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기인데 갑자기 급하다며 일을 맡겨와서 몇 일 바쁘고 정신이 없었던지라
세상만사 다 귀찮아서리 어디 조용한데로 떠날까 생각하다
10년전 쯤 처음 갔던 곳을 다시 한 번 가봤어유~
숙소도 그 때 그 곳으로...
희한하게 10년 전이나 이번이나 손님은 저 혼자 뿐이더만유
하기사 방이 서너개 밖에 없는 부띠끄 호텔인지라...
그건 그렇고....모든 것이 10년 전 그대로더만유
쥔장 아주머니도 그대로...
첨엔 절 못 알아보는 듯 하다가
10년 전에 여기서 연말연초를 보냈다고 하니 용케도 기억을 하시네유~
아마도 외국인들은 모르는 곳이라 오지 않고 현지인들도 오기 쉽지 않은 곳이어서인지...
긴 해안선을 따라 2~3층짜리 작은 부띠끄 호텔들이 몇 개 있을 뿐
주위엔 술집이니 식당이니 편의점이니 편의시설도 전혀 없고
일반 주택도 없고 그야말로 진짜 아무것도 없는 곳
여기 여행 온 사람이 저 밖엔 없는건지 있는 내내 다른 사람은 구경도 못했네유
낮엔 긴 해안선 따라 백사장이 다 드러나는데
밤엔 바닷물이 호텔 마당까지 들어오는지라 밖에 나갈 수도 없어유
호텔에서 바다를 보면 바로 앞바다에 마치 작은 산봉우리 같은게 하나 솟아 있는데
호텔 쥔장 아줌마한테 저기 가 볼수 있냐고 물어보니 배를 렌트하면 갈 수는 있는데
가도 별거 없다고 해서 걍 안 갔네유~
할 것도 없고, 갈 데도 없고
하루 죙일 긴 백사장을 천천히 걸어 보기도 하고, 뛰어 보기도 하고
젖은 모래 위에 의미없는 글자도 써보고
백사장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바다를 쳐다보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10년 전 기억도 나더만유~
10년 전엔 여기 앉아서 현지 새해 노래를 들었었는데....알아 듣진 못했지만서두 ..ㅋㅋ
10년 간 있었던 일들도 주루룩 생각나고
난 왜 여기에?....사는게 몬가?...이런 생각도 들고
나란 존재라는 것이
어쩌면 저 거대한 바닷물에 한 번 쓸려 왔다 쓸려 가는
무수히 많은 작은 모래알 중 한 알 같기도 하공...
이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줌마가 저녁 먹자고 불러서 가보니 맛있는걸 많이 차려 놨네유
손님이 없으니 호텔 앞 잔디 깔린 마당 테이블에서 아줌마랑 단 둘이 저녁을 먹는데
갑자기 궁금해서 "아줌마 여기 사는거 좋아요?" 라고 물으니
아줌마는 "여기서 태어났어요"라고 대답하더니만
저한테 "언제 또 오실거에요?"라고 묻길래
"글쎄요..10년 쯤 후에?"
아줌마도 웃고 저도 웃고...
그러는 사이 어느새 바닷물이 호텔 앞까지 들어와서 출렁거리네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