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제로’ 일본 요금 급등, 전기 먹는 공장들 한국으로
“일본 산업계는 자국의 절반 수준인 한국의 저렴한 전기요금에 위협을 느꼈다. 한국의 산업용 전력 요금이 인상되면 화학·철강 등 일본 기업의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의 탈(脫)원전 정책을 소개하며 이렇게 분석했다. 2011년 3월 후쿠시마(福島) 원전 폭발사고 이후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의 민주당 정부는 즉시 ‘원전 제로(0)’를 선언했다. 초기 대응에 실패한 정부가 일본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급히 꺼낸 정무적 카드였다. 전체 전력 생산량(1조64㎾h) 가운데 29%(2878억㎾h)를 담당했던 원자력발전소 60기는 모두 가동이 중단.
이에 따라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업체들의 해외 이전이 이어졌다. 도레이첨단소재·데이진·미쓰비시화학 등 일본 화학기업들이 속속 한국에 공장을 지었다.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도 마찬가지. 2011년 11월 소프트뱅크는 KT와 합작해 신규 데이터센터를 경남 김해에 지었다. 서버 1만 대를 돌릴 수 있는 6000㎾ 규모. 데이터센터는 데이터 저장과 냉방을 위해 많은 전력을 소모한다. 당초 일본을 선택했던 글로벌 클라우드 사업자들도 한국에 거점을 마련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부산에,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서울에 각각 데이터센터를 지었다.
이익환 전 한전원자력연료 사장은 “현재 공산품 및 서비스 가격 가운데 30%가량이 전기요금” “탈원전은 직접적인 전기요금 인상뿐 아니라 물가 상승과 수출 감소 등의 간접적인 악영향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모든 선택에는 비용이 따른다. 원자력발전을 포기하는 일도 마찬가지. 국책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h를 생산하는 발전단가는 원전(67.9원)이 가장 싸고 이어 석탄화력(73.9원)·액화천연가스(LNG·99.4원)·신재생에너지(186.7원) 순이다. 탈원전 측에서는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자료를 인용해 사고나 핵폐기물 처리비용 등 위험회피비용으로 ㎾h당 3~203원을 포함하면 원전의 발전단가는 54~254원으로 오히려 비싸다고 주장.
이에 대해 한국수력원자력은 “사고처리비용 등 외부비용을 포함해 단가를 계산하는 방식은 일본을 포함해 전 세계 어느 국가도 채택하지 않는다” “석탄이나 LNG발전도 이산화탄소 배출 등의 외부비용을 계산하면 단가가 훨씬 높아질 것”이라 밝혔다. 탈원전 정책이 진행되면 전기요금이 오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환경에너지팀장을 맡았던 김좌관 부산가톨릭대 교수는 “2030년까지 에너지 분야 공약이 계획대로 이행될 경우 전기요금이 지금보다 25% 안팎 오를 것”이라 말했다.
현재 5만5080원인 4인 가구 월 전기요금(350㎾h 사용 기준)이 13년 동안 1만3770원 정도 오르게 된다는 설명. 일본은 가정용 전기요금이 2010년 ㎾h당 20.37엔에서 지난해 24.21엔으로 19% 올랐다. 독일의 경우 2011년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탈원전을 선언한 이후 전기요금이 MWh당 244유로에서 2015년 295유로로 21% 상승.
독일의 원전 비중은 2000년 29.5%를 정점으로 2015년 15%까지 낮아졌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를 계기로 탈원전 논의가 시작됐고 90년부터 신재생에너지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도입. 2011년 후쿠시마 사고가 터지자 논의를 시작한 지 25년 만에 탈원전을 최종 결정한 것. 독일의 탈원전은 2022년까지 마무리된다. 하지만 FIT가 지난해에만 270억 달러(약 30조원)에 달할 정도로 늘어나면서 전기요금은 2000년 대비 두 배로 올랐다. 주한 독일대사관에 따르면 월 333kWh를 썼을 때 독일의 전기요금은 104유로(약 16만원)로 한국의 세 배 수준이다.