달(夫芬模達)이 이어 말하였다.
"먼저 은밀히 날랜 자를 보내 포구(浦口) 주변을 살펴 적의 방비가 허술한 곳을 찾은 후
상륙선을 띄워 적이 모르게 상륙해 육지에 있는 적을 급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군선(軍船)들은 주변 바다에 있을 적의 군선들을 찾아 공격하는 것입니다.
즉, 전선(戰線)을 육지와 바다 두 곳으로 나눠 사전에 적의 협공을 막고
불시에 들이쳐 각개격파 하는 것입니다."
그의 말은 들은 장수들과 참모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여윽시...",
"그렇지, 이거지. 이래서 책사(策士)가 필요한겨",
"수달 꺼져"
역시 고구려 시대 최고위직(最高位職)의 하나이자 도성 방어 중앙군의 수장이었던
대모달(大模達) 집안 출신다운 뛰어난 지략이었다.
"아니...이거 놀랍구먼. 자네, 내 생각과 어쩜 그리 똑같은가?"
우군사(右軍司) 아이유장(亞二柳將)이 말하였다.
좌군사(左軍司) 치저랑(治抵郞)도
"나도 진즉에 이 전략밖엔 없다고 생각했지요"라며 맞장구를 쳤다.
"그럼, 누가 가서 은밀히 포구(浦口) 주변을 살피고 오겠는가?"
이 때 혈가(孑歌)가 나서며 말하였다. "소장(小將)에게 맡겨주십시오!"
"좋아. 그럼 어서 작은 배를 띄..."
우군사(右軍司) 아이유장(亞二柳將)이 미처 말을 마치기도 전에
혈가(孑歌)는 맨 몸으로 바다로 뛰어 들어 물 위를 달리기 시작하였다.
이 광경을 목도한 장졸(將卒)들 모두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저건 극강의 경공술(輕功術)인 등평도수(登萍渡水) 아닌가"
좌군사(左軍司) 치저랑(治抵郞)이 나즈막히 외쳤다.
옆에 있던 우군사(右軍司) 아이유장(亞二柳將)이 그에게 물었다.
"등평도수? 좌군사(左軍司), 도대체 그게 무엇이오?"
좌군사(左軍司) 치저랑(治抵郞)은 말없이 수평선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기었다.
약 서른 해(三十年) 전(前), 깊고 험하기로 이름난 묘향산 어느 깊은 산중(山中).
구름에 닿을 정도로 높디 높고 가파른 절벽 암반 위에
미동도 않은채 하염없이 어딘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한 젊은이가 앉아 있었다.
'은경아...목포여상 밴드부 고은경. 아...천 번을 불러도 모자를 이름 석자'
치저랑(治抵郞)은 어디선가 구름을 탄 선녀(仙女)처럼 은경이가 눈 앞에 나타날 것만 같았다.
이 때 청천벽력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이 노오옴!!! 잡념을 떨쳐내어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야
비로소 기(氣)를 모을 수 있다고 내 그토록 일렀건만...ㅉㅉㅉ 못난 놈"
"스...스승님..."
"내 보아하니 넌 틀렸구나. 이만 하산(下山)하여 목포에서 은경이랑 낙지나 먹도록 하거라."
"스승님, 내치시기 전에 부디 이 제자가 아직 배우지 못한 무공(武功) 하나만 알려주시옵소서"
이리하여 당대 최고의 도인(道人)으로서 신(神)으로 추앙받던 신의한수(神意翰手)는
그동안의 정리(情理)를 생각하여 치저랑(治抵郞)에게
강호(江湖)의 모든 무리가 탐내는 비공(飛功)인 등평도수(登萍渡水)를 가르치게 된다.
등평도수(登萍渡水)는 사내의 신체 한가운데 두 개의 구슬에 모여 있는 양기(陽氣)를
끌어내려 발에 모은 후 모인 양기를 발바닥 아래로 내뿜어 공기를 뜨겁게 만듦으로써
밀도가 낮아진 공기가 위로 향하는 원리를 통해 몸을 공중에 띄워 물을 건너는 경공술(輕功術)이다.
신의한수(神意翰手)는 원래 고려말 최무선과 함께 화포를, 세종대왕 시절엔 장영실과 함께
천문기구 등을 만들던 발명가이자 과학자였으나 후에 도인(道人)의 길을 걷게 되었다 전하는데
그래서 그의 무공(武功)은 장개국(掌匃國)의 황당무계(荒唐無稽)한 무공과 달리
등평도수(登萍渡水)처럼 과학적 원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등평도수(登萍渡水)를 쓰려면 사내의 양기(陽氣)를 모두 끌어 모아야 하고
한 번 쓸 때마다 몸 속 양기(陽氣)가 일할(一割)씩이나 소진되기에
범인(凡人)들은 감히 배울 수도 쓸 수도 없는 무공으로서
무공이 완성되기 전에 음기(陰氣)를 가까이 할 경우 남자의 보물(寶物)에 큰 내상을 입어
다시는 사내 구실을 할 수 없는 아주 위험한 무공이기도 하다.
언제 어디서나 차고 넘치는 양기와 그 양기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치저랑(治抵郞)같은 소수의 사내들만이 습득할 수 있는 고도의 경공술(輕功術)인 것이다.
그나저나 혈가(孑歌)는 도대체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등평도수(登萍渡水)를 배운 것인가?
등평도수(登萍渡水)를 익힌 치저랑(治抵郞)은 하산(下山)하여 급히 은경이가 있는 목포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아들 둘을 둔 유부녀가 되어 있었으니...
크게 상심한 치저랑(治抵郞)은 그 길로 한양으로 상경해 무과시험을 보고 초급무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치저랑(治抵郞)은 동료 무관으로부터 아리따운 낭자 한 명을 소개받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