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한옥마을에 푹 빠진 일본인 관광객들
" 그려도 , 그려도 끝이 없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공간 "
솔직히 부끄러웠다. 내가 전주 토박이란 사실이 , 이 일본 여성들 앞에 앉아 있는 내내 그랬다.
국내의 다른 여행지는 다 제쳐놓고 오로지 전주한옥마을이 좋아서 매주 전주를 찾는다는
이 오바상( 아줌마-부인네를 높여 정답게 부르는 말)' 들의 진실어린 애정에 굳이 어떠한 현란한 미사여구를 붙일 필요가 있을까.
이 생각이 닿는 순간, 문득 궁금해졌다 .
이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전주한옥마을이 가진 ' 정서'의 실체가...
한국인도 버벅댈 수 있는 이 추상적인 물음에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현재 " 전주에 첫눈에 반하다 ( http://ameblo.jp/byonjeonju)"
라는 블로그를 운영중인 고구레 마코토 (小幕眞琴 53) 씨, 그에게 전주한옥마을은 반짝이던 시절과 마주하는 재회의 장이었다.
" 어렸을 때 살았던 곳하고 정말 비슷해요. . 지금 제가 사는 일본도 그렇지만 한국의 서울이나 부산을 가도 그런 모습을 찾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전주한옥마을과 그 부근에는 , 뭐랄까... 50년 전 일본에서 느낄수 있었던 그리운 분위기가 많이 남아있어요.
골목에서 낙서를 하던 어린아이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것 같고 ..., 향수를 많이 느껴요. "
마코토 씨가 반한것은 비단 전주한옥마을의 외형뿐만이 아니다. 외려 외형보다 한옥마을을 구성하는 인적요소,
즉 " 전주사람" 에게 더 많이 끌렸다는 게 그의 말이다.
" 일본에서도 물론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 놓은 전통문화 관광지가 많이 있죠. 하지만 실제로 사람이 살며 생활하고 , 소통하고, 그러면서 온 관광지가 활기로 가득 차 있는 건 전주한옥마을이 처음이었어요. 무엇보다도 전주사람들은 외국인에게 친절해서 놀랐어요. 제가 일본인인 걸 알게 되면 길을 걷던 분들이 " 한옥마을 정말 멋있죠?, 전주에 잘 오셨어요 " 하고 인사를 건네주세요. 거기에 반해서 매주 오다보니 친구들이 " 전생에 전주사람이 아니었느냐? " 고 하기도
해요. (웃음)
옆자리에서 이야기를 듣던 히다카 마리꼬(日高眞理子 55) 씨의 대답 역시 같은 궤적을 그렸다.
" 전주한옥마을 근처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은행을 줍던 때였어요. 열심히 줍고 있는데,그걸 줍고 있던 어르신이 검정비닐봉지를 주시며 " 그렇게 집으면 손에서 냄새가 나니까 이걸 끼고 하시게" 라고 말씀하시는 거에요.
제가 서울에서 20년 이상 살았는데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어요. 일본은 물론이고 서울에서도 잊힌 " 인심"을 느끼고 난후 계속 전주를 방문하고 있어요. 물론 잘 보존해 놓은 옛것이 많다는 점도 더할 나위없이 좋지요."
실제로 마리꼬 씨는 "사람" 을 만나려고 전주를 찾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 남천교 부근에는 제가 친하게 지내는 한국분들이 많이 계세요. 본인이 직접 제작한 소품을 파는 20대 여사장님하고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1-2시간이 금방 가요. 또 민박집을 운영하시는 분들하고도 두루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계속되는 마코토 씨의 이야기는 " 맛의 고장, 전주"에 닿아 있었다.
" 전주한옥마을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전주를 방문한 일본인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어요.
그분들의 코멘트를 보면 가장 인기가 좋은 곳은 사실 막걸리집이에요. 한 주전자가 나오면 무료 안주가 한상 가득하게 깔리는 그런 스타일은 전주밖에 없어요. 블로그로 만난 일본인 30명과 함께 막걸리 골목 탐밤을 갔는데 술을 마시지 않는 분도 그 광경을 보고 " 스바라시이 (굉장하다)~" 라고 하시면서 정말 즐거워하셨어요.
여기에 이어지는 마리코 씨의 이야기에선 처음에 가졌던 의문, 한옥마을의 " 정서 " 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가 있었다.
" 저는 한국 이외에도 캄보디아 ,베트남 등 여러 아시아 국가를 여행했어요. 그럴때마다 그림으로 그리고 싶은게 정말 많았어요.
가령 1980년대 한국에선 어린 동생을 포대기에 엎고 있는 여자아이라든지, 거리에서 갓난아이에게 젖을 물려주는 어머니의 모습이라든지, 그런 정겨운 풍경들을 그림에 담기 바빴어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 서울이 대도시가 되면서 그림을 그만 그리게 됐어요. 그렇게 세월이 흘렀는데, 전주의 모습을 보고 다시 처음으로 "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드는 거에요.
벌써 그림노트가 몇권이나 되요. 말하자면 저한테는 한옥마을이란 " 그려도 , 그려도 그리고 싶은 게 끝이 없는 , 세상에서 소중한 공간이에요."
출처: 미래를 여는 천년 전주
새로운 이야기가 가득한 전주한옥마을 <기획 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