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이란 경제제일주의를 내세운 장면 내각에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한 서독이 선진국으로 빠르게 도약한 것'을 라인강의 기적이라 부른 것에 빗대어, "6.25 전쟁을 치르고 국토와 인력이 넝마가 되어버린 대한민국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주로 장면이나 5.16 군사정변 이후의 김유택, 송요찬 등 여러 관료 및 경제인의 입에서 시작된 말이나, 오늘날에는 1950년 6.25 전쟁이후 1997년 구제금융이 있기까지의 대한민국 경제 초고속 성장을 상징하는 말로 두루 쓰이고 있으며 1990년대부터는 이를 외국에서 아시아의 네 마리 용 국가와 함께 동아시아의 기적(The East Asian Miracle)이라 부르고 있다.
해외의 수많은 경제학자들과 전문가들이 자원 빈국의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비결로 고등교육을 받은 높은 수준의 인적자원 보유를 한 이유로 드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브라질 룰라 행정부의 경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게 하기 위해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집에만 정부 지원금을 제공하는 처방을 내려야 했는데 한국은 지원금이 있으나 없으나 일단 학교는 보내고 봤다.
해방직후 문맹률이 70%에 이르던 대한민국의 상황은 놀라울 정도로 습득 난이도가 낮은 한글의 보급, 의무교육의 강력한 시행, 과거제도 등 학문을 통해 성공하는 문화적 배경 등의 이유로 문맹률이 1950년대에 10%~15%전후로 떨어지는 등 빠르게 개선되어 제1공화국 때부터 기본적인 셈과 글을 읽고 쓸줄 아는 노동인력이 풍부해졌다. 이처럼 기본 문해능력을 갖춘 노동력이 대다수였으니 산업현장에서의 품질관리나 인력관리가 용이했고, 단순히 외부의 하청을 받는데서 벗어나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현장에 접목시킬 토대가 마련되었다.
또한 예로부터 한국은 부모님, 형제 자매들은 뼈 빠지게 일하고 죽어라 돈 마련해서 자식, 동생들을 대학에[82] 보냈다. 파독 광부, 간호사를 다른 개도국보다 우선시 여겼던 것도 최소 고졸 이상의 학력이 있어서 파견이 가능했던 것. 같은 시기 한국보다 훨씬 잘 살았던 남미에서 공부대신 자원 수출, 스포츠로 먹고 살려 했다는 것을 비교하면 차이가 극명하다. 또 기술인력 측면에서도 당시 대체연구복무 + 인원 확충으로 기술인력이 대대적으로 증가했다.
지금도 한국이 배출하는 대학기술인력은 인구가 6배인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그 질적 수준은 장담 못한다. 물론 한국 역시 대학 자체 수준이 높은 대학에서 길러내는 기술인력들 역시 많다. 이들 기술인력이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한국의 대기업이나 IT기업에 입사하여 새로운 기술혁신을 일으켜 왔고, 또한 2010년대에도 바이오 기업 위주로 신약개발에 이바지하는 등 기술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문화적 역사가 깊다는 것도 크게 유리한 부분. 이는 결과적으로 민주의식 발전에 따른 사회 자정작용 기능, 중산층의 확대로의 기능을 하였다.
출처 : 나무위키 한강의 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