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후의 시대.
한국을 통치했던 군정부 지도자들은 제 3세계의 많은 지도자들과는 다르게, 전쟁에 의해 피폐해진 한국의 경제발전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국가를 급속한 산업화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이상을 원했습니다.
사람들은 1980년 남쪽의 한 도시 광주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들고 일어났고, 군정부는 수백명의 사람들을 죽이려는 목적으로 낙하산 부대와 탱크를 급파했습니다.
학생과 노동자의 운동이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를 걸치며 대학들과 공장들을 동요시켰습니다.
그 결과 군정부는 1993년 그들의 정권을 김영삼에게 양도했으며, 그는 30년만의 첫 번째 민간지도자였습니다.
변하지 않는 한가지가 있다면 반공에 대한 감정이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1990년대 후반 전국적인 금융 붕괴속에서 4백 50억 달러의 국제 긴급 자금을 부탁해야했을 때 굴욕감을 느꼈고 이것은 한국인들에게 충격이 되었습니다.
이후 1998년 그들은 오랜 시간동안 야당의 지도자였던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선출했습니다.
그는 파산을 앞둔 한국 회사들을 좋은 조건으로 사는 외국 투자자들에게 문을 열어주었으며 종종 엄청난 이익을 만들어내며 그렇게 한국의 위기에서 탈출했습니다.
외국 자본의 레드카펫을 맛보려했던 많은 사람들은 쓰라림을 느꼈습니다.
(외국 자본의 레드카펫은 이익이나 특권 정도로 의역하면 될 것 같습니다.)
Kim(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은 오랜 시간동안 외면받던 진보 세력을 권력에 중심에 서게 했습니다.
그들은 북한과 좋은 관계를 맺는것에 초점을 두었고 이것은 2000년 남북 두 정상의 첫 번째 정상회담이라는 결과를 안겨주었습니다.
이러한 활동속에서 한국인 200만명이 북한의 산을 방문했습니다.
또한 전쟁으로 인해 반세기동안 떨어져 살고있던 한국인들은 가족 상봉에서 서로를 끌어 안았고, 이것은 전세계로 방송되었습니다.
번역기자:Lavender(귓방망이)해외 네티즌 반응 Copyrights ⓒ 가생이닷컴 & www.gaseng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